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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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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소설

배설장애
2011년 09월 16일 18시 59분  조회:1694  추천:2  작성자: 김영해
  
배설장애
 
김영해
 
1
 
“넌 오노요코가 될수 있겠니?”
갑작스런 물음에 나는 얼떠름해지고말았다.
오노요코라니? 오노요코가 누군데?
내가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전에 그의 전화는 끊겨지고말았다.항상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그때문에 나는 이미 신경줄이 팽팽해져있었다.어느 한순간에 문득 던져오는 물음 하나, 눈빛 하나에마저 신경을 도사리지 않고있으면 그의 심중을 종잡을수가 없었다.했으나 결국 오늘도 멍청한 꼴이 되고말았다. 대답소리 한번 끙 하고 내보지도 못하고 눈만 디룩디룩하면서 알수 없는 질문에 황황함을 느낄수밖에 없었다.
넌 오노요코가 될수 있겠니?
오노요코가 뭔데 내가 될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질문을 개 먹이주듯 훌쩍 던지는지 알수가 없었다.오노요코— 뭔지 알아야 했다. 어떤 성질의 내용물인지 알아야 나는 그 질문에 어슬프게나마 대답할수 있을것 같았다.
그래 알아내는거다. 한번 철저하게 알아내서 완벽한 답안을 주는거다.
마침 늘 수업시간에 딴 곳에 정신을 팔다가 지적받은 소학생처럼 그앞에 어정쩡해진 모습으로 허둥대기만 하던 내 모습을 개변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있던차였다. 어떤 오기같은것이 볼끈볼끈 치솟는 쾌감에 몸이 근질근질해났다.나는 서둘러 인터넷을 접속하였다. <<통합검색>>에<<오노요코>>하고 처넣고 검색을 했다.사이트가 열리는 사이 가슴은 콩닥거렸다.
도대체 어떤 놈일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기 직전 나는 그것을<<놈>>이라고 부르고싶었다.
어떤 놈이기에 내가 되거나 되지 말아야 할 존재란 말인가?
드디여~
검색이 완료되여 페이지가 열리는 순간.
이룬!
코바람이 휭하고 나갔다.여자였다. <<오노요코의 프로필>>이라고 떡하니 뜬 곳에 박힌 사진은 여자였다. 검스레하다고는 하나 눈이 환연히 보이는 안경을 건 단발의 늙수그레한 여자. 수수한 미모보다는 어딘가 불안한 느낌을 주는 얼굴의 여자였다. 내가 왜 이런 여자가 되냐 마냐 해야 하는건지 감이 도무지 잡히지 않았다. 사진옆에 붙어있는 설명은 이랬다.
<<이름 : 오노 요코(小野洋子) /출생 : 1933년2월18일 /신체 : 키163cm/출신지 : 일본 /직업 : 공연예술가 /학력 : 사라로런스대학 /가족 : 배우자 존 레논/ 데뷔 : 1964년 /작품집'그레이프푸르트' >>
아무리 들여다보아야 그런 물음을 던진 그의 저의를 리해할수가 없었다. 금방까지도나를 긴장하게 만들던 기운들이 서서히 가셔지며 그 어떤 기대감같은것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였다. 무엇인가 상징적인 의미를 띈것일거라고, 최소한 내가 닮을수 있는 존재일거라고 예측을 하고있었는데 이건 아니였다.
미모도 직업도 내가 하등 관심을 가져야 할 리유를 주지 않는 여자라니? 그런 여자와 나를 관련지어야 할 리유가 굳이 뭐란말인가?
프로필아래 간식타러 나온 유치원애들처럼 조롱조롱 나붙은 카페글을 읽어볼 흥미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내민 손바닥에 뭔가 쥐여주길 바라다가 아무것도 못가진채 손을 옴츠려야 하는 머쓱한 기분이였다. 그 글들을 읽어서 그 여자를 알아야 할 상식을 무시한채 나는 모니터만 멍청하니 응시하였다. 모니터에 그의 얼굴이 잠간 클로즈업되여 나타나는 순간이였다. 찌르는듯한 눈길에 전률하며 솜털이 오소소 일어남을 느꼈다.
갑자기 호흡이 가빠왔다. 신경세포들이 또 하나하나 긴장되기 시작했다. 나는 뭔가를 잊고있었다. 평범한 얼굴의 여자를 대하고있다는 허탈감에 내가 항상 잊지말고 있어야 할 그것을 잊고있었다. 그는 아무 생각없이 말 한마디라도 허투루 던지는 사람이 아니였다. 내가 알고있는바로는 그랬다. 그런 그가 쓸데없는 질문을 던질리가 없었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이제 손가락 까딱하고 클릭하면 내앞에 와르르 쏟아져내릴 저 여자의 이야기들이 무서워졌다. 평범한 프로필뒤에 숨어있을 그 여자의 이야기가 무엇일가를 숨막히며 의식해야 한다는 자체가 두려움이였다. 작정하고 던진 질문 하나가 그 여자의 이야기로부터 내가 뭔가를 깨닫고 거기에 내 의사까지 첨부해야 할 과제임을 이제 나는 전률하며 깨달아야 했다. 긴장감과 불안감에 호기심까지 동반하는 이름모를 흥분을 느끼며 컴퓨터앞에 앉은 내 몸은 경직되고있었다.
그렇게 하고있기를 한참이나 됐을가.
<<띠리링~>>
야무진 소리와 함께 모니터 오른쪽귀로 메신저알림서비스가 쪼고맣게 뜬다싶더니 대화창이 파란 빛을 발하며 번쩍거렸다.
--누나, 머해?
--응, 민이구나. 그냥 머 좀 찾아보구 있어.
갑자기 하기 싫은 일을 피할수 있는 핑게가 생겨버렸다.
--누나, 나 오늘 기분이 별로야.
--왜 그런데?
--몰라, 사는게 귀찮아죽겠어. 이렇게 살바엔 콱 죽어버리기라도 할가 하는 생각도 막 든다~
--자식, 먼 소리 하고있는거야? 또 니네 매형이 머라 글데?
--휴~
--그렇구나. 니네 매형이 일 저지른거구나.
--막 미칠거 같아. 인간이 왜 저러지? 오늘도 내가 밖에 나가가고 없는 사이 울 누날 때렸어. 내가 돌아와보니 매형이란 작자는 쿨쿨거리며 뻐드려자구있구. 누나는 얼굴이 퍼렇게 멍들어있었어. 집안은 고약한 냄새로 가득차있구. 그걸 보고있을라니까 주먹이 우는거 있지? 으지직~하고
술에 한껏 취하여 고주망태가 된채 제 네편네를 나무패듯 두들겼을 몰상식한 남자의 모습이 얼핏 떠올랐다.
대체 남자들이란?
--그래두 어쩌겠니? 니 누나와 같이 살 매형인데. 니 누나보구 확 갈라서라고 말이라도 하지 그래.
--그 미친놈이 안 놔준다는거야. 울 누나보다 열두어살이나 더 많거든. 지가 우리 누날 놓치면 어디 가서 여자맛이라도 못볼거니까 그런거지. 생각같아선 언녕 뜨고싶은데 내가 없으면 누나를 더 못살게 구니까 그것이 걱정돼서 내가 이러구 있어. 정말 돌아버리기 직전이야.
--어떡하냐? 그렇다고 네가 맨날 할일없이 누나곁만 지키고있을수도 없고. 남들처럼 부모라도 있으면 역성이라도 들어주련만… …
--후~ 부모없이 산 세월이 얼만데. 나 이제 누나 데리고 도망갈거야. 그 미친놈이 못찾게. 암튼 애도 없으니까 울 누나도 이제 미련이 없을거야. 외지에 가서 발붙이고있는 친구들도 있거든. 근데 가기전에 누날 봤으면 좋겠어.
--날?
--응. 누난 내가 안보고싶어?
--ㅎㅎ 궁금하긴 하지. 하지만 난 원칙이 있거든. 가상공간의 만남은 가상공간으로 끝낸다~이거야. 만나서 피차 좋을게 없잖아. 궁금증이 풀리는 대신 실망하거나 흡인되거나 하면 곤난할거니까. 안그래?
--으이? 서른밖에 안 된 여자가 왜 이리 봉건이야? 나보다 두살만 많으면서 생각하는것은 영 딴판이네.
--그래, 나 봉건이다. 니가 잘났다,잘났어! 짜식!
--ㅋㅋ 그래도 누나랑 이야기하고나니 속 좀 후련하다. 누나가 있어 참 다행이라싶어.
--내가 이 세상에 가상공간속에서나마 있다는걸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살어라,착한 동생아.
--ㅋㅋ
--ㅎㅎ
나는 어느새 컴앞에 앉은 리유를 잊은채 키들키들 웃고있었다.
민이와의 대화를 끝낼무렵 나의 마음은 서서히 평온을 찾고있었다. 미련없이 검색을 하던 홈페지의 카페글제목들을 일별하고나서 홈페지를 닫고 컴을 끄는 일들을 순서있게 진행시켰다. 속으로 한가지 생각을 굳혔다.
그래, 당분간 생각을 멈추는거다. 오노요코란 여자가 존재하는 이상 그가 던진 질문의 답안지는 이미 던져진게 아닌가? 내가 그 여자처럼 되느냐 안되느냐가 그와 나사이의 중대한 결정을 유발할거니까. 서둘지 말자. 답안지가 주어진 이상 그걸 확인하는것은 내몫이다.
나는 정통편 한알을 꺼내 삼켰다. 일상의 나로 돌아가야 했다. 밖은 어느새 어스름이 내리고있었다. 오늘도 나는 불면의 밤을 지새워야 할것 같은 예감에 벌써부터 뇌신경이 팽팽해졌다.
 
