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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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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归)-(1)
2012년 08월 15일 16시 16분  조회:1887  추천:0  작성자: 김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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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해
 
 
 
1
누구지?
남자는 투덜대며 가까스로 눈을 떴다. 깜깜했다. 어둠속에서 아무것도 가려볼수가 없었다. 남자는 손으로 눈을 비비며 일어나앉았다. 초인종소리가 지꿎게 울리고있었다.
에잇!
짜증을 내며 일어서려던 남자는 후훗~ 웃어버리고말았다. 차탁우에서 핸드폰이 번쩍거리고있었고 초인종소리는 거기에서 울려나오고있었다. 알람소리였다. 남자는 팔을 차탁우로 뻗어 핸드폰을 끄당겼다. 알람을 끄고 남자는 다시 벌렁 드러누웠다. 매번 알람소리를 들을 때마다 깜빡 속아넘어가면서도 정작 알람소리를 다른것으로 바꿀 생각은 없었다. 초인종소리는 어느날 갑자기 혼자서 출입문에 설치된 초인종을 꾹꾹 누르며 록음한것이였다. 다른 알람소리를 시도해보지 않은것이 아니였지만 결국은 남자가 뭘 하고 있든간에 단박에 주의력을 끌수 있는데는 이 초인종알람소리가 제일이였다. 알람소리를 끄고나니 방안에는 부스럭거리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남자는 멍하니 꺼먼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그새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천정에 달린 둥그런 전등이 무슨 허물처럼 꺼멓게 보여왔다.
저 놈의 팔자~
남자는 불쑥 전등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스위치를 켜지 않는 한 전등은 천정에 매달려있는것이 천직인줄 알고 불도 밝히지 않은채 언제까지고 매달려있을것이였다. 남자는 할일없는 전등을 쳐다보다말고 몸을 일으켜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티비를 켰다. “딱”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껌벅하더니 확 밝아졌다.  남자는 반사적으로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출렁이는 파도우에 작은 구조함선 몇정이 흔들리고있었고 화면 절반을 차지하고 어떤 군인의 사진이 클로즈업되고있었다.  KBS1채널이였다.
 
“……군 관계자는 현재 천안호 침몰 해역에서는 잠수 요원들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생존자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실신 등 크고 작은 잠수 관련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사고가 난 해역의 수온은 평균 3도 정도로 잠수요원 한 사람이 또렷한 의식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20분 정도입니다.

군 관계자는 침몰 함선에 접근하는 시간을 고려할 때 실질적인 임무 수행 시간은 7~8분에 불과한 상황에서 이 기간 동안 최대한 활용해 탐색을 벌이는 과정에서 사고가 난 것으로 관측했습니다……”
 
“뉴스라인”프로에서 천안함사건에 대해 보도하고있었다. 구조잠수요원 누군가가 순직했다는 기사를 다루고있었다. 3월 26일에 일어난 일이니까 벌써 5일째다. 긴장된 분위기로 한국방송채널마다 천안함사건을 특종으로 다루고있고 구조사업이며 선체인양사업의 진척이 낱낱이 실시간으로 보도되고있는 중이였다. 하지만 남자는 거기에 별 관심이 없다.
몇시지?
남자는 중얼거리며 핸드폰액정을 들여다봤다.10시15분이였다. 남자는 담배를 피울가 말가 망설였다. 눈 질끈 감고 딱 한대만 피울양으로 막 담배갑에 손을 뻗치려는 그 때였다.
“전화받으세요~ 전화받으세요~”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냉큼 접속버튼을 눌렀다.
“나야, 어딘데?”
역시나 통화는 언제나와같이 똑같은 순서로 진행될 조짐이였다.
“집.”
“머하고 있었어?”
“티비보고있었-다.”
남자는 저도모르게 말꼬리를 낮추며 “다”를 입속으로 삼켜버리고말았다. 요즘 들어 가끔 있는 일이였다. 오늘도 어정쩡하게 입속으로 사라져버린 “다”를 생각하며 남자는 입을 쩝쩝 다셨다. 뒤를 채 보지 못한듯한 께름직한 느낌이였다.
