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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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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아주세요
2019년 07월 11일 14시 07분  조회:426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김영해 
 
손을 잡아주세요 
 
 
 
띠리링― 띠리링―
 
핸드폰 알람소리가 시끄럽게 울리였다. 한창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던 옥희는 눈도 뜨지 않은 채 더듬더듬 머리맡을 만졌다. 핸드폰이 손에 닿지 않는지라 억지로 눈을 떠보니 핸드폰이 화장대 우에서 번쩍거리며 부르릉부르릉 몸을 떨고 있었다. 아마도 남편이 신새벽에 나가면서 충전코드에 꽂아서 올려놓은 모양이였다. 늘 그랬다. 잠들기 전까지 핸드폰을 매만지며 드라마를 보거나 시시껄렁한 글들을 읽는 옥희는 핸드폰을 충전하는 것을 잊고 있었고 옥희가 단잠에 빠진 신새벽에 낚시를 나가는 남편은 옥희의 핸드폰을 충전해놓군 하였다.
 
옥희는 끙― 하고 힘을 쓰며 몸을 반쯤 일으켜 핸드폰 쪽으로 손을 뻗다 말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룬―
 
막 욕이 나가려는 것을 참으며 옥희는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확 열어제꼈다. 얼른 침대에서 내려 시트를 살폈다. 다행히 시트에 젖은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축축해진 속옷은 아래도리에 끈끈하게 달라붙으며 불쾌감을 주고 있었다. 옥희는 속옷과 잠옷을 와락와락 벗어 세탁기에 훌 처넣었다. 세제를 넣고 전원을 련결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나서 샤와를 하려다가 대야에 물을 받아 쭈그리고 앉아 아래도리만 씻고는 나와버렸다. 속옷을 찾아입고 다시 이불 속에 기여든 옥희는 이불을 턱밑까지 끄당겨 덮고 머룽머룽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왜 이러지? 벌써 이러면 어쩔려구… 후―
 
옥희의 입에서 낮은 한숨소리가 새여나왔다. 반년 전부터 실실 새는 오줌 때문에 민망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가끔 가다가 어쩔 새 없이 오줌이 새여나와 한번씩 실수를 하고 나면 기분은 엉망이였다. 오늘도 핸드폰을 쥐려고 갑자기 힘을 쓴 게 탈이였다. 이젠 큰소리로 웃는 것도 조심스러워지는 옥희였다.
 
병원에라도 갈가?… 아니지, 그러면 다들 알게 될 텐데…
 
옥희는 길게 숨을 들이쉬였다가 내뱉고는 스르르 눈을 감아버렸다. 처음 몇번은 당황하다가 인터넷에서 두루 검색을 해보고 뇨실금이겠구나 하고 인지를 하고나서부터 저절로 약방에 가서 약을 사먹고 있지만 차도는 별로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 갈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이제 막 50대초반인데 뇨실금으로 병원에 들락거린다는 것을 남들이 알면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다닐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당금이라도 “××는 뇨실금이라며? 녀자가 저 정도면 앞날이 훤한거지 뭐.”하고 빈정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올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이전에 한 남성동료가 전립선염이였는데 그때 다들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도 은근슬쩍 남성동료가 지나갈 때마다 지린내가 나기라도 하듯 코를 찡그리며 돌아섰던 것을 보면 병도 병 나름으로 다른 사람의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놀림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이였다. 다른 병도 아니고 기관이 로화되여서 생기는 병이라는 것이며 오줌과 관계되는 병이라는 것 때문에 옥희는 스스로도 지저분한 느낌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이 나이가 되면 원래 이렇게 삐걱거리게 되는 건가?… 그냥 이대로 살아? 어디 살점이 아픈 것도 아니여서 사는데는 지장이 없잖아. 내 맘만 추스리면 못살 것도 없지 뭐…
 
이런저런 생각을 두서없이 굴리다 말고 옥희는 저도 모르게 스르르 잠에 빠져버렸다.
 
 
옥희가 눈을 떴을 때는 막 출근시간이 되여오고 있었다. 밥도 못 먹은 채 허둥거리며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대충 화장을 끝내고 집을 나섰을 때는 이미 출석체크시간이 지났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단위에 이르러 헐금씨금 계단을 올라 사무실에 이르러 보니 아무도 없었다. 사위를 두리번거리다 말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쳤다.
 
아! 오늘 월요일이지!
 
옥희는 몸을 돌려 회의실로 뛰여갔다. 본인이야 뛴다고 하겠지만 뒤에서 보면 그냥 웃몸은 앞으로 향하는데 엉뎅이와 아래 몸은 뒤에 처져서 겨우 따라가고있어 막 엎어질 듯한 우스꽝스러운 꼴이였다. 나이라는 것은 본인이 아무리 “마음이 청춘인데”하고 고집을 피워도 신체의 곳곳에서 “나 나이 들었수”하고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다행히 뒤문이 열려있어 옥희는 얼굴에 게면쩍은 웃음을 단 채 허리를 약간 굽히며 걸어들어가 뒤켠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직함(职衔)평의 때문에 월요일에 출근하자 바람으로 회의를 한다고 토요일에 위챗통지가 왔었는데 그걸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옥희는 숨을 고르며 힐끗 주위를 둘러보았다. 예전 같으면 핸드폰을 놀거나 소곤소곤 잡담을 했을 텐데 의외로 다들 앞을 응시하며 회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직함이란 로임인상과 관계되는 문제인지라 그럴 법도 했다. 해마다 직함평의에 관한 정책은 조금씩 변화가 있었고 직함정원도 급별로 많아지거나 적어지거나 하면서 대중이 없었다. 직함평의에 관한 문건이나 표준 같은 것은 누구나 관심하는 내용이니 자연히 회의내용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도 고급직함으로 평의되였으면 좋을 텐데…
 
