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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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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재비
2011년 09월 16일 18시 52분  조회:1125  추천:1  작성자: 김영해
 버마재비
 
김영해
 
1
“길남아~”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찐한 먹물을 풀어놓은듯 주위는 캄캄하다. 목소리의 임자는 보이지 않았다. 끝없이 깊고 무거운 검은 색들이 주위로부터 한꺼번에 덮쳐오며 가슴이 답답해왔다. 가까스로 들이숨을 몰아쉬였다.
“길남아~”
환청같이 들려오는 부름소리는 석쉼했다.  문득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눈길을 들어보니 앞에 아버지가 서있었다. 나타나는 자취도 없이 나타나버린 아버지. 앙상하게 여위고 찌든 얼굴에 턱수염이 더부룩했다. 소죽이 얼룩덜룩 묻어있는  볼썽사나운 옷을 걸치고 있는 허름한 품속에 난데없이 아기 하나가 안겨 방긋방긋 웃고있었다.
웬 아기지?
길남이는 눈이 머룽해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윤택없이 꺼슬꺼슬한 아버지의 얼굴에 느긋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봐라. 귀엽지? 아기가.”
아기는 길남이를 향해 뭐라고 옹알거리며 작은 팔다리를 바둥거린다. 똘망똘망한 눈빛이며
볼우물이 옴폭 패인 얼굴모양이 눈에 익다.
누구지?
“네 아들이잖아. 꼭 널 빼닮은 네 아들!”
아버지가 벙글거리며 아기를 길남이의 코앞으로 들이민다.
아들?
길남이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제서야 아버지의 뒤에 어눌해서 서있는 히죽히죽 웃는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길남이는 아기를 향해 팔을 뻗쳤다. 갑자기 어디선가 불길이 치솟았다. 아버지가 아기를 안은채 돌따져 걸어갔다. 길남이는 허둥거리며 아버지를 쫓아갔다. 어딘가로 몰려가는 사람들로 주위가 소란스럽다. 악을 쓰며 달려도 아버지는 아득히 멀어만 가고 낯익은 남자애가 치솟는 불기둥앞에서 바들바들 떨고있다……껑충한 장정 하나가 찌그러진 걸상우에 위태롭게 서있고 그를 향해 돌멩이며 몽둥이며가 날아간다. 왁자하니 소란스럽다. 귀가 멍멍하다……
누구지? 왜 저러는데?
아버지는? 내 아들은?
길남은 식은 땀을 쫙 흘리며 눈을 번쩍 떴다. 깜깜하다. 눈을 떴다는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깜깜하다. 깊은 갱속에 버려진것 같은 느낌에 금방의 꿈까지 합세를 하여 웬지 기분
이 찝찝했다. 자기 다리우에 놓여진 옆사람의 다리를 들어 옮겨놓고 몸을 반쯤 일으키고 손
더듬질하여 담배를 찾아 피워물고 라이타를 켰다. 알싸한 담배연기가 목구멍으로 흘러들며
정신이 맑아왔다. 손을 베개밑에 밀어넣어 얄팍한 작은 수첩을 꺼내들었다. 라이타를 켜고
가물거리는 빛을 빌어 수첩에 적힌것을 살펴보았다. 7월에 탄광에 온 날부터 적은 로동량이
다. 매일마다 석탄을 몇버럭씩 캐냈는지를 또박또박 적었다. 이제 결산을 할 때면 자기가
적은것과 탄광로반이 적은것을 맞추어보면 된다. 50여일동안의것을 합하니 적지 않다.  돌
아갈 때면 꽤 큰 돈을 쥘수 있을것 같아 길남이는 마음이 느긋해졌다. 꿈에 보았던 아버지
의 얼굴과 아기의 얼굴이 눈에 밟혀온다. 길남이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수첩을 베개밑에
밀어넣고 다시 이불속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2
“휘여~휘여~”
“망할놈의 닭새끼들, 가을배추 다 쪼아먹으면 어쩌누? 휘여~”
마우재댁은 슬리퍼를 질질 끌며 삽작문을 들어오다말고 급히 머리에 썼던 거무틱틱한 세수수건을 벗겨내려 휘둘러댔다. 밭이랑사이에서 안짱다리로 용케도 일자를 그으며 몸을 기우뚱거린다. 그 흔들림에 따라 수건은 대중없이 너펄거리는데도 닭들은 푸드득거리며 펑 뚫린 울바자사이를 비집고 달아났다.
“명호에미, 뭘 하우? 닭두 안쫓구?”
마우재댁은 뼁끼칠이 누룽지처럼 꺼슬꺼슬 까풀이 벗겨지는 출입문을 향해 소리를 높이다말고 역시나 기우뚱거리며 징검다리를 건느듯이 아슬아슬하게 밭이랑을 타고넘어갔다. 발로 툭툭 차기도 하고 손으로 헤집어놓기도 하며 옥수수대로 엉성하게 엮여진 울바자사이의 구멍을 막아놓았다.
“에구, 길남이라두 있으문 장재라도 온전히 세우련만~”
마우재댁은 우묵한 눈두덩이를 쓱쓱 문질러댔다. 누르끼레한 눈꼽 하나가 물기와 함께 손등에 묻어나온다. 마우재댁은 그 눈꼽을 희부옇게 색을 잃어가는 검정몸베에 쓱 닦아버렸다.
“이 배추를 저눔집 닭들의 성화에 제대루 먹을수 있을지 모르겠네. 닭건살 왜 저리 한다우? 쯧쯧~”
혀를 차며 닭의 발에 밟혀 넘어진 배추포기들을 바로 세워놓고 북을 돋구어주었다.
“아매~”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머리를 들어보니 다섯살잡이 명호녀석이 밭이랑을 넘느라고 뒤뚱거리고있었다.