“티비? 재밌어? 어디서 머가 나오는데?”
안해는 남편의 입에서 사라진 “다”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응, KBS1에서 천안함사건이 나오는데.”
“그래? 나 지금 막 야근하고 들어오는 길이거든. 궁금해서 그러는데 사태진전이 어떻대?”
남자는  버릇처럼 픽 하고 실소를 했다. 예전부터 시사에 전혀 뒤전인 안해가 궁금한것은 지금 남자가 정말 티비를 시청하고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일것이였다.
“누가 죽었다는데. 무슨 구조요원이란다.”
좀더 자세하게 이야기해줄수도 있었지만 남자는 간단하게 일축하고 말았다. 남자나 안해는 천안함사건에 관심이 있는것이 아니라 그 시간 그 때에 진행되는 방송내용이 무엇인가가 중요할뿐이였으니까.
“어머머, 참 안됐네. 자기야, 오늘은 머했어?”
들을 때마다 송충이 달라붙는듯한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 “자기”, 남자는 정말 그 단어가 싫었다.
“그냥, 티비나 보고 암것도 안했는데.”
“그랬구나.  나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그럴거지. 심심했겠어.”
남자는 안해의 진심이 도대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안해는 남자가 친구들과 어울려다니는것을 별로 안좋아하고있었다. 친구가 많으면 나쁜 짓거리하는 잔머리 하나가 더 돌아간다는것이 안해의 신조였다.
 “요즘엔 회사도 잘 안돌아가나봐. 야근도 줄고 뽀너스도 줄고……자기가 돈 좀 아껴서 써. 돈이 여간 어렵게 벌어지는게 아니라니까. 국내에 있는 사람들도 다들 한번씩은 나와봐야 아는데……”
본격적인 대화의 시작이였다. 남자는 가끔 가다 “응”을 내뱉으며 열심히 들어주었다. 대개 통화의 주인공은 안해였고 남자는 가끔 듣고있다는 표시만 하면 되였다. 드디여 통화가 끝나고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남자는 길게 기지개를 켰다.
너두 수고많다~
남자는 티비를 꾹 꺼버렸다. 어둠속에 묻혀버린 방안은 삽시에  쥐죽은듯이 조용해졌다. 조용하다못해 으스스한 느낌까지 들었다. 남자는 방금까지도 혼자서 신나게 떠들던 티비를 힐끗 쳐다보았다. 입이 닫겨진 티비는 언제 시글벅적했냐싶게 무슨 괴물처럼 어둠속에  웅크리고있었다. 순간 가슴이 섬찍해나며 소름이 끼쳤다. 남자한테 티비는 더는 오락이나 휴식을 위한 가전제품이 아니였다. 1년전 안해가 다녀가면서 한국위성방송접수기를 설치한후로부터 남자의 티비사랑은 급격히 령하로 떨어져버렸다. 서울에 있는 안해와 같은 시간대에 같은 채널의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할수 있게 된 티비는 안해의 눈이 달린 원거리감시기였다. 오늘도 그 임무를 착실히 리행한 티비는 어둠속에서도 남자를 노려보고있는것만 같았다.
에잇,  내 팔자! 후우~
남자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다시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오늘 밤도 무용지물이 되여버린 천정에 매달린 전등이 눈동자가 빠져버린 우묵한 눈확처럼 남자를 내려다보고있었다. 남자는 얼른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는 남자한테로 어둠이 기다렸다는듯이 꺼멓게 덮쳐들며 형체도 없이 삼켜버리고있었다.