2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찌뿌퉁하던 기분은 식사가 끝날  때까지도 텁텁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밥을 모래알 씹듯이 으적으적 씹다말고 숟가락을 놓고 휭하니 일어서서는 화장실로 직행했다. 변기에 쭈크리고 앉아 한참이나 낑낑거렸다. 아래배에 지긋이 힘을 주어 홍문이 열려지게 하였지만 내용물은 나오지 않았다. 왼손편의 아래배를 만져보니 변이 들어찼음직한 딱딱한 덩어리가 만져졌다. 신경질적으로 두어번 더 힘을 주다말고 좌르륵 변기에 물을 내리고 일어서고 말았다.  변비가 도졌던것이다. 이제 무리를 하면 또 홍문어딘가가 파렬되며 피가 흘러내릴것 같아 그만두었다. 께름직한 변을 배속에 가둬두기로 했다. 피를 보며 변을 털어내느니 차라리 은근한 복통을 느끼면서라도 피만은 피하고싶었다. 나는 피를 싫어했다. 첫월경을 경험하면서부터 피에 대한 거부반응이 생활구석구석에서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워낙 살이 여려서 어설픈 바느질을 끝내고 실을 당겨끊거나 덤벙거리며 꽛꽛한 종이나 돈을 다룰 때도 손가락이 곧잘 베여지며 피가 슴배워나왔다. 피를 싫어하면서부터 혹시라도 손이 베일가봐 칼질도 조심히 했고 실도 꼭 가위로 끊어냈으며 종이는 더 조심히 다루었다. 빨간색까지도 보기 싫어했던 까닭에 붉은 옷은 입으려 하지 않았고  닭알과 도마도를 섞어서 끓인 도마도국도 먹지를 않았다. 티비를 보다가도 피를 흘리는 장면만 보이면 채널을 바꿔버렸고 학급애들이 코피를 쏟아도 어쩔바를 몰라 덤벙대며 이웃학급의 담임교원을 불러오군 했었다. 그러는 나를 주위에서 담이 작다고 놀려줬다. 놀림을 들으면서 나는 피를 싫어하는것은 담과 관계없는 일이라고 앙앙불락하였다. 아무튼 피만 보면 현기증이 일었기에 될수 있으면 나는 피라는것을 아니, 그것보다는 붉은색자체를 거부하고싶어했다. 했으나 아침에 피를 보고야말았다. 변을 아래배에 묵직하게 괴여넣은채 괜스레 짜증이 나서 싱크대에 있는 그릇들을 왱강댕강 소리를 내며 치우다가 끝내는 접시 하나를 떨어뜨렸다. “어머!”하는 소리가 끝나기도전에 “짤라당”하는 소리가 이어지며 접시는 몇쪼각으로 부서지고말았다. 결국 접시쪼각을 치우다가 내 손가락은 피를 보고야 말았다. 손가락에 파스를 감는 나를 보며 남편은 “오늘은 비가 올려나?”하고 궁시렁거렸다. 날씨때문에 변덕이 많은 내 기분을 남편은 알고있었던것이였다. 하지만 집안에 환하게 해빛이 비쳐드는것으로 보아 날씨는 쾌청했다. 파스를 감은 손가락에서 눈길을 떼여 남편을 찔 흘기다가 내 눈길은 한곳에 꽂히고말았다. 오른쪽목에 볼썽스럽게 붙어있는 파스. 어제밤 회식때문에 늦게 귀가한 남편의 목에는 누르스름한 색상의 파스 한장이 꼼꼼하게 붙어있었다. 벗어내린 샤쯔를 받아주다말고 눈이 올롱해서 쳐다보는 내 눈길을 피하며 남편은“사무실정리하면서 사무상을 옮기다말고 모서리에 긇혀버렸어.”하고 스스럼없이 뱉어냈다. 그렇거니 하면서도 찜찜했다. 문득 어떤 남자들은 여자들의 이발도장을 여기저기 찍고다닌다던 친구의 말이 퍼뜩 떠오르며 가슴이 섬찍했다. 설마하면서도 눈길은 자꾸 남편의 목에 붙은 파스에 달라붙었다. 콱 잡아채고  파스밑의 피부를 보고싶었다. 스친 상처자국인지 이발자국인지 확인하고싶었다. 남편목에 붙은 파스를 어둠속에서 꼬나보며 밤새 궁싯거리다보니 새벽녘에야 가물가물 잠이 들었던것이다. 내 손가락에 감긴 파스와 남편목에 붙은 파스를 보며 깐죽거리고싶어졌다.
“우리 파스커플이다~”
“쳇!”
남편이 혀를 찬다.
“커플답게 누구 상처 더 큰가 비교해볼가? 당신 상처 아마 딱지 앉았을거야. 파스붙이고 있으면 공기가 안통해서 상처가 덧날지도 모르니까 파스 떼여봐요.”
눈꼬리를 치켜뜨며 파스를 뜯을려고 손을 뻗쳤다.
“왜 그래?! 아침부터 재수없게!”
남편이 화를 버럭 내며 뿌리치는바람에 나는 저만치 밀려나고말았다.
출근을 하여서도 나는 파스를 감은 손가락을 펴든채 파스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와락 파스를 뜯어버렸다. 허여스름해진 살갗에 약간 갈라진 살가죽이 언뜻 보여왔다. 피는 파스에 배여져있었다.
남편의 목에 붙은 파스를 떼여내면 어떤 피부가 보일가? 살갗이 긁혀 여기저기 피가 돋아난 흔적이 보일가? 아님 쫙 째지기라도 했을가?
파스밑의 피부가 궁금했다. 상처가 궁금한것은 아니였다. 살갗에 빨갛게 찍혀진 이발자국이 나를 향해 입을 벌리고있는것만 같았다. 저도모르게 끈적끈적 묻어나는 저압의 기분에 휩싸이고말았다. 누군가를 잡아먹지 못해 눈살이 꼿꼿해서 이를 뽁뽁 가는데 느닷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어머나, 어마나, 이러지 마세요. 여자의 마음은 갈대랍니다~”
“개뿔같이~”
전화벨소리마저 짜증이 나서 사무상우에 있는 핸드폰을 와락 끄당겼다.
“누구세요?”
말이 없다.
“누구세요?!”
그래도 말이 없다.
“누구야?! 전화를 했으면 말을 해야지. 사람 놀리는거야”
시어미역정에 개배때기 찬다고 가뜩이나 불편한 심기에 버럭 소리를 지르고말았다.
“이씨~”
또 욕지기가 쏟아질려는데 깊은 한숨소리가 전화기 저끝에서 힘없이 새여나왔다.
“누나, 나야. ”
“민이? 근데 왜 대답을 안하구 그래?”
“누나, 사랑한다~”
“야가 왜 이래? ”
꽥 소리를 지르며 발딱 일어서고 말았다. 쳐다보는 동료들의 눈길을 의식하고 사무실밖으로 나가며 목소리의 톤을 억지로 낮췄다.
“너 무슨 일 있니?”
“누나, 나 오늘 술 마셨다. 친구랑 둘이서 흰술 두병을 다 마셔버렸어.그런데도 말짱해. 근데 갑자기 누나생각 나는거 있지?”
“왜 또? ”
“울 누나랑 싸웠어. 외지로 가는데 은행카드가 필요하거든. 현금을 지니고 갈수가 없잖아. 아침에 누나가 은행카드하라고 돈100원주면서 얼마 남을거라고 그러더라. 정작 가보니까 누나생각한것보다20원 더 들데. 그래서 그거 하고나서 누나한테 남은 돈을 주면서20원 더 들더라고 했더니 왈칵 화를 내면서 나를 욕하겠지. 내가 다른데 썼다고 말이야. 그래서 싸웠어.”
“누나가 잘못 알고 그러겠지. 그런다고 싸우면 되냐? 가뜩이나 힘든 네 누나인데 니가 참아야지.”
“나두 그럴려구 했어. 근데 갑자기 나도 화가 나더라. 내가 누구땜에 외지로 가는데 말야.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돈20원때문에 누나가 그렇게 해도 되는거야? 누나랑 싸우고나서 그길로 친구집에 가서 술퍼먹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거야. 누나도 니 맘 알거야.”
“후~누나, 사랑한다~ ”
“짜식, 먼 소리야? 그래 사랑해라 사랑해! 니 누나로 콱 사랑해라!”
“그게 아니라니까. 사랑한다니까!”
“그만 씨벌거리고 이제 쉬여. 자고나서 머리가 맑아지면 다시 이야기하자.”
민이의 대답이 있기도전에 서둘러 전화를 끄고말았다.
가슴이 벌렁거렸다.민이가 그런 말을 해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있었다. 두어달전에 채팅방에서 우연히 만나서 나에게 메신저아이디까지 신청해준 녀석이다. 민이가 신청해준 메신저아이디로 출근시간에 짬짬이 대화를 했었다. 두살은 어려서 동생으로 귀엽게 봐주는 나에게 민이는 처음에는 머뭇거리는 눈치더니 시간이 흐르자 하나둘 자기의 신상에 대해 터놓기 시작했다. 민이는 어려서 량친부모를 잃고 할머니손에서 오누이가 자라다가 누나가 결혼을 하고 누나랑 같이 살게 되였었다. 초중을 졸업하고 친구들 연줄로 연해지구에서 일자리를 찾아 밥벌이를 하다가 여의치 않아서 돌아와보니 누나가 매형의 구박으로 세월을 보내고있었다. 매형이 다니던 공장이 불경기로 생산을 멈추고나니 술과 도박에 젖어서 진위생원에 다니는 누나의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무슨 심술인지 걸핏하면 애매한 누나와 걸구들어 치고박고하였다. 워낙 한달쯤 있다가 떠나려던 민이는 그걸 보고 서너달째 눌러앉게 되였고 급기야는 누나와 함께 탈가를 계획한 모양이였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나를 사랑한다느니 어쩌니 하는것은 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술취한 충동이라고 볼수밖에 없었다.
그걸 뻔연히 알면서도 그 소리를 들는 찰나 가슴속에서 뭔가 뒤웅박질을 하는것은 달리 해석할길이 없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요상하렸다. 입으로는 별소릴 씨벌인다고 민이를 몰아세우면서도 그 소리가 과히 싫지는 않았다. 가슴이 뛰고 머리속이 하얗게 비워지며  구름위에 뜬것같은 아찔한 느낌이 전신을 엄습해왔다. 눈을 꼭 감고 숨을 길게 들이쉬고 왼손으로 벌렁이는 가슴을 꼭 누른채 한겻이나 앉아있는데 갑자기 목이 콱 아파오는 느낌이 들었다. 난데없이 단단한 이발이 목을 꽉 물고 늘어지는 느낌이라니. 눈을 번쩍 떴다. 목을 만졌다. 목은 매끄러웠다. 이발의 흔적은 없었다.
후~
한숨이 나왔다. 내가 너무 예민했던것 같았다. 남편의 목에 붙어있는 파스때문에 신경이 팽팽해있는 탓이였다. 정말로 사무상을 움직이다가 긁혔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한껏 곤두서있는 신경을 눅잦혀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구정물찌꺼기처럼 끈끈히 남아붙는 불쾌감만은 가실수가 없었다. 갑자기 묵직한 아래배에서 통증이 느껴져왔다. 통증은 서서히 홍문쪽으로 옮겨가고있었다. 수지를 구겨쥐기 바쁘게 화장실로 뛰였다. 피를 보면서라도 배속의 변을 부리워내야 했다. 결국 봐야 할 변이니까.
 
