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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마지막 미쟁이(2)
2019년 07월 17일 09시 37분  조회:161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마지막 미쟁이(2)

리승국

 

6. 

어씨가 일어나니 언제 일어났는지 아들이 벌써 마당에 나와 자전거바퀴에 펌프질하고 있었다. 보니 얼굴에 신심 같은 홍조가 비껴있었고 두 눈에는 정기가 넘쳐 흘렀다.

어씨는 늘 아들과 함께 일하러 다니는 것이 마음에 걸려 간혹 용돈도 찔러주군 하지만 하냥 아들한테 죄진 기분을 가무릴 수 없었다. 하지만 아들은 한번도 투덜거리지도 심술 부리지도 않고 하루 세끼 해주는 밥을 먹고 온종일 어씨를 따라 삯일을 하러 다니며 아들의 자리를 충실하게 지켜가고 있었다. 어씨는 그럴 때마다 아들로 인해 자부와 긍지를 가끔씩 느끼군 했다.

아들도 근간에 많이 셈이 든 듯 싶기도 했다. 예전처럼 철딱서니 없이 시장돌이도 하지 않았고 점점 주변에 친구들이 보이기도 했으며 어떤 날에는 거울에 마주서서 한참씩 얼굴을 다듬기도 했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어씨는 자기가 바라던 바에 즐거워했고 기대에 차있기도 했다. 

“오늘은 길이 좀 머니까 바람을 많이 넣어야겠다.”

어씨는 손을 뻗어 자전거 다이야를 꾹꾹 쥐여보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미장칼 하나 더 챙기쇼.”

“왜?”

어씨는 진지해진 아들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함께 미장을 해야 빨리 끝나지. 아버지 혼자서 언제 다 끝내겠슴까?”

“오늘 일은 미장할 일이 아니니 미장칼은 필요없다. 날래 들어가 엄마 아침을 거들어라. 오늘 일찍 떠나가자.”

아들은 바람을 다 채운 자전거를 울바자 앞에 세워놓고 집으로 들어갔다. 

어씨는 아들의 튼튼하게 여물어가는 몸통을 대견스레 바라보며 변소로 달려갔다.

어씨는 아들과 함께 품삯길에 올랐다. 오늘의 목적지는 시가지에서 30여리 상거한 시골이였다. 오늘 어씨는 아들과 함께 그 곳에서 하루 동안 하수도를 파는 일을 해야 했다. 

웬 일인지 오늘 아들의 기분은 좋아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내내 코노래를 흥얼거렸고 두 눈을 쪼프리고 길 량쪽으로 펼쳐진 전야와 멀리 산발을 흔상하고 있었다.

어씨도 아들의 눈길을 따라 전야와 멀리 산발을 바라보았다. 자연은 모든 것을 감내한 듯 말없이 풍요와 인내를 조용히 말하는 듯했다. 멀리 산발과 산발 사이로 운무가 피여오르고 아직 떠오르지 않은 동산 너머의 해빛이 먼 산꼭대기에 빨간 모자를 씌워주고 있었다. 차지만 시원한 공기가 골안에서 흘러나와 어씨와 아들이 가고 있는 포장도로에까지 퍼져왔다. 

“아침공기를 실컷 마셔라. 이른아침 공기를 마시면 온 하루 피곤도 모르고 일할 수 있단다.”

아들은 어씨를 건너다보며 웃었다. 

어씨는 아들이 왜 웃는지 알고 있었다. 터무니없는 도리를 과학적인 듯 외곡하는 어씨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웃음이였다.

“믿지 않아두 좋아. 이 애빈 여직껏 이런 공기를 마시며 일했기에 힘든 줄 몰랐단다. 아마 니눔과 이 애비는 체질이 다른가 보다. 허허허.”

어씨는 먼산을 바라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그 웃음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오랜만의 웃음이였다. 

“아들. 이 애비가 20여년 간 이렇게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자전거 다이야를 바꾸었는지 맞춰보아라.”

“50개.”

아들은 대수롭지 않게 주어댔다. 

어씨는 아들의 건성으로 하는 대답에 실망한 듯 탄식 같은 소리로 아들을 나무랐다.

“그걸 대답이라구 내뱉냐?”

“그럼 백개?”

아들이 되묻자 어씨는 손을 홱 하고 내저었다. 자기 마음을 조금도 알아봐주지 못하는 아들이 원망스러웠다. 거짓으로라도 천개라고 하면 입이 삐뚤어지기라도 할가? 금방까지 시원한 공기를 마셨던 페부에 열기가 올리밀기 시작했다.

“니눔한테 이런 것까지 각인시키려는 내가 더 한심하구나. 관두자. 니들 눈엔 이 자전거가 꼴보기 싫을 테니까 이후에 애비가 죽으면 이 자전거두 함께 불태워 보내거라. 아마 죽어서두 이 자전거를 타고 다닐 팔자 같구나.”

어씨는 페달을 콱 밟았다. 자전거는 씽하니 앞으로 굴러갔다. 그 뒤로 아리숭한 고민에 빠진 아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따라섰다.

일이 시작되였다. 시골의 하수도는 시가지와 달리 단독으로 구뎅이를 파고 거기에 벽돌이나 돌을 쌓고 그 우에 덮개를 덮은 후 흙으로 묻었다. 이런 하수도는 대소변이나 오물이 구뎅이에 찼다가 땅속으로 스며들기에 시간이 오래가면 인력으로 가셔내야 했다. 하지만 가셔내는 그 작업이 엄청 역겨웠다. 여러해 쌓여있던 썩을 대로 썩은 오물들이 풍기는 가스냄새는 사람을 쓰러뜨릴 정도로 지독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대변소변은 밖에 있는 변소를 리용하고 다만 세수물이랑 그릇 씻은 구정물 따위만 하수도에 버렸다.

