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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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35 ]

35    지구온난화와 연변 댓글:  조회:2062  추천:2  2019-06-13
지구온난화와 연변 리경호 동료가 요즘엔 모아산에 가지 말라고 일깨워 준다. 림업국에서 모아산삼림에 병충해가 심해 약을 치니 3일간 가지 않는게 좋다는 것이다. 직업적인 직감이랄까 불안한 예감이 뇌리를 스친다. 일찍 화룡선봉림장에 갔을 때, 선봉림장의 일군이 말하던 일이 생각났다. 수십년전에 선봉에 사시장철 있던 얼음호가 이젠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십여년전부터는 또 연변에서는 전혀 재배가 되지 않던 련꽃이 연길공원에서도 번듯이 잘 자라고 있어서 지구온난화가 현실로 다가오는구나 하고 걱정을 했었다. 특히 올해에는 제일 춥다는 대한소한이 날씨가 너무 따스해서 나를 소름끼치게 했다. 얼마전 연변인민방송국에서 생방송을 할 때, 아나운서가 지구온난화가 연변에 주는 영향을 물으니 지구온난화가 전 세계적으로는 큰 피해를 주겠지만, 연변에는 오히려 추운 겨울이 짧아져서 더욱 살기좋은 날씨가 될것 같다는 대답을 한 일이 있다. 그런데 그 말에 반격이라도 하듯이 모아산에 병충해가 심해진다니... 모아산 삼림에 병충해가 살벌하는것은 혹 지구온난화와 관계가 없을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불안해 하는 이유는 병충해가 심해진 이유가 벌레의 천적인 새들이 제대로 작용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싶이 생태계에서 벌레의 천적은 새들이다. 특히는 제비같은 철새들은 벌레가 많을때면 의례 알을 부화시켜 새끼에게 먹이를 주느라 벌레잡이에 총력을 기울이기 때문에 벌레를 대량 잡는다. 자연의 섭리라는것이 참 묘해서 벌레가 많이 끼는 계절과 새들의 알을 부화하는 시간이 잘 맞물린다고 한다. 새들은 해마다 어느때에 벌레가 많이 생기는것을 미리 알고 새둥지를 마련하고 알을 낳고 부화시키고 새끼에게 먹이를 잡아주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의 리듬이 깨지면서 벌레가 무성해지는데, 새들은 미처 알을 낳지 못하고 부화시키지 못한다면, 생태평형이 파괴되면서 삼림은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림업부문에서도 부득이 살충제를 쓸수밖에 없게 된다. 어찌보면 자연계에서 인간은 너무 불의의 손님이다. 다른 동식물들은 모두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고 있지만, 오직 인간이라는 이 종은 꼭 자기의 보금자리를 다 파괴해버리고 조상이 마련한 자원을 탕진하고 후손들의 살길을 막아놓으면서 살아간다. 참으로 부끄러운 존재다. 나는 늘 그 종의 일원이라는것을 부끄러워하며 살고 있으며 조금이라도 힘에 닿는대로 만구하자고 애를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터전은 날이 갈수록 더 파괴되고 앞길은 더욱 기약하기 어렵다. 나는 끝없는 인간욕망을 만족시키려고 파괴를 일삼는 자들이 정말 얄밉다. 인간이 묻혀온 흔적들로 날로 사라져가는 빙하들, 람벌로 인해 사라져가는 삼림과 날로 늘어나는 황폐한 토지들, 바다밑까지도 오염을 시켜 동식물의 생존에 위협주고 지어는 만메터 이상의 해저에서도 인간의 쓰레기로 동물들이 죽어가고 있다니 참으로 한심하다.
34    윤동주 송몽규 탄생 100돐 기념답사에 나선 이들 댓글:  조회:3143  추천:2  2017-12-30
 사진 촬영 리광평 등 (이하 모두)   위챗동아리ㅡ력사동네 민속동네에서는 지난 8월 3일 화룡경내 항일유적지 제1차 현지답사에 이어 12월 15일, 제2차 현지답사로 윤동주, 송몽규 탄생 100돐 맞이 윤동주, 송몽규 발자취 기념답사에 나섰다. 이날의 기념답사는 연변대학과 여러 매체 등에서 활동하는 문인들과 력사애호가 근 20명 참가속에 력사동네 민속동네 부회장인 연변인민방송국 문체부 남철주임이 까근히 짜고들었다.   이날 현지답사의 첫걸음은 달라자학교로 잡았다. 달라자학교는 이미 새 교사를 짓고 나갔고 원 달라자학교 자리는 텅비어 밭으로 되여있었다. 학교의 앞마당으로 추정되는 곳에 늙은 나무와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돌로 되여있는 울바자안에 있어서 그 위치를 찾는데 별로 어려움은 없었다. 룡정 3.13기념회 리광평회장의 안내로 우리는 아직 나로서는 모르는 진실을 알게 되였다.     1931년 3월에 윤동주와 송몽규는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명동에서 남으로 10리 떨어진 그 시절 화룡현 현립1교로 불리운 달라자학교 6학년에 편입되여 1년간 다니였다. 이 학교는 조선사람과 중국인들로 구성된 혼합학교였는데 윤동주는 이 학교에서 중국말을 배웠다고 한다. 또 이 학교에서 1년을 다닌 윤동주는 은진중학교로 진학을 하게 된다.   두번째로 찾은 곳은 윤동주, 송몽규가 1925년 4월에 입학한  명동학교이다. 마을의 관리자를 찾아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또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발견하였다. 바로 기와이다. 교장실벽에 걸려 있는 사진에는 기와가 들어있었다.   윤동주의 외할아버지인 김약연선생은 참으로 대단한 원견을 갖고 있었다. 중국으로 망명한 김약연은 청정부에 국적을 신청해서 허가 받았다. 이때 청나라국적 신청을 받은 사람은 김약연을 포함한 그 일대의 5대가족이 망라된다. 이 다섯가족은 그 지역의 땅을 대량 구입하여 어지러운 세상과 다른 새로운 리상향을 만들기로 하였다. 그들은 기와공장을 만들어 자체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팔기도 하고 또 뽕나무를 대량 재배하여 비단을 짜서 사용하기도 하였었다. 그때 자체로 생산한 비단옷이 지금도 남아있다는게 신기하게 느껴졌고 기회가 없어 보지는 못했지만 깊은 흥취를 자아냈다.   김약연은 학교를 만들어 교육을 통해 "신민"을 만들려 작심했는데, 기와에 그 글이 적혀있었다. 참으로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신민은 "대학"에서 나오는 구절로 사람을 새롭게  개조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부패한 정부로 인하여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대한민국정부에 대한 실망과 새로 나라를 개척하여 명동 즉 동쪽을 밝힐 인간을 만들어내겠다는 웅심이 함께 보여진다.   필자도 후사모를 꾸려서 새로운 교육을 통해 신민을 만들어 내려 작심하고 장학기금을 설치해 장학생을 배양해 냈지만, 내가 키워낸 장학생은 내가 바라는바와 너무 거리가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김약연선생은 얼마나 원견이 있고 학식이 있고 조치가 완벽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세번째로 찾은 곳은 윤동주생가이다. 윤동주생가는 수차 찾은 곳인데다가 모두에게 익숙한 곳이여서 더 언급을 하지 않기로 한다.   일행은 달라자학교와 명동학교, 윤동주생가 현지답사에 이어 룡정 동산의 옛 중앙교회묘지의 윤동주묘소와 송몽규묘소로 향했다. 송몽규묘소에 대한 이야기가 관심을 끌었다. 송몽규묘소는 원래 장재촌 동쪽 언덕가에 있었는데 1990년도에 이장되여 현위치로 오게 된다. 이장할 때 무덤을 파헤치니 뼈가루를 묻은 골회함과 자루가 나왔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나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다. 송몽규의 아버지가 일본행에서 뼈가루를 갖고간 그릇에 다 담았는데 량이 많아서 다 담을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원쑤의 땅에 자식의 뼈 한점이라도 남겨둘수는 없다고 하면서 자루를 찾아서 모두 담아왔다고 한다. 일제에 대한 적개심을 측면으로 보아내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윤동주가 다녔던 룡정은진중학교이다. 이 학교는 설립당시는 기독교학교여서 은진중학으로 만들어졌는데 쏘련으로부터 사회주의 사조가 들어오면서 기독교를 버리고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집단으로 대성중학교로 전학을 가는 일들이 생겨나면서 은진중학교의 운영이 어려워지게 된다. 김약연은 기독교로 리상향을 만들려 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기독교가 아닌 사회주의 새사상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날 력사동네 민속동네 회원들은 윤동주와 송몽규 연구가인 박용일선생과 룡정3.13기념회 회장 리광평선생의 안내하에 윤동주, 송몽규의 발자취 어린 달라자학교 자리와 명동학교, 윤동주생가, 윤동주묘소 등지를 현지답사하면서 많은 새로운 지식을 배우게 되였다며 분분히 속셈을 터놓았다. 리광인 선생과 박용일선생의 이날 저서선물ㅡ “광복전 겨레 작가론”과 “고향으로부터 윤동주를 찾아서”는 이들의 시야를 보다 넓혀 주었다. 윤동주, 송몽규 탄생 100돐 맞이 또 한차례 뜻깊은 행사였다.   2017년 12월 20일  
33    “나와 위챗으로 대화하려 하지 말아달라” 댓글:  조회:3473  추천:0  2016-01-06
위챗은 훌륭한 소통도구이다. 위챗은 등장과 더불어 전 국민이 즐겨 이용하는 도구로 각광 받으며 학습 도구, 상업정보 교류, 뉴스를 접하는 등 다양한 혜택을 향수한다. 나에게는 거의 700명에 달하는 위챗 친구들이 있고 약 30여개의 채팅그룹이 있다. 날마다 접하는 정보량은 통계해보기도 어려울 정도다. 이는 정보 장악과 사람들과의 소통을 윤활하게 했지만 나는 나와 위챗을 하려하는 사람들에게 가끔 귀뜀을 해준다. “나와 위챗으로 대화하려 하지 말아달라” 물론 이는 위챗에만 국한되는것이 아니고 큐큐, 카톡, 밴드 등을 포함한 모든 소통도구를 망라한다. 이는 위챗으로 나와 뭔가를 대화하려 하다가 나에게서 오는 회답이 없어 화를 내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함도 있고 위챗으로만 대화하려는 사람들에게 미리 귀뜀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 나는 왜 위챗으로 소통하는것을 거부하는가? 그것은 본의 아니게 자신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남의 사유에 끌려다니며 자기 일을 망각하고 해이해지며 남의 의견에 쓸데없는 관심과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사노라면 괜한 일로 바삐 돌아치느라 자연, 자기를 망각할 수가 있다. 지혜롭게 사는 방법을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분망하게 살지 말고 여유를 갖고 살라고 조언하고 싶다. 차분히 정서를 가라앉히고 드믄드믄 아무 생각없는 시간을 가져라고 말하고 싶다. 왜? 그것은 “분망”하면 마음이 죽기 때문이다. “忙=心+亡” 바삐 돌아치는 사람치고 심오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 드물다. 기독교에서의 일요일의 의미는 례배를 보는 날인 한편 쉬는 날을 의미 하기도 한다. 기독교 경전인 성경은 구약과 신약이 있는데 구약을 만들어 낸 유태인들은 일요일이면 무조건 아무 일도 안하는 날로 한다. 이날에는 심지어 밥을 짓거나 먹는 일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현대인들은 출근 날에는 출근을 하느라 정신없이 돌아치고 쉬는 날이면 집안 청소나 그동안 밀려왔던 일들을 처리하느라 여유가 없다. 그렇게 돌아치다 보면 왕왕 한평생 자신에게서 제일 소중한 무엇을 망각하고 살수도 있다. 아메리카에 사는 인디안인들도 말을 타고 가다가 가끔 쉬곤 한다. 이는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해 기다리기 위함이라 한다. 우리도 현대통신기구가 가져다주는 편리를 마음껏 향수하는 한편 어쩌다 잠시 동안이라도 여유시간을 갖고 자기가 누구인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것이 좋지 않을까?
