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야. 끝없이 펼쳐진 구름이거든. 부드럽고 몽실몽실한 구름들이 보송보송 피여나 어디라없이 꽉 채우고있는 구름밭우에 푸른 하늘이 꿈결같이 펼쳐져있단다. 그 하늘아래, 그 구름밭우에 련잎모양의 커다란 이파리들이 빨갛고 노란 가지각색의 커다란 꽃망울들을 살며시 보듬어안고 자장그네처럼 조용히, 아주 조용히 몸을 뒤채고있어. 어떤 꽃망울들은 입김이라도 스치면 당금이라도 터질듯이 부풀어있고 어떤 꽃망울들은 아직은 파란 기운이 감도는 꽃이파리들로 돌돌 감싸고 고집스럽게 입을 꼭 다물고 있고 어떤 꽃망울들은 발가스름하고 노르스름한 본연의 꽃이파리들로 살포시 몸을 부풀리고 있단다.
갑자기 푸른 하늘의 저쪽끝으로부터 붉은 기운이 서서히 감돌기 시작해. 그 기운은 점차 한줄기의 붉은 빛으로 되여 하늘에 퍼지면 하늘과 구름은 아름다운 붉은 빛으로 물들어가거든. 그 붉은 빛속에서 꽃망울들이 조금씩 조금씩 부풀어가. 하늘도 구름도 붉은 빛을 뒤집어쓰고 한순간 밝게 빛날 때 꽃망울들이 열리지. 한껏 부풀었던 꽃망울들에서 ,당금이라도 터질것 같은 꽃망울들에서 꽃이파리들이 하나둘 뒤로 몸을 젖히면서 꽃망울들이 열리지. 꽃망울이 열리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 무엇이 하늘로 힘차게 날아올라. 아가야. 눈부시게 하얀 날개가 달린 천사같은 아가야. 빨간 꽃망울에서도, 노란 꽃망울에서도 색이름을 알수 없는 수많은 꽃망울들에서 아가들이, 날개를 단 아가들이 하늘로 날아올라. 하늘로 날아오른 아가들의 몸에도 붉은 빛이 어리고 입을 열어버린 이젠 꽃망울이 아닌 꽃송이들이 아가들을 바라보며 오색으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순간이지.
붉은 빛을 안고 하늘을 배회하던 아가들은 다시 구름밭을 헤치고 날아내리는거야. 구름밭아래에 열린 푸른 하늘로, 그 하늘아래의 어딘가를 향해 날아내리는거야. 붉은 빛을 안은 아가들이, 날개를 단 아가들이 구름밭아래로 붉은 빛줄기처럼 미련없이 서둘러 날아내리면 구름밭은 다시 보송보송해지는거야. 열린적 없었던것처럼, 아가를 잉태한적 없었던것처럼, 아가를 떠나보내지 않았던것처럼. 그러고나면 열렸던 ,꽃망울이 아닌 꽃송이들은 반짝이던 오색의 빛갈 그대로 서서히 흩어져버리고 그가 앉았던 이파리마다에 어느새 입을 꼭 다문 고집스러운 쬐꼬만 새 꽃망울들이 댕그라니 올라앉아있거든. 이제 또 하루하루 부풀어갈 꽃망울들이. 언젠가는 꽃송이로 피여나 흩어질 꽃망울들이야. 구름밭우엔 여전히 크고작은 꽃망울을 보듬어안은 이파리천지야. 커다란 이파리들이 꽃망울을 보듬어안고 자장그네처럼 조용히, 조용히 몸을 뒤채고있어……
언젠가부터 “아가는 천사야.”하던 엄마의 이야기는 하나의 정경으로 부풀려져 나의 머리속에 그려지고있었고 그 정경속에서 아무리해도 리해하기 어려웠던 그 한구절의 말을 엄마는 아름다운 문구로 부풀려서 내게 차분히 이야기해주고있었다.
그래서 난 믿어버리고말았다.
아가는 천사라는것을. 하늘이 보내준 천사라는것을.
2
“엄마, 아기를 사줘요..”
