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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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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1)
2012년 08월 14일 14시 50분  조회:1741  추천:0  작성자: 김영해
“돌”
 
김영해
 
1
 
역시나.
뭔가 탁 하고 터지며 시원하게 쏟아져나가는 느낌은 없었다. 처마밑에서 떨어지는 락수물만큼이나 천연덕스럽게 똘랑똘랑하는 소리와 함께 겨우 두어방울이 찔끔거리고 떨어질뿐이였다. 아래배에 지긋이 힘을 줘봤자 더 떨어지는것은 없었다. 갑자기 어디선가부터 짜증이 확 밀려왔다.
에잇! 하필이면 비여있는 방광때문에 오줌이 마렵다니?
속으로 게두덜거리며 오줌 두어방울이 떨어져있는 변기에 침을 탁 뱉고 물을 내리고 일어서는 내 눈앞으로 오빠의 얼굴이 휙 하고 스쳐지난것은 순간적이였다. 정말로 오빠의 얼굴이였을지 확인할수 없을 정도로 아주 순간적이였지만 난 그냥 오빠라고 믿어버릴수밖에 없었다. 오빠는 항상 내 잠재의식속의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다가 노크도 없이 불쑥 뛰여드는 불청객처럼 시도때도 없이 튀여나오기가 일쑤였으니까. 그렇게 오줌방울과 오빠의 얼굴을 흘려버리고 나는 아직도 남아있는 뇨의때문에 엉성한 자세로 누가 보는 사람이 없나 두리번거리며 뒤뚱거리는 걸음새로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한참 뒤 .
나는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며 아슴아슴한 기억을 더듬어 오빠와 관련이 되는 잡다하는것들을 기억의 늪에서 하나 둘 건져내고있었다.
 
 
기억의 저 편에 잠자고있다가 언제라도 건드리기만 하면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그날은 마을 뒤산에서 연분홍진달래가 막 꽃망울을 터뜨리며 꽃샘추위를 멀리 뒤켠으로 밀어던지고 산기슭에 봄의 한자락을 산뜻하게 펼치고있던 제법 봄같은 봄의 어느날이였다.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는 내가 진달래꽃을  한아름 꺾어안고 작은 체구 전체가 연분홍덩어리가 되여 고개를 옆으로 비탄채 발밑을 겨우 확인하면서 터덜터덜 산길을 내려오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옆으로 슥 스쳐지나면서 “니네 오빠 온다더라.”라는 소리를 흘렸고 한아름 진달래묶음때문에 나는 말소리임자도 확인하지 못한채 어정쩡 멈춰서버리고 말았다. 다음 순간, 내가 섰던 산길에는 온통 진달래가 흩널리였고 나는 종주먹을 쥔채 꽤 빠른 속도로 산길을 허겁지겁 달려내려가고있었다.
단숨에 마을어구까지 달려왔을 때 멀지 않은 곳의 오빠친구네 집 앞마당에서 어른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였고 나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그 속에서 오빠의 모습을 찾아 눈빗질하였다. 헌데 오빠일듯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빠친구네 집을 지나쳐 집으로 향하는 골목으로 접어드는데 난데없이 “어데 갔다 오니?” 하는 귀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홱 꺾어보니 오빠친구네 집 앞마당에서 웬 까까머리가 나를 보고 싱글거리고 있지 않는가?
“이눔아, 사람 보고 인사할줄도 몰라?”
“어?”
그제서야 싱글거리며 악의없이 웃고있는 까까머리의 임자를 찬찬히 뜯어보던 내 입이 커다랗게 벌어지였다.
오빠였다.
“아, 그냥……오빠가 왔다기에……나 먼저 집에 갈게……”
나는 두서없이 주어던지고는 낄낄거리는 오빠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뒤로 한채 도망치듯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면서 느닷없이 엄마에게서 들은 소학교 5학년인가 할 때 하얀 소선대원 대복에 붉은넥타이를 매고 시급랑송대회에서 시를 읊었다는 오빠의 어린시절 모습을 어찌해도 상상할수가 없어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대신 산길에 버려두고 온 진달래꽃들이 어찌되였을지 걱정되였다.
썩 후에 오빠가 친구들앞에서 무훈담같이 떠벌이는 말을 듣고서야 나는 상해죄로 구속되였던 오빠가 쇠줄을 뭉그러뜨려 만든 쇠덩이를 삼키고 그것을 빌미로 옥살이대신 가석방을 받고 나오게 된것임을 알게 되였다. 그 말을 들은후로 나는 늘 오빠의 위속에 들어있을 쇠덩이가 어떤것인지 궁금했다. 그때마다 그 쇠덩이때문에 오빠의 위에 천공이 생기는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을 잠간씩 해보는동안  빡빡 밀었던 오빠의 머리는 까맣게 자라고 있었고 계절도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면서  시간은 미련없이 앞으로만 흘러가고있었다.
그 봄날이후로 가끔 가다 내 눈앞에서 산길에 한아름 흘려버리고 왔던 진달래가 붉게 타고있었지만 나는 산에 올라 진달래꽃을 꺾는 일따위는 다시 하지 않았고 공부에만 전념했다. 그렇게 내 소녀시절은 오직 학교와 집사이를 오가면서 부지런히 노트를 채워가는 볼펜을 쥔 내 손가락사이로 빠르게 지나가고있었다.
 