 
 
2
 
 
남자가 집을 나설 때는 날이 이미 완전히 어두워진 7시였다. 5시에 마작판을 파하고 집에 돌아와서 그때까지 구슬알맞추기게임을 열번도 넘게 다시 했음에도 득점은 700점도 초과한적이 없었다. 안해가 오늘은 전화를 걸어오지 않을것이라는것을 확신하며 티비를 끄는 찰나 남자는 가슴속으로부터 한줄기 휘파람같은 가벼운 바람이 흩어져나오는듯한 홀가분함을 느꼈다. 남자는 모임장소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택시기사의 눈총도 아랑곳하지 않고 휘이익~ 휘이익~ 하고 나이에 걸맞지 않게 휘파람을 불어대였다.
남자가 “미나리”음식점에 이르렀을 때는 술상의 분위기가 막 익어가고있었다. 환하게 웃는 성호의 모습이 선참 눈에 띄였고 손짓까지 곁들어가며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는 철수와 명호의 열띤 모습도 보였다. 문쪽을 향해 앉은 철수가 먼저 알아보고 “여기~”하며 손짓을 했고 성호와 명호도 그제야 남자를 알아보고 웃음 띤 얼굴로 “이제 오니?” “빨리 와라”하고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댔다. 남자는 온 얼굴을 활짝 펴서 웃음이란것을 만들어내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늦어서 미안하다. 급한 일이 있어서.  허허~”
남자는 신발을 벗고 자리에 올라가며 사람좋게 웃어보이고는 성호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반갑다~”
“자식, 와주니 고맙지. 이게 얼마만이니?”
성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손을 잡아주고는 남자를 끌어당겨 자기옆에 앉혔다. “5년만인가? 얼굴보기는.”
남자는 덜 다듬어진 돌처럼 보는 사람을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게 하던 모습대신 한결 끼끗해진 성호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쳐다보았다.
“자식 봐라, 그새 말을 반토막씩 잘라먹는 버릇 생겼네.”
성호가 악의없이 핀잔하며 남자의 어깨를 툭 쳤다.
“그렇기만 하겠냐, 요즘엔 아예 티비에 붙어서 산다. 너 오늘도 티비보다 왔지?”
옆에 앉은 철수가 장난기어린 얼굴로 시까스르자 명호가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남자의 티비사랑은 알만한 친구들은 다 알고있었다.
“티비? 티비가 왜?”
성호만 뭔 소리나싶어 눈을 껌벅거리고있었다.
“티비는 무슨, 일 있어서지. 너는 인젠 완전히 귀국한거니? 다시 안가고?”
남자는 지꿎은 철수의 눈길을 피하며 성호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글쎄. 그건 봐서. 일단 술이나 마시자. 다들 편하게 아까 나누던 이야기들을 계속 나누고.”
성호는 남자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있었는데?”
남자가 궁금해서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뭐긴 뭐겠니? 한국얘기지. 요즘 그거 빼면 뭐 다들 공동언어가 없단다. 못난 놈들~”
명호가 무슨 심사가 비틀어졌는지 사내답지않게 입을 비쭉거렸다. 성호는 “자식~”하고 허허 웃으며 명호의 등을 툭툭 두들겨주었다.
“난 말이야, 왜 다들 한국이나 일본, 미국 이렇게 외국이 아니면 못산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단말이야. 네편네든 로인네든 나가면 올줄을 모르고말이야. 니들은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거야?”
한국문전에도 가본적이 없는 철수녀석이 말끝마다 “야”를 요상하게 붙이며 시비조로 따지고들기 시작했다.
“금방 귀국한 성호도 있지만, 친구놈들 쭉 봐봐. 외국과 관계없는 놈 몇이냐? 내 녀편네는 한국간지 7년이 되도록 돌아올념을 안해. 내가 일년에 집인테리어 몇개만 하면 얼마든지 먹여살릴수 있는데도 말이야. 호범이녀석은 녀동생 한국에 시집보내고 늙은이들까지 줄줄이 출국시켰잖냐? 명호 니 놈은 방취제시험치고서는 공장에도 제대로 출근 안하고 추첨되기만 목빠지게 기다리고있지?”