32    홍익인간으로 이화세계하라 댓글:  조회:3073  추천:2  2015-07-28
문화대혁명때에 이런 말이 있다. “세계혁명은 북조선에서 하고, 중국 혁명은 연변에서 하고, 연변 혁명은 연변 조선족들이 한다.” 이 말의 함축된 의미는 세계혁명이든 조선혁명이든 우리 겨레가 앞장선다는 말이 되겠다. 왜서 우리 민족은 앞장서기 좋아할까? 그것은 바로 조상님의 뼈속 깊은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군조상님은 후대들에게 “홍익인간으로 이화세계하라!”고 가르치셨다. “홍익인간으로 이화세계하라”는 말은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사상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라는 말”이다. 세상은 넓고 인생은 무상하며 지식의 바다는 끝도 없이 깊고 넓다. 그러나 단 한가지만 통하는것이 있다면, 이 세상 그 어디로 가도 통할 수 있고 누구나 자기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최상의 비결,그것이 다름 아니라 홍익인간사상이다. 이 사상은 모든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고, 이 세상을 통치할 수 있는 만능열쇠이다. 학벌이야 어떻든, 집안이야 어떻든, 빽이야 있든 없든 이 하나면 통하는것이 바로 세상이치다. 중국이 반식민지, 반봉건사회에 처해 있을 때, 중국공산당은 바로 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한다는 사상으로 민심을 얻었고 강대한 일본침략자를 몰아내고 국민당을 타승할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각자 자신의 교의를 강조하지만, 이중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사랑과 자비이다. 또 사랑이든 자비이든 복무든 이름만 다르지 그 본질은 역시 남들이 잘 되게 도우라는 홍익인간의 사상이다. 이 세상 모든 종교사상의 뿌리는 홍익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배타성이 강한 현시대의 종교는 타종교를 이단으로 몰기도 하고 배격하기도 한다.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게 하는 헛것을 헤치고 그 본질을 보면 모두 홍익, 즉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사상인것을, 왜 우리는 대방의 허점을 찾아내면서 공격을 일삼을까? 그것은 내면에 사적인 목적과 감정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그래서 진정으로 옳바른 가르침을 하려면 홍익인간을 말하라. 그리고 몸소 실천하라. 맹신을 하지 말고 본질을 파악하라. 그러면 하나로 통하는 진리, 즉 홍익이야말로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준 최고의 선물임을 알게 될 것이다. 경제가 고도로 발전하고 물질세계의 현란한 빛이 사람을 유혹하여 정신을 가늠하기도 어려운 이때, 경쟁과 스트레스로 마음의 고요함을 잃은지 오랜 우리들에게는 인생의 항로에서 대안으로 안내할 라침판이 너무나도 필요하다. 누구라도 인생의 슬럼프에 빠져 삶의 의욕마저 잃을 때가 있다면, 그대는 거슬러 올라가 조상님의 가르침 홍익인간사상을 배우고 실천하라. 그러면 하늘아래 모든 실마리가 저절로 풀려나가는 기적을 체험할 것이다. 이 세상을 버젓이 보란듯이 살려면 홍익인간으로 이화세계하라.
31    대인인 나를 위하여 댓글:  조회:2842  추천:0  2014-10-01
누군가 뒤에서 상공은 자기를 위해서 후사모를 한다고 했다 한다. 후사모는 상공의 사명인데 왜서 상공의 사명인가 생각했더니, 그 사람들의 말처럼, 정말 상공을 위해서 였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상공은 누구일까? 상공은 상공의 육신이 아닌 대인이었다. 상공은 이 세상을 살다 간 사람,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그리고 이 세상을 살러오는 사람을 모두 포함한다. 그래서 상공은 대인이었다. 지금 완벽한 대인이 아니더라도 그런 대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상공은 이 세상을 살다 간 사람이다. 기독교는 사람은 아담과 이브로 부터 시작되었다 한다. 한족은 여와가 사람을 흙으로 만들어서 입김을 불어넣으면서 시작되었다 한다. 우리 민족은 사람은 나반과 아만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한다. 과학은 인간은 아프리가주의 한 쌍의 남녀로부터 시작되었다 한다. 어쨌든 인간의 뿌리는 모두 하나라는 말이고, 그 뿌리로 부터 지금 60억의 가지가 생겨난 셈이다. 그 뿌리로 원시반본하면 인간은 하나일 수 밖에 없다. 그 시조의 유전자가 바로 상공을 만들었다. 상공은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한 뿌리의 나무가 60억의 가지가 생겼다 해도 결국에는 하나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것을 놓고 네것 내것 티각태각 싸우는 사람들, 얼마나 가소로운가! 우리 모두 피를 나눈 형제일 따름이다. 상공은 이 세상에 살러 오는 사람이다. 아직 태어나지 못했지만, 아직도 끝없이 많은 사람들이 태어날 것이다. 그들은 조물주가 만든 조상님들이, 그리고 우리가 낡은 탈을 버리고 새 탈을 쓰고 내어나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도무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다만 부동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이 구별뿐이다. 이렇게 큰 사람들이 상공인데 상공이 크지 않단말인가? 그래서 상공은 대인이라 한다. 문장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은 이 말을 문제 삼아 또 뒷소리를 할 것이다. 머리 나쁜 사람들을 위해서 해석을 해야 하겠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상공의 마음속에 담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인간에게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과 상공은 싸울것이다. 상공을 해치는 것이니까. 인간에게 복은 주려는 모든 이와 상공은 하나가 될 것이다. 그것이 상공이 하려 하는 일이니까.
30    팔레스탄 "재난의 날"을 시청하면서 댓글:  조회:4414  추천:68  2011-05-16
아침에 TV를 보니 팔레스탄 "재난의 날"에 팔레스탄 평민과 이스라엘군의 충돌에 관한 기사가 흘러 나왔다.  이스라엘 건국을 지칭하는 '나크바(대재앙)의 날'을 맞은 15일 팔레스탄인들이 각지에서 이스라엘 점령 정책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이스라엘군과 곳곳에서 충돌해 최소 수십명이 숨지고 수병명이 상했다. 시위를 하고 있는 평민들을 향해 사격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군과 국경과 이스라엘병사들에게 돌멩이를 던져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왠지 불안해 졌다. 그것이 남의 일로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라 잃은 팔레스탄 사람들은 아직도 팔레스탄국을 건국하지 못하였다. 집 잃은 사람이 집 없는 아픔을 알다싶이, 나라 잃은 사람은 나라 없는 아픔을 안다.   한일합방이후 주권을 상실한 우리의 조상님들은 그렇게 나라를 찾기 위해 또는 살길을 찾아서 이 연변땅에 왔다. 다른 사람들에게 기시를 받는것도 서러운데, 강도에게 매 맞고, 재물을 빼앗겨도 하소연할데조차 없는 우리의 조상님들, 그 마음의 아픔은 지금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우리 후손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살점 같은 딸을 일본군의 위안부로 보냈을 때, 그 수치감, 그 무력감, 그 서러움을 누가 알수 있을까? 나라 뺏긴 서러움은 그런 망국인들이 안다. 그래서 목숨바쳐 이 대지를 피로 적시며 싸웠던 것이다.  그렇게 나라 위해, 민족 위해 피 흘리고 목숨 바친 이들이 있기에 오늘의 우리의 평화가 있다.   그렇고 보면 평화를 상징하는 횐비둘기의 그 흰색은 그저 흰색이 아니다. 그 흰색을 확대경으로 자세히 보면 그 안에는 살벌한 전쟁, 피로 흐르는 강물, 나무가지 걸려 있는 사지나 찢어진 살들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흰색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   예로부터 락오하면 기시 받고, 조롱 받고, 얻어 맏기 마련이다. 운 좋게도 세계 강국인 중국공민으로 태어나고, 운 좋게도 이 평화의 시기에 태어나고, 운 좋게도 문명하고 지혜로운 우리 조선족으로 태어나서 지금 모든것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 안고 살고, 조금만 부족하면, 조금만 거슬리면 불평도 마음대로 부리며 살아가지만, 그래도 지난날의 수치와 교훈을 잊지 말고, 선진문화를 건설하는데도 게으르지 말고 조상님을 높이 모시며 자식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면서 서로 나누면서, 서로 섬기면서, 서로 배려하면서 세상에 으뜸가는 문화를 가진 민족으로 거듭나자!