오늘의 주인은 80이 넘은 늙은 량주였는데 자식들이 몸이 불편한 로인들이 밤에 바깥출입을 하다가 락망이라도 하면 큰일인 것을 대비해 어씨를 불러 하수도를 파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어씨는 이 집 자식들의 효도에 감격해 하수도를 잘 만들어주리라 결심했다. 어씨는 먼저 자식들의 요구를 귀납해 가장 합당하게 그리고 오래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어씨는 얼렁뚱땅 만들어놓은 후 돈 챙기고 가버리는 그런 얼치기 미쟁이들하고는 달랐다. 어씨는 여직껏 일해오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고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어씨는 이런 생각을 아들한테도 일하는 시시각각 주입시켰다. 아들은 듣는둥 마는둥 했지만 일하는 솜씨에서 어씨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어씨는 인간의 도리를 재간을 물려주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고 실천에 옮기군 했다.

일이 시작되였다. 금방 땅딱지를 떼기 시작했는데 해가 열기를 뿜기 시작했다. 어씨와 아들은 번갈아가며 곡괭이를 휘두르고 삽으로 퍼내기를 반복했다. 얼마를 파내려가지 못했는데 벌써 온몸이 물주머니가 되였다. 주인집 늙은 량주도 어씨네 부자가 땀 흘리는 모양이 안스러웠는지 랭수를 담아다 주었고 얼음과자를 랭장고에서 꺼내 어씨네 부자한테 쥐여주었다.

“쉬면서 하라구. 쯔쯔쯔. 이 늙은 것들이 여태 살아있어가지구 사람을 고생시키는군.”

“우린 먹구 살기 위해 하는 일이니 응당합지유. 허허허.”

어씨가 아들을 건너다보니 아들은 해빛이 숫구멍을 지져대는데도 말도 없이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마치 금방 길들여진 소처럼 부지런히 일에 여념없었다.  

어씨의 마음은 순간 알싸해지며 서글픈 생각과 함께 아들이 가련해보이기까지 했다. 여직껏 키우며 잘 먹이지 못하고 잘 입히지 못해도 그냥 지나쳐왔지만 아들이 자기를 따라다니며 일을 하는 모습을 보니 웬지 생각이 점점 달라졌다.

오전 해를 거의 넘기자 두메터 가량 되는 깊숙한 구뎅이가 생겨났다. 마치 순간 생겨난 싱크홀 같았다.

아들은 깊숙한 구뎅이를 내려다보며 히죽이 웃었다. 마치 전리품을 흔상하는 병사 같이 얼굴에 자호감과 승리감으로 얼룩진 그림자가 잔뜩 비껴있었다. 

어씨도 옆에서 같이 웃어주었다. 아마도 이것은 아들이 이 세상에 태여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힘에 의해 만든 성과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씨는 미장칼을 아들의 손에 쥐여주었다.

“오늘 벽돌 쌓기는 네가 담당해라. 이 애비가 거들어주마.”

어씨는 아들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직시했다. 어씨의 믿음 어린 눈길에 흔들리던 아들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아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쉼 쉬고나자 또다시 땀으로 반죽된 일이 시작되였다.

생각밖으로 아들의 벽돌 쌓는 솜씨는 례상외였다. 서툰 손놀림도 없이 벽돌과 벽돌을 물리는 것이 마치 오래동안 해온 장인마냥 흠집이 거의 없었다. 

“아들, 어디 가서 벽돌을 쌓아봤냐?”

“전번에 담장 쌓을 때 해본 게 전부임다.”

아들은 벌씬 웃었다. 자기의 솜씨를 긍정해주는 데 대한 대답이였다.

“피를 속이지 못하겠구나.”

아들이 한자 쯤 쌓아올리자 어씨가 손을 바꿔주며 약간씩 잘못된 곳을 지적했다. 

일반 담장을 쌓는 것보다 원 모양으로 쌓는 것이 기술과 경험을 겸비해야 하는 난도가 있는 일이였지만 아들은 거뜬히 쌓았고 오차도 별로 없었다. 

어씨는 이것을 운명의 조화라고 여길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은 먹고 살기 위해 배워낸 재간이였지만 아들은 마치 타고난 재간인 듯 어씨 앞에서 스스럼없이 자신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해가 거의 저물어가서야 어씨와 아들의 합작품이 만들어졌다. 아들은 서쪽에 붉게 걸린 저녁노을띠를 바라보며 이마에 남아있는 마지막 땀방울을 닦았다. 

“힘들지?”

“아니 괜찮슴다.”

어씨는 아들의 잔등에 걸친 적삼 우로 허옇게 내밴 소금기를 바라보며 쓸쓸하게 웃었다. 

주인집 량주가 건네주는 품값을 받아 옆차기에 챙겨넣고 그들은 귀로에 올랐다. 고된 하루일의 뒤를 따르는 고달픔은 옆채기에 두툼하게 찔러넣은 돈 때문에 가뭇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들, 오늘 저녁에는 세치네탕을 먹자구나.”

“좋도록 하쇼.”

아들은 가타부타 투정도 없었다. 어씨가 죽을 마시자고 해도 흔쾌히 대답할 듯했다.

“허참. 자식.”

어씨는 색조가 점점 바래가는 노을을 바라보며 페달을 밟았다. 

어씨는 아들과 함께 바래져가는 락조 속을 향해 달려갔다.

 

 7. 

며칠 후 어느 날 아침 시한폭탄은 끝내 터지고야 말았다.

마누라는 끝내 병원으로 실려갔고 단두대 같은 수술대에 올라가 생과 사를 넘나들고 있었다. 

어씨는 머리를 싸쥐고 수술실 앞에 쭈크리고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아들은 여기저기 뛰여다니며 돈을 지불하고 입원수속을 마쳤다.

수술실로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드나들었는데 저마다 표정이 마치 웃기라도 하면 환자가 죽어버리기라도 하는 듯 하나같이 굳어있었다. 