옥희는 속구구를 하다 말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제 3년 후면 퇴직을 하게 되여서 퇴직하기 전에 고급직함을 받고 로임도 더 받아보고 싶지만 생각대로 쉬운 게 아니였다. 옥희가 한창 어렸을 때엔 사업년한이 30여년이 되면 나이순번으로 거의 고급직함을 받게 되여있었지만 몇년전부터는 아니였다. 뭐든 실적으로 경쟁을 하게 되여있고 옥희처럼 나이가 든 사람들은 쟁쟁한 젊은이들과 비긴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불리하게 되여있었다. 영예증서나 론문 같은 것들을 갖고 점수를 매기는데 사업년한이 긴 것 빼고는 다른 항목들은 젊은이들과는 비교도 안되였다. 작년에도 그랬다. 고급직함 정원은 7명이였고 평의표준에 따라 점수를 매긴 결과 젊은이 4명과 50대 3명이 순위권 안에 들었었다. 헌데 결과공시가 끝나기 바쁘게 순위권 밖이였던 젊은이 하나가 점수계산이 잘못되였다고 의견을 제기해왔고 령도들이 계산과 순위배렬을 다시 하고 보니 고급직함을 평의받은 사람 가운데 50대는 고작 2명 뿐이였는데 그것도 순위가 말미여서 간당간당했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막 퇴직을 앞둔 50대들은 “50대들에게는 따로 정원을 배분해야 한다.”느니, “사업년한으로 참가자격을 제한해야 한다.”느니, “차라리 나이순번으로 하자.”느니 하며 우야우야 떠들었지만 “젊은이들의 적극성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공정하게 점수제로 하는 것이 맞습니다.”하고 령도층에서 한마디로 일축하는 바람에 아무 소용이 없고 말았다. 아마 올해에도 경쟁이 치렬할 것이 예상되는 마당에 몇년째 손을 꼽으며 퇴직할 날만 기다려온 옥희에게 버젓이 내놓을 만한 실적은 별로 없었다. 당연지사였다. 뭔가를 이루어보겠다고 뛰여다닌다는 것은 혈기가 왕성한 젊은 시절의 이야기지 40대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승진이며 영예 같은 것들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은 터라 다들 쉬운 일을 맡아 적당히 쉬여가며 로임을 타먹고 하루하루를 소진하는 것이 당연한 거로 되여있으니 말이다. 지금 같아선 옥희 정도면 퇴직할 때까지 고급직함을 욕심내지 않는 게 현명한 처사일지도 몰랐다. 공연히 들떠있다가 실망만 하게 되느니 차라리 평정심으로 느긋하게 바라만 보는 게 건강에도 좋을 것이였다. 더우기 옥희는 다른 사람이랑 옴니암니 무엇인가를 따지며 아귀다툼을 하는데 서툴렀다.
 
에이, 될 대로 되라지. 그깟 로임 안오르면 말고…
 
옥희는 속으로 게두덜거리며 핸드빽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아까부터 부르릉거리며 진동음이 울리는 것을 회의가 끝나면 전화를 해볼 양으로 무시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종시 그칠 념을 않고 집요하게 울리고 있어 ‘누가 급한 일이라도 있나?’하고 슬쩍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엥?! 웬 일이지?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옥희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핸드폰액정에 ‘양로원원장’이라고 현시되여있었던 것이다. 엄마한테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여태 옥희한테 전화를 걸어온 적이 없는 원장이였다.
 
옥희는 엉거주춤 일어서서 허리를 구부정한 채 얼른 뒤문으로 회의실을 빠져나오기 바쁘게 통화버튼을 터치했다.
 
“무슨 일인데요?!”
 
옥희는 얼른 복도구석 쪽으로 발걸음을 재우치며 낮으나 힘있고 급박하게 물었다.
 
“엄마분이 딸한테 전화를 해달라고 아침부터 부탁을 해서요. 일하는 시간이여서 바쁠 거라고 말씀드렸는데도 오늘은 기어이 고집을 피우네요.”
 
걸걸한 원장의 목소리가 귀전을 때리는 가운데 “울 딸이 전화를 받소? 날 좀 바꿔주오.”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힘차게 들려오고 있었다. 옥희는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피씩 웃어버리고 말았다. 엄마가 왜 전화를 넣어달라고 했을지 짐작이 갔던 것이다.
 
 
엄마는 아직 자기절로 식사도 하고 집안에서 거동도 하지만 하는 말이며 행동이 꼭 두세살짜리 어린애 같았다. 소변을 보면 속옷과 바지를 채 끌어내리지 않아서 몽땅 젖어버리는 것이 례상사, 물은 챙겨주지 않으면 하루종일 마시지 않아 변비가 생기고 누가 뭐라고 말이라도 하면 자기를 미워한다며 앵돌아지기가 일쑤였다. 하루에도 서너번 속옷과 바지를 갈아입히며 애를 쓰던 올케가 오죽하면 “난 이젠 더는 힘들어서 못하겠어요.”하고 손을 들고 투항을 해왔겠는가. 옥희의 말처럼 이젠 큰애기가 되여버린 엄마를 혼자서 시골집에 있게 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다고 옥희는 시아버지가 자취를 하는 마당에 친정엄마를 모신다고 나설 형편이 아니였고 뭐가 문젠지 아이도 없이 딩크족이 되여 북경에서 자유롭게 사는 오빠에게 엄마를 모셔가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였다. 남동생이 한국에 가고 혼자서 여태 엄마를 모셔온 올케더러 힘들어도 참아라고 한다는 것은 누나나 형이 되여서도 차마 못할 노릇이였다. 결국 자식들이 함께 경비를 부담하기로 하고 양로원에 모시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자식들의 결정을 별로 달가와하지 않으셨다.
 
양로원으로 떠나가는 날, 엄마는 출발시간이 다 되였는데도 자꾸 차에 실은 옷보퉁이를 끌어내리셨다.
 
“낯선 곳에 가서 어찌 사냐? 호리원들이 그렇게 구박을 한다든데…”
 
“어머니, 괜찮아요. 원장도 조선족이고 조선족할머니들도 많아서 말동무가 될 거얘요.”
 
올케는 조심스레 엄마의 손에서 옷보퉁이를 앗아 다시 차에 실었다. 올케는 옥희보다 두살 어리지만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던 녀인이여서 그런지 얼굴색이 칙칙하고 피부가 거칠어서 오히려 년상 같아보였다.
 
“엄마, 구박은 무슨? 오히려 나보다도 잔소리를 더 안할 걸요.”
 
“네가 뭘 아니?! 나도 다 들은 소리가 있는데.”
 
