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는 왕족으로 태여나서 백성들이 삶을 위해 허덕이며 사는 모습을 보고 자기가 진리를 깨달았다고 생각하였다. 즉 '저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전생에 죄를 지어 이생에서 저렇듯 고생하고 있구나'하고.
그리하여 석가는 윤회설을 설립하고 인생을 윤회설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죄를 지으면 끝없는 고(苦)에서 뻣어나지 못하고 윤회하게 된다. 또 죄를 짓는 정도에 따라 윤회하는 등급도 부동하게 된다.
석가의 이러한 가르침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부모 혹은 자식 혹은 아내나 남편을 외롭게 남겨두고 윤회를 벗어나기 위한 수행을 하기 위해 깊은 산속으로 떠났다. 다시는 苦를 안 거치고 영원한 삶을 살겠다는 속심에서 였다.
苦가 없는 삶, 그것은 정말로 있을수 있으며 또 가능한 삶인 것인가?
이는 자연의 법칙을 떠난 환상적 삶이라고 밖에 할수 없다. 우주의 만물은 모두 똑같은 우주의 법칙을 떠날수 없다. 우주의 법칙은 간단히 음과 양의 법칙으로 볼수 있다. 또 다시 말하면 수축과 팽창의 법칙이다. 우주는 이런 음양의 주기적인 교체로 발전을 이루어 왔던것이다. 이는 우주의 보편적인 법칙이다. 어떠한 사물의 발전도 이러한 과정을 떠날수 없다.
일찍 맹자는 이러한 말을 한적이 있다. 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腑 窮乏其身行 行弗亂其所爲 是故 動心仁性 增益其所不能. 뜻인즉 "하늘이 이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고자 할때 반드시 먼저 그 사람더러 하고자 하는 뜻을 괴롭게 하고; 근골을 지칠대로 지치게 하고; 굶주림에 허덕이게 하며, 길을 떠남에 있어서 로비도 없게 하는데 그 원인은 마음과 성질을 연마하여 그가 할수 없는 일도 할수 있게 하려는데 있다"이다.
맹자의 뜻의 苦는 석가가 말한 뜻과는 상반대이다. 석가는 苦를 전생에서 지은 죄 때문이라고 보았지만, 맹자는 오히려 苦는 하늘이 그 사람에게 내려준 축복으로 보고 苦의 시련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인생을 이해할수 없으니 절대고 큰 일을 할수 없으니 苦를 보약으로 알고 받으란 말이 되겠다.
많은 사람들은 苦속에서 苦를 이겨내지 못하고 좌절당하고 만다. 그러나 안일한 생활만 추구하여서는 결코 성숙을 이루어 낼수 없다. 그러나 또 苦만 있는 삶은 또한 찬성할바가 아니다.
음양의 각도에서 보면 苦는 음에 속한다고 볼수 있다. 반대로 일들이 순순히 풀려나가는 것은 양에 속한다. 우주의 법칙에 의하면 사람이 발전을 하려면 꼭 두가지를 다 겪어야 하는것이다. 苦도 겪어야 할뿐만 아니라 또 인생의 환락도 느끼면서 성공의 희열도 느껴야 하는것이다.
어떤 사람은 겸손은 미덕이라고 한다. 그러나 겸손은 사람의 타고난 자질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고 사그러지게 할수 있다. 그렇다고 가라지처럼 고개를 가득 쳐들고 살아야 된다는 것도 아니다. 그 결과는 가을의 서리에 꼭 꺾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때를 맟추어 겸손할땐 겸손하고 자부할땐 자부하고 희노애락을 빠짐없이 다 고루 겪어야만 제대로 성숙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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