아들이 숨을 죽이고 어씨의 곁에 와 조용히 앉았다. 어씨가 바라보자 아들은 입원수속을 마친 령수증을 어씨한테 건넸다. 어씨는 받지 않고 힐끔 종이장을 들여다본 후 얼굴을 돌려 수술실문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 문이 열리면 어씨와 아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어씨의 앞으로 오고가던 간호사와 의사들이 줄어들고 한참은 고즈넉해졌다. 어씨는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는지 지금 어느 때인지도 모르고 그냥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아들이 음료수를 손에 쥐여주어서야 갈증이 나는 것을 의식했다. 

“7시간 지났슴다.”

어씨는 놀라운 눈매로 아들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어씨는 수술실 문앞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으나 문틈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씨는 마누라가 담가에 실려 분명히 이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자기 눈으로 보았지만 지금 이 시각 도리여 자기가 잘못 보지 않았나 의심이 들었다. 어씨는 혹시 마누라가 집으로 가지나 않았나 헛된 생각까지 했다.

이때 수술실문이 열렸다. 흰 보자기를 몸에 감은 채 마누라가 담가에 실려나왔다. 마누라의 코와 입에는 숱한 비닐도관이 꽂혀있었고 주렁주렁 비닐봉지가 담가 옆에 세워진 쇠꼬챙이에 달려있었다. 

“비키세요.”

간호원의 앙칼진 소리에 어씨는 한쪽으로 물러났다. 

마누라를 담은 밀차는 어느새 굽이를 돌아 구급실이라고 쓴 칸으로 사라졌다. 

어씨가 어정쩡해 서서 마누라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는데 뒤에서 마누라의 이름을 부르며 보호자를 찾았다.

“예. 여기 여깁니다.”

어씨는 급한 나머지 손을 번쩍 들었다.

“환자는 24시간 간호가 필요합니다. 아직 의식불명이구요. 생사여부는 이제 관찰해봐야 합니다. 아마 2-3일 후에 깨여나면 구사일생이고 안 그러면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그럼 어찌하믄 살 수 있나유?”

어씨는 의사의 손을 꽉 잡았다. 의사의 손은 땀에 푹 젖어있었다.

“워낙 뇌출혈이 심해 많은 면적에 피가 퍼진 상태라 회복가능성은 50%라고 보아집니다. 명이 길면 살 수 있을 겁니다. 운명에 맡기십시오.”

의사는 어씨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구급실로 들어가버렸다.

어씨는 의사의 허락을 받고 구급실로 들어갔다. 마누라는 조용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마누라 침대머리의 현파기 액정판에 마누라의 심장박동수가 파란 선을 그으며 마치 수소가 걸어가며 늘여놓는 오줌자리마냥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흰 천에 감싸여 누워있는 마누라의 몸은 렴습을 마친 시신 같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엊저녁까지만 해도 래일 함께 랭면 먹으러 가자고 지청구를 대던 녀편네가 이렇게 혼곤히 잠든 채 저승문어구에 서있을 줄은 어씨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였다. 말도 나눌 수 없는 마누라 앞에 한참을 서있었지만 어씨는 자신이 이 시각 마누라한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저 묵도하듯 마누라 손등에 꿰여진 주사바늘을 내려다볼 뿐이였다.

한참 후 간호사의 축출에 마누라의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을 다시 한번 일별하고는 밖으로 쫓겨나왔다.

아들이 복도의 걸상에 앉아 멍하니 맞은켠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줄근해진 아들의 모습은 먹다 남은 밀가루포대 같았다. 

“아마두 후사를 준비해야 할가 부다.”

어씨의 말에 묵묵히 앉아던 아들이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씨는 들먹이는 아들의 어깨를 그러안아주었다. 그리고는 등을 도닥여주며 중얼거렸다.

“니 에미두 불쌍하다. 더럽게 못난 나를 만났으니 저렇게 될 수 밖에.”

아들은 말없이 흐느끼기만 했다.

한참 후 어씨는 아들한테 나가서 식사하라고 타일렀다.

“어디 가서 끼니나 에때워야지. 여긴 내가 지키마.”

“먹고 싶지 않슴다.”

“그래두 먹구 힘 내야 엄마를 돌볼 게 아니냐?”

어씨는 말을 하다가 갑자기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올리밀어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말았다. 어씨는 말하다 말고 아들의 등을 밀었다.

아들은 입원수속 령수증을 어씨한테 넘겨주고는 구급실 쪽을 힐끗거리며 무거운 걸음으로 병원을 나갔다.

아들이 사라지자 어씨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참고 쌓였던 눈물이 골물이 터지듯 한꺼번에 쏟아져 흘러내렸다. 그리고 목이 꺽 메여왔다. 어씨는 꺼이꺼이 울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며 여겨보았지만 그는 더 세게 울었다. 한참을 그렇게 마음 놓고 울었다. 

지나가던 간호원이 어씨의 모양이 볼썽사나왔는지 위생지를 한웅큼 가져다 어씨의 곁에 놓아주었다. 그래서야 어씨는 천천히 마음을 눅잦히고 눈물코물을 훔쳤다.

어씨는 이 모든 것이 도대체 누구 때문인지 아리숭했다. 자기 때문이라고 하자니 너무 비참했고 누워있는 마누라 때문이라고 하자니 잔인했으며 아들을 탓하자니 후안무치했다. 

어씨는 손에 들려있는 령수증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아래켠에 적혀있는 금액에 눈을 모았다. 거기에는 네자리 큰 수자가 떡하니 적혀있었다. 이 돈은 어씨가 마누라 몰래 저축해둔 돈이였다. 그리고 집도 사고 아들도 장가보내야 할 돈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마누라의 목숨을 사야 할 돈이 되고 말았다. 얼마를 주어야 마누라 목숨을 건져올지 막막할 뿐이다. 이제 이런 종이장을 몇장 더 모아야 마누라가 침대에서 일아날 수 있을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씨는 걸상에서 일어나 주춤주춤 구급실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부연 유리에는 유령 같은 그림자가 언뜻거리고 기기들이 내는 전자파소리가 간간히 들릴 뿐이였다. 어씨는 구급실문 손잡이를 잡았다가 그대로 놓아버리고 몸을 돌렸다. 어씨는 도로 걸상에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는 홀로 중얼거렸다.