 
3
민이는 무얼 하고있지? 누나랑 외지로 가긴 간건가?
일을 하다말고 혼자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민이와 련락이 끊긴지도 벌써 며칠째다. 그날 이후로 메신저는 오프라인상태였고 전화도 늘 부재중이였다. 내가 넘 심한것은 아니였던가고 돌이켜보아도 심하게 한 말은 반마디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한메일사이트에 접속하였다. 로그인을 하다가 눈이 반짝 빛났다. 민이의 메일이 들어와있었다.
자식? 여기 숨어있었네.
혼자 웃음을 빼여물며 서둘러 메일을 열었다.
--누나, 안녕? 나 민이야. 나 지금 광주로 와있어. 당연히 울 누나랑 같이 왔지.오기전에 누나한테 말이라도 할가 하다가 안그러는게 좋을거 같아서 그대로 와버렸어. 말한마디 없었다고 욕하지 마. 안그래도 충분히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실은 정말로 누나랑 한번 만나보고싶었는데… …누나가 날 비켜갈가봐 무서워서 그만뒀던거야. 누나가 언젠가 메신저로 대화하면서 그랬잖어. 울 둘은 그냥 오누이로 남아있을거라구. 만에 하나 누가 누굴 좋아하게 된다면 누난 그 즉시로 자기가 사라져버린다고 했어. 마지막으로 전화하던 날 억수로 취했는데도 누나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또렷하더라구. 이튿날 술을 깨면서 참 후회했어. 혹시라도 누나가 날 멀리할가봐. 그래서 메신저도 못하고 전화도 못했어. 누나가 사라진것이 확인이라도 되면 나 어쩔줄을 모르겠거든. 그 길로 와버린거야. 어차피 떠날 준비는 거의 된 상태였으니까. 누나에게 더 이상 부담은 안줄테니까 내 감정따위는 무시하고 그냥 사라지지만 않으면 돼. 할수 있겠지? 핸드폰을 사는대로 전화할게. 1314521!
뭐야? 1314521?!
녀석의 편지는 수자로 끝을 맺고 있었다. 그 수자를 보며 괜스레 가슴이 활랑거렸다. 언젠가 민이는 통화를 하다말고 “1314521”라고 말해보라고 날 시켰다. 별걸 다 시킨다고 궁시렁거리며 “안해!”하고 딱 잡아떼고 통화를 끝마치자바람으로 나보다 한참은 어린 동료에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었다. “한어말발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한평생 널 사랑할게 ’라는 뜻으로 쓰이는 수잔데요.” 라고 말하며 나를 빤히 올려다보던 동료의 올롱한 눈이 떠올라 머쓱해졌다. 공연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나에게 눈길을 돌리고있지 않았다. 웬지 허전하기만 했다. 이제 나는 민이가 날 사랑한다던 말이 진실이였음을 막연하게나마 믿어야 했다. 난 참 감각이 무딘 편이였다. 집에서 반시간은 족히 걸어야 이를수 있다는 컴방에 민이가 맨날 다니며 이야기를 나눌 때에 무언가를 눈치챘어야 했을텐데, 언젠가 매형을 화김에 한매 때려부시고 밤중에 컴방에 뛰여가 나한테 메일을 보냈을 때라도 그 애의 심중을 들여다볼수 있었어야 했을텐데, 캠이 효과가 나빠 내가 잘 안보인다고 투정질하는바람에 이리저리 자리를 옮길 때라도 짚이는데가 있어야 했을텐데… …난 여태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누나랍시고 내 수다떨기에만 열중했던것 같다. 그럴줄 알았더면 일찍 민이한테서 멀어져야 할걸 그랬다고 자신을 나무람하면서도 뭔가 속에서 쑥 뽑혀나간 느낌이다. 이제 만리타향으로 가버린 민이. 언제 볼수 있을가가 막연하다. 연변에 있을 땐 내가 보지 않을 따름이지 내가 허락만 하면 언제고 뛰여올수 있는 녀석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든든한것 같았다. 갑자기 민이가 보고싶다. 얼마전에 캠으로 보았던 얼굴이 흐릿하기만 하다. 문득 민이의 한메일아이디가 생각났다. 잇달아 비번도. 언젠가 자기 메일에 자기가 다운한 영화들이 많다며 비번을 가르켜줬었다. 내가 막 들어가봐도 일없냐고 했더니  자기 메일에는 비밀이 없다며 편할 때 들어가서 자기 사진도 보고 영화도 다운해서 보라고 했다. 얼른 내 아이디를 로그아웃하고 민이의 아이디로 로그인을 했다. 로그인이 되는 사이 그새 비번을 변경이라도 했을가봐 걱정을 했다.
짠~ 로그인 완료. 기쁨이 넘실거렸다. 편지함을 뒤적거리며 사진을 찾았다. 드디여<<내 사진>>이라고 쓴 메일제목을 보는 순간 환성이 터질려 했다.
녀석, 여기 있었구나.
제목을 클릭했다. 메일이 열렸다. 운동모자를 쓴 사진이였다. 캠으로 찍은거여서 화면이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모습은 알렸다. 꾹 눌러쓴 모자밑에 웅숭깊은 눈이 나를 직시하고있었다. 남자치곤 검지 않은 얼굴색에 약간 긴듯하면서도 정작 길어보이지는 않는 여자라면 갸름하다고 표현해야 할 얼굴형, 코날도 곧고 반듯한것이 얼핏 봐도 잘생긴 얼굴이였다. 사무실에서 캠으로 처음 민이의 얼굴을 봤을 때 곁의 동료들이 모여들어 멋지다고 우야우야 떠들던 일이 생각나서 쿡하고 웃음이 나왔다. 잘 생긴 녀석의 얼굴을 흐뭇하게 마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녀석아, 나없이도 잘살어라.
민이의 메일을 로그아웃해버리며 불쑥 내 답안을 기다릴 그가 생각났다. 이제 나는 답안지를 확인할 때가 된것이 아닐가고 궁리했다. 그날 그렇게 질문을 던져놓고나서 감감무소식이 되여버린 남자. 그걸 나에 대한 무관심으로 리해해야 할지 내 답안에 대한 절실한 기다림이라고 리해해야 할지 종잡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답안을 기다리고있을거라고 내 욕심은 믿고싶었다. 나는 늘 일방적으로 그를 판단하고 내 의사에 따라 리해하였다. 그러는 나를 항상 귀여워죽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가 요즘 들어 자기 기분에 젖어 혼자 떠벌일줄밖에 모르는 차가운 여자라고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속으로 살얼음이 쫙 건너감을 느꼈다. 온몸에 서걱거리는 얼음덩이들의 맞부딪침들때문에 나는 그대로 얼어붙을것 같은 위구심으로 한참은 끙끙거렸다. 자신을 흐물흐물 녹여버리고싶은 집념에 불고기뀀을 찾는 차수가 많아졌다. 불가까이에 화기를 확확 느끼며 앉아있는 동안이면 얼굴이 홧홧해나고 손에 온기도 돌며 내 몸전체를 향하고 덮씌워지는 따뜻한 기운이 몸속 랭기를 서서히 밀어내군 했었다. 지금 나는 불을 마주하고 앉고싶음이다.
 