“에그~ 기다려라. 아매 인차 갈게.”
손에 묻은 흙을 툭툭 털며 마우재댁은 또 아슬아슬하게 밭이랑을 탔다.
“아니, 너?!”
팔을 벌려 명호를 안아주려다 말고 마우재댁은 기겁을 했다. 애가 코구멍에 알약 하나씩 밀어놓고 팽하니 제 할미를 쳐다보고있지 않는가? 장한 일이나 한듯이 새물새물 웃기까지 하면서말이다. 코물을 훌쩍이기라도 하면 당금이라도 알약이 코구멍으로 미끌어져들어갈것 같았다. 마우재댁은 서둘러 애가 들이숨을 못쉬게 왼손으로 애의 코량쪽을 꼭 쥐고 오른손으로 머리삔을 뽑아 알약을 살살 뚜져냈다. 그 사이 영문을 모르는 명호는 난데없는 봉변에 몸을 비틀며 앙앙 울음을 터뜨렸다. 다행히 약알이 넘 작지 않았던 까닭에 코구멍끝에 걸려있어 쉽게 꺼낼수가 있었다.
“너 다시 이럼 죽는다, 죽어~ 코가 깡 막히면 숨을 못쉬여서 죽는다구.”
마우재댁은 명호의 볼기짝을 짝짝 쳐대며 혼을 냈다.
“니 엄만 뭐하느라고 대가리두 안내미는거여?”
“잉~엄마, 없다, 엄마 빰빠다~ 잉잉~”
명호는 훌쩍이며 할미의 다리를 부둥켜안는다. 마우재댁은 명호를 건뜩 들어올려 안은채 그걸음으로 씽하니 달려가 출입문을 벌컥 열었다. 여자가 보이지 않았다. 정지칸은 애놀이감이며 옷견지들로 한가득 널려있었다.
“에그, 맨날 이렇게 어찌 사오? 제 새끼 건사두 안하구 또 어딜 갔다는게우?”
심기가 불편해진 마우재댁이 투덜거리며 주섬주섬 널린것들을 줏는데 밖에서 떨렁거리는 소방울소리가 들려왔다. 삽작문에 매달아놓은 소방울소리다. 삐꺽거리는 삽작문을 열고 미적거리며 들어서는 여자의 모습이 창문너머로 훤히 보였다.
“아니, 어딜 갔다오는게우? 애건사두 안하구 집두 안지키구……지금 어느 때우?”
마우재댁은 창문을 열어제끼고  막 채마밭중간에 난 길을 따라 걸어들어오는 여자를 보고 언성을 높였다. 불깃해진 얼굴에서 거멓게 줄을 그으며 땀이 흘러내리고있는 여자의 아래배는 툭 다치기라도 하면 금방이라도 터질듯 부풀어있었다.
“저어기메르~”
여자는 길중가운데에 엉거주춤 선채 입속으로 웅얼거리며 대중없이 손가락질을 해댔다.
“저기 어디루? 그 몸으루 맨날 돌아다님 어찌우?”
“명호애비 왔는가구……가서 피뜩 보구 오느라구……와서 날 찾을가봐……”
여자는 한손으로 허리를 짚고 한손으로 불룩한 배를 슬슬 만지며 잘못을 저지르고 선생님앞에 호명된 소학생처럼 고개도 못든채 떠듬거린다.
“뭐라우? 또 건너마을 갔다왔소? 내 가지 말라고 몇번 말했소? 명호애비 이전 안오우, 안와! 그리구 이전 길남이가 명호애비우. 왜 그렇게두 말을 못알아듣수?”
마우재댁은 발을 탕탕 구르며 침방울을 튕기건만 여자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고개를 숙인채 흰자위가 많은 눈을 희번덕거린다.
“에그, 이전 정말 가지 마오. 다시 가문 이 집에 못들어오게 하우 양? 쯧쯧~”
여자는 고개를 주억거리다말고 뚱기적거리며 뒤축이 물앉은 낡은 운동화를 질질 끌며 집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 모습을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말고 마우재댁은 화김에 혼자 놀고있는 명호의 엉뎅이를 철썩 두드렸다.
“으앙~”
울음이 터지는 동시에 출입문이 드세게 벌컥 열렸다. 불편한 몸매와는 달리 제법 날래게 들어선 여자가 헐씨금거리며 구들에 올라와 명호를 그러안는다. 그러고는 마우재댁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길이 웬지 독살스럽다.
“어이구~ 제 새끼는 알아가지구. 쯧쯧…”
마우재댁은 여자의 눈길을 피해 구들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발에 꿰였다……
 
3
 
사지가 욱신욱신하다. 눈을 떠야겠는데 눈이 떠지지 않는다. 너무 깊은 잠이 들었나보다. 가끔 깊은 잠에 들면 깨여날려고 해도 온 몸이 해나른해나며  깨여날수가 없었다. 일이 고단했던 모양이다. 길남이는 그래도 일어나야지 하며 가까스로 눈을 떴다. 여전히 깜깜하다. 요즘엔 이상하다. 눈을 뜰 때마다 주위가 깜깜한것이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자꾸 헛갈린다. 확실하게 눈을 뜰려고 길남은 눈을 힘주어 깜박였다. 여전히 깜깜하다. 라이타라도 찾아 켜야겠다. 베개밑을 손더듬질해야 하는데 오른손이 천근무게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다시 왼손을 움직여본다. 짜릿한 통증이 전해온다.
악몽이라도 꿨나? 아직도 꿈속인가?
왼손을 베개밑에 넣었다. 베개대신 딱딱한것이 만져진다.
응, 뭐야? 