2
 
어쩌지?
오줌을 눌가 말가고 한참을 망설였다. 배뇨때문에 고민한다는것조차 웃기는 일인데 정말로 오줌이 마려운건지 아닌지를 확인할수 없다는것은 더구나 한심한 일이였다. 혈뇨와 단백뇨때문에 급성신염으로 진단받은지 한달째지만 요즘 들어 부쩍 이상했다. 늘 뇨의를 느꼈고 오늘 새벽에는 배와 허리가 끊어질듯이 아파 진통제까지 맞았었다. 오전에 혈액검사며 소변검사, 초음파검사까지 했지만 의사가 의심하는 결석은 발견되지 않으니 약도 따로 처방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 뇨의를 소실되게 할 어떠한 방도도 대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뇨의때문에 줄창 화장실에만 붙박혀있을수도 없는 일이였다. 오줌이 마려웠지만 꼭 배뇨가 되는것은 아니였으니까. 즉 뇨의는 있으되 오줌은 없었다.
난 참기로 했다. 아니, 그냥 뇨의를 무시하기로 했다. 자지 않고 있는 동안이면 끊임없이 느껴야 하고 꿈속에까지 따라와 줄창 화장실을 찾는 꿈만 꾸게 하는 뇨의때문만이 아니라면 소변으로 혈액과 단백질이 배출되여나가든 말든 난 내 자신이 신염환자라는것마저도 거부하고싶었다.
헌데 또 소변이 마렵다.
정말로 마려운걸가?
나는 손으로 아래배를 만져봤다. 방광이 부풀었는지를 알고싶었다. 허나 삼겹살처럼 잡히는 배살때문에 방광이 부푼건지 워낙에 살이 많은건지 알수가 없었다. 마른 체구임에도 배살만 붙는것을 보면 엄연히 늘어나는 나이는 속일수 없는 모양이다. 나는 손에 지긋이 힘을 넣어 아래배를 눌렀다.
다음순간,
나는 용수철 튕기듯 화닥닥 튀여일어났다. 어느새 다리 안쪽을 향한 속내의의 두 가랭이가 빠른 속도로 젖어가고 있었고 급기야 발등으로 뭔가 뜨끈한것이 툭툭 떨어지고있었다. 오줌이였다. 헌데 멈출수가 없었다. 배뇨를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멈출수 없는게 녀자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였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오만상을 찌프린채 멍청하니 서서 발밑의 침대시트가 둥글게 원을 그리며 젖어가는 모습을 바보처럼 내려다보고있는 그때, 문득 어이없게도 내 머리속에서 뜬금없이 붕어 한마리가 풀떡이고있었다. 꺼멓게 독을 쓴 붕어가.
 