 
불고기뀀점이다. 이른 시간인데도 좌석마다 사람이 꽉 찼고 반쯤만 막은 칸막이로 하여 시끌시끌하다. 좌석들 사이사이로 웨이터들이 소반을 쳐든채 웨치듯 답하며 급히 움직이고 있다.
“뭘 먹을래?”
굳이 보고싶은것도 없으면서 초점없이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그가 조용히 물어왔다.
“글쎄, 뭘 먹으면 좋지?”
선한 눈빛의 그를 쳐다보며 나는 그 눈속에 뛰여들고싶다고 생각했다. 깊이를 알수 없이 시원하게 서글서글한 눈, 그 눈동자속에 눈동자에 꽉 찰만큼 조그맣게 비쳐든 나를 들여다보며 문득 작은 노루 한마리가 내 눈안으로 뛰여듦을 보았다. 아빠가 키우는 송아지의 털빛을 닮은 노란 털을 가진 작은 노루 한마리. 산자락을 에돌아 끝간데 없이 빠진 길가에서 보았던 그 노루가 이제는 어른으로 되여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루는 지금도 그 산속에서 노닐고 있을가?
어느새 내 기억은 노루를 찾아 거슬러올라가고있었다.
가끔씩 옷섶까지 찬기운이 스며들며 불어치는 바람때문에 봄기운을 실감할수 없는 어느 봄날, 도시를 향해 뛰고있는 중형뻐스에서였다. 혼자서 탈탈거리며 친정집에 다녀오는 걸음이라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장모님생신날인데도 사위가 안보인다고 엄마가 서운해하는 바람에 일때문이라고 해석을 하면서도 내 맘 한구석도 까부장해져있었었다. 객적게 눈을 지긋이 감고있는 옆자리임자를 슬쩍 훔쳐보다말고 창밖에 눈길을 주고말았다. 고향에 다녀갈적마다 옆자리임자가 옛동창생이라기라도 했으면 하는 기대가 내 가슴밑바닥에 은근히 똬리를 틀고 있었다. 하지만 고향을 다녀가는10여년 려정에 그런 기대는 단 한번도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즈음 나는10여년 집에서 단위에로, 단위에서 집에로 가방 달랑 메고 오고가는 코스를 반복한 꽉 막힌 내 일상에 신물이 날대로 난터였고 본의아니게 흐물거리는 병적인 즐거움으로 비명소리 아싸한 도시생활에 젖어들고싶은 충동으로 몸을 달구고있었다. 남편아닌 다른 남자를 바라보는것도 될상싶다는 위험한 생각이 가슴바닥으로부터 스멀스멀 기여올라 밖으로 터지기 일보직전이였다. 오늘도 옆자리임자는 내가 아는 얼굴이 아니였다. 내가 눈을 감고 있을 때 소리없이 내 곁에 자리를 찾아 앉았던 남자는 내가 부스럭거리며 눈을 떴을 때에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채 미동도 않고있었다. 옆눈길로 남자를 힐끔거리며 눈을 감은 사람의 모습은 참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툭툭 삐여져나온 륜곽만 알릴 뿐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는 도무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눈동자를 볼수 없는 탓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꼬아본다는것이 이상한 짓거리같이 생각되여 나는 멋적게 눈길을 창밖에 돌려버릴수밖에 없었다. 산자락을 가로질러 차창밖으로 휙휙 스쳐지나는 길가의 나무와 연록색으로 단장을 한 산들에 허옇게 무덕무덕 모여있는 살구나무들을 살구꽃만큼이나 희멀건 시선으로 한참이나 바라보다 말고 내 입은 “어머”하는 소리를 짧게 뱉어냈다. 작은 노루 한마리가 폴짝 길가로 뛰쳐나오는 모습이 눈안에 비쳐들었던 탓이다. 그 놈도 멈칫 멈춰서서 눈을 말똥거리며 차쪽을 바라보고섰다.  그때 나는 그놈의 눈에서 선한 빛을 보았던가 말았던가.
“노루 좋아해요?”
머리를 비틀어탄채 창밖의 노루를 향해 시선이 경직된  나한테 물음표 하나가 내물같이 촐랑이며 다가왔다.
노루를 좋아한다니? 그게 뭐 고양이라도 된다고.
속으로 이죽거리며 머리를 돌리는 찰나, 내 눈에 비쳐든  그 눈빛때문에 나는 흠칫하고말았다.
선한 숫사슴의 눈빛.
조건반사적으로 내 머리속에서 튀여오른 단어결합이였다.
“노루와 사슴의 구별점이 뭐죠?”
어느새 나는 사슴과 노루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하고있었다.
“참 오랜만에 보는 노루입니다. 녀석이 참 귀엽습니다.”
남자의 눈길에서 부드러움이 흘러나오고있었다.
“전 항상 노루도 사슴같고 사슴도 노루같거든요. 저 놈이 사슴인지도 모르겠어요.”
난 정말 아까 본것이 사슴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머리속에는 사진으로 본 사슴과 노루의 모습들이 엇갈아 배회하고있었다. 헌데 어느것이 어느것인지 분간을 할수가 없었다. 내 눈엔 똑같은 존재였다.
그 사이 뭘 생각하고있는지 남자도 입이 닫겨져버렸다.
답답했다. 내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남자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침묵이 꽉꽉 숨통을 조여오는것임을 처음으로 숨막히게 절감하는 시간이였다. 대신 심장박동소리가 내 귀를 넘어 남의 귀에 들리기라도 할듯 심장이 쿵쾅거렸다. 눈길은 창밖에 두었지만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별난 옆자리임자때문에 재수없다는 생각이 귀찮게 달라붙을 즈음 차는 이미 도시에 들어서고있었다. 산은 어느새 저만치 물러서서 파랗게 굳어지고 량켠에 일어선 콩크리트숲이 뿌옇게 눈앞을 가리기 시작하였다.
“제 명함입니다.”
“네?”
남자는 차에서 내리며 파란 하늘색바탕의 명함장을 내밀었고 나는 얼떨결에 받아쥐고말았다. 헌데 두장이였다.
이건?
“한장엔 전화번호 적어서 절 도로 주셔야죠?”
나는 잘 길들여진 짐승처럼 내 핸드폰번호를 또박또박 적어 남자에게 넘겨주고말았다.
멀어져가는 남자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망연해지고있었다.
낯선 남자에게 핸드폰번호를 적어준게 나란말인가?
허나 후회는 눈꼽만큼도 묻어나지 않고있었다.
 