“맞는 말이다. 우리 친구들만 그런게 아니고 세상이 다들 그렇게 돌아가잖냐? 말그대로 미친 놈의 세상이지.”
명호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담배를 붙여물었다.
“그리고 수현이놈은 일본 갔다가 돌아온지 얼마 안되잖아. 그래도 걔가 난 놈이야. 오자바람으로 시정부 외사과에 출근하는것을 보면. 그놈 아마 일본서 벌어온 돈으로 그 자리 산걸거야. 하긴 그 녀석은 공부 많이 해서 일본 가기전부터 공무원이였으니까.  나같이 가방끈 짧은 놈은 억만금을 줘도 그런 자리 못마련할거야.”
철수는 자조하듯이 입귀를 풀럭이며 피씩 웃더니 이번엔 남자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얌마, 시간맞춰 티비보는 니 녀석은 녀편네 한국 보낸것도 모자라서 세번이나 까만 도장 맞고도 아직도 이제나 저제나 비자 떨어지기만 기다리지? 너 그딴거 확 걷어치우고 나하고 집인테리어 같이 하자니까 그러니? 드문드문 푼돈이나 벌지 말고 아예 두손 잡고 크게 한번 해보잔 말이다. 외국돈은 뭐 하늘에서 떨어지는 떡인줄 아냐? 니들은 그래 이게  다들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거야?”
철수는 말할수록 열이 오르는지 잔을 들어 술을 쭉 들이켜고 빈잔을 머리우에 거꾸로 쳐들었다. 눈치없는 술방울 하나가 뚤렁하고 철수의 푸수수한 머리에 떨어졌다.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철수도 멋적은지 쿡하고 따라웃었다. 한바탕 웃음이 지나가고 성호가 입을 열었다.
“나 한번도 말한적이 없는데…… 오늘은 이 말을 너희들한테 해야 할것 같다. 니들 셋 다 한국만 쳐다보고있으니 들어두는것도 나쁘지는 아닐거야. 난 합법적으로 나갈려고 중간에 귀국했다가 재입국한 시간을 빼고 꼭 8년을 한국에서 살았어. 중국에 있을 때엔 중국만 벗어나면 노다지판이여서 허리만 굽히면 돈을 주을수 있을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나도 처음엔 가서 고생을 많이 했어. 너희들두 알잖냐? 내가 첫번엔 브로커에게 사기당하고 두번째만에 겨우 출국에 성공한걸. 난 려권사진을 바꿔가지고 남의 이름으로 나갔으니까 처음부터 불법체류였어. 자진귀국하기전까지 3년내내 난 지하철을 타보지도 못하고 걸어다녔어. 왜냐구? 불법체류단속을 하는 경찰들이 늘 지하철입구에서 잡거든. 그걸 피하느라고 골목골목을 걸어다녔다니까. 건축현장일을 할 때도 늘 긴장되여있어야 했지. 뒈질놈들이 꼭 점심시간이면 잡으러 온단말이야. 그때면 점심도 못먹고 무조건 제일 높은 층으로 뛰여서 숨었어. 창문도 없이 벽체만 있는 어느 칸인가의 딱딱한  세면트바닥에 놈들이 갔겠다싶을때까지 누워있었지. 얼굴에 신문한장 덮어쓰고 말이야. 나말고도 몇명 더 있을때도 있는데 다들 아무말도 안해. 허기진 배는 꼬르륵거리고 신문장밑에 감춰진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 되여있으니까 서로 모르는척하는거지. 근데 이걸 누구한테도 말할수가 없다는게 더 힘든거였어. 친구들한테 말하면 쪽팔릴것 같고 가족들한테 말하면 걱정할것 같으니까. 지금은 형세가 좋아져서 거의다 합법적으로 출국하니까 나처럼 그런 고생은 안하겠지만 겪어보지 않고는 믿을수조차 없는 일들이 많고도 많아. 한마디로 제집문을 나서면 고생이야. 외화벌어들이는게 쉬운줄 아니? 싸움판이야. 아직도 비행기표 살 돈이 없어서 못돌아오는 사람들이 허다해.”
