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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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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2)
2012년 08월 14일 14시 52분  조회:1640  추천:0  작성자: 김영해
5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통증이 밀려올 땐 끊어질듯한 허리와 배때문에 당금이라도 죽을것 같았는데 안 아플 땐 아무 일 없이 멀쩡할수 있다는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이제껏 아팠던 기억들을 떠올려보면 완치될수 있을 때까지 정도부동하게 은근히 아픔이 쭉 이어졌는데 이번은 그렇지가 않았다. 한주일 쯤 지속되던 미칠듯한 뇨의도 요즘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나는 머리를 기우뚱거리다말고 핸드폰을 꺼내 수자판을 꾹꾹 눌렀다.
“왜?!  또 아퍼?”
남편의 목소리에는 놀라움으로 한옥타브 높이뛰기를 하고있었다.
“아니. 퇴근할 때 약방에 가서 <<찐챈초>>(金钱草)라는 약 사와요. 책에서 그러는데 그걸 차처럼 우려서 경상적으로 마시면 좋대요.”
“약은 소용없다니까. 물을 마시고 줄뛰기나 뛰라니까.”
“아니, 난 약 먹을건데.”
나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며칠전에 두번째로 아프고나서 연변병원을 찾았을 때 신장과주치의사는 복부평면 엑스레이촬영을 해보라고 했다. 결국 희미하게 미소량의 결석이 수뇨관에 있음이 나타났고 결석이라고 확진이 내려졌던것이다. 의사는 약을 처방해주면서 물을 많이 마시고 뜀뛰기운동을 할것을 권장했고 함께 동행했던 남편은 그 말만 귀에 쏙 들어가박혔는지 집에 돌아오자바람으로 나만 보면 물을 마시라고 닥달을 하고있는 중이였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약이 모든걸 치유할수 있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알면서도 약으로 병을 치료하겠다는 생각은 잠재의식속에서 스스럼없이 슬슬 기여나와 결석을 치료할수 있는 약이름에만 신경을 세우고 있었다.
나는 마우스를 슬슬 움직여 컴퓨터화면을 재생시키고 인테넷검색사이트에 접속했다. 한어로 “신결석치료방법”이라고 쳐넣고 검색버튼을 누르자 신결석증상, 신결석치료시 주의사항, 신결석환자가 주의해야 할 음식 ……하고 신결석에 관한 카페글과 웹문서들이 와르르 쏟아져내렸다. 그중의 하나를 클릭하고 빠르게 읽어나가면서 나는 결석이 있다는 배를 손으로 살살 만졌다. 멀쩡했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좁쌀알갱이같은 존재가 언제 아픔을 불러올지 모를 시한폭탄처럼 몸속에 숨어있다는게 믿어지지 않았다.
다음 순간 오빠가 스무살 때 삼켰다는 철덩이가 언뜻 떠올랐다. 오빠는 단 한번도 위속의 철덩이때문에 불편하다거나 아프다고 하지 않았다. 아주 드문히 오빠는 “내 배속의 철덩이는 아마 고기가 붙어서 고기덩어리가 되였을거야.”라고 우스개삼아 이야기할뿐이였다. 그러면 엄마는 “돈이 있으면 위수술을 하고 꺼내겠는데. 돈이 있어야지……그 철덩이때문에 신체가 못쓰게 되는가보구나. 아무렴 사람은 잘 먹어야 병도 안생기는데.” 하시면서 서글픈 표정을 지으셨다. 그 철덩이때문인지 오빠는 식탐이 참 많았었다.
 
