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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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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나무(2)
2015년 01월 26일 09시 55분  조회:1210  추천:1  작성자: 김영해
 
5
 
조심스레 포장지를 뜯었다.
내 주먹보다 조금 큰 조그마한 갈색 나무함이 나왔다. 나무함을 열자 은은한 향이 풍겨나왔다. 주홍색 보료우에는 옅은 황갈색의 념주가 쪼로록 꿰여있는 념주팔찌가 곱게 놓여있다.
하나, 둘, 셋……열여덟.
빨간 색실에 꿰여진 념주알은 꼭 열여덟알이였다. 나는 조심스레 념주팔찌를 집어 또록또록 념주알을  굴려보았다.
이것이 있으면 괜찮아질건가?
념주팔찌를 오른손목에 걸며 웬지 마음이 편해졌다.
 
처음부터 념주팔찌를 착용하려고 작정한것은 아니였다.  20대일 때에도 녀자들이나 하고다닐것 같은 액세사리같은것에는 신경도 안썼고 더구나 념주팔찌는 꿈에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념주팔찌를 구매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이였다.
얼마전 숙제를 하던 민우가 “보리”가 뭐냐고 물어왔고 갑작스레 학구열이 치솟은 나는 체계적으로 보리의 모양과 특점 ,용도 등을 찾아볼 양으로 검색을 하였다. 검색창에 “보리”라고 쳐넣자 “보리차, 보리밥, 보리멸치……”하고 숱한 련관검색어들이 떠오르는 가운데 내 눈길은 하필이면 “보리수나무”에 꽂히고말았다. 보리는 뒤전인채 보리수나무를 클릭하여 구슬알처럼 동그랗고 빨간  보리수나무열매의 예쁜 모습에 눈을 앗기고말았다. 이미지아래에 적힌 보리수나무이름의 유래며 특점,열매의 효능들을 읽어보다가 보리수나무의 꽃말을 알아버렸다. 그리고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아래에서 깨다음을 얻었다는 이야기와 보리수나무열매로 념주를 만든다는 사실까지도.
나는 컴퓨터를 끄기 바쁘게 한국에 있는 친구한테 전화를 넣어 보리수열매로 만든 념주팔찌 하나를 구매해달라고 부탁했다. 난데없는 소리에 친구는 “왜? 너 불교를 믿니?”하고 의뭉스러워했고 난 “아니, 그런건 아니고. 어쨌든 필요하다. 꼭 보리수열매로 만든거야 해. 념주보다 보리수열매가 더 중요하니까.”하고 오금을 박았었다. 정말로 내게 중요한것은 념주가 아니라 보리수열매였다. 보리수나무의 열매도 보리수나무의 꽃말과 같은  의미를 갖고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아니, 그럴거라고 확신했다.
암튼 보리수열매로 만든 념주팔찌는 그렇게 내게로 왔다. 불교설에 의하면 념주알 하나를 굴릴 때마다 하나의 번뇌가 끊어진다고 하나  불교를 믿지 않는 나에게 그런것은 통할것 같지 않다. 하지만 보리수열매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마음이 편해진다는것이 신기했다. 그만큼 난 무엇이든 잡고  흔들리는 마음을 안정시킬 그 어떤 절박함에 쫓기고 있었다. 그것이 한낱 나무의 꽃말일지라도말이다.  난 이제 주성이처럼 누군가의 눈에 우수가 비끼는 일같은것은 반복하지 않고싶음에야.
 