잇달아 머리가 만져진다. 눈앞이 아찔하다. 손에 끈적끈적한것이 묻어나온다. 가까스로 왼손을 끄당겨 눈앞에 갖다댔다. 보이지 않는다. 코를 킁킁거렸다. 비릿한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뭐지?
길남이는 몸을 일으키려고 안깐힘을 썼다. 움직여지지 않는다. 제몸같지 않다. 왼손으로 몸을 더듬었다. 돌멩이같이 딱딱한 덩어리들이다. 다시 얼굴을 만졌다. 무슨 부스러기와 끈끈한것이 묻어난다. 주위를 더듬었다. 차가운것이 손끝에 맞혀온다. 가까스로 끄당겨 더듬더듬해보니 쭈그러진 안전모다.
어?!
길남은 신음 비슷한것을 토해냈다.
꿈속이 아니였다!
갱속이였다!!!
그제야 사고가 났다는것을 남의 일처럼 기억해내고 말았다. 점심을 대충 먹고나서 석탄을 한버럭쯤 캐냈을 때였다. 드릴을 멈췄는데도 갱속이 흔들리고 있었다. “뿌지직~뿌지직~”하는 소리에 머리를 돌려보니 갱에 받쳐놓았던 버팀목이 넘어지며 갱이 무너지고있었다. 흠칫하고 몸을 튕길새도 없이 천정이 와그르르 무너지며 길남이는 “악~”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었다. 상황파악이 전혀 안되였다. 갱이 어느만큼 무너졌는지도, 자기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도, 자기가 숨을 쉬고있는 공간이 어느만큼 되는지도 전혀 알수가 없었다. 그저 깜깜했다. 눈앞도 머리속도 깜깜했다. 오른손과 몸의 가슴아래부분이 파묻힌것 같고 머리통도 깨여진것 같았다. 파묻힌 부분도 상했는지 어쨌는지 통 감각이 없다.
몇시쯤 됐을가? 아직도 점심때일가? 우에서는 내가 파묻힌줄 알고나 있을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머리가 찌끈찌끈 아프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다. 갑자기 추워났다.
불이라도 쪼였으면, 성냥불이라도 쪼였으면……
길남이는 팍하고 성냥개비를 그어댔다. 시린 손을 녹이려고 두손을 오무려 성냥개비에 붙은 불을 감쌌다. 꽁꽁 언 작은 손은 짚더미를 뚫고 스며드는 랭기를 막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불이 꺼졌다. 다시 성냥개비를 그었다. 발을 내밀었다. 누덕누덕 기운 꺼먼 왕바신을 신은 작은 발과 역시나 솜이 미여져나온 솜바지를 꿰맨 다리는 몸과 떨어져있기라고 하듯이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발이 성냥개비를 쥔 손 근처에 닿기도전에 불은 꺼졌다. 성냥파는 처녀애를 닮은 자기 꼴을 생각하며  길남이는 신경질적으로 성냥개비를 팍팍 그어댔다……갑자기 불길이 치솟았다. 길남이가 치솟는 불기둥앞에서 바들바들 떨고있다. 작달막한 체구의 어린 남자애 길남이……껑충한 장정 하나가 찌그러진 걸상우에 위태롭게 서있고 그를 향해 돌멩이며 몽둥이며가 날아간다. 왁자하니 소란스럽다.……아버지가 거무죽죽하게 찌든 이불을 덮은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길남이는 아버지의 손을 잡아주려고 손을 내밀었다. 헌데 누군가 그 손을 확 채간다. 잔뜩 얼굴에 독을 올리고있는 엄마다.
 “아버진 이제 우리 식구가 아니다. 길남이하구 엄마만 같이 사는거다! 둘만.”
길남이의 손목을 잡고있는 엄마의 손아귀에 힘이 가해진다. 그렇게 손목이 아프도록 끌려가는데 갑자기 웬 여자가 마주보며 헤벌죽한다. 멀쑥한 얼굴에 군살이 시허옇게 붙었다.
“길남아, 네 색시다.”
그래, 색시지. 색시. 나에게도 색시가 있었지. 그런데, 그런데……머리가 왜 이렇게 아프지? ……내가 지금 몇살이지? …….여기가 어디지?.......색시 찾으러 가야 하는데, 아버지의 손도 잡아드려야 하는데…….
 
4
지명도 없이 애들엉덩짝만한 석비에<<17>>이라고 씌여져있는 곳에 마우재댁과 여자는 짐짝처럼 부리워졌다. 어제 늦은 오후에 탄광에서 길남이가 일한 돈을 받으러 오라고 전화와서 아침 첫차로 막 올라오는 길이였다. 돈을 길남이에게 주면 될것을 자기를 부르는것을 봐선 아마 일감이 많아서 계속 일을 시키려고 그러나보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석연치가 않았다. 왜 꼭 여자를 데리고 오라는지 알수 없었다. 여자가 임신 막달이여서 거동이 불편하다고 했는데도 기어이 여자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 돈은 누가 받으나 마찬가지일텐데말이다. 여자가 하는 소리며 행동이 남사스러워서 데리고 다니기 껄끄러웠지만 혹여 길남이가 배속의 애때문에 보고싶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명호만 떼여 옆집에 맡겨두고 왔던것이다. 거의 다달을즈음 웬 아줌마가 마주나오다말고 아는척을 했다.
“우메~ 길남이네 식구들입지?”
“양, 그렇소. 여기 길남이 일하던데우? 주길남이?”
마우재댁은 옳게 찾았다싶어 반색을 했다.
“예. 그렇스꾸마. 날래 들어갑소. 사람들이 기다리꾸마. 어유~ 어쩌겠슴둥……”
아줌마는 얼굴을 흐리며 한숨을 내쉬였다.
