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남북에 남긴 옛 선조들의 발자취 찾아서(2)
옛날 심청 주산군도에 시집왔다(1)
리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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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원내 심청 백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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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군도 심원내 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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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군도 심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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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 점심 아들애를 데리고 녕파에 이르니 주산군도 심가문으로 가는 뻐스가 초만원이여서 오후 5시에야 녕파―주산군도행 쾌속뻐스에 오를수 있었다. 평소 세시간이면 뻐스가 바다건너 심가문에 이를수 있다지만 5.1련휴라 차량이 붐비여 우린 4시간을 신고해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심가문의 한 호텔에 투숙할 때는 이미 밤 9시가 넘었다.
내가 왜 주산군도 심가문을 찾아 수백리 길을 달려온것일가? 그 원인을 말하자면 2007년 10월 14일 항주에서 현장님을 만나던 얘기부터 해야 할것 같다.
인터넷 조글로미디어에는 현장이라는 아이디가 가끔 나타난다. 그래서 찾아간것이 항주 서호이고 우린 50대중반과 30대중반이란 나이격차에도 불구하고 구면처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날 우리는 밖에서 비가 내려 으스스한 항주고려사 차집에서 겨레의 어제와 오늘을 두고 많고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주산군도 심가문에 심청기념관이 있다는 얘기가 그렇게 신선할수가 없었다. 금시초문이라 마음이 크게 움직이고 같이 답사를 약속하기도 했지만 서로 일에 쫓기는 우리들로서는 그 약속을 리행할수가 없었다. 마음이 급한 나는 5.1련휴에 녕파와 주산군도를 찾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것이 내가 소흥에서 녕파로, 녕파서 다시 바다건너 주산군도 심가문으로 간 계기라 하겠다.
이튿날인 5월 3일, 아침식사를 대충 에때우기 바쁘게 우린 택시를 잡아탔다. 산골안 심원에 이르니 아침 7시 반정도밖에 안되였다. 귀로에서 알았지만 심원―심청원은 주산시에서 1, 2기 공사를 거쳐 산을 깎고 바다를 메워 새 거리를 일떠세웠다는 동강부근 호수우 골안중턱에 자리잡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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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이른시간대라 개방시간 8시 15분까지는 거의 한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급한 마음에 심원 정문을 밀어보니 잠그지 않았다. 정문안 보안실에는 두 남자보안이 있었는데 나이 지긋한 보안이 먼저 심원의 외곽을 돌아볼수가 있다고 허락한다. 그때 심원 정문안에 있는 안내글이 첫눈에 맞혀온다.
심원안내글을 통해 심원의 위치는 보타산 련꽃양 바다근처 타오촌 동쪽가이며 심원 부지면적은 1만 7000평방메터, 건축면적은 747평방메터, 진나라시절 바다 건너 백제의 효녀―심청이 시집왔고 심청의 효를 테마로 하는 이야기를 묘사하기 위해 중한 우호문화원으로 꾸려졌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마음을 몹시 다잡는것은 안내글의 중심내용―한국출판사의 《관음사의 연기설화》 등 서적기재에 따르는, 심청의 원형은 한국 전라남도 곡성군 원봉사의 딸 원홍장이라는 안내글의 중심내용이였다. 요즘 심청전과 관련된 여러 부의 조선문학사를 보다가 심청전의 유래라고 볼수 있는 여러 설화들중 관음사의 연기설화가 가장 어울린다는 대목을 자주 보아왔던지라 그럴만도 했다.
심청전의 주인공 심청은 원형이 있고 그 원형 원홍장은 앞못보는 부친이 길러준 은혜에 보답코저 홍법사에 시주하게 되고 사찰화주 성공스님에 의해 값진 보물을 두배에 가득 싣고 백제에 무역하러 온 주산군도 보타섬의 부유한 상인 심국공에게 팔리게 된다. 그런 신세의 홍장효녀에게 있어서 심국공은 말그대로 귀인이였다. 심국공은 홍장을 자기의 고향―진나라 심가문에 데리고온 다음 이름을 심청으로 고쳐주고 안해로 삼는다.
