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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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에 묻힌 비밀(35)
2011년 03월 28일 00시 54분  조회:2793  추천:23  작성자: 김송죽
       음지에 묻힌 비밀(35)
  
            요문원의 성장삼부곡
  
      
(요문원은 어떻게 붉어졌는가)       
요문원은 일생에 말과 글로 남의 죄상을 폭로하는것을 업으로 삼았는데 사람을 얼마나 해쳤는 모른다.  사람을 해쳐도 “관건적”인 일에 해쳤기에 명리(名利)를 다 거둔 것이다.
그러기를 세차례.

첫번째는 호풍을 비판하여 차츰 두각을 내밀었고 두 번째는 <<록이비고(彔以備考)>>로 하여 “샛별”로 떠올랐고 세 번째는 <<해서의 파직>>을 비판하여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모지랑붓”을 상아대로 젓고 “몽둥이”를 휘둘러 남을 때리고 눌러 출세한 요문원은 마침내 욕망대로 인생의 절정에 뛰여올랐던 것이다. 
 
제1보. 호풍을 비판하여 점차 두각을 내밀기 시작했다.

호풍(胡風)은 해방전부터 지명도가 매우높은 작가였다. 그의 저작과 사상은 당시 젊은이들을 새일대로 자라나게 함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요문원역시 본래는 호풍숭배자였다. 그는 <<호풍문예사상론>>이라는 책까지 썼는데 호풍을 “가장 우수한 리론가”라고 열열히 가송했다. 그런데 그 책이 아직 출판되지 않은 1954하반년에 중국문단에서는 호풍을 비판하는 물결이 일기시작했다.
적이 놀랜 요문원은 그때 책이 출판되지 않은것을 천만중 다행이라 여겼다. 긴장해진 형세에서 자기를 표방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인차 창끝을 돌려 반격하기로 맘먹고는 1955년에  <<시비를 나누고 계선을 가르자>>는 문장을써서 북경의 <<문예보>> 1,2기합간에다 발표했다. 이 문장에서 요문원은 호풍의 리론은 “맑스주의껍질을 쓴 자산계급유심주의리론으로서..... 호풍은 이미 맑스주의를 위반한 립장에 섰으며 당을 모욕하는 립장에 선 것이다.”라고 악독하게 공격했다. 그리고는 이어서 상해에 있는 <<문예월보>>에다 또 <<호풍이 맑스주의를 외곡한 세가지 수단>>이란 글을 발표했던 것이다. 
  요문원의 이같은 좌파언론은 당시 상해시위의 기관보 <<해방일보>>사사장 겸 총편이였던 장춘교의 주의를 일으켰다. 하여 그는 장춘교의 지도를 받아 <<해방일보>>에 호풍을비판하는 장황한 문장들을 련속써서 발표했던것이다.
이렇게 되어 요문원은 일순간에 명성이 진동하여 호풍을 반대하는 “영웅”으로 되었던 것이다. 
    
제2보. <<록이비고>>에 의하여 “샛별”로 떠올랐다.           
1955년 “반호풍”투쟁이 방금지나 1957년이 되니 또 “반우파”투쟁이 일어났다. 이런 정치기후는 신통히 요문원의 구미에 들어맞아서 그는 “몽둥이”를 휘두르는 제 특장을 부리게 되였던 것이다. 
요문원이 “샛별”로 떠오르기 전에 한가지 삽곡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1957년 2월 6일, 그가 <<문회보>>에 문장 한편을 발표했는데 그 문장의 제목인즉 <<교조와 원칙ㅡ요설은선생과 토론>>이라는 것이였다.
이 글에서 요문원은 격렬한 어구로 자신의 예기(銳氣)와 재주를 모두 드러내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가 쓴 그 문장이 모택동의 주의를 일으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모택동은 상해에서 나오는 <<문회보>>를 보기좋아했는데 그날 바로 요문원이 쓴 문장을 보고 자기가 얼마전에 요설은이 1956년 가을에 쓴 산문 <<혜천에서 차를 마시다>>를 본 일을 되새기였던 것이다. 요설은의 문장은 정곡을 찌르는 데가 있었다. 그때 모택동은 그 문장을 보고 지식분자의 청고한 인품을 가진 요설은이 남들은 혼탁한 환경에 도취되였어도 자기만은 홀로 정절을 지킨다고 표백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데 오늘 본 요문원의 문장이 면바로 그를 겨눈지라 모택동은 당시 상해시 시위서기였던 가경시에게 요문원이 누군가고 물어보았다. 
1957년 2월6일, 모택동은 한차례 강화에서 문예계의 문제를 말하면서  요문원의 문장을 언급했다. 그가 말했던 것이다.    
“최근에 요봉자의 아들 요문원이 문장 한편을 썼는데 내가 보건대는 괜찮다....”
모택동의 이 말이 인차 상해시위에 전해졌다. 
이렇게 되어 요문원은 삼람들의 주의를 일으키게 된 것이고 어느덧 상해문예리론계의 “샛별”로 떠오른 것이다.    
그때 중앙에서는 마침 전국선전공작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원칙대로면 요문원은 참가 할 권리가 없었지만 모택동이 찬양했길래 중공상해시위는 료문원을 다른 눈으로 보게되여 그를 대표로 만들어 북경에 가 회의에 참가케한것이다. 
  