두런거리는 말소리를 들었는지 집안으로부터 남자 대여섯이 우르르 쓸어나왔다. 키며 몸집이 저마끔이지만 얼굴은 하나같이 우둘투둘하고 거무칙칙하다. 헌데 길남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을 비집고 딱 바라지게 생긴 땅딸보사내 하나가 튀여나와 마우재댁의 손을 덥석 잡는다.
“길남이 어마임까? 오느라고 수고했음다. 내 여기 로반의 처남임다. 길남이 각시는?”
“양. 같이 왔소. 인사해라.”
마우재댁은 뒤에 있는 여자를 앞으로 내밀었다.
“안녕하심둥?”
여자는 별스레 머리를 비탈며 킥킥 웃었다. 다들 그러는 여자를 어정쩡해서 바라본다.
“근데 우리 길남이는? 어디 일하러 나갔수?”
마우재댁의 눈길은 길남이를 찾아 휘휘 한바퀴 돈다.
“길남이어마이, 힘들겠는데 먼저 들어가깁소. 각시두~ 글구 당신들은 가서 머 정리할게 있음 정리하우.”
땅딸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저어보이고는 마우재댁과 여자를 집안으로 끌었다. 마우재댁은 들어서자바람으로 한눈에 제일 옆에 포개져있는 길남이의 이불을 알아봤다. 길남이의 자리일거라싶어서 얼른 그쪽에 다가가 엉덩이를 건뜩 쳐들어 겨우 구들에 붙이고 들어앉아 방을 휘둘러보았다. 사람 대여섯이 들어서도 답답할만큼 비좁은 코구멍만한 방은 두칸으로 나뉘여져있었다. 출입문쪽은 한족구들로 되여있는걸 봐선 잠을 자는 곳일것 같았고 안쪽은 부엌인것 같았다. 구들에는 길남이의 이불말고도 거무틱틱한 이불이 다섯개나 뭉때그러져있었다.
“우리 길남이 이런데서 자면서 일했구나.”
마우재댁은 중얼거리며 엉거주춤 서있는 여자를 자기옆에 끄당겨 앉혔다.
“저어기…저…길남이어마이~”
땅딸보는 아까와는 달리 말을 갑자르고 있었다.
“양? 어째 그러우?”
“저어….저…맘을 크게 가집소…며느리두 당금 해산하겠는데…”
땅딸보는 길지 않은 말을 목에 가래라도 걸렸는지 끙끙거리며 한마디씩 뱉어냈다.
“뭐? 무슨 말이요? 맘을 크게 가지라니? 양?...”
마우재댁은 갑자기 속이 덜컥했다. 조선온돌인줄 알고 화닥닥 일어서다가 하마터면 넘어질번했다. 여자는 그것이 우습다고 손으로 입을 막고 키들거렸다.
“저…사실은 우리 탄광에서 어제 …사고났음다.”
“그래서? 그래 우리 길남이는? 어디 많이 상했소? 병원갔소?”
마우재댁은 허둥거리며 두서없이 물었다. 낯색이 벌써 까맣게 죽어가고 있었다.
“죽…죽었음다…”
로반은 혀아래소리로 웅얼거렸다.
“뭐? 뭐이라구?!”
마우재댁은 눈을 뒤로 까집으며 그 자리에 쿵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땅딸보는 급히 마우재댁을 안아 구들에 눕히고 연신 “길남이어마이”를 불러댔다. 여자는 눈이 데꾼해서 마우재댁을 바라보다가 길남이의 이부자리를 꼭 껴안는다. 아까부터 밖에서 서성거리며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어느새 우르르 집안으로 몰려들었다……
 
5
갱입구는 경사지게 한메터쯤 들어가서 풀썩 물앉고있었다. 여기저기 석탄덩이가 어지럽게 널리고 꺼먼 흙들이 볼썽스럽게 뚜져져 있었다.
“여기…이 밑에…길남이 있단 말이지? …흑흑~ 어쩌다가…흑흑~”
마우재댁은 무너진 갱입구에 퍼더버리고 앉아 땅을 어루쓸고 있었다. 땅을 어루쓸다 말고 석탄덩이를 주어내고 석탄덩이를 주어내다가는 다시 땅을 어루쓸며 넉두리를 하였다. 얼마나 오래 그러고있었는지 손이 석탄덩이만침이나 꺼멓고 손가락끝이 부르터서 피가 내돋아있었다.
아까 한참이나 쓰러져있다가 정신을 차린 마우재댁은 땅딸보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었다. 무너진 갱을 파서 길남이를 살려달라고 손이야 발이야 빌었다. 어딘가에 길남이가 살아있을거라고, 이 에미가 와서 구하길 기다리고있을거라고 했다. 헌데 땅딸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길남이어마이, 어마이 마음은 알만함다. 그런데 그게 어디 될 소림까? 저 갱이 얼마나 깊은지 암까? 경사루 수백메터구 또 수평으로 수백메텀다. 여기서 보구 어딘지 알구 어떻게 파겠음까? 우리두 구하기 싫어 안구한게 아님다. 저기 가봅소. 판 자리 있을겜다. 그런데 몇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못파겠습데다. 그렇게 두꺼운 흙이 무너졌는데 사람이 살수 있겠슴까? 우리두 다 생각해보구 길남이어마이를 부른겜다.”
“글구 이 사고두 엄격히 따짐 길남이탓임다. 어째 남이 다 올라와서 점심을 먹는데 길남이 혼자 갱에서 일을 하는가말임다. 원래 처음에 길남이 점심에두 일한다는 소릴 듣구 우리두 못하게 할가 하다가 어려운 형편에1전이라두 더 벌라구 가만놔뒀음다. 지금 보문 그때 말리지 않은게 후회됨다. 어찌갰음까? 그게 길남이 명이거니 합소. 산 사람은 살아야잰캤슴까?"