엄마는 버럭 화를 내셨다. 올케한테는 아무 소리도 안하다가 옥희를 향해 불만을 쏟아낸 것이였다. 
 
“엄마, 그건 다 헛소문이얘요. 이제 엄마가 양로원에 가게 되면 올케도 한국에 가기로 했어요. 애들도 다 커서 제노릇을 하는데 부부가 마냥 떨어져서 살 수는 없잖아요. 그니까 엄마 혼자 여기 못있어요.”
 
“나두 안다. 이전엔 애 공부시키느라고, 후엔 나를 돌보느라고 며느리가 여태 시골에 처박혀있은 거. 며느리는 자식노릇 잘한 거여. 그러게 나 혼자 있는다잖냐!”
 
엄마는 올케의 눈치를 힐끗 보며 누그러진 목소리로 웅얼거리시더니 종당엔 또 옥희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셨다.
 
“어머니, 미안해요. 저두 이젠 나이가 드니까 몸이 아파서 애아버지 가까이에 있고 싶어서 그래요.”
 
천성이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는 올케는 두 손만 마주 비비며 송구스레 시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적당히 부푼 몸이며, 강굴강굴 지져올린 파마머리며, 새로 꺼내입은 주름진 코트 때문에 촌티가 완연한 올케는 엄마 앞에선 언제나 싹싹하고 착한 며느리였다. 량부모를 일찍 여의고 시부모들을 제 부모처럼 모셔온 올케 덕분에 그동안 한시름을 덜고 살았던 옥희네 형제였다.
 
“자넬 뭐라 하는 게 아니요. 쟤가 자꾸 날 혼자 못 있게 하잖수. 이젠 에미말을 귀등으로도 안 듣는 거요.”
 
엄마는 양로원에 가게 된 것이 옥희탓이 되기라도 하듯 약간 구부정했던 허리를 쭉 펴서 뒤짐을 지고 옥희를 향해 눈을 지릅떴다. 옥희는 못 들은 척, 못 본 척하고 돌아서서 남은 짐들을 챙겼다.
 
옥희의 남편이 “어머님, 갑시다. 우리가 자주 보러 다닐 게요.”하며 달래서야 차에 오른 엄마는 옥희를 향해 “딸년을 키워 무슨 쓸모가 있냐?! 뭐든 반대부터 하려구 하지!”하고 소리를 한번 더 지르고서야 문을 탕 닫아버렸다. 엄마가 양로원에 가기 싫어서 일부러 트집을 잡는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옥희는 일순 얼굴빛이 흐려졌다. 양로원으로 가는 동안 조수석에 앉아 백미러로 귀찮은듯이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뒤좌석의 엄마를 보며 옥희는 내내 가슴이 알알해났었다. 
 
그렇게 올 때부터 양로원이 싫다고 했던 엄마는 아직도 양로원에 맘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엔 “식당아낙네는 음식솜씨가 없어서 반찬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네라.”, “저 한족 호리원은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꾸 욕한다.”,“어떤 로친네들은 너무 지저분해서 같이 못 있겠다.”하고 옥희한테 공소를 해왔다. 양로원이 여차여차하게 나쁘니 자길 집에 가게 해달라는 속내가 뻔히 보여서 “여기가 우리 시에서도 제일 좋은 양로원이래요. 좋기만 한데 뭘 그래요?”하고 일축해버렸더니 이젠 대놓고 “난 집에 가서 혼자서도 살 수 있네라.”하며 집에 데려다 달라고 옥희한테 간청을 했다. 꼭 마치 유치원에 있기 싫어 앙앙거리며 집에 가겠다고 떼를 쓰는 어린애 같아서 안스럽다 못해 측은하기까지 하였다. 
 
 
옥희와 엄마의 통화는 짧게 끝나지지가 않았다. 짐작했던 대로 엄마는 수화기를 넘겨받기 바쁘게 집에 한번만 다녀오겠다고 했다. 
 
진땀을 뺀 옥희가 통화를 마치고 돌아서니 회의가 끝나 다들 우르르 회의실에서 쓸어나오고 있었다. 옥희는 얼른 회의실에 가서 핸드빽을 챙겨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옥희보다 두살 많은 선배가 잔뜩 얼굴에 인상을 쓰고 있었다.
 
“공로는 없어도 고생한 보람은 있다는데 맨날 이게 머요? 맨날 실적실적 하면 우리더러 어쩌라는 거요? 젊었을 때 일 안한 사람이 어디 있소?”
 
보나마나 고급직함평의 때문이였다. 선배가 사무실에서 제일 어른인지라 나이가 어린 후배들은 서로 슬몃슬몃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사무실의 성원은 모두 7명인데 50대는 옥희와 선배 뿐이고 40대 한명, 30대 3명에 20대 한명이다. 사무실에서 고급직함평의에 참여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옥희와 선배, 그리고 40대인 명수이다. 작년까지 명수와 옥희는 참여를 포기했었지만 몇년째 점수가 순위권 밖이여서 고급직함을 받지 못했던 선배는 많이 민감해있었다. 그럴만도 했다. 선배는 이제 1년이면 퇴직하니까 올해가 마지막 기회였다. 어쩜 선배에게 있어서 고급직함은 자기 사업에 대한 총화나 마지막 자존심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참, 옥희두 말해보오. 올해에도 젊은이들이랑 한데 섞어서 점수를 매기는 게 옳다고 생각하오?”
 
“네? 나는 회의를 잘 듣지 못해서…”
 
선배가 갑자기 묻는 바람에 옥희는 갈피를 못 잡고 어물거렸다.
 
“옥희도 퇴직 전엔 고급직함을 받아야지. 우리 나이 든 사람들이 이렇게 손 놓구 앉아있을 게 아니요. 단합을 해야 한다니까.”
 
“맞아요. 선배님들이 앞에서 길을 잘 닦아야 우리도 나중에 쉬울 거예요. 노력 좀 해보세요. 평의표준을 바꾸든지, 특례를 만들든지.”
 
아직은 30대라서 고급직함평의에 자격미달인 미선이가 얼씨구나 동을 달았다. 남의 일에 말하기는 쉬운 법이였다.
 
