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준 인상은 집에서는 과묵하고 밖에서는 이야기를 잘 하시는 분으로 남아있다. 밖에서는 그렇듯 이야기를 잘 하시는 분이지만 자식들과는 특히 나와 하신 말씀은 헤아릴수 있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동생들의 공부를 위해 자신이 학교에서 공부할 기회마저 포기하신 아버지는 틈틈히 자습을 하여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계셨고 농사일에도 경험이 풍부하여 마을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계셨다.
내가 소학교를 다닐때의 어느날 선생님은 아버지를 학교에 모셔왔다. 그때는 사회와 결합하여 공부하던 시기인지라 상과를 하다가도 얼핏하면 논밭이나 한전에 나가서 일하군 하였다. 오후에 논밭에 나가 기음을 매겠는데 학생들이 논기음을 맬줄 모르므로 논기음을 매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위하여 감논군인 아버지를 모셔왔던 것이다.
아버지는 미리 따온 가래잎풀, 소뿔풀, 돌피 등 양본을 가져 오시여 우리에게 어떻게 잡풀과 벼를 분간하여 내는가 하는것을 상세히 설명하셨다. 그리고 논기음을 매는 목적은 하나는 논의 풀은 제거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손가락으로 벼포기 주위의 논바닥을 긁어 땅을 성글게 하여 벼가 더욱 잘 자라게 하는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풀을 제거할때에는 꼭 손가락을 풀뿌리밑에 깊이 박고 뿌리채로 뽑아 풀을 제거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잡풀은 꼭 뿌리를 제거하여야 합니다. 뿌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잡풀은 인차 더 빠른 속도로 자라나 벼의 영양을 빼앗아 갑니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김을 매야 하므로 두벌 일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강의가 끝난후 우리는 논밭에 나갔다.
논밭에 나가보니 정말 아버지가 말씀한 그래로 였다. 다른 풀은 분간하기도 쉽고 제거하기도 쉬운데 가래잎풀, 소뿔풀, 돌피는 기음매는것이 힘든 일이였다. 가래잎풀은 분간하기도 좋고 찾아내기도 좋은데 뿌리를 찾아서 뽑는것이 힘들었고 소뿔풀도 가려내기는 쉬운데 유연하여 푹 퍼진 옥수수국수처럼 잘도 끊어져 아닌게 아니라 풀뿌리 깊숙히 손가락을 박아넣지 않으면 완전히 제거할수가 없었다. 돌피는 잎사귀가 벼와 흡사하고 또 벼포기와 밀착하여 성장하여서 가려내기가 어렵고 또 잘 가려서 손가락을 그 뿌리에 깊이 박지 않고서는 완전히 제거할수가 없었다.
논기음을 매는것은 정말로 고된 노동이였다. 특히 10세좌우되는 우리들로 놓고 보면 더욱 그러하다. 말그대로 한알의 량식이라도 농민들의 땀이고 정성인 것이였다.
대학을 나오고 다시 농촌에 가니 옛날의 논기음을 매는 농법은 이미 도태되여 있었다. 농약이 발달되여 가래약, 돌피약 등이 개발되여 있어 기음을 매지 않아도 풀을 제거할수가 있었다. 그리고 각종 화학비료가 개발되여 벼모가 빨리 크게 하고 싶으면 빨리 크게하고 빨리 여물게 하고 싶으면 빨리 여물게 하여 정말로 농민들도 편안하게 일하고 있었다.
예하면 가래약을 치면 물위에 떠있는 가래잎만 말려 죽이니 뿌리는 땅에 박혀 있으나 햇빛을 통해 광합성작용을 하지 못하니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하므로 자랄수가 없는것이다. 다른 제초약도 같은 원리였다.
그러고보니 사실 잡풀을 제거하는데는 뿌리를 제거하는 방법도 있었거니와 잎이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도 있었던 것이다. 나는 논기음을 매는것을 회억하면서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핏줄 즉 혈연관계는 뿌리와 같은것이고 풍속문화는 잎과 줄기와 같은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풍속문화는 혈연이라는 뿌리에서 자란 잎과 줄기이다. 이러한 혈족과 풍속문화가 바로 우리의 민족의 형체를 이루고 있는 장본인이라고 생각된다.
혈족을 떠난 풍속문화도, 풍속문화를 떠난 혈연관계도 진정한 우리 민족이 아니다. 혈족을 떠나서 풍속문화가 존재할리가 없으면, 풍속문화를 떠나 혈족은 결국 동화되여 존재할수가 없는것이다. 우리 민족의 풍속문화라고 하는것은 결국 다른 민족의 풍속문화와 구별이 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 구별점이 바로 우리 민족의 풍속문화이고 우리 민족의 우점도 되고 결점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구별점으로 인하여 우리민족이 수많은 민족속에서 돋보이게 되는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개성시대라서 남의 모양을 따라서 하는것보다 자기의 남보다 다른 개성을 살리는것이 하나의 유행으로 되여 있는 시대이다. 이것이 유행된다는 말은 이것이 유행되기 이전에 이러한 남을 흉내내는 즉 동시가 서시를 흉내내는 일들이 너무도 보편화되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들이 똑 같은 얼굴을 지니고, 세계는 똑 같은 색상을 지니고 있을때 이 세상은 얼마나 단조롭고 무미건조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에게는 지금도 이를 느끼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문화를 흉내 내고 다른 사람의 명절을 쇠고 다른 사람의 풍속을 배우는 일들이 비일비재이다.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 민족의 풍습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자기의 혈연관계를 감추려 애쓰는 사람도 있어서 기분이 잡친다.
부분적인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타민족과의 구분과 차별을 없애려고 어려서부터 타민족 유아원에 보내고 타민족학교에 보내고 커서는 타민족과 짝을 뭇는 완전히 타민족화하는 일들이 주위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사이에 우리민족의 뿌리로 되는 민족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조선족사회는 점점 메말라 간다. 이와 동시에 우리민족의 잎과 줄기로 되는 풍속문화가 소실되여가고 많은 보귀한 문화가 류실된다. 황유복교수님의 《택호》가 바로 그 하나의 예이다.
한 직장에 다니는 한 동료가 딸을 돈많은 부자집 며느리로 시집보내고 나서 자기가 부자나 된듯이 으쓱해서 사는 모습을 보고 일종의 비애를 느꼈다. 과연 자기의 뿌리를 잃고 사는 삶이 행복할수 있겠는가고! 그 딸의 다음대에 가서 우리 민족의 풍속과 문화는 거의 소실되여 있을것은 너무도 분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이 존재해야만 될 특수한 의미가 있는것인가? 그렇다. 우리 민족이 존재해야만 되는 이유가 있고 또 그 기초상에서 발전해야만 하는 이유도 있다. 그것은 우리의 조상님들의 바램이기도 하고 우리가 이후에 더욱 잘 건강하게 살아가게될 필수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을 든든히 이 땅에 뿌리박고 잘 자라자면 뿌리도 중요하고 잎과 줄기도 중요하지만 나는 그래도 관건은 뿌리라고 생각한다. 든든한 뿌리만 있으면 아무때건 잎과 줄기는 다시 자라날수 있다. 또 자기의 잎과 줄기를 잘 피우겠으면 우리의 뿌리를 소중히 간직하고 잘 보호하고 키워두자! 때가 와서 날씨가 따스하고 햇빛이 찬연할 때 다시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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