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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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에 묻힌 비밀(64)
2011년 04월 04일 23시 06분  조회:3800  추천:29  작성자: 김송죽
                   음지에 묻힌 비밀(64)            

             (1) 류소기의 정치사상과 개혁개방
                  
             (2) “문혁”후 출국고찰 때 받은 심한 자극

30년전 엄혹한 국내의 곤경과 준엄한 외부의 압력은 중국으로하여금 더 고려할것도 없이 개혁개방의 길을 걷게했다. 그것은 핍박에 의한 선택이였다. 그리고 그것은 유일하고도 정확한 선택이였다.

◎ 등소평은 커다란 의문보호를 그리였다.

30년전, 바로 “문혁”이 결속될 때 중국은 만신창이 되었는바 온 국민경제가 거의 붕괴될 지경에 이르었던것이다. 이같이 준엄한 현실은 등소평으로하여금 “문혁”을 하는 이런 사회주의에 대하여, 이따위 “우월성”을 갖고있는 사회주의에 대하여 무거운 의문부호를 그리였던것이다.

1977년 12월 26일, 오스트라리아공산당(마레)주석 시엘과 그의 부인을 접견했을 때 등소평은 날카롭게 제출했던것이다.
“이렇게해야만 레닌이 말한 우월성이 체현되는가, 무엇이 우월성인가? 일을 하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그것이 우월성인가? 인민의 생활수평이 개선되는게 아니라 후퇴하는게 그래 우월성인가? 이것이 사회주의우월성이라한다면 우리는 이따위 사회주의를 요구하지 않는다.”
1978년 3월 10일, 국무원제1차회의 때 그는 또 말했다.
“무엇이 사회주의인가? 자본주의보다 좋은게 어디에 있는가? 매인평균 6백몇근량식, 많은 사람이 배불리먹지도 못하고 28년을 그저 강철을 2300만톤내고도 사회주의우월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1
978년 9월, 동북3성을 시찰하는 기간에 그는 말했다.

“외국사람들은 중국이 대체 얼마나 오래벗텨내는가보자고 의론하고있다. 우리는 이 말에 주의해야한다. 좀 생각해보라, 우리가 인민들에게 대체 무슨일들을 했는가?”
“우리는 너무도 가난하다. 너무도 락후하다. 로실하게 말해 인민앞에 미안하다.”
“사회주의가 제 우월성을 나타냈는데 어쩌면 이꼴인가, 20년을 한다고했지만 그냥 가난하기만하다. 그래도 사회주의를 요구해서는 뭘하는가?”
줄줄이 이어지는 이같은 “물음부호”, 그것이 실상은 “무엇이 사회주의고 어떻게 건설해야 하는가”하는 물음부호를 단 강유력한 신호였던 것이다.

◎거대한 격차로 인해 받은 진감

“문혁”이 결속된 후, 국내국세가 심각하게 변해감에 따라서 사람들은 외부세계의 모양이 대체 어떤지 몹시알고싶어했다. 그리하여 1978년부터 시작해서 전국적으로 성세호대한 출국고찰열조를 일으키게되였던것이다. 국무원총리 곡목(谷牧)을 단강으로 한 구라파의 5개국(불란서, 스위스, 벨기, 덴마크, 서부독일) 고찰단이 주목을 끌었다.
방문기간, 구라파경제의 자동화, 현대화, 높은 효률은 고찰단에 심각한 인상을 남기였다.

그들은 서부독일에서 년간 5000만톤의 석탄을 채굴하는 로천탄광에 가보았는데 공인을 모두 2,000명밖에 쓰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은 같은 수량의 석탄을 캐내는 로천탄광에 공인이 16만명이나되니 상차가 80배인것이다.

스위스의 벌리공사의 한 수력발전소를 참관했다. 그 발전소의 발전량이 2.5만왓트였는데 공인이 298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은 그만한 전기를 내는데 공인이 20배되게 써야한다.

불란서의 한 강철공장은 년간새산량이 350만톤인데 공인은 7,000명밖에 되지 않았다. 중국은 그보다적게 230만톤을 생산하는데 공인이 67,000명이 수요되는것이다. 상차가 14.5배나되는것이다.