“글쎄 우리도 선배님들하고 경쟁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포기한다고 다른 사람들이 다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작년에도 보세요. 평의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만 밑졌죠.”
 
명수가 어쩔 수 없다는듯이 두 손을 펼쳐보였다. 맞는 말이였다. 업무능력이 좋고 군중위신도 좋은 명수가 작년에 평의된 사람들보다 뒤지는 데가 없었다. 작년까지는 그래도 선배들을 돌보아야지, 선배들이 인츰 퇴직을 하면 그 정원이 또 돌아오는데, 한 단위에서 함께 사업한 세월과 정이 있는데 하는 여론들 때문에 체면 좀 차리는 젊은이들은 평의에 참여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하지만 워낙 사람수가 많은 단위여서 약삭바른 젊은이들은 평의에 참여했고 결과적으로 선배들을 압도했었다. 그리고 또 작년에 평의받은 선배 하나가 고급직함을 받은 사람은 퇴직년한을 5년 연장할 수 있다는 특혜를 누려 퇴직을 안하는 바람에 선배들에게 마냥 양보만 하는 것도 현명치 못한 처사라는 여론이 젊은이들 축에서 형성되고 있었다. 하여 올해엔 다들 평의에 참여할 게 뻔했다. 그러니 경쟁이 더 치렬할 수밖에.
 
“명수를 말하는 게 아니오. 명수의 능력이야 우리 부서에도 다 인정하잖소. 우리도 욕심은 나는데 젊은이들과 비기면 떨어질 게 뻔하니깐 안타까와서 그러는 거요. 우리가 젊어서 논 것도 아니고 우리가 젊었을 때는 선배들과 경쟁을 못하게 하더니 지금 이러니까 맹랑해서 그러오.”
 
선배는 이마살을 찌프리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선배의 말도 틀린 데가 없었다. 옥희랑 한창 젊었을 때는 사업년한을 따져서 나이 지긋한 사람들 속에서만 평의를 했던 터라 젊은 축들은 평의에 참여할 자격도 없었다. 그때는 비슷한 년령대의 사람들끼리 비겼기에 실적에 현저한 차이가 나지 않았고 그때는 또 지금처럼 영예증서 같은 것이 많은 것도 아니였다. 헌데 나이가 들어 영예증서를 따기 어려운 마당에 갑자기 그것으로 젊은이들과 견준다니 억울할 법도 했다. 그러고 보니 붉은 가위의 증서를 타본 지도 꽤 됐다는 생각이 들어 옥희는 “힝”하고 코바람을 불었다.
 
“정책이 그렇다는데… 우리가 50대들의 정원(名额)을 따로 떼여주고 우리들끼리 경쟁하게 해달라고 해서… 말이 먹힐가요?”
 
옥희는 조심스레 선배를 쳐다봤다. 
 
“밑져야 본전 아니겠소? 평의표준이 최종적으로 결정되기 전에 한번 건의라도 해봐야지 별수 있소?”
 
“글쎄… 그러게요.”
 
옥희는 종시 맺고 끊지를 못하고 얼버무리기만 했다. 그만큼 옥희는 고급직함평의에 간절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머리 아픈 일이 많은데 가망도 없는 일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더우기 옥희는 뭐든 치렬하게 쟁취하기보다는 한걸음 물러서서 적당히 양보하면서 편하게 사는 쪽으로 치우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보세요. 년령대를 끊어서 정원을 배분하는 것도 괜찮다고 봐요. 우리도 선배들이랑 경쟁하기보다 나이 어린 축들끼리 비기는 게 맘도 편해요. 같은 또래에서 실적이 뒤처지는 것은 본인의 문제니깐요. 그럼 힘들 내보세요. 화이팅―”
 
명수는 옥희와 선배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여보였다. 옥희는 명수를 향해 사람 좋게 웃어보였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쾌활한 성격의 명수가 밉지 않았다. 선배도 아무 죄 없는 명수를 향해 불만을 쏟아낸다는 것이 부질없어 보였던지 게면쩍게 씩 웃고는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아무래도 선동력이 있는 선배가 50대들을 추동질하여 일을 벌릴 것만 같았다. 
 
이번 주는 부산하겠구나.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려나?
 
옥희는 머리를 기웃거리며 어제 채 처리하지 못한 문건을 집어들었다. 하지만 글줄이 통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아침부터 뇨실금이다, 지각이다, 직함평의다 하면서 마음이 어수선해진 마당에 엄마까지 집에 간다고 야단을 쳐놔서 머리속은 뒤죽박죽이 되여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일을 할 분위기가 아니였다. 일도 안하면서 사무상 앞에 앉아 시간을 때우기보다는 엄마일부터라도 처리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옥희는 잠간 고민을 하다가 지각을 해서 부끄러운 대로 한참이나 어린 주임한테 사정얘기를 하면서 청가를 맡고 나와버렸다. 여기저기에서 불안한 기운이 감돌 것 같은 사무실을 빠져나오니 한결 마음이 가뜬해진 것 같기도 하여 옥희는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막 9월에 접어들어 청명한 가을하늘은 푸르고도 높았다. 저런 가을하늘 아래 시원하게 숨 한번 안 들이쉬고 콩크리트상자 속에 갇혀서 서로 아귀다툼을 해야 한다는 게 한심하게 느껴졌다.
 