29    새 날이 되면... 이 세상도 조금 밝아지려나? 댓글:  조회:5192  추천:39  2011-02-26
새 날이 되면... 이 세상도 조금 밝아지려나?당신에게 있어서 진짜 가치가 있는것이 무엇인가? 누구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은 거의 자기에게 진정 가치가 있는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왔던 것이다. 누구의 탓인가 묻는다면 우리 님들의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 사회자체가 이미 썩어 있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무엇이 진정 소중한지를 생각할 여유도 주지 않고 무작정 뛰기만 하게 한 이 사회, 이 체제가 문제인 것이기 때문이다.나는 협회를 하면서 인내심을 키웠다. 기다려야 하는것이다. 사람들이 마음이 통할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나를 아집이라고 하겠지만 반복으로 되는 실증을 통해 나는 생각을 언녕 정리했던 것이다.후손이야말로 인간에게 제일 가치가 있다고.그런데 어떻게 할까? 나 자신이 이제 짜증이 나는것이다. 돌처럼 바위처럼 단단한 사람들의 관념을 비집고 들어가는 일이 정말로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문득 머리를 치는 단어가 있어서 놀랐다. 포기!?포기라니 일생을 걸고 시작한 일을 포기라니? 그러나 진짜로 인제 지쳤다. 맥이 빠진다.카페는 요즘은 거의 글을 올리는 사람이 없다 싶다. 글을 올리는 사람은 옥이님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모두 자기 일이 바쁘단다. 자기 일도 시간이 없는데 언제 카페를 들여다 볼 사이가 있겠는가?암만 말해보아도 입이 다슬게 말해보아도 쓸데가 없다. 가치가 있는것이 자기일이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득하게 자기에게 제일 가치있는 일은 바로 돈, 명예, 직위 등등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자식을 잃은 부모한테 무엇이 제일 가치가 있는것이 무엇인가 물으면 자식이라고 서슴없이 대답하더라. 사람은 참 가소로운 존재이다.잃고 나서야만 제일 소중한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이다.너무나 비참하다.이제 환경이 파괴되어 인간이 살 수 있는 정토를 찾지 못할 때에는 어떻게들 후회하겠는가? 이제 자원이 없어서 먹을거리 입을 거리 쓸 것 없을 때는 어떻게 후회하겠는가?당신이 쓰고 있는 하늘이 당신의 하늘이라고만 생각하는가? 아니다. 오산이다. 그것운 수많은 사람들의 하늘이다.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하늘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먼저 왔다간 사람들과 이제 이 세상에 태어날 모든 이들의 하늘이다. 모든 이들의  땅이다. 모든 이들의  물이다. 모든 이들의  석유다, 모든 이들의  광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지럽히고 바닥내서 다 써버리고 있는 당신, 당신의 욕심은 너무 과한것이 아닌가? 태어나지도 않은 자손들의 자원을 다 써버린 당신, 태어나지도 않은 자손들의 삶의 터를 더럽힌 당신은 너무 야비한 인간이 아닌가?기실 사실적으로 당신은 너무 욕심이 과한 사람이다.혹인 어리석은 사람이다.후!이 세상에 너무 실망적이다. 그럼에도 어쩔수 없이 살아야만 하는 내가 가련해 보인다. 집을 팔아서 협회의 기금으로 쓰겠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 돈을 떼어먹고 감옥살이를 하는 대학선배가 어처구니 없다. 나에게 그런 선배가 있다는것이 부끄럽다.힘들게 조직을 운영하여 조금 키워놓으면 또 이간질하고 다른 욕심이 있다면서 의심이나하고 그중에서도 자기 욕심을 챙겨 사람을 이간시켜 떠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어처구니 없다.능력이 있으면 자기절로나 할것이지 왜 남의 심혈을 부어 만든 모임에 와서 이간질하는지 모르겠다.이제 자꾸 포기하고만 싶어진다.실망이 뼈속까지 스며든다.그럼에도 바로 이러니까, 바로 이런 사람들이니까 바로 너의 존재가 필요한것이 아니냐면서 고집해오던 나이다.그렇다. 이것이 바로 나의 존재의 이유이긴 하다.그런데도 사실 포기하고만 싶어지는것은 어떻게 해!포기는 무엇을 뜻할까? 무섭다. 이 말의 뜻은 인생을 포기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혹 내가 죽었으면 이 세상 사람들이 제정신 차리고 진짜가치있는것을 찾지나 않을까?... …혹 내가 죽었으면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기나 할까?혹 내가 죽었으면 뉘우치는 사람들이 있기나 할까?죽어봐야 알 일이다.그러나 그것을 알기 위해 죽어본다는 일은 너무 어리석은 일이다. 나의 죽음이 이 세상을 환히 밝혀준다는 보장이 없는 정황하에서 나는 그것을 선택할 수가 없다.창밖이 희붐이 밝아오고 있다.새 날이 되면..이 세상도 조금 밝아지려나?자기에게 진정 소중한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에게 조금 깨달음의 빛이 비추어 질려나?
28    성통공완 댓글:  조회:4444  추천:57  2010-01-06
성통공완     한족은 “수신제가 가제국치이 천하평”을 말하지만, 우리 민족은 성통공완, 홍익인간, 재세이화를 말한다. 이 사상은 매개 우리 민족의 핏줄을 가진 자의 자기도 모르는 하나의 유전인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우리 연변에 한때 이런 말이 있었다.“세계혁명은 북조선에서 하고, 중국 혁명은 연변에서 하고, 연변의 혁명은 연변의 조선족이 한다.” 그런데 요즘 한국을 보니 세계의 자산계급혁명은 다름 아닌 한국이 하는 같다. 다시 말해 한국처럼 정치인들의 품성을 까다롭게 밝히는 자본주의 나라는 있지 않은 같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품덕을 사람 됨됨이의 중요한 지표로 삼았었다.   또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수행을 즐겼다.만천성에 가면 우리 민족 전설을 담은 조각상들이 서 있는데, 그중 곰과 범이 환웅을 만나 사람이 되려고 하자, 환웅은 마늘 스무 조각과 쑥을 주면서 백일간 동굴에서 수행하라고 한다. 곰은 그래서 수행을 통해 웅녀로 되여 우리 민족의 시모로 되었다.   전 세계에서 우리 민족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민족은 얼마 안 될 것이다. 듣는 말에 의하면 인도에서 상당한 기간을 가부좌로 앉아 수행하는 법이 사라졌었다 한다. 그런데 어느 스님이 심산 속에서 수행하던 중 원숭이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는 것을 보고 모방해서 옛 법을 다시 재현시켰다 한다. 올방좌는 가부좌든 앉아만 있노라면 저절로 수승화강이 되면서 수행이 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춤을 보면 참으로 성수가 나는데, 그 이유는 춤의 모양이 마치 중국의 태극권을 치는것 같아 온몸의 기혈의 흐름을 원만해지게 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우리 민족에게 있는 자기 수행의 증거라 하겠다. 이외에도 우리 민족의 수행을 즐기는 증거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겠다.   이처럼 수행은 우리 민족에게 떨어질 수 없는 한 부분으로 되어 있다.   민족경전 삼일신고에서는 수행에 대하여 이렇게 계시한다. “철은 지감止感하고 조식調息하고 금촉禁觸하여. 일의화행하고 반망즉진하여 발대신기하나니 성통공완이 시니라” 즉 감각에 이념을 두지 말고, 호흡을 조절하고, 접촉을 금하면 원 자리(본성)로 돌아가서 크게 이룸으로써 성은 통하고 공은 이루게 된다고 했다.   이렇게 수행을 즐기는 원인은 다름 아닌 최고경지 즉 성통공완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성이 통한다는 말은 수행을 통해 하늘이 내려주신 사명을 깨달음으로써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위업을 위하여 일 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다.   오직 천손만이 갖출 수 있는, 피에 섞여 어쩔 수 없는 이런 천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하여 나는 언제나 당당하고, 자랑스럽다.
