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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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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열쇠
2011년 09월 14일 19시 35분  조회:1221  추천:2  작성자: 김영해
1

성우는 선참으로 교실문을 빠져나왔다. 머리를 수긋한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곁눈질로 주위를 힐끗거렸다. 아는 애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대문어구는 손님을 실으려고 줄을 지어선 삼륜차와 드문드문 보이는 하이야, 오토바이 그리고 아이들 마중을 온 학부모와 부모의 손을 잡고 집으로 막 향하는 애들로 북적거리고있었다. 성우는 혹시나 하고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빠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성우는 자꾸 처지는 책가방을 추스르며 요리조리 사람들속을 비집고 혼자 집으로 향했다.
큰 길에 이르러 차가 있나 없나 오른쪽 왼쪽을 차례로 살피고나서 조심스레 큰 길을 건넜다. 골목길을 따라 곧장 걷다가 왼쪽 공공변소가 있는 쪽으로 굽어들었다. 몇발자국 더 걸어들어가 세번째 집문앞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성우네 집이였다. 부지런히 걸으면 학교와는 10여분이 되는 거리였다. 헐렁한 삽작문을 열고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마당에는 가을을 맞아 누렇게 시든 풀들이 볼썽사납게 서있다. 목에서 열쇠를 벗겨내려 자물쇠에 꽂아넣고 삑 하고 오른쪽으로 돌리였다.
“철컥”
자물쇠가 열리였다. 성우의 입귀가 우로 말려올라가며 웃음이 피여올랐다. 들쑹날쑹한 앞이들사이에 이발 하나가 홀랑 빠져있었다. 자물쇠를 벗겨내고 열쇠를 뽑아 다시 목에 걸었다. 성우는 문손잡이를 쥐고 주춤거렸다.
숨을 들이쉬고나서 벌컥 문을 열고 들어섰다. 눈길이 가마목에 쏠렸다.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았다. 성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코를 킁킁거렸다. 먼지냄새와 음식냄새, 이름모를 냄새가 한데 섞여 퀴퀴한 냄새가 코로 흘러들었다. 서둘러 신을 벗고 구들로 올라갔다. 웃방문을 드르륵 열었다. 누구도 없었다. 웃방에 들어가 옷장문을 덜컹 열었다. 구겨진 아빠의 옷과 때묻은 성우의 옷이 아무렇게나 무져있었다. 다시 정주칸으로 나와 찬장문을 열었다. 아침에 먹다남은 마늘장아찌가 성우의 이발자국을 남긴채 접시에 담겨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사발과 접시 몇개가 어수선히 쌓여있었다. 엄마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후~
짤막하게 날숨을 토해낸 성우는 찬장문을 닫고 책가방을 벗었다. 텔레비죤 옆에 놓인 유리통에 콩알을 한알 주어넣었다. 콩알을 담았던 비닐주머니도 훌쭉하다. 아빠와 콩알을 더 사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밥상을 펴놓고 숙제책을 꺼냈다.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종이쪼박을 꺼냈다. 숙제를 적은 종이였다. <<어문숙제: 바침 ㄹ가 드러간 다너를 다서개씩 쓰기, 수하숙제: 자기 지베 인는 물거니 이름가 개수 저거오기. 한어숙제: 썽무 한줄씨 쓰기>> .크기가 저마끔인 비뚤비뚤 적혀있는 그 글들을 성우는 용케도 알아보며 왕왕 소리내여 읽었다. 천으로 된 필갑에서 심이 뭉툭해진 연필을 꺼내 어문숙제부터 쓰기 시작했다. << 달갈, 사발, 물통>> 세개를 쓰고나서 눈을 깜박거렸다. 손등으로 코를 씩 씻으며 벌씬 웃었다. 그리고 마저 써내려갔다. <<자물쎄, 열쎄>>하고. 성우는 자기가 쓴 단어를 소리내여 또박또박 읽었다. <<자물쎄, 열쎄>>하고 읽다가 목에 건 열쇠를 피끗 내려다보았다. 목에 걸려있는 열쇠때문에 숙제를 완성할수 있는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한달전까지 성우와 아빠는 탄광에서 살았던것이다. 임시로 지은 자그마한 집에는 성우와 아빠말고도 다섯 남자와 한 여자가 살았다. 그들을 성우는 삼춘이나 마다바이, 마다매로 불렀다. 삼춘과 마다바이는 아빠와 같이 석탄을 캐는 일을 했고 마다매는 하루세끼 밥을 지었다. 집문은 언제든지 열려있었고 녹이 쓴 커다란 자물쇠는 집구석에 아무렇게나 처박혀있어 제대로 자물쇠구실을 하는적이 없었다. 마다매가 집에 있지 않으면 삼춘이나 마다바이중에 한두사람이 담배쉼을 하군 하는 탓에 집이 비여있지 않은 까닭일것이였다. 얼마전 아빠가 탄광일을 그만두고 시내에 세집을 잡으면서 성우는 아빠와 둘이서만 살게 되였다. 시내에 온 첫날 아빠는 성우와 함께 튼튼한 자물쇠부터 골라샀다. 열쇠가 셋이 달린것이였는데 반짝반짝 빛났다. 며칠전 아침이였다. 아빠가 성우에게 반짝이는 열쇠를 넘겨주었다. 성우의 눈이 열쇠만큼이나 반짝 빛났다.
“성우야, 집열쇠다. 이젠 컸으니까 혼자 오갈수 있겠지? 며칠 다녔으니까 오가는 길도 알잖어. 큰 길을 곧장 건너서 들어오면 돼. 할수 있지?”
성우는 입이 벙글써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날부터 열쇠는 부착물이라도 되는 양 성우의 목에서 달랑거렸다. 열쇠가 있은후로 눈이 까매서 아빠가 데리러 오기를 교문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였다. 학교공부가 끝나면 애들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재잘거리며 집으로 가는 모습을 보며 성우는 우쭐우쭐 혼자서 집으로 갔었다. 대신 수업시간이면 창밖에 눈길을 주는 시간이 많아졌었다. 아빠한테서 열쇠를 넘겨받은 날부터 성우는 당금이라도 엄마가 찾아올것 같아서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틈만 나면 창밖을 내다보군 했다. 유치원 다닐 때도 엄마는 성우가 유치원에 있는 시간에 왔었다.