“죽지 않을 거야. 어찌 쉽사리 죽을 수 있단 말인가?”

어씨는 갑자기 어금이를 뿌드득 으깨지게 깨물었다. 원쑤 같던 마누라의 존재감이 이렇게 큰지를 미처 몰랐던 자신이 너무 어처구니 없게 느껴졌다.

한참 후 아들이 고기소를 넣은 만두를 비닐봉지에 싸들고 왔다. 아들이 이젠 셈이 들어 어씨의 한쪽 어깨가 되여가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멋을 느끼고 있을 때 마누라가 넘어졌으니 어씨로서는 맹랑하고 억울하기까지 했다.

“넌 먹었냐?”

“네. 식기 전에 빨리 드쇼.”

아들은 구급실 쪽을 일별하고는 어씨 곁에 앉았다. 그리고는 만두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들고 멍하니 앉아있는 어씨를 툭 건드렸다.

“아버지, 너무 상심마쇼. 이게 다 아버지 팔자가 사나와 그런 거니 그대로 받아들이쇼.”

어씨는 아들을 낯선 사람처럼 돌아다보고는 말없이 만두를 꺼내 우적우적 씹어삼켰다.

어씨가 만두 하나를 거의 먹었을가 했을 때 의사가 다가왔다. 

“오늘은 간호사가 간호를 책임집니다. 여기에 있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으니 집으로 돌아갔다가 래일 다시 와보십시오. 그리고 래일 치료비 만원을 더 입금시켜야 합니다.”

어씨는 아들을 돌아다보고는 의사한테 한발 다가섰다.

“오늘 5천원 넘게 결산했는 걸유. 무슨 돈을 또 만원씩이나 입금시키라는 건데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데 만원이 대숩니까? 참 한심합니다. 병원에서 지금 살리려구 전력을 다하는 게 보이지 않습니까? 환자가족에서 사람 살릴 성의가 없다면 우리도 포기하겠습니다.”

의사가 랭랭하게 찬 기운을 뿜으며 돌아서자 어씨는 다급히 의사의 옷깃을 잡았다.

“아니 잘 몰라서 그래유. 살려야 합지유. 살려야.”

“그럼 래일 수금처에 가서 만원을 입금시키십시오.”

의사는 쌩하니 가버렸다. 

어씨는 입안에 남은 만두 찌꺼기를 꿀꺽 삼키며 아들을 돌아다보았다. 

아들의 얼굴은 이미 까맣게 죽어있었다.

“어디에 그렇게 많은 돈이 있슴까?”

“가자. 갔다가 래일 다시 오자꾸나.”

어씨는 아들 앞에 서서 허청허청 병원현관을 지나 회전문을 빠져나갔다. 

밖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들어올 때 아침이였는데 벌써 저녁이 되다니. 어씨는 참 시간이 빨리도 흘러간다는 생각을 하며 곁으로 다가오는 아들의 손을 그러쥐려고 손을 아들한테 뻗었지만 어둠 속에서 아들은 그대로 앞으로 걸어가버렸다.

어씨는 손을 거둬들여 호주머니에 쑤셔넣고는 저금카드를 꼭 그러쥐였다.

 

8.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는 분명히 녀자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고 여기며 어씨는 문을 열었다. 문밖에 서있는 사람을 보는 순간 어씨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을 듯 휘청거렸다. 글쎄 마누라가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빛 속에 서서 웃고 있었는데 몸에는 환자복이 걸쳐져있었다.

“임자가 어찌된 일이우? 왜 왔수?”

어씨는 마누라가 반갑기보다는 무서워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내가 뭐 귀신임두. 그렇게 무서워함두?”

마누라는 어씨를 밀치고 집안으로 들어오더니 부엌으로 들어가 밥을 짓기 시작했다.

“오늘 일하러 일찌감치 가야 하는데 아침밥을 지어야지.”

“임자 아직 환자인데 어떻게 병원에서 나왔수? 빨리 병원으로 가야지.”

어씨는 소리쳐 아들을 깨웠다. 하지만 아들은 깨여날 줄을 모르고 깊은 잠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어씨는 그대로 달려가 마누라를 그러안았다. 생각밖으로 마누라는 아주 가벼웠고 몹시 가늘었다. 어씨는 아마도 병으로 앓다나니 하루 사이에 많이 여위였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머리를 돌려 어씨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마누라가 아니라 생전 보지도 못한 며느리였다. 

“아버님 취하셨나요?”

며느리는 존칭어를 간사하게 구사했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말투 같았다. 

“취한 게 아니라 귀신한테 홀렸나 보구나. 혹시 세치네탕 끓여봤나?”

어씨가 며느리한테 중떠보듯 묻는데 어디선가 세치네탕 냄새가 풍겨왔다. 

어씨가 두리번거리며 세치네탕 냄새가 나는 곳을 찾는데 며느리 뒤쪽에 마누라가 세치네탕 그릇을 두 손에 받쳐들고 서있었다.

“뜨겁습꾸마. 빨리 와서 받아갑소.”

어씨는 며느리를 밀어내며 마누라한테로 뛰여가 김이 문문 나는 세치네탕 그릇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마누라가 세치네탕 그릇을 어씨 몸에 던지며 소리쳤다.

“돈 만원을 빨리 내놓으라니까.”

뜨거운 세치네탕 그릇이 그대로 어씨의 몸에 와 떨어졌다. 

“으악.”

어씨는 몸을 솟구치며 펄쩍 뛰였다. 

… …

어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몸을 만져보니 멀쩡했고 자기는 구들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사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창밖에서 새벽빛이 흘러들 뿐 마누라도 생뚱같은 며느리도 아무 것도 없었고 웃칸에서 아들의 코 고는 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어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기가 꿈을 꾼 것을 의식하자 허구픈 웃음을 흘렸다. 망상 같은 꿈을 되새기며 어씨는 한참을 그 자리에 그린 듯 앉아있었다. 