 
내 심정만큼이나 갑갑하게 찌물쿠던 8년전의 어느 여름날이였다.
환자복대신 팔 짜른 잠옷을 입고 링게르주사를 맞던 오빠는 병실로 들어서는 나를 보자 싱글거리기 시작했다.
“너 여기 좀 볼래? 여기에다 뇨도관을 꽂았어. 거기로 누런 오줌이 시도 때도없이 쪼르륵 흘러내려서 비닐봉지에 들어찬다니까.”
아주 재미있는 일이라는듯이 오빠는  헐렁한 잠옷을 막 아래로 내리며 나한테 보여주려하고 있었다.
“아, 싫어 . 안볼래. 그게 뭐 구경거리라구.”
“봐라. 글쎄 보라니까 그러네. 여기에 작은 호스가 보인다니까.”
오빠는 짓꿎었다.
“그럼 여길 봐봐. 여기 팔목에 작은 호스 꽂은거. 이건 혈액투석을 할 때 쓰는것인데 할 때마다 꽂을려니까 시끄러워서 이렇게 고정시켜놓은거야. 혈액투석을 할 때 이것을 요렇게 뽑아서 기계 달린 줄들에 련결하면 된대.”
오빠는 이번엔 팔을 걷어붙이며 뭣인가 팔목에서 데룽거리는것을 보여주었다.
“아참, 안본다는데. 난 그런게 싫어.”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저만치 물러서며 눈을 치떴다.
“에이~ 보여줄 때 보라는데 그러냐? 네가 또 언제 이런 구경을 한다구. 나두 처음 해보는건데.”
오빠는 손사래까지 치며 물러서는 내가 재미있다는듯이 킬킬거리더니 살짝 이마살을 찌프렸다.
“오늘 점심은 뭘 반찬으로 먹지? 병원에서 내주는 음식 참 맛이 없다. 오늘 우리 명태찜 시켜먹을가? 나 그거 먹고싶은데.”
 “어이구, 무슨 환자가 돈 아까운줄 모르고 난리야. 그게 값이 얼만데?”
나는  롱담인체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실은 정말로 속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돈이라는 글자를 생각만 해도 피가 마르는데 반찬타령이라니?
예전부터 쭉 가난하게 생활해온 친정에는 서발막대기 휘둘러도 거칠것이 없었고 겨우 사정사정해서 친척들의 돈을 간간이 꾸어서 들이댈뿐이였다. 월급에만 매달려사는 나의 얼마 안되는 적금도 바닥이 났고 난 돈을 융통하는 재간도 없었다. 돈이 많은 부자한테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은 있어도 정작 돈이 필요한 가난한 사람한테는 빌려주려는 사람이 없었다. 어떻게 돌려받을지 막연하기때문이였다. 결국 세상은 그렇게 빈부의 차이가 커지고있었다. 그걸 알리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오빠는 아예 입원비가 얼만지조차 묻지도 않고있었다. 아무렴 알아봐야 가족한테 더 많이 미안할것이니 적게 아는쪽이 나을거라는 생각에 함구하고있는지도 몰랐다.
“야, 내가  맨날 먹냐? 오늘만 먹자는데. 며칠동안 병원에서 주는 급식을 먹었더니 영 입맛이 없다니까.  오늘은 그게 당긴다~”
오빠는 당금 명태찜이 입에 들어오기라도 하듯이 입술을 감빨았다.
“알았어. 좀 있다 사다줄게. 곱도록이 주사나 맞고있어.”
나는 똑똑 떨어지는 주사방울을 점도록이 바라보며 밝은 표정으로 나와 롱을 하지 못해 안달을 떠는 오빠의 속내는 어떨가고 생각에 잠겼다.
 
그날 점심 오빠는 명태찜을 맛나게 먹었고 나는 그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어쩜 나의 잠재의식속에는 은근슬쩍 오빠가 더 이상 돈을 쓰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똬리를 틀고있는지도 몰랐다.
 