몹시 더웠던 여름이였다. 낮잠을 자고 깨여나서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있는데 선생님이 밖으로 부르셨다. 교실문을 나서는 순간 성우는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엄마처럼 생긴 여자가 선생님과 함께 서있었다. 여자는 성우를 보자마자 “성우야~”하며 꼭 껴안았다. 성우는 몸을 뒤로 젖히며 여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쌍가풀진 눈이 엄마의 눈을 닮았다. 오똑한 코도 엄마의 코를 닮았다.
“얘가 저와 떨어져있은 시간이 오래 되여서 그래요. 한 1년쯤 되였으니깐요.>>
여자가 성우의 등을 다독였다.
“성우야, 엄마잖아. 성우가 유치원에 처음 온 날 손잡고 왔던 엄마. 얼른 엄마라고 불러야지.”
선생님이 부드럽게 웃으셨다. 성우는 다시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엄마같은 여자는 웃고있었다. 입귀에 까만 점이 한알 박혀있었다. 엄마의 입귀에도 까만 점이 한알 박혀있었다. 아무래도 엄마같았다. 다르다면 머리가 강굴강굴한것과 하얘진 얼굴이였다. 성우와 아빠와 함께 살았던 엄마는 긴 머리를 뒤에 질끈 졸라매였고 얼굴이 감스레 했었다.
“엄마~”
성우는 나지막하게 엄마를 불렀다. 그리고 허리를 꼭 그러안았다. 선생님과 엄마가 기분좋게 호호하고 웃었다. 유치원이 끝날 시간이 아닌데도 엄마는 성우를 데리고 유치원에서 나왔다. 유치원 뜨락을 걸어나오면서 엄마는 아빠가 어디 가셨나고 물었다. 아침에 아빠가 도시락을 싸가지고 밭에 일하러 나갔다고 말하면서 엄마가 아빠 찾으러 일밭에 가려는가고 생각했다. 유치원문밖에는 하이야 한대가 세워져있었다. 성우와 엄마를 실은 하이야는 고르지 못한 지면때문에 덜컹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하이야는 성우네 집앞에 멈춰섰다. 엄마는 하이야에서 내리며 성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왜 그러는지 몰라 성우는 엄마를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엄마는 웃으며 성우의 목에서 열쇠를 벗겨내렸다. 아마 집에 들어갔다가 아빠한테 갈 모양이였다. 엄마랑 같이 집에 들어가고싶었으나 엄마가 차안에 앉아있으라는 바람에 성우는 곱다란히 차안에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한참후 엄마가 나왔다. 엄마의 손에는 전기밥가마가 들려져있었다. 성우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오늘 저녁은 일밭에 가서 밥을 해먹나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엄마는 몇번을 더 들락거리더니 메치와 그릇들, 옷꾸레미같은것을 차뒤꽁무니에 꿍꿍 밀어넣었다. 그러고나서 엄마는 급히 차에 올라탔다.
“엄마, 왜 이런것들 밭에 가져가?”
성우는 잔뜩 움츠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은 엄마가 참 서먹서먹했다. 엄마는 대꾸도 하지 않고 차문을 쾅 하고 닫았다. 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헌데 엄마는 열쇠를 돌려줄념을 하지 않았다.
“엄마, 열쇠는?”
“이제 그 열쇠 필요없어. 집에 뒀으니까 찾지 마.”
엄마는 팔을 뻗어 옆에 앉은 성우를 그러안았다. 이제 열쇠가 없으면 어떻게 집에 들어갈가고 걱정하기도 하고 엄마는 왜 아빠보러 먼저 가지 않을가, 아빠가 찾기전에 엄마와 말해서 얼른 집에 돌아가야지 하고 생각하기도 하다가 성우는 소르르 잠이 들었다. 성우가 “아빠~”하고 부르며 잠에서 깨여났을 때 아빠의 대답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눈을 비비며 살펴보니 밥가마도 있고 메치도 있는데 아빠랑 같이 살고 있던 집은 아니였다. 그제야 엄마따라 하이야를 탔던 기억이 났다. 부엌에서 밥을 짓던 엄마가 성우를 흘낏 돌아보며 웃었다.
“곤했는 모양이구나. 어쩜 차에서 안아내리는줄도 모르고 잠을 자니?”
성우는 목을 만졌다. 열쇠가 없었다. 무엇을 잃어버린것 같아 성우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만난 엄마와 말할수가 없었다. 그날 아빠는 오지 않았다. 이튿날에도 오지 않았다. 아빠가 왜 오지 않는지를 모른채 성우는 엄마와 같이 살게 되였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는데 지금은 엄마가 없다.


(엄만 언제 올가?)
성우는 열쇠를 만지작거리다말고 어문숙제책을 한켠에 밀어놓고 수학숙제책을 꺼냈다. 집안을 삐이익 둘러보았다. 무슨 물건의 개수를 쓸가고 생각했다. <<옫짱 1개, 테레비존 1개, 전기밥까매 1개, 메치1개 >>하고 쓰다가 고무지우개를 꺼내 썩썩 지워버렸다. 입이 쀼죽 나왔다. 뭐나 다 하나씩이여서 너무 쉬운것 같았다. 수자가 더 많은게 없을가고 방안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이때 밖에서 저벅저벅 하는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성우는 냉큼 일어나 문을 열었다.
“아빠!”
성우는 문턱에 선채 아빠를 보며 벌쭉 웃었다.
“오~ 일찍 왔구나.”
아빠는 냉큼 성우를 안아주었다. 성우는 코를 킁킁거렸다. 아빠몸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오늘따라 아빠는 참 멋있었다. 머리가 정연하게 빗겨져 있었고 연한 하늘색 티셔츠에 흰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성우야, 너 민수랑 친하지? ”
아빠는 성우를 품에서 내려놓으며 물었다.
“네, 민수아빠가 아빠랑 친구라고 아빠가 잘 놀라고 했잖아요?”
성우는 볼부은 소리를 했다.
“난 혼자서두 얼마든지 집에 있을수 있는데…”
성우는 묻지도 않은 말을 낮은 소리로 우물거리며 뱉어냈다.
이사온지 얼마 안되여 아빠는 저렇게 두어번 물은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성우는 친하다고 대답을 했고 그 대답이 끝난후면 아빠는 성우를 민수네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런 날이면 성우는 민수네 집에서 자야 했다. 성우는 민수가 싫었다. 그잘난 놀이감권총도 마음대로 만지게 못하고 크레파스도 꺼먼색 한대만을 쓰게 했다. 성우는 파란색으로 풀도 그리고 빨간색으로 해도 그리고 여러가지색으로 알록달록한 칠색무지개도 그리고싶었지만 꺼먼색 크레파스만 쓸수 있기때문에 참대곰이나 축구공같은것을 그릴수밖에 없었다. 성우는 알록달록한 크레파스를 가득 가지고도 나무밖에 그릴줄 모르는 민수를 보며 쌩통이라고 입을 비쭉거렸다. 민수엄마도 싫었다. 성우의 뒤를 쫓아다니며 바닥을 쓸어내면서 “쯧쯧”하는 소리를 입에 달고 있었다. 갈적마다 “엄마 안보고싶니?”하고 물어보는것을 잊지 않았다. 성우가 아무 말도 안하고있으면 또 “쯧쯧”했다. 민수엄마는 아무래도 “쯧쯧”하는 하는 말이 그렇게도 재미있는 모양이였다.
성우는 오늘도 민수네 집에 데려다줄가봐 걱정이 되였다.
“아빠가 오늘 일이 있거든. 오늘 저녁에 민수네 집에 가서 자라.”
성우의 눈을 들여다보며 아빠가 달래듯이 말했다. 성우는 샐쭉해졌다.
“난 혼자서두 집에 있을수 있는데…학교두 혼자 가고 오고 할수 있고…”
목에 건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떠듬거렸다. 아빠는 대꾸도 않은채 성우의 책가방을 챙겼다. 아빠의 손에 끌려 성우는 집문을 나섰다. 삽작문을 나서는데 웬 여자가 서있는것이 보였다. 여자는 아빠를 보며 피씩 웃는듯했다. 성우는 흘끔 아빠를 쳐다보았다. 마침 성우를 내려다보는 아빠의 눈길과 딱 마주쳤다. 아빠의 얼굴이 금시 빨개졌다. 아빠는 화를 낼 때면 얼굴이 빨개졌었다. 성우가 숙제를 안하고 선생님한테 혼났을 때도 선생님앞에 서있는 아빠의 얼굴이 빨개졌었다. 성우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성우가 미적거리며 따라가서 아빠가 막 화를 내는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뒤돌아보며 여자를 쨀 흘겨보는것을 잊지 않았다.