옥희는 슬그머니 팔다리를 쭉쭉 뻗어보고는 택시를 불러세웠다. 택시에 앉은 옥희는 습관적으로 왼손으로 오른손의 엄지를 감아쥐여 무릎에 놓았다. 옥희는 종래로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우에 놓는다거나 두 팔을 몸 량켠에 곧게 내리드리우지 않았다. 늘 손을 호주머니에 찌르지 않으면 가방끈을 감아쥐였고 정 안되면 네 손가락으로 엄지를 꼭 감아서 주먹을 부르쥐군 하였다. 엄지가 남의 눈에 띄우는 게 싫어서였다. 옥희의 엄지손가락의 마디는 특별히 짧았다. 어찌된 셈인지 남의 엄지의 절반가량의 길이밖에 되지 않았다. 엄지가 남들보다 많이 짧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열대여섯살이 되여있었고 병원에 가보니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했다. 엄지의 길이가 짧은 것은 미관에 안 좋을 뿐이였지 일을 하는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였다. 오히려 남들보다 글씨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고 수공작품도 잘 만들었던 옥희였다. 하지만 사춘기에 이르면서 친구들이 “어머, 엄지가 이렇게 짧아? 엄청 귀엽네.”하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 싫었던 옥희는 차츰 엄지를 감추고 다니기 시작했다. 엄지 때문에 무심코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눈길마저 끌어당긴다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옥희는 손을 쳐들거나 손을 내젓거나 악수를 하는 것과 같은 동작들을 삼가하게 되였고 또 그러다 보니 늘 다소곳한 모습으로 앉아있거나 서 있어서 얌전하고 점잖은 이미지를 갖게 되였다. 그런 이미지가 옥희의 성격이 내성적으로 발전하고 사사건건 눈치부터 살피게 되는데 한몫 하였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옥희에게 있어서 흠이 있는 손을 누군가에게 보인다거나 어떤 일에 당면하여 자기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다 어려운 일이였다.
 
호― 오늘 어떻게 엄마를 달래지?
 
옥희는 한숨을 내쉬며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마침 가을바람이 선들선들 불어지나며 누렇게 고개 숙인 벼들이 파도마냥 굼실거리고 있었다. 계절은 참 아름다운 것이였다.
 
 
옥희가 양로원에 이르러보니 마침 로인들이 울안에서 해볕쪼임을 하고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옥희를 발견한 엄마는 활짝 웃으며 반기는가 싶더니 이내 정색을 했다.
 
“옥희야, 나 좀 집에 갔다 올란다.”
 
“집엔 왜요?”
 
또 아까 전화에서 하던 소리를 할 것 같아 옥희는 일부러 무심한 척했다.
 
“집을 그렇게 허망 비워두면 쓰냐? 쥐가 다 구멍을 뚫는다니까. 불도 때고 마당도 치우고 해야지.”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올케가 한국에 갈 때 동네사람한테 부탁을 해놨어요. 가끔 들여다보니까 괜찮을 거예요.”
 
“암튼 내가 한번 다녀와야겠다. 가져올 것도 있다니까. 전번에 급히 오다 보니 짐을 채 못챙겼잖냐?”
 
“뭔지 말하면 내가 어련히 갖다주지 않을라구요? 집엔 안돼요!”
 
“넌 왜 그러니?! 집에 한번만 다녀온다는데. 자식을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니까!”
 
엄마는 급기야 화를 내며 양로원 건물 안으로 발길을 돌려버렸다. 뒤에서 손등으로 눈굽을 쓱 훔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옥희는 가슴이 짠해났다. 
 
엄마는 정말 긴요한 물건을 두고와서 가져오려는 것이 아니였다. 어떻게든 집에 갈려는 속셈이였다.
 
“엄마, 집엔 이제 아무도 없어요. 빈집에 가서 엄마가 어떻게 혼자서 불을 때고 밥을 지어서 먹고 산다고 그래요? 엄마 나이 이제 여든셋이라구요.”
 
옥희는 얼른 뒤따라 가서 엄마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이젠 뼈에 살가죽만 붙어 앙상한 손에 온기마저 없었다. 몸도 줄어서 옥희의 어깨아래로 보이는 엄마의 파마머리는 금방 염색한 거라 어색할 정도로 새까맣지만 숫구멍이 펀히 보이게 듬성듬성하였다. 볼살이 처지고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검버섯이 쿡쿡 박혀있는 엄마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옥희는 명치끝이 찌릿찌릿 아파왔다.
 
엄마가 귀찮게 굴 사람은 이제 옥희밖에 없었다. 엄마를 양로원에 모시는 날에도 오빠네는 휴가를 못냈다고 북경에서 오지도 않았었다. 항상 그랬다. 엄마의 생신이나 명절에도 오빠네는 올케나 옥희의 카드로 입금을 하고 엄마한테 전화 한통만 하면 자식된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엄마가 갑자기 아프거나 올케네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뛰여다니는 것은 옥희의 몫이였다. 한밤중에라도 남편을 깨워서 차를 몰아 엄마를 병원으로 모시거나 음식꾸레미나 약꾸레미를 안고 휴일마다 시골로 내려갈 때면 가끔 엄마한테 “엄마, 그래도 출세한 큰아들보다 엄마 근처에서 살면서 엄마한테 잔소리를 하는 이 딸이 더 낫지 않아요?”하고 객적은 소리를 하며 킬킬 웃었다. 그러면 엄마는 “그래도 네 오빠가 울 집의 자랑이고 기둥이네라. 너보다는 작은 며느리가 더 고생이잖냐?”하며 종시 옥희에 대한 칭찬은 입도 뻥긋하지 않으셨다. 당연한 노릇을 하면서 웬 생색이냐는 눈빛이셨다. 그럴 만도 했다. 아들도 곁에 없는데 얹혀사니까 며느리의 눈치가 보일 것이고 동동거리며 뛰여다니는 딸이 아깝기보다는 멀리 가기라도 하면 어쩔가 싶은 위구심에 붙들어매고 싶어 더 못되게 구는 거라고 옥희는 믿고 있었다. 지금도 엄마는 옥희라면 얼마든지 자기를 집에 데려다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자꾸만 징징거릴 것이였다. 그런 엄마를 모셔갈 수 없는 자기의 처지 때문에 옥희는 자꾸 가슴속 어딘가로부터 한숨이 새여나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원장과의 대화를 마치고 엄마 방에 들어선 옥희는 화들짝 놀랐다. 크지 않은 구들에 손바닥만 하게 찢어놓은 휴지들이 한가득 널려있었다.
 
“엄마, 이게 다 뭐예요?”
 
“뭐긴? 내가 기저귀 만드느라고 두루마리휴지를 찢은 거다.”
 
“네?!”
 
옥희는 억이 막혀 입만 커다랗게 벌렸다. 
 
“글쎄 저걸로 기저귀 만든다고 온 오전 극성을 피웠다니까 그러우. 내가 안된다고 해도 말을 들어야 말이지.”
 
