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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가 김대현씨 배낭메고 강따라 계곡따라 15년
김철호 기자
“수석엔 산이 있고 호수가 있으며 졸졸 흐르는 식개천과 사품치며 쏟아지는 폭포가 있지요!”
수석(寿石)에 정이 들어 애석(愛石)생활을 즐긴지도 어언 15년세월, 지난 15년동안 초라한 행각으로 강따라 계곡따라 다닌 길 얼마인지 모른다는 김대현씨(연변두만강수석학회 고문)는 수석과 정을 나누면서 날이 갈수록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에 감탄하며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게 된다고 한다. 이제 강물이 풀렸으니 올해에도 부지런히 탐석해야겠다면서 며칠전 두만강탐석길에서 주었다는 돌 하나를 내보이였다. 보자마마자 “이건 <물개>군요!” 했더니 “그렇지요!”하고 미소를 떨군다.
한손우에 얹을만큼의 마춤한 오석인데 심통하게도 앞부분에 “눈자리”가 두 개 패여있고 “코구멍”까지 있었다. 더욱 묘한건 다른 석질로 된 “입”이였다. 온 몸이 몽땅 까마반지르한 오석인데 어떻게 되어 주둥이에만 골라넣은듯 누른색 돌이 박혔을가. 볼수록 신기하기만 했다.
지난 토요일(4월 1일), 두만강수석회 동료 6명은 올해의 첫 탐석에 나섰다. 도문에서 10리쯤 내려가면 신기촌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마을앞 두만강자갈밭이 탐석지였다. 쌀쌀한 날씨지만 첫 탐석에 나선 동료들은 금덩이 줏는 심정으로 자갈밭에 눈길을 박았다. 그러나 해종일 헤매도 별로 신통한것이 보이지 않았다.
불현듯 까만 “눈동자” 하나가 김대현씨를 쏘아보고있었다. 그건 틀림없는 “눈동자”였다. 무릎을 꿇고 손으로 살살 모래흙을 파헤쳤다. 다른 한 “눈동자”까지 드러났다. 가슴이 후둑후둑해났다. 긴장한 마음을 다잡으면서 쇠갈구리를 깊숙히 박은후 돌을 흙속에서 후딱 빼냈다. 강아지새끼처럼 귀여운 돌이였다. 재빨리 두만강물에 헹구었다. 깨끗이 씻긴 돌은 찬란한 오색인데 얼핏 보기에도 틀림없는 “물개”였다.
“돌줏기가 그래서 재밌다는겁니다. 면바로 좋은 돌 하나 주으면 둥둥 뜨는 기분이죠. 보십시오. 이 ‘눈’, ‘코’, ‘입’이 얼마나 묘합니까. 이 돌은 우리 집에서 두 번째로 좋은 돌입니다.”
“그럼 첫 번째 돌은요?”
시렁에 얹힌 까마반지르한 돌 하나를 가리킨다. 주은지 꽤 오래지만 아직 이름을 짓지 못하고있다고 하는 그 돌 역시 오석이였다. 빈틈없이 잘 수마된 돌은 단순하게 보이는것 같지만 굴곡이 있고 평범한것 같지만 신비한 운치가 배여있었다.
“1989년, 한국나들이를 하고 돌아온후부터 탐석에 흥취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사람들의 수석생활이 맘에 들어서였지요. 그러니 본격적으로 돌을 줏기 시작한것은 1990년도부터입니다. 마수걸이가 참 좋았던것 같아요. 이 돌은 시작해 얼마 안되여 주은 돌입니다. 보는 사람마다 군침을 흘립니다. 이만큼한 돌 아마 흔치 않을겁니다.”
김대현씨는 돌자랑을 자식자랑처럼 늘여놓았다.
그날은 김부식 등 한국 애석가들과 함께 탐석길에 올랐다고 한다. 가야하와 부르하통하 합수목이 탐석장이였다. 홍수뒤끝이라 강변은 스산하기 그지없었지만 탐석자에게 있어서는 더없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유별나게 눈길을 빼앗는 까만 점에 흡인되여 무릎을 꿇게 되었는데 살살 파헤치며 보니 오석이였다. 가쁜 들리는 까만 돌을 강물에 씻으며 보니 밑바닥이 칼로 벤 듯 반듯했다. “명석을 주었다!”
산천이 떠라라 소리를 지르니 저쪽으로부터 두 친구가 천방지축 달려왔다.
“연변에 이런 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정말 욕심나 죽겠네요.”
돌을 받아쥐고 이리 훑고 저리 훑던 한국 친구들도 감탄의 탄성을 감추지 못했다.