27    홍익인간과 중국공산당의 종지 댓글:  조회:5731  추천:56  2009-12-29
홍익인간과 중국공산당의 종지리경호아마 소학교 2학년 쯤으로 추정된다. 김치움에서 가을 채소를 다듬는 어머니 옆에서 새로 받아 온 <<연변일보>>의 “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자”라는 구호를 보면서 나는 깊은 사색에 잠겼다. “어머니, 모주석의 말씀은 정말 맞습니다.”“그래, 모주석의 말씀은 다 맞단다.” 어려서부터 피에 이런 사상이 슴배여 있었는지 나는 크면서도 “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자”는 말의 뜻에 대하여 자주 생각하게 되였다. 사람이 정말 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할 수 있을가?정말 사심을 극복할 수 있을가?사심과 공심의 분계선은 어디에 있을가?“사”의 본질은 도대체 누구일가? “천부경”에서는 “일시무시”, “일종무종”을 말한다.무에서 시작해서 무에서 끝을 맺는 우주, 그 속에 나라는 존재는 무엇일가?“일묘연만왕만래(하나가 묘하게 번지면서 변화무쌍한 만물의 나타나는)”에서 나의 형상은 무엇일가?“삼일신고”에서 “천(하늘)은 무형질(형태와 실체), 무단예(시작과 끝), 무상하사방하고 허허공공하야”를 말하고 또 “이지자대”(너희 지구가 큰 같아도)라야 “일환세계”(티끝 한 알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일깨워 준다.그 속의 나의 존재는 어디에 있으며 나의 본질은 또한 무엇일가? 있으면서도 없는, 없으면서도 있는 그것이 바로 나의 존재가 아닐까?사私 역시 공公이고, 공公 역시 사私가 아닌가? 세인이 이속에 눈이 가리워 한 치 앞도 보지 못하고 있을 때, 홀연히 나타난 광명, 그것은 바로 홍익인간 사상이 아닌가 한다. “길마다 로마에 통한다”는 말이 있다.민족의 고유사상인 홍익인간 사상을 알고 나서 나는 모주석의 “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자”는 사상이 우리 민족의 홍익인간의 사상과 무언의 일치를 가져 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상의 힘은 너무나도 대단하다. 중국공산당의 종지는 바로 “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이 사상 하나로 중국에3개 큰 산을 뒤엎고 이 땅에 새로운 강대한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했다. 우리의 조상들은 일찍 홍익인간 재세이화 성통공완의 의념으로 강대한 고조선을 건설했고, 고구려도 세상에 강대한 위력을 과시했었다. 더 말할나위없이 이 사상을 종지로 하고, 이 사상을 세상에 펼치려는 기업이나 조직이나 정당이나 국가는 세상에 으뜸가는 집단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사익을 공익의 앞자리에 놓는 한, 어느 집단도 결국에는 멸망의 운명을 맞이하지 않을 수 없다. 지어는 한 개인도 홍익인간의 의념을 실천하는 한, 곧 높은 레벨로 업그레이드하여 위대한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26    행복, 재부, 노동, 땅 댓글:  조회:5829  추천:56  2009-12-09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는 기도는 하늘의 축복을 받고, 노동은 땅에서 축북을 파낸다. 이 둘이 당신의 집에 행복을 실어다 준다고 했다.또 재부는 노동과 땅에서 온다는 말도 있다.땅과 노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늠할 수 있는 말이다.한국의 새마을운동에 계발을 받아 8억 농민을 가진 농민대국 중국에서도 농민교육을 진행한단다. 이것을 햇빛공정(陽光工程)이라 하는데 중국정부의 고도로 되는 관심사로 되고 있다. 햇빛공정에는 농민들중에서 의식이 앞서나가는 사람을 선출해 나라에서 돈을 내서 공부를 시키는것도 포함된다. 나는 그 교육을 시키는 강사로 요청되여 며칠간 봉사한 적이 있다. 두번의 교육이 진행되였는데, 첫번째는 조선족이였고, 두번째는 한족이였다.  그러나 이번의 교육에서 나는 크게 느낀것이 있으니 아래와 같다.  첫째, 조선족은 목표의식이 분명하지 못하다.한족은 처음에 들어오자 부터 무엇을 배우는가고 호기심이 가득했다.그래서 무엇을 배우겠는가고 물으니 기름개구리 사육법, 요리하는 법, 검정귀버섯 재배하는 법, 장사하는 법 등 여러가지 재간을 익히겠다고 법석인다.조선족은 아예 무슨 학습이냐, 집에서 술 먹기만 못하다는 식이다. 정부에서 명령하니 억지로 왔다는 이들은 강사를 마주 앉아서도 비스뜸히 앉아서 나를 가늠해 본다.  둘째, 조선족은 투지가 미약하다.기회만 있으면 한국에 가서 돈을 벌어야 겠는데, 여러가지 여건으로 가지 못해서 원망스럽다는 얘기다. 그래서 일할 의욕도 없다는 것이다.한족들은 열심히 일하느라면 얼마든지 잘 살수 있다고 하면서 무얼해도 열심히 한다.  셋째, 조선족은 열정이 부족하다.목표가 없고, 투지가 없으니 열정이 없을 밖에 없다.조직을 구성하고 팀장을 뽑고, 팀구호를 만들고, 팀가를 만들고, 동작을 맞추는 종목이 있는데, 조선족은 심드렁한 반면에 한족은 온 층집이 떠나갈듯이 소란스럽고, 무엇인가를 해내느라 야단법석이다.1시간내에 완성해야 하는데, 한족학원을 시켜놓고 나가서 운동장을 실컷 돌고 돌아오니 원만하게 완성되여 있었다.  넷째, 조선족의 예절이 못하다.조선족때에는 끝날 때, 그저 “수고했습니다”가 고작이였는데, 한족때에는 반장이 똑바로 차렷을 세워놓고 일제히 90도 경례를 함으로써 자기들을 가르쳐준데 감사를 표시했다.  이번의 교육을 거쳐 나는 이렇게 대조가 선명한 원인과 우리 연변의 조선족 농민이 왜 농촌에서 점점 밀리우는 원인을 깨달았다. 한국에 가서 큰 돈을 벌려는 마음이 그들의 마음을 둥둥 뜨게 하여 농사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데 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또 우리 조선족 농민의 문화가 술, 노름, 허풍에 너무 젖어 있어서 농사일에 알손을 붙이려 하지 않는데 그 원인이 있었다.  몽테뉴가 말했듯이 농민이 땅과 노동을 멀리하고서야 어찌 부유해지고 행복해지랴!  조선족농민의 앞날이 크게 근심될 뿐이다.
25    그녀는 떠났다. 댓글:  조회:4409  추천:40  2009-12-09
그녀는 떠났다.영영 떠났다.다시는 눈물 섞인, 침울했던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게 된것이다.이것은 몇시간전에 걸려 온 유씨의 전화로 확인할 수 있다.  병을 이겨냈다고, 그렇게 견강했던 그녀였다.자기는 꼭 잘 살수 있으리라 믿었던 그녀였다. 몇년전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을 보냈다.그렇게 건강하고 자랑스럽고 밝던 아들이 학교에 갔다가 교실에서 뛰여내려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  자식을 위해 열심히 일해 많은 재부를 쌓았던, 그들 부부에게는 이것은 말 그대로 날벼락이였다. 날마다 울음으로 나날을 보내고, 술로 나날을 보냈다. 큰길에서 호화 자가용을 몰고 마주 오는 차를 향해 돌진하니 마주 오던 차가 급히 피하더라 한다. 살겠다고 피하더란다. 나는 죽을려고 하는데 그 사람은 살려고 하더란다.  그러던 어느날, 몸이 말째여서 병원에 가보았더니 페암말기다.남편은 페암초기라고 속였다.그리고 유명하다는 의사는 모두 찾아다니며 병 치료를 다녔다. 한국도 제집 나들듯이 다녔다.그 덕에 모임이 있을 때면, 밝은 얼굴로 나와서 우리들에게 견강한 모습을 보여 주었었다.  그러던것이 근년에 소식이 없더니, 오늘 전화가 왔다.내일 화장터에 나오라고. 인생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고,하늘의 참뜻을 깨닫지 못해서,뭐가 뭔지 모르고 불행을 맞이하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후대제일가치관은 현시대의 핵심가치관이 되여야 하는데,아직도 많은 사람은 금전만능, 권리만능, 향수만능을 목숨처럼 신봉하고 있다. 불행이 닥쳐 온 후에야 깨달으면 이젠 늦었다. 바라건대, 우리가 사는 이 땅덩어리에 다시는 이런 불행이 없었으면 좋겠다.아니, 다시는 우리가 사는 이 땅덩어리에 이런 불행이 없도록 노력하겠다.                                                                               
24    어제 저녁 본 일입니다. 댓글:  조회:4546  추천:40  2009-11-26
 어제 저녁 퇴근 길에서 본 일 입니다.   해마다 겨울이면 연길의 하늘은 시뿌옇게 흐려서 시민들의 기분을 잡치게 하지요. 물론 제일 기분이 잡치는 사람은 상공과 같은 환경보호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닐가 싶네요.   그런데 어제 저녁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시뿌연 하늘은 검을 먹칠하는 굴뚝을 보고 기분 나빴습니다.    뭉게뭉게 피여나는 이 연기는 하늘에 장난꾸러기 코풀레기가 백지에 먹장난을 쳐대는 같은 감이 듭니다.  바람에 따라 이곳저곳 흩날리는 연기는 여기 저기에 때자국을 남깁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서 연기는 없어지는게 아니라 여전히 기승을 부리며 먹물은 토해내고 있습니다.  괘씸해서 점점 다가가면서 봅니다. 연길시 연대부중 부근의 보일러 같군요.  이전에 저 보일러 부근에 연길 3고중의 보일러 방이 있었는데요.  가까이 가보니 또 연대부중의 보일러방은 같지 않군요. 그 보일러방은 이처럼 거대하지는 않았거든요.  가까이 다가가보니,  연변화상연길영상열력유한책임회사 념만구열원공장이군요. 延边华商延吉荣祥热力有限公司 宁湾区热源厂 복무전화는 2727165 라고 적혀 있네요.  확실히 연대부중의 보일러는 아니군요. 연길시에 이런 보일러가 몇대만 더 있으면, 연길은 해를 볼 날이 없겠어요.   연길의 하늘이 맑으려면 이런 보일러가 없어져야 할텐데요.
23    부르하통하의 오염 댓글:  조회:4824  추천:73  2008-10-10
신문을 보니 <<부르하통하 연길강 국가급 수리풍경구로 >>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정말로 연길시민들을 자랑스럽게 하는 부르하통하이다.   그래서 부르하통하강변을 한번 구경할 셈하고 집 나들이를 나섰다. 이전에 부르하통하가 강변에서 살다가 집을 이사한 후 오랜만에 국가급 수리풍경구로 명명된 부르하통하강변을 돌아보게 되였다.   그러나 눈앞에 정경에 아연해지는수밖에 없었다.   강물은 너무 더러워져 있었고 악취까지 풍기지를 않겠는가! 온 수면에는 물거품이 잔뜩 떠있었고 부패한 채소잎이나 쓰레기들이 둥둥 떠 있었다. 부르하통하의 물을 맑아지게 하기 위해서 연길시정부는 정말로 많은 투자를 하였다. 거의 모든 도시하수도물을 모두 소영에 새로 건설된 폐수처리공장에 몰아였고, 양 옆에는 록화를 하고 정말로 사람들이 휴식하기 좋은 레저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런데도 작년에도 부르하통하강변에 오염사건이 여러번 발생했다. 그래서 연길시환경보호국에서 원인을 찾은 결과 연길감옥, 연변사범학교부근에서 나오는 하수도가 주관도에 연결되여 있지 않았던 것이 발견되였다. 그때는 연길감옥이 오라지 않아 자리를 옮기게 되고 새롭게 건설되게 된다는 원인에서 설계할 때 주관도에 넣지 않았던 것이다.   연길시정부는 이 정황을 알고 즉시 거금을 투자해 도시배수구를 연길감옥까지 늘였다. 그때 당시 환경보호국에서 이 오염원을 찾는 사업에 나섰는데 필자도 참여하였었다. 일이 끝난후 나는 인제 더는 부르하통하가 오염되는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또 이런 심한 오염이 발생되다니...   물곬을 따라 걷노라니 어느덧 수상시장부근에 오게 되였다. 뜻밖에 강에 떠있는 쓰레기들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다시 살펴보니 배수구가 보였다.   수상시장은 정말로 연길에서는 제일 번화한 시장이다. 아침이면 수많은 장사군들이 여기에 몰려와서 장사를 하곤 한다. 장이 파한후 대량의 쓰레기가 생기는데 이런 쓰레기는 비가 내리면 자연히 비물을 따라 강에 흘러들어가게 된다. 이 역시 부르하통하가 오염되는 한개의  경로였던 것이다.   수상시장부근에 이런 하수구가 여라문개나 되여있었다. 또 조금 나가니 생각밖에 또 배수구가 있었다. 언제 이런 배수구가 또 생겼을까?   여기에 배수구가 있을수는 없는데 이 배수구는 어디에서 오는 오수일까? 생각해보니 이 물은 바로 수상시장건물에서 배출하는 오수출구같았다. 수상시장건물에 몇개의 대형식당과 노래방 등 연길에서 유명한 영업집들이 있었는데 이 건물에 하수구를 강뚝을 뚫고 강뚝넘어에 배출할 가능성을 적었다.   여기에는 벼라별 오염물이 다 있었고 이미 상당히 부패된 상태였다. 자연히 악취가 풍기는것을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부르하통하의 오염을 수상시장에서만 그 원인을 찾을수는 없다.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은폐된 배수가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 시민들이 모두 우리의 맑은 부르하통하수를 위하여 국가국 수리풍경구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끔 주의를 돌려 모든 배수구를 모두 찾아 유관부문에 반영하여 깨끗이 처리한다면 부르하통하가 명실에 부합되는 풍경구로 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깨끗한 환경에서 깨끗한 마음씨로 살기좋은 연길을 만드는데는 우리 모두의 힘과 지혜와 참여가 필요하다. 
