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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첫 장면은 기차안, 한 소년이 무릎우에 트렁크를 안고 어디론가 향하면서 시작되는데 숨겨진 속내를 알수 없는 덤덤하고 무표정한 소년의 얼굴이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는 참담할 정도로 아프게 기억되고만다.
영화속 4남매의 처절한 비극이 사람들의 담백하고 반복된 일상속에 아무도 모른채 묻혀지는걸 목격하면서 내가 사는 세상이 일순간 다르게 보였다. 한편의 영화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충격의 의미를 바꿔버리는 경험이였다.
그리고 오늘의 책, 《걷는듯 천천히》는 바로 그 영화를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이 쓴 에세이집이다.
이 책을 읽게 된 리유는 그의 영화에 대한 그의 생각을 좀더 깊이 있게 알고싶어서였다.
그리고 궁금했다.
이토록 슬픈 이야기에 슬픔을 다 떼여버리고 세밀하고 절제된 장면들만 남겨 장면들사이에 비여있는 감정들을 관객들의 감정들로 스스로 채우게 만드는 이 멋진 감독과 그의 작품이 그토록 궁금했다.
이 에세이는 매우 쉽다.
그리고 군데군데 비여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책 이름처럼 “걷는듯 천천히” 그의 문장을 쫓다보면 비여있는 문장의 행간에서 잔잔한 여운을 느낄수 있었다.
그리고 깨닫게 되였다.
그의 영화에 담긴 장면들의 디테일이 그의 일상에서의 소소한 발견과 깨달음에서 비롯되였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싶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의 말처럼 그의 책은 큰 울림을 남겨주고있었다.
책에 담긴 이야기들중 가장 좋았던 이야기는 아무래도 “자가용” 이야기랬다.
“어떤 가정에든 다른 집과는 구별되는 그 집만의 약속이나 습관이 있기마련이다 우리 가족만의 남다른 가풍은 사진을 찍는 방법이였다. 고레에다 집안에서는 옛날부터 밖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남의 차앞에서 찍는다고 정해져있었다.”
이 책은 담담하게 배우와 영화를 대하는 그의 생각과 신념과 그런 그를 만든 어릴적 이야기들이 잔잔하고 짧은 글로 이어져있다. 신문에 게제하거나 잡지에 실었던 글을 모았지만 어느 글에서나 고레에다 그다운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생각과 소신도 뚜렷했고 편안하게 넘기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무겁지 않은 책, 고레에다감독 팬이라면 더욱 그를 좋아하게 될만한 책, 제목마저 그다운 《걷는듯 천천히》…
책을 다 읽고나서 이 제목이 정말 그에 맞다는 생각이 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이 책은 의미를 강박적으로 찾는 세상속에서 숨통을 틔워주는 작고 느린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자신이 목욕할 때 아이스크림을 먹는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어린 시절에는 어떤 풍경속에서 살았는지 같은 소소한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영화에서 죽음과 그 이후를 다루는것에 대한 문제, 함께 영화를 만들어가는 배우들, 방송과 영화의 륜리, 자칫 두서없을것 같은 다양한 주제가 한책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리유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와 꼭 닮은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 덕이다.
일상속 “쉼표”를 찾고싶은 날, 이 에세이집을 꺼내여 읽으면 될것 같다.
연변일보 201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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