6
 
어떻게 마시지?
풀기가 있어 약간 끈적거릴것같은 푸르죽죽한 약물을 보고있을려니 입에 대기가 저어되였다. 그래도 약이라니 별수없이 마셔야 했다. 친구가 어렵게 구해준 신결석을 치료하는 밀방약이라는데 게을리할수가 없었다. 살짝 눈살을 찌프리며 약사발을 입가에 대고 한모금 입에 물었다. 쓴맛대신 싱그러운 풀향기가 입안에 퍼졌다.
 “어~ 맛이 괜찮네.”
나는 숨을 고르고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러는 나를 보며 남편은 희한하다는 표정을 짓고있었다.
“약이라니까 아무거나 잘도 먹네.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쯧쯧~”
순간, 남편의 얼굴에 10년전에 붕어탕약을 먹는 오빠를 바라보던 내 얼굴이 겹쳐지고있었다. 갑자기 싸해진 기분을 느끼며 약사발을 막 비웠을때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가 침실에 가설되여있는지라 일어나기 싫어서 잠간 망설였다. 티비에 몰입한 아들애와 남편은 전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전화벨은 지꿎게 울리고있었다. 전화벨이 두어번 더 울려서야 할수없이 투덜거리며 침실로 향했다.
“여보세요~”
전화번호도 확인하지 않은채 심드렁한 소리로 언제나 한결같은 음절을 뱉어냈다.
“나야.  왜 인제야 전화를 받어? 뭘하고있었어?”
동생이였다. 삼년째 한국에 체류하고있는 동생이였다.
“그냥 티비보고있었어. 퇴근했는 모양이네.”
조선소에서 용접일을 하고있는 동생은 출퇴근시간이 일정하지가 않았다. 일이 바쁠때엔 야근도 해야 했고 굳이 회사사정이 아니라도 어려운 집형편때문에 돈이 급했던 동생은 야근비와 보너스를 챙기는데 열중하고있었다.
“응, 금방 퇴근하는 길이야. 근데 누난 왜 목소리에 반가와하는 티가 전혀 안나?”
약간 석쉼한 동생의 목소리에는 잔뜩 서운함이 실려있었다. 아마도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동생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순간 내가 야호~하고 환성이라도 지르길 바라고있었던 모양이였다.
“워낙 그렇게 생겨먹은걸 뭐 어떡하라고. 안반가운건 아니야.”
“하긴 뭐. 그래도 섭섭해, 내가 전화하는거 싫어하지마. 전화도 안하면 나더러 어쩌구 살라구? 여긴 국제전화비가 싸서 다행이야.”
워낙 사이가 나쁜것도 아닌데도 말수적고 무뚝뚝한 나때문에 오손도손 이야기를 주고받는 법이 없었던 우리 오누이는 구태여 멀리 떨어져있는 지금에는 “머하냐?” “일은 안바쁘냐?” “어디 아픈데는 없냐?”하고 매번마다 똑같이 반복되는 안부 몇마디를 주고받고나면 벌써 대화거리가 궁해졌다.
“그렇구나. 넌 어디 아픈데가 없는거지?”
“나야 뭐 씩씩하지. 아까 엄마한테 전화하니까 누나가 아프다고 걱정하던데 어디가 아픈거야? 중한거야?”
“응, 그게……”
잠간 망설였다.
동생은 그 병명을 어떻게 받아들일가?
“……신결석이래.”
“응?......”
잠간 침묵이 흘렀다.
짧은 몇초사이 동생은 무슨 생각을 하고있었을지 궁금했다.
“……허참…… 그거 유전이야. 울 집식구들은 엄마 빼고는 다 그 병을 앓는걸 봐. 아버지도 이전에 그 병을 앓았댔잖아.”
“……”
“아무래도 우리 집식구들은 신체구조가 그렇게 생겨먹은것 같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병치료나 잘해. 아프고나면 아무도 소용이 없어. 아픈 사람만 아프고 힘들뿐이지 곁에선 아무 도움이 못돼. 돈이 필요하면 이야기하고. 내가 더 안말해도 알아듣겠지?”
나보다 다섯살이나 어린 동생인데도 이럴 때면 꼭 오빠같다.
헌데 뭘 알아들어야 한다는거지?
동생의 말속에 말이 들어있는것 같았지만 알수 없었다.
“알았어. 안그래도 약 잘 챙겨먹고 있으니까 걱정 마.”
한참을 더 별로 긴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전화를 끊었다.
“처남이야? 무슨 전화가 그렇게 길어.”
티비에만 정신을 팔고있던 남편이 시답지 않게 물어왔다.
“그냥.”
나는 데퉁스럽게 대꾸하며 쏘파에 몸을 늘어뜨리고 누웠다. 웬지 기분이 별로였다.
 
그날 밤 나는 내가 물에 빠지면 남편과 동생중 누가 먼저 뛰여들가고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며 밤새 궁싯거렸다. 그리고 이튿날, 엄마가 아침 첫뻐스로 허위허위 올라오셔서 병치료를 잘하라며 통장을 내놓으셨다. 건강해야 한다는 말만 내내 곱씹으시다가 돌아서는 엄마를 나는 한참이나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섰었다.
 
