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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평]병든 개의 교활한 문학
2019년 07월 15일 09시 02분  조회:346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병든 개의 교활한 문학

리호원

 

1. 교활한 잠재

녀석을 언제부터 알고 지냈는지 며칠 동안 해골바가지를 굴려봐도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지금 너무 친숙하고 자주 만나기 때문에 기억의 축이 이완되지 않았느냐는 의문도 해보았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녀석보다 녀석의 시를 먼저 접했다는 사실만은 또렷이 기억된다. 

90년대 어느 해인가 《흑룡강신문》 문예면에 실린 녀석의 시를 읽다 흥분해서 그만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던 적이 있었다. 능청스럽게 무르익은 시구들이 안겼던 충격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였다. 녀석의 시에서 받은 신선함으로 파생된 충동은 오래동안 나를 창작의 모서리에서 서성거리게 했고 엉거주춤을 추게 하였다. 

이 녀석을 언젠가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몇년 동안 버리지 않고 있던 2000년대 초 녀석이 제 발로 할빈으로 굴러 들어왔다. 흑룡강신문사의 편집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였다. 이 쯤 정리하다 보면 둘의 초면은 아마 한춘선생이 자리를 주선하지 않았나 추측을 한다만은 녀석은 이미 여러 직장을 바꾸며 교활하게 사회에 익어있었다.

그로부터 우리는 서로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됐고 자주 술자리에 같이 앉게 되였다. 녀석은 술을 맛있게 마실 줄 알았고 사냥개마냥 발달한 후각으로 분위기 파악에 능숙한 놈이였다.

전혀 가식이 없는 녀석의 헤어스타일은 종래로 까까머리였고 그에게 의류라는 것은 그냥 몸가리개일 뿐이였다. 

어쩌면 이것도 일종 방어의 한 형식일지도 몰랐다. 왜냐 하면 그는 지금도 재간 있는 만큼 이런저런 제한을 받기 때문에 사냥개처럼 교활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이기 때문이였다. 

 

2. 섹스는 교활한 그의 미원이였다

항상 어디에 앉든 올방자를 틀고 앉는 녀석은 석잔을 비우고 나서야 방어상태를 완전히 풀어헤친다. 녀석은 마치 귀여운 강아지마냥 자신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을 개의치 않고 털어놓는 솔직함과 순수함을 보였다. 이때면 나는 간간이 그의 ‘이끼 낀 간’과 ‘플라스틱으로 된 페’를 더듬을 수 있었고 눈물 젖은 서러움들과 뭉개졌던 시련들을 주무를 수가 있었다. 

“형니미, 나는 양, 녀자들 허리에 뿔이 두개 달렸으면 좋겠소…”

녀석은 곧 크지 않은 체구를 벌떡 일으켜세웠다. 나는 이것이 녀석의 트레이드 마크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술상의 모든 녀성들은 눈이 휘둥그래졌고 남성들은 그게 또 뭐, 하는 식으로 입을 헤헤 벌리고 있을 때 녀석은 두손으로 가상의 두 뿔을 잡아당기며 이마살을 찌프리고 앞뒤로 용을 썼다. 

 “으아악, 이렇게 줄기차게 섹스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소?” 

“어머머, 한쌤! 내 옆구리에 뿔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아요.”

수컷들이 무안해서 얼굴이 지지벌개져 눈치를 살피는 반면 녀성들은 솔직한 녀석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기특해보이는지 한참 기를 돋아줬다.

녀석은 시무룩이 웃으며 언제 그랬냐 싶게 술잔을 들며 술을 권한다. 녀석에게 있어서 진정 섹스는 일종 융합과 나눔의 경계였고 마인드의 경지였다. 모든 섭외과정이 디테일하게 알맞고 융합되여야만 도달할 수 있는 달인의 경계, 그는 드높은 경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맛있게 재워놓을 수 있는 놈이였다. 

 

3. 보험 든 교활함

남녀의 운전자세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남자들은 편하게 한손으로 핸들을 잡기 좋아하고 녀자들은 핸들을 놓칠세라 두손으로 꽉 동여잡고 경직되여 운전하는 경우가 많다. 왜? 남자들은 자신과 차가 동심일체라고 생각하기에 편하고도 자유로운 운전자세를 취할 수 있고 녀자들은 꼭 차와 자신은 별개의 개체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현상이 생기기 마련인 것이다. 

문학창작을 대공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창작을 어렵게 할지 모르지만 녀석은 언제나 문학과 자신은 동심일체라 생각하기에 편하고 쉽게 많은 작품들을 쏟아냈고 쟝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었다. 녀석은 우리 민족의 감정과 정서를 너무나 알맞게 표달하는 기교를 갖고 있는 놈이였다. 이것은 문학적인 교활함이였다. 

언젠가 녀석이 대인관계에서 아주 모호한 립장과 태도를 취하며 교활한 교제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몹시 화가 났었다. 곧장 불러내여 삿대질을 해댔건만 녀석은 아무 변명을 하지 않고 말머리를 돌렸다.

“형니미, 나 10대들부터 60대까지 다 해봤소…”

한마디 변명이라도 했다면 완전히 폭발하겠건만 나는 그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뒤말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나의 관심을 엉뚱한 데로 끌고 가려는 교활한 작간이다. 모르는 척하고 그대로 응할 수 밖에 없었다.