불란서 드골비행장은 1분에 비행기 한 대떳다. 그러니 한시간에 60대가 하늘로 오르는것이다. 그러나 북경수도국제비행장은 1시간에 겨우 2대뜨면서도 허둥지둥했다.

대표단중의 한 사람이며 그때 광동성정부성장이였던 왕전국은 20여년이 지낫어도 그번 방문길에 받은 충격을 잊을 수 없다면서 말했다.
“한달동안 고찰하면서 우리는 눈이 확 밝아졌던겁니다. 사상이라는것이 홀연 맑아지고요. 안그럴리있습니까, 눈에 띄이는것마다 마음을 진감했으니까말입니다. 우리는 자극을 너무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쇄국정책을 쓰면서 늘 자기를 세계의 강국이라 자랑이나 하고 쩍하면 제3세계를 지원하고 자본주의는 부패해서 몰락한다느니... 그런데 가보니 사실은 절대 그런게 아니였습니다. 세계의 락후가 2/3는 중국이였습니다.!”

일본을 방문하고 온 사람이 아래와같이 소개했다.
일본은 보통공인가정이 일반적으로 주거면적이 40~50㎡였고  전국적으로 평균 2호에 차(車ㅡ자가용승용차)가 한 대였다. 95%이상의 가정에 텔레비, 랭장고, 세탁기 등 일용품을 갖추었고 복장양식이 다종다양했거니와 농민들이 모직품을 입었다. 일본 도꾜의 백화상점에 있는 물건은  품종이 50만에 달했다. 그러나 북경 왕부정백화상점에있는 상품은 기껏해야 2,2만여종에 불과했다.
“우리는 너무나 초라해서 민망스러웠다.”
보고온 사람의 말이다.
이같은 현실적인 격차에서 가슴이 쓰라리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은 너무도 락후합니다! 이 몇 년간 시간을 너무늦추었습니다! 우리 당이 다시는 투쟁놀음을 놀지 말고 개혁개방을 해야합니다. 과연 인민을 볼 면목이 없고, 국가를 볼 면목이 없고, 시대를 볼 면목이 없습니다!”

◎ 배워서 개혁개방을 확정했다

1978년 7월 6일부터 9월 9일까지, 국무원은 리론학습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는 두달하고도 3일간이나 길게했던것이다. 회의에서 제출된 새방법, 새형식을 집중해 보면 한가지ㅡ 개혁개방을 해야한다는 것이였다.

회의기간 원보화(袁寶華), 장경부(張勁夫), 호교목(胡喬木) 등 36명이 발언하고 리일민(李一泯), 곡목(谷牧)이 각각 체코슬로바키아와 루마니아와 서구라파 5개국을 고찰한 정황을 회보했다.
회의종결 때 리선념이 총결강화를 하면서 제출했다.
“우리는 세계선진기술속도를 빨리 대대적으로 장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외국의 선진기술과 설비를 들여와야한다. 이렇게 하면 문을 걷어닫고 머리를 싸매고 혼자엎디여 기며 헤매는것보다는 몇갑절 빠를것이다.”

이 기간에 등소평은 부동한 장소에서 여러번이나 개혁개방문제를 놓고 말했던것이다.
1978년 6월과 10월, 루마니야와 서부독일손님을 회견했을 때 말했다.
“중국은 력사적으로 세계에 공헌을 한것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머물러있었고 발전이 늦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세게각국을 따라배워야 할 때입니다.”

공회 9차대표대회개막식에 드리는 글에서 등소평은 다음과 같이 제출했다.
“경제발전속도를 높이기 위해 각개 경제전선은 기술상 중대한 개혁을 해야할뿐만아니라 제도상, 조직상의 중대한 개혁이 있어야한다.”
이때 전당의 중점공작을 경제건설상에서 오는 사상에다 돌리자는 것 역시 등소평이 먼저제출한것이다.
11기3중전회 그리고 그전의 중앙공작회의는 최종적으로 “개혁개방”의 기본국책을 확정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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