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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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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배가 고팠다(2)
2011년 09월 30일 19시 39분  조회:2181  추천:2  작성자: 김영해
4

<<드릉~ 드릉~>>
얼굴이 부석부석해진 미려가 두덜거리며 핸드폰뚜껑을 열었다.
(어?!)
눈이 커졌다.
<<속은 괜찮으신지요? 술드신후면 꿀물이 좋을겁니다. 꿀이 없으면 당분이 들어간 음료도 괜찮다 그럽디다. >>
(이게 뭐야?)
메시지발송인을 확인하던 미려가 그대로 굳어져버렸다.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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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뒤죽박죽이 된 머리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동강난 기억의 토막들을 주어모으기 시작했다. 울적한 기분인데 남편이 외식하고 들어온다기에 캔맥주를 사고 어정쩡하게 짝태까지 집어들고 집에 들어가고, 그다음은 티비를 보며 홀짝거렸는데…그다음은…그다음은…거기서 미려의 필림은 끊겨져있었다.
(어떻게 내가 술마신걸 알지? 혹시 내가…)
뛰는 가슴을 누르며 통화기록을 뒤졌다.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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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려는 앞머리를 철썩 쳤다. 매사에 얌전하고 조신하기로 소문난 자기가 이런 일을 저질를수 있다는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얌전한 강아지 부뚜막우에 올라앉아 똥싼다더니 이렇게 크게 사건을 저질러버릴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이걸 어쩌냐? 어떡함 좋아? 분명 남자인데…내가 뭐라고 말을 했을가? 낯선 사람한테 내가 뭐라고 했을가? 어이구, 골치야! 먼 일을 이렇게 저질러!)
미려는 불가마에 든 개미처럼 맴을 돌고있었다.
<<미안합니다. 메시지 발송 잘못하셨습니다.>>
썼다가 지워버렸다. 두번씩이나 한 전화에 잘못 보낼리가 없었다. 눈감고 아옹하는 격이였다.
<<감사합니다. 댁도 술마시면 전화하세요.>>
이것도 별로였다. 환장한 년들이나 할 미친 소리 같았다. 술 마시면 전화하라니.
<<덕분에 괜찮습니다. 귀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사한 답신 같았다. 어제일 아는척하는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척하는것 같기도 한것이 센스가 있어보였다.



아까부터 미려는 핸드폰소리에 귀를 도사리고있었다. 어쩜 문득 전화가 올것 같은 예감이 끈적끈적 기분나쁘게 달라붙어있었다.
핸드폰이 부르르 떨고있었다.
미려거였다.
미려의 손이 멈칫멈칫했다. 그러기를 한참
핸드폰뚜껑을 열었다.
<<왜 이제야 전활 받어?!>>
귀청을 때리며 남편의 목소리가 신경질적으로 튕겨나왔다.
<<진동이여서 못들었잖아요. 웬 일로?>>
<<당신은 무슨 여자가 맨날 전화소리 못들어? 오늘 성탄절이여서 친구들하고 모이기로 했으니까 시간 맞춰 나와!>>
<<여보!>>
미려는 급기야 전화를 끊으려는 남편을 불렀다.
<<왜?>>
<<나 오늘 못나갈것 같애.>>
<<왜 못나와?>>
<<몸이 별로 안좋아, 머리도 조금 아프고 !>>
미려가 더듬거리며 주어섬기고있었다.
<<잘한다! 혼자 술 처먹더니만 꼴뚜기상을 하고있네. 알았어! 정바쁘면 약챙겨먹든지 병원가든지 해!>>
미려가 대답을 하기도전에 어느새 전화는 끊겼다. 남편은 항상 그랬다. 미려야 말이 끝나든 말든 상관이 없이 자기 할 말을 다 하고나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그랬다. 언제나 뭘 상의한다기보다 통보하는 격이였다. 그래서 가끔 미려는 둘사이가 상하급관계가 아닌가고 곤혹스러울 때도 있었다.
지난번 이사할 때도 그랬다. 늦잠을 자고나서 세수도 안한채 컴앞에 앉아 노닥거리고있는데 전화벨이 울리더니만 불호령이 떨어졌다. 당장 짐을 싸란다. 오후에 이사한다고. 아무래도 집인테리어때문에 한동안 집을 비워야겠다싶었지만 그 한동안이 그날로 당장 결정이 될줄은 미려는 감감 모르고있었다. 아침에 나갈때까지도 아무 말 없던 남편이 어느새 여기저기 다 련락을 해놓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고있었다. 미려가 정신을 똑바로 차릴 새도 없이 이사짐을 나르는 일군들이 들이닥쳤고 그렇게 이사는 하루만에 시작과 함께 끝을 보았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미려는 저절로도 쿡쿡 허구픈 웃음이 나온다.