“오늘 만원을 입금시켜야 한다고 했지.”

어씨는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기신기신 일어나 옷을 꿰여입었다. 대충 눈곱을 쥐여뜯으며 어씨는 밖으로 나왔다. 밖은 이미 훤히 밝아오기 시작했고 단층집들 굴뚝에서 나온 연기가 무겁게 골목에 가라앉아있었는데 사람들의 그림자가 유령 같이 여기저기에서 기여나와 혼탁한 연기 속으로 사라져갔다.

어씨도 끌리듯 그 유령 같은 그림자들을 따라 골목을 빠져나왔다. 매캐한 석탄연기 속을 빠져나오니 높이 솟은 아빠트단지가 앞을 막았다. 여기부터는 록화가 잘되여있었고 길 량켠에 화단도 가꿔져 같은 도시 다른 세상을 방불케 하는 풍경이였다. 

어씨는 길게 탄식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가로수가 우거진 소구역에는 시원한 공기가 가득 운집해 페부를 시원하게 씻어주었다. 아빠트단지를 빠져나오는 내내 어씨는 심호흡을 멈추지 않았다.

어씨가 거리로 나서니 하루의 바쁜 일상을 시작하러 나가는 사람들의 흐름이 시작되였다. 차도에는 차, 인행도에는 사람, 길옆의 가게는 언녕 문을 열고 아침 스낵들을 차려놓고 고래고래 사구려를 불렀다.

바쁜 일상을 시작하는 그 속을 걸어가는 어씨는 자신이 한낮 빼놓은 낫자루 같아 부끄러워졌다. 

어씨는 그들이 차려놓은 음식들을 바라볼 렴치조차도 없다는 자괴심을 지닌 채 드바삐 지나쳐 사거리에 들어섰다. 그 곳에는 현금인출기가 가설되여있었고 돈을 인출해야 했기 때문이였다.

어씨는 두번에 걸쳐 돈을 인출해냈다. 두툼한 돈뭉치를 호주머니에 쑤셔넣고 여액을 확인했다. 액정판에 20, 000이라는 수자가 나타났다. 어씨는 자기가 시간 나면 여기 인출기로 찾아와 천문수자 같이 나타나는 저금 금액을 확인하며 즐거워했던 것을 떠올리며 실소를 던졌다. 자기가 천문수자라고 하던 저금이 몇번의 손가락 조작으로 훌쩍 날아나버리고 있는 것에 허탈을 느꼈다. 메질에도 깨여지지 않을 바위돌 같이 채곡채곡 저축해놓았던 돈이 이렇게 허물어질 줄을 어씨로서는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는 일이였다. 먹고 싶은 술도 세치네탕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며 남한테 맞아터지고 피 흘리며 벌어모은 돈이 이렇게 값이 없을 줄을 어씨는 정말 알지 못했다.

“아무쪼록 별일만 없어야 하는 건데.”

어씨는 저금카드를 뽑아 손아귀에 꼭 틀어쥐고 현금인출기박스 안에서 나왔다.

거리는 각종 소음과 냄새로 점점 혼탁해졌다. 

어씨는 길옆의 수많은 먹거리 속에서 겨우 두부 한모를 사가지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그 사이 일어나 부엌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엄마 없는 자리가 아름차 보였을 거라고 어씨는 생각하며 손에 들고 온 두부를 아들한테 건넸다.

“간단히 먹고 병원에 빨리 가자.”

“돈 만원을 내야 하는데…”

아들의 기 죽은 듯한 소리에 어씨는 아들을 다시 한번 쳐다보며 호주머니에서 돈뭉치를 꺼내 식탁 우에 던졌다.

“이 애비가 모아놓았던 돈이다.”

아들은 돈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어씨를 건너다보았는데 어씨는 아들의 눈빛이 순간 밝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하늘이 무너져두 솟아날 구멍이 있다잖냐?”

어씨는 치석이 누렇게 낀 이를 드러내고 소리없는 웃음을 웃었다.

아침을 대수 에때운 어씨는 아들과 함께 병원으로 달려가 돈을 수금처에 밀어넣고 마누라가 누워있는 구급실로 달려갔다. 구급실에는 벌써 의사들이 여러명 와서 환자들의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의사들의 어깨너머로 마누라를 들여다보니 마누라의 모양은 어제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얼굴의 구멍마다에 어제와 똑같은 비닐도관이 꽂혀있었다.

어씨는 의사들이 주고받는 말소리를 들었다. 마침 의사들이 마누라의 병증상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혈압이 지금처럼 안정되면 한 이틀 지켜보다가 입원실로 옮기시오. 생각밖으로 호전이 빠를 것 같습니다.”

“그래유? 아이구 이런. 정말 감사해유.”

어씨는 앞에 서있는 의사의 손을 덥석 잡았다. 

“우리한테 감사해하지 말고 안해 분한테 감사해하십시오.”

“그럼 그럼유.”

“오늘부터 여기 있으면서 옆을 지켜야 합니다. 혹시 깨여날지 모르니까요.”

“그러지유. 응당 지켜야 합지유.”

의사들은 연신 허리를 굽석이는 어씨의 옆을 지나 밖으로 나갔다.

어씨는 간호사가 알려주는 주의사항들에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예예를 불렀다.

간호사가 나가자 어씨는 마누라 앞으로 다가갔다. 마누라는 죽은 듯이 고요히 누워있었다. 다만 호흡기와 침대머리에 놓인 기기의 액정판에서 흘러가는 그라프가 아직 마누라가 살아있음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였다.

그래도 어씨는 조용히 마누라의 얼굴에 대고 중얼거렸다.

“그만 자구 좀 깨여나보지 그러우?”

아들이 뒤에서 툭툭 건드렸다. 

어씨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걸상을 끌어다 침대 옆에 놓고 마누라를 마주향해 앉았다. 어씨의 손은 마누라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아들은 어씨의 하는 양을 뒤에서 지켜보다가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씨의 피곤기가 가득찬 눈에서 피 같은 것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제발 죽지만 말라니까.”