“뭐야?!”
나는 화들짝 놀라 책에서 눈을 떼여 윤이를 바라봤다.
컴퓨터게임을 하다말고 아기를 사내라니?
가끔 이렇게 6살짜리 아들애 윤의 입에선 늘 예측할수 없는 엉뚱한 말이 튀여나와 날 당황하게 만들군 했다.
“이것 봐요. 아기가 얼마나 귀여워요? 아기 사서 키워요.”
녀석은 머리도 돌리지 않은채 부지런히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 윤이쪽으로 다가갔다. 부동한 피부색을 가진 세 아기를 침대에 눕혀놓고 엇갈아가며 돌보는 게임에 열중하고있었다.
“아기를 어디서 파는데?”
“상점에서 사면 되죠. 맛있는것도 상점에서 파는데 아기도 상점에서 팔거야. 우리 귀여운 여자아기 사요.”
윤이는 잽싸게 마우스로 피부색이 하얀 아기를 집어내여 보행기에 앉혀놓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을 톡톡 쳐서는 도로 침대에 눕히였다.
“애두, 참. 후훗~”
나는 저도모르게 웃음이 쿡쿡 나왔다.
“윤이야, 아기는 상점에서 파는게 아니야. 상점에 없어.”
“엄마가 어떻게 알아요?”
윤이는 이번에는 마우스로 피부색이 까만 아기를 집어내여 보행기에 앉히고 우유를 먹여 침대에 눕히였다. 그리고는 또 바삐 칭얼거리는 다른 아기에게 놀이감을 쥐여주었다. 물끄러미 윤이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말고 윤이에게 뭐라고 말해야 알아들을지 난감해졌다. 옛날 어른들처럼 다리밑에서 주어왔다고 말하는것은 너무 황당한 거짓말일것 같고 병원에서 사왔다고 하자니 병원에 가서 사오라고 성화를 댈것 같았다. 그렇다고 낳았다고 말해줄려니 그 말 뒤에 뒤따를 더 많은 물음들을 감당해낼것 같지 않았다.
“윤이야, 아기 사오면 윤이 동생 될거거든. 그러면 윤이가 맛있는것도 나누어주어야 하고 장난감도 주어야 해. 그럼 윤이한테는 아무것도 없어도 돼?”
“줄거야. 다 줘도 돼. 그러니까 동생 사다줘.”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을 던진 윤이는 여전히 마우스를 쉴새없이 움직이며 세 아기를 번갈아돌보았다. 6살짜리 애에게는 무엇보다도 커보일 장난감도 나눠눌주 있다면 다른 말이 더 필요치가 않음을 난 알았어야 했다. 그럼에도 난 윤이를 설득할수밖에 없었다.
“동생 사려면 돈이 엄청 많아야 되거든. 엄마 아빠는 아직 그렇게 많은 돈이 없어.”
윤이의 얼굴이 찡그려지고있었다.
“아앙~ 동생 사 내! 동생!”
윤이는 와~하고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녀석은 손에 들었던 마우스를 홱 팽개치고 침대에 마구 엎드려 서럽게 울었다. 녀석은 울음이 터지는것도 갑작스러웠다. 아무래도 녀석은 엄마인 나를 당황스럽게 하는것은 태여날 때부터 타고난것 같았다.
“윤이야~”
윤이는 몸을 비틀며 등을 다독이려는 내손을 밀어냈다. 모니터화면의 세 아기들도 저마끔 말풍선에 우유병이며 놀이감이며 기저귀를 그린채 앙앙 울음을 터뜨리고있었다. 나는 할수없이 게임을 종료시킨채 거실로 나와버렸다.
“애가 왜 터졌어? 당신네 둘은 붙기만 하면 소란스러워.”
티비에만 정신을 팔고있던 남편이 얼굴을 찌프렸다.
“동생 사내래요. 안된다고 했더니 저렇게 터져버렸어요.”
“그래? 그럼 사면 되겠네.”
남편은 급기야 희색이 만면해서 벌떡 일어나앉았다.