 
 
“먼 여자가 맨날 머가 먹고싶은지도 모르고 살어? ”
그가 따스하게 웃으며 핀잔비슷이 궁시렁거렸다.
“가을하늘은 참 시원할거죠?”
갑자기 하늘의 냄새를 맡고싶었다. 청청한 가을하늘의 냄새, 높고 푸른 가을하늘만큼이나 시원할것 같았다.
“그냥 고기로 할거지? 맥주 마실거야 말거야?”
흰구름 몇점 둥둥 떠있는 가을하늘이 뵈여온다. 하늘을 우러러 팔을 뻗고 심호흡을 하고싶었다.
“하늘냄새 맡아본적이 있어요?”
그는 손짓으로 웨이터를 불러 주문을 하고 담배 한대 빼여물었다. 하얀 담배연기가 몰몰 피여오른다.
“담배연기 참 맛있거든. 난 담배없이는 못살것 같애.”
그 연기속에 내 가을하늘은 혼탁하게 흐려져버렸다. 작게 숨을 쉴 때마다 내 가슴으로 알싸하게 흘러드는 담배연기. 내 코끝으로 흘러드는것은 싱긋한 하늘냄새가 아니라 매캐한 담배냄새였다. 나는 캑캑 마른 기침을 해대고말았다.
“이제 어떻게 할거야?”
“뭘요?”
동그래진 내 눈을 그가 의아쩍게 들여다본다.
“답안이 있어서 불렀던거 아니야?”
답안?
그랬다. 난 답안이 있어야 했다. 역시 그는 답안이 궁금했던거다.
 
 
파란색의 명함장이 내 돈지갑안에서 다슬어갈무렵, 그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만나자고 했다. 나는1초의 여유도 가지지 않은채 선뜻 대답을 해버렸고 한참이나 거울앞에서 머뭇거리다가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그앞에 나서고말았다. 그런 나를 그는 재미있다는 눈빛으로 한참이나 바라봤다.
“왜 나왔죠?”
난데없는 물음에 흠칫했다.
나는 그가 왜 불렀는지 안궁금한데 그는 내가 왜 나왔는지 궁금해했다.
“글쎄요.”
나는 입을 조그맣게 오무려뜨리며 웃는 모습을 지어보였다.
“이거 줄려고 불렀어요.”
종이봉투 하나를 넘겨주었다. 받아도 되는건지 몰랐다. 그러나 명함장을 받을 때처럼 내 손은 쑥 나가버렸다.
“그날 하도 노루와 사슴이 어떻고 하길래 자료 좀 찾아보았어요. 부담갖지 말고 봐요. 노루와 사슴의 사진하고 거기에 관한 자료들입니다.”
내 기억속에서 까마득히 지워져있는 길가의 노루를 그는 상기시켜주고있었다.
“안나오시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공들여 찾은 자료가 무용지물이 될가봐서요. 근데 정말 왜 나오셨어요? 리유도 안묻고. 물으시면 대답할 말 다 준비해주고 있었는데요.”
“그냥요.”
정말 왜 나왔는지 나로서도 몰랐다. 불러준 사람이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여도 나왔을지 궁금했다.
문득 아들녀석이 생각났다. 이제 여섯살을 막 먹은 준. 아침에 유치원가는 길에서도
아들녀석은 나에게 꼬박꼬박 말을 시켜댔다.
“엄마, 준이가 몇살이니? 하고 물어봐.”
“준이가 몇살이니?”
“여섯살입니다. 엄마, 엄마는 몇살입니까? 하고 물어봐.”
“엄마는 몇살입니까?”
“엄마는 서른한살이얘요. 엄마, 준이가 참 똑똑하구나 하고 말해봐.”
“울 준이 참 똑똑하구나.”
그제야 아들녀석은 캐득캐득 즐겁게 웃어댔다. 유치원에 붙은후로 준이는 나에게 물
어볼 말을 시켜주고 그 물음에 대답하기를 좋아했다. 제가 시켜준 물음이라 녀석은
답안을 알고있었다. 알고있는 물음에 알고있는 답안을 말한다는것이 녀석에게는 매양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였던 모양이다.
지금 그가 그랬다. 상대방이 자기에게 던져올 질문과 답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그
에게 나는 그가 원하는 물음을 던져주지 않았다는것에 미안함을 느껴야 할지 말지 잠
간 망설였다. 원하는 놀이를  안해주면 뿌루퉁해하던 준이의 모습이 얼핏 스쳐지났다
“왜 만나자고 했죠?”
내 눈은 요사스럽게 눈꼬리가 치켜올라갔을거라고 생각했다.
“노루와 사슴이 어떻게 다른건지 알려주려구요.”
남자의 입귀가 살짝 우로 말려올라가며 묘한 웃음이 배여올랐다.
“누구라도 궁금한거 있음 알려주지 못해 안달이 나는건가요?”
이제 나는 해쭉해쭉 웃을 준이의 모습을 보고있었다.
“아뇨. 그쪽에게만 알려주고싶었을뿐이죠.”
나의 눈을 직시하는 남자의 눈빛은 진지했다.
“참 착한 분이시네요.”
남자가 쿡쿡 웃었다. 그 얼굴에 캐득거리던 준이의 얼굴이 겹쳐왔다. 헌데 준이의 얼
굴은 엄청 작았다. 웬지 그게 께름직했다. 내 맘속에는 가슴이 꽉 메여질만큼 크기만
한 준인데 낯선 남자의 얼굴앞에서는 무작정 조그맣게 줄어든다는것이 화가 났다. 똘
망똘망한 준이의 눈빛을 떠올리며 언제까지 준이랑  시켜주는 물음을 묻고 답하는 유
희를 놀아야 할가고 잠간 생각을 해봤다. 아마 며칠이 더 갈는지, 몇달이 갈지도, 두
어살 더 먹을 때까지 해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묻죠. 그쪽은 왜 나오셨어요?”
“그냥요.”
역시 나는 대답이 궁했다. 한번이 아니라 열번, 백번을 물어도 나는 답안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상대방이 물어올 질문과 답안을 준비하고있는 그와 달리 나는 그의 물
음에 답안을 가지고있지 못했다. 하여 나는 키들키들 웃는 재미를 느낄수 없는것인지
도 몰랐다.
 
 
 
오늘도 나는 답안을 갖고있지 못했다.
“답안이 없는데…”
“그럴줄 알았어. 니한테 답안이 퍼뜩퍼뜩 생기면 니가 아니지. 근데 오노요코가 누군지는 알아?”
“검색은 해봤어요.”
“그럼?”
“프로필만 보고 다른것은 안읽었어요.”
내 눈빛이 암담하게 흐려졌을거라고 생각했다.
잠간 서글픔이 그의 눈을 스쳐지나는 모습을 나는 무표정하게 지켜보았다.
“그랬구나. 넌 아마 될수 없을거야. 차라리 읽지 말어.”
왜 내가 읽음 안되는거지?
“그 사람은 어떻게 알어요?”
내 입은 또 제맘대로 주절거리고있었다. 그가 씩 웃는다.
“카페글을 읽다가 우연히 봤어. 내가 어떻게 아는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넌 항상 문제의 요를 파악못하더라. 너 그거 아니? 너한테는 단점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니가 그러는게 부럽다는거. 누가 뭘 물을지도 모르고 자기가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그러다가는 문득문득 생뚱같은걸 물어오고. 참 오래동안 그런 널 바라보는 재미로 산것 같아.”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아득했다.
나도 날 바라보는 당신 눈빛을 내 눈속에 집어넣는 재미로 살았었는데.
이제 저 눈빛을 나는 언제까지 바라볼수 있을가?
 