어느새 들어왔는지 키가 작달막한 할머니 하나가 옥희를 보며 하얗게 웃었다. 옥희가 올 때마다 “효녀네. 우리 아들은 광주에 있어서 자주 못 오는데… 언제 올려는지 모르겠네.”하며 부러워하던 할머니였다. 양로원에 올 때마다 표정이 부옇게 죽은 로인네들이 대문 쪽만 바라보고 서 있는 모습이 안스러워서 음식이라도 푼푼히 사와서 대접하는 옥희였다. 1년이 가도록 다녀가는 자식이 없는 로인도 있고 명절이 되여야 우르르 쓸어와서 저희들끼리 왁작 떠들다가 돌아가는 가족도 있어서 매주 다녀가는 옥희가 양로원에선 효녀로 불리우고 있었다.
 
“종이기저귀가 얼마나 비싸냐? 양로비는 가득 받으면서 기저귀는 너보구 사오라고 하니까 그러지. 근데 잘 안되더라. 후훗―”
 
엄마는 장한 일을 한 어린애처럼 옥희를 바라보며 키들키들 웃었다. 양로원에 오면서부터 종이기저귀를 차니 옷을 적실 일이 없었지만 기저귀를 차는 엄마를 볼 때마다 옥희의 마음은 불편하기만 했다. 집에서는 지나가는 소리로 “기저귀라도 찰가요?”하면 펄쩍 뛰던 엄마가 곱다라니 기저귀를 차기까지에는  마음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가 싶어서였다.
 
“엄마두 참―”
 
할 말을 잃은 옥희는 찢어진 휴지들을 거둬서 차곡차곡 개이기 시작했다. 다시 해볕쪼임을 한다고 엉기적엉기적 다리를 옮겨놓으며 밖으로 나가는 엄마의 뒤모습을 바라보는 옥희는 심란했다. 
 
사람은 원래 이렇게 늙어가는 건가? 
 
어쩜 엄마의 모습에서 후날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 세 남매를 키운 엄마도 결국은 양로원에서 서서히 스러져가는데 외동아들만 둔 자신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싶었다. 벌써부터 서서히 늙어간다는 징조를 보여주고 있는 몸뚱아리가 아닌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인지능력이며 둔감해진 몸놀림, 잦은 병치레에다 대신 아집은 세여지고 시름은 많아지고 있어 어느 누가 봐도 중년이라 하기에는 한물 가고 로인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애매한 년령대임에야. 그럼에도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출근을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신은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의연한 척 살아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옥희는 자꾸만 한숨이 새여나오고 가슴이 답답해나군 했다.
 
엄마가 점심식사를 끝내자 옥희는 방구들에 엄마와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옥희도 까마득하게 잊고 있는 옛날 일들을 세절까지 기막히게 또렷하게 기억하면서도 지금의 일은, 당장 점심에 무슨 반찬을 먹었는지조차 생각 안나는 엄마였다. 한창 어릴 때의 이야기를 하다가 응대가 없기에 돌아보니 엄마가 어느새 잠이 들어있었다. 입을 약간 벌린 채 옥희 쪽을 향해 허리를 구부리고 누워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옥희는 자꾸 서글퍼짐을 어쩔 수가 없었다.
 
자고 있는 엄마를 그대로 두고 되돌아오는 옥희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깨여나기라도 하면 어린애처럼 또 따라 나설가봐 원장한테 인사를 하고 그냥 나와버린 옥희였다.
 
 
오후에도 사무실의 분위기는 침침하기만 하였다. 선배의 얼굴은 굳어져있었고 롱담을 잘하는 명수도 책장만 넘기고 있었다. 후배들은 저마다 컴퓨터나 핸드폰을 붙잡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자중해야 함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였다. 
 
옥희가 커피라도 타 마시려고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선배가 불러세웠다. 또 고급직함평의에 관한 소리를 하려나 싶어서 옥희는 얼른 선배 쪽으로 다가갔다. 
 
“저 옥희, 그게 있소?”
 
선배는 실실 웃으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네?”
 
옥희는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슴벅거렸다.
 
“야, 참!”
 
선배는 킥킥 웃더니 옥희의 귀에 대고 “생리대 있소?”하고 물어왔다. 
 
“아, 없는데요.”
 
옥희는 손을 펴보였다.
 
“생리가 두어달씩 끊기길래 이젠 안 오나 보다고 했던 게 오늘 또 신호가 오더라니까. 안 그래도 오늘 짜증이 자꾸 나길래 고급직함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그렇나 했던 게 이것이 올려구 그랬나 보요. 후훗― 근데 옥희도 아직 페경전이지?”
 
선배는 무슨 큰 비밀이라도 이야기하듯이 옥희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선배의 입김에 옥희의 귀불이 따가와났다.
 
“아… 아뇨… 전 작년에… 페경이 된걸요.”
 
옥희는 공연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뇨실금에, 페경에 이제 녀인으로선 다 산게 아닌가?
 
“어머, 미안. 공연히 물었네. 난 나보다 어리니까 아직 생리가 있을 줄 알고 그랬지. 다른 사람한테 물을 걸 그랬네.”
 
선배는 미안해하며 옥희의 어깨를 툭 치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아참, 페경전이라고 말할 걸 그랬나?
 
옥희는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페경이 되고 나서 한동안은 편하기만 했다. 헌데 시간이 흐를수록 실의감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녀자이면서도 녀자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들어 스스로 위축되였다. 작년 거의 반년을 우울하게 지냈던 옥희였다. 저절로 운동도 하고 마음도 추스리면서 겨우 마음의 안정을 찾았지만 가끔 마트에 가서 생리대를 파는 매대 앞을 지날 때면 공연히 씁쓸해졌다. 다행히 살아가면서 자기가 페경이 된 녀인임을 자각해야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런대로 잊고 지낼 수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선배한테 들켜버리고 나니 죄를 지은 것처럼 느낌이 찝찝했다. 
 
페경이면 페경이지 뭐, 자연의 섭리인 걸 어떡해.
 
옥희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는 고뿌를 들고 커피를 타러 갔다. 커피를 마시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오전부터 나돌아다니다 나니 오늘 할 일이 쌓여있었다. 몸이야 어떻게 늙어가고 있든 출근하여 꼬박꼬박 로임을 받는 이상 할 일은 해야 했다. 
 