술잔을 한잔씩 비울 때마다 녀석은 사귀였던 녀자들의 스토리를 하나하나씩 리얼하게 씹기 시작했고 나도 그의 장황연설에 묘미를 느끼며 구태여 진실여부를 확인할 필요까지야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이 거나하게 되자 녀석은 외마디 비명까지 질러대며 정말 걸레처럼 웃어댔고 나는 사타구니에 머리를 박은 채 녀석의 녀자들을 세고 있었다. 수자가 늘어날수록 그 속에 비껴있는 우울한 음영도 점점 커져가며 녀석의 유일한 해탈방법이 문학 뿐이라는 획기적인 안타까움이 괴롭게 술잔을 파고 들었다.

나는 녀석의 중얼거림을 ‘병든 개가 흘리는 느침소리’라고 생각하다 정신이 번쩍 들자 녀석이 지금 구두로 소설을 쓰고 있지 않냐고 교활하게 의심했다. 

 

어느 해인가 문학행사의 술상에서 내가 손님들과 로익장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는 동안 녀석은 벌써 이 자리를 떠서 즐길 궁리를 다해놓고 미녀들에게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포획물을 챙기고는 사냥개마냥 감쪽같이 사라지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것은 썩 후에였다.

그리고 늦은 밤에 꼭 전화를 걸어왔다. 

“형, 우린 나가서 2차 엄청 잼있게 하고 집에 도착했소.” (몰래 마셨으면 끝이지 왜 꼭 열 받으라고 짖냐!!!) 결국은 또 방심하는 동안 내 자신이 녀석의 교활함에 빠지고 말았다.  

 

방학이 되고 녀석이 혼자 있을 때면 “형, 건너오오!” 하고 련락이 온다. 그러면 둘은 녀석의 서재에 틀어박혀 초저녁부터 술병을 까다 새벽녘에야 곯아떨어지군 했다.

처음 강북으로 건너가 밤을 새우다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은 아무런 가식도 없고 질서도 없을 줄로 생각했던 녀석의 교활함을 다시 확인하고서였다. 

차곡차곡 정렬되여있는 소시적의 습작노트와 정연히 모셔져있는 문학서적들 그리고 창작된 모든 작품은 매편마다 창작시일이 박혀있는 문서가방 안에 독자적인 문서로 세밀히 분류되여 차림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메커니즘 형식의 문학작품 관리,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써놓은 시를 못 찾는 경우도 많았고 써놓은 것은 시간이 지나면 언제 쓴 것인지 분간도 못하는 위인인 나와는 완전 반대였다. 우리는 여직껏 사냥개보다 더 교활한 자식을 그냥 쉽게 알고 지내왔었던 것이다. 

 

4. 교활함은 수단이였다

녀석은 이상한 흡연습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각기 다른 브랜드의 담배 네갑을 터쳐놓고 지그재그로 피우는 것이였다. 타인에게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습관이다. 

녀석은 문학도 담배처럼 퓨전으로 가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다. 난 그 네갑의 담배를 각기 시, 소설, 평론, 수필로 명명해놓았고 애써 바뀌는 규칙을 찾으려 노력해본 적도 있었다.

녀석과 나는 가끔 커피점에서 만날 때가 많았다. 커피점에서 내가 아메리카노를 축내는 동안 녀석은 양주를 소멸하며 어릴 때 보았던 소설이름을 맞추기도 했고 그 주인공에 대해 분석하기도 했다. 물론 어릴 때 감지했던 그대로를 서로 맞추어보는 과정이였다. 이쪽저쪽으로 튀며 문학공감대를 찾으려 애를 썼다. 얼마를 공감하고 공유했냐는 기준은 술과 커피의 량이였다. 흥건하게 당일 분량의 밀담을 끝내고 나면 미친 두 중년의 헛소리들에 죽도록 심심했을 아들 서현군을 부른다.

“영화 보러 가자.”

 

녀석에게는 간단한 말도 재미스럽게 하는 재치가 있었을 뿐 아니라 언제를 물론하고 꼭 형이라 부르는 갸륵한 매너도 있었다. 아무리 흐트러져도 고쳐부르지 않았다. 2006년도 청도에서 연해문인협회를 창립할 때 마침 대련에서 쉬고 있던 녀석이 날아왔는데 차례가 되자 공손히 일어서더니 “난 손은 두갠데 지금은 모두 나를 백수라고 부르고 있소.” 하고 익살을 부린 때가 어제 같다.

문학상을 많이 탄 놈이지만 문학상보다 기억에 남는 것이 녀석의 수상소감들이였다.

“목을 꺾어 주최측의 로고에 인사드리며 허리 꺾어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고 무릎 꿇어 독자들에게 절을 합니다…”

회의를 마치고 회식장소로 이동하려 내려오니 광풍이 몰아치고 비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처마 밑에 도사리고 섰는데 녀석만은 층계 밑에 내려가 뒤짐을 지고 비바람을 마주한다. 

“너 뭐 하노?”

“형니미, 아주 괘씸하오! ”

“왜? ” 

와뜰 놀란 나였다.

“지나가는 녀자들마다 다 가슴이 두개요!”

또 얼짱발언에 당하는 찰나였다. 

“에잇, 자슥아!” 

엉덩이를 걷어차버리고 말았다.

녀석은 지금도 수시로 사냥개의 교활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에게 교활함은 생존수단이였고 교제방법이였다.

놈은 가식 없는 모습으로 객관방어를 했다면 사냥개 같은 교활함과 날렵함으로 주관방어를 하고 있는 셈이였다. 

 

 자슥아, 우리 이젠 좀 멍청하게 놀아보자!

 알아들었나?

출처:<장백산>2018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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