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실이는 된 방망이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다. 뭐가먼지 뻥뻥 하여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다. 자기를 원쑤로 여기고 있을 서장술이가 편지를 보내 온 것이였다, 한쪽 모서리에 장미가 그려져 있는 편지, 그속에 한쪽 모서리가 불에 그슬려 타버린 사진 한장이 감싸여 있었다. 그 사진을 본 순간부터 봉실이는 제정신이 아니였다. 그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 우선 어머니를 찾아가서 사진속의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확인해야겠다는 급급한 마음에 무작정 버스에 올랐다. 몇시간을 달려 산촌행버스는 산중턱에서 정거했다. 버스에서 내려 산아래 마을을 내려다 보니 정갈하게 지은 집들 사이사이에 찌그러진 낡은 초가집 한채가 눈에 박혀왔다. 지붕위에 까지 기여오른 호박넝쿨에 덮혀버린 흙무지 같은 집, 가난의 팔자를 타고 난 어머니는 재가를 가서도 장생무병은 해도 몸을 두른 가난의 사슬만은 여직 풀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풀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사슬이 상놈들에게 하사한 하느님의 은덕으로 여기고 생의 고질이 되여버린 것 같다. 그 봐보같은 령감은 꼬리없는 소처럼 일하면서도 어머니한테 변변한 집 한채 남기지도 못하고 죽어버렸다.
어머니가 재가를 갈때 봉실이는 남동생과 함께 이붓 아버지한테로 딸려갔다. 그때 이붓 아버지에게도 자식 셋이나 있었다. 피섞음이 없는 애들이 이붓 형제를 뭇자 정이 이루어지기는 커녕 질투와 시기가 선행하면서 싸움만 잦아갔다. 이붓 아버지를 만나 어머니의 배가 남산만 해질 때 봉실이는 더는 참지 못하고 원래 살던 강려촌으로 뛰쳐왔다.
“나,혼자라도 생산대에서 일하며 여기서 살겠습구마!”
봉실이는 촌지부서기를 찾아가서 사정했다. 지서는 오래도록 측은하게 바라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지서는 모두들 가기 싫어하는 민공에 봉실이의 아버지를 설득시켜 중쏘변경의 길닦이에 보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돌을 캐다가 미발탄 남포폭발로하여 목숨을 잃었던것이다.
“어린 네가 어떻게 생산대 일을 하겠느냐. 그러지 말고 너를 공사농중에 보내줄 테니 거기가서 공부를 마저 하거라. 너의 학비는 촌에서 대주마.”
이렇게 되여 봉실이는 지서의 추천으로 공사농중의 숙사에서 자면서 공부를 계속하게 되였다….
봉실이는 버스에서 내리기 바쁘게 마을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멀리서 바라보니 집앞 채마밭속에 묻힌 회색물체가 움쭐움쭐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엄마-”
봉실이는 달려갔다. 곁에 가서 다시 한번 엄마라고 크게 불러서야 꼬부랑 할머니가 된 어머니는 호미를 든채 일어서서 소리나는 쪽에 얼굴을 돌려본다.
“이게 뉘기야? 니 무슨 일루 이렇게 오니?”
“엄마!”
봉실이는 달려가 꼬부랑 할머니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홀쭉한 얼굴에는 온통 주름살 뿐이다. 빠져서 성긴 머리는 검은 머리 한오리 섞이지 않은 백설이다.
자식이 6이나 되여도 곁에 하나도 없다. 돈을 번다고 모두 한국에 쓸어갔다. 손자 손녀들도 10여명이나 되여도 이젠 다 커서 뿔뿔이 제갈데로 가버렸다. 자식들중 셋은 이붓 아버지의 자식들이다. 그러니 어머니가 이렇게 혼자 팽개쳐 있어도 그쪽 이붓 형제들을 조금도 탓할 것이 없다. 봉실이는 자신이 불효의 죄를 지은 자식이라고 자책이 갔다. 그러나 그도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돈을 벌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래서 한국가서 6년이나 있다가 돌아왔다. 한국가서 일하면서 그는 여러번 어머니 한테 생활비를 부쳐주었다. 그래서 혼자있는 어머니에게 돈을 부칠때마다 다소 안심이 가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갔다와서 어머니를 보니 이젠 어머니가 저 세상으로 떠나야 할 역전에서 영별의 차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실이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젠 자기가 어머니를 지키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고집을 부리면서 시골을 떠나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시각 그런 어머니를 보니 머리가 더욱 빠개지는 것 같다. 엄마가 내 친엄마가 아니란다! 미친놈, 이건 허튼 소리일거야! 내가 잔혹하게 굴었으니까 지금 와서 보면 나는 그의 원쑤인거지. 그러니 꿍꿍이를 꾸며 나를 해치려 할수도 있지 않을가? 이건 사실이 아닐거야!