집에 들어왔댔자 할 일이 없었다. 밥챙겨먹기도 싫었다. 랭장고를 뒤져 빵하나에 쏘세지 한개로 간단히 저녁을 에때웠다.
뭘할가?
책을 집어들었다. 지난번에 산 <<탈무드>>
헌데 글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기야 독서란 어수선한 기분에 글을 읽을수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거였다.
티비를 켰다.
커다란 무지의 여자가 나와서 다이어트 어쩌고 저쩌고 떠들며 화면을 메우고있었다.
허걱~
무슨 뺄 살들이 저렇게 많다고 란리야? 그럴게면 차라리 살을 올리지나 말거지
이모콘을 꾹 눌러 다른 채널을 바꿨다.
이건?
이상한 두남자가 여자가발을 쓰고 치마를 입고 열적은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있었다. 세상돌아가는것이 참 이상타. 어쩜 저런 흉내를 내야만 시청률이 올라가나보다.
티비를 꺼버리고 이모콘을 저만치에 확 던져버렸다.
뭘 할가?
컴?
그것도 싫었다. 손가락 꼼짝하기 싫었다. 그러는 미려의 손은 어느새 핸드폰을 꺼내들고있었다.
<<오전의 귀띰 고마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잠시후
핸드폰신호음이 짧게 울렸다.
메시지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지금 머해요?>>
미려의 얼굴에 남실 웃음이 피여올랐다.


--혼자서 크리스마스의 밤을 만끽하고있습니다.
--저두요, 전 아직 크리스마스를 즐기는데 익숙치 않아서요.
--미투,어제 제가 많이 실례했죠? 미안해요
--뭘요, 처음엔 당황했어요. 하지만 미려씨의 이야기 그냥 들어주기로 했어요.
오빠를 많이 사랑하나 보죠?
(어머, 내가 오빠 얘길 했나보네)
--그보담도 오빠한테 미안한거 넘 많아요. 그래서 항상 맘에 걸리거든요.
--그럼 맘에 두지 말고 풀어야죠. 생각하는 만큼 겉으로 나타내고 오빠한테 전하구 그래요.
--그럴수가 없게 됐어요. 오빠가, 오빠가 이제 다시 못올 고장으로 갔어요.
--아, 미안! 그런 아픔이 있었군요. 그러기에 그렇게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군요. 안그래도 미려씨가 너무 슬프게 울어서 무슨 일 있나보다고 짐작은 하고있었는데 그런 일일줄은 미처 몰랐어요.
--괜찮아요. 오히려 제가 미안하죠. 생뚱같은 사람한테 밤중에 이상한 이야기를 다 하며 주정을…
--제가 왜서 전활 안끊고 그냥 들어주었는지 안 물어요?
--글쎄 ,왜죠? 잘못걸린 전화 , 것두 술취한 여자전화 받으면 듣기 거북하게 욕하며 전화기 팽개쳐야 상례 아닌가요? 묻긴 거북하지만…
--실은 그날 저도 많이 울적했어요. 실련한지 얼마 안됐거든요. 미려씨의 전활 들으면서 아픈 사연 있겠다 싶어서 아픈 사람끼리 서로 이핼 해줘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냥 들어줬어요. 혹 제가 실례한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뇨, 그냥 고마왔어요.
--이미 간 사람은 간거니까 이제 마음 풀어요. 오빠도 미려씨가 괴로와하는거 보면 더 가슴아파할겁니다.
--근데 그게 잘 안돼요. 내가 넘 나쁜 동생이였나봅니다. 아참, 제 얘긴 그만 하구요. 실련했다 그러는데 그냥 그 여자 손해본거라 생각하셔요. 어느만큼 사랑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선 여자라면 보내야죠.
--네, 저두 그럴려고 노력하고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울적해지는거 어쩔 방법이 없더라구요. 이제 기분 나쁜 얘기 그만합시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명절 아닙니까?
--맞아요,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을 하는겁니다. 나쁜 기분 어제로 털어놓기 위해 애쓰자요.
--그럽시다. ㅎㅎ

5

오래간만에 미려가 흥얼거리고있었다. 사무상우는 깔끔하게 정돈되여있었다. 얼굴에 윤기가 흘렀다.
<<언니, 무슨 좋은 일 있어요?>>
꼬맹이가 눈이 올롱해서 쳐다본다.
<<좋은 일은 무슨? 그냥 근사한 기분.>>
미려는 방긋 웃어보였다.
어느새 미려의 손이 핸드폰버튼우에서 춤을 춘다.
<<언니 , 머해?>>
<<보면 몰라? 메시지 날리는거지>>
<<언니야, 분위기 좀 파악하구 살아라! 지금 어느때라구 메시지 날려?>>
<<응?>>
<<메시지는 말이야. 장거리전화료금 많이 나오니까 사무적으로 간단히 에때우는거라구. 그거 장거리야?>>
<<아닌데…>>
<<그럼 전화를 해라. 전활! 그러다 굼벵이 서울 가겠다.>>
<<사무실인데…>>
<<저쪽,저쪽! 눈치하나는 빵점이네.>>
꼬맹이가 답답하다는듯이 문쪽을 가리켜보인다.