2

성우는 뒤치락뒤치락거렸다. 옆에 누운 민수는 벌써 코를 쌕쌕 골고 있다. 성우는 살그머니 민수의 코를 꼭 쥐여놓았다. 민수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성우의 손을 툭 쳐버리고는 끙 돌아눕는다. 성우는 다시 발로 민수의 궁둥이를 툭툭 찼다. 민수는 이불을 차던지며 저만치 기여가 눕는다. 그러는 민수를 보며 성우는 깨고소하게 웃었다. 언제봐도 괘씸한 민수였다. 저녁에도 그랬다. 저녁밥을 먹고나서 민수엄마가 수박을 쪼개서 갖고나오셨다. 빈 쟁반을 옆에 놓으면서 씨를 거기에다 뱉으라고 했다. 민수는 수박씨를 뱉을줄 모르는지 자꾸 손가락으로 뚜져내기만 했다. 여기저기 수박물이 튕겼다. 민수엄마는 짜증도 안내시고 얼른얼른 닦아주셨다. 성우는 서걱서걱 뜯어먹었다. 한참을 먹다말고 민수엄마가 눈이 동그래서 성우를 올려다봤다.
“너 수박씨는 어쨌는데?”
“먹었어요. 난 수박씨를 먹는데…”
성우는 장한 일이라도 한듯이 벌씬 웃었다. 민수엄마가 칭찬해줄것 같았다.
“너 수박을 먹을줄 모르지? 수박은 못먹어봤지? 하하!”
민수가 앞질러 주어박으며 깔깔 웃어댔다.
“아니야, 먹어봤어. 먹을줄 아는데 .씨… …”
성우가 볼이 잔뜩 부어 씩씩거렸다. 성우가 뭘 어쩌지 않아도 공연히 우스워하고 놀려대는 민수가 얄미웠다.
“됐다 ,됐어! 그만들 해라. 근데 수박씨를 왜 먹니? 수박씨를 먹으면 배에서 수박이 달리는데… 쯧쯧”
민수엄마는 이마살을 찌프리며 잊지 않고 또 “쯧쯧”하셨다. 하지만 성우는 대수롭지 않았다. 수박씨를 먹어도 수박은 달리지 않을것이라는것을 알고있기때문이였다. 성우가 수박씨를 먹게 된것은 고모때문이였다.