 
“이거 먹을래?”
오빠가 뭔가 저가락으로 집은채 티비를 보고있는 내 앞으로 쑥 내밀었다. 탕약냄새가 확 풍겼다. 시커먼것이 탕약재는 아닌듯싶었다.
“뭐야, 이게?”
“붕어살 발라낸거다. 후훗~”
오빠는 그것을 도로 입안에 쑥 집어넣으며 히죽 웃었다. 그러는 오빠의 왼손에는 커다란 꽃밥통이 들려있었다.
“무슨 붕어살이 이렇게 시커매?”
눈살을 찌프리며 일어나서 꽃밥통속을 들여다보니 소위 붕어란 놈이 시커멓게 독을 쓰고 여기저기 껍질이 벗겨지고 살이 찢겨진채 고스란히 담겨져있었다.
“이게 약이래? 아까 약 지으러 간다더니 이걸 가져왔어?”
나는 눈이 올롱해서 붕어라고 하기엔 너무 안된 모양의 붕어와  안되여보이기는 붕어와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 부어서 부석부석하고 누렇게 뜬 오빠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시병원에 갔다가 약값이 너무 비싸서 신염을 잘 치료한다고 소문난 개체진료소에 갔거든. 밀방이라면서 이렇게 처방해주더라. 탕약재와 한근짜리 붕어를 같이 넣고 달이다가 붕어와 탕약을 같이 먹어야 한대. 붕어는 당날로 먹고 탕약은 사흘 먹을수 있다더라. 그래야 붓기도 내리고 약도 든다는데.”
오빠는 말을 하면서도 열심히 붕어살을 발라먹고 있었다.
“듣다 처음이야. 맛있어?”
나는 얼굴을 살짝 찌프리며 한쪽 입귀를 들어올렸다.
“맛있겠지? 먹을래? 먹어보면 알건데. 후훗~”
내가 이상해하는 모습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오빠는 여전히 킬킬거리며 붕어살을 발라먹는데 열중하고있었다.
“그것도 약이라고 잘 먹고있네. 몇마리나 먹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쯧쯧~”
내가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혀를 차든 말든 오빠는 오빠대로 눈이 잘 안보인다고 티비앞 카펫우에 덜렁 퍼더버리고 앉아 붕어살을 말끔히 발라먹고 탕약도 한사발이나 후루룩 들이켰다. 그러는 오빠를 보며 난 붕어살과 함께 아작아작 씹어먹혀들어갈 내 돈을 걱정하였다.
 
그렇게 붕어 예닐곱마리를 탕약과 함께 먹었을 무렵 마지막 탕약 지으러 갔다가 오빠는 무슨 심사가 뒤틀렸는지 약 지으려던 돈으로 친구들과 엄청 술을 사먹고는 시골로 튀여버렸다. 정말로 그 붕어가 은을 낸것이였는지 눈도 밝아지고 붓기도 하루하루 내리는것 같다고 엄마한테서 들은것은 오빠가 튀여버린지 한달도 썩 지나서였고 그쯤 오빠는 련락두절하고있었다. 아무래도 동생돈으로 약지어먹다가 나중에 술사먹고 튀여버린것이 미안했던 모양이였다. 나는 나대로 그런 오빠때문에 한동안은 남편한테 미안했었던 그때가 꼭 10년전이였다.
 