“아니, 당신은? 그게 뭐 애들 놀음이라고 사니 마니 해요?”
나는 어처구니없어 눈을 찔 흘겼다.
“안그래도 지금 둘째를 낳는 가정들이 얼마나 많아. 윤이도 혼자면 나중에 외로울건데 이참에 하나 더 낳자~ 응?”
남편도 윤이 못지 않게 엉뚱한 구석이 있었다.
“싫다니까요. 애는 윤이 하나면 됐어요.”
“애가 저렇게 울면서 동생 사달라는데 기특하지 않아? 당신 친구들도 둘째 많이 낳는다며? 부모님들도 손녀 하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데 이왕이면 딸 하나 더 보는게 좋지 않겠어?”
남편은 바투 다가앉았다.
“내가 윤이를 얼마나 어렵게 낳았는지 당신도 알면서 그래요? 난 자신이 없어요.”
결혼한지 5년만이 생긴 윤이, 난 정말 내 자궁속에 다시 애가 들어설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알아. 당신이 그동안 불임때문에 고생한걸 안다구. 오죽하면 내가 당신을 동무해서 이 억대우같은 신체에 보신약을 2년씩이나 먹어주었겠어? 다 당신이 혼자 탕약 먹기 힘들다고 징징거리니까 되지도 않는 당신 억지에 넘어간거지. 윤이도 낳은걸 보면 인젠 당신이 완전히 치유된거잖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 마음만 먹으면 되는거야. 안된다쳐도 밑지는것은 없잖아. 우리 낳자~ 응?”
남편은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불임이란 말을 듣고 “지금은 약이 좋으니까 치료하면 금방 임신할수 있겠지?”하던 때처럼 절박하리만치 간절한 눈빛이였다.
“암튼 난 싫어요. 그만합시다.”
나는 짜증을 내며 인상을 팍 썼다. 남편은 시무룩해지더니 “에이~”하고 김빠진 소리를 내며 다시 카펫우에 누워버렸다.
티비에서는 얼굴에 검은 버섯이 한벌 쭉 깔린 로인이 한창 항일전쟁때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영화에서 퍼왔을 전투화면이 가담가담 끼이며 지루하던 이야기 한토막이 끝나고 광고가 시작되였다. 남편이 리모컨을 꾹 눌렀다. 화면이 껌벅하더니 축구경기장면으로 바뀌였다. 체육채널이였다. 구라파주축구경기 생방송중이였다. 어느새 축구공을 따라 부지런히 움직이는 남편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파란 잔디가 쫙 깔린 체육장에서 땀 흘리며 뛰는 힘이 불끈불끈 솟을것 같은 체구의 축구선수들과 카펫우에 베개를 베고 편히 누워있는 남편의 불룩 솟은 배를 엇갈아보며 나는 그들사이에 어떤 공감대가 형성되여있는것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수가 없었다. 축구공보다 선수의 얼굴과 체격에 시선에 더 꽂히는 나의 귀는 윤이의 방을 향해 활짝 열려있었다.
윤이의 방에서 “잘했어요, 친구!”하는 소리가 연신 터져나오고있었다.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틀림없이 야채가게에 가서 감자며 당근이며를 사는 게임을 하는 모양이였다. 녀석은 게임을 해도 사내애들이 좋아하는 사격이나 스포츠카게임대신 미궁이며 인형옷입히기, 갓난아기돌보기, 야채사기와 같은 계집애들이나 놀법한 애매한 게임에만 열중하고있었다.
나는 슬슬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무엇을 딱히 해야 할것도 아닌데 쏘파에 기대고앉은 몸이 내 몸같지 않게 불편했다. 육성은 빠져버리고 티비와 컴퓨터가 내는 소리로 꽉 찬 공간에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린 내가 있다는게 불편했다. 쿠션을 안고 티비화면에 눈을 박고 있어도 정작 눈안에 들어오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쿠션을 베개 삼아 베고 쏘파에 쪼크리고 누워도 눈은 감기지가 않았다. 이럴 때 쯤이면 난 뭔가를 바라게 되여있었다. 뭔가 이 소란한듯하면서도 숨막힌 공간에서 빠져가주길 바랬다. 그 바램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여올라와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머리끝까지 기여올라갔다가 어디로 빠져버릴지 몰라 다시 온 몸속에 립자로 되여 부서지고 흩어졌다가는 가슴 어디선가에서 다시 뭉쳤다가 부서지고 흩어지기를 거듭하였다.