땅딸보는 미리 연습해온 대본을 외우듯이 한마디도 걸리지 않고 아무 색갈도 없는 말을 무덤덤하게 뱉어냈다. 마우재댁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울다가는 실신하고 깨여나서는 다시 울고 하기를 거듭하다가 늦은 오후에야 차츰  진정하는 추세였다. 겨우 기운을 차리고 길남이가 묻힌 자리라도 알고가려고 이렇게 무너진 갱을 찾은 마우재댁이였다. 거의 탈진한 상태의 마우재댁과는 달리 여자는 한켠에 있는 석탄더미우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마우재댁이 하는 짓거리를 남일처럼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이구…저건 제 남정 죽은줄도 모르구…흑흑~ 이전 어떻게 하우? 길남아, 니 어찜 그리두 맘이 모지냐? 이 에민 너만 믿구 여태 살아왔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다니? 흑흑~ 내 죽기전에 니한테서 엄마라는 소릴 다시 한번 들어보는게 소원이였는데…….”
마우재댁이 길남이한테서 엄마라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것도 까마득한 옛날이였다.
길남이가 열두살나던 해, 우사칸에서 불이 난 날의 이튿날이였다. 매를 맞는 남편을 뒤로 한채 우는 길남이의 손목을 잡고 우사칸앞마당을 꿰질러 나오며 마우재댁은 입을 옥물었다. 그날로 마우재댁은 남편과 계선을 갈랐다. 길남이의 이름도 마우재댁의 성을 따서 <<주길남>>으로 고쳤다. 쏘련특무라는 억울한 루명을 쓰고있는 남편이지만 길남이를 위해선 어쩔수가 없었다. 기실 남편은 쏘련특무가 아니였다. 터무니없는 날조였다. 몇년전 사냥하러 산에 갔다가 쏘련변경에서 키가 꺽두룩한 군대 하나를 만나 헬레발 두개를 얻어온 일밖에 없었다. 그걸 길남이가 들고다니며 쏘련맨보라고 자랑을 했었다. 그때는 아무 일도 없던것이 언제부터인가 쏘련이 수정주의요 뭐요 하는 소리가 뒤숭숭하게 떠돌더니 남편이 덜컥 쏘련특무로 루명을 쓰게 되였던것이다. 고중졸업생이라고 소학교교원질을 하던 남편은 하루아침에 우사칸으로 쫓겨가고 밤이면 목에 패쪽을 걸고 비판을 받군 하였다.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은 남의 눈치만 보며 가만히 있었지만 한창 들뜬 젊은패들은 하늘을 찌를듯이 기고만장해서 설쳤다. 한참은 구호를 웨치다가 한참은 구타하기를 거듭하였다. 련루될가봐 친하던 사람들도 슬슬 피해가는 눈치였다. 자기에게 갑자기 붙어진 <<마우재녀편네>>란 온역신같은 별명도, 남편한테 가해지는 구타도 견딜수 있었다. 하지만 철도 모르는 길남이가 학교에서 따돌리고 점차 우울해지는것만은 그대로 넘어갈수가 없었다. 그쯤에도 며칠째 학교에 안갔다는 애가 불길이 솟는 우사칸에 정신을 잃고 쓰러질 때는 무슨 일인가 있었을것이 뻔했다. 애를 버릴수가 없었다. 결국 계선을 가른 날부터 남편은 다시 집에 오는 일이 없이  우사칸에 자리를 잡고말았다. 헌데 그러면 나아질줄 알았던 길남이가 입을 다물어버릴줄이야. 불때문에 겁을 먹은줄 알고 좀 지나면 말을 할거라고 생각하고있는 와중에 그번 사건으로 구타를 심하게 당한 남편이 황천길을 가고 말았다. 어린 나이에 이런저런 일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말을 안하고 있는줄 알았다. 석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도록 길남이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저 머리를 끄덕이거나 저으면 그만이였다. 촌위생소에 가니 애가 심하게 놀라서 그럴거란 애매한 대답밖에 들을수 없었다. 남편도 죽은 마당이지만 이미 남의 이목에 났는지라 왁작 소문을 내며 병보이러 다닐수도 없었고  병보일 돈도 없었고 생산대일에 빠질수도 없었다. 농한기를 기다려 한해 일공수를 받아가지고 시내병원에 갔을 때는 벌써 애가 말을 안한지 일년이 되여왔다. 물어물어 병원에 가니 목안도 살펴보고 귀도 살펴보고나서 귀를 먹거나 벙어리인건 아닌데 말을 하지 않는걸 봐선 심리질환이라고 했다. 약보다도 애와의 대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알뚱말뚱한 소리를 얻어듣고 돌아와서 마우재댁은 가급적이면 길남이와 말을 많이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길남이는 마우재댁이 입을 열 눈치같으면 눈길도 마주치지 않은채 자리를 피해버렸다. 결국 길남이는 마을에서도 다 아는 듣는 벙어리로 되고말았다. 말없이 수걱수걱 일만 하는 길남이를 볼 때마다 마우재댁은 죄인이 된 기분이였다. 남편을 버린 자기에게 애가 불만을 품은게 아닌가고, 그게 병의 원인이 된것이 아닌가고 생각했다. 다 성장하여서도 한국바람에 농촌총각들이 무더기로 늙어가고있는 판에 말을 안하는것을 다들 알고있는 터에 온전한 색시 하나 구할수가 없었다. 몇해전에 수소문하여 연길뇌과병원에까지 가서 상황을 말하니<<자페증>>일 것 같다고 했다. 자페증환자는 많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다면서 여태30여년을 살고있는것부터가 기적이라고 했다. 당사자를 꼭 데리고 와서 다시 보이라고 했으나 마우재댁은 종시 길남이를 설복해 데리고 갈 방법이 없었다. 이번에 여자가 애를 낳으면 애를 핑게로 기어코 병원에 데리고 가서 병도 고치고 손주를 어르며 알콩달콩 살 날을 기다리고 있던 마우재댁이였다. 그런데 이렇게 허망하게 길남이를 깊이도 모르는 땅속에 묻게 될줄이야!