 
4
 
 
해살이 참 밝다. 창에 부딪치는 해살에서 쟁그랑쟁그랑 소리가 날듯 싶다. 밖에서는 싸구려소리가 흥겹게 들려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참 울적하다. 울적한 기분에도 해살의 밝음을 느낄수 있는 내가 이상스럽다.
이때쯤 남편의 핸드폰은 몇번이나 울렸을가?
남편의 핸드폰은 굳이 내가 전화하지 않아도 한가할 새가 없다. 그걸 나는 어제 문득 깨달았다. 시간이 밤 열두시에로 치닫는 시간이였다. 남편의 핸드폰벨음악이 울렸다. 헌데 <<저 달우에~>>하고 한소절도 넘기기 바쁘게 끊겨져버렸다. 잘못 걸린 전환줄 알았다. 5분이 지났을가 할 때 또 벨음악이 울렸다. 역시<<저 달우에>>를 한소절도 못넘긴채 끊겼다. 궁금증이 슬슬 일기 시작했다. 술마시고 집에 들어온지 반시간이 되나마나한 남편은 코까지 드릉드릉 골며 굳잠에 빠져있다. 남편머리맡에 놓여있는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핸드폰폴더를 여는데 벨소리가 또 울렸다. 냉큼 접속버튼을 눌렀다.
“누구세요?”
“어? ”
얼떠름해진 여자목소리가 울려왔다. 피줄기가 짱하니 머리위로 올리뻗쳤다.
“이거 …이거…리주임 전화 아닌가?”
바삭거리는 여자의 목소리는 더듬더듬 반말을 내뱉고있었다. 마른 꽃 한송이가 문득 머리속에 픽 떠올랐다.
“맞는데요, 지금 자고있거든요. 누구시죠?”
“아, 그런가? 안됐네.”
전화는 그렇게 끊겨지고 말았다.
한밤중에 받은 낯선 여자의 전화. 게다가 반말을 따박따박 뱉어낸다니?
내 기분은 금시 엉망으로 되고말았다. 핸드폰통화기록을 뒤졌다. 그 여자의 전화번호가 란발하고있었다. 그속에 낮에 한 내 전화번호가 비좁게 끼여있었다.
휴~
한숨이 나왔다. 핸드폰을 다시 남편의 머리맡에 놓아주었다. 남편이 언젠가부터 핸드폰을 머리맡에 두고자는 리유를 알것 같았다. 머리속이 복잡해났다.남편목에 붙어있던 파스며 여자목소리, 핸드폰번호--온갖것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두서를 잡을수가 없었다.  거기에 잠간 비쳐드는 그의 모습까지.
신경안정제 두알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는 자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머리속은 지긋지긋해났다. 부석부석해진 남편얼굴을 올려다보기조차 싫어졌다. 찌뿌퉁한 모습으로 남편을 보내고 곧장 청가를 맡고 드러누워버렸다. 딱히 짚어낼만한 리유도 없이 서서히 멀어져가는 나와 남편사이, 거기에 대해 나는 얼마만큼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문득 그의 눈빛이 그립다. 선한 사슴의 눈빛이.
그가 준 자료에 사슴은 령물로 기록되여있었다. 영생을 대표하는 령물. 대신 노루는 보은할줄 아는 착한 짐승이면서도 담작은 동물로 기록되여있었다. 내가 노루를 보았던것은 착한 그를 보고싶었음일가? 내가 노루와 사슴을 헛갈리는것은 그를 내 맘속에 영생시키고싶었음일가? 어쩜 내가 노루였던지도 모르겠다. 그를 보고있는 시각이면 내 마음은 한껏 느긋느긋해져있었다. 부드러운 솜뭉치같은 구름송이를 타고 파아란 하늘에 한적하게 떠있는 기분이였다. 아득하게    뻗은 푸른 들판과 들판이 끝나는 곳에 굼실굼실 이어진 산발들을 바라보며 잡념을 훌훌 털어버린채 하얗게 비여진채로 구름송이우에  그대로 행복하게 굳어질수가 있을것 같았었다. 마주앉은 그의 각진 입술이 움직이는 모습을 재미나게 쳐다보며 나는 그의 말을 듣고있으면서도 듣지 않을수가 있어서 자유로왔다. 가끔 물어오는 그의 질문에 단어그대로 나는 얼떠름한 표정이였다. 어떤 때는 질문의 내용조차 파악하지 않은채 “몰라.”하고 부담없이 말할수 있는 내가 되여갔고 어떤 때는 캐득거리는 준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전혀 답안이 궁금하지 않고 답안이 뻔한 질문들을 그에게 하면서 쿡쿡 웃어주는 그를 귀엽게 바라볼수 있는 내가 되여갔다. 어쩌다 한번 심각한 질문을 한적도 있었다.
금방 점심시간을 넘긴 오후라 그런지 그날따라  “커피나무”카페는 한적했다. 커다란 홀안은 조명이 밝지 않았고  손님이래야 나까지 합쳐 고작 대여섯명정도였다. 자리를 잡기전 커피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몇장의 사진들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부동한 표정의 선명치 못한 얼굴들을 보며 아무곳에나 자기사진을 스스럼없이 공개할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가고 궁금했다. 피씩 웃음을 물지똥처럼 흘리고말았다.항상 중요하지 않는 자잘한것에  시간과 정력을 소모하고있는 자신이 가소롭게 여겨졌다. 머쓱해서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맞은켠에 앉을 그를 생각해서 조금은 밝은 곳을 골랐다. 내가 모카골드 한잔과 카푸치노 한잔을 시키는 사이 카페에 들어선 그가 두리번거리고있었다. 밝게 웃으며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보였다. 씩 웃으며 곧장 걸어오는 그의 몸에서 활력이 느껴졌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요.”
“커피는?”
“모카골드하고 카푸치노 시켰어요.”
말을 안해도 모카골드는 내몫이고 카푸치노는 자기몫임을 그는 알것이였다.
두 팔을 겹쳐 상우에 놓고 그 팔우에 머리를 놓고 엎드려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를 쳐다보는 내 눈빛은 은근했을것이였다. 그대로 그를 내 눈속에 빨아들이고싶었으니까. 보고있으면서도 보고팠고 헤여지고나면 금방 그 모습이 아리숭해져서 그와 갈라져있는 시간이면 나는 그 얼굴을 떠올리느라고 머리속을 박박 털어내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었다. 보고있을 때 기를 쓰고 머리속에 사진을 팍팍 찍어두어야 했다. 하여 나는 그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그냥.”
나는 샐쭉 웃어버렸다. 그냥이라고 말할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속에서 이는 불길을 아주 조심스럽게 겹겹이 쌀수밖에 없었다. 그 불빛이 행여 눈으로 비쳐질가, 행여 입으로 새여나올가 걱정하며 나는 나를 숨기는데 익숙해져야 했다. 하여 나는 담작은 노루였던것일지도 몰랐다.
커피가 들어오는 사이는 꽤 길었다. 봉지를 터뜨려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는 커피믹스가 그립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였다. 말없이 마주 바라보는 둘의 눈길은 뜨거울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애써 눈길속에 랭기를 피여올렸다. 그러기를 한참이나 지났을가.
“사랑이란게 있어요? 남녀사이에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이 있을가요? 죽도록 사랑할수 있는 사랑이?”
느닷없이 세개의 물음표가 하나의 단어를 둘러싸고 튕겨나왔다. 사랑의 존재의 유무에 대해서말이다. 내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질문같은 질문이였다. 답안을 알수 없는 보다 심각한 질문.
“있을거야. 사랑이란 느끼기에 달린거 아니겠어?”
이외로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너무나 쉽게 해버린 그 대답때문에 그 답의 정확성을 믿을수가 없었다.
“사랑은 마음-육체-영혼 이라는 세 단계를 거쳐 완성이 된다고 하던데요. 섹스가 없는 사랑을 어떻게 봐요?”
“섹스”라는 단어를 뱉어내면서도 빨개지지 않는 내 얼굴은 뻔뻔스러웠다. 나는 뭔가를 원하면서도 거부하고있었다.
사랑을 하고싶다. 섹스는 싫다. 고로 섹스가 없는 사랑을 하고프다.
내 맘은 이렇게 웨치고있은지가 한참이나 되였다.
“죽음과 사랑의 구별점 알어? 죽음은 말이야, 몸이 가면 마음도 어쩔수 없이 따라가는거야. 사랑은 마음이 가면 몸이 따라가게 되여있는거라구. 섹스가 없는 사랑이라? 그걸 사랑이라 할수 있을가? 사랑을 확인할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것이 섹스와 금전이라고 생각안해? 입으로만 하는 사랑 난 안믿어.”
대답은 완벽했다. 아니라고 할 틈서리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섹스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고로 사랑한다면 섹스는 필수다.
문제의 답안은 이미 어긋나고있었다.
“유부남과 유부녀가 사랑을 운운한다는 자체가 비도덕적이라는 생각이 안들어요?”
나는 또 무슨 답안을 원하고있었던겔가?
“도덕? 도덕이 먼데? 맘은 다 줘버리고 몸만 지키고앉아있는게 더 비도덕적이 아닐가? 그건 자기를 책임지는 자세도 아니야. 맘과 몸은 항상 같이 있어야 하는건데 둘을 갈라놓으면 고통스러워져.”
사랑에 대한 강의를 듣고있는것인지,륜리와 도덕에 대한 강의를 듣고있는것이지 헛갈렸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섹스는 거부하는것 –어쩜 내 상식의 선은 거기에 머물러있는것이였던지도 몰랐다. 하잘것없는 육체를 붙잡고 몸을 안주니 나는 결백하다, 나는 도덕적인 인간인거라고 자신을 위안하고싶었던것일것이다.
“자기의 도덕성에 대해 어느만큼의 점수를 줄 자신이 있어요?”
나는 집요했다. 그만큼 나는 절실했다.
“난 자유분방한 사람이야. 무엇에 얽매인다는게 싫거든. 난 내가 고독한 리유를 아는 놈이야. 내가 그린 그림을 사람들은 리해를 못해. 난 인간의 육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더우기 성애는 신성한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도구. 내가 왜 너한테 내 그림을 안주는 리율 아니? 넌 내 그림을 받아들일수 없을거야. 넌 교원이니까. 고정된 사유방식과 애들의 순진성을 많이 갖고있는 너이니까. 널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라체화를 그리고 섹스장면을 그리는 날 다른 사람은 리해를 못해. 나의 그림실력보다 내 사상자체를 리해못하는 인간들과 난 상종하기가 싫거든. 난 그래서 고독해. 안해는 나에게 그냥 안해일뿐이고 애엄마일뿐이야. 니가 보기엔 내가 도덕적인 인간이 아니니?”
나는 참담했다. 굳어진 눈길로 그를 멍하니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그날 그렇게 헤여지고나서 그가 불쑥 전화로 질문을 던져왔던것이다.
 