7
 
완치라? 후훗~
크득크득 웃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자꾸 벌어지는 입을 가리며 진찰실을 나오는 나의 가슴이 한껏 부풀었다. 뭔가 숨막히게 누르고있던것을 내려놓은듯한 홀가분한 느낌이였다. 언제 아플지도 모르게 몸속에 박혀있던 돌이 배출되였으니 이제 나는 더 아프지 않아도 된것이였다.
병원을 벗어나서 택시를 잡아탈것도 잊은채 헤실헤실 웃으며 한참을 걷다가 느닷없는 경적소리에 머리를 돌리는 찰나, 갑자기 숨이 콱 막혀왔다. 길 오른편에 줄느런히 늘어선 거무틱틱한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던것이다. 화려한 색상이나 환상적인 도안을 채색으로 찍어낸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흰 판에 검은색 글씨로 씌여져 그 어떤 흥미나 환상을 자극하지 않는 극히 단조롭고 무겁게 만들어진 간판들을 내건 곳은 다름아니라 수의점들이였다.
언제부터인지 병원과 얼마 상거하지 않은 이 곳에 하나둘 수의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제는 완전히 수의점거리로 되여있었다. 창문으로 얼핏얼핏 보이는 수의점안은 여러가지 색상을 한 커다란 화환들이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둡고 침침할거라는 느낌을 주고있었다. 한번도 들어가본 일이 없지만 어쩐지 으스스한 기운때문에 될수록이면 피해다니거나 피할수 없을 경우로라도 의식적으로 눈길을 돌려버리던 곳이였다. 하지만 누구라도 세상을 마감할 때에는 알게 모르게 그 곳을 리용하게 되여있지 않은가? 굳이 거부할 곳은 아닌데도 굳이 피해가고싶음은 죽음에로부터 멀어지고싶은 잠재의식의 발로였을뿐이였을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피하고싶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마침 달려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택시가 수의점거리를 지날 때까지 눈을 감고있었다. 하필이면 그때 엄마에게서 전해들은 올백으로 머리를 곱게 빗어넘겼다는 오빠의 모습이 날 지켜보고있었다.
 
 
오빠가 명태찜을 먹고나서도 나흘이 더 지나 입원한지 꼭 두주일째 되는 날이였다.
병실의 벽은 무서우리만치 하얬다. 벽의 색갈을 닮아가는 오빠의 얼굴은 부석부석 부어있었다. 희멀겋게 부어오른 얼굴을 바라보며 난 어이없게도 “오줌”이라는 낱말을 대중없이 떠올리며 서있었다. 고요한 병실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빨간 비닐봉지에서 빨간 액체들이 방울방울 흘러내려 링게르관을 타고 주사바늘을 거쳐 오빠의 혈관속으로 흘러드는 모습을 오빠와 나는 숨막히게 지켜보고있었다.
“후훗~ 어쩌다가 수혈이라는것까지 다 해보는구나.”
답답한 적막을 깨고 오빠가 맥없이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입귀가 우로 말려올라가고 바람이 헛헛거리고 지나가는 소리를 내는 그 웃음은 어쩜 울음보다도 더 처량해보였다.
“그러게말이지. 난 여적 저런거 못해봤는데…오빠 저거 다 하구나면 정신이 한결 맑아질거야. 히~”
역시 입귀를 실룩거리며 헛웃음을 뽑아내는 내 마음은 허허로왔다.
“이제 퇴원준비도 슬슬 해야겠지?”
“무슨 소릴? 이제 투석도 더 해야 되잖어.”
“됐어. 안할란다. 암것도 안하고 집에 갈란다. 이만큼 병원에 있은것도 내가 호사한거지.”
“……”
“내가 왜 니들 돈까지 쓰며 이렇게 입원한줄 아니? 남들이 웃을가봐 그랬어. 저 놈은 하는 일두 없이 부모 등 쳐먹으며 구질구질 살더니 병원 한번 못가보고 죽더라고 …남들이 웃을가봐. ”
오빠가 사춘기였을 때 집체생산대가 해체되고 호도거리책임제가 실시되면서 촌의 회계사업을 하느라 농사일엔 감감이던 아버지가 어쩌구려 절도죄로 옥살이를 하였었다. 엄마는 세 아이를 거느리고 먹고살기 위해 일하기에 바빴고 한창 사춘기였던 오빠에게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 고민이 무엇인지 관심을 돌려주는 사람조차 없었다. 철모르는 나도 애들이 아버지가 감방갔다고 손가락질하는것이 싫어서 한주일씩 학교를 빼먹었는데 민감한 나이였던 오빠는 얼마나 힘들었을가?
결국 초중도 중퇴해버린 오빠는 번듯한 직장인도, 착실한 농군도 아닌 이름표앞에 뭐하나 붙일 업종도 없이 어중이 떠중이들과만 어울려다니는 허접스런 인생을 살면서 36살고개까지 올라와있었다.
 
