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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층 1509 * 류대
2012년 04월 24일 14시 05분  조회:1967  추천:0  작성자: 동녘해
 

 
13층 1509
 
류대
 
어느 여름의 저녁무렵이였다. 내가 퇴근하려고 바삐 서두르고있는데 갑자기 왕천의 전화가 걸려왔다.
왕천은 웬 일로 매우 흥분해있었는데 마디마다 끝소리가 바르르 떨리는것이 힘에 부쳐 아래말을 겨우 이어대는것 같았다. 왕천은 끝내 집이 생겼다는것 같았다. 집, 똑같은 낱말이지만 시종 우리 젊은이들의 가슴을 지지눌러 숨도 바로 쉬지 못하게 하는것이다. 요즘에는 저 멀리 하늘가에 떠다니는 구름송이처럼 너무 멀어보이고 또 허무하게 느껴졌다.
“왕천, 네가 집이 생겼는데 나와 무슨 상관이냐?”
나의 심드렁한 태도에 왕천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새롭게 시작하기를 바라.”
어쩌면 천진하기까지 한 왕천의 말에 나는 픽- 하고 랭소를 지었다.
우리는 토요일 오전에 립수교곁에 있는 “인간세상”이라는 음식점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내가 왕천이를 만나기로 결심한것은 그가 2년전의 그 리별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하는가를 알고싶어서였다. 그때 아무 리유도 없이 그에게서 배신을 당했다는 그 억울하고 분하던 기분은 여전히 나의 가슴속에서 꿈틀대고있었다. 혹시 50살이나 되면 나와 왕천 사이에 있었던 잡다한 일들이 그저 한번 웃어넘길수 있는 에피소드로 변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절대 그럴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요즘도 그를 생각하기만 하면 가슴을 저며내는듯한 아픔을 느끼고있었다. 그 왕천이란 사람이 끝내 망망한 사람바다에서 파도에 밀려 내앞에 나타났던것이다. 나는 한시바삐 지금의 그를 만나보고싶었다. 그래야 나는 진정으로 왕천으로부터 해탈할수 있을것 같았다.
금요일 밤, 잠자리에 들기전에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잡지를 보고있는 남자친구에게 래일 특근해야 할것 같다고 말했다. 나 같은 인테리어설계사가 특근하는것은 밥 먹듯 흔한 일이였다. 많은 업주들이 쉬는 날을 리용해서 인테리어에 대해 토론하기를 좋아했던것이다. 남자친구는 휴식날 혼자서 거리를 거니는데 습관이 되여있었다. 그런 남자친구가 웬 일인지 유심하게 나의 얼굴을 뜯어보며 “진짜야?” 하고 의미있게 한마디 묻는것이였다. 놀랐다. 나의 어조는 전과 아무 차이점도 없었는데 그가 왜 그렇게 물을가? 나는 남자친구의 그 야릇한 물음에 어딘가 불안스러웠다. 나는 급히 몸에 걸쳤던 목욕수건을 벗어들고 물에 촉촉히 젖은 머리카락을 닦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말했다.
“특근하는데 무슨 진짜, 가짜가 있어요?”
남자친구는 신경질적으로 버럭버럭 책장을 번져대다가 입을 열었다.
“래일 만난다는 그 업주가 긍정적으로 보통이 아니겠지?”
그 말에 발끈해진 나는 목욕수건을 남자친구의 머리에 확 뿌려던지며 소리쳤다.
“그게 무슨 뜻이죠?”
남자친구는 덮어쓴 목욕수건을 빠끔히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그는 실오리 하나 걸치지 않은 풍만한 나의 몸뚱이를 삼킬듯이 바라보면서 실실 웃다가 말했다.
“괜히 해본 소린데 왜 흥분하구 그래?”
기분을 간지르는 끝소리에 이어 남자친구의 코방울이 벌름거려졌다. 그 사람은 분명 내 몸에서 풍겨나오는 향기를 맡고있는것 같았다.
 