<<글쎄…>>
미려는 어물거리며 궁둥이를 들었다.
(전활 해? 말어? 조금 챙피한데…괜찮을거지? 우스운건가? 괜찮겠지.)
핸드폰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다가 멈춰버린 미려.
<<여보세요?>>
<<아~ 네. 미려씨?>>
<<네, 그냥 인사 여쭐려구요. 어젠 즐거웠어요.>>
<<허허허, 안그래도 전화할려던중이였습니다. 일은 안바빠요?>>
<<네.쪼금요>>
<<그러세요. 저도 근무시간입니다. 전화 고마왔습니다. 일보세요. 나중에 련락할게요.>>
<<네, 그러세요. 좋은 하루 되시구요,>>
<<미려씨두요.>>
(바보같이! 오늘 일은 끝나가지고 멀 바쁘다구 생색을 내?)
웬지 허전했다. 미려는 금시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드르릉~>>
의자에 엉뎅이를 붙이기 바쁘게 핸드폰이 부르릉거렸다.
미려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봐, 먼 전활 하고있었어?>>
호~ 남편이였다.
<<아니, 그냥 친구전화.>>
<<그래? 저녁에 뭐 먹을래?>>
<<아침밥술 놓은지 얼마 된다고 저녁먹을 소릴 해요?>>
남편은 혹 기사년에라도 태여났는지 먹는데는 이상하게 눈을 밝혔다.그러는 남편이 은근히 짜증도 났다. 틈만 나면 멀 먹을가 궁리하는것 같았다. 제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올 때면 의례 장을 봐가지고 자기가 먹고 싶은 남새들을 한가득 사오군 했다. 그러고는 <<뉘 집에 나처럼 장바구니 들고다니는 남정 있음 나와보래. 이건 녀편네가 어떻게 돼먹었길래 항상 남정네가 장보구 오냐?>>하며 생색을 냈다. 반찬 만들때면 거들어도 잘 안주면서 요건 요렇게 해라, 조건 조렇게 해라고 요구도 많았다. 나중에 제 생각대로 입에 안맞으면 반찬감 아깝다고 눈을 흘긴다. <<그럼 먹지 말아요. 혼자 만들어먹을것이지!>>하고 버럭 화를 낼라치면 제쪽에서 수저를 와당탕 던지며 휭하니 나가버리는 남편이였다. 가끔은 그런 남편때문에 민망하기도 했다. 무슨 모임이든 상관없이 ,익숙한 사람이든 낯선 사람이든 모여앉기만 하면 남편의 화제는 당연히 먹거리였다. 어디 가서 뭘 어떻게 먹었다는둥, 뭘 어떻게 하면 맛있다는 둥 대개 이런거였다. 혹 미식가여서 료리법이나 료리문화를 알고 이야기를 리드해가면 봐주기라도 하겠는데 이건 아니였다. 순 제 혀바닥 하나만 믿고 하는 소리들이였다. 사회문제며 인간문제, 과학이니 문학이니 하는것에는 전혀 미련이 없는 남편때문에 가끔 미려는 둘사이에 화제가 부족함을 느꼈다. 그래서 가만히 돌이켜보면 둘이서 싸우는 내용중에 먹을것을 두고 불이 달린것이 태반인듯 싶었다. 그런데 오늘도 점심도 되기전에 저녁소리 한다.
(또 머 먹을려구 저래?)
한숨이 다 나갔다. 그렇다고 맨날 먹을것때문에 싸울수도 없다.
<<오늘이 미치는 날이라데.>>
<<네? >>
(뜬금없이 먼 소리 하고 있어? 머리 도는거 아니야?)
<<크리스마스 이튿날이잖아.>>
<<오~ 그거 광란의 밤이라고 그래요. 책 좀 읽구 살아요.>>
<<그거 그거지. 먹냄새 풍기지 말아. 우리 나가서 콱 뚜드려먹고 오자. 저기 새로 오픈한데가 있는데 특색음식이 죽여준다 글드라.>>
(그럼 그렇지. 왜 그소리 안나오나 했지)
<<그럼 그래요. 퇴근무렵에 전화해요>>
<<알았어.>>
집에서 해먹자는 소리가 아니여서 미려는 다행이다싶어서 얼른 응낙을 했다. 안그래도 어제 빠진것이 좀 걸리긴 했었다.


<<푸우푸~ 푸하~>>
남편이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다
<<빠드득, 빠득~>>
가끔 가다 소름끼치는 이발 가는 소리마저 간간이 끼여든다.