 
 
 
6
 
“아부지~아부지~”
길남이는 아버지를 부르는데 목소리가 밖으로 나오질 않아 갑갑했다. 목이라도 잡아뜯고싶은데 손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그렇게 속으로 아버지를 부르다가 길남이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했지만 여전히 깜깜하다. 왼손을 움직여보았다. 그것도 힘들다. 이젠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머리속마저 흐리터분하다.
지금쯤 어느때가 되였을가? 엄마는 내가 이러고있는걸 알면 까무러칠테지? 내가 이러고 잇음 안되는데…엄마, 엄마, 나 이속에서 나가야 하는데…당금 태여날 내 아들이 기다리고있을텐데…아들애에게 말도 배워주고 걸음마도 배워줘야 하는데…
언젠가부터 길남이의 머리속에는 태여날 아이의 생각으로 골똑 차있었다. 아직 아이의 성별을 알수 없지만 길남이는 아들일거라고 단정을 지어버렸다. 아님, 어쩜 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랐을지도 모른다. 태여날 아들, 그것은 길남에게 있어서 단순한 의미의 성별로만의 남자애가 아니였다.
이태전의 어느 여름날 저녁무렵, 길남이가 잎담배를 썩썩 썰고있는데 엄마가 여자의 손을 끌고 집에 들어섰다. 그 여자의 손에는 또 아장거리는 남자애 하나가 이끌려져있었다.
“이 여자 알지? 명호에미다. 이젠 네 색시다.”
엄마의 말에 길남이는 눈이 화등잔같이 커졌다가 다시 무덤덤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잎담배를 써는 손놀림이 빨라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는 집안을 두리번거리며 헤식은 웃음을 실실 흘리고있었다. 홀엄마와 같이 살다가 팔부라는 평을 달고있었던 까닭에 서른살이 되여서야10여살이나 년상인 건너마을 철수한테 시집간 여자는 복도 지지리 없었다. 결혼해서3~4년을 말썽없이 살더니만 명호가 한돐이 되기전에 철수가 로무수출로 한국에 다녀오고 살림도 펴이나싶더니 덜컥 버림을 받은것이다. 철수는 한국에서 웬 과부여자를 데리고 왔고 여자는 친정집에 보내지고 말았다. 엄마가 부실하니 아들도 똑똑할리 없다며 명호까지 딸려보내고는 매일이다싶이 찾아가는 여자를 피해서 시내로 이사까지 가버렸다. 얼마전에 친정엄마까지 돌아가는 바람에 여자는 오갈데없이 되였던것이다. 그날 밤 엄마는 여자를 길남이의 이불속에 들이밀었고 길남이는 키드득거리는 여자를 데리고 어줍게나마 일을 치렀다. 길남에게 있어서 여자는 그냥 같이 잠을 자주는 여자일뿐이였다. 그 여자한테서 길남이는 안해라는 느낌을 느낄수가 없었고 그 여자를 향한 사랑이나 련민같은것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 여자를 향한것은 오로지 동물적인 욕구의 분출일뿐이였다. 처녀가 아니라 반반한 녀인네들마저 보기 힘든 농촌의 상황을 길남이는 묵과한지 오래였다. 엄마 역시 그걸 알아차리고 버림받은 여자일지라도, 팔부라는 평을 달고있는 여자일지라도, 애딸린 여자일지라도 길남이의 더꺼머리 총각모자를 벗겨주고싶어서 여자를 데려왔는지도 몰랐다.  하여 속되게 일러 그 여자는 길남이에게 여자맛을 알게 한 여자일뿐이였다. 그런데 그런 여자에게 길남이는 애정이 생겨버리게 되였다.  정확히 말하면 여자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여자의 배에 대한 애정이였다. 길남이네 집에 온지 서너달이 되였을가 할때부터 여자는 밥술을 놓기 바쁘게 뭐든지 꾸역꾸역 자꾸 입속으로 밀어넣기만 하더니 서서히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고 엄마는 임신이라고 했다. 여자의 배속에 길남이의 애가 들어있다고 했다. 동물적욕구의 분출이건 애정표현이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데는 차별이 없었던 모양이다. 여자의 배속에 들어있는 아이, 이제 태여날 아이를 생각하면 길남이는 가슴이 벌렁거렸다. 누구든지 붙잡고 말하고싶었다. 아버지가 된다고. 드문히 팔다리를 대자로 뻗은채 자고있는 여자의 배에 귀를 대고 애의 태동을 들으며 길남이는 아들애의 이름을 지어 부르고 싶었다. 이름을 부르며 아빠라고, 반갑다고 이야기를 하고싶었다. 하지만 입술이 움씰거리기만 할뿐 좀체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길남이의 마음을 몇십년만에 한껏 부풀게 하면서 여자의 배는 하루가 다르게 불러갔고 길남이는 해산을 두어달 앞두고 경비마련으로 탄광일을 하게 된것이였다.