나는 급기야 쿠션을 팽개치고 벌떡, 아니 슬그머니 일어났다. 저만치 놓여있는 리모컨을 잽싸게 쥐여 꾹꾹 눌렀다.
“당신이 축구 안보면 저 사람들이 뽈 안차겠대요?”
“보고있잖아!”
남편이 짜증을 내며 몸을 일으키는 사이 화면은 바뀌여버렸다. SBS채널에서 <<도전 1000곡>>이 막 4라운드열전을 끝내가고있었다. 노래제목이 뭔지 파악하기도전 남편은 리모컨을 콱 낚아채였다. 화면에서는 금시 슛하는 장면이 연출되였다.
“내가 볼거야!”
나는 남편의 손에 쥐여진 리모컨에 손을 뻗쳤다. 남편은 리모컨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며 킬킬거렸다. 씩씩거리며 바둥거려도 손아귀를 풀수가 없었다. 갑자기 화가 났다. 나는 리모컨을 내버려두고 씽하니 달려가 디지털티비접수기의 수자판을 꾹꾹 눌렀다. 금시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화면은 다시 경기장면으로 바뀌였다. 화면은 또 껌벅하더니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화면은 다시……
“에익! 어쩌다 집에 있을려면 꼭 저렇게 심술을 부려. 그 정력이면 애나 낳아 키울것이지……”
노래하는 장면과 축구경기장면이 몇번이나 엇갈아 바뀌던 끝에 남편은 드디여 리모컨을 던지며 휭하니 일어나 위생실로 가버렸다.
“와아~”
화면에서는 함성과 함께 꽃보라가 터지며 누군가에게 황금열쇠가 전해지고 있었다. 위생실에서 철렁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나는 슬며시 입귀에 얄궂은 웃음 한자락을 베여물었다.
한참후.
나는 출입문이 닫기기 바쁘게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티비를 끄고 방에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물끄러미 윤이가 게임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고있었다. 녀석은 벌써 아까 울었던 일을 잊고 캐드득거리며 게임에 열중하고있었다. 하긴 누굴 닮았는지 쉽게 토라졌다가도 쉽게 풀리는 윤이였다. 게임을 하다가 중간중간 머리를 돌려 상큼한 코등에 주름을 만들며 코를 잔뜩 달아맨채 해시시 웃어주는 윤이가 꼭 깨물어주고싶도록 귀여웠다. 좀전의 불편하던 기분은 봄눈녹듯이 사라지고 온몸을 해나른하게 하는 즐거운 느낌이 발끝에서, 손끝에서, 가슴밑바닥에서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희영이가 날린 단체메시지를 확인하며 눈길을 창가로 돌렸다. 가을해볕이 펴지기 시작하는 창가로 노랗게 물든 락엽 하나가 팔랑이며 날아지나고있었다. 어느덧 9월도 막바지에 접어들고있었던것이다.
3
익숙한 얼굴들이 생소하게 보여왔다. 세월은 순진하고 청순했던 고수머리, 단발머리의 소년소녀들 대신 파운데이션을 덧칠하여 기미를 가린 아줌마들과 금방 면도를 끝낸듯 푸르스름한 턱의 아저씨들을 눈앞에 부리워놓고 있었다. 누구는 얼굴륜곽을 보면 금방 알겠고 누구는 눈매만 봐도 익숙하고 누구는 목소리만 들어도 이름을 짚어낼수 있고 누구는 행동거지만 봐도 알만한 그들, 그들은 변했으면서도 변하지 않고있었다. 얼굴에서 몸에서 자신만의 고유의 그 무엇을 발산하고있는 그들은 생소하면서도 익숙했다. 며칠전에 본 얼굴도 있었고 몇년전에 본 얼굴도 있었고 졸업한지 꼭 15년만에 보는 얼굴도 있었다. 하지만 4년의 동창생활중 어느만큼의 시간과 사연들을 공유하고있었든지를 막론하고 똑같이 반가워하고 무랍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을수 있다는것이 신기했다. 동창이라는 리유 하나만으로 15년 세월을 “안녕?”하는 한마디 말로 뭉때리고 별 중요하지 않은 추억거리들을 끄집어내여 시글벅적 떠들어댈수 있다는것이 신기했다. 별로 친한 기억이 없는 얼굴들도 “보고싶었다”며 만져주고 손을 잡아주는 내가 혼동스러워졌다.