한쪽 모서리에 빨간 장미꽃이 그려져있는 편지지에 장술이가 썼다는 글발들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속에서 빼똘빼똘 움직이듯 하다.
…너를 찾아가기전에 나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구중천으로 올라가는 구롱처럼 보이는 흰구름이 뭉게뭉게 피여 있는 저 먼 하늘끝에 팔간 기와집이 상공(翔空)하듯 떠있었다. 그 집앞에 양복에 넥타이를 맨 미남자가 갓난 녀자애를 안고있는 한복차림의 한 녀인과 나란히 두둥실 떠서 나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갑짜기 땅,땅하는 총소리가 들리더니 강변모래불에 미남자가 쓰러졌다. 갓난 녀자애가 모래불에서 발버둥치고 녀인이 피못에 쓰러진 미남자를 부여잡고 소리도 못내고 흐느끼는데 강언덕 쑥대밭에서는 몇몇 무정한 남정네들이 미남자를 묻을 구뎅이를 파고있다…눈보라가 인다. 문풍지가 바람에 윙윙 애처로이 울부짓고 가마니를 편 구들위에서 갓난 녀자애가 자지러지게 울어댄다. 강아저씨가 몇몇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거적으로 녀인을 덮어 걸채에 담아 집을 나갔다. 한 녀인이 우는 갓난애를 안더니 눈보라속으로 사라진다.
“봉실아,가지마, 가지마!”
그렇게 꿈속에서 너를 부르다가 눈을 뜨면 온 일신이 땀에 흠뻑 젖군하였다….
봉실이의 눈앞에는 장술이가 보낸 편지지가 얼른거리며 한시도 떠날줄 모른다. 어머니를 마주하니 더욱 지꿎게 눈앞에서 얼른거린다. 가슴이 쿵쿵 방아질을 하는것 같다. 그런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먼저 왕청같은 소리를 입에서 뱉어낸다.
“엄마, 이젠 터밭이고 집이고 다 버리고 시내에 가서 살기오!”
“어째, 니 나를 또 감옥에 집어넣자고 그러니? 시내는 가기 싫다. 여기가 좋다. 먹을 걱정있니, 입을 걱정있니? 까지랑 오이서컨 저렇게 주렁주렁 달려두 먹을 사람이 없다. 시내에 가면 이렇게 흔하다니?”
채전을 둘러보니 고추랑 가지랑 가득 달렸다. 어머니는 해마다 고추가루며 말린 가지며 무우오가리 같은 부식물들을 가득 생산하여서는 시내에 있는 자식들이 오면 주군하였다. 몇년전에 상해에 있는 남동생이 어머니를 혼자 시골에 뭍혀두는것이 안되여서 상해로 모시고 갔다. 그런데 한달도 못되여 어머니는 다시 시골로 돌아왔다. 아들며느리가 다 출근하고 손자마저 학교로 간후에는 혼자 집을 지켜야 했다. 아무리 장식을 잘한 집인들 어머니에게는 호박넝쿨을 뒤집어 쓴 이 정든 시골집보다는 못하였다. 시골에는 터전밭이 있어 손놀림을 하며 달가워하는 일감이 있고 홀로 살아도 몇십년 정든 친구들과 몰려오는 고독을 달래는 화토놀이도 있다. 번화한 시내에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들 타민족말을 한마디도 모르는 어머니에게는 벙어리 손시늉으로 살아가는것이 옥살이였다.
봉실이는 어머니한테서 조막호미를 앗아들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아도 한세기전의 농막처럼 보이는데 집안을 보니 더욱 한심하다. 진흙을 이겨 서까래까지 감싸서 바른 천정이며 그리고 울퉁불퉁하게 바른 벽은 볼수록 눈이 감긴다.