3
 
“쩐머라? 쩐머라?”
갑자기 병실이 소란스러워졌다. 통증때문에 기운을 소진한 뒤라 나른히 감고있던 눈을 떠보니 옆침대의 녀자가 누운채로 당금이라도 토할듯이 배를 붙안고 욱욱거리고 있었다. 곁에 엉거주춤 서있던 남자 둘이 각기 녀자를 일으키고 비닐봉지를 들이대지만 녀자는 욱욱거리다말고 다시 누워버렸다. 볼썽사납게 흐트러진 파마머리를 한 40대의 녀자의 얼굴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져있었다. 입귀엔 피가 묻은 침이 발려져있었고 눈은 질끈 감겨져있었다. 녀자는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였다.
“왜 저런대요?”
“정확한건 모르겠구. 아까 복도에서 잠간 들었는데 자살하려구 약을 먹어서 금방 위를 씻고 들어오는 길이래. 병원에 데리고 온 남자가 시동생이라는데 갑자기 형한테서 녀자한테 가보라고 전화가 와서 친구와 함께 갔더니 이미 약을 먹었더라나. 형의 말로는 외출중인 형한테 녀자가 전화를 하면서 당장 안돌아오면 죽어버린다고 바락바락 악을 썼다나 봐. 이전에도 몇번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는거 같아. 허참, 한족녀자들은 뭐가 달라도 엄청 달라. 못말린다니까.”
남편은 도통 리해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기우뚱거리더니만 담배를 피우겠다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도 두어시간째 사람을 들볶던 통증이 거의 사라진뒤라 그제서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침대 여덟개가 놓여있는 응급실은 침대마다 각양각색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찡찡거리며 주사를 맞는 애들과 그것을 어르느라 진땀을 빼는 젊은 부모들의 모습도 보이였고 환자보다는 간호인들이 왁자하니 떠드는 침대도 있었고 환자와 간호인 둘다 입을 닫아매고 떨어지는 링게르방울만 쳐다보는 침대도 있었다. 조선족과 한족이 섞여있다보니 각자의 입에서 튀여나온 조선말과 한어말들은 공중에서  막 뒤섞여 혼잡한 소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저쪽 끝쪽에서는 늙고 추레해보이는  한족로인이 로친네가 쳐든 쓰레기통에 텍텍 뭔가를 뱉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지금 니 이 몸으로 무슨 일을 한다고 그러니?”하고 어떤 조선족아버지가 젊은이에게 낮게 호통치고있었다. 하지만 젊은이든 애든 로인이든 다들 링게르병을 달고 있는 모습들이 하나같이 안스러워보였다. 모두가 심각하게 앓고있는것인지 아니면 조금만 아프다싶으면 링게르점적주사부터 처방해주는 의료진탓인지 알수가 없었다.
나도 저들속의 일원이라니?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숨을 지어내는데 잠간 담배피러 밖에 나갔던 남편이 황황한 얼굴로 들어왔다.
“허참, 글쎄, 누가 저기에 애를 버렸다니까.”
“뭐?!”
나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남편의 입을 바라봤다.
“병원대문옆에 갓난아기를 버렸다니까.”
“세상에~”
“애를 빨간 등산복에다 싸서 버렸어. 금방 간호사들이 와서 경찰들과 함께 안아갈 때 보니까 애가 대여섯달 되여보이는데 얼굴이 새하얀게 너무 이쁘더라. 어떻게 지금도 애를 버리는 사람이 있냐……”
남편은 잔뜩 긴장된 얼굴로 공연히 침대가에서 서성거렸다.
갑자기 심란해났다.
링게르병을 목숨줄처럼 붙잡고 있는 환자들과 거듭 자살을 시도하는 녀자, 그리고 버려진 아기……
나는 벌떡 일어나앉아 주사바늘을 콱 뽑아버렸다. 주사바늘이 꽂혔던 혈관을 지긋이 누르며 나는 주섬주섬 내려서서 미적거리며 신발을 찾아 발에 꿰였다.
“우리 가요.”
“왜?”
그제서야 주사바늘을 뽑은 나를 발견한 남편은 의아해하며 주섬주섬 물건을 챙겼다. 선참으로 병실문을 따고 나와 병원현관을 가로지르며 나는 혹시라도 버려진 아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가 두리번거렸지만 버려졌을것 같은 아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빠른 걸음으로 병원대문을 빠져나와 병원대문주위를 기웃거렸지만 역시 아무것도 눈에 띄는것은 없었다. 대신 9월의 막바지인지라 어제의 끝이라고 해야 할지 오늘의 시작이라고 해야할지 애매한 시간대인 밤12시경의 공기는 차갑게 페부속으로 거침없이 흘러들고있을뿐이였다.
 