어씨는 혼자소리로 뇌까리며 마누라의 손을 끄당겨 그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마누라의 손바닥에 눈물이 즐펀하게 쏟아졌다.

어씨는 한참을 그렇게 흐느끼다가 얼굴을 들었다. 희뿌연 눈길에 마누라의 처져내린 볼이 눈에 띄였다. 어씨는 눈물을 닦고 다시 가난이 꼬질꼬질 묻어있는 주름 잡힌 마누라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문득 처음 마누라의 얼굴에 손을 대여보았을 때가 새삼스레 떠올랐다. 어씨는 지금도 그때 그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시절 마누라의 볼은 잘 부풀어오른 금방 쪄낸 만두처럼 탱탱했고 한뉘 가도 주름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어씨는 그 만두 같은 볼을 얼마나 만졌는지 모른다. 그리고 꺼칠한 수염이 난 얼굴로 수없이 비비고 또 비볐었다. 그리고 지금 잡고 있는 손도 어씨는 잘 다듬어놓은 옥이라고 비유한 적이 있었다. 아주 어색한 비유를 했지만 그때 마누라는 즐겁게 웃었고 그냥 자기 손을 옥에 비유해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어씨는 아들이 생기고 마누라의 살결이 느슨해지자 옥이 아니라 시래기에 비유했고 원쑤취급을 했다. 그리고는 하늘을 우러러 마누라를 만난 자신을 죽도록 후회했다. 그런 원쑤 같은 마누라가 이렇게 쓰러져있자 어씨는 되려 가슴을 치며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고 있는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모든 인간은 이렇게 너그러워지는 것일가? 아니면 마누라가 없이 지내야 하는 자신의 인생이 너무나 비참해서일가? 어씨는 자신도 무엇때문인지 모른 채 몸 속에서 발로되는 감정을 그대로 로출시키고 있을 뿐이였다.

마누라는 오전 내내 점적주사를 꽂은 채 혼곤히 잠자고 있었다. 어씨는 그 자리에 앉아 마누라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어씨는 만약 자기가 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다시는 마누라의 곁으로 돌아올 것 같지 못할 것처럼 못 박힌 듯 앉아있었다.

“아버지 점심하러 가쇼.”

언제 왔는지 아들이 어씨의 뒤에 와 서있었다.

“너나 나가 먹어라. 내가 여기 지키고 있을 거니까.”

어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저었다.

“아버지, 저한테 미장칼을 주쇼.”

아들의 홍두깨 같은 소리에 어씨는 몸을 돌렸다. 

아들은 어금이를 지그시 깨문 채 어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장칼을 해선 뭐하려구? 설마 너 홀로 돈벌이하겠다는 건 아니지?”

“맞슴다.”

“미장일이 애들 장난이 아니다. 그리구 널 내놓구 이 애비가 시름 놓을 것 같냐?”

어씨는 세괃게 손을 저어 아들의 생각을 묵살해버렸다.

“엄마가 쓰러졌는데 그냥 이러구 있을 수 없잼까?”

아들의 고달파보이는 눈확에는 눈물이 그들먹하니 고여 떨고 있었다. 

어씨는 마누라를 일별하고는 몸을 일으켜 아들의 등을 밀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굶어죽을 지경이 아니니까 너무 서두르지 말어라. 이 애비두 다 생각이 있니라. 이제 엄마 병이 호전되면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잖겠니?”

아들은 말없이 몸을 돌려 걸어갔다.

“밥이나 잘 챙겨 먹어라. 괜한 걱정 말구.”

어씨는 걸어가는 아들의 등뒤에 대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 소리는 곁에서도 들을 수 없을 만큼 가늘었다. 

 

9.

한달 가량의 병원신세를 진 어씨의 마누라는 드디여 퇴원했다. 죽는 줄로만 알았던 마누라가 겨우 말을 할 수 있고 남의 부축을 받으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어씨로서는 천만다행이였다. 삐뚤어지는 얼굴로 웃으며 어씨를 바라보는 마누라의 눈길에는 수많은 말들이 담겨져있었다. 그냥 멍하니 바라보는 것 같았지만 눈물이 그렁하니 매달린 눈에는 알지 못할 내용들이 그들먹이 차있다는 것을 어씨는 잘 알고 있었다. 

“고생…”

퇴원해온 날 밤 마누라는 힘 없는 손으로 어씨의 손을 잡으며 겨우 외마디를 내뱉았다. 

어씨는 고개를 끄덕여 응대했다. 그리고는 수건을 적셔다 얼굴을 닦아주었다.

“래일 우리 함께 간만에 목욕하자구. 오래동안 목욕을 못했는데.”

어씨가 시무룩이 웃자 마누라도 입을 귀에 가져다 붙이며 웃었다. 그 바람에 입귀로 걸죽한 침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어씨는 망가져버린 마누라를 내려다보며 그래도 처녀를 자기한테 바친 녀자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쩌면 마누라가 없었더라면 자기는 한뉘 외토리로 지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튿날 아침 마누라가 갑자기 어씨를 툭툭 건드렸다. 어씨는 불에 덴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누라는 멀쩡하니 놀란 표정의 어씨를 바라보았다.

어씨는 마누라가 앓은 후부터 늘 신경을 도사리고 있었기에 조금만 다른 기척이나 소리가 나도 쉽게 놀라군 했다.

“왜?”

“돈… 돈 다 쓰고 어찌…”

어씨는 마누라가 돈걱정을 한다는 것을 알고 허구프게 웃었다. 

“근심 말구 죽쳐있기나 하라구. 내가 그래 임자를 굶겨죽일 것 같은가?”

어씨는 마누라한테 큰소리를 쳤지만 자신도 어찌해야 할지 막막했다. 기실 어씨는 자기가 모아놓았던 저금을 다 털어 마누라 병치료에 써버렸다. 이제 마누라 약값, 집세, 입에 넣어야 할 먹거리를 어떻게 해결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어씨는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호주머니에는 몇백원 밖에 남지 않은 저금카드가 들어있었다. 어씨는 무슨 방법을 대야 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살아 돌아온 마누라까지도 잃을 것 같았다.