3월 10일 오후, 모택동은 중남해에서 대표들을 접견했을적에 또다시 요문원에 대해 말했다. 
   
“편면성을 무서워말라....누구나 편면성을 면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젊은사람도 있다. 리희범이 편면성이 있고 왕몽도 편면성이 있는데 청년작가들 중 내가 보건대는 요문원이 편면성이 비교적 적은것이다.” 
   

요문원이 비록 “몽둥이”영웅이기는 했지만 상해의 정계와 문예에서는 의연히 무명소졸이였다. 그러던것이 짧디짧은 한달사이에 모택동이 두 번이나 련거퍼 표양하는 바람에 괄목상대하는 인물로 부각된 것이다. 
  
5월 25일, 모택동은 북경에서 중국신민주주의청년단 제3차전국대표대회전체대표를 접견했다. 그는 그때 강화를 했는데 신화사는 그것을  보도했다.
<<해방일보>>, <<인민일보>>, <<문예보>>는 다 그 보도를 실었다.
그런데 편집기교가 다른데다가 사용하는 활자와 표제의 대소가 각각이였다. 이러한 배렬이 정상적인 사람의 눈에는 정상적인 일이였다. 그러나 그것이 불정상적인 사람의 눈에는 불정상적인 엄중한 정치문제로 돼보였던 것이다.
요문원은 1천여자에 달하는 <<록이비고ㅡ신문을 읽고 우연히 떠오르는 생각>>이라는 글을 써 <<문회보>>에 냈다. 
   

그의 이 문장도 모택동이 보고 마음에 들어 칭찬했다. 그런것을 <<인민일보>>가 편자의 말까지 달아 실었거니와 중안인민방송국에서도 방송했다. 그래서 전국각지의 신문들에서도 그 문장을 실은 것이다. 하여 요문원은 문단의 “샛별”로 떠올랐다. 그는 관운이 형통하여 일약에 상해당조성원이 되였거니와  반우파령도소조성원으로 되었던 것이다.
      

제3보, <<해서파직>>을 비판하고 정계에 발을 들려놓았다. 
  

"너는 중산의 이리이기 때문에 뜻을 얻으면 난폭해진다”는 격언이 있다. 이중적인 위선자는 권세를 얻으면 나폭해진다는 뜻으로도 되는 것이다. 정치상의 득세는 요문원의 령혼과 인성(人性)을 비틀어놓았다. 그는 자기는 “몽둥이”로 출세한 사람이니만큼 “몽둥이위력”을 발휘해야한다고 여기였던 것이다. 하기에 그는 몽둥이를 들고  다짜고짜로 누구를 만나면 누구를 답새겼는데 답새기면 답새길수록 점점 기운이 더나서 당대의 명인들, 례를 들면 류사하(流沙河)나 서무공(徐懋功) 같은 사람을 답새겼고 문단의 노련가들인 풍설봉(馮雪峰), 애청(艾靑), 파금(巴金), 정령(丁玲) 등도 때린 것이다. 오늘의 사람을 때리고나서 모자라라니 분이 내려가지 않았던지 땅에 묻혀 긴잠을 자고있는 옛사람까지도 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해서는 바로 그가 몽둥찜질을 들이댄 중점대상이였던 것이다. 
       

1965년 11월 10일, 그는 또 <<문회보>>에다 <<신편력사극 <해서의 파직>을 평함>>이라는 장편문장을 발표했다. 
  
 <<해서의 파직>>은 북경시부시장이며 명사전문가인 오함이 쓴 것이였다. 그것을 쓰게 된 리유인즉은 모택동이 1959년 4월 4일에 열린 당의 8기7중전회에서 농촌인민공사의 정돈문제를 말하면서 해서의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그 목적은 각급간부들이 정돈공작중에 해서의 충직과 강직하여 아첨하지 않고 감히 바른말을 하는 정신을 따라배우게 하기위해서였다. 오함은 호교목의 의견에 따라 저명한 경극연원 마련량(馬連良)을 동원하여 1년이 넘는 기간 알심들여 경극 <<해서의 파직>>극본을 쓰고 련습하여 마침내 무대에 정식올려놓았던 것이다. 
   
극은 관람자들의 호평을 받았고 모택동도 보고 좋다고 칭찬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로산회의에서 팽덕회와 같은 사람이 과연 해서를 본받아 과감히 바른말을 하게되자 반대세력이 자라는게 아니냐 하는 의심과 함께 위협을 느껴 그것을 제거하기위한 정치적인 목적에서 “문화대혁명”을 발동하느라 제 안해를 시켜 <<해서의 파직>>을 비판하게 한 것이다. 
   
바로 이같은 전략부서에 따라 강청의 명령대로 선봉이 되어 결사적으로 싸운 문인용장이 바로 요문원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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