“이걸 마셔.”
어머니는 랭장고에서 밥감주 한사발을 꺼내였다. 코크보다 더 시원하고 맛좋다. 오랜만에 밥감주를 마시니 똑마치 어머니의 온기가 온 몸에 전해오는것 같다. 상해에 있는 남동생이 어머니를 상해로 모시고 갈때 원래 있던 집을 팔아버렸다. 이 집은 어머니가 상해에서 돌아온후 남이 버린집을 대수 손질하여 살고 있는 집이였다. 집주인은 한국으로 돈벌러 갔는데 어머니는 집보다도 집주위의 터전이 욕심나서 돈 일푼 팔지 않고 여기에서 살고있었다.
그 옛날 논밭에 달려드는 물오리들을 쫓느라고 헌 바께쯔를 두드리며 밤을 새던 농막 같긴 해도 현대문명은 그래도 집안에 다분히 차려져 있었다. 채색텔레비며, 전화기며 랭장고며 없는것 없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비 창을 치는 그밤이 애절쿠려
….
어머니는 어느새 록음기를 틀어놓았다. 터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집에 들어오면 그옛날 남인수, 이난영, 고복수와 같은 가수들의 노래를 듣는것이 어머니에게는 빼놓을수 없는 즐거운 일과였다. 봉실이는 왕왕 울려나오는 노래소리를 낮게 해놓고 어머니와 마주 앉았다. 가슴이 쿵쿵 뛴다. 그는 봉투속에서 한쪽 모서리가 타버린 사진을 꺼내여 어머니에게 보이였다.
“엄마, 이 사진을 보오, 사진속의 사람들을 알만하오?”
어머니는 그 사진을 들고 보더니 갑자기 얼굴이 엄숙해졌다.
“이 사진이 어디에서 났니? “
“서장술이라는 사람이 보내 온게오.”
“장술이가? 쉬-.”
어머니는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더는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는 사람들이오?”
어머니는 머리를 끄덕였다.
“어떻게 아는 사람들인지 빨리 말해주오.”
“토개운동때 마을농회에서 총살해치운 지주다.”
“지주라구? 그럼 이 남자애는 아오? 나한테 이 사진을 보낸 그 장술이라는 사람이 아니오?”
어머니는 대답대신 머리를 끄덕였다. 너무나 심중한 모습이다.
“그럼 녀자품에 안겨있는 갓난애는 누구요?”
“누구겠니? 지주딸이지!”
“엄마, 혹시 이 애, 내가 아니오?”
“얘, 큰일 나겠다, 누가 들으면 어쩌자구?”
어머니는 황황해서 다시 한번 쉬-하며 손가락으로 입을 막는다.
“겁날 것 없소. 이젠 지주요 빈농이요 하며 성분을 따지지 않채이오. 그러니 아는대로 말해 보오. 양? 정말 이사람이 나쁜 지주여서 총살당했소?”
“난 잘 모른다. 그때 들을라니 연길에 무슨 협화에 다니며 공산당을 죽였다구 하더구나. 그래 총살당했지. 우리 보기에 그 사람은 총살 당해두 마음은 고와 보였다. 우리에게는 악하게 놀지 않았다… 마음이 고운 우리 집 주인이였지… , 내가 니 애비를 만나 얼마 안되였는데 남인수랑 이난영이랑 조선서 가목사에 순회공연인지 뭔지 하러왔다더구나. 그때 주인이 돈을 주며 구경을 가라하지 않겠니? 얼마나 좋던지, 그래 니 애비하구 함께 구경가서 남인수랑 이난영이란 노래하는걸 봤다. 얼마나 잘하던지. 지금 사람들이 하는 노래야 그게 어디 노래야? 목이 터지도록 줴치는 소래기지.”
“주인이란 누구요? 총살당했다는 이 사람?”