22    하나가 백보다 크다? 댓글:  조회:6327  추천:103  2006-09-22
‘하나가 백보다 크다’고 하면 모두 웃을 일 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하나가 백보다 클때가 많습니다. 한국의 국가에 ‘하나님 우리 나라 보우하사’라는 내용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백님 우리 나라 보우하사’하지 않고 ‘하나님 우리 나라 보우하사’라는 말은 하나가 백보다 크기 때문입니다.우리 아들님에게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하여 어느 것이 큰가고 물으니 보편성이 특수성보다 더 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럼 보편성이 어떻게 특수성속에 들어가 있냐? 했더니 그럼 특수성이 더 크다 합니다. 정말로 훌륭한 대답이라 하겠습니다. 보편성은 하나입니다. 특수성은 백입니다. 그러면 특수성은 백개의 보편성으로 이루어 졌으니 특수성이 보편성보다 더 큰 것입니다. 그러나 특수성은 한개 사물 혹은 특수 사물만 갖고 있는 것이므로 아주 제한 되였습니다. 그러니 보편성은 특수성에 비하여 엄청 더 큰 거지요. 그러니 보편성이 크다고 해도 맞고, 특수성이 크다고 해도 맞는데 어떤 전제하에서인가 만 밝히면 되는 것입니다.하나가 쌓여서 백이 되고, 백은 결국에 하나인 것입니다.지금의 시대는 지구촌시대라 합니다. 이는 하나의 촌이란 말이지요 두개의 촌이 아니지요. 두개의 촌이 아니고 하나의 촌이니 다투지 말고 화목하게 잘 살아가자는 말입니다. 지구촌 하나가 촌내의 각 나라, 각 민족, 각 종파, 각 계층 ……을 모두 품에 안은 것이지요. 그러니 하나가 얼마나 큽니까?우리 민족은 참으로 위대한 민족입니다. 우리 민족의 초대 경전인 천부경에는 이런 말을 이렇게 간단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석삼극一析三極하나 무진본無盡本’이다. 즉 하나가 세개의 극으로 갈라졌으나 하나는 다 함이 없이 계속 하나다. 그 하나가 하늘도, 땅도, 사람도 만드는 것입니다. 그 우주만물이 모두 하나에서 나오나 결국에는 모양이 다른 듯 할 뿐이지 기실은 하나라는 뜻입니다. 천부경에는 또 ‘일적십거一積十鉅무궤화삼無潰化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가 쌓여서 둘, 셋, ……거대한 십을 이루나 그것이 다 세가지로 화한다는 말입니다. 역시 열이든 셋이든 모두 하나로 되였고, 본질은 변화없다는 말이 됩니다. 또 ‘일묘연一妙衍만왕만래萬往萬來 용변부동본用變不動本’이라고 합니다. 하나가 묘하게 넘쳐나면서 만가지로 변화다단합니다. 그러나 쓰고 변해도 하나를 벗어남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눈과 귀와 코와 입과 혀와 피부에 속고 있는 것이지요. 그 다양한, 무궁무진한 우주의 모습이 하나의 같지 않은 허상이지요. 모두 마음의 작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천부경에서는 마음만 태양처럼 밝으면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 즉 사람의 마음속에 천지가 하나가 되여 간다고 하는 것입니다.우리 민족은 저절로 천부경을 잘 실천하는 민족입니다. 백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를 추구하지요. 그래서 하나님, 하나님 합니다. 우리 연변에 이른 말이 있습니다. ‘세계 혁명은 북조선에서 하고, 중국 혁명은 연변에서 하고, 연변의 혁명은 연변의 조선족들이 한다’ 진실하게 참되게 살려고 하는 우리 민족이지요. 어찌 보면 바보스럽게 단순하지만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대법원 원장님이 단순한 마음에서 하는 한마디 말을 갖고 옳거니 그르거니 하고 야단입니다. 단순한 원장님도 존경스럽고, 단순히 시야비야 하는 사람들도 이해됩니다. 하여간 우리 민족들 모두 재밌고도 재밌습니다. 이런 단순함으로 한국이 세계 강국이 된것 아니겠습니까!너무 재밌고도 재미 없는 말이지요. 어떤 분들은 하나면 어떻고 백이면 어떻고 그게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고 단순히 생각 할수도 있지만 또 그 밖의 것도 있습니다.왜냐하면 천부경은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천부경을 읽고나서 나는 계획생육을 하는데 부동한 관점을 갖게 됩니다. 환경보호 전문가로서 국가의 기본국책에 부동한 관점을 가진다니 무슨 말이냐? 하고 질책할 분들도 많겠지만 천부경의 이치로 보면 그것 또한 정상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천부경은 총적으로 우주의 순환을 말합니다. 무엇이든 끊임 없이 순환한다는 것이지요. 열매에서 싹이트고 가지를 치고 큰 나무로 성장했다가도 씨앗만 남기고 나무는 결국 죽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시무시일……일종무종일”하는 것이지요. 일에서 시작하여 가지를 다 벗고 실컷 자랐다가 철이 되면 열매를 맺게 되여 하나로 돌아가지요. 우주에 있어서 인간은 열매입니다. 우주도 가을 철에 더욱 많은 열매를 맺으려고, 우주의 열매인 사람이 많이 태여나는 것입니다. 그것도 지능이 높고, 갖가지 기술, 능력, 깨달음의 바탕을 갖춘 사람들이 대폭 태여나는 것입니다. 즉 인구대폭발이지요. 이러한 좋은 철에 열매(하나)를 많이 만드는것은 우주의 원리나 천부경의 원리에서 보면 얼마나 좋은 일이고 정상적인 일 입니까? 그런데도 그것을 공제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우주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가요?인류가 인구를 공제하든 안 하든 인류가 당해야 할 일은 꼭 닥쳐 옵니다. 추지기 신야라는 말이 있듯이 열매(하나)를 맺을 때에는 하늘에서 꼭 고험을 내립니다. 에너지가 부족하고, 환경문제가 크게 야기되고, 전염병이 살판치는 이런 일들이 다 현실로 될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가 멸망한다고는 볼수는 없습니다. 참된 사람은, 성숙된 사람은, 인중천지일을 실천한 사람은 꼭 가지가지 시련을 이겨내고 우주의 씨앗(하나)으로 살아 남을 것입니다.철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민족들 모두 모두 아이를 많이 낳으세요. 꼭 큰 복을 받을 것입니다. 금 낟가리를 백층, 천층 쌓는 것도 좋지만 이 황금의 가을철에 우주의 씨앗 하나 건지는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하나가 백보다 크니깐요.