어씨는 골목을 서성거리다가 문득 왕스푸가 머리에 떠올랐다. 어씨는 드바삐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왕스푸의 전화번호를 찾아 터치했다. 인차 신호가 련결되였다.

“와이. 뉘긴데유?”

귀익은 왕스푸의 둔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로위네. 그간 잘 지냈나?”

어씨는 될수록 말투를 즐겁게 하려고 애썼다. 

“허허허. 그럼유. 그런데 로위, 아침부터 전화를 하는 거 보니 무슨 일이라두 생긴 건 아닌가유?”

“아닐세. 혹시 일감이라두 없나 해서 그러네. 요새 한달 간 몸이 불편해 쉬였더니 일감이 들어오지 않누만.”

“마침 잘됐네유. 어제 일감을 맡았는데 굴뚝을 쌓는 일이래유. 나 혼자 하기 힘에 부쳐 걱정했는데 로위 와서 도와주면 되겠네유.”

어씨는 그래도 왕스푸가 자기 고초를 알아봐준다고 기뻐했다.

“알겠네. 그럼 래일 련락해서 함께 가세.”

어씨는 마치 탕개가 풀린 듯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리고는 속으로 뇌까렸다.

“하늘이 무너져두 솟아날 구멍이 있다 했는데…”

이튿날 어씨는 마누라를 아들한테 맡겼다. 그리고는 왕스푸가 준 새 미장칼을 꺼내 연장가방에 찔러넣었다. 

“아버지, 힘드면 내 가기쇼. 나두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관둬라. 굴뚝 쌓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엄마나 잘 돌보구 있거라.”

어씨는 퀭하니 자기를 올려다보는 마누라를 내려다보았다. 마누라의 눈에는 근심 같은 것이 가득 어려있었다.

“밥, 밥 챙기고… 일찌기…”

어씨는 마누라의 말뜻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알았다니까? 점심은 챙겼구 해 저물기 전에 올 거니까 아들 말을 잘 들으라구. 이제 저녁에 와서 목욕을 시켜줄게.”

어씨가 마누라를 내려다보며 웃자 마누라도 쳐다보며 웃었다. 일그러진 웃음이였으나 한없이 찬연했다.

어씨는 아들한테 저금카드를 건네주었다. 

“오늘 집주인이 집세 받으러 올 거다. 이 카드의 돈을 찾아 집세를 물어야 한다.”

아들은 말없이 카드를 받아 호주머니에 넣었다. 

어씨는 다시금 어금이를 지그시 깨물며 집을 나섰다. 어씨는 마치 사냥물을 찾아 떠나는 굶주린 승냥이 같았다. 어씨는 지금 자신이 한없이 굶주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피땀을 흘려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결과는 응당 배를 불리는 것이였고 래일 아침 무사히 눈을 뜨고 기상하는 것이였다. 

골목에 나섰던 어씨는 문득 멈춰서서 뭔가 생각하다가 몸을 돌려 도로 집으로 들어갔다. 어씨는 연장가방에서 새 미장칼을 꺼내 아들한테 넘겨주었다.

“이 미장칼을 잘 건사하거라. 이후에 따로 쓸 일이 있을 거다.”

어씨는 낡은 미장칼을 찾아 연장가방에 쑤셔넣고 다시 집문을 나섰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가 싶더니 핑하니 돌아가며 어씨는 순간 휘청거렸다. 어씨는 머리를 잡고 눈을 감았다. 좀 지나 다시 눈을 뜨니 괜찮아졌다. 어씨는 아마도 요즘 많이 피곤해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자전거에 올라탔다.

어씨는 곧추 왕스푸가 있는 하동으로 페달을 밟았다. 어씨는 골목을 벗어나 시거리를 질주했다. 기실은 질주가 아니라 아슬아슬 인파를 헤가르고 인력거를 에돌아 덮쳐오는 택시와 승용차의 어깨를 스치며 가까스로 하동의 왕스푸네 집 부근에 도착했다.

왕스푸는 오래 기다린 듯 담배를 피워문 채 길옆에 쭈크리고 앉아있었다.

“늦었네.”

“로위 늦은게 아니라 내가 일찍 나온 거래유.”

“갑세.”

둘은 오늘의 일감을 향해 달려갔다. 아니, 일감이 아니라 먹거리를 향해 달려가는 두마리의 굶주린 승냥이 같았다. 어씨는 왕스푸 역시 많이 주려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굶주린 흔적이 보이지 않고 되려 얼굴에 기름기가 감돌고 있었다. 어씨는 이 세상에 자기보다 더 주려있는 사람이 있을가 다시 되새겨보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알찌근해났다. 어씨는 긴 한숨을 내뿜었다.

“로위, 근간에 근심이 많은가 봐유? 얼굴색두 안 좋구.”

왕스푸는 어씨의 얼굴을 근심스레 훑었다.

“몸이 불편해 그냥 며칠 쉬였네.”

“감당하기 어려운 일 있으문 이 동생한테 도움을 청해유. 친구는 서로 도우는 거래유.”

어씨는 왕스푸의 말에 그만 뜨거운 것을 삼켰다. 어씨는 그래도 좋은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착한 사람은 도움받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감사하이. 이후 신세 많이 져야겠네그려. 허허허.”

어씨는 오랜만에 소리내여 웃어보았다. 어씨는 웃으며 먼 하늘에 떠가는 구름덩이를 바라보았다. 웬지 오늘 마음이 개운해지면서 말할 수 없는 흥감이 서서히 몸 속에서 솟아올라왔다.

어씨와 왕스푸는 반시간 쯤 달려 오늘의 일감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어씨가 보니 이미 굴뚝기초는 마무리된 상태였다. 그래도 굴뚝기초를 해놓았으니 다그치면 오전 내로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 와서 먼저 기초를 때려놓았는 걸유.”