어머니는 대답대신 또 머리를 끄덕이였다. 부모님들이 머저리병(해방전에 류행되던 전염병)에 감염되여 모두 세상을 뜨자 어머니는 서인범(사진속의 미남자)네 집에 심부름이나 하는 일군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같은 처지의 머슴인 강석만이한테 시집을 갔다. 어머니의 결혼은 주인이 다 해주었는데 첫날옷이며 이불까지도 새것으로 지어주었다. 주인이 돈을 대주어 가목사에 온 남인수랑 이난영이랑 부르는 노래를 듣게 된것도 바로 그때였다.
“엄마, 이 사진속의 갓난애가 누구요?”
봉실이는 다잡아 물었다. 몇번을 물어서야 어머니는 실토정을 한다.
“이건 절대 다른 사람하고는 말말고 너만 알고 있어야 한다. “
그리고는 봉실이의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이건 너의 친 아버지고 이건 너의 친 어머니구 또 이건 너의 친오빠라고 알려주었다.
아, 이럴수가! 봉실이는 눈앞이 캄캄해 났다. 머리가 작탄에 산산 쪼각나는것 같다. 구호를 줴치듯하는 소래기가 귀막을 찢는것 같다.
20대안팎의 새파란 청년이 충성노래와 구호소리가 우렁찬 학생들앞에 끌려나와 무대우에 올랐다. 그러자 푸른 색 옷에 군모를 쓰고 혁띠로 허리를 질끈 두른 녀학생이 학생들속에서 룡수철에 튕기듯 벌떡 일어서더니 무대위로 달려나간다.
“…이 지주놈 새끼야! 지주성분을 속이구 무산계급혁명대오에 기여들어 혁명을 파괴하려고 사람들을 매수했지? 말해봐, 달마다 나한테 돈5원씩 준 리유가 뭐냐? 나를 유인해서 무산계급혁명을 파괴하자는 거였지! 혁명적군중여러분, 이놈은 지주성분을 속이구 혁명대오에 기여든 반혁명분자입니다. 반혁명분자 서장술이를 타도하자!”
“서장술이를 타도하자!”
이어 군중들속에서 따라부르는 구호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이놈아 꿇어앉아!”
녀학생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나서 금방 고깔모자를 만들어 가지고 무대로 올라오는 한 남학생의 손에서 그 꼬깔모자를 받아 서장술의 머리에 씌운다….
서장술이를 앞장서 투쟁하던 자기의 허상을 머리에 떠올려보던 봉실이는 갑자기 얼굴을 싸쥐고 헉헉 느끼며 오두막집을 달려나갔다.
2
구새목에 퍼더앉은 봉실이는 두손으로 얼굴을 싸고 두 어깨를 들먹인다. 어머니가 급히 쫓아 나와 딸의 어깨를 부여 잡는다..
“봉실아, 너를 안고 나올 때 니가 다 큰 다음에 사실대로 니한테 이야기 해주려고 했다. 그런데 니 애비가 연변에서 돈화현 소고라는곳에 이주민으로 와서 아예 너를 우리 딸로 호구에 올린거다. 그러면서 니한테 알려서는 절대 안된다고 하더라. 나도 니 애비가 어째 그렇게 말하는지 알만했다. 그래 니가 60이 다 된 지금까지도 말못하고 있은거다. 니는 내 배속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니가 내 친딸이 아니라고 생각 해 본 적은 한번도 없다. 니 이붓애비를 만나가지고 너를 혼자 집에서 내 보낸게 지금까지도 맘에 걸려있다, 나도 니가 이붓 애비한테 붙어살다간 공부도 못하고 그놈 애들한테 맞아죽을 것 같아 니가 나가겠다고 하니 내 보낸게다, 니 애비가 안가겠다는걸 대대에서 민공으로 보냈다가 죽었으니 대대에서 걷어주리라고 생각하고 니가 가겠다니 모른는척 가만 있은게다. 그래 보내놓구 지금까지 그때 그 일이 맘에 걸려있다. ”
“엄마!”
봉실이는 엄마의 품속에 머리를 밖았다. 봉실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어머니의 바싹 마른 얼굴에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세상에 너네 형제처럼 불쌍한 형제는 없을게다. 에구,에-구!...”
“엄마, 나 몹쓸년이오! 아무래도 죄를 만나 천벌을 받아야 할것 같소!”