그 날이 바로 어느날 새벽이후 한밤중에 두번째로 배의 통증을 느꼈던 날이였다. 그리고 그 날 난 오빠를 잊고있음을 모르고있었다. 내 신경은 온통 내 아픔에만 쏠려있었으니까.
 
 
4
 
“탕!”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당금이라도 넘칠듯이 아슬아슬하게 눈확에 고여있던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려 무릎에 텀벙텀벙 떨어졌다.
우리 회사에서는 인테넷정보사이트를 운영하고있었고 그 사이트에 게재되는 정보나 광고물들의 홍보비로 회사는 톡톡히 리윤을 챙기고있었다. 회사규정상 사이트의 매 카테고리의 내용물들은 실시간으로 빠르게 업그레이드 되여야 했다. 헌데 내가 어제 청가를 낸탓으로 내가 책임진 카테고리는 엊그제 밤부터 시작되여서 36시간째 업그레이드 되지 못한것이였다. 그때문에 출근하자바람으로 나를 찾은 편집국장의 얼굴은 험상궂게 일그러져있었다.
 “……청가를 맡았든 어쨌든 선주씨가 맡은 일은 선주씨가 해야 할거 아닙니까? 회사신용도가 떨어지고 회사수입에 차질에 생기면 선주씨가 책임을 지실건가요?  자기 집 일 아니라고 회사일 우습게 생각지 말아요. 그런 사업정신으로 무슨 일을 하겠어요?...... 당장 1시간내로 업그레이드 시키고 절로 알아서 어제 못한 분량을 채워요.”
편집국장은 잘못을 저지른 어린애를 몰아부치듯  목소리에 날을 세워 한껏 쏟아붓고서야 들어올 때처럼 씽하니 찬바람을 일구며 “쾅” 문을 닫고 사라져버렸던것이다.
편집국장의 얼굴을 외면한채 한껏 눈물을 참고있던중이였던 나는 결국 문이 닫히기 바쁘게 좌르륵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난 분명히 우리 편집실 실장한테 청가를 맡었었고 청가를 맡았으면 일을 안해도 되는줄로 알고있었다. 헌데 그게 아니였다.
아픈것도 죄야?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쓱쓱 닦아내리고 손에 마우스를 잡았다. 분하고 억울해도 일을 해야 했다.
“이건 뭐 사람을 일하는 도구로만 생각해요. 아무리 애를 써서 일을 해봤자 월급받기 위해 그러는줄로만 알아요. 저도 건강상태가 안좋아서 산전휴가 좀 달랬더니 안된대요. 옛날엔 해산하는 날까지도 일밭에 나가서 일했다면서 한달전부터 휴가달라는 사람은 제가 처음이래요. 버틸수 있는데까지 버티래요. 안그래도 출산휴가 주는것도 대신 알바를 구해야 하니까 회사손실이라면서.”
옆자리의 사무실막내가 낮게 투덜거렸다. 나는 커다란 롱구공만큼이나 부풀어오른 막내의 배를 안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다 말고 다시 마우스를 잡았다. 막 마우스를 누르다말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의 사이에 박힌 작은 기미 하나가 눈에 잡혀왔다. 작지만 예나 다름없이 또렷했다.
 