오후에 자꾸 처지는 기분을 추스리며 일을 하느라니 일의 진척은 굼뜨기만 하였다. 겨우 퇴근 전까지 하루일을 마무리한 옥희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칼퇴근을 해버렸다. 이럴 때엔 사무실을 떠나고 사람들 속을 떠나는 게 상책이였다. 그만큼 옥희는 혼자의 세상을 좋아했다. 자그마한 주방용품가게를 운영하는 남편은 벌이는 시원치 않아도 아무 때나 훌훌 떠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로움 때문에 자기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고 대신 옥희한테 등한했다. 어릴 때 강가에서 자라서 고기잡이에 일가견이 있는 남편은 젊어서부터 낚시에 흥취를 갖고 있었다. 낚시도구는 릴낚시대부터 고기망태기, 파라솔… 편의걸상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챙겨놓고 시도 때도 없이 낚시하러 다녔다. 이른새벽에도 가고 한밤중에도 가고 온 대지가 꽁꽁 얼어붙은 겨울에도 갔다. 이런 남편 때문에 옥희는 언제나 혼자였다. 밖에 나가서 남들이랑 어울리는 게 불편했던 옥희는 늘 집에 있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아이를 챙기는데 열중했고 그 아이가 쳐다보기도 어려운 성인이 되여버린 지금은 혼자서 집에 있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 집에서 뒹굴뒹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스스로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평정심을 갖게 되는 게 옥희도 별일이였다. 
 
맏딸이였지만 항렬로 둘째였던 옥희는 어릴 때부터 응석을 부릴 줄 몰랐다. 맛있는 먹거리나 좋은 옷견지가 있으면 맏이인 오빠나 막내인 동생의 차지였고 옥희는 선뜻 “나도”하고 손을 내밀지 않았다. 하나뿐인 딸이라서 금지옥엽으로 키울 법도 한데 남존녀비사상이 강했던 아버지는 어린 옥희를 새벽부터 깨워 엄마가 밥 짓는 것을 돕게 했다. 여라문살이여서 한창 놀음에 탐하고 잠이 모자랐던 옥희였지만 아버지가 활 이불을 열어제끼면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 엄마의 잔심부름을 하며 아침밥상을 차리군 하였다. 아마 그때부터였던지 몰랐다. 옥희가 불평이나 불만은 마음속 한구석에 접어두고 남의 눈치만 살피며 욕 안 듣고 둥글둥글 살게 된 것이. 오빠의 동생이라서, 동생의 누나라서 오빠나 동생의 심부름을 도맡아서 했던 옥희는 그때도 혼자 집에 있는 것이 좋았다. 혼자서 손가락에 침을 묻혀 창문유리에 그림을 그리거나 삶은 감자쪼각을 볼이 미여지게 먹으며 뒹굴거나 종이오리기 같은 것을 하면서 고물고물 놀 때면 입가에 사르르 미소가 번지군 했었다. 무슨 일이라도 하라고 호령하는 아버지의 눈치도, 오빠나 동생의 집적거림도 없어서 마음이 평화롭고 따뜻했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되여서도 옥희는 혼자 집에 있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를 키우며 정신없이 바빴던 시절에도 옥희는 가끔 남편과 아이를 놀러 보내고 혼자 집에 있군 하였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스스로 시간과 생활 절주를 조절하며 느긋하게 지내느라면 참고 사느라 상처 받았던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치유되군 했었다. 여직껏 옥희는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혼자서 집에서 드라마도 보고 책도 보면서 마음을 다스려왔던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 자기의 생각과 의견을 접어놓고 눈치만 보며 사는 옥희의 숨통이 트이는 시간이였고 다시 세상 속으로 한발 내디딜 수 있는 힘이 되였던 것이다. 아무래도 오늘도 그래야 할 것 같아 재빨리 사무실을 나와버린 옥희였다.
 
옥희는 걸어서 갈가 하다가 한시라도 빨리 가고 싶어 택시를 탔다. 아직 해는 채 지지 않아 날은 훤하였고 금방 퇴근시간이 된지라 길이 그다지 막히지는 않았다.
 
집에 이르러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옥희는 이마살부터 찡그리며 손으로 입과 코를 막았다. 물고기비린내가 확 코를 찔렀던 것이다. 
 
신발을 벗기 바쁘게 코를 킁킁거리며 비린내의 발원지를 추적하던 옥희는 그만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싱크대에 커다란 잉어 두마리가 누워있었다. 틀림없이 새벽에 낚시하러 나간 남편의 소행이였다.
 
“이걸 여기에 놓으면 어쩌라구?!”
 
옥희는 저도 모르게 발을 탕 구르며 소리를 꽥 질렀다. 혼자서 문을 따고 들어왔으니 남편이 집에 없을 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하루종일 참고 참았던 울화가 드디여 분출구를 찾아 터져나온 것이였다. 옥희는 눈살이 꼿꼿해서 잉어를 노려보다 말고 두 손으로 량쪽 태양혈을 지긋이 눌렀다. 태양혈을 따라 피가 올리솟는 느낌 때문에 머리가 찡하니 아파오고 있었던 것이다. 옥희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부둥켜안은 채 휘청휘청 걸음을 옮겨 침실로 향했다. 
 
아침에 옥희가 부랴부랴 이불 속에서 빠져나온 대로 이불은 침대 우에 아무렇게나 뭉그러져있었고 화장대 우에는 크고작은 병에 담은 화장품들이 질서 없이 널려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옥희는 그대로 침대 우에 몸을 던졌다. 
 
참자, 참자, 참아야지…
 
옥희는 념불처럼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심호흡을 하였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뱉기를 거듭하는 사이 구부러졌던 몸은 점차 펴이기 시작했고 몸의 신경이 서서히 느슨해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가.
 
두통이 좀 가라앉아서야 옥희는 누운 채로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꾹꾹 눌렀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띵”하며 전화가 련결되였다.
 
“좀 조용들 해라, 여보, 왜 그러오?”
 
남편의 목소리는 이미 한껏 들떠있었다. 술 한잔 잘하고 있다는 표시였다.
 
“저… 잉어는 뭐예요?”
 