봉실이는 앙상한 어머니의 품에 머리를 파묻고 여전히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낀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봉실이는 울음을 그치고 품속에서 서장술이 보낸 편지를 꺼내든다. 눈물에 글자들이 서로 부딛치며 싸움을 벌이는것 같다. 그는 그런 글자들을 하나하나 띄여 놓으며 눈길을 밖아 다시 한번 읽어내려갔다.
…내가 너를 찾아 떠날때 나를 초중까지 공부시켜주면서 길러 준 먼 친척되는 할아버지가 강아저씨가 이주민으로 소고에 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약간한 려비를 주면서 찾지 못하면 되돌아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내가 강아저씨를 찾아 소고에 갔을 때 강아저씨는 이미 소고를 떠나고 없었다. 사람들과 물어보니 흑룡강성 벌리현의 강려촌이라는 곳으로 갔다는것이였다. 나의 호주머니는 되돌아올 차비밖에 없었다. 그래도 너를 찾아야 했다. 네가 머나먼 지구의 어느 골짜기에 숨어있다 해도 아니 바다깊숙히 묻혀있다 해도 기어이 너를 찾겠다는 결심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소고에서 경박호 산길을 따라 동경성까지 풋옥수수를 뜯어 먹으면서 이틀을 걸어갔다. 그렇게 동경성 역전에 이르니 역전 안팎에 수십명되는 류랑민들이 앉아있거나 누워있었다. 3년 련속 재해년때라 남방 사람들이 동북이 풍요한 곳이라고 무리를 지어 쓸어왔다. 모두들 퍼런 물감을 드린 자작천으로 지은 람루한 옷들을 입은 거지같은 사람들이 였는데 역전 안이나 역전 밖 그느지속에 되는대로 누워있었다. 나도 그 사람들속에 끼여들어 그늘진 역전벽곁에서 벽돌을 베고 기끈 잠을 자다가 밤에 북쪽으로 가는 짐차 바구니에 다른 류랑민들과 함께 무작정 올라탔다. 그렇게 간곳이 림구라는 곳이였고 거기에서 다시 도둑차를 타고 간곳이 벌리라고 하는 곳이였다. 사람들과 물어보니 강려촌은 왜긍이라는 곳에 있다는 것이였다. 나는 또 60여리를 걸어 왜긍진에 이르렀다.
하느님이 도왔는지 내가 처음으로 찾아 들어간 곳이 바로 네가 공부하고있는 강려공사 농중이였다. 농중 교문앞에는 한떼의 류랑민들이 림시라도 거처할 자리를 찾지못해 모여있었다. 나는 교문옆에 있는 수발실문을 열고 들어갔다. 발길을 들여 놓은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벽에 걸려있는 거울에 나타난 내 모습은 분명 짐차바구니의 서탄재를 뒤집어 쓴 거지상이였다.
“这里是学校,你去找公社民政把。”(여기는 학교입니다. 공사(향정부)민정을 찾아가십시요.)
선생같아보이는 사람이 나를 남방에서 굴러 온 류랑민으로 보고 하는 축객령이 였다.
“선생님, 전 지금 며칠이나 굶었습니다. “
“아니, 조선족이구만! “
그 선생님은 류랑민들속에 나같은 조선족이 끼여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 모양이였다. 나는 그 선생에게 연변은 량식이 너무 박하여 량식이 풍족한 흑룡강성으로 왔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림시라도 일할 곳을 소개해 달라고 사정을 해보았다. 후에 알아보니 그 선생님은 성이 엄가라는 분이였는데 교장선생님이였다. 나를 불상하게 여긴 엄교장은 학교 돼지우리를 짓는 일을 하라고 하였다. 마침 여름방학이여서 학교는 텅 비여 있었는데 돼지 우리를 짓는 곳에만 몇몇 선생들과 남학생몇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천복이였을가, 그날 일이 끝나고 일하던 선생들과 학생들이 모두 집에 돌아간 후 학교숙사식당에는 너와 나 그리고 농공 이렇게 셋이서 함께 저녁을 먹게 되였다.
“동무는 어째 집에 돌아안가오?”
“전 여기서 삽니다.”