전처와 리혼하게 된것은 부득이한 상황에서였다.
나와 그녀는 친구들의 소개로 만나게 되였고 학력이며 집안형편까지 어슷비슷하여  편한 마음으로 교제를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였다. 주성이가 태여나고 애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오손도손 별탈없이 몇년을 쭉 살았었다. 그러다가 지역경제의 불황으로 국영기업들이 하나둘 해체되면서 민족장기공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그녀가 정리실업을 하게 되였다. 잠간은 마트에서 수금원일을 하다가 얼마동안은 누군가의 옷매대를 봐주다가 언제는 인쇄공장에서 허드레일을 하다가 하면서 직업이 온정치 못했던 그녀는 점차 성격이 까칠해지고있었다. 해맑게 웃던 모습은 어데가고 걸핏하면 짜증을 냈고 내가 잔소리라도 할라치면 “내가 돈을 못본다고 무시해요?”하며 말에 가시를 돋쳤다.  갑자기 실업을 당한 그녀의 위축된 심정을 리해해주려고 안하던 집일도 하고 애교도 부리며 나도 무척 애를 썼지만 그녀는 별로 탐탁해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주성이가 열살이 될 즈음부터는 나를 보는 눈길이 이상했다. 택시가 농촌구역으로 가서 전화가 불통이 되여도 따지고 들었고 술을 마시고 들어가는 날이면 깐깐히 셔츠들을 살피고 냄새를 맡아보는가 하면 핸드폰이 울릴 때마다 누구냐며 신경이 예민해졌다. 어느날부터인가는 내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한밤중까지도 자지 않고 잠옷바람으로 거실에 버티고앉아있기 시작했다. 그런 날이면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하얀 잠옷바람으로 거실 중간에 꼼짝않고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때문에 나는 등골이 싸늘해지군 하였다. 그런 일이 거듭해지자 내 인내는 바닥을 드러냈고 결국 둘은 티각태각 다투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녀대로 나를 못미더워했고 나는 나대로 그녀가 나를 믿지 않는다고 랭랭해졌다. 사랑은 믿음이라고도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깨여진 믿음만큼이나 하루하루 소진되여가고있었다. 그 와중에 사위가 바람을 피운다는 소리를 전해들은 장인은 과격한 성격에 뇌출혈로 쓰러져 세상을 떴고 결국 우리의 혼인은 파국을 맞게 되였다. 리혼서류에 도장을 찍을 무렵에는 나에게 바람난 남자, 장인어른을 죽게 한 사위라는 힐난들이 쏟아지고있었다. 난 본의아니게 그녀한테 원쑤같은 존재가 되여버렸고 그녀는 주성이한테 내가 범접도 못하게 가로막았었다. 썩 후에야 그녀가 우울증이나 의부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이미 돌이킬수 없는 일이 되여버렸다. 그때 나나 그녀에게 보리수나무 한그루라도, 보리수열매 한개라도 있었더라면 아니, 마음을 기댈수 있는 그 무엇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서로 좀 더 믿어주고 서로를 보듬어줄수 있지 않았을가싶었다.
 
나는 다시 념주알을 또록또록 굴리기 시작했다.
이제 난 괜찮은거야.
난 이제 정말로 괜찮아질것이였다. 혼인이란 당사자가 아닌 주변사람들이나 생활의 양상에 따라 흔들린다는것을 알아버렸으나 나에게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 흔들림들을 극복해낼수 있을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으니까. 마치 오또기가 누가 어떻게 흔들고가든 몇번을 흔들리든 종당에는 오똑 하고 서듯이말이다.
6
 