“아, 그거. 내가 오늘 낚시한 거지. 오늘 재수가 좋을려니까 점심때까지만 했는데 그런 잉어 네마리를 낚은 거요. 그래서 두마리는 당신 먹으라고 남겨두고 두마리는 친구들이랑 먹고 있는 중이요. 별일 없지? 그럼 전화 끊소.”
 
옥희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남편은 덜컥 전화를 끊어버렸다. 
 
시어미 역정에 개배때기 찬다고 옥희는 핸드폰을 저만치로 훌 던져버렸다. 래일모레면 환갑이 될 위인이 늘 셈평이 좋아서 탈이였다. 뭐든 속으로 숨기고 숨도 크게 안 쉬고 사는 옥희와는 달리 남편은 뭐나 대강대강이였고 맘에 넣어두는 법이 없었다. 래일 당장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오늘 먹고 잘 데가 있으면 된다는 남편이였다. 이 나이 먹도록 뭔가를 이루려는 꿈도 없었고 여한도 없이 잘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남편이였기에 옥희에 대해서도 섭섭할 정도로 관대했다. 대신 집안 돌아가는 형편에도 옥희가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러고 보니 아들한테서 전화가 온 지 여러 날이 된 것 같았다.
 
다행히 통화한 것은 닷새 전이였다. 
 
이 녀석은 뭐하고 있지?
 
옥희는 궁금해서 위챗으로 아들한테 물음표가 달린 이모티콘을 꼭 눌러 발송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 응답이 없길래 막 전화를 하려는데 영상이 건너왔다.  
 
―뭐냐?
 
옥희는 음성메시지를 보냈다.
 
―집이예요, 제 집.
 
녀석한테서도 인차 메시지가 날아왔다. 그제서야 옥희는 아들이 산 집이 열쇠를 넘겨받을 때가 되였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년초에 아들은 주택을 계약했고 공사중이였던 아빠트가 이제 완공이 되여 집을 분양받았던 것이다. 
 
―아, 열쇠를 받았나보구나. 그럼 인테리어는 언제 할 건데?
 
―돈이 모이는 대로 시작해야죠. 집을 비워두기보다 인테리어를 하고 내가 살든지, 세를 주든지 하는 게 더 경제적일걸요.
 
―하긴 그래. 세집생활도 신물이 나지? 제 집이 있으면 얼마나 맘이 편하니?
 
―괜찮아요. 집세로 돈이 허망 빠져나가는 것이 아까와서 그렇죠.
 
옥희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외지에서 혼자 살더니만 이제 돈의 중요함을 알아버린 녀석이 기특했다. 언제까지 자기만 쳐다볼 줄 알았는데 이제 녀석은 슬슬 제 둥지를 틀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였다. 처음 주택을 계약할 때도 옥희는 아직 일찍하지 않나 싶어 주저했지만 아들녀석은 자기의 업무능력이며 회사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기 몫의 집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디에든 정착을 할 것이며 그때 집을 마련하기보다 지금부터 돈을 모아 마련하면 뒤심이 있어 일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런 아들이 대견해서 선불금을 마련해준 옥희였다.
 
그래도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힘이 나는 것 같아 옥희는 조금 더 누워있다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헌데 옷을 갈아입으려던 옥희는 그만 랑패상을 짓고 말았다. 아침에 속옷과 잠옷을 세탁기에 처넣고 세탁기를 돌린 채로 그대로 출근을 해버렸던 것이다. 탈수가 다 된 옷들은 세탁기 안에 꼬깃꼬깃 구겨져있었다. 옥희의 머리속으로 다시 뇨실금이며 페경이며 하는 단어들이 우야우야 소리를 치며 몰려들었다. 아들 때문에 조금이나마 전환이 되였던 기분은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랬다. 뭐든 아래로 곤두박질치는데에는 한순간이면 족했다. 옷을 대충 툭툭 털어서 빨래건조대에 널고난 옥희는 옷만 갈아입고는 저녁식사를 건너뛴 채 뭉그려놓은 이불 속에 기여들었다.  
 
 
따뜻한 이불 안에서 옥희는 자꾸 졸음이 몰려왔다. 묵직한 돌멩이 하나가 지지누르는 압박감이 느껴져 가슴이 답답한 가운데 무엇인가가 가슴속에서 쑥 빠져버린 듯한 허탈감에 온몸에서 맥이 풀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몸도 정신도 이제 따라가주지 않는다. 시아버님도 언젠가는 모시고 살아야 할 것이고 엄마를 마냥 양로원에 두기도 마음이 아픈 일이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녀석에게는 집 인테리어도 해주고 자가용도 사주고 싶고… 어쩜 자기나 남편만 뺀 주위사람들이 다 신경이 쓰이였다. 헌데 앞날은 막막하기만 하다.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여태 잘 살아왔는데.
 
옥희는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자기의 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작지만 온전히 붙어있는 엄지였다. 그 엄지가 있어서 병신이 아니고 온전한 사람일 수 있었고 그 엄지가 있어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 수 있었다. 이젠 정말 허물이 있는 손이라도 자신 있게 불쑥 내밀고 싶었다. 그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있다면 옥희도 아주 자연스럽게 무난히 늙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이제 슬슬 고장이 나기 시작하는 내 몸 같지 않은 몸으로 그런대로 삐걱거리며 살아지지 않겠는가.
 
옥희는 허공을 향해 팔을 뻗고 손을 뻗어보았다. 아주 길게.
 
길게 뻗은 손에서 엄지가 점점 길어져서 식지의 중간 쯤에 이르고 식지와 길이가 같아지다가 식지를 넘어서 점점 길어지는 모습을 환영처럼 지켜보며 옥희는 까무룩하게 잠 속에 빠져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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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5 [단편소설] 귀두야, 안녕?-김영해 2019-07-18 0 863
24 손을 잡아주세요 2019-07-11 0 426
23 보리수나무(2) 2015-01-26 1 1211
22 보리수나무(1) 2015-01-26 0 1110
21 공(2) 2015-01-18 1 969
20 공(1) 2015-01-18 0 932
19 소리가 보이니(2) 2013-08-11 2 1586
18 소리가 보이니(1) 2013-08-11 0 1295
17 귀(归)-(2) 2012-08-15 0 2386
16 귀(归)-(1) 2012-08-15 0 1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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