그때 너는 내가 묻는 말에 간단히 대답을 하고 나서 옥수수떡 (窝窝头)하나와 죽 한사발 그리고 짠지 한접시를 앞에 놓고 머리를 수그리고 먹고 있었다. 그 어려운 시기에 농중(农中学校)은 그래도 굶주림을 달래는 조건좋은 곳이였다. 학교에서는 밭도 적지 않게 다루고 있었는데 국가에 바치는 징구량(征购粮)임무가 없었다, 단지 공사의 지배를 받으며 뒤문거래로 권력자들한테 량식을 남 몰래 조금씩 가져다 줄 뿐 학교의 수입을 놓고보면 그래도 운영자금의 주요한 래원이였고 재해년에 교원들과 주숙 학생들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식량기지였다.
그날저녁 나는 저녁을 같이한 학교의 농공(农工—그때 학교에는 전문 농사일을 돌보는 사람이 있었다.)과 한 숙사에서 자면서 너에 대하여 상세한 것을 듣게 되였다. 아버지가 내가 찾으려던 강아저씨였고 중쏘변경민공에 나갔다가 불발탄남포가 폭발하는 바람에 세상을 떠났다는것이였다. 그리고 너는 어머니를 따라 이붓 아버지한테 얹혀 살다가 거기에서 뛰쳐나와 강려 대대의 보살핌으로 농중에 다니게 되였으나 강려대대도 해마다 훙년이여서 실제상 농중에서 너의 학비와 생활부담을 해결해 주고있다는 것이였다. 그때 너는 정말 어렵게 공부를 하면서 외롭게 살아가는 고아였다. 그날 나는 자리에 누워 한잠도 자지 못하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눈을 좀 붙혔다. 나는 네가 내동생이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절때 네가 이곳으로 어떻게 오게 되였고 내 동생이라는것을 밝힐수 없었다. 그것은 내성분이 지주였기 때문이였다. 나는 너를 찾게 된것을 하늘이 내려준 복과 운명으로 생각하면서 열심히 일을하였다. 그덕에 나는 농중에서 일하게 되였는데 농중에서는 나를 정식으로 농공으로 받아들이게 되였다. 그리고 그때 상급정부로부터 류랑민들을 당지에서 해결해주라는 지시가 있었는데 그 바람에 나도 그곳의 호구를 가지게 되였다. 물론 나는 호구에 성분을 빈농으로 올렸다. 그때로부터 우리 사이는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나는 남몰래 학교에서 받는 월급에서 거의 달마다 너에게 생활비로 돈 5원을 주었다. 그렇게 아마 일년이나 지났을가. 그날은 추석날이였다. 내가 너를 찾아 숙사에 가니 다른 애들은 모두 제집으로 추석쇠러 갔는데 너만 외로이 숙사에 남아있었다.
“이걸 먹어.”
나는 상점에서 사온 월병을 너한테 내밀었다. 너는 말없이 받았다. 그리고 한입 뚝 떼여 입에 물었다. 그때 나는 너의 눈에 넘치도록 가득찬 눈물을 보았다.
“봉실아 빨리 먹어,또있다.”
“오빠!”
너는 갑자기 내품에 머리를 파묻었다. 그리고 두 어깨를 들먹이였다. 나는 너를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봉실아, 봉실아! 나의 눈에서 참고참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러자 너는 내 허리를 으스러지게 끌어않았다.
“오빠, 난 오빠와 한집에서 영원히 이렇게 살고파!”
그 소리를 듣고 나는 급기야 너를 품에서 밀어내였다. .
“자, 이걸받아.”
나는 돈 5원을 너에게 주었다. 그런데 너는 내가 주는 돈을 받아들고 한참이나 보더니 뜻박의 문제를 제기하는것이였다.
“오빠, 우리 이 돈을 우리 보다 더 어려운 오보호 장아바이네 집에 갔다 드리자요. 장아바이네는 돈이 없어 전통편도 사 잡숩지 못한대요.”
그때 나는 너의 의견을 듣고 잠시 어리뻥뻥 해졌다. 그때 그렇게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뢰봉을 따라배우는 운동은 거세차게 일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안된다고 딱 잡아뗄수 있었겠니?
“장아바이네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 한번 가서 본후 결정을 짓자.”
“그럼 같이 가볼가요?”