성우가 엄마랑 만나 하이야에 앉아 엄마집에 간 그날 엄마는 잠에서 깨여난 성우에게 밥을 갖춰먹이고는 자기는 먹지 않았다. 배가 안고파서 안먹는줄 알았다. 성우가 밥을 다 먹고 다시 자리에 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놀고있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웬 아저씨가 들어섰다. “이제 오셨어요?”하며 엄마는 반갑게 맞아주었고 낯선 아저씨는 “성우 왔구나.”하며 벌씬 웃으셨다. 그러는 아저씨와 엄마를 번갈아보며 성우는 어정쩡해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누군데 자기의 이름을 아는지 알수 없었다. 엄마가 인사를 하라고 엄마앞에 내밀어도 성우는 다시 엄마뒤에 숨어버렸다. 아저씨는 “녀석, 낯가림하는구나.” 하고는 밥상에 마주앉아 엄마와 같이 밥을 먹었다. 그날 밤 아빠는 오지 않았다. 이튿날에도 , 그 이튿날에도 아빠는 오지 않았다. 대신 아저씨는 꼬박꼬박 저녁이면 집으로 들어왔고 아침이면 일찍 일하러 나가셨다. 엄마는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라고 했다.
“집에 있는 아빠는요?”
“성우는 이제 엄마랑 살아야 돼. 엄마는 또 이 아저씨랑 살거니까 이 아저씨가 성우의 아빠야. 한 집에서 사는 사람이 아빠인거야. 알았지?”
“그럼 아빨 데려와서 한집에서 살면 되잖아요?...”
“네가 크면 다 알게 될거야. 엄마 시키는대로 해라. 이제부터 남들이 아빠가 누구냐고 물으면 <김학범입니다>하고 대답해야 돼 . 알았지?”
아저씨는 아빠가 아닌데도 왜 아빠라고 불러야 하는지 몰랐다. 아빠이름은 <<리설민>>인데 왜 아저씨이름을 아빠이름이라고 해야 하는지도 알수 없었다. 영안에 온후부터 성우는 알수 없는것이 너무 많았다. 갑자기 머리속이 의문투성이로 되여버렸는데 엄마는 그 답안을 하나도 알려주지 않았다. 아빤 왜 여기로 안데리고 왔는지, 아빤 왜 자길 찾지 않는지, 아저씨는 왜 엄마랑 같이 사는지, 왜 아저씨를 아빠라 부르고 아빠이름을 물으면 아저씨이름을 알려줘야 하는지 알수 없었다. 의문덩어리가 많았지만 성우는 차츰 엄마랑 사는데 습관되여갔다. 아빠가 없긴 해도 이전보다 좋았다. 집문만 나서면 멀지 않은곳에 있는 커다란 굴뚝과 언제보나 하얀 김이 물물 피여오르는 굴뚝보다 키는 작지만 훨씬 실한 콩크리트건물을 볼수 있었다. 그것이 있는 곳이 화력발전소라고 했다. 전기를 만든다고 했다. 전기를 어떻게 만드는건지는 알수 없지만 아무튼 신기했다. 엄마는 밥을 맛있게 지어주었다. 아빠랑 같이 있을 때엔 묵은 밥도 찬것채로 먹거나 반찬도 감자반찬 아니면 두부였는데 엄마는 매일매일 밥을 지었다. 혹 묵은 밥이더라도 따뜻하게 덥혀주거나 볶음밥을 만들어주었고 반찬도 닭알, 물고기, 남새, 고기반찬을 엇바꾸어 만들어주었다. 옷은 성우가 어지럽혀놓기 바쁘게 씻어주었다. 성우는 영안학교 학전반에 붙었다. 영안학교에서 처음 고모를 봤었다. 아저씨의 동생인데 학교선생님이라고 했다. 성우는 얼굴이 하얀 고모가 웬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학전반에 가기는 신났다. 큰아이 작은아이 마구 뒤섞여서 있는것이 아니라 죄다 성우와 동갑이였다. 공부도 하고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해가 한창 비칠 때면 학교애들이 운동장에 줄을 지어 무슨 곡에 맞추어 체조를 하는것도 구경할수가 있었다. 그때면 성우네도 저마끔 팔다리를 너펄거리며 따라하느라고 난리였다. 고모는 가끔 성우를 볼러 학전반에 왔다. 고모는 선생님하고 무슨 이야기인지 나누다가도 성우쪽을 보며 웃기도 하고 눈을 째려보기도 했다.
언젠가 고모가 불쑥 물어왔다.
“성우야, 너 아빠이름이 뭐지?”
어느 아빠이름을 묻는지 알수 없었다.
“김학범입니다.”
어물거리며 대답하는 성우를 보며 고모가 또 물었다.
“그럼 넌 이름이 뭐니?”
이름을 알면서 왜 묻는지 이상했다.
“리성우입니다.”
“아빠는 성이 김가인데 성우는 왜 리가지? 왜 김성우가 아니니?”
난데없는 물음에 성우는 눈이 둥그래졌다. 누구도 그렇게 물은적이 없었다. 학교선생님이니까 고모는 물음도 까다로왔다.
“응, 응… 내가 김성우면 내가 잘해도 … 비행기가 못올라가요. 울 반에 김성우것이 올라가는데…그래서 난 리성우…”
성우는 떠듬거리며 답을 주어댔다. 선생님과 고모를 번갈아 핼끔거렸다. 고모와 선생님이 마주보며 소리내여 웃었다.
“그 녀석 보기보담 머리가 팽팽 도네. 그래 맞다. 비행기가 못올라갈가봐 그런거야. 호호”
고모가 성우의 이마를 튕겨주었다. 아무래도 대답을 잘한것 같았다. 정말 자기가 리성우가 아니면 자기랑 이름이 같은 김성우의 비행기가 올라갈것이였다. 그날 저녁에 고모는 성우네 집에 놀러와서 낮에 있은 이야기를 하며 엄마랑 아저씨랑 웃었다. 성우도 덩달아 웃었다.


엄마가 일때문에 바쁠 때면 성우는 가끔가다 고모네 집에 며칠씩 있군 하였다. 어느 땐가 밥을 먹고나서 고모가 랭장고에서 수박을 꺼내 쪼개주었다. 고모와 고모부는 수박쪼각을 들고 한켠으로 수박씨를 뱉어내면서 잘도 먹는데 성우는 수박씨가 자꾸 입안에 들어가서 먹을수가 없었다. 빨간 속살을 물어뜯을 때마다 수박씨가 꼭꼭 따라들어갔고 그걸 뱉어낼려면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들어갔다. 할수없이 수박쪼각을 쳐든채 손가락으로 수박씨를 뚜져냈다. 벌건 수박물이 손가락과 손을 거쳐 팔을 따라 흘러내리다가 팔굽부근에서 뚝뚝 떨어졌다. 옷이 금방 어지러워졌고 방바닥도 질펀해졌다. 그러는 성우를 고모는 얄미운듯이 째려보았다. “먼 수박을 그렇게 먹니?”하고 짜증스레 투덜거리다가 성우 골통보다도 큰 빈 플리스틱그릇 하나를 성우의 무르팍에 덜렁 놓아주었다. 성우는 수박씨를 뚜져내다 말고 눈이 둥글해졌다. 한입 베여물었던 수박을 꿀꺽 목구멍으로 넘겨버렸다. 수박쪼각을 도로 놓아야 할지, 뚜져낸 수박씨를 거기에 담아야 할지 알수 없었다. “머리를 그쪽으로 기울이고 먹어라. 수박씨도 거기다가 놓고. 그럼 수박물이 안떨어지잖니?” 덩둘해진 성우에게 고모부가 차근히 일러주었다. 그제야 성우는 고모의 눈치를 핼끔거리며 수박을 먹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성우는 다시는 수박씨를 손가락으로 뚜져내지 않았다. 입으로 도로 뱉어낼줄 알게 된것도 아니였다. 그냥 수박속살과 함께 우멀우멀 씹어먹어버렸다. 생각외로 수박씨는 쓰겁지 않았다. 수박은 씨와 함께 얼마든지 먹을수 있었다. 그러는 성우를 고모는 말리지 않았다. 입이 벌어진채 바라보다가 아무 말도 안하셨다. 수박물로 옷이며 방바닥을 어지럽히지 않아서 덜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그외에도 성우는 사과배도 껍질채로 먹을수 있었다. 과일칼을 쓸줄 모르기에 고모 먼저 집에 왔을 경우에는 사과배를 수도물에 대충 씻어서 그대로 떼여먹은 성우였다. 암튼 그때 고모집에 가끔 있는 사이 성우는 수박씨를 먹는 법과 사과배를 껍질채로 먹는 법을 배워버렸다. 하지만 엄마한테 말하지 않았다. 고모는 성우가 고모집에 있을 때의 일을 엄마한테 이야기하는것을 싫어했다. 성우는 엄마랑 있을 때는 수박씨나 사과배껍질을 먹지 않았기에 엄마는 성우가 그러는줄을 모르고있었다. 엄마는 수박을 여러 쪼각으로 쪼개지 않고 중간을 갈라서는 속살만 숟가락으로 폭폭 떠서 사발에 담아주었다. 성우의 사발에 든 수박속살은 엄마가 손으로 씨를 살살 빼서 주었다. 사과배도 성우가 없는 사이 몇개씩 깎아서는 찬장에 넣어두었다. 까다로운 고모도 생기고 아저씨를 아빠라고 불러야도 했지만 엄마가 있어서 성우는 좋았다. 아빠가 없는게 서운하긴 했지만 말이다.