이제 한달이면 태여날 아들, 그 아들에게 뭐라고 말할가? ……난 어떤 아버지가 될가?.......이제는 정말 엄마마음을 헤아려가며 잘 살아야 하는데……엄마……이제 엄말 용서해줄거야. 아들애가 태여나면 엄말 용서해줄거라구……아버지성씨를 앗아가버린 엄마가……아버지를 버린 엄마가 미웠는데……엄마가 아버질 버리지만 않았어두……아버지가 우리곁에만 있었어두 아버진 그렇게 ……그렇게 죽진 않았을건데……아니야, 다 나때문이야. 나만 아니였어두 나란 새끼만 아니였어두 엄만 아버질……버리지 않았을거야……나 이제 엄마마음  알거같은데……다시 엄마라구 부르고싶은데……
토막토막 끊어진 생각들이 머리속을 복잡하게 헤집고 다니다말고 길남이는 다시 까마룩한 잠속으로 빠져들어갔다.
 
 
 
7
마우재댁은 종이장우에<<주기자>>라고 금방 글자를 익힌1학년생처럼 비뚤비뚤 적었다. 그리고 엄지에 뻘건 도장즙을 발라 이름우에 꾹 눌러찍었다. 그옆에 여자의 이름을 썼다. 멍청해 서있는 여자의 손을 끌어다 엄지에 도장즙을 묻혔다. 엄지를 꾹 누르려던 찰나 여자가 손을 홱 나꾸어챘다.
“어마이, 어째?”
여자는 도장즙이 묻은 손을 등뒤에 감춘채 눈이 화등잔만해서 마우재댁을 쏘아보았다.
“양? 여기 그냥 도장 찍기우. 그리구 집에 가야지?”
“나그내는? 안데리구 감두?”
“어? 갸는 후에……우리 먼저 가기우~”
“싫스구마. 난 손도장 안찍개. 전번에두 명호아맨데 얼리워서 손도장 찍었던게 명호애비 다시 안오꾸마. 이번에두 날 도장찍게 하구 어마이 저 나그내를 다른데 데리구 가자구 그래지?”
멀쩡한 사람처럼 긴 말을 또박또박 구사해내는 여자를 마우재댁은 경이로운 눈길로 바라봤다.
“그게 아니구…”
마우재댁은 여자를 설득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알아들을지 알수 없었다. 명호애비가 아직도 돈벌러 간줄로 안 여자, 죽은 엄마를 멀리 놀러간줄로 아는 여자한테 뭐라고 말해야 한단말인가?
마우재댁이 여자의 손을 잡고 휘청휘청 갱에서 내려오자 땅딸보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마우재댁에게 랭수를 건네주고나서 종이 한장을 내밀었다. 종이에는 한자가 반장 빼곡이 적혀있었다.
“뭐유?”
마우재댁의 목소리는 바람에 날려갈듯이 쇠잔했다. 기운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길남이가 병으로 죽었다는 증명섬다. 길남이어마이 여기에다 이름 쓰구 손도장 찍음 우리 매부 보상금5만원을 내겠담다.”
“뭐라? 병으루 죽었다구? 왜 그런 거짓말하우? 길남이 어디 병으루 죽었수? 갱이 무너져서 죽었지. 아니, 죽은게 아니구 저네 죽었다구 했지.”
마우재댁은 다 쉬여빠진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길남이어마이, 아까두 말했잼까? 길남이 이젠 죽었슴다. 이미 죽은 사람이 병으루 죽었다믄 어떻고 갱이 무너져죽었다믄 어떻슴까?  산사람은 살아야잰겠슴까? 여기 로반이…그 우리 매부두 형편이 바쁨다. 죽은게 길남이탓인데 나몰라라 함 길남이어마이 어디 가서 어찌갰음까? 다 그래두 형편이 어려운걸 봐서 보상금을 주는겜다. 5만원이 어디 적은 돈임까? 우리두 어디 가서 사고났다는 소리 듣기 안좋구, 길남이네두 그 돈임 당분간은 먹고살잼까?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좋게 처리하깁소.”
땅딸보는 다시 한번 종이장을 바투 들이밀었다. 그 종이장을 보며 마우재댁의 눈앞에는 언뜻 남편과 계선을 나눌 때의 일이 생각났다. 그 때도 종이장에다<<나 주기자는 쏘련특무김성수와 계선을 나눈다. 아들 김길남도 주기자를  따르며 이름을 주길남으로 고친다. 주기자와 김성수사이에 일체 관련이 없다.>>라고 쓰고 이름을 쓰고 손도장을 찍었었다. 그렇게 이름을 쓰고 손도장을 찍으면 종이장은 더는 종이장인것만이 아니였다. 종이장에 또박또박 적혀진 내용을 리행하는 그 어떤 힘을 갖고있었다. 이제 저 종이장에 이름을 쓰고 손도장을 찍으면 길남이는 영원히 병으로 죽어버린 존재가 될것임을 마우재댁은 어렴풋이 알고있었다. 마우재댁의 눈길은 문득 부푼 여자의 배에 가닿았다. 그속에 있을 길남이의 아이, 그 아이를 위해서 마우재댁은 또한번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5만원이면 적지 않은 돈이였다. 마우재댁은 여태 그만한 돈을 구경하지도 못했다. 그 돈이면 여자의 출산비용을 마련하고도 엔간한  벽돌집 한채도 살수 있고 아껴쓰면 몇년은 먹고 살수 있을것 같았다. 길남이가 갱에서 죽었다고 해봤자 뭐가 달라지는것도 없을것이였다. 죽었다는 길남이가 살아날리는 없었다. 결국 마우재댁은 종이장에 손도장을 찍고말았다.
