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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수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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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봉서 혼자 울며 형님을 불러보았다
2010년 06월 15일 08시 56분  조회:5011  추천:44  작성자: 두만강수석회
( 평양기행) 모란봉 을미대서 혼자 울며 형님을 불러보았다 1

                                 한태익
      4월9일에 집떠나 19일까지 조선족문화예술연구소대표단일행으로  평양에 다녀왔다. 심양공항에서 조선 평양으로 가는 조선고려항공에 오르고서야 아무 사람이나 갈수 없는 조선 평양을 간다는게 실감났다.

  비행기가 도선공항서 리륙하여 한시간도 안되여 평양순안비행장에 도착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지만 국경을 사이두고 있다보니 에둘러 가야했다. 국경이란 사람들한테 무엇인가?평양가는 로정은 단동--평양행 국제열차편과 심양--평양 항공편뿐이였다. 그래서 갈 때는 항공편, 올 때는 기차편리용키로 하고  전날 연길에서 밤기차타고 십여시간넘어 달려 심양에 와서 에돌아가야했다.

   난 직장에 출근하면서 박봉에 허덕이다 보니 가게생활에 보탬을 하려고 안해의 짐군이 되거나 나 홀로  조선에 7차나 다녀왔다. 무산 회령 혜산 원산 함흥 등 많은곳을 다녀왔지만 평양만은 처음이였다. 나에게 있어서 평양은 남다르게 특별한곳이다. 60년전 내 친형님이 윤동주시인이 다니던 중국 룡정대성학원에서 공부하다  특별 추천받아 평양 김일성대학에 류학하여  공부하다 6.25가 나니 강건군관대학을 졸업하고 전쟁에 참군했다.대위로 산화했지만 아직까지 어느때 어디에서 어떻게 희생되였는지 모른다.

  나는 누구도 몰래 60년전인 1951년10월16에 조선전쟁 최전선에 형님이 쓴 편지를 가지고 갔다. 신바닥밑에 넣고가서 서캐를 훝는 세관검사도 무사히 통과했다.

  나는 형님의 편지를 가지고 평양팔경의 하나인 모란봉에 올라 을밀대를 찾았다. 을밀대서 내려다 보니 부벽루를 감돌아 흐르는 대동강은 푸른데 나처럼 말이 없었다. 저멀리 형님이 60년전에 다녔던 김일성대학청사가 한눈에 보인다.

  나는 누구도  몰래 형님이 전선에서 쓴 편지를 곱게 접어 대동강에 띄워보냈다. 그리고 가지고 간 석냥짜리 북경얼궈토우술을 병채로 강에 띄워보냈다.앞길이 창창했던 친형님을 이렇게라도 추모하고 싶어서였다.

<<형님! 한번도 보지 못하고 한장밖에 남지 않은 사진으로만 보시던 형님을 찾아 이 동생이 형님이 희생되여 60년만에 형님의 발자취가 남겨진 조선평양에 왔습니다.

형님! 형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동생이 속으로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나요?>>

  천임함사태로 삼천리금수강산은 너무나 긴장한 분위기다.다시는 동족이 싸우는 전쟁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동강푸른물에 손을 적시며 조선 어느땅 어느골짜기에 파묻혀있는지 모르는 친형님을 마음껏 소리쳐 부르지 못해도  낮게 불러보았다. 저도 몰래 내 양볼에서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누구를 원망하랴! 없어야 할 전쟁을 원망해야지! 내가 이러할진대 시골서 쌀을 팔아 공부시킨 아들이 조선최고대학에 갔다 전쟁에 나가 25년간 무소식이여서 날마다 눈물로 보내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술과 담배로 속탄 마음을 달래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어머니.아버지! 부모님 찾아오지 못한 평양에 이 막내 아들이 와서 부모대신 형님혼을 위로합니다.이제 어디서 외롭게 떠돌던 형님혼이 부모님찾아 갈거니 시름놓으세요!)

  나는  조선안내원이 따라붙는 일행들과  떨어져 혼자 아름다운 모란봉을 오르고 내렸다. 지금은 외로운 고혼이 된 형님의 허락이 없이 대동강에 띄워보낸 형님 편지의 원문을 한자도 고치지 않고 아름다운 코스모스화원에 올림을 존경하는 회원분들이 널리 양지하시길 바랍니다. 특히 그어떤 리념고취가 목적이 아니고 60년전 당시전쟁상황자체를 알자고 올린거고 이제 연재될 평양기행도 내가 본것을 쓰니 한국에 계시는 회원분들이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부록: 저와 31살 이상인 형님 한태건대위가 1951년  최전선에서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전문

         아버지께서 받아 보시오.

    아버지 오래동안 편지를 올리지 못하였습니다.그동안 소식을 몰라서 얼마나 기다렸으며 근심하고 계셨습니까?

살았는지죽었는지를 몰라서 !..........그러나 저는 몸건강이 우리의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싸움터에서 미제국주의 침략자들을 물리치며 소탕하는 마당에서 언제나 용감하게 영웅적으로 싸우고있습니다.