“일생 일석이라고들 합니다. 저는 이 돌 하나 있는걸로 자부심을 느낍니다. 어디 내놓아도 나무랄데 없는 명석이지요.”
김대현씨의 돌줏기이야기는 몇날며칠을 들어도 끝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가야하반의 만천성에서 50킬로그람되는 커다란 돌을 주은후 길까지 200여메터 나무숲을 헤치며 메여내온 이야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지금도 김대현씨 저택에 곰처럼 도사리고있었다. 다가가 들어보니 움직이지도 않았다. 이 무거운걸 어떻게 길까지 냈을가.
”수석에 미치면 그렇게 됩니다. 이건 ‘첩첩련봉’, 이건 ‘오리석’, 이건 ‘초모자’,
이건 ‘원숭이’...…”
김대현씨는 수장하고있는 수석들을 하나하나 내보이면서 설명해주었다. 보니 과연 “원숭이”는 원숭이요, “오리”는 오리였다.또 산 산세의 굴곡과 변화를 보여주는 “산”들은 꿈틀대는 듯 생동하고 우뚝우뚝하여 기백이 넘치는 것이 한폭의 산수화같기도 했다. 산이나 계곡, 강가에 가면 흔한 것이 돌이다. 그러나 수석은 평범한 돌이 아니다. 김대현씨의 말을 빈다면 “돌은 돌이로되 수천수만개의 돌중에 하나가 있으나마나한 희귀하기 그지없는 돌이다.” 때문에 수석은 인공으로는 도저히 창조할수 없는 아름움을 지니고 있다.
“수석엔 산이 있고 호수가 있으며 졸졸 흐르는 실개천과 사품치며 쏟아지는 폭포가 있습니다. 변화무쌍한 자연의 신비가 고스란히 담겨져있는 수석을 감상하느라면 마음이 취한 듯 황홀해지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한껏 느끼며 상상과 사색의 나래를 펼치게 됩니다. 집안에 앉아서도 나는 항상 자연속에서 살고있으며 평온한 마음으로 독서도 하고 글도 쓰고있습니다. 더 좋은건 자연에 대한 사랑이 생기고 고향과 이 세상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생긴다는것입니다.”
수석이 바로 이런것이기에 김대현씨는 15성상 휴식일이면 배낭을 등에 지고 탐석행을 게을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 멀리 두만강기슭과 가야하기슭에 발자취를 남기면서 수석을 찾아다닌 길 얼마였고 해란강, 구수하, 봉밀하, 부르하통하, 륙도하 기슭을 누비면서 다닌 길은 또 얼마였으랴. 어떤 때는 석우(石友)들과 함께 흥흥 코노래를 부르며 맑은 물 흐르는 계곡에서 록수청산에 한몸을 맡기고 탐석의 즐거움을 맛보느라면 과연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지는줄도 모른다고 한다. 공기좋고 경치좋은 대자연속에서 만사를 잊고 마음을 비운채 오로지 탐석에만 열중하는 그 즐거움이란 말로 이루다 표현할수 없노란다. 그러다가도 배가 고프면 가지고 간 도시락을 펼쳐놓고 술 한잔 넘기며 층암절벽에 뿌리 박고 너우너울 설레이는 소나무숲을 쳐다보노라면 기분이 한결 좋아지면서 도시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일소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멋진 돌 하나를 줏기까지 하면 그날은 명절이나 다를바 없어지는 것이다.
”돌 하나에서 그 아름다움과 그 어떤 의미를 찾아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것이야말로 ‘발견의 미학’이 아닐수 없습니다. 탐석은 다름 아닌 자연미의 발견이고 천연예술품의 발견입니다. 수석은 이처럼 인간과 자연을 가장 가까이 할수 있게 하고 자연과 이간을 적절히 조화시켜주는 대자연의 걸작이자 연분은 맺어주는 ‘오작교’이지요.”
그러나 연변에 수석을 사랑하고 탐석의 즐거움을 아는 이들이 너무 적어 섭섭하다는 것이 김대현씨의 마음이기도 했다. 이제 돌아오는 6월 연변박물관에서 연변두만강수석회 회원들의 작품을 위주로 한 수석전람회를 개최하게 되는데 그때에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들어 안계를 넓힐 것을 바라고있었다.
“이제 파묻혀있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찾는 대오가 형성되여 고향의 강과 계곡을 누빌것입니다. 저도 그속의 일원으로 죽을 때까지 아름다움을 찾아 헤메겠지요.”
[연변일보, 2006년 4월 7일 (B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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