이것이 심원 안내글을 통해 알게 된, 심청이 백제에서 진나라 심국공에게 시집오게 된 유래이다. 그래도 나는 일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심청전》에서는 효녀 심청이 소경아버지 눈을 뜨게 하고저 공양미 300석에 팔려 중국 남경상인들에 의해 림당수의 제물로 되고 바다속 룡궁에 안내된 심청이 후한 대접을 받다가 련꽃을 타고 인간세계에 환생하며 귀국도중의 남경상인들에 의해 상처한 송나라 천자께 안내되여 황후로 되고 자기를 위해 차려진 나라의 맹인잔치에서 아버지 심학규를 만나며 그 순간 아버지가 눈을 뜨는것으로 나타난다. 대학에 다니며 조선문학사 공부에서 심청전에 몰두해도 그밖의 연구자료를 접하지 못한 나라 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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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나에게 고전소설속 주인공 심청은 옛날 현실속 실존인물로 다가선다. 그래도, 그래도 선뜻 믿기에는 조선족력사연구가의 마음이 쉽게 따르지 않는다. 한겻이 되여 보안일군들이 《박아청》의 문을 열어주고 실내에 들어가 보아서야 짙은 의문투성이들이 하나하나 풀려간다.
박아청은 심원내의 효녀관, 국공전, 심덕정사, 해로청, 청량전, 차원집과 함께 심원―심청원을 이루는 옛 모양의 한 단층집으로서 중국 보타구와 한국 곡성군간의 우호왕래와 문화교류의 유구한 력사를 보여주는 중한친선의 산물이였다.
박아청내 전시물에는 한국 전라남도 곡성군의 소개글과 더불어 한국 제일의 백제고찰이며 반도 내륙 유일의 관음성지로 불리는 관음사가 소개된다. 소개에 따르면 관음사는 옛 백제시절 분서왕 4년(기원 301년)에 성덕보살이 전라남도 벌교에서 금동 관세음 보살성상을 모셔와 봉안하여 세운 절로서 고대소설 심청전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원봉사와 그의 효녀딸 원홍장의 설화를 간직하고있다고 한다.
심청이 주산군도 심가문에 시집온 증실자료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한국 전남 곡성군과 절강 주산시 보타구에서는 2003년 11월 4일 곡성군청에서 곡성군―보타구 《우호문화공원》을 꾸릴데 대한 회담을 가지고 2007년 1월에 정식 개관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앞서 보타구 우호교류방문단이 월극 《심청전》극단을 한국에 인솔하여 2005년 4월 18일에 《심청전》을 공연하고 환영을 받는 장면을 사진과 설명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년간에 한국학자들속에서 《심청전》에 대한 연구열조가 뜨겁게 일면서 관련 한국학자들은 주산군도 심가문에 와서 심청고적을 현지조사하고 심청이 반도 서쪽으로 바다 건너 온 원인을 깊이 연구하기도 했다니 관음사의 원홍장설화가 력사긍정을 받은 모양이다. 한국서 출판된 《관음사의 연기설화》와 연구저서들은 심청의 원형이 전라남도 곡성군 원봉사의 딸―원홍장이라고 밝히여 놓은것이 그러하다고 할가.
한국 전남 곡성군에서는 이에 중국 절강성 주산시 보타구(현급 행정구)와 우호관계를 맺고 심청원―《우호문화공원》을 일떠세우게 되였다. 중국측에서도 심청과 심국공에 대한 연구가 활기를 띠여 연구문집이 이미 정식으로 출판, 심원내 효녀관에 전시된 상태다.
심원 박아청 전시자료들은 여러 의문점들을 해소하기에 족했다. 한국측 주도에 의한 심청원형의 연구결과를 믿고싶었다. 그러고보면 심청의 원형은 력사속 실존인물인 전라남도 곡성군 원봉사의 딸 원홍장이며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광명을 위해 주산군도 심가문의 부유상인 심국공한테로 시집오게 된것이 력사적사실로 드러난다.
[인터넷길림신문 2009-06-27 오전 1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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