그래서 나는 너와 함께 장아바이네 집에 갔었지. 우리가 찾아갔을 때 장아바이는 없고 할머니 혼자 뿐이였지. 우리가 들어 온 것을 본 할머니는 우리를 가까운 이웃 사람들로 보았는지 품에 꼭 안고 있던 강아지만한 돼지새끼를 쓰다듬고 있었지.
“이게 우리 아들입꾸마.”
우리 아들이라니? 내가 눈이 둥그래서 할머니를 보는데 네가 낮은 소리로 귀뜸해 주었다. 치매증이 있어 로망을 쓴다고. 그제야 집안을 둘러보니 얼마나 어지럽든지 그래서 너는 걸레로 닦고 나는 비자루로 바닥을 쓸었다. 우리가 집안을 깨끝이 청소를 하고있을 때 장아바이가 돼지 풀을 뜯어가지고 어질어질 집안에 들어섰다.
“아니 모두들 바쁘겠는데 이렇게 와서 도와주니 감사하오.”
로인은 먼저 우리를 보고 나서 로친앞에 다가갔다.
“또 도투새끼를 안고있소? 그거라도 하나 길러 전통편이라도 사먹을가 했더니 나만 없으면 이렇게 종일 안고 있재이오?”
말을 하고나서 로인은 로친의 품에서 돼지새끼를 앗아 밖에 돼지우리에 가져다 넣는 것이였다. 자식내를 못하여도 화목하게 살아오다 로년에 어렵게 보내는 늙은이들을 보니 나는 자연히 돕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달마다 18원씩받는 월급에서 3원을 떼여 장아바이네를 주었다. 돈 3원을 드릴때마다 너무 반가워 눈물이 글썽해 하던 그때 장아바이가 지금도 눈앞에 보는듯 선하다. 그런데 너는 그때부터 내가 주는 돈을 받지 않았다. 내가 장아바이네를 도와주는 일은 순식간에 널리 소문이 퍼졌고 그로하여 나는 뢰봉학습적극분자로 되였고 공사로부터 상장까지 타기도 했다. 그리고 류랑민의 처지에서도 결혼을 하게 되였고 류랑민들을 당지에서 안착시켜주라는 상급부문의 지시에 의하여 나도 새 호구를 얻게 되였고 성분도 빈농으로 되였던것이다.
그때 나는 네가 내 친동생이라는것을 너에게 말하려고 했다. 시원히 털어놓고 네가 나의 결혼으로 해서 품고있던 오해도 풀어주고 싶었다. 결혼하는 날 그렇게도 너의 축복을 받고 싶었는데 네가 없으니까 마음이 얼마나 서글프던지. 그렇다고 해서 너에게 우리 가정의 지난 날을 말할 수도 없었다 말하면 너는 너의 어머니를 찾아가서 확인하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너와 나의 성분이 어떻게 되겠느냐? 나는 이 일을 래세에 가서나 밝힐 일이라고 여길 수 밖에 없었다. 너만 별일없이 무사히 보낸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너를 찾은 것만 해도 그때 나는 얼마나 기뻣던지,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숨길 수없이 밝혀졌다. 사교대가 들어와서 계급성분을 철저히 조사해 냈고 뒤이어 일어난 문화운동이 나를 계급이색분자로 진압했지….
편지를 읽던 봉순이는 더는 내려읽지 못하고 또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엉엉 울었다.
“에그, 불쌍두 한게!”
80세를 넘긴 어머니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봉실이의 귀에는 또 귀청을 찢는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下定决心,不怕牺牲,排除万难,争取胜利…
노래소리에 이어 푸른 옷에 군모를 쓰고 혁띠로 허리를 질끈 두른 홍위병 녀자애가
고깔을 쓴 20대의 청년에게 손가락질을 하고있다. 그 청년의 코앞에서는 족보들이며 하락서며 성경책이며 사주팔자를 보는 책들이며 지어 쉐익스피어의 “햄리트”며 모파쌍,,체호브와 같은 세계유명작가들의 작품들이 훨훨 불에 타고있었다. 홍위병녀자애는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활활 타는 불무지에서 사진 한장을 쥐어들어 대중석에 내흔들었다.
