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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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니였었다 (리창현)
2010년 12월 23일 19시 05분  조회:1446  추천:26  작성자: 리창현

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니였었다

여직 살아오면서 째지게 가난했던 시절에 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은 아직도 마음속깊이에 력력히 새겨져있다. 가끔 어렵고 힘들때엔 조용히 밝은 빛으로 다가서면서  삶에 담담한 향기로 안겨온다.

나의 동년은 거의 가난에 뒹굴며 지내오기도 하였다. 동년의 뒤안길을 조용히 살펴보느라면 가난의 흔적들이 유표하다. 철없던 그때에는 가난이 뭔지도 몰랐고 그저 가난이 싫다는 생각하나만을 헤진 바지의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군 하였다.

 한번은 우리보다 생활이 넉넉한 옆집애가 어른의 주먹만큼한 사과를 먹으면서 우리 집으로 놀러왔다. 애의 손에 쥐여진 사과를 보는순간 나는 그만 눈이 휘둥그래 지고 말았다. 이어 닭알같은 군침이 목구멍을 훑으면서 요란스레 넘어갔다. 꿈에도 구경못한 사과를 보느라니 신기함도 신기함이거니와 먹고 싶은 생각만 불길처럼 일어섰다.  아마 애도 나에게 자랑을 하러 모양이 였다. 별로 먹지도 않으면서 요리 굴리고 조리 굴리면서 가난한 마음을 아프게만 굴러 놓았다. 얼마후 애는 시뚝해서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군침으로 가득찬 입을 다물고 부모님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여직 기억이 생생한것은 그날 애가 나보고 사과를 먹어보겠는가하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진작 애가 물어본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곤난한 문제이다.

땅거미가 무렵 일밭으로 나가셨던 부모님들이 지친 몸을 끌고 돌아오셨다. 나는 낮에 있었던 일을 말하고 나서 나도 그런 사과를 먹고 싶다고 떼질비슷하게 말하였다. 그날 어머니는 몹시 가슴아파하는 모습이였다. 아버지는 묵묵히 아무 말도 없이 담배를 말아 피우셨다. 얼마후 아버지께서 팔뚝같이 실한 무우 하나를 들고 들어오셨다. 금방 김치움에서 나온 청무우는 생생하기만 하였다. 아버지는 가장 먹음직한 부분을 곱게 베여서 나에게 주면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미안하구나, 실상 무우가 사람의 몸에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특히 건강에는 무우가 인삼못지 않게 유리한것이다. 남들이 사과를 먹을 우리는 무우를 먹는것도 별스러운 맛이 아니겠니! 시원한 무우를 먹으면서 마음에 묻은 가난에 대한 얄미움을 말끔히 씻어보자꾸나. 모든 가난은 두렵지 않지만 일단 마음이 가난해 지면 너무도 슬픈일이 아니겠니?>> 하시면서 크게 한입을 떼여 시원스레 잡수시는것이였다.

 <<사각-사각->> 무우를 씹던 소리가 오늘도 귀전에 생생하게 울려온다. 그것은 무우를 씹는 소리뿐만 아니였다. 마음에 어지럽게 드리운 가난에 대한 두려움들을 보내주는 정다운 발자욱소리같이 마음에 조용히 흘러들었다. 그날 나는 무우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런 탈도 없이 그냥 즐겁기만 하였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가난앞에서 흐려지는 마음을 말끔히 세탁하는 재주도 키우게 되였다.

  그후부터 나는 가난앞에서 자신을 당당하게 세울줄 알게되였으며 가난으로 어깨를 낮추지 않고 힘주어 세우군 하였다.

  30여년이 지난 오늘도 그날 아버지의 표정, 말씀이  들어도 들어도 그냥 듣고만 싶은 메아리로 다가선다.

  오늘  순간 아버지의 말씀으로부터  거듭 새롭게 다가서는 진리하나가 마음에 뜨거운 난류로 흘러든다. 사람이란 마음이 가난해 지면 모든것이 가난해진다는 너무도 아름다운 존재앞에서 다시금 커가는 자신을 새롭게 찾아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평생 농민으로 살아오신 너무도 평범한 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영영 고마움을 간직하면서 열심히 열심히 살아가려고 오늘도 삶의 터전에서 희망을 줏는다, 기쁨을 줏는다, 행복을 줏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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