항상 그랬다. 조금 술을 마셨다 싶으면 코를 골고 이발을 가는 남편이였다. 처음엔 이발가는 소리에 놀라 깨여나기도 했었다. 속을 긁어내는것처럼 빠드득거리는 그 소리가 당금 뭘 잡아먹지 못해 안달을 떠는 소리처럼 무섭게 들렸었다. 게다가 코를 골다가는 가끔씩 멈추기까지 해서 같이 숨이 죽여지며 가슴이 답답했었다. 그래도 같이 몇년 세월을 살아가다보니 습관이 됐는지 이제 크게 념려되지는 않지만 어쩔수 없이 드문히 잠을 설치기도 한다. 이런 날은 남편보다 먼저 잠에 곯아떨어져야 하는건데 아까 집정리 조금 하는 사이 어느새 남편이 먼저 노그라져버린것이다. 둘만이 미친다더니 어느새 제 친구를 불러 저희들끼리 권커니 작커니 미치기 직전으로 건배에 신이 나던 남편이였다. 알고보면 별로 술을 잘 하지도 못하면서 항상 선선히 목구멍으로 잘도 넘기군 했다. 그러고는 어떻게라도 제집은 용케 찾아와서 집문만 들어서면 필림이고 머고 왕창 끊겼다. 오늘도 아마 술이 잘된것 같았다. 미려는 남편 친구가 끼이는 바람에 멋적어서 그냥 맥주만 한두잔 홀짝이다보니 그냥 정신이 말짱했다.
자리에 누었지만 코고는 소리와 이발가는 소리의 이중주에 잠기마저 싹 달아나버려 점점 올똘해졌다
--자요?
--아뇨. 타자 좀 하고 있었어요.
--전화해두 돼요?
--그래요. 그게 아무래도 더 편하죠?
<<오늘 광란의 밤인거 알죠?>>
<<네, 친구놈들이 그러데요. 밤샘한다는데 전 몸좀 빼고 조금전에 들어왔어요.>>
<<왜요? 좀만에 한번 미쳐보지 그래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웬지 멋적더라구요. 나만 혼자데요.>>
<<아, 커플모임이였겠네요. 또 울적해지신거죠?>>
<<네. 조금요. 제가 걸리적거리는것 같아서 술 몇잔하고 그냥 일 있다고 와버렸어요. 요즘 들어 친구놈들 모임에도 가기 싫어져요.>>
<<그럼 안되는데.또 그 여자 생각해요?>>
<<안 생각할려고 해도 어쩔수 없어요. 제가 마지막 선물로 인형 보내줬을 때 고맙다고 그랬는데. 그게 마지막 선물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거든요.>>
<<인형요?>>
<<네. 인형하고 머리삔.>>
갑자기 인형을 선물할줄 아는 남자가 보구 싶어졌다. 어떤 남자일가? 이 나이에 인형을 선물하는 남자는.
<<랑만적이시네요.>>
<<그게 뭐 쓸모가 있어요? 이렇게 싱글로 돌아왔잖아요.>>
<<좋은 남자는 한 나무에 목매는거 아닙니다. 수림속을 둘러봐요. 그쪽이 고른 나무보다 훨씬 칠칠한 나무들이 많아요. 다른 나무 골라봐요.>>
<<아마도 그래야겠죠. 미려씨덕에 많이 개운해지네요. 아참, 제 이름 모르시죠?저 희윤이라고 불러요. 김희윤.>>
근사한 이름이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 멋있을것 같다
<<김희윤?>>
<<네.>>
<<희윤씨?>>
<<네 .왜요?>>
<<그냥 입에 오르나 불러봤어요. 멋있는 이름이예요.>>
<<근데 미려씬 오늘 그냥 이렇게 보내요?>>
<<제 일상이 항상 고요해요. 이제 습관되였어요. 안그럼 미쳐봐요?>>
<<좋죠. 어떻게 미칠건데요?>>
<<호호~ 그러고보니 딱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네요. 제가 이렇게 재미없는 여자라니깐요. >>
<<따스해보여요, 미려씬.>>
<<감사 감사!>>
<<제가 울적할 때 가끔 전화해도 되는거죠? 어쩐지 미려씨라면 마음이 편해질것 같아서요.>>
<<그래요. 저도 희윤씨가 편해요. 웬지. 텔레파시가 통하나?>>
<<그런가봐요.허허>>
<<그럼 오늘은 이만>>
<<네, 미려씨 좋은 꿈 꾸세요.>>
<<네. 희윤씨두요.>>
핸드폰을 끄며 미려는 입가에 웃음을 빼여물었다. 미려는 뭔가를 위속에 밀어넣는것을 잊고있었다.

6
봄이 올려나보다.
어느새 찬기운이 가뭇없고 해볕마저 따스하다. 겨우내 길가에 방치되였던 눈들이 녹아내리며 길바닥이 흥건히 젖고있었다.