고모집에 가있던 일도 기억이 가물가물한걸 보니 수박씨를 먹은지도 꽤 된것 같다. 그래도 성우의 배는 커지지 않았다. 수박이 달리면 수박만큼 배가 둥글하게 커져야 하는건데 성우의 배는 홀쪽하게 들어붙어있다. 수박이 배속에서 달리지 않은게 분명했다. 성우는 “칫~”하면서 자고있는 민수의 뒤통수를 째려보았다. 민수도 민수엄마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되였다.
“엄마가 왜 안올가? 이젠 열쇠도 있는데. 엄마가 오면 이 열쇠로 같이 집에 들어갈수 있는데… …”
중얼거리며 엄마생각을 하다말고 성우는 잠이 들고말았다.


3
성우는 대문을 지키는 선생님한테 들키기라도 할가봐 잔뜩 몸을 옹송그린채 달음박질치다싶이 교문을 빠져나왔다. 점심에는 집에 못가게 되여 있었다. 하지만 성우는 빨리 집에 갔다와야 했다. 아빠와 물어볼것이 있었다.
오전의 마지막시간은 체육시간이였다. 체육시간에 성우는 물을 마시려고 교실에 갔다왔었다. 교실에는 선생님말고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얼굴이 하얗고 뿔테안경을 건 여자였다. 그 여자를 보는 순간 성우는 가슴이 쿵쿵거렸다. 어제 복도에서 딪쳐서 하마트면 넘어질번 했던 일을 선생님한테 일러주러 왔나보다고 생각했다. 선생님한테서 당장 호통이 떨어질것 같아서 눈치를 흘끔거리며 자기 책상으로 슬몃슬몃 게걸음을 쳤다.
“성우학생, 인사 안해요? 울 학교 선생님인데. 전학해온지 두어달밖에 안돼서 언니가 선생님인줄 모르나봐요.”
선생님이 성우를 보며 웃고있었다. 성우는 책상안에서 물고뿌를 꺼내다말고 그대로 어정쩡하게 허리를 굽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마트면 머리를 책상에 박을번했다.
“네”
얼굴이 하얀 여자는 짧게 대답하며 웃는듯 마는듯 성우를 바라보았다. 성우는 눈을 내리깔며 그 눈길을 피하여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고뿌를 책상안에 넣기 바쁘게 부랴부랴 교실문을 나왔다. 막 복도를 달아지나려다 다시 교실문어구로 발볌발볌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 선생님한테 어제 일을 일러주는게 아닌지 듣고싶었다.
“저 애가 어떻니?”
“저 애요? 애가 똘망똘망하고 좋아요. 근데 집에서 틀어쥐는 사람이 없어서 생활이 꼭 째이지 못했어요.”
“엄마 아빠는?”
“글쎄요. 아빠말로는 엄마가 일본갔다 그러는데 그런것 같지도 않아요. 애하고 물어보면 모른다 그러거든요. 리혼한것 같기도 한데 물어보기도 그렇고… 애가 자꾸 사람눈치를 핼끔핼끔 봐요. 엔간해서는 애들이고 저한테 맘을 줄려고 안해요. 암튼 가정에서 잘 틀어쥐면 잘할수 있는 애예요. 언니, 저 애 알아요?”
“아~ 잘 아는것은 아니고. 내가 영안에 있었잖니? 저 애가 영안에 있을 때 본적이 있거든.”
“아, 맞다. 언니가 영안학교에 있었지.”
성우는 콩콩거리는 가슴을 꼭 누르며 급히 되돌아쳐나갔다. 운동장에서는 애들이 한창 유희를 하고있었다. 체육시간을 보는 동안 성우는 내내 엄마생각만을 했다. 성우는 엄마가 일본으로 갔다는게 밑겨지지 않았다. 일본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아주 멀리 있다는것만은 알고있었다. 거기 가면 쉽게 오고갈수 없다는것도 알고 있었다. 성우네 학급의 금실의 엄마도 일본으로 간지 2년이 되는데도 한번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철수의 아빠도 한국으로 간지 까마득하게 오란데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아무튼 엄마 아빠들이 어덴가로 가면 몇년이 지나도 올수 없는 곳인줄을 성우는 알고있었다. 성우가 유치원 때 어디 돈벌러 간다던 엄마도 아주 오래되여 돌아왔었다. 아무래도 엄마랑 그냥 영안에서 살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냥 영안에서 살았더면 엄마와 헤여지는 일도 없을것이였다. 그런데 아빠가 문제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빠때문에 엄마와 헤여진것 같았다.
성우는 체육시간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기 바쁘게 집으로 도망을 쳤다. 아빠랑 엄마가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고 다시 학교로 갈 생각이였다. 아빠는 탄광에서 이사오고나서 늘 집에서 노니까 아마 이 시간이면 집에서 텔레비죤을 보고있을것이였다.
“엄마가 일본에 가지 말아야 하는데. 그럼 참 오래동안 못올건데… …난 엄마가 있어야 좋은데…”
성우는 중얼거리며 급하게 큰 길을 건넜다. 10여분되는 거리를 5분도 안되여 뛰여온것 같았다. 덜렁거리는 삽작문을 열고 마당을 꿰질러 막 달려들어갔다. 집문에 열쇠가 걸려있지 않았다. 성우는 문손잡이를 쥐고 당겼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힘을 덜 주었나 싶어 더 힘있게 당겼다. 그래도 열리지 않았다. 속이 덜컥했다. 도적이 든게 아닐가고 생각했다. 겁이 났다. 성우는 발볌발볌 창문가로 다가갔다. 카텐이 드리워져있었다. 창문의 한쪽 귀퉁이로 눈을 가져갔다. 카텐끝이 살짝 들려져있었다. 손으로 눈언저리를 막은채 창문에 골을 바싹 갖다붙였다. 안을 들여다봤다. 아빠가 찬장쪽으로 몸을 돌린채 자고있었다. 성우는 창문을 잡아두드릴려고 주먹을 쳐들었다가 흠칫 내리우고말았다. 아빠가 낑하더니 성우쪽으로 몸을 돌려누웠던것이다. 성우의 눈이 커졌다. 가슴이 활랑거렸다. 옷장켠에 웬 여자가 누워있었다. 혹시 엄마인가고 찬찬히 여겨봤다. 엄마가 아니였다. 어디서 본 얼굴 같았다. 성우는 식지끝을 입에 문채 눈을 되록거렸다. 누군지 알수 없었다. 갑자가 화가 났다. 볼이 잔뜩 부어 입술을 앙다물었다.
“씨~ 아빠곁에 엄마말고 다른 사람 누우면 안되는데…”
정말이였다. 아빠곁에는 엄마밖에 누울수 없었다. 엄마랑 아빠랑 성우 셋이서 살 때 엄마는 성우를 벽쪽에 눕게 하였다. 성우곁에 엄마가 눕고 엄마곁에 아빠가 누웠다. 성우가 아빠와 엄마사이에 눕고싶어 끼여들라치면 엄마가 살살 달래면서 그랬다. 아빠곁에는 엄마만 누울수 있는거라고. 왜냐고 물으니 엄마와 아빠는 한편이기때문이랬다. 그 사이에 성우가 누우면 엄마랑 아빠랑 한편이 될수 없다고 했다. 성우는 누구편인가고 물었더니 엄마아빠가 한편이 되면 성우고 따라서 한편이 되는거랬다. 엄마아빠가 한편이여서 성우가 있게 된거라고 했다. 한편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아무튼 엄마와 아빠가 가지런히 누워야 하는줄을 알게 되였다. 그런데 오늘 아빠곁에 다른 여자가 누워있다니? 그럼 아빠와 아빠곁에 누운 여자가 한편이 되는걸가? 성우는 자기는 누구편이 되여야 할지 몰랐다. 혹시 아빠가 화나서 저러는것은 아닐가고 생각했다. 성우와 엄마가 아빠 혼자 놔두고 영안에 가서 한동안 아저씨랑 살아서 화났을것 같았다. 아빠가 엄청 화를 낸 모습을 본적이 있었다.