 
“밥 줘!”
사위를 둘러보던 어머니가 느닷없이 던진 말이였다.
“금방 잡수셨잖아요.”
나는 비우고 내놓은 밥그릇을 가리켜보였다.
“나 안먹었수. 밥 달라니까!”
어머니는 검버섯이 더덕더덕 돋아있는 바짝 마른 손으로 방바닥을 탁탁 두드렸다.
“안됩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드시면 배탈이 납니다.”
“나쁜것들! 날 굶겨죽일려구 이러지? 얼른 밥 달라니까?!”
어머니는 손을 뻗어 베개를 집어던졌다. 이어서 비자루며 삼태기며 닥치는대로 주어서 봉당에 던져버렸다. 이제 피해망상증세를 보일 정도로 어머니의 병세는 악화된것이였다. 이럴 때에는 설득이나 제압보다 노기를 발설하도록 내버려두는게 상책이였다. 한참이나 죽일놈 살릴놈 하며 입에 못담을 욕을 퍼붓고 물건을 집어던진 어머니는 기력이 소진할 즈음 과자봉지를 쥐여줘서야 겨우 안정이 되였다. 어머니는 먹을것을 탐한 어린애같이 누가 빼앗아가기라도 하듯이 과자봉지를 품에 꼭 그러안고 와삭와삭 먹어댔다.
“어머니, 천천히 드세요…… 어머니……”
 나는 안스러운 눈길로 어머니를 바라보다말고 널린 물건들을 정리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머니는 나한테 눈길 한번 안주고 먹는데만 열중이였다.
“제가 귀국하면…… 어머니를 다시 모셔가겠습니다……그때까지 잘 계십시오.”
나는 무릎을 꿇고 어머니에게 큰 절을 올렸다.
“어딜 가시우? 나두 데리고 가면 안되우? 여기 재미없수.”
어머니가 입가에 묻은 과자부스레기를 쓱 닦으며 머리를 돌려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어머니~”
“날 데려가달라니까. 우리 큰 아들이 날 기다리우. 내가 이 과자 다 줄게.”
어머니가 내쪽으로 다가앉으며 과자봉지를 쑥 내밀었다. 뿌연 어머니의 눈빛속에 어떤 간절함이 얼핏 스쳐지나가는 순간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형은 종적을 감춘지도 거의10여년이 되여오고있었다. 형은38살에 과부가 되여 반찬가게를 하는 어머니와 열아홉살에 고중을 중퇴하고 택시회사에 취직한 나의 뒤바라지로 연구생공부까지 하고 상해에 있는 외자기업에 취직을 했었다.  처음 몇년은 어머니에게 드문히 용돈도 보내드리고 해마다 설명절이면 선물꾸레미를 안고 한번씩 다녀가기도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고생끝에 락이라며  누구에라 할것없이 형자랑을 했었고 나도 별로 탐탁치 못한 내 공부를 접어두고 두살터울인 형의 공부뒤바라지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에 뿌듯했었다. 하지만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친구와 합작하여 사업을 시작한지 1년만에 형은 실패의 고배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결혼도 안한채 몇년을 뜬구름같이 보내면서 1년에 한번꼴로 전화로 안부만 전하더니6년전인가  중국 어딘가에서 잘 있으니 찾지 말라고 영상통화 한번 하고는 감감 무소식이 되고말았다. 그런 형을 어머니는 처음에는 기다리다가 원망하다가 나중에는 체념한듯이 입도 뻥긋하시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마음속에서 형은 언제나 아픈 손가락이였다. 늘 오락가락하는 어머니의 기억도 어쩜 형을 만나야겠다는 의념으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던지 몰랐다.
불행중 다행이랄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같이 4년만에 형에게서 전화가 오던 날 어머니는 형에게 집걱정은 하지 말고 잘 살아라고 하시며 터져나오는 울음을 용케 참으셨다. 형편이 좋아지면 다녀가겠다는 형에게 나는 “형한테 가족은 뭐야? 잘났다고 으시댈수 있는게 가족이야? 나나 어머니는 형한테 뭔데? 형같은 사람은 필요도 없으니까 그냥 그렇게 쭉 살아!”하고 오금을 박았다. 그즈음 난 형을 만나본적이 없는 안해에게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안하는 형때문에 미안하다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하고있었다.
그날 통화로 어머니는 형에 대한 근심을 덜었는지 밤새 형의 사진을 보면서 눈물짓더니 이튿날부터 아예 정신줄을 영 놓아버리셨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거나 들락날락하는것도 아니여서 완전히 아무도 못알아보셨고 남의 정신으로 엉뚱하게 말하고 행동하셨다.  며칠이 지나서부터는 피해망상증으로까지 발전하셔서 낮에는 구석을 찾아 숨어서 벌벌 떠시는가 하면 밤에는 자꾸 누군가 자기를 잡으러 온다며 난리법석을 피웠다. 안해는 밤에 무서워서 집에 있을수가 없다고 하소연을 했고 나는 피로때문에 졸음운전을 하다가 결국 접촉사고를 내고 말았다. 우리 집 경제형편에 가정보모를 구할수도 없어서 이를 악물고 버티다가 나나 안해가 쓰러지기 일보직전에 선택을 한것이 양로원이였다. 남보기에는 불효같겠지만 나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였다. 더구나 멀지 않아 내가 출국할것을 념두에 두면 안해 혼자서 민우와 어머니를 돌본다는것은 무리였으니까.
 
“어머니, 나중에요…… 나중에 제가 꼭 모셔갈겁니다.”
나는 나무꼬챙이처럼 깡깡 마른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주고는 과자봉지를 다시 쥐여드렸다. 차마 드라마에서처럼 이 과자를 다 드시면 형이 올거라는 말은 할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로 형이 걸어왔던 전화번호는 련락이 되지 않았던것이다. 참 오래동안을 쭉 그래왔던것 같다. 형의 전화번호는 늘 바뀌였고 형이 먼저 전화를 하지 않는 한 그를 찾을 길은 없었다. 그 반면에 나는 바보처럼 혹시라도 형한테서 전화가 오지 않을가 전전긍긍하면서 전화번호를 한번도 바꿔본적이 없었다. 그러고보니 형 역시 나에게는 한번쯤 더 휘청거리게 만드는 흔들림의  일부였고 나는 불교를 믿지 않음에도 보리수념주 한알이라도 더 굴리며 그 흔들림을 견뎌야 했다.
형에게 나나 어머니는 어떤 존재였을가?
어머니의 눈귀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는것을 외면하며 돌아서는 내 눈에서 커다란 눈물방울이 뚤렁뚤렁 떨어지고있었다.
어머니 생전에 난 다시 내가 둘째아들 영수라고 말해줄 날이 있을가?
 