성호는 의미있게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얼굴에 웃음기는 간곳없고 심각한 표정들이였다.
“니 말들으니까 지하철에서 박스 덮고 사는 사람들 모습이 막 떠오른다. 그런줄까지는 몰랐는데……”
명호는 말끝을 사리며 성호의 눈길을 피해버렸다.
“그렇다고 외국 안가면 또 뭘하겠니? 호미질도 제대로 안해본 나한테 뚝힘 빼고는 아무것도 할줄 아는게 없다.  난 시키는 일만 할줄 알았지 내가 내 머리로 뭘 생각해서 할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형편이거든. 도무지 여기에서는 무슨 일을 해서 벌어먹고 살아야겠는지 궁리도 안난다.”
남자는 입속으로 웅얼거리며 반찬을 집어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하긴 뭐, 우리가 다 시골에서 굴러들어왔으니 남처럼 학력이 있냐, 빽이 있냐, 잘사는 부모 있냐? 나도 삼촌이 이끌어줬으니 작은 주방가구가게라도 차리구 집인테리어를 하고있는거지 혼자서면 턱두 없어. 생각만 해도 신경질부터 난다. 에이, 술이나 마시자.”
철수는 투덜거리며 술잔을 채웠다. 다들 그러는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다는 얘기지. 나나 너희들이나 거기서 거기지 누가 더 잘난 놈 있냐? 우리가 한 마을에서 자라서 지금까지 함께 친구로 있다는게 중요한거지. 자자~ 술이나 마시자.”
성호가 술잔을 쳐들었다.
“마시자, 마셔! 먹고 죽겠냐?”
“그래, 오늘은 화끈하게 마시는거다.”
다들 우야우야 술잔을 들며 기분을 돋구었다. 다시 어릴적에 마을을 쏘다니며 장난을 치던 일이며 련락이 없는 친구들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분위기는 둥글어갔다. 그날 술에 만취한 남자는 술값을 낸다는 성호를 밀어내고 기어코 지갑을 털었고 집에 돌아오자바람으로 그대로 쏘파에 꺼꾸러져버렸었다.
이튿날 해가 중천에 떠서야 기신기신 일어난 남자는 핸드폰에서 부재중전화 다섯통을 발견하고는 아연해져 한참이나 제자리에 굳어있었다. 안해가 밤 10시쯤에 걸어온 국제전화였다. 안해가 전화를 걸어오는 시간은 보통 저녁 6시 좌우가 아니면 10시좌우였던것이였다.
 
3
 
녀자는 무릎을 세워잡은 두 팔에 얼굴을 묻고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옅은 갈색으로 자연스럽게 염색된 긴 생머리가 팔과 어깨를 덮고있었다. 남자는 두손을 바지주머니에 찌른채 잠간 녀자를 바라보다말고 “흐음”하고 헛기침을 하였다. 녀자는 머리를 들어 남자를 흘깃 올려다보았다. 옅은 화장을 한 얼굴이지만 아이라인이며 입술라인까지 섬세하게 다음어져있었다. 녀자는 머리를 쓸어 뒤로 넘기고 자세를 고쳐앉으며 나즈막하게 내뱉었다.
“어서 오세요.”
남자는 신을 벗고 온돌에 올라가 네모난 작은 상을 사이에 두고 녀자와 마주앉았다. 상에는 맥주와 마른 안주 몇가지가 올려져있었다.
“무슨……일 있는가보지?”
“맥주와 마른 안주 시켰어요. 더 필요한것 없죠?”
녀자는 남자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맥주병을 끄당겨 병마개를 뚝 뚝 따고는 한병을 남자앞으로 밀어놓았다.
“번거로우니까 각자 저절로 부어마시도록 해요.”
역시 눈이 커진 남자의 반응따위는 살피지도 않고 녀자는 절로 술을 따라 단숨에 쭉 들이키고는 또 부었다. 남자와 녀자사이에는 답답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남자는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뭐하는 짓이지?