 
오빠의 오른손에도 놀랍게도 내 기미가 있는 위치와 똑같은 위치에 기미가 있었다. 다르다면 오빠의 손에 있는 기미가 깨알만큼하여 내 손에 있는 좁쌀알만큼한 기미보다 좀 더 크고 더 선명한것뿐이였다. 어릴적 오빠와 함께 손벽을 마주치며 장난을 치다가 내가 발견한것이였고 오빠는 “어? 진짜네. 엄마자궁에 뭐 이상한것이 있나봐. 안그러면 이렇게 똑같은 곳에 기미가 있을수가?” 하고 놀라와했었다. 하지만 어느 한번의 사고이후로 오빠의 손에 있던 기미는 사라져버렸고 난 내손의 기미를 볼적마다 어쩔수없이 오빠를 떠올리게 되여있었다.
신염치료이후 한 반년을 집에서 빈둥거리던 오빠는 겨울에 관내로 들어가는 외사촌매부를 따라나섰다. 해마다 농한기만 되면 따둔 조리사자격증이 있는 외사촌매부는 관내로 들어가서  한겨울 료리사질을 하여 적잖은 돈을 벌군 했었다. 떠나기전 오빠와 외사촌매부는 우리 집에 들렸었다. 나는 점심 한끼를 정성들여 지어주고 떠날 때에는 차비를 하라며 500여원을 오빠에게 쥐여줬었다. 여태 로총각으로 떨꺽거리며 농사도 안하고 변변히 하는 일도 없이 세월을 보내던 오빠가 외지로 가서 뭔가 새출발을 했으면 하는 바램에서였다. 오빠는 그 돈을 받으며 이제 떼돈을 벌면 몇곱으로 갚아준다고 탕탕 가슴을 쳤다. 헌데 한창 관내로 들어가는 기차안에 있어야 할 오빠와 외사촌매부가 사흗날 점심무렵에 나의 직장으로 들이닥쳤다. 그새 어딘가에 가서 돈을 술값으로 비벼먹고나니 차비가 모자랐던것이다. 벌컥 화가 동한 나는 <<이거면 모자라는데…>>하는 오빠의 말을 무시한채 돈지갑에 있던 200원을 탈탈 털어주고는 찬바람을 일구며 돌아섰었다.
그렇게 떠난지 석달만에 전화한통 없던 오빠가 보기에도 끔찍한 손모양을 하고 우리 세집에 들어섰다. 커다란 흉터자국이 나있고 군데군데 죽은 껍질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얼룩덜룩한 오른손에 엄지손가락이 제자리를 못잡은채 약간 비뚤게 붙어있었다. 당연히 내 손의것과 닮은 기미는 있었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눈이 화등잔이 된 나에게 오빠는 차비가 모자라서 계획했던 행선지까지 못가고 대련에 눌러앉아서 직장을 찾았는데 출근한지 보름만에 손이 흐름선에 미끄러져 들어가 그 모양이 되였다고 남의 일처럼 들려주었다. 입사하자마자 로동계약을 한 덕에 만여원 되는 치료비를 몽땅 안은 회사가 그저 밑지고 나앉았다고 가볍게 웃기까지 하였다. 그런 오빠를 보며 난 오빠에게 정말 시를 쓰던 정열의 열여덟살이 있었던것인지 의심되였다.
오빠는 그때 심심하면 “사자머리 펄펄 날리고 나팔바지로 거리를 쓸며……”라는 자작시를 두어구절 읊었고 오빠가 일을 저지를 때마다 엄마는 “문학통신학습반에서 통지서가 왔을 때 보냈어야 하는건데. 그때 강습비 120원이 없어서 못보낸게 가슴에 걸려. 그때 거기라도 갔으면 쟤가 저렇게 살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라고 하시며 한숨을 풀풀 내쉬였었다. 그럼에도 엄마의 이야기는 나한테 신빙성이 없었다. 오른손이 병신이 되고서도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오빠한테서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문학도였었다는 흔적은 없었다.
 
그때 나는 엄마처럼<<내가 돈을 구해서라도 더 줬더면 저런 일 없었을걸 …>>라고 중얼거리며 후회를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오빠가 그 손으로 건네주는 사과를 아무 느낌없이 받아먹을수 있을 무렵 난 죄책감따윈 감감 잊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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