길에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느새 두터운 옷을 벗어버린 홀가분한 차림새들이였다. 걸음걸이마저 활기에 차보였다. 미려도 하이힐을 신고 소리를 내며 길을 조였다.
<<희윤아, 나야.>>
<<응, 미려구나. 머하는데? 왜?>>
<<머하는건 아니고. 날씨가 좋으니까 갑자기 니 생각이 나서 그래. 목소리나 들어볼려구.>>
<<어쭈, 랑자님께서 봄바람 타고 슬슬 마음이 흔들리슈?>>
<<짜아식, 날 놀리면 신나는거니? 정말이야. 길을 가다가 갑자기 니가 멀 하고있을가 궁금해서.>>
<<그랬구나. >>
미려는 왠지 그냥 희윤의 목소리만 듣고있으면 편했다. 미려보다 나이 한살 우인 희윤이, 둘은 어느새 너나들이하는 친구로 변해있었다. 희윤이가 있어서 미려는 이 겨울을 참 많이 따뜻하게 지내왔던것 같다. 많이 힘들었던 미려를 다독여주고 항상 마음을 열어준 희윤이가 없었더면 미려는 언제까지고 암울한 터널같은 겨울속에 꽁꽁 얼어붙었을지 몰랐다. 생각할수록 고마운 희윤이, 이제 정말로 희윤이가 보고파졌다.
(희윤인 어떻게 생겼을가? 착한 얼굴일가? 멋있는 얼굴일가?…)
<<드르릉~>>
갑자기 메시지 들어왔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미려야, 나 희윤이.나도 아까 니 생각하고 있었어. 몰라, 요즘엔 자꾸 니가 궁금해져. 어떻게 생겼을가, 내가 느끼던것처럼 따스하고 얌전하고 그럴가?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번을 해보는지 몰라. 내가 이러면 안되는줄 아는데 그래도 솔직해지고싶어. 내가 너한테 부담주는거니?
미려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갑자기 심장이 콩닥콩닥 뛰였다.
--희윤아, 너 그러는거 아니야. 나는 니한테 줄거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야. 그냥 천덕꾸러기일뿐이야. 그동안 네가 있어서 정말로 행복했어.
--나 너한테서 바라는거 하나도 없어. 그냥 니가 이 세상에 있다는것만으로도 행복해. 널 나한테 오란 말 못하겠어. 하지만 내 마음은 속일수가 없어. 이제 돌아갈수 없을만큼 멀리 와있단말이야.
--나 정말 아무것도 할수가 없어. 난 그냥 그림자일뿐이야. 핸드폰만 꺼버리면 난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거잖아. 날 헛갈리게 하지마.
--처음부터 널 부담스럽게 만들려는 생각은 없었어. 하지만 내 맘속에 그대로 묻어두기엔 너무 억울해. 나 정말로 널 사랑하나 봐. 넌 내가 싫은거야?
미려는 멈칫했다.
(정말로 그런걸가? 안그래도 혹시 니가 날 사랑하게 될가봐 내가 얼마나 조심을 했는데. 열에 하나라도 내가 널 사랑하게 될가봐 얼마나 마음을 추슬리고 감추고 그랬는데. 결국 이렇게 되였구나. 내가 환장했지…)
걱정하고있던것이 결국 어느날 갑자기 현실고 터져버리고 말았다. 미려는 어찌할바를 몰랐다. 희윤이한테로 다가갈수도 없고 그렇다고 멀어질려니 마음이 아팠다.
<<희윤아,>>
미려의 목소리는 아련하게 젖어있었다.
<<응, 왜?>>
애써 심드렁해지는 희윤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미려는 잠간 련민의 정을 느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때문에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
<<아니야, 나 행복했어. 네가 있어서 나 행복했어. 네가 나한테로 올수 없다는것도 알구 내가 다가가면 안된다는것두 알아. 하지만 나 그냥 이렇게 널 사랑하면 안돼?>>
<<사랑이란 이렇게 바라보기만 하는거 아니잖아. 사랑이란 결혼으로 이어져야 진정한 사랑 아니야? 니 결혼상대는 내가 아니야. 내 남편도 니가 아니야. 나는 지금의 모든것 때려치울 용기가 없어. >>
<<아무래도 좋아. 그냥 이대로라도 좋아. 니가 날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좋아. 난 평생 결혼을 안해도 돼. 너만을 바라보아도 돼. >>
<<아니야. 니가 그러는거 싫어. 나때문에 니가 불행해지는거 같아서 싫단 말이야. 너한테 내 마음, 내 행복까지도 다 주고싶어. 헌데 그럴수가 없어. 난 이미 다른 곳에 속해있는 사람이야.>>
<<내가 괜찮다면 괜찮은거 아니니? 날 그냥 내버려둬. 이렇게 바보같이 사랑하게 내버려두란말이야!>>
<<희윤아, 희윤아!>>
희윤이의 절규를 들으며 어느새 미려의 두볼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말로 희윤이를 사랑했던가?