이 자리에 나온것이 막 후회되고있었다. 예전처럼 늘 다니던 마작청에 갔던것이고 판을 벌리기에는 사람이 모자랐다. 영업주인이 자기가 한창 바쁘다며 녀자에게 전화를 걸어보라고 번호를 알려주었다. 녀자라면 여러번 마작을 같이 놀아본적이 있는지라 남자는 아무 우려도 없이 안나오냐고 전화를 걸었었다. 겨우 알아들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일이 있어서요.”하던 녀자가 전화를 막 끊으려는 찰나에 “같이 술 마셔줄래요? 술동무가 필요해서요.”하고 말해왔다. 머리속에서 “똑딱”하고 1초가 지나가는 동안 남자는 그1초동안의 고려도 하지 않고 “그러지.” 하고 대답해버렸다. 다방앞에 이르렀을때까지도 남자는 자기가 왜 녀자의 부탁을 들어주었는지 합당한 리유를 생각해내지 못하고있었다. 점심때도 안된 한낮부터 별로 친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별로 아는것도 없는 녀자와 다방에 마주앉아 술을 마셔줘야 한다는게 썩 좋은 일은 아닐것 같았다. 그렇다고 자리까지 차지하고 앉은 마당에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하고 궁둥이를 툭툭 털고 일어날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철수라도 부를걸 하며 남자가 머리속의 온갖 단어들을 동원해 침묵을 깨뜨릴 적당한 한구절의 말을 주어맞추고있을 때였다.
“저기요”
녀자가 입을 열었다. 남자는 황급히 핸드폰만 만지고있던 자기 손에서 눈길을 떼여 녀자를 바라봤다.
“이렇게 불러내서 미안해요. 정말로 술을 마시고싶은데 부를 사람이 없어서요.”
녀자는 별로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전화에서 하던 말을 반복하고있었다.
“아니, 괜찮은데. 어차피 마작쪽을 만지면서 돈을 잃느니 차라리 술을 마시는게 나을지도 모르지.”
남자는 안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씩 웃었다. 녀자가 웃는듯 마는듯 입귀를 실룩거렸다. “집에서 혼자 마실려니 미친년 같고 그렇다고 대낮에 녀자 혼자서 이런 곳에서 술마신다는것도 이상하게 보일것 같았어요.  하지만 술은 마셔야겠구, 별로 친한 친구도 없구 해서요.”
녀자는 짝태오가리를 오리오리 찢었다. 찢는것이 짝태가 아니라 그 이상인것처럼.
“무슨 일이 있는것 같긴 한데. 술을 마신다고 일이 해결되는것은 아니지.”
남자는 자기 잔에 맥주를 따르며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건배해요.”
녀자가 남자의 잔에 쟁그랑~ 술잔을 부딪쳐오고는 또 쭉 들이켰다. 남자는 얼떠름해서 잔을 들었다.
“안마셔도 돼요. 거기 그냥 앉아있어주셔도 돼요. 그냥 마주 앉아있는 사람이 필요했던거니까요.”
“허참~”
남자는 들었던 잔을 도로 내려놓으며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술을 마시기도 멋적고 안마시기도 무엇한 묘한 분위기에 남자는 어정쩡해지고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녀자는 남자한테 눈길 한번 돌리지 않고 서너잔을 더 마시고서야 “껄~”하고 트림을 하며 자세를 고쳐앉았다.
“한국말 참 잘하든데. 혹시 한국에라도?”
“아뇨. 한국드라마 보면서 절로 배웠어요. 자꾸 따라하니까 이렇게 되데요. 몸가짐이며 화장이며 옷차림도 한국식으로 할려고 많이 신경쓰는 편이얘요. 남편이 살고있는 환경속의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이여야 나중에 남편이 귀국해도 낯설지 않을것 같아서요. 제가 여태 이러구 살았어요. 웃기죠?”