21    신끈 댓글:  조회:5348  추천:97  2006-03-29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집에서 부터 연변대학까지 30분 로정이지만 나는 걷기를 택한다. 나에게는 빠르고도 가볍게 걷는 비법이 있다. 이 비법으로 걸으면 25분도 안걸려 도착할수 있다. 비법의 한가지가 바로 신들메를 단단히 동여매는 것이다.오늘 아침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집을 나서면서 신들메를 조이는데 인젠 낡아빠진 신끈이 툭 하고 끊어져 버린다.그렇잖아도 요즈음은 기분이 언짢은데 신끈까지 방정맞게 끊어져 버리니 정말로 아침부터 재수가 없었다. 나는 신끈을 뽑아버리려다가 다시보니 나머지 부분으로도 신들메를 조일수 있었다. 시간을 빳빳하게 잡았던 난지라 나머지 부분으로 다시 신들메를 단단히 조이고 길을 떠났다.신끈의 작용은 신들메를 조이는 것이다. 물론 신끈이 새것이면 더욱 좋겠지만 새것이 없는 경우에는 그래도 신에 맞는 신끈이 있는 것도 다행인 법이다. 길을 가면서 나는 이 낡아 빠진 신끈이 별로 나같이 생각되였다.어떤 때면 나는 이 세상에 태여나지 말아야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군 한다. 우리는 아홉형제였는데 그중에서 둘이 죽고 일곱형제가 남았다. 죽은 두 형제중 하나는 경삼이라고 하는 나의 금방 위의 형이였는데 아마도 대약진 때 부모님이 너무도 영양이 따라가지 못하여 병들어 죽었던것 같다. 물론 나 역시 어머님 뱃속에서 부터 기구한 운명이였다.어머님은 나를 임신하고 다섯달쯤 되여서부터 큰병으로 앓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약을 쓰시고 또 그 덕에 뱃속의 나도 아마 많은 약을 먹었는가 보다. 열달이 되여 출생을 해야 했는데 아직 소식도 없었다고 한다. 지루히도 백날을 더 기다려 열석달만에 나를 해산하니 나서부터 나는 몸이 허약하였고 또 설상가상으로 어머님이 젖이 없으셔서 안죽을 쑤어 먹으면서 고생스레 자라나게 되였다.다른 형님, 누님들은 모두 할머니 손에서 건실하게 자랐다고 하는데 유독 나만은 태여나서 돐이 되기도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시다나니 대대 부녀주임에 접산원 일까지 맡아 하시는 어머님의 손에서 자라나게 되였다. 그래서 일곱형제중 유일하게 어머님이 키우신 자식인데 그나마 어머님이 자주 안 계시니 어린 형님, 누님들이 안죽을 쑤어 먹이며 나를 키웠다.형제 일곱에 그중 다섯형제가 남자이니 우리집은 말그대로 가난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호도거리나 했으면 우리 집도 괜찮았으련만 그때는 생산대 시기라 온 일년 만 출근을 해도 년말에 결산을 하면 오히려 빚을 지고 만다. 그 시기에 우리집은 해마다 계속해서 양식고생, 돈고생을 하였다.나는 어려서부터 종래로 새옷을 해입는 법이 없었고 대학에 다닐때도 기운 옷을 입고 다닐 정도였다. 이런 가난한 살림은 나로 하여금 더없이 근검하게 생활하게 만들었다. 나는 연변1중에 9달간 보습반을 다녔는데 8달은 숙사에서 보냈다. 그때 나의 형님이 나에게 한달에 5원씩 생활비로 주었는데 대학시험을 치고나니 나에게는 20원이 남아 있었다. 그러니 한달에 2원50전씩 쓴 셈이다. 그 2원50전으로 학습도구를 사고 한달간 밥을 먹고 살아야 했으니 그 간고함은 지금 생각해도 허구픈 웃음만 나온다.지금 연변텔레비에서 매주일마다 “사랑으로 가는 길”이 생방송되고 있고 많은 불우한 아이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들의 처지를 나에 비하면 모두 나보다는 나은 편이다.내가 중학교 다닐때 어머님은 나의 덧이가 보기 싫다고 억지로 뽑게 하였는데 너무 늦게 뽑은 탓에 나의 얼굴은 엄중하게 균형을 잃어 늘 첫눈에 남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주군 한다. 연변 과기대의 한 한국교수님은 사람의 인상은 만나서 첫 30초내에 거의 결정지어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언제나 이 첫 30초로 인하여 남에게 많은 시간을 들여야 자기의 진정한 이미지를 보여줄수 있었다. 정말로 피곤한 인생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삶의 보람을 느끼군 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의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매우 필요로 한다는것을 알았다. 나의 조카들은 완전히 나를 중심으로 하여 삶에서 부딫치는 문제들을 묻고 또 해결방안을 찾군 한다. 주위의 사람들도 나와 거래하는것을 즐겨하게 되고 또 주위에는 나를 믿어주는 여러부류의 친구들이 많이 생겨났다.대학의 동창생들은 나를 통하여 연계가 되였고 직장에서도 나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게 되였다. 요즈음 내가 꾸려가고 있는 산악회만 보아도 그렇다. 나보다도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 보잘것없는 나로 인하여 호상 연계되고 또 이러한 연계를 통하여 많은 일들이 실질적인 해결을 가져오고 또 상호간의 협력이 이루어져 모든 사람들의 발전을 이룩하게 되군 한다.허름한 신끈같은 나로 인하여 주위의 사람들이 더욱 잘, 그리고 더욱 굳게 뭉치여지고 민족을 위하여, 후대를 위하여, 무언가 실질적인 일들을 해나아가게 될때면 나의 기쁨은 정말로 무궁무진하다.누가 “天生我才必有用”이라고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지당한 말 같다. 태여 안 나도 좋을 내가 태여난것은 아마 하느님이 나를 이렇게 낡은 신끈 같은 인생을 살으면서 그나마라도 남들에게 실들메를 동여매고 힘있게 걸을 있게끔 기회를 주신거라고 생각된다.
20    물고기와 여우의 이야기 댓글:  조회:4687  추천:105  2006-02-06
물고기와 여우의 이야기 어느날 여우가 시냇가를 걸어가다가 물고기가 빙빙 돌면서 헤엄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엇다. 여우가 “왜 그렇게 급히 돌면서 헤엄을 치나?”하고 묻자, 물고기는 “우리를 잡으로 올 어망이 무섭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우는 “그렇다면 여기로 나와 있게나. 언덕으로 올라오면 내가 지켜 줄 테니까 걱정할 것 없네”라고 말했다. 이 말에 물고기는 이렇게 대꾸했다. “여우님, 당신은 대단히 머리가 좋다고 소문나 있지만, 사실은 아주 어리석군요. 우리들은 이제까지 살아온 물속에서조차 이렇게 무서워하고 있는데, 언덕에 올가가면 어떻게 죽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언젠가부터 주위에는 자기민족의 언어와 문자도 모르고 지어는 미풍량속도 미신취급하면서 배척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 심히 걱정된다. 언어와 문자, 그리고 미풍량속은 민족문화의 내용이자 매체이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얼핏 생각나는것이 바로 탈무드에 나오는 물고기와 여우의 이야기이다. 탈무드는 유태인의 성전이다. 사람들은 탈무드가 유태인을 지켜왔다고 말한다. 유태인을 물고기라 하면 탈무드는 물인것이다. 몇천년이란 세월을 거치면서 유태인이 여우에게 속히지 않고 자신을 지켜온것은 탈무드라는 물속에서 자기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만큼 탈무드는 유태인에게서 생명처럼 중요한 의의가 있는것이다. 우리의 민족문화 역시 우리 민족이 살아가고 조화되고 융합될수 있는 물이다. 그런데 이러한 민족문화가 우리 민족의 인구감소와 외래문화의 침식으로 인하여 점점 색바래지고 있다. 지금 우리의 민족사회는 이러한 생명의 물을 떠나 여우의 감언리설에 끌려 자기의 문화를 포기하고 서서히 자기와 자기의 조상마저도 망각하면서 위기의 고비에 올라서고 있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우리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기의 문화를 드팀없이 고수해야할 때이다. 자기의 문화를 사랑하고 잘 이어나가자! 이야말로 자신과 민족의 진정 옳바른 출로라고 생각한다.
19    지속가능한 발전의 철학적함의 댓글:  조회:4763  추천:104  2006-01-27
지속가능한 발전의 철학적함의 고도로 되는 과학과 경제의 발전과 교통과 통신의 빈틈없는 보급에 힘입어 세계는 명실공히 지구촌시대에 들어섰다. 그러나 발전은 인류에게 무한한 편리를 제공하여 주는 동시에 또 심각한 환경과 자원문제도 가져 왔다. 인류의 날로 폭장하는 향락주의와는 달리 인류의 도덕과 윤리는 오히려 퇴보하여 인류의 생명질량의 제고에 커다란 걸림돌로 되여 버렸다. 날따라 악화되는 환경과 자원의 문제는 이미 인류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저애하고 지어는 인류의 생존마저도 위협하고 있다. 엄혹한 현실을 앞에 두고 인류는 자신의 사상과 행위를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 바로 이때 새로운 이념이 나타났으니 그것이 바로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1987년 노르웨이에서 소집된 세계환경과 발전회의에서 세계의 경제, 사회, 자원과 환경에 대하여 광범한 조사연구를 거쳐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이념을 제출하였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현시대사람들의 수요를 만족시킴과 아울러 후대들의 생존과 발전의 수요에 지장을 주지 않는 발전이다. 이 이념은 제출하자부터 사회에 광범히 접수되였으며 1992년에는 유엔 환경과 발전대회에서 합의를 보아 세계각국에서 정책을 제정하는 전제조건으로 되였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어떠한 이념으로 세계각국의 광범한 승인을 받앗는가? 기실 엄격하게 말하면 “지속가능한 발전”의 제출은 당대이지만 그 이념은 언녕부터 사람들의 머리속에 있었으며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인생철학속에 깊이 내포되여 있었다. 그것이 다시 전문가들의 정리를 거쳐 새롭게 둔갑한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아주 깊은 철학적의미가 내포되여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주의 본질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럼 우주의 본질은 어떠한 것인가? 간단히 말하면 우주의 모든 물질은 모두 정지하려는 혹은 원래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등속직선운동을 하는 물질은 가속이나 감속이나 방향을 바꾸거나 하지 않고 원 상태를 보존하려 한다. 때문에 관성이라는 말도 생겨난다. 사람도 장수하려고 한다. 사람의 욕심대로 하면 장수보다도 영생하려 할것이다. 영생할수가 없으니 부득불 그래도 천명을 다 할때까지 살고 좋기는 천명보다도 더 살려고 하는것이 사람의 욕심이다. 이 세상의 만물을 보면 이 이치가 안 통하는 것이 없다. 사회를 보아도 요즈음 우리의 정부부문에 취직하는 사람가운데는 정부일군들의 자제가 많다. 한때는 돈을 위하여 사회에 진출하던것이 지금은 돈을 버는것의 어려움을 알고 자식을 정부부문에 배치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물러나더라도 자신의 자리를 물려받을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생존은 우주의 기본속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생존은 오직 발전해야만 잘 보존할수 있다. 발전하지 않으면 생존보장이 너무도 어렵다. 그래서 우주도 기나긴 여정을 거쳐 끝내는 대폭발을 이루었고 또 그로부터 부득불 각종 물질도 산생시켰으며 지어는 인류라는 생명까지도 창조하였다. 등소평이 “발전은 곧 진리다”고 한말은 정말로 우주의 다른 한 기본속성인 이 속성을 남김없이 표현하였다.그래서 정계의 사람들은 승급하려하고 기업은 확대하려하고 또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것이다. 이 우주의 두 기본속성은 자연이든 사회든지를 막론하고 소유한 공동속성으로서 모든 사물의 존재하고 발전하는 원인과 목적으로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강조해야 할 바는 생존은 절대로 일시적인 생존과 어느 한세대나 한시기의 생존이 아니다. 생존은 우주의 발전과 더불어, 시작해서 부터 우주와 함께 하는 생존이다. 더욱 장구한 생존이 목적이므로 우리는 후대를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 소중히 여기게 된다. 