술이 서너순배 돌았을 즈음 잠간 자리를 비워 홀의 빈 테이블에 앉아있는데 왼쪽 어깨에 손이 실려오면서 왼쪽 옆자리의 의자가 뒤로 당겨지고 누군가 털썩 들어앉았다. 상민이였다.
“뭐하니? 여기서.”
불깃불깃한 얼굴로 상민이는 나이와 걸맞지 않게 코등에 주름을 잡으며 싱글싱글 웃고있었다.
“그냥. 술 좀 마셨더니 머리가 어지러워서.”
정말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얼굴이 홧홧거리고 머리속에서 수만마리의 지렁이가 무질서하게 기여다는듯 싶었다.
“와아~이게 몇년만이니? 7년만인가?”
“글쎄. 그런가?”
나는 열심히 손가락을 꼽는 상민이를 바라보며 픽 웃어버렸다.
“결혼은 했지? 애는 몇살이야?”
나는 7년전까지도 화려한 싱글이라며 싱글싱글 웃기만 하던 상민이를 떠올렸다.
“당연히 했지. 허허~”
상민이의 웃음이 웬지 부자연스러워보였다.
“행복하니?”
“행복? 그럼, 당연히 행복하지. 넌 아니니? 행복이라는것은 느끼기에 달린거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본인이 행복하다고 느끼면 행복한거겠지. 근데말이야…….”
“니들 예서 뭐하니? 다들 반급주제가 부른다고 난리났는데. 얼른 들어가자.”
어느새 다가왔는지 희영이가 상민이의 말허리를 자르며 잡아끌었다. 그러는 희영이의 가슴이 당금이라도 옷섶을 헤치고 튀여나올듯이 부담스럽게 출렁이고있었다.
7년전 애를 키우는 행복은 따로 있다며 나에게 애를 낳을것을 권고하던 희영이는 지금 둘째아들 준수를 출산하고 요즘엔 애기때문에 시간가는줄을 모르겠다며 한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있는중이였다. 출산때문에 비게덩어리로 되여버린 희영이의 몸매와 아직은 군살 하나 없이 야윈 내 몸매는 어쩜 희영이와 나의 행복지수의 비례만큼 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든것은 희영이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보면서였다. 희영이는 즐거운 표정 그대로 옷섶을 들추고 잘 익은 밤알같이 탱탱한 젖꼭지를 아기에게 물렸고 아기는 손으로 터질듯이 부풀어오른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작거리며 젖을 쪽쪽 빨았다.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말할수밖에 없는 그 풍경은 행복이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떠올리게 하고있었다. 그래서인지 희영이의 얼굴은 볼 때마다 밝아지는 느낌이였다.
지금도 술 한방울 입에 대지 않고 말짱한 정신일것인데도 희영이는 누구라없이 반가와하고 기뻐하는 모습이였다.
희영이의 손에 이끌려 다시 방에 들어가니 다들 반급주제가 가사를 주어내느라고 네한마디 내한마디 떠들석하는 판에 얌전히 앉아 빈 맥주잔만 돌리고있는 미금이가 눈에 띄였다. 한 시내는 아니지만 차를 타고 두시간이면 닿을 거리, 그 거리로 꼭 15년을 못보고 산 미금이였다.
“쟨 왜 저렇게 얌전해졌니?”