녀자의 말을 들으며 남자는 자꾸 반토막이 나는 자기의 말투를 생각하고있었다. “한국말을 하고 한국옷을 입은들 무엇해요?...... 사람을 통채로 한국에 반납하게 생겼는데. 나만 짝퉁이 한국녀자 됐죠.”
녀자가 씁쓸히 웃고나서 또 술을 부어마시기 시작했다.
“아참, 오늘 술 참 약해요. 도무지 취해지지가 않네요. 오늘같은 날엔 취해야 하는건데.”
녀자는 벌써 네번째 병마개를 따고있었다.
“제가 왜 이러는지 궁금하시죠?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 전요, 말을 할 상대도 없는 사람이예요. 바람 핀다고 헛소문이라도 날가봐 친구도 안만나고 살아와서 친한 친구 하나없어요. 친정부모도 돌아가셔서 안계시고 하나밖에 없는 오빠도 저먹고 살기 바빠서 로씨야에서 장사를 하느라고 내 말엔 귀기울일 형편이 못돼요. ”
녀자의 목소리의 톤이 슬슬 높아지고있었다.
“올해 들어서 하도 답답해서 마작판에도 다닌거예요. 그렇다고 거기에 친할만한 사람들이 있는것도 아니잖아요. 거개가 한쪽씩은 어딘가에 가버린 외기러기들이여서 자칫하면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것 같은 판국들인데. 안그래요?”
난 뭐 외기러기 아닌가?
남자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술과 함께 삼켜버렸다.
“난요, 외국 가서 돈버는 남편한테 미안하지 않게 살려고 애썼어요. 열심히 살림하고 자식뒤바라지 극성으로 하고 돈도 허투루 안썼어요. 친구모임에도 안나가고 노래방에도 안다니고……그런데 그게 다 무슨 쓸모가 있어요?...…”
적당히 톤이 높아진 녀자의 목소리가 갈리고있었다. 이쯤에서는 울음이 나올법도 한데 녀자의 눈에는 물기가 보이지 않았다. 맥주만 랭수 들이키듯 벌컥벌컥 들이키고있었다. 녀자가 술을 마시는 폼은 단아한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거칠었다. 가녀린 체구보다는 꽤 단단한 녀자를 보며 남자가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있을 때였다. 다섯번째 병까지 비워버린 녀자가 남자의 앞에 놓인 병을 끄당겼다. 남자는 엉겁결에 병에 손을 뻗쳤고 그 서슬에 녀자의 손이 남자의 손아귀에 잡히고말았다. 녀자가 흠칫 손을 옴츠렸다. 남자는 덴겁하여 얼른 손을 놓았다.  남자와 녀자의 눈길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미……미안한데.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것 같아서……”
남자는 더듬거리며 호주머니에서 담배갑을 뒤져냈다. 담배를 꺼내서 입에 물려다 말고 도로 집어넣고 애꿎은 담배갑만 뭉그러뜨렸다. 그러는 남자를 보며 녀자가 샐죽 웃었다.
“뭐 이 정도는 마실수 있어요. 가끔 밤에 혼자서 캔맥주를 두세개씩은 마셨거든요. 이렇게 나와주셔서 고마와요. 언제 술동무 필요하시면 부르세요. 보답으로 한번쯤은 같이 마셔줄수 있어요. 살다보면 어디 술마시고싶을 때가 한두번이겠어요?”
“술? 난 매일 술을 마시고싶은데.”
남자는 어줍게 웃으며 녀자의 잔에 술을 따라주고 자기의 잔을 들었다. 녀자도 잔을 들었다. 남자는 잔을 비우며 이 녀자라면 술동무로는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와 녀자가 다방문을 나설 때는 점심때가 지난지도 한참이였고 막 점심식사를 끝낸 일없는 사람들이 다방으로 몰려들고있었다. 그때까지도 취기가 없이 말짱한 녀자와 헤여지며 남자는 오늘 녀자한테 필요한것은 어쩜 술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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