또 후대를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우주의 모든 사물과 생명은 지금까지 발전하게 되여 온 것이다. 우리는 생존의 실제 표현형태이고 태여나지 않은 후손은 생존의 미래의 표상이다. 이러한 생존을 우리는 지속적인 생존이라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생존이 어느 한계에 마디를 짓거나 결속짓는 일이 없는 지금의 차원을 넘어선 더 높은 차원으로 진보한 발전을 말한다. 물론 발전은 우주의 법도이므로 인류가 멸망하더라도 우주의 발전을 멈출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우주발전의 목적이라 할진대 인류가 멸망되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큰 손해로 되고 마는 것이다. 당연히 우주는 또 다른 인류를 창조하여 내겠지만! 마치도 열매를 맺지 못한 벼가 서리를 맞듯이! 우리가 지속적인 발전을 확보하려면 반드시 생존과 발전의 문제를 참답게 처리하여야 한다. 지속적인 생존과 발전은 변증법적인 관계가 있다. 첫째로, 지속적인 생존과 발전은 언제나 호상 전제가 되고 조건이 된다. 생존이 없는 발전은 있을수 없고 오직 생존의 기초상에서 만에 주체가 있고 또 주체의 발전이 있게 되는 것이다. 또 발전이 없는 생존은 결국 생존할수 없다. 100여년 중국이 깊은 잠에서 깨여나지 못하였다면 언녕 사분오열되고 남의 식민지로만이 남아있을 것이다. 지금은 모종의 각도에서 보면 우리 조선족이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여 있지 않는가 싶다. 인구수는 날따라 줄어들고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멀리멀리 떠나가고 사람들은 점점 동화되여 감에 거부감을 약하게 느낀다. 심한 이들은 자신의 그 거룩한 문화유산과 풍속마저 꺼리기까지 할 정도이다. 또 인류각도에서 봐도 그렇다. 인류의 생존은 환경과 자원을 조건으로 하는데 환경은 날로 오염되여 가고 자원은 날로 결핍해진다. 지구온난화, 오존층파괴, 환경호르몬의 범람 등 환경문제는 직접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지금 생물물종의 멸종속도는 이미 공룡이 멸망하던 시대를 초과하고 있다. 정말로 칼날위에 서있는 조마조마한 마음이건만 세상은 아직도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서 우리는 발전과정에서는 반드시 생존을 념두에 두어야 한다. 생존하여 있으면 꼭 발전을 시도하여야 한다. 이래야 만이 우주의 법도에 부합되는 것이다.둘째로, 지속적인 생존과 발전은 상호촉진하는 관계이다. 건강한 신체가 있으면 일을 더욱 열심히 할수 있는것처럼 왕성한 생명력이 있으면 더욱 큰 발전을 이룩할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발전하면 생존을 더욱 보장할수 있다. 왜냐하면 발전은 생존을 더 잘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지속적인 생존과 발전은 호상 목적이 된다. 지속적인 생존은 발전을 목적으로 하여야만 더욱 잘 지속적으로 생존할수 있다. 발전의 목적 역시 영원한 생존이기 때문에 생존을 떠난 발전은 아무런 의의가 없다. 넷째로, 지속적인 생존과 발전은 호상 제약하는 관계가 있다. 발전만 중시하고 생존을 무시하면 결국에는 요절되는 중간낭패를 볼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생존만 강조하고 발전을 무시하면 결국에는 역시 도태되여 버리는 운명을 맞이하고 말것이다. 지속적인 생존과 발전은 모두 우주의 기본법도로서 사물의 존재와 발전과정중에 동시에 존재하고 적용된다. 지속적인 생존과 발전의 관계를 옳바르게 처리하는 것은 건강하고 정상적인 발전을 할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지속가능한 발전” 모식은 자연과 사회의 발전법칙을 반영한 적극적이고 건전한 발전모식으로서 어떠한 정책이나 이론이 정확성과 효과성을 검증하는 시금석으로도 될수 있다. 만약 어떠한 정책이나 이론, 사상이 “지속가능한 발전”모식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상응하게 조절할 필요성이 있다. 총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은 지속적인 생존과 발전 및 양자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도로 개괄한 이념으로서 “지속”이란 “지속적으로 생존함”을 의미하고 “발전”은 하나의 차원에서 더욱 높은 차원으로 진보하는것을 의미하며 “가능”은 지속적인 생존과 발전사이의 관계를 옳바르게 처리할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원인으로 인하여 “지속가능한 발전”은 모든 나라의 광범한 수긍을 받았으며 또 모든 나라가 법률과 정책을 제정하는 출발점과 근본의거로 된것이다.
18    뿌리 댓글:  조회:4366  추천:84  2006-01-25
뿌리 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준 인상은 집에서는 과묵하고 밖에서는 이야기를 잘 하시는 분으로 남아있다. 밖에서는 그렇듯 이야기를 잘 하시는 분이지만 자식들과는 특히 나와 하신 말씀은 헤아릴수 있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동생들의 공부를 위해 자신이 학교에서 공부할 기회마저 포기하신 아버지는 틈틈히 자습을 하여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계셨고 농사일에도 경험이 풍부하여 마을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계셨다. 내가 소학교를 다닐때의 어느날 선생님은 아버지를 학교에 모셔왔다. 그때는 사회와 결합하여 공부하던 시기인지라 상과를 하다가도 얼핏하면 논밭이나 한전에 나가서 일하군 하였다. 오후에 논밭에 나가 기음을 매겠는데 학생들이 논기음을 맬줄 모르므로 논기음을 매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위하여 감논군인 아버지를 모셔왔던 것이다. 아버지는 미리 따온 가래잎풀, 소뿔풀, 돌피 등 양본을 가져 오시여 우리에게 어떻게 잡풀과 벼를 분간하여 내는가 하는것을 상세히 설명하셨다. 그리고 논기음을 매는 목적은 하나는 논의 풀은 제거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손가락으로 벼포기 주위의 논바닥을 긁어 땅을 성글게 하여 벼가 더욱 잘 자라게 하는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풀을 제거할때에는 꼭 손가락을 풀뿌리밑에 깊이 박고 뿌리채로 뽑아 풀을 제거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잡풀은 꼭 뿌리를 제거하여야 합니다. 뿌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잡풀은 인차 더 빠른 속도로 자라나 벼의 영양을 빼앗아 갑니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김을 매야 하므로 두벌 일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강의가 끝난후 우리는 논밭에 나갔다. 논밭에 나가보니 정말 아버지가 말씀한 그래로 였다. 다른 풀은 분간하기도 쉽고 제거하기도 쉬운데 가래잎풀, 소뿔풀, 돌피는 기음매는것이 힘든 일이였다. 가래잎풀은 분간하기도 좋고 찾아내기도 좋은데 뿌리를 찾아서 뽑는것이 힘들었고 소뿔풀도 가려내기는 쉬운데 유연하여 푹 퍼진 옥수수국수처럼 잘도 끊어져 아닌게 아니라 풀뿌리 깊숙히 손가락을 박아넣지 않으면 완전히 제거할수가 없었다. 돌피는 잎사귀가 벼와 흡사하고 또 벼포기와 밀착하여 성장하여서 가려내기가 어렵고 또 잘 가려서 손가락을 그 뿌리에 깊이 박지 않고서는 완전히 제거할수가 없었다. 논기음을 매는것은 정말로 고된 노동이였다. 특히 10세좌우되는 우리들로 놓고 보면 더욱 그러하다. 말그대로 한알의 량식이라도 농민들의 땀이고 정성인 것이였다. 대학을 나오고 다시 농촌에 가니 옛날의 논기음을 매는 농법은 이미 도태되여 있었다. 농약이 발달되여 가래약, 돌피약 등이 개발되여 있어 기음을 매지 않아도 풀을 제거할수가 있었다. 그리고 각종 화학비료가 개발되여 벼모가 빨리 크게 하고 싶으면 빨리 크게하고 빨리 여물게 하고 싶으면 빨리 여물게 하여 정말로 농민들도 편안하게 일하고 있었다. 예하면 가래약을 치면 물위에 떠있는 가래잎만 말려 죽이니 뿌리는 땅에 박혀 있으나 햇빛을 통해 광합성작용을 하지 못하니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하므로 자랄수가 없는것이다. 다른 제초약도 같은 원리였다. 그러고보니 사실 잡풀을 제거하는데는 뿌리를 제거하는 방법도 있었거니와 잎이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도 있었던 것이다. 나는 논기음을 매는것을 회억하면서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핏줄 즉 혈연관계는 뿌리와 같은것이고 풍속문화는 잎과 줄기와 같은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풍속문화는 혈연이라는 뿌리에서 자란 잎과 줄기이다. 이러한 혈족과 풍속문화가 바로 우리의 민족의 형체를 이루고 있는 장본인이라고 생각된다. 혈족을 떠난 풍속문화도, 풍속문화를 떠난 혈연관계도 진정한 우리 민족이 아니다. 혈족을 떠나서 풍속문화가 존재할리가 없으면, 풍속문화를 떠나 혈족은 결국 동화되여 존재할수가 없는것이다. 우리 민족의 풍속문화라고 하는것은 결국 다른 민족의 풍속문화와 구별이 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 구별점이 바로 우리 민족의 풍속문화이고 우리 민족의 우점도 되고 결점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구별점으로 인하여 우리민족이 수많은 민족속에서 돋보이게 되는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개성시대라서 남의 모양을 따라서 하는것보다 자기의 남보다 다른 개성을 살리는것이 하나의 유행으로 되여 있는 시대이다. 이것이 유행된다는 말은 이것이 유행되기 이전에 이러한 남을 흉내내는 즉 동시가 서시를 흉내내는 일들이 너무도 보편화되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들이 똑 같은 얼굴을 지니고, 세계는 똑 같은 색상을 지니고 있을때 이 세상은 얼마나 단조롭고 무미건조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에게는 지금도 이를 느끼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문화를 흉내 내고 다른 사람의 명절을 쇠고 다른 사람의 풍속을 배우는 일들이 비일비재이다.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 민족의 풍습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자기의 혈연관계를 감추려 애쓰는 사람도 있어서 기분이 잡친다. 부분적인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타민족과의 구분과 차별을 없애려고 어려서부터 타민족 유아원에 보내고 타민족학교에 보내고 커서는 타민족과 짝을 뭇는 완전히 타민족화하는 일들이 주위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사이에 우리민족의 뿌리로 되는 민족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조선족사회는 점점 메말라 간다. 이와 동시에 우리민족의 잎과 줄기로 되는 풍속문화가 소실되여가고 많은 보귀한 문화가 류실된다. 황유복교수님의 《택호》가 바로 그 하나의 예이다. 한 직장에 다니는 한 동료가 딸을 돈많은 부자집 며느리로 시집보내고 나서 자기가 부자나 된듯이 으쓱해서 사는 모습을 보고 일종의 비애를 느꼈다. 과연 자기의 뿌리를 잃고 사는 삶이 행복할수 있겠는가고! 그 딸의 다음대에 가서 우리 민족의 풍속과 문화는 거의 소실되여 있을것은 너무도 분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이 존재해야만 될 특수한 의미가 있는것인가? 그렇다. 우리 민족이 존재해야만 되는 이유가 있고 또 그 기초상에서 발전해야만 하는 이유도 있다. 그것은 우리의 조상님들의 바램이기도 하고 우리가 이후에 더욱 잘 건강하게 살아가게될 필수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을 든든히 이 땅에 뿌리박고 잘 자라자면 뿌리도 중요하고 잎과 줄기도 중요하지만 나는 그래도 관건은 뿌리라고 생각한다. 든든한 뿌리만 있으면 아무때건 잎과 줄기는 다시 자라날수 있다. 또 자기의 잎과 줄기를 잘 피우겠으면 우리의 뿌리를 소중히 간직하고 잘 보호하고 키워두자! 때가 와서 날씨가 따스하고 햇빛이 찬연할 때 다시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끔…….