7
 
우~욱!
안해가 갑자기 입을 막아쥐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엄마가 왜 저러죠?”
민우가 눈이 동그래서 나를 쳐다보았다.
“글쎄다. 뭘 잘 못먹었나?”
나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화장실안으로 사라지는 안해의 뒤모습을 바라보았다.
한참후 , 휘청거리며 화장실에서 나온 안해의 얼굴은 해쓱하게 질려있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나는 조심스럽게 안해를 부축하여 의자에 앉혔다.
“안되겠다. 나 혼자 비행기 탈테니까 당신은 얼른 병원에 가봐.”
나는 티슈를 꺼내 안해의 이마에 송골송골 내돋은 땀을 닦아주었다.
“……나 임신……했어요.”
“뭐?!”
머뭇거리며 내뱉는 안해의 말에 나는 눈이 화등잔이 되고말았다.
임신이라니?
“이미 5주가 되였어요.”
안해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아프기 직전에 그러니까 반년전에 병원에 가서 피임환을 꺼냈어요. 그때 당신이 막 출국수속을 시작할 때였죠. 당신이 출국을 한다는것이 정말 불안했어요. 요즘 세상에 걸핏하면 리혼인데 몇년동안을 당신과 난 무엇을 믿고 떨어져서 있어야 하나 생각했죠. 그렇다고 택배회사의 직원인 나나 택시회사의 운전수인 당신이나 모두 로후에 보장이 없긴 마찬가진데 돈을 안벌수도 없구요. 둘다 혼인에 실패하고 재혼하여 겨우 안정된 살림을 하는데 이러다 또 갈라지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그래서 당신 몰래 임신하기로 했어요. 당신이 알면 말릴가봐서요.”
안해의 해쓱한 얼굴에서 가벼운 미소 한점이 얼핏 스쳐지나고있었다. 안해가 임신하려는것을 알았더면 난 정말 말렸을것이였다.  민우를 낳자마자 리혼을 한 안해여서 안해에겐 임신은 축복이 아닌 고통으로 남아있음을 난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난 늘 불안했어요. 밤에 어머니를 돌볼 때에는 내가 얼마만큼 어려움을 견딜수 있을가, 전남편이 민우를 만났을 때에는 당신이 민우를 온전히 받아들일수 있을가 , 주성이가 다녀갔을 때에는 당신은 돌아가고싶지는 않을가……하는 생각들로 잠을 설쳤어요. 결국 나나 민우나 당신을 하나로 묶어 온전한 가족을 만들 방법은 새 생명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들 애가 있다고 리혼을 안하는것도 아닌데 난 그거라도 붙잡고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고싶었고 지키고싶었던거죠. ……당신에겐 한국에 도착하면 알려주려고 했는데……”
성격과 달리 차분하게 말을 끝마친 안해의 눈에서 눈물이 똘랑똘랑 떨어지고있었다.
“당신도 참~”
나는 팔에 힘을 주어 안해를 그러안았다.
안해에게도 불안한 마음을 달래줄 그 무엇이 필요했던것임을 난 그제야 알았다. 내가 선택한것이 보리수나무의 꽃말같은것이였다면 안해가 선택한것은 새 생명의 잉태라는 거창하고 신성한것이였것이다.
나는 손목에서 념주팔찌를 풀어 안해의 손바닥에 놓았다.
“뭐죠? 당신이 한동안 열심히 걸고 다니던건데.”
“보리수열매로 만든거야. 보리수나무의 꽃말이 뭔지 알아? 부부의 사랑과 결혼이래.”
념주알을 또록또록 굴리는 안해의 입귀에 실날같은 웃음이 피여오르고있었다.
이제 안해도 나도 마음이 한결 편해질것인가?
 
비행기에 탑승하기전 나는 보리수나무 한그루를 다운하여 핸드폰 액정의 배경화면에 깔았다. 그리고 푸른 나무들사이로 빨갛게 얼굴을 내미는 구슬알같은 보리수열매들과  눈맞춤하며 핸드폰을 끄고 안해와 민우에게 밝게 웃어보였다. 안해의 팔목에 걸려있는 보리수념주팔찌에 한번쯤 더 눈길을 주고 성큼 발자국을 내딛는 내 귀로 가슴속에서 보리수나무 한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는 소리가 우썩우썩 들려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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