“오빤 무슨 소릴 그렇게 해? 치료하면 괜찮아질건데…”
괜찮을거란 내 말은 바람이 불면 날려가기라도 하듯 파삭거렸다. 괜찮지 않을걸 뻔히 알고있었으니까.
“나도 다 안다, 내 병. 내가 한평생 살면서 쉬염쉬염 놀아야 할걸… 아무 일도 안하고 쭉 놀기만 해서… 벌써 다 놀고 가게 되는가봐. 그게 죄라고 죽어도 이렇게 더러운 병으로 가는구나… 온 몸에 오줌이 골똑 차서… 거기에 빠져죽게말이다…”
“오빠, 그렇게 말하는게 아니야.”
나는 마음이 알짝지근해났다. 입귀로 찝찔한 것이 흘러들고있었고 눈에 비친 오빠의 모습이 흐릿해져왔다. 그리고 그 흐릿한가운데서 흔들리는 오빠의 모습은 차츰차츰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이튿날, 오빠는 나몰래 이미 처방받은 약들을 되물리고 병원비를 결산하고 2년전에 그랬던것처럼 시골로 훌쩍 튀여버렸다. 다르다면 약을 되물리고 남은 돈들을 아는 간호사의 손을 거쳐 내 손에 넘겨준것이였다. 그 돈을 받으면서 내 마음은 오빠에 대한 안스러움과  숨가쁘게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은듯한 안도감으로 뒤죽박죽이 되였었다.
일년뒤 치료에 별 효험이 없는 눅거리 약들을 위안삼아 쭉 달고살던 오빠는 어느날인가 혼자서 머리를 감고 머리를 올백으로 빗어넘기고 앉아 엄마를 향해 “나 빨리 갈려고 주위 사람들을 애먹였나보우.”하면서 안하던 소리를 하였다고 한다. 썩 후에 엄마한테서 그 소리를 전해들으며 나는 “이식비가 있었다면 신장 하나쯤은 미련없이 오빠에게 떼여줄수 있었을가?”라는 생각을 했었고 선뜻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 지금도 먼 후날에도 그 물음에 난 툭 찍어 답을 말할수가 없을것 같다.
사람이란 남의 가슴에서 철철 흐르는 피를 자기 손가락에 든 가시만큼이라도 아프게 느끼지 못하는 리기적인 존재임에야.
 
8
 
“픽~”
성냥을 그었다. 불길이 확 솟구쳤다. 불붙고있는 성냥개비를 종이에 갖다댔다. 불길이 날름거리며 종이를 핥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종이에 불이 옮겨붙기 시작했다. 잠간사이 성냥불은 꺼져버리고 종이는 한가닥 연기를 피여올리며 활활 타번지고 있었다. 한장, 두장, 세장……종이는 계속 타고있었고 피여오르는 연기도 짙어지고있었다……
 
춤추듯 키보드를 두드리던 내 손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저 결말을 내가 연출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정말로 난 저러고싶었다. 마치 영화의 한장면처럼 내 글이 활자로 찍혀져있는 종이를 태우며 연기에 아린 눈을 핑게로 오빠를 부르며 조용히 울고싶었다. 하지만 난 그럴수가 없었다. 뇨독증을 앓았던 오빠는 어느날 새벽 고향집에서 아픔으로 몸부림치다가 돌아갔고 부모님들은 오빠의 시체를 나몰래 토장을 해버렸고 나 또한 그 무덤을 찾아갈 용기가 없었다. 어쩜 지금쯤이면 무덤속에 오빠가 지니고갔을 철덩이와 뼈들만 남아있을법도 한데 무덤앞에 서기라도 하면 오빠가 불쑥 튀여나와 예전처럼 “울집 선비야~”하며 반길것 같아서 싫었다. 결국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항상 전전긍긍하는 존재일뿐이였다.
난 파일의 상단을 클릭하고 “인쇄”를 클릭했다. “드르륵”하는 소리에 이어 그동안 내가 썼던 상투적일래야 더 상투적일수 없는 “오빠”라는 제목의 글이 종이에 찍혀 흘러나왔다. 난 종이를 돌돌 말아 빈 유리병에 밀어넣었다. 코르크마개로 꼭꼭 틀어막았다. 그리고 유리병을 상자 깊숙이 넣었다. 또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빠, 이제 잠시만 오빠를 부리우고 살게. 내 몸에서 결석이 배출되듯이 오빠를 잠시만 기억속에서 내려놓고 살게. 너무 오래는 아닐거니까 걱정마. 결석이 유전이라면 언제든지 내 몸속에 다시 생겨나게 될거야. 그때쯤이면 오빠도 내 기억속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가? 그냥 너무 힘들어서, 너무 힘들어서 잠시만 내려놓는거야.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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