성우가 영안에 간지 한달쯤 된후의 어느날이였다. 성우가 학전반에서 돌아오니 집마당에 오토바이 한대가 세워져있었다. 누가 왔나보다고 생각하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아빠가 씽 달려나왔다.
“아빠~”
성우가 반갑게 소리쳤다.
“어?! 성우야!”
아빠가 성우를 덥석 안아주셨다. 성우의 볼에 아빠얼굴을 마구 부볐다. 까칠한 수염때문에 얼굴이 따가왔다.
“성우야, 아빠 보고싶었지? 아빠랑 같이 가자!”
아빠가 성우를 안은채로 오토바이께로 다가갔다.
“안돼요!”
뒤따라나온 엄마가 성우를 확 나꿔챘다. 그바람에 성우가 땅에 떨어질번했다.
“왜 안돼? 성우는 내 아들이야.”
아빠가 성우를 내려놓으며 꽥 소리를 질렀다.
“성우는 내가 키울거예요. 내가 없는 1년사이 당신 성우 제대로 밥먹이고 거둬준적이 있어요? 내가 성우를 데려올 때 애가 가무잡잡하고 까칠합데다. 아빠질을 어떻게 잘했으면 애가 그래요? 당신 애를 키울 능력 없어요.”
“뭐야? 그래 내가 애를 잘 안 키워서 그새 니보다도 어린 놈이랑 붙었냐? 너 외지로 돈벌러 간다구 갈 때 벌써 그 작정을 하구 간거지? 농촌에서 땅 뚜지기 싫어서 다 팽개치구 간거지?”
“내가 뭘 보구 살아? 남처럼 돈있냐, 능력있냐? 그러게 내가 언녕 말했지? 시내에 들어와서 사람답게 살자구. 허구헌날 땅속에 파묻혀 그게 머야? 차라리 두더지하고나 살어. ”
“난 성우 데려갈거야! 바람난 년놈한테서 애가 멀 배우겠어?”
아빠가 성우의 손을 잡아끌었다.
“안돼. 애는 엄마가 있어야 해!”
엄마가 성우를 제쪽으로 끌어당겼다. 된다거니 안된다거니 하며 아빠와 엄마가 밀치락거리는 통에 성우는 량쪽에 잡힌 팔이 아파왔다.
“성우가 누굴 따라가겠는가고 물어보구 결정해.”
“그래 그러자. 성우야, 아빠랑 같이 갈거지?”
아빠가 성우를 바라봤다.
“성우야, 엄마랑 같이 있는게 좋지?”
엄마도 성우의 눈을 들여다봤다. 성우는 아빠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봤다.
“난 엄마 아빠가 다 같이 있었음 좋겠는데…”
성우가 입속으로 어물거렸다. 왜서 한사람을 선택해야 하는지 몰랐다.
“성우야, 아빠랑 같이 가자. 아빠가 네가 없어져서 얼마나 찾았다구 그러니?”
아빠가 성우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성우야, 엄마랑 있어야 돼. 아빠 따라갈거야?”
엄마가 눈을 크게 뜨고 성우의 입만 쳐다본다. 아빠와 엄마를 번갈아보다말고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같이 있을건데…”
“너?!”
아빠가 성우를 노려보더니 발을 탕 굴렀다. 두볼이 무섭게 씰룩거렸다. 아빠는 성우와 엄마를 한참이나 잡아먹을듯이 노려보더니 성우의 팔을 홱 팽개치고 오토바이에 힝하니 올라탔다. 오토바이 뒤꽁무니에 뽀얗게 피여오르는 먼지를 보며 성우는 아빠가 무척 화가 났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할수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있고싶었다.
저녁에 아저씨가 돌아왔다. 엄마가 낮에 있은 일을 아저씨한테 이야기해줬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르겠어요. 생 야단을 치고갔어요.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당장 자기와 함께 가자데요. 내가 안가겠다고 하니까 목에 칼을 들이대데요. 죽인대요. 그런다고 내가 가겠어요? 나 다시 그런 시궁창에 들어가 못살아요. 다시 갈거면 집을 나오지도 않았겠어요. 한참 시악거리다가 제풀에 물러가는 판에 성우가 온거얘요. 성우를 데려가겠다길래 못데려가게 했죠. 애하고 물으니까 애도 안가겠다고 했어요. ”
“그랬어? ”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했고 아저씨도 아무렇지도 않게 들으셨다. 그날 밤 성우는 아빠걱정을 하며 엄마곁에 누워서 한참이나 뒤치락거렸었다. 아저씨는 엄마곁에 누우셔서 성우보고 빨리 자라고 재촉을 하셨다. 엄마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학전반에 간다며 빨리 자라고 했다. 곰인형을 안고 겨우 잠든 성우는 꿈에 아빠를 보았다. 아빠는 얼굴이 빨개서 화를 잔뜩 내면서 성우를 보는척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아무래도 성우가 엄마랑 아저씨랑 한편이 된것때문에 화가 났을것 같았다.
4