그런데 생뚱같이 여자가 안찍는다고 나누울줄이야. 손도장을 안찍는다고 뒤걸음질치는 여자를 보며 마우재댁은 코마루가 시큰거려왔다. 반편이라도 길남이가 제 남편인줄은 알고있는 모양이였다. 할수없이 여자는 안찍으면 안되는가고 물었더니 호구부에 여자가 안해로 있기에 실제법률적효률이 있는것은 여자라면서 꼭 찍어야 한다고 했다. 마우재댁은 여자에게 이 종이장에 손도장을 찍으면 길남이가 일을 더할수 있다고, 그럼 돈을 더 벌어갖고 애를 낳은 다음에 돌아오는거라고 말해주었다. 한참을 얼리고 닥치고 해서야 여자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엄지에 도장즙을 발라 대충 눌러찍고는 그 손을 입에 쓱 문지르고 헤시시 웃음을 지었다. 도장즙이 묻혀 뻘건 입술이 피라도 물고있는것 같았다.
 
8
 
“엉~엉~…불을 …아부지…엉엉~”
길남이는 말을 끝까지 하려고 모지름을 썼다. 불은 아버지가 지른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했다. 불은 자기가 지른것이라가 말해야 했다. 헌데 울음만 터질뿐 말이 나가지 않는다. 
“엉엉~아부지…아부지…”
목이 터질듯이 아프다. 절망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초라한 모습의 아버지가 보인다.
아버지의 손이라도 잡아줘야지, 손을 잡고 불은 내가 지른것이라고 말해줘야지.
가까스로 손을 뻗었다. 아버지의 손을 잡으려는데 난데없는 돌멩이가 우르르 떨어지며 뻗은 길남의 손과 아버지를 묻어버린다.
깜깜하다. 분명 눈을 떴다. 오른손도 가슴아래 몸도 여전히 무엇인가에 파묻혀있다. 석탄덩어리거나 돌덩이, 흙덩이들일것이다. 머리를 움직여봤다. 천근무게다. 들수도 드텨놓을수도 없다. 빠개지듯이 아프다. 비릿한 냄새만 진동하며 코로 흘러든다. 아버지랑 같이 있는것인지 혼자 있는것인지 도무지 알수 없다. 겨우 움직일수 있는 왼손, 그것도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다. 안깐힘을 써서 움지여봤자 겨우 가슴께로 올라올뿐 가슴우에 덮인것을 주어낼수도 밀어낼수도 없다. 정신이 가물가물하다. 자꾸 저 멀리 깊은 잠속으로 달아날려고 한다. 아득하니…아득하니…
“아부지, 내가 잘못했음다…불은 …내가 질렀음다…일부러 그런것은 아님다. 아버지가 질렀다고 …말할려고 한 것이…아니였음다…그냥 무서워서 울었을뿐인데…울다보니 말이 끊겼을뿐인데…그 사람들이 …그렇게 …그렇게 몰아부쳤음다…그 죄로…그 죄로…35년동안 입을 다물구 있었음다…이럼 죄값 안될가요?...나두 이제 살구싶슴다…애가 태여나면…이름을 김염이라고 지어줄려구 했음다. 엄마가 뺏은 아버지의 성씨를 아들애에겐 물려주구 싶었음다…그리구 아버지가 불을 질렀다구…아버지가 불을 질렀다구 말해버린 내 죄를 기억하구 아버지에게…아버지에게 용서받으라구<염>이라구 지을려구…그리구 애에게 말도 배워주구 이야기두 들려줘야 할텐데…이제 나두 말을 할려구 했는데…아버지두 날 용서할거라구 생각했는데…”
길남이는 수많은 말을 했다. 헌데 입술만 달싹거릴뿐 말은 한마디도 입밖으로 튀여나오지 않았다. 길남이는 말을 뱉어내려고 모지름을 썼다. 목구멍에서 울컥 무엇이 치밀었다. 비릿한것이 입귀로 꿀룩꿀룩 흘러나왔다. 길남이는 헉헉거리며 입술을 움씰거렸다.
“아부지~”
드디여 길남의 목에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열두살아이의 목소리도 아니고 마흔일곱살 장정의 목소리도 아닌 철판을 긁는듯한 이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부지….불을…불을…내 지른겜다…으으윽~…”
길남이의 숨이 가빠지고있었다…….
 
9
무너진 갱입구에 조촐한 음식들이 갖추어졌다. 종이장에 싸인을 받아내고나서 땅딸보가 차례준 제사상이다. 장정들은 이미 인사를 하고 내려간 뒤고 문어구에서 만났던 식모아줌마와 마우재댁, 여자만 남았다. 식모아줌마가 마우재댁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마음 크게 가집소. 길남이 말은 한마디도 안해도 그렇게 부지런하구 착하던게……다 자기 타고난 명이 있는걸 어떡하겠슴두? 죽은게 불쌍하지. 그만함 뒤처리 잘됐음다. 실은 여기 로반은 한족임다. 그랜게 조선족각시를 얻어가지구 처남이 일을 다 맡아함다. 여기를 쭉 둘러보문 다 개체탄광인게 무슨 안전하겠음까? 해마다 사고나는데 있슴다. 그래문 어떤 로반들은 무서워서 다 던지고 도망감다. 그래두 길남이일은 보상금이라도 받게 됐으니 그만함 잘됐음다…길남이어마이와 가만히 하는 말인데…길남이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나까지 포함해서 그 사고난 일을 안말하기루 하구 한사람이2000원씩 받았음다. 원래 석탄층이 얇아 석탄이 얼마 안나와서 그만두자던 갱이였음다. 이 틈에 아예 페갱하고 다른 갱을 또 뚫을겜다. 어찌갰음까? 산 사람이야 살아얍지…후~”
마우재댁의 귀에는 이제 아무말도 들리지 않았다. 마우재댁은 멀지 않은 곳에 금방 교미를 끝낸 암컷버마재비가 수컷버마재비를 잡아먹는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너라고 …어쩌겠냐? 배고픈데….그거라도 먹고 살아야지…그거라도 먹어야 니 새끼들이 크지……”
마우재댁은 알수없는 소리를 중얼중얼거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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