“넌 오노요코가 될수 있겠니?” 하고.
 
5
그를 못본지도 두달에 가까와온다. 오노요코에 대한 답안을 찾지 못한 나때문에 나는 그를 마주할 용건이 없어졌다. 한주일에 한번꼴로 보던 그를 두달이나 못보고있을라니 힘들었다. 하지만 만나서는 안되였다. 나는 답안이 없으니까. 괴로웠던 그 시간들을 나는 일로 몸을 혹사하며 보내야 했다. 내 몸이 바쁜 시간만은 그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그러노라면 나는 밤이면 한껏 잠에 노그라질수가 있었다. 그렇게 기계같이 자신을 무마하면서 지내온 동안 내 맘과 몸은 서서히 지쳐가고있었다.
이제 어떡할가? 답안지를 번져볼가 말가?
몸을 일으켜 컴퓨터앞에 앉아 잠간 고민을 했다.
그때 민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녀석은 한껏 들떠있었다.
“누나, 나 여자친구 만났어.”
“응? 여자친구라니? 언제?”
꿈쩍 놀랐다. 핸드폰을 사고나서 곧잘 전화를 하던 민이다. 회사일도 이야기하고 옷사입은 이야기도 하고 누나이야기도 하면서 통 여자친구이야기는 없었던것이다.
“여기 온지 얼마 안돼서 채팅을 하면서 알게 된 여자애가 있었거든.”
여자애라? 그래, 민이에게 어울리는것은 여자애여야 했다. 내가 그걸 왜 모르고있었는지 한심하다.
“그래? 직접 만난거니?”
“응,지난 일요일에 만났어. 음식도 같이 먹고 스티커사진도 찍고 그랬거든. 근데 지금 여자애들 참 막 나가더라. 헤여질적에 여자애가 뭐라는줄 알어? 나랑 같이 살재. 재밌지?”
민이는 즐겁게 킬킬 웃어댔다.
내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지고있었다.
“넌 어쩔건데?”
“모르겠어. 요 며칠을 고민했는데도. 그래서 누나한테 물어보는거야. 어쩔가? 같이 살가?”
“여자가 어때 보였어? 괜찮은 여자애 같애?”
나는 엄마가 아니면서 엄마들이 물어야 할 말을 묻고있었다.
“응. 생김새도 귀엽구. 넘 싸가지 없는 애는 아닌거 같았어. 나두 적당히 호감은 가구. 총적으로 싫진 않았어.”
민이는 여자애랑 살고싶다고 말하고있는거였다.
“너 그거 생각해봤니? 처음 만난 너랑 같이 살고픈 여자 다른 남자랑도 같이 살고싶어할수 있다는걸. 너한테 헤픈 여자는 남한테도 헤픈 여자일수 있으니까.”
“글쎄말이야. 근데 같이 살자는데 뭘 어쩌겠어? 내가 밑지는것도 아닌데…”
“하여튼간에 잘 생각해봐. 너 지금 아무 여자나 덥석덥석 만날 나이가 아니잖니. 제대로 된 여자 한번 만나서 결혼까지 갈수 있게 해야잖어.”
“알았어. 나두 잘 생각해보구 결정할게. 근데 누나가 봐도 아마 맘에 들어할것 같은 여자앤데…”
통화를 끝내면서 민이가 그 여자애랑 같이 살것 같은 예감이 끈덕지게 달라붙었다.민이는 이미 답안을 찾은 문제를 갖고 공연히 나에게 묻고있는것이였다. 거기에 내가 빨간 잉크로 맞다는 체크를 해주기를 바라고있었던것이였을가. 마치 백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선생님이 별표식하나를 찍어주기를 바라고서있던 아들녀석처럼.
바락바락 신경질을 내며 핸드폰을 저만치 팽개쳐버렸다. 가슴왼쪽이 아릿해나며 콕콕 찌르는듯한 아픔이 전신에 찌르르 퍼지기 시작했다. 울음이 터질것 같았다. 나는 괴로웠다. 외로웠던 민이에게 함께 살아줄수 있는 여자애가 생긴데 대해 나는 기뻐해야 했지만 가슴 한구석이 텅 비는것같이 허전해남을 어쩔수가 없었다. 우습게도 나는 민이가 혼자 살았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가슴밑바닥에 옹송그리고있었던것임을 깨달아야 했다. 민이를 가질수 없는 나임을 번연히 알면서도 가지고싶었던 마음이 가슴 한구석에 숨어있었다는것에 대해 나는 부끄러워했어야 했다. 나는 민이만 욕심냈던것이 아니였다. 그도 내 남자로 만들고싶었다. 하지만 확실히 내 남자로 만들만한 행각을 저지를 담은 없었다. 남편을 내 생활에서 지워버릴 용기도 없었다. 하다면 나는 노루였던겔가?
자신이 대체 어떤 인간인지를 짚어낼수가 없다는것때문에 곤혹스러웠다. 내것이 아닌 누구인가를 소유하고싶은 욕망이 신경세포마다에 골똑골똑 차있을줄은 몰랐다. 욕망은 욕망대로 넘쳐흐르는데 탈선을 하면 안된다는 리성때문에 껍데기만 남은 도덕이며 륜리때문에 터지기 직전으로 팽창되여있는 몸을 추스리며 괴로움을 어금이로 으드득 깨물어 삼켜버려야 하는 자신에게 참 화가 났다. 언제 봐도 똑 부러지지 못하고 맹꽁이같은 내가 밉기까지 하다. 이런 나를 그가 이뻐해줬고 부러워했다니 나는 그에게 감사해야 했음이다. 이제 내가 바라볼수 있는 남자는 그만 남은것일가?
이제 나는 민이를 깨끗이 잊고 살아야 할 때가 온것이리라. 혹시 민이가 날 사랑하면,혹시 내가 민이를 사랑하면 내가 사라져버릴거라는 낙언을 리행해야 할 때가 온것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마음은 아프다.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접속을 했다. 한메일사이트를 열었다. 로그인을 할지 말지 잠시 망설였다.
그래, 마지막으로 한번만 열어보는거다.
아이디와 비번을 써놓고 로그인을 했다.
량심에 철판을 깔고 내가 보면 좋아할것 같다는 민이의 여자친구를 보기로 했다.여자애의 사진이 들어있을가가 걱정되였다. 한편 속으로 나보다 훨씬 밉게 생긴 여자애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마음에도 질투는 분명 파랗게 살아있었다.
드디여 메일페이지가 열렸다. 보낸편지함에서<<너와 나사진>>이란 제목으로 된 메일이 눈에 띄였다. 들이숨을 쉬였다. 어떤 여자애일가? 둘이는 어떤 포즈를 취했을가?
제목을 클릭했다.
짠~
말짱 스티커사진이였다.그 사진들을 스킨하여 컴퓨터에 입력하며 싱글거렸을 민이의 얼굴이 얼핏 스쳐지났다.
운동모자를 쓴 여자애였다. 모자밑에 두쪽으로 갈라서 맨 머리가 귀밑에서 달랑거리고있었다. 하얀 살결에 새물새물 웃는 눈을 가진 귀여운 여자애였다. 그 여자애옆에 민이가 싱긋 웃으며 비좁게 상고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마우스를 굴려 아래쪽을 보다말고 헉 하고 숨이 막혀왔다.
생글거리는 여자애의 볼에 민이가 키스를 날리고있는 장면이였다. 민이의 옆모습이 참 행복해보였다.
사진을 직시할수가 없었다. 여자애가 귀엽다던 민이의 말소리가 울림이 되여 귀전에 왕왕 들려왔다.
이제 민이는 정말 가버리는걸가? 내가 원하던 대로 되여버렸으니 나는 박수라도 쳐줘야 할게 아닌가?
신경질적으로 사이트를 확 닫아버렸다.
한참을 모니터앞에 엎드려있었다. 머리속에 온통 민이의 얼굴뿐이였다. 생글거리던 여자애가 비꼬는듯한 눈길로 쏘아보는듯한 느낌에 머리를 홱 쳐들었다.
가라, 가! 넌 워낙 내것이 아니였잖아.
 