7

컴퓨터화면을 들여보다말고 눈이 반짝 빛났다.
오랜만이였다.
가을향기: 오래간만입니다.
와인의 향기: 네. 누구시더라요?
가을향기: 잊으셨어요? 길가는 여자요
와인의 향기: 아, 생각납니다. 저야 길가는 남자였죠. ㅋㅋㅋ
가을향기: 그새 머하셨어요?
와인의 향기: 남방출장 한번 갔다 왔었습니다.
가을향기: 그래서 통 뵐수가 없었나봐요. 제가 얼마나 찾았다구요
와인의 향기:미안합니다. 저 워낙에 채팅을 잘 안해서요.
가을향기: 저 고민 있어요.
와인의 향기: 먼 고민요. 꺼리지 않는다면 제가 기꺼이 풀어드리리다. 저 스트레스세탁소, 고민해결사인걸요.
가을향기: 사랑하고픈 사람이 생겼어요.
와인의 향기: 그래서요?
가을향기: 헌데 사랑할수가 없어요. 사랑하면 안되는 사람이거든요. 제가 유부녀거든요.
와인의 향기: 유부녀가 사랑을 못한다는 법도 있나요?
가을향기: 유부녀가 사랑을 하면 바람난거 아닌가요?
와인의 향기: 아니죠. 생리욕구를 바탕으로 할때 바람난거지만 진정으로 사랑을 하는건 사랑인거지 바람피는거 아닙니다.
가을향기: 그럴가요? 하지만 전 어쩐지 비도덕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와인의 향기: 혹시 상대방에게 멀 바라는게 있어요?
가을향기: 아니요
와인의 향기: 그럼 갚아야 할게 있어요?
가을향기 :아니요.
와인의 향기: 그럼 사랑해요. 님은 정말로 상대방을 사랑하는거니까요.
가을향기: 하지만 그럴수 없어요.
와인의 향기: 진짜 말이 안먹혀들어가네요. 이런 머리굳은 여잘 누가 사랑하나 모르겠네.
가을향기: 그러게말입니다.
와인의 향기: 지금 안불편하시다면 우리 만나요.
가을향기: 네?
와인의 향기: 이렇게 말을 해선 못알아들을것 같아서요. 만나서 제가 확실하게 고민상담해드릴게요.
가을향기:글쎄요.
와인의 향기: 저 나쁜 사람 아닙니다. 한번 믿어보시라요. 우리 <<추억다방>>에서 만나요. 잠간, 제가 예약하구요.
가을향기: 네?
와인의 향기: 됐어요. 2호테블에서 만나요. 저 갈색점퍼 입었어요. 30분후에 거기서 뵐게요.
미려가 어정쩡해있는 사이 와인의 향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갈가? 이 밤중에 내가 외간 남자를 만나러 가? 것두 채팅방에서 두어번 대화나눈 남자를? 미쳤지.)
(안가는거지? 근데 정말로 기다리면 어떡해? 정말로 착하고 근사한 사람이면 어떡해? 내 고민 해결해주러 온댔잖어?)
갈팡질팡이였다. 간다는것도 우습고 안간다는것도 켕기였다.
까만 색을 잃어버린 밤은 희끄무레하기만 하다. 이럴 때 남편이라도 있으면 가려는 엄두도 못내련만. 헌데 오늘도 남편은 늦단다. 항상 일 없이 바쁜 남편이다. 지금쯤 남편이 어느 곳에서 희떠운 소릴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결혼해서 언젠가부터 친구들하고 저녁먹고 들어온다고 귀가가 늦어지군 하던 남편이 이제는 제법 드문히 외박까지 하고있는 상황이다. 열시쯤에 불깃한 얼굴로 귀가하는건 례상사고 새날이 되여야 갈지자를 그으며 들어오기도 하고 아예 집도 안들어오고 그길로 출근한적도 있었다. 그럴때마다 이 핑게 저 핑게 많기도 하건만 이제는 그 핑게가 중요하지도 않다. 어느새 미려는 남편이 없는 밤에 익숙해져있었다. 있었대야 조곤조곤 대화가 오가는것도 아니고 남편은 티비에, 미려는 책이나 컴에 매달려 저마끔의 세계를 즐기고있을뿐이였으니까. 남편과의 대화가 끊긴지가 아득히 먼 옛날 일이기라도 하듯 기억에 가물가물하다. 세살짜리 아들애마저 할머니집으로 보내버린후 둘은 별로 눈길 마주치기도 어려웠다. 미려는 가끔 부부라는것이 시간이 흐르면 다 저들처럼 익숙하면서도 낯선 사람대하듯 한건지 의문스럽기만 했다.
