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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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날의 설날이 그립다
2008년 02월 05일 10시 58분  조회:1829  추천:44  작성자: 리창현

어제날의 설날이 그립다

 

깃털같은 하아얀  눈송이가  뱅그르르 재롱을 부리며 내린다. 내려서는 쌓인다.  생각을 쌓는다. 오늘날의 눈이나 어제날의 눈이나 그냥 눈이다. 색갈도 향기도 변함이 없는 그냥 눈이다. 눈겨여 살펴보면 어제날의 눈보다는 메마른듯한 감각이 슬픔을 몰아온다. 포동포동 살찐 어제날의 눈과 달리 많이 야위였다는 느낌이 아프게 가슴을 쳐댄다. 어제날의 추운 겨울날 , 창가에 기대여 내리는 눈을 보면서 꿈도 컸었고 근심도 컸었다. 소리없이 내리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느라면 근심은 조용히 묻혀버리고 꿈만은 그냥 마음속에서 움틀거리며 일어서군 하였다. 그저 그냥 모습을 지켜보는 순간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것이다. 그렇게 내리는 눈과 함께 기쁨이 실려오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그맘때면 기다려지는것이 바로 설날이기 때문이다. 못입고 못먹던 시절에는 설날이 그렇게 기다려지기만 하였다. 배도 부를수있고 마음도 부를수 있었으며 생각도 그만큼 부를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초가 삼간에  일가 친척들이 오손도손 모여앉아 설날의 기분을 그려가던 그때가 이젠 추억이라는 이름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밖에서는 그냥 눈이 내리고 있다. 그리움이 내리고 있다. 내마음속에서도 눈이 내린다. 그리움이 마음의 골짜기를 조용히 덮어버린다. 순간 어제날의 설날이 사무치게 그립다.

 오늘도 밖에서는 눈이 내린다. 내리는 모습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냥 그대로 내려서는 앉을 곳을 찾는다. 눈이 내린다. 설날도 내려온다. 어린시절에 그렇게 기다려지던 설날이 아니다. 설날이 다가서는것이 아예 몸부림을 칠정도로 싫어진다. 그렇게 반겨주던 눈도 순간 싫어진다. 다가서는 설날앞에서 기쁨보다 슬픔이 커간다.

 크고 작은 슬픔들이 머리를 쳐들고 살며시 일어선다. 이번 설날에는 어디로 갈가!

아무리 생각을 꼬집어도 방향이 없다. 갈곳이 없다. 설음이 울컥 치밀면서 마음의 창문에 카텐을 쳐댄다. 이곳저곳 아무리 생각해봐도 갈곳이 없다. 다시 설음이 울컥 올리밀면서 마음의 골짜기에 장막을 드리운다.

 어제날의 설날이 사무치게 그리워난다.

 비록은 못살던 그때 였건만 설날이 그립다. 어머니께서 열심히 준비한 음식들을 먹으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설날을 만들던 어제날의 설날이 너무너무 그립다.

 할머니랑 모시고 설인사를 올리면서 작은 세배돈이라도 가지던 순간이 그립다.

기뻐하시던 할머니의 모습도 참으로 그립다. 주름살이 펴지도록 즐거워하시던 할머니의 모습도 초롱처럼 환히 떠오른다.

 아버지 어머니께 설인사를 곱게 포개여 올리던 순간도 그립다. 손녀가 굽석거리며 절을 올리면 만면에 웃음을 띄우시면서 자라라는 의미에서 세배돈을 건네주시며 기뻐하시던 모습도 사무치게 그립다.

 설날이 되면 통크게 날라오시던 옆집 영애 엄마의 막걸리가 그립다. 그리고 고사리 볶음도 너무너무 먹고 싶다. 영애 아버지의 보기 좋은 술주정도 그립다. 동생이랑 함께 서로가 서로에게 설인사를 올리면서 술잔을 기울이던 순간도 그립다.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비칠거리는 걸음앞에서도 기뻐하시던 어머니의 모습도 그립다.

이튿날이면 장인어른과 함께 나누던 술잔도 너무너무 그립다. 한잔술에 기분이 둥둥 떠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시던 장인 어른의 모습도 그립다.

 부지런히 부억에서 색다른 음식을 준비하시던 장모님의 모습도 그립다. 음식재주가 일반을 초과하는 장모님의 정성으로 차려진 술상앞에서 알뜰하게 세배를 올리면 세배돈을 넘겨주시던 순간도 참으로 그립다.

모든것이 그저 그렇게 보기좋던 어제날의 설날이 그립다. 너무너무 그립다.

수많은 그리움이 내리는 눈송이에 매달려 애처로운 비명을 지른다. 마음속에는 언녕 비가 내린다. 주룩주룩 내려서는 골짜기로 흘러간다.

 설날이 다가온다. 갈곳도 없다.  아무데도 가고싶은 생각도 없다. 그저 마누라와 딸애와 함께 설을 쇠야 겠다.

어제날의 설날이 그립다. 밖에서는 그냥 눈이 내린다. 설음도 슬픔도 함께 내린다.

내려서는 녹는다. 마음속에서는 비가 내린다. 내려서는 얼어든다. 슬픔도 설음도 함께 얼어 붙는다. 그리움이 울컥 치밀면서 설음이 부서진다. 부서지는 비명과 함께 수많은 아픔의 꽃들이 여기저기에 뿌리를 박는다.

   설날이 다가온다, 눈과 함께 설날이 내린다. 하지만 갈곳도 없다. 어디에도 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저 그냥 지내고싶다.

   어제날의 설날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립다. 그다음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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