아빠가 자기때문에 화가 나서 모를 여자와 한편이 되였을거라고 생각하니 성우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성우는 갑자기 편이 없어지고말았다. 외토리가 되고말았다. 아빠와 엄마가 어디 갔냐고 물을걸 잊은채 성우는 목에 걸린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타박타박 집마당을 걸어나왔다. 눈물이 똘랑똘랑 떨어졌다. 삽작문앞에 쪼크리고 앉았다. 엄마가 보고싶어졌다. 정말 엄마는 일본에 갔을가? 엄마는 지금 누구랑 한편이 되였을가? 배에서 꼬르륵소리가 났다. 점심밥도 먹지 않고 도망쳐나왔던것이다. 학교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선생님한테 발각되였을것 같았다. 학교에서 주는 도시락이 맛이 없다고 밥을 안먹는 애들이 한둘씩 있었다. 슬그머니 밥곽을 도시락통에 담아놓으면 선생님은 누가 점심밥을 먹지를 않았는지 금방 알아내고 조금이라도 먹도록 독촉을 하셨다. 오늘도 도시락이 남은걸 보면 성우가 없어진것을 눈치챘을것이다. 이맘때쯤이면 애들을 시켜 성우가 어디에 가서 놀음에 빠졌나 구석구석 찾고있을지도 몰랐다. 선생님생각을 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성우는 발걸음을 빨리 했다. 막 뛰였다. 학교대문에 들어서는데 접수실에 있던 당직선생님이 부르셨다.
“학생, 어디 갔다오는거죠? 대문출입허가증은 바쳤어요?”
“네? 저…”
“아~ 제 친구네 앤데요. 제가 좀 데리고나갔댔어요.”
성우가 어물거리는데 하얀 손이 뻗쳐와 성우의 손을 잡았다. 힐끗 쳐다보았다. 뿔테안경속에서 쌍겹눈이 성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직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보라고 손을 저으셨다. 성우는 하얀 손에 이끌려 교실까지 갔다. 아니나다를가 선생님이 한창 애들에게 성우를 못보았느냐고 묻고있었다.
“성우가 저기서 혼자 놀고있어서 데려왔어. 애 닥달하지 마.”
“언니, 수고했어. 난 그런줄도 모르고 애가 잃어진줄 알고 놀랬어. 막 성우아빠한테 전화하려던 참이였어.”
선생님이 성우의 뒤통수를 툭 치며 도시락을 주셨다. 성우는 머리숙여 인사하고는 제 자리에 들어가 앉았다. 밥을 먹으며 뿔테안경을 건 여자선생님이 오늘 왜 저럴가고 생각했다. 어제 부딪쳐서 넘어뜨릴번 한 일을 선생님한테 고자질하지 않은것도 이상했고 아까 거짓말을 한것도 이상했다. 거짓말을 하면 안되는줄 알고있었다. 성우는 언젠가 한번 거짓말을 해서 크게 혼난적이 있었다.


아빠가 왔다가 화를 내고 간후의 가을, 엄마와 아저씨는 성우를 고모네 집에 맡기고 경신에 있는 아저씨네 집으로 가을하러 가셨다. 고모는 학교선생님이라서 그런지 성우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는 법이 없었다. 무슨 일이든 이건 해라 저건 하지 말라 구분이 분명했고 저녁마다 공부를 가르쳐주었다. 성우가 조금이라도 모르는 눈치가 보이면 짜증을 내셨다. 옷을 씻을적마다 장난이 심하다고 잔소리를 했다. 학교에서도 쩍하면 학전반에 찾아와서 성우가 어찌하는지를 살피곤 하셨다. 하얀 얼굴이 성우를 볼 때면 찌푸러져있었다. 성우가 고모집에 있은지 열흘쯤 되였을가 하는 일요일오전이였다. 빨래를 한다고 소란스럽던 고모가 째지는듯한 소리로 성우를 불러댔다. 그림영화를 보던 성우는 화들짝 놀라 눈이 둥그래서 고모한테로 뛰여갔다.
“성우야, 너 똥 쌌니?”
“아…아닌데요.”
“너 똥 쌌잖아?!”
“안 쌌습니다.”
성우가 울먹거렸다.
“아니, 요것이?”
고모는 당장 내려치기라도 할듯이 주먹을 쳐들었다. 성우는 겁이 나서 목을 움츠렸다.
“왜 그렇게 소란스러워?”
고모부가 다가와 힐끔거렸다.
“얘가 글쎄 똥을 싸고도 안쌌대요.”
고모가 쌕쌕거렸다.
“관둬. 안쌌으니까 안쌌다겠지.”
고모부가 고모를 말리셨다.
“이걸 봐요. 팬티에 분명이 똥이 묻어있는데 안쌌어요? 쌌으면 말이라도 해야지 이게 뭡니까? 조꼬만것이.”
고모가 어지러워진 성우의 팬티를 성우의 코앞에 대고 흔들어댔다. 성우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바들바들 떨렸다. 당금 매가 떨어질것 같았다. 언젠가 고모네 학급에 갔다가 고모가 학급의 애를 혼내는것을 본적이 있었다. 짧다란 막대기로 막 때리는것이 무서웠었다. 고모가 뭐라도 쥐고 내려칠가봐 무서웠다.
“이 녀석이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거예요. 지난번에두 분명히 오줌을 쌌어요. 아침에 자리를 거두면서 축축하길래 물었더니 안쌌다고 하니 그런줄 알았죠. 오늘 봐요. 이렇게 팬티에까지 묻었는데 똥을 안쌌다고 우기잖아요.”
고모는 성우가 들으라는듯이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성우는 아니라고 할수가 없었다. 아침에 대변을 보는데 물지똥이 찔찔 흘러내렸다. 다 누었는데도 또 마려워 변소로 달아가는 사이 팬티에 찍하고 말았던것이다. 슬그머니 팬티를 벗어 씻을 옷더미속에 처박았었다. 고모가 다 알고 말하는데 우길수가 없었다.
“쌌…쌌어요…”
“그런데 왜 처음에 승인하지 않았어?”
고모가 눈을 부릅떴다.
“무서워서…”
“너 그러고 또 엄마보면 고모 어떻게 혼내더라고 흉 볼려구 그러지? 고모가 잘해줘도 넌 고모흉만 보잖아. 암튼 피는 못속인다니까. 저게 제 피줄이면 저러겠어? 아니, 오빠도 머가 좋다구 애딸린 여자를 얻구 그래? 아무리 농촌에 여자없어서 장가 못간다구 해도 그렇지. 남의 자식 어떻게 키울려구 저래?”
성우를 혼내다말고 고모는 알지도 못할 소리를 중얼거리며 신경질적으로 비누를 바른 옷을 빡빡 비벼댔다.
그날이후로 성우는 고모집에 한달 있는 사이 거짓말을 할 엄두도 못냈다. 한달후 엄마가 돌아와서 고모가 어떻게 해주더냔 말에 고모가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하고 눈만 끔벅거렸었다.