“혁명적빈하중농여러분, 이 사진은 이놈이 달마다 돈 5원을 주면서 저를 매수하려고 할때 저에게 보여준 사진입니다. 그때 이놈은 사진속의 이 남자는 자기의 외삼촌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요. 사진속의 이 녀인은 손목에 손목시계까지 차고있습니다. 그리고 사진속의 이 남자애를 보십시요. 5섯살도 된 것같지 않은데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고있습니다. 그리고 구두까지 신고있지 않습니까! 외삼촌이 이렇게 잘살았으니 이놈의 가정도 이만 못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교대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이놈은 대 지주가정의 자녀로서 무산계급혁명을 파괴할 목적으로 자기의 지주성분을 속이고 혁명적 빈하중농 혁명대오에 기여들어 온 계급이색분자입니다. 혁명적군중들이 보는 앞에서 이런 사진은 온갖 잡귀신책들과 함께 깨끗이 불에 태워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군중석에서 한사람이 소리를 지른다.
“그 사진은 태워버릴게 아니라 지주 성분을 속이고 혁명대오에 기여든 죄증자료요. 그러니 그건 불사르지 마오!”
“아, 옳습니다. 그럼 이 사진은 이놈의 죄증으로 보관해 둡시다.”
봉실이는 불속에 던졌던 사진을 다시 급히 찾아들었다.….
봉실이는 다시 편지를 보았다.
…문화운동이 끝나서 내가 제일 먼저 찾은것은 이 사진이였다. 비록 아버지가 총살을 당하고 어니가 독감으로 세상을 떠났어도 자식인 우리는 부모들의 얼굴만은 기억해야 할것 아니냐? 그리고 우리 오누이도 어린 시절의 우리의 얼굴을 보면서 기념으로 남겨야 하지 않겠니?....
봉실이의 머리에는 또 홍위병완장을 두른 자기와 장술이의 허상이 떠오른다.
“봉실아, 나를 어떻게 투쟁해도 좋다, 이 사진만은 제발 뺏지 말아다오! 이렇게 꿇어앉아 빌고빈다!”….
봉실이는 편지를 보다말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편지뒤끝에 적혀있는 전화번호에 대고 전화를 걸었다. 장술의 처가 받았다. 장술이가 결혼할 때 봉실이가 질투하여 밉게 보던 녀인이다. 녀인은 봉실에게 장술이가 혼미상태에서 지금 봉실이 이름만 부르고있다는 것이였다.
“엄마, 나 가야해.”
“뭐라니? 당금 저녁을 해 먹어야 할텐데 가겠다구?”
“오빠가 지금 앓고 있소. 나 가겠소.”
어머니는 더 만류할수 없었다. 봉실이는 부산을 떨면서 금방왔던 길에 다시 돌아섰다. 어머니는 뒤허리에 손을 잡고 허리를 겨우 펴고 뒤산중턱길을 오르는 딸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파뿌리같은 흰머리가 바람에 흩날린다. 갑자기 지금껏 길러준 딸이 영영 곁을 떠나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서글퍼졌다.
“에그. 에그- 불쌍한게-….”
3
봉실이가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면서 벌리현병원에 찾아갔을 때 장술이는 입원실침대에서 조용히 운명을 하고 있었다. 입술은 소리없이 약간씩 아래위로 움직이는데 눈은 감지 못한채 누군가를 뚫어질듯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오빠!”
봉실이는 쓸어질듯 장술이의 몸을 부여잡았다. 그때 장술이의 눈에 눈물이 어리더니 귀밑으로 방울져 흘러내렸다. 그런데 그때 겨우 들어 봉실이의 머리위에 얹었던 손이 맥없이 미끌어져 내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좌우로 움직이며 심장박동을 알려주던 검측기의 파란 불점이 멈춰버렸다.
장술이의 골회는 강려촌 더걱지언덕기슭에 자그마한 흙무지로 되여 묻혀졌다. 봉실이는 오빠의 장려까지 치르고 집에 돌아갔다. 그런데 그후 들려오는 소식은 비참했다. 돌아가서 얼마 안되여 머리가 하얀 로파로 폴싹 늙어버렸는데 게다가 치매까지 와서 두엄무지나 흙무지같은 것을 보면 아무꽃이나 되는대로 뜯어서 장식해 놓는다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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