이왕과 마찬가지로 주인이 와서 이것저것 주의할 것들 그리고 요구사항들을 구구절절 늘여놓고는 가버렸다.

“기초를 때렸으니 하루 걸릴 거 없구먼. 부지런히 다그치면 오전 내로 끝내게 될 걸세.”

기실 어씨한테 굴뚝 쌓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왕스푸도 어씨의 능력을 알고 있기에 도움을 청한 거였다. 왕스푸는 그저 담이나 쌓고 부뚜막이나 고치는 정도의 미쟁이일 뿐 어씨 재간에는 비하지 못했다. 왕스푸가 어씨를 존경하는 원인의 하나가 바로 그것이였다.

드디여 굴뚝 쌓기가 시작되였다. 어씨가 굴뚝을 쌓고 왕스푸가 벽돌과 세멘트반죽을 날랐다. 

오늘 왕스푸 역시 기분이 좋은 듯 얼굴에 웃음을 달고 있었다. 

“로위, 이후 우리 함께 일을 하면 좋을 듯한데 어때유? 그럼 더 큰 공정두 맡아할 수 있을 텐데유.”

“그럼 여북 좋겠나. 그런데 자네한테 내가 신세 지는 것 같아 좀 그렇네.”

“듣기 거북한 말 말아유. 앞으로 함께 일하게 되믄 내가 로위를 스승으루 모실 테니까유. 허허허.”

“한턱 내지 않구 스승을 그렇게 쉽게 모실 수 있나? 하하하.”

어씨의 우스개에 왕스푸는 가슴을 두드렸다.

“좋지유. 오늘 일 끝나믄 내가 한턱 쏠게유. 먹고픈 거 잘 생각했다가 일이 끝나믄 말해유. 화끈하게 한잔 해야지유.”

“좋네.”

둘은 마주보며 크게 웃었다. 

손을 맞춰가며 일하니 진척도 빨랐다. 오전 해가 거의 되여오자 다섯메터 높이의 굴뚝이 거의 올라갔다. 이제 한메터 정도 남은 부분에는 마무리를 하면 되였다.

“로위 내려와 담배쉼이나 해유. 오전내루 끝내믄 될 텐데유.”

왕스푸가 소리치자 어씨도 다 끝난 일이라 잠간 쉬였다가 마무리하는 것도 좋을 듯 싶었다. 숨도 돌릴 겸 물도 마실 겸 어씨는 미장칼과 망치를 거치대 우에 놓고 머리를 수그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어씨는 뭔가 자기를 밀치는 듯 몸이 휘청거려지며 사위가 빙 돌아갔다. 어씨는 얼결에 옆에 가로 매단 나무 가름대를 쥐였다. 하지만 어씨는 그 나무 가름대를 헛짚으며 그만 아래로 거꾸로 떨러졌다. 

“쿵.”

땅바닥에서 먼지가 풀썩 일었고 땅에 박은 어씨의 머리에서 피가 터져나왔다. 

왕스푸는 그 정경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어씨의 입에서 피거품이 게질게질 흘러나왔다. 

왕스푸는 그때에야 정신을 차리고 어씨를 안았다. 

어씨의 머리에서 그냥 피가 솟아나오고 있었다. 

왕스푸가 손으로 더듬으니 어씨의 머리 밑에 왕스푸가 굴뚝기초를 하느라 깨여놓았던 예리한 돌이 피에 젖어있었다.

“로위, 어이쿠 로위, 정신차려유. 이게 무슨 변이래유? 어이쿠 사람 잡았네. 사람 잡았어.”

왕스푸는 혼겁한 나머지 넋 나간 사람마냥 소리질렀다. 

어씨는 간신히 눈을 떴다. 

어씨의 눈앞에는 혼겁해 소리지르는 왕스푸가 아니라 아들이 서있었다. 뭐라고 소리치는 듯 했지만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씨가 왜 엄마를 돌보지 않고 왔느냐고 물었지만 아들은 그냥 어씨의 몸을 흔들며 넉두리를 했다. 어씨는 듣기 싫어 눈을 감고 말았다. 몸이 세차게 흔들렸다. 어딘가 둥둥 떠가는 듯 싶었다. 자동차 엔진소리가 들렸다. 어씨는 다시 아들을 찾았다. 아들이 언제 차를 사서 자기가 이렇게 아들 차에 앉았을가 생각했다. 몸이 또 들추어졌다. 누군가 어씨의 입을 막았다. 어씨가 뿌리치려 해도 막무가내로 어씨의 입을 틀어막았다. 무언가 페부로 밀려들어오면서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예전에 얼음과자를 먹고 오한으로 떨어본 적이 있었는데 감각이 어쩌면 그때와 똑같았다. 몸이 추워지자 갑자기 마누라의 품이 생각났다. 그래, 오늘 저녁에는 마누라와 목욕을 해야지. 따스한 물에 이 먼지투성이 몸을 깨끗이 씻고 마누라를 안고 자야지. 

어씨의 몸이 또다시 둥둥 떠가고 있었다. 멀리에서 마누라가 웃고 있었고 그 뒤로 아들이 달려왔는데 아들 옆에 꿈에서 보았던 며느리가 함께 웃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어씨가 오매불망 그리던 아빠트가 덩실하게 솟아있었고 아빠트 밑에는 번쩍이는 하얀 승용차가 세워져있었다.

“이봅소. 빨리 옵소. 새집들이 하지 않겠슴두?”

“아버지 빨리 오쇼. 새 차에 앉아 들놀이 가기쇼.”

어씨는 손을 뻗어 마누라와 아들 그리고 며느리의 손을 잡으려 했으나 되려 그들은 점점 멀리 가버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서서히 어씨의 눈앞에서 사라져갔다. 

“아들, 니눔한테 미장칼을 물려주려 했었는데…”

어씨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맥없이 손을 떨어뜨렸다.

어씨의 눈에는 인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씨는 자신의 몸이 점점 차거워져가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혼곤히 깊은 잠에 빠져들어갔다…

출처:<장백산>2017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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