내 턱짓을 따라 희영이는 미금이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너두 딸 셋을 낳아봐라. 저렇게 안되나?”
“애가 셋이야?!”
나는 눈이 화등잔이 되여 재빠르게 미금이와 희영이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얘는?!”
희영이는 급히 커다랗게 벌어지는 내 입을 막으며 낮게 속살거렸다.
“조용히 해. 여자는 애를 낳으면 성격도 변해. 애를 키우다보면 아무래도 애의 성별에 묻어가게 돼있더라. 남자애를 키우다보면 조금씩 억세지고 여자애를 키우다보면 아무래도 조심스러워지지 않겠니?”
그전의 활달하던 모습대신 소심스러운 미금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난 “아저씨”라고 불렀던 꺽두룩한 키를 가진 무던한 얼굴의 한 남자를 떠올리고있었다.
대학교 3학년쯤부터 미금이는 련애를 하고있었고 침실에도 곧잘 놀라오던 미금이의 남자친구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철부지인 나를 “꼬맹이”라며 귀여워했고 코흘리개애들 대하듯이 사탕알도 사주고 과일도 사주었었다. 졸업을 하고나서 미금이는 곧장 그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연길에 눌러앉아버렸던것이다. 그리고 15년동안 줄줄이 딸 셋을 낳았는 모양이다.
“딸을 낳으면 얌전해진다? 그럼 나는? 아들 낳은 나는 활발해졌니?”
나는 입가에 얄궂은 미소를 띠고 시까스르듯이 희영이를 빤히 쳐다봤다.
“어유, 이 꼬맹아, 넌 이상해졌다. 애 키우는게 뭐가 힘들다구 몇년씩이나 련락을 끊고 사니? 넌 내가 안찾아냈으면 내내 숨어살 잡도리였지? 나쁜 계집애.”
희영이는 종주먹으로 내 이마를 툭툭 건드리며 종알거렸다. 희영이와 련락이 닿은것은 내가 친구들과 련락을 끊고산지 5년째인 2년전이였다. 희영이의 친정집이 내가 살고있는 시내에 있는 탓에 희영이가 가끔 올 일도 있었고 그러다보니 어쩌구려 어느날엔가는 전화련계가 되고 가끔 만나기도 하면서 다른 애들의 소식은 거의 희영이한테서 전해들었던것이다. 희영이가 아니였더면 난 동창모임에도 참가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래, 찾아내줘서 고맙다. 짜아식~”
“오길 잘했지? 아무래도 올걸 안온다고 바락바락 우길건 뭐니? 나만 너 설득하느라 힘들게. 얼마나 좋니? 오랜만에 얼굴들도 보고.”
희영이의 얼굴에는 말그대로 함박꽃이 피여있었다.
“글쎄다. 후훗~ 근데 상민이는 련락이 안된다더니 어떻게 된거니?”
“장춘에 있는 길림신문사 본사에서 기자로 뛰다가 여기 온지 얼마 안됐대. 철수가 며칠전에 길에서 우연히 만나고 련락했다나 봐. 장춘에 한 5~6년쯤 있었다는것 같더라.”
“그랬구나. 암튼 이렇게 얼굴 보니까 다들 반갑네.”
활달하고 인정미 넘치는 성격때문에 희영이는 항상 동창생들의 중심에 서있었고 그 자리에서 정보망의 역할을 착실히 해주고있었다.
나와 희영이가 마주보며 킥킥 웃는데 다들 우야우야 일어서며 반급주제가를 합창한다고 난리였다. 들쑥날쑥한 키꼴 그대로 줄을 지어서서 제법 진지한 모습으로 반급주제가를 부르는 그 속에 끼여선 나는 예전처럼 입속으로 낮게 가사만 중얼거렸다. 혹여 음치인 내 소리가 튀여나와 노래를 망칠가 걱정을 하며 내 귀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거의 소리가 없이 입만 움씰거렸다.
그러는 내 눈앞으로 귀여운 윤이가 코를 쫑긋거리며 깔깔거리는 모습이 스쳐지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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