5


성우가 밥을 먹고 밖에서 노는데 누군가 교무실에서 선생님이 찾는다고 하셨다. 점심에 집에 갔다온것이 들통났나싶어 걱정하며 교무실에 가보니 뿔테안경을 건 여자선생님이 계셨다.
“울 선생님은요?”
성우는 선생님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오~ 내가 널 불렀어.”
성우는 눈이 커졌다. 어제 부딪친 일을 이제야 혼내려는줄 알았다.
“성우야, 아까 점심에 어디 갔다왔지?”
“집에요.”
“집엔 왜? 집이 가깝니?”
“저기 큰길뒤에 있어요. 아빠와 엄마가 언제 오냐구 물어볼려구요.”
“그랬구나. 엄마가 어딜 갔지?”
“몰라요. 먼데 갔어요. 금방 온다 그랬는데 안와요. ”
“언제 갔니?”
“내가 학전반때 갔는데… 아저씨랑 싸우고 날 아빠한테 데려다주고……”
“결국 그렇게 됐구나. ”
여자선생은 한숨을 지으셨다.
“너 날 뭐라고 부를건데?”
“네?”
난데없는 물음에 성우는 얼떠름해졌다.
“선생님이라고…”
“고모라고 안불러? 응?”
성우의 어깨를 부여잡고 성우의 눈을 들여다보며 묻는 말에 성우는 뭐라고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울 학교선생님인데…선생님이라고 …”
“그러는것도 좋겠다. 난 이제 니 고모가 아니니까. 원래부터도 아니였지만. 그래, 그렇게 선생님이라고 불러.”
성우는 고개를 까댁거렸다. 어제부터 하는것을 봐선 고모라고 부를 때보다 무척 상냥해보였다. 다들 고모가 되면 애한테 무섭게 대하는 모양이였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니 성우를 미워하지 않는것 같았다. 교무실에서 나오며 성우는 정말로 엄마가 어디로 갔을지 궁금했다. 엄마는 성우에게 그냥 먼데로 간다고 했다. 돈을 벌면 인차 돌아올거라고 했다. 그런데 아직도 안온다. 콩알을 넣은 유리통도 거의 찬다. 엄마가 성우를 아빠와 같이 살던 문앞에 부리워놓던 날부터 성우는 유리통 하나를 얻어다가 콩알을 넣기 시작했다. 큰 수자는 잘 셀수 없지만 매일 한알씩 넣는것을 잊지 않았다. 그 유리통에 콩알이 차기전에 엄마가 돌아올거라고 믿었다. 아빠와 같이 세집동네탄광으로 갈 때도 그 유리통과 콩을 가지고 갔다. 놀음에 빠지다가도 자기전이면 꼭꼭 한알씩 주어넣었다. 이제 50알까지는 셀수 있다. 그런데 50알을 다 세여도 콩알은 엄청 많이 남는다. 전번날 콩알을 좌르륵 쏟아놓고 50알씩 세여 무지를 만들어보았다. 여섯무지가 되고도 콩알은 남았다. 여섯무지가 얼마인지 알수 없었지만 넘 많은것 같았다. 엄마가 왜 이리 안오는지 알수 없었다. 아빠가 남의 편이 되기전에 얼른 왔으면 좋겠다.


겨울에 눈이 내릴 무렵, 엄마는 점심무렵이면 영안에서부터 시내로 차를 타고 갔다. 어느 노래방에서 카운터를 본다고 했다. 늘 밤중에 성우가 잠이 든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는데 항상 술냄새가 났다. 어떤 날은 련며칠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저씨와 엄마가 싸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티각태각 말싸움이였다. 싸움은 꼭 아저씨가 먼저 걸었다. 잠을 자다가 엄마가 들어오는 문소리에 일어난 아저씨는 화를 내군 했다.
“당장 그 일을 때려치워. 맨날 밤중에 다니는게 싫지도 않아?”
“안그럼 어떡해요? 당신 혼자 번 돈으로 생활하기가 빠듯한데. 내가 혼자 좋자구 이 짓거리 하구 다녀요?”
엄마도 지지 않고 따박따박 대들었다.
“다른 일은 못해? 하필이면 노래방이야?”
“그 일만큼 일이 쉽고 돈을 잘 버는게 어디 있어요. 월급 말고도 매일마다 얼마씩은 떼여낼수 있다고요.”
이쯤이면 아저씨가 벌컥 역증을 내셨다.
“정말 돈때문이야? 당신 남자랑 추근거리는 본성때문이 아니야? 제힘으로 벌어먹고 살아야 돼.”
“허이구, 그렇게 제힘으로 벌어먹구 살아서 여태 장가도 못가구있었어요? 내가 아니면 자기가 어딜…”
“말이면 다야?”
엄마말이 끝나기도전에 아저씨의 말과 함께 베개가 날려갔다. 엄마도 지지않고 먼가를 쥐여뿌린다. 성우는 이불속에 옹송그린채 숨도 크게 못쉬고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 그냥 자는척 꼼짝하지 않았다. 무서웠다. 그렇게 자주 싸우더니 어느날엔가 엄마가 성우의 짐을 와락와락 꿍쳐 차에 싣더니 성우를 짐과 함께 아빠집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성우야, 엄만 이제 멀리 가야 돼. 그러니깐 아빠하고 살어. 엄마가 돈 벌면 성우 데릴러 올게.” 하고는 차에 도로 앉아 가버렸다. 그렇게 성우는 아빠랑 같이 살게 되였고 아빠가 농사일을 집어치운다기에 세집동네탄광에서 살다가 시내에까지 이사를 오게 된것이였다.


성우는 교실로 가면서 목에 걸린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열쇠를 목에서 벗겨내려 한참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아무래도 열쇠가 있어도 인제 엄마는 안올것 같았다. 아빠가 남의 편이 될려고 하니까. 성우는 열쇠를 층계옆에 놓여있는 쓰레기통에 확 던져버리고는 교실로 종종걸음을 쳤다. 뒤따라나온 뿔테안경을 건 여자선생이 성우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서있었다……



                                                                                                                                                                                         200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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