17    무제 댓글:  조회:4336  추천:84  2006-01-25
무제 얼마전에 한 친구가 연길에서도 어마어마하게 규모가 큰 술집을 차려놓고 개업식을 한다며 청하여서 가 본 일이 있다. 술집은 말그대로 엄청난 투자가 들어간것 같았다. 호화롭고 사치한 장식은 사람들에게 여기에 들어올 고객은 어떤 신분이여야 한다는것을 말해주는듯 하였다. 개업식장은 고급차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으며 사회 각 계층의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는데 개업식은 주정부의 상당한 인물을 비롯한 이들이 와서 테프를 끊고 또 유명인사들이 축사를 하고 예포를 쏘고 폭죽을 터뜨리는 가운데서 성황리에 진행되였다. 한달에 겨우 천여원의 로임에 매달려 사는 내 신세에 아무리 좋은 술집이라도 나에게는 거의 무의미하다. 귀빈카드까지 받고서도 쓸줄을 몰랐고 아예 올 엄두도 못냈다. 그러던 중 어제 음력설이 임박했다며 연길에서 일하고 있는 조카가 우리 가족을 그 술집에 불렀다. 나는 간단한 음식점에서 먹자고 주장했지만 조카는 좀 별난데로 모시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승낙하고 말았다. 그러나 장식이 호화롭고 사치해서 마음도 유쾌한것은 아니였다. 주문한 음식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어찌나 오래기다려야 하는지 환경과는 달리 기분이 잡쳐졌다. 거기에다 복무원들이 잘 훈련되지 않아 복무태도는 좋았으나 빈틈이 많았고 세련되지 못하여 흠집을 잡자면 정말 많은 흠집을 잡아낼수가 있었다. 말그대로 미중부족이다. 아침에 옆의 사무실의 동료와 자식의 학교와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딸이 하나 있는데 조선족학교에서 많은 곡절을 거쳐 한족학교에 전학시켜 놓은 정황이였다. 내가 왜 그랬는가고 묻자 그는 “한족학교는 교육질이 높고 수금이 조선족학교에 비해 많이 적다오”하고 간단히 리유를 말했다. 내가 설마 그렇겠는가고 하자 그는 조선족학교는 무엇을 차리는데는 요란하지만 실제로 교학 자질이 한족학교에 비해 차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일이 사실인지를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들을 한족학교에 보내보지 않은 이상 어떠한 발언권도 없다. 그리고 기실 조선족학교도 수금은 별로 많은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교원들의 교학질은 어떤지 정말 잘 알수가 없다. 지금 조선족인구가 줄어들고 그 와중에서도 조선족들의 한족학교에 전학하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쳐 조선족학교에서 학생래원으로 고심하는것을 보면 어쩌면 그 동료의 말에 사실근거가 있을수도 있다. 학교에 다니며 둘러보아도 실제로 조선족학교는 많은 점에서 한족학교에 비하여 훌륭하게 차려 놓고 있다. 술집을 호화롭게 잘 차리는것은 고객의 수요를 만족시켜 돈을 버는데 있고 학교를 잘 장식하는것도 우리의 자손을 더욱 잘 공부시키려는데 있다. 만약 고객의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돈을 벌지 못하면 아무리 호화롭고 사치한 장식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 아무리 학교를 번듯하게 잘 꾸려놓고도 좋은 학생을 배육해내지 못하고 학부모들의 요구를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깊이 사색해야 할 바라 생각된다. 우리의 민족학교가 변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16    흙과 모래의 이야기 댓글:  조회:5120  추천:73  2005-11-15
흙과 모래는 또 다투기 시작하였다. “모래야 너는 왜 그 모양이야! 언제나 제고집만 세우고 좀 자세를 낮추어라. 그래봤자 너나 손해보지!” “아니야, 이것은 내 인격이야! 조직이 흩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절대 타협을 하지 않아!” 모래는 성나서 말했다.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만 생각하면 절대 굽어드는 일이 없는 모래알이다. “그러니까 속담에까지 흩어지 모래알이라는 말이 있지, 조직에 있으면 마음에 들던 안 들던 그대로 묵인하면서 비위를 맞추어 가면서 되는대로 섞여서 사는것이 제일 좋아, 옛날 조정을 봐도 그렇지, 어느 바른 입을 가진 충신이 좋은 끝장이 있는것 있어?” 흙은 예까지 들어가면서 모래를 설복했다. “그게 어디 신하탓이야! 그것은 임금이 눈깔이 어두워서 그런거지” 모래는 정말 화가나서 낯이 지지벌개나면서 말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눈깔 먼 무능한 소인배들이 권력을 손에 쥐고 거기에 어디에나 잘 발라맞추는 진흙 너가 있어서 사회가 이 모양이 되였잖아! 이 모든 것은 바로 너같은 놈 때문이야!” “얘, 모래야! 너 기껏 생각해서 잘 되라고 귀띰해주니까 인젠 뭐 나까지 껴들어 말도 안되는 소릴하고 이 야단이야! 나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지, 듣기 싫으면 너 맘대로 해! 인젠 관계도 안 할테니까!” 흙은 너무 성나서 낯이 검붉어지면서 사라졌다. “나는 언제나 나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나는 모래다. 흩어져 있을지라도 흙처럼 흐물떡거리며 사는 일은 결코 없어!” 모래는 맹세하듯 말했다. 이리하여 모래는 강바닥에서 아까운 시간들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끝내 홍수가 터졌습니다. 많은 진흙과 모래는 홍수에 씻겨 아래로 아래로 밀려내려 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거세찬 물결이지만 모래의 지조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홍수가 지난후에 보니 모래는 제 고집을 세워 그냥 남아 있는데 흙은 다 씻기워 내려가고 말았다. 홍수가 지난후 사람들은 다음의 홍수르 대비해 재빨리 수리복건 사업을 하게 되였다. 이번 수리복건 사업을 책임진 호호가 먼저 말했다.“기상대의 예측에 의하면 다음에는 더 큰 홍수가 터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홍수방지를 잘하여 인민들의 생명재산을 보호하는것을 담보하는 전제하에서 좋은 의견이 있으면 제출하여 주십시요” 수리전문가인 옥저씨가 먼저 발언을 하였다. “이번 홍수가 증명하다싶이 흙은 비록 조작하기 쉽고 말을 잘 듣지만 비가 오면 다 씻기워 가고 맙니다. 그러나 주장이 센 모래는 안 씻기워 갔습니다. 이는 마치 IMF당시 한국의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일심으로 외세의 눌리지 않고 자기의 개인 재산마저도 모두 받쳐 국가를 보호하고 경제를 지탱해나간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이에 비추어 저는 이번 수리시설은 흙을 쓰지 말고 모래로 할것을 주장합니다. ” “모래는 개별주의가 심하고 고집이 너무 세여 한데 뭉칠수 없습니다. 모래로 성을 쌓는것은 말그대로 모래성이여서 헛수고 입니다.” “아닙니다. 모래는 자기의 주견이 있어 그런 겁니다. 우리는 이전에 모래의 그런 주견을 채납하지 않고 또 그들의 주장을 한데로 묶어주지 않고 한데로 인도하여 주지 않은데에 그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변사람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자기의 언어도 거절하여 배우지 않고 자기의 자존심도 지키지 못하니 자라나는 아이들이 자기의 말도 모르고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자라지 않습니까? 그 결과 인구가 대폭 줄고 민족이 동화되여 가고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제가 보건대 관건은 이제 모래를 잘 이끌 세멘트를 파견해 그들로 하여금 한데 뭉치도록 하는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꼭 자기의 모든 능력을 다하여 임무를 훌륭히 완성할 것입니다.” 비상시기인지라 옥저전문가의 의견은 즉시 채납이 되였다. 세멘트는 공사장 현장에 파견되여 가는 즉시에 모래들의 정황을 요해하고 또 모래들의 각종 의견을 수집하고 종합하여 재빨리 모래들을 하나로 뭉쳤다. 마음이 통하고 의견이 통일되고 뜻이 같아지니 모래들은 마침내 한뜻으로 바위처럼 단단한 새 금성철벽을 구성하였다. 얼마후 또 장마가 지고 홍수가 졌다. 이번 홍수는 먼저 홍수보다도 더 커서 마치 성난 사자마냥 으르렁거리며 모래와 세멘트가 손잡고 있는 방축을 향해 무너뜨리려고 기를 쓰며 덮쳐들었다. 그러나 홍수의 이런 시도는 오산에 지나지 않았다. 옛날의 흙으로 만든 방축과는 달리 세멘트와 모래로 만든 콩크리트방축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홍수는 이렇듯 견강한 모래와 세멘트의 견강한 저항에 끝내 항복하고 얌전하게 물러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덕에 흙은 그 큰 홍수에도 밀리워 가지 않고 자기를 보존할수 있었다. 홍수가 지난후 흙은 부끄러운듯이 모래에게 사과를 했다. “내가 네 덕에 살았구나! 네가 없었으면 내가 지금 어느곳에 가서 정처없이 헤매고 있을지도 모를번했어. 역시 너는 강해…, 그리고 고마워” 모래는 너무도 강해진 자기에 스스로도 놀라면서 세멘트를 바라보았다. “세멘트야 감사해, 다 네가 우릴 하나로 묶었기 때문이야!” “아니야, 그래도 너희들이 모두 강하니까 그런거지, 너희들이 흙처럼 자기주장도 없고 남의 풍에 놀면 절대로 그 큰 홍수를 막아낼수 없었지” “아니야, 네가 아니면 우리는 근본 뭉칠수도 없잖아!” 모래와 세멘트는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손잡고 강둑을 드팀없이 지키고 있었다. 그러는 모래와 세멘트를 보면서 흙은 “자기주장밖에 고집할 줄 모르던 저 녀석이 저렇게 변할수도 있다니, 참 모를 일이군! 하여간 대단해…”하고 중얼거리며 대견한 눈길로 모래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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