미려는 컴을 끄며 투덜거렸다.
(당신 어디서 뭐하는거야? 맨날 무슨 외식이 그렇게도 많어?)
문득 옥이의 말소리가 귀가에 쟁쟁 들려왔다.
<<너 조심해라, 남편 좀 그만 방목해라. 이제 집에 끌어들이란 말이야. 남자들이 어디 가서 뭘 하는지 어떻게 안다고 그래? 니 남편이나 내 남편이나 다 그 위험년령이 아니냐? 지금 견우직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가 어디 있다고 그러니? 니 남편은 게다가 얼굴 잘 썼겠다, 말을 잘하겠다, 여북하냐?>>
미려는 쳇~ 했다. 먹는데만 밝히는 남편이 여자까지 밝힐거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 미려였다.
<<당신이나 잘하슈. 내 남편은 어련히 절로 알아서 하지 않을라구.>>
이러는 미려를 옥이는 물을 건너도 한참은 갔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혀를 찼었다.
헌데 오늘따라 찜찜하기만 한 기분. 제 맘 짚어 남의 마음인가.



실내에서는 애잔한 음악이 흐르고있었다.
불그스름한 불빛은 면사포마냥 구석구석을 얄포롬히 감싸고 있었다.
2호테블은 비여있었다.
얼른 다가가 거기에 앉을 용기까진 없었다. 빈 테블에 앉아 낯선 누군가를 기다린다는게 어색하고 무엇하기만 했다.
구석진 테블을 찾아 앉아 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그런 미려를 웨이터는 이상스레 훑어보고있었다. 하긴 이 시간에 다방을 찾아 홀로 커피를 홀짝거리는 여자가 청승맞기도 할것이다.
(희윤이가 뭘 하고있을가?)
생각이 희윤이에게 미치자 그제서야 꺼놓은 핸드폰이 생각났다. 희윤이에게서 메시지가 오면 머라고 답을 해야 할지, 전화라도 오면 머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꺼놓은 핸드폰이였다. 메시지의 글자마다 잔정이 졸졸 묻어나오는 희윤이, 말소리만 듣고있어도 마음이 포근해나는 희윤이, 희윤이 생각을 하면 미려는 자꾸 가슴이 아팠다. 왼쪽 가슴이 무엇에 맞히기라도 하듯 아릿하게 아파왔다.
손은 저도모르게 가슴을 움켜쥔다. 지금 또 가슴이 아프다.
(희윤아, 보구싶어.)
갑자기 사무치게 보고싶은 희윤이. 맨정신으로 앉아있을수가 없다.
<<저, 여기 맥주 주세요.>>
꼴깍꼴깍 맥주를 들이켰다. 그러는 미려를 웨이터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멀거니 바라본다. 혼자 맥주를 홀짝거리는 여자가 처음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맥주가 병에서 잔으로, 잔에서 다시 미려의 배속으로 시원히 잘도 흘러든다. 그래도 웬지 말짱하기만 하다.
갑자기 찬 공기가 휙 쓸어들었다. 머리가 어지러워났다.
<<것봐! 없잖어. 2호테블이라 그랬지?>>
금방 들어온 운동모자가 떠들고 있었다.
<<응. 허 참! 오랜만에 그 아이디로 로그인했는데 아는척하길래 볼거리가 있는줄 알았지. 순진한 양인줄 알았는데 완전 새버렸네.>>
뒤따라 들어온 고수머리가 툴툴거린다.
<<이놈아, 니 딴 놈한테 얼리울 여자가 어디 있냐? 그 바닥에서 그렇게 헤맸다는게 그 꼬라지냐?>>
<<아니라니까. 꽤 근사해보였다구.>>
<<내가 뭐랬어? 그냥 술이나 마시자 그랬는데 안듣고 그냥 오더니만…어? 저기 저 여잔 아니야?>>
운동모자가 미려를 발견하고 턱짓을 한다.
<<아니야. 내가 분명히 2호테블이라고 말해줬어. 지금 여자들 상팔자다.저 혼자서 술 처마시는 꼬라지 봐라. 세월 다 갔다.>>
<<짜식! 그만 바람맞고 얼른 가서 마시던 술이나 마저 마시자.>>
운동모자가 고수머리의 뒤통수를 쥐여박으며 들어올 때처럼 휭하니 나간다. 그 서슬에 다시 한번 찬바람이 휙 쓸어들어왔다.
미려는 갑자기 머리가 어질어질해났다. 바람맞은 탓인가?
(갈색점퍼? 후훗~ 와인의 향기? 개차반이라 그래라. 니따위한테 와인이 머냐? 아깝다 아까워!)
희윤이가 보고싶었다. 핸드폰을 꺼내서 꾹꾹 눌렀다.