 
6
 
잠들수가 없다.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아마1층 노래방에서 울려나오는 노래소리일것이다. 이맘때면 노래방에는 질탕 먹고 마신 남녀들이 끼리끼리 모여 한껏 목청을 돋구고있을것이다. 가담가담 찬송가소리도 섞여서 들려온다. 옆단원의3층의 기독교신자집에서 울려나오는것이리라. 처음에 찬송가소리를 들을 때는 누구네 집에 상사가 난줄이라도 알고 두려움에 떨었었다. 찬송가소리가 내 귀에는 울음소리로 들렸던것이다. 그렇게 며칠을 공포에 떠는데 문득 낯선 아줌마 둘이 문을 두드리더니 교회에 들라고 권고를 해왔다. 그제야 밤에 호곡소리처럼 들리는 소리가 찬송가소리인줄을 알았고 옆단원3층에 기독교신자가 새로 입주했음을 알았다. 오늘도 찬송가소리는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며 울음소리처럼 들린다. 그 소리가 찬송가소리인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솜털이 오소소 일어나며 섬찍해난다. 이불을 팍 뒤집어썼다. 그러고있기를 한참이나 지났을가. 콱콱 숨이 막히는바람에 다시 이불을 확 제끼였다.
어?!
끔쩍 놀라며 식은땀이 등골을 쭉 훑으며 내돋았다.
어둠속에 누군가 내 침상곁에 장승처럼 버티고 서있었다.
활랑이는 가슴을 누르며 시선을 한곳에 집중했다. 차차 어둠에 습관되며 눈앞을 가려볼수가 있었다.
그였다.
“?! 여기 웬 일이야?”
벌떡 일어나앉았다.
밖에서 비쳐들어오는 불빛에 어렴풋이 보이는 그의 얼굴은 여위여있었다.
“여긴 어떻게 왔는데? 얼른 가요!”
외식한다던 남편이 문득 들어설것 같은 두려움에 몸이 떨렸다.
이불을 밀어던지고 침상에서 내리려고 서둘렀다.
손발이 허둥거려 몸을 똑바로 가눌수가 없었다.
허걱~
바닥에 내려서는 내 몸위로 그의 몸이 쓰러졌다. 화끈거리는 입술이 내 입술을 찾아 헤매고있었다.
“이러지 마, 이럼 안돼!”
그를 밀어던지려고 버둥거렸다. 하지만 그 중압을 감당할수가 없었다. 촉촉하고 부드
러운 그의 입술이 까칠하게 마른 내 입술을 찾아 포개여졌다. 입술이 통채로 그의 입
속에 빨려들어갔다. 다시 그의 혀가 입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으윽~
신음을 토해내며 벌어진 내 이사이로 그의 혀가 들어왔다.다시 내 혀가 그의 입으로
넘어들어갔다. 끈적끈적한 타액이 입가에 묻어내렸다. 그의 손이 브래지어를 헤치고
한껏 팽대된 내 가슴을 어루쓸고 있었다. 손은 서서히 아래로 아래로 미끌어져내렸
다. 손길따라 내 몸이 꿈틀거리고있었다. 숲을 따라 흘러내리던 손이 헛구멍에 쿡 꽂
히던 찰나 나는 내 얼굴에서 그의 얼굴을 떼에 가슴에 꽉 그러안고말았다. 미칠것 같
았다. 내 몸이 그를 향해 스르르 열리는 순간이였다.
“따르릉~따르릉~”
전화벨소리가 노래처럼 들려왔다.
이게 뭐야? 뭐야? 어떻게 된거지?
“따르릉~”
다시 전화벨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번쩍 떴다.
얼굴에서 땀이 범벅이 되여 흐르고 있었다. 이부자리가 구겨져서 다리사이에 끼여져
있었다. 아래도리가 축축해있었다.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가 머무른 흔적은 있는데
그는 보이지 않았다.
이럴수가?
컴퓨터모니터에서 보호막으로 된 풍경화들이 퍼뜩퍼뜩 바뀌고있었다. 밖에서  쿵쟈쟈
하는 노래소리가 간단없이 들려왔다.찬송가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후~
어느새 전화벨소리는 끊겨져있었다. 수신기록을 들춰보았다. 남편이였다. 전화선코드
를 확 뽑아버렸다. 마우스를 움직였다. 모니터화면이 확 재생되였다. 오노요코를 소
개한 카페글이 모니터화면을 꽉 채우며 떠있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음악가중 한사람으로 비틀즈의 존 레논을 빼놓을수가 없다.반
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초등학교 학생들도 알만큼 유명한 예스터데이를
시작으로 해서 클래식하고도 독특한 여러 음악으로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가수
존 레논. 그의 유명한 노래중에 반전을 꿈꾸며 불렀던 “imagine”란 곡이 있다. 유
명했지만 외롭고 고독해서 마약과 섹스에 빠져 있던 한 예술가가 세계평화를 꿈꾸
게 하고 반전 캠페인을 주도하게끔 만든 여인은 바로 또 한명의 예술가 오노요코이
다.
존 레논과 오노요코가 처음 만났을 때 존이 스물여섯, 오노가 서른 여섯으로 오노가
열살이나 년상이였으며 둘 다 결혼을 한 상태였다. 하지만 모두 공허한 결혼생활을
하고있었다. 당시 유명한 아티스트들이 자주 드나들던 영국의 한 갤러리를 찾은 존과
그 곳에서 “숨을 쉬시오”라는 카드를 내밀며 이벤트 전시회를 하고 있던 오노는 첫
눈에 서로에게 빠졌다.
<플럭서스>라고 하여 영화나 사진 혹은 행위예술 등 쉽게 이해하기 어렵고 대중적이지도 못한 예술을 추구하는 오노는 자신의 프로젝트에 존이 도와주기를 자주 요청했고 그때마다 존은 거절하지 못했다. 점점 존에게 매달리게 된 오노는 그의 집에 불쑥 찾아가거나, 심지어 그가 부인과 함께 있는 차안에 뛰여들어가기도 했다.
결국 존의 부인이 인도에 여행을 간 사이 오노는 그의 집에서 하루밤을 보내게 되였다. 존의 아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남편의 극성팬이라고만 생각했던 여자가 자신의 가운을 입고 자신의 식탁에서 아침식사를 하고있는것을 보게 되였다. 게다가 그녀는 눈하나 꿈쩍하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채 태연히 “하이”라고 인사말을 던졌을뿐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존 레논의 가슴에 깊이 박혀버렸다. 그날 이후로 그들은 이틀이상 떨어져본적이 없었다.
잠시 존이 다른 여자와의 애정행각으로 인해 그들의 관계가 위기에 빠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오노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흔들리지 않았고 심지어는 그가 바람을 필수 있는 대상을 자신의 비서로 정해주기도 했다. 정말 독특하고 이해할수 없는 사람들이였다.
서양인과 동양인, 다른 인종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얼굴은 물론 개성과 기질,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세계관까지 닮아가기 시작했다. 늘 같은 생각과 감정들을 공유하며 서로를 가르치기도 하면서 예술적영감을 불어넣어주었다……”
 
 
나는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번호판을 꾹꾹 눌렀다. 발송신호음이 뚜뚜 하고 들려왔다.통화가 되면 나는 빠르게 뱉어낼 말을 입속으로 중얼거려보았다.
“당신은 존 레논이 될거야? 오노요코는 존 레논에게만 필요한 존재거든.”
이제 나도 질문을 던지는것이다. 답안이 어려운 질문에는 어쩜 또 다른 하나의 질문이 가장 훌륭한 답안이 될지도 모른다.
“엄마는 누구니?”하고 시켜주는 준이녀석에게 “준이는 누구니?”라고 되물으면 준이녀석은 어떤 표정이 될가? 캐득캐득 웃어줄가, 아니면 눈이 올롱해서 날 쳐다볼가?
이제 준이한테도 물음을 시켜주는 놀이가 멀어져갈 시간이 온것같다.
갑자기 묵직한 아래배에서 은근한 복통이 느껴진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일보는 일이 무서워지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께름직한 변을 내 몸속에 가둬둘수도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변의 배설을 거부하고싶다. 결국 나는 또 피를 보아야 할거니까.
일을 볼가,말가?
아직도 발송신호음이 울린다.
뚜~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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