아버지! 미제국주의자들이 리승만 괴동동당들을 꾀하여 우리 조국 강토에 동족 전쟁의 내란을 도발한후 우리 주곡의 앞에는 어느때보다 무서운 위험이 닥쳐왔던것입니다.조국의 자유와 독립과 영예를 수호하는 전인민적 투쟁이 벌어진 그때에 저는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찾으며 침략자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작년 7월에 인민군대에 입대하여 전선에서 미제국주의자들과 그 압잡이들을 때려부시는 싸움터를 탄원하여 오늘에 이르까지 조국과  인민이 주는 전투임무를 영웅적으로 완수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저는 공화국과 김일성장군께서 주시는 모든 과업을 조국과 인민앞에서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1년이 넘는 동안 수십차 수백차에 걸친 가열한 전투에서 적들을 소탕하였으며 적들과 싸워 승리를 거듭하였습니다.

아버지! 나는 아직까지 지금과 같이 기쁨과 영광속에서 생활하여 보기는 처음입니다.또 지금같이 아무런 근심도 없고 태평스레 생활하기는 처음입니다.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물론 아버지는 체험하여 보지 못하시여 모르실것입니다. 싸움터처럼 안전한곳은 세상에 없는것입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근심도 아무런 고통도 없는곳입니다. 다만 일편단심 원쑤들과 싸워서 목숨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답게 청년답게 아니 또  조선사람답게 성스럽게 싸워 조국과 인민앞에 많은 공을 세워 보겠다는것뿐입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께서 언제나 가르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또 우리의  계급을 위하여 언제나 몸을 바쳐싸워야 한다는 >>말씀을 가슴속에 조각처럼 새겨 명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1 저는 옛적에 일하고 글배우던 태건이가 아닙니다.저는 원쑤들에게 대해서는 포악하고 무서운 사람이지만 동지들에게  대해서는 순진하고 인자한 사람이 되였습니다. 저는 옛적과 같이 마음이 약하고 수집음 청년이 아닙니다.

아버지! 저는 수많은 싸움에서 과감성과 결단성이 있는 콸콸한 청년이 되였습니다.어떠한 곤난과 난관이 있더라도 타개할수 있는 능숙한 수완가로 되였습니다.

얼마나 기쁘며 전도유망한 일입니까?

아! 정말 그동안 속을 많이 태웟지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라서 말입니다. 저도 그동안 집소식과 고향소식을 몰라서 답답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아버지! 저와 지금 함께 생할하고 있는 동무들 가운데는 작년 겨울 화룡진에서 훈련받던 동무들이 많습니다. 때문에 화룡지방과 천수촌 사정이야기를 대강 들었습니다.그러나 유감스럽게 우리 집에 가본 동무는 없으며 아버지를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그 동무들 가운데서 우리 마을을 많이 왔다 갔다했으며 심지어는 우리 집뜰악에서 휴식도 한 사람이 있는것을 여러가지로 물어보는 가운데서 알아냈습니다. 뜰악에서 휴식하는 동안 가작간옆에 소말뚝이 있고 가작간뒤에 도야지우리들이 있는것을 보았다고 하며 마을 한가운데 웃물이라 하는것을 보아 우리 집옆 우물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곳이 우리 집이라고 하니 그들은 놀라면서 그런줄 알았으면 들어가서 한턱 잘 먹을걸 잘못하였다고 하여 우리들은 한바탕 웃음이 벌어졌습니다.

 아버지! 그러나 제가 알고 싶은 소식들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천리타향에 아들을 보내고 눈물로 날을 보내시던 어머니께서 더욱히 펀지조차 못받으시는가운데서 백발이 되였으며 언제나 수심속에서 날을 보내실것입니다. 그리고 형님 오빠하고 기다리던 동생들도 많이 컷을것이고 변하였을 것입니다.

  아버지! 세월은 말할수 없이 빠른거 같습니다.제가 집에 가서 놀다가 다시 평양으로 떠난 다음 벌써 두번째 추수를 하시겠습니다. 작년도 농사와 금년도 농사를  잘 지으셨는지? 나의 머리속에는 그 농사하는 형편이 떠 오릅니다. 봄이면 밭갈고 씨뿌리며 여름이면 가꾸어 가을이면 추수하는 그 모든것든 정말 재미가 있는것입니다.

아버지! 재미있는 고향의 소식을 많이 전하여 주십시오.가정형편과 동생 사정들을 잘 설명해주십시요.

룡정에 계시는 3촌께서는 아직도 해란촌에 계시는지 그주소를 알려주십시요.

아버지! 저와 평양에 같이 있는 박승영동무는 전쟁이 시작된 다음에는 서로 만나지 못하였으며  박재수동무는 작년 9월 락동강전선에서 만나보았는데 포병소위로서 근무하고 있는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화룡진에 있는 김대학생 김주석동무는 평양 제1군관학교(간겅군관하교)에서 헤여진후 만나지 못하였습니다.이상 세동무의 소식을 아는대로 알려주십시요.

아버지!편지를 자주 올리겠으니 언제나 이 펀지주소대로 종종 편지를 올리기 바랍니다.

                             조선인민군우편함 244호 가의(ㄴ)

                                           태건 올림

                                   1951년 10월 16일

                                조선인민군군사우편 제33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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