<<희윤아, 내가 보여? 술마시는 내가 보여?>>
<<미려? 너 술마셔? 왜 그러는거야?>>
<<듣고만 있어.내가 술마시고 처음으로 너한테 전활 했었지. 왕창 취해갖고 주정을 부렸었지. >>
<<미려야, 너 지금 어디야?>>
<<듣고만 있으라니까. 아니다. 그게 아니야, 오밤중에 말짱한 정신으로 오바해서 너한테 전화했었어. 그게 처음이였어. 왜 했는줄 알어? 오빠가 그리 하라고 일러줬으니까. >>
<<너 그만 마셔. 어디야? 내가 갈게!>>
<<어디냐구? 다방. 갈색점퍼 만나러 왔다가 바람맞았거든. 웃기지? 나 이런 여자야. 아무나 덥석덥석 만나구 아무하고나 술주정하구 이런 여자야. 희윤아, 나 배고파! 지금 엄청 배고파! 넘 배고파서 죽을거 같어. 후훗~ 웃기지? 널 만나고나서 배가 고픈줄을 감감 잊고있었는데 오늘 왜 갑자기 이렇게 배고픈거니? 술을 자꾸 부어넣는데도 왜 배고프냐구? 젠장!>>
<<너 취했구나. 어딘지 말해봐. 내가 간다니까!>>
<<후훗~>>
미려의 손에서 핸드폰이 미끌어 떨어지고있엇다…


<<어쩔거야? 오늘도 쉴거야? 당신 출근 안해도 돼?>>
아침상을 챙기며 남편이 물어오는 말이다.
<<좀 누웠다가 낮에 시내에나 나가보던지…>>
<<잘한다. 모범생같던 당신이 결근을 다하구. 그러게 누가 혼자 술을 마시랬어?
무슨 여자가 밤중에 혼자 다방에 앉아 홀짝이냐? 웨이터가 그러는데 맥주를 정신없이 퍼마시더라며? 어디서 그런걸 다 배웠어? 내가 데려왔으니 망정이지 녀편네 다 버릴번 했잖아.>>
잔소리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미려는 게면쩍게 웃었다.
<<오늘 또 술 마시면 확 갖다 버린다.>>
남편이 으름장을 놓았다.


웬지 해살이 너무 눈부셨다.
이동통신영업청사를 나선 미려는 핸드폰을 켰다.
오랜만에 켠 핸드폰이였다.
메시지가 들어와있었다.
--미려야, 어디야? 왜 핸드폰을 끄고있어? 나때문에 많이 부담스러운거야? 메시지 보면 얼른 전화해.
--머 하고 있는거니? 니가 힘든만큼 나두 힘들어. 그렇다고 이렇게 사라져버리면 날더러 어떡하라는거야? 그냥 그자리에 있어줌 안돼? 내가 바라보기만 해도 안돼? 제발 핸드폰을 켜라. 얼른 니 목소릴 들려줘.
--미려야, 난데….
온통 희윤의 메시지였다. 미려의 두눈에 어느새 하얀 습기가 반짝거렸다.
--희윤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먼저 다가가서 미안하구 내가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 너와 나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넌 희윤일뿐이고 난 미려일뿐이라고. 너나 나에게 다 아픔이 있을뿐이야. 우린 그냥 길가는 사람이야. 길을 가다가 우연히 눈빛이 마주쳐서 서로의 존재를 발견했을뿐이야. 우리가 가야 할 길도 이미 지나온 길도 다 달라. 폰이라고 생생현실인건 아니야. 폰이든 컴이든 다 가상공간일뿐이야. 현실속의 날 니가 사랑할수 있을가? 현실속의 널 내가 사랑할수가 있을가?
메시지를 썼다가 다시 쭉 지워버렸다.
핸드폰을 껐다.
카드를 뽑았다.
(잘 가! 희윤아! 이제 미려는 없어. )
새 카드를 갈아끼웠다.
다시 핸드폰을 켰다.
<<민우야!>>
<<엄마!>>
<<민우야, 엄마 사랑해?>>
<<응, 민우가 엄마를 무지무지 사랑해!>>
<<엄마두 민우를 사랑해!>>
전화 저편에서 아들애의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려의 얼굴에 미소 한점이 피여나고있었다.
<<여보~ 나야!>>
<<엉? 전화번호가 왜 이래?>>
<<전화번호 바꿨어. 안좋아? 뒤의 네자리가 당신거와 같잖아. 커플전화번호!>>
<<허참! 놀구있네. 그케 좋아?>>
<<나 배고픈데~>>
<<아침 먹은지 얼마라고 배가 고파? 점심에 당신 사무실로 랭면 배달시켜줄테니까 그전에 절루 알아서 뭐좀 챙겨먹어!>>
밝은 해살이 미려의 등뒤로 무더기로 쏟아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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