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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당 익 장
사전에는 로당익장이란 어휘를 낡투라했지만 나는 아직 얼마든 쓸만하다고 생각된다. 어떤때는 그걸 내놓고는 합당한 어휘를 찾기 어려우니까.
재작년그러께다. 내가 큰아들을 그림공부나 시켜볼가해서 연길로 데리고 갔다. 그전에 여러번 간적은 있었으나 번마다 소설원고때문에 안달아하다보니 번번히 만나봐야 할 분들을 만나못보고 돌아오군했었다. 한데 그번만은 경우가 달라 우리 조선족문단에서 이름있는 여러 선배작가들을 만나볼수 있었다.
연길에 도착한 이틑날 나는 출판사의 강정일편집을 따라 로작가 정길운선생님이 계시는 아빠트로 갔다.
후리후리한 키에 백발이 성성한 늙은이가 우리를 반겨맞았다.
<<허허, 과연 먼데서 왔소그려! 아무튼 반가운 일입니다. 조상때부터 우리 조선족부모들은 빌어먹어도 자식공부시키는게 미덕이 아니겠소.>>
혈색좋고 근력도 있어보이는 정로인의 목소리는 자못 걸걸하였다.
이분이 바로 <<천지의 맑은 물>>, <<인삼처녀>>, <<백일홍>> 등 여러권의 민간이야기집을 세상에 내놓은 분이로구나 생각하니 나는 인차 정감이 들었다.
정로인은 내일같아나 우리와 함께 시내를 한바퀴돌고나서 기여히 자기 집으로 가자고 끌었다. 하여 나는 강선생과 함께 그의 집에다 다시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이윽고 술상이 들어왔다. 거리에 나가 몇잔씩 걸친데다 또 맥주를 둬병씩 마시고보니 놀기가 안성마춤이였다. 그래서 자연 오락판이 벌어졌는데 정로인은 손자를 얼싸안고 춤까지 덩실덩실 추었다.
귀염둥이 내 손자야
내사랑 귀염둥아
요것보지 내 손자놈
할배 입맞추잔다
어화둥둥 내 손자야
귀염둥이 내 손자야
즉흥적으로 지어 넘기는 그의 타령가락이 자연스럽거니와 멋들어져서 우리는 웃었다. 정로인은 춤을 다 추고나서 나더러 타령을 해보라했다. 이런! 타령이라구야 알아야 하든지 넘기든지 하지. 나는 난생 처음 진땀을 뺐다. 정로인은 허허 웃더니 책장에서 방금 출판한 <<조선민속>> 한권을 뽑아 저자싸인을 해서 나에게 기념으로 주었다.
<<자, 내책 한권 드리니 김선생도 책이 나오면 잊지 말고 꼭 한권 보내구려! 이 늙은것도 배워야겠네.>>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이제 겨우 어섯눈을 뜬 초학자를 너무 칭찬마십시오.>>
내가 도리여 송구스러워했더니 정로인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배움에는 로소구별이 없소이다. 내가 젊은이들한테 떨어지고서야 어찌 선배라할수 있겠소. 그러니 이제부턴 두팔걷고 한번 내기를 해볼테요.>>
그이는 실로 소탈한분이였다. 솔직한 뉘우침, 가식없는 맹세ㅡ 여기에 바로 작가적인 고귀한 풍도가 있으리라.
멀리 흑룡강에 있는 나는 오늘도 그때의 일을 회상하군한다. 나이를 따져봐도 상거 20년! 기껏해야 아들벌밖에 안되는 젊은이와 대담히 도전을 걸고 나서는 백발성성한 로인을 다시금 상기하노라면 저도모르게 정신차리게 될 때가 많다. 나는 지금 어떻게 하고있는가? 성공에 자만하는건 아닌가? 늙은이가 도전했다. 당해낼만한가? 하고 스스로 자문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창작에서 가끔 해이해지려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사정없이 채찍을 안기면서 마력을 뽑군한다.
아, 얼마나 좋은 편달이고 고무인가. 몸은 비록 늙었어도 정열만은 식지 않아 젊은이와 내기를 걸고있는 정로인이 지켜보고있길래 나는 좋다. 우리 민족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선배작가들 모두가 정로인처럼 후배의 손을 잡아 이끌어주었으면 얼마나좋으랴.
1984년? <<연변일보>> 해란강(제37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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