나의 몸은 왕천의 따뜻하고 자상한 애무속에서 차츰 성숙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나의 몸을 더듬던 왕천의 손을 그려보노라면 여전히 짜릿짜릿한 전률을 느끼군 한다. 나는 희고 가느다란 그 손이 키가 1.82메터나 되는 왕천의 몸에 달릴것이 아니라 예쁘고 우아한 기질을 가진 어느 녀사의 몸에 달려야 한다고 늘 생각했었다. 왕천이 그 손으로 롱구뽈을 던지면 영낙없이 그물에 걸려 관람자들의 박수갈채를 자아냈다. 왕천이 그 손으로 멋지게 기타를 치면 한패의 남자애들이 몰려들어 노래를 불렀다. 왕천은 그 손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는 멋진 시를 지어 학교신문이나 석간신문의 문예부간에 발표했었는데 갈수록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되였다.
내가 왕천이를 처음 만나게 된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가냘픈 몸매의 나는 그때 금방 분명치 못한 미래를 두고 고민할 때였다. 앞날을 생각하면 마치도 자신이 뽀얀 운무속에 놓여진 기분이였고 그 운무속에 있는 수많은 소택지와 함정때문에 어디로 갔으면 좋을지 몰라 방황하고있는것 같았다. 나는 늘 내가 짙은 안개에 삼키우는 악몽을 꾸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왕천의 하얀 두손을 잡아야만 겨우 안개속을 헤집고 나올수 있었다. 그렇게 왕천은 나를 대학교의 마지막 2년을 용케 헤쳐갈수 있게 이끌어주었던것이다.
폭풍우가 유난히도 무섭게 쏟아지던 그후의 어느 오후, 왕천은 또 나를 이끌고 북경으로 가는 렬차에 올랐었다.
우리가 북경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릴 때, 비는 금방 그친 뒤였다. 비물에 말끔히 씻겨진 북경의 공기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콤하게 하는 향긋함마저 스며있는듯싶었다. 길가에 줄느런히 늘어선 프랑스오동나무잎에는 수정 같은 물방울들이 가랑가랑 맺혀있었다. 하늘을 치솟을듯한 고층건물들이 우리를 향해 마주왔는데 우리가 어디론가에 깊숙이 빠져드는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였다. 승용차들이 실북나들듯 오가면서 뽀얀 물안개를 날리고있었다. 장안거리를 걷고있노라니 마치도 꿈속을 거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왕천은 오른손으로 나의 어깨를 감아안고 왼손으로는 즐비하게 일어선 고층건물을 가리키며 감탄을 뽑았다. 아츠랗게 보이는 층집꼭대기는 원래 모양이 잘 보이지도 않았는데 마치 신기루를 보는듯하였다.
“우리 집도 저속에 있게 될거야.”
왕천이 엉뚱하게 말했다.
 
“인간세상”이라고 불리우는 그 음식점은 워낙 작은 가게에 지나지 않았는데 스낵바였다. 하기에 대부분 전철을 타기에 급급한 손님들이였다. 가게옆은 하수도가 잘 통하지 않아 구정물이 고여 퀴퀴한 냄새를 풍겼고 쓰다 버린 위생지나 일차성저가락 같은것들이 사처에 나뒹굴었다. 정말이지 배가 고파 참지 못할 형편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선뜻이 그 가게에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지 않을것이였다. 하지만 립수교지역이 날로 번화하게 발전됨에 따라 그 가게도 규모를 넓히게 되였고 그럴듯하게 장식하여 제법 큰 술집모양을 갖추게 되였다.
나는 한산한 홀에 잠간 앉아있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것 같아 여간 불편한게 아니였다. 사실 할 일이 없는 복무원들이 혼자 앉아있는 나를 향해 자주 흘끔거렸다. 시계를 보니 정각 10시였다.
내가 앉은 그 자리에서 머리를 들면 워낙 우리가 살던 아빠트를 볼수 있었다. 그 아빠트는 전에 이 지역에서 군계일학(鹤立鸡群) 같은 존재였었다. 그 아빠트의 1509호가 바로 우리의 아지트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미 그보다 더 높은 아빠트들에 포위되여 위용을 잃었고 늘 제대로 해볕도 보지 못하게 되였다. 아빠트들에서 반짝이는 창문은 어두운 거울을 방불케 했다. 어지러운 그 창문들마다에는 혼란스럽고 번다한 인간세상의 모습이 투영되여있었다.
 
우리가 집주인과 함께 집을 돌아볼 때 왕천은 어느새 엘레베터에 13층과 14층이 없이 12층 다음에 직접 15층이 표시된것을 발견했다. 왕천이 웃으면서 말했다.
“개발상이 미신을 믿었던 모양이예요.”
집주인이 말했다.
“개발상이 총명하다고 해야지요. 13층을 그대로 13층이라고 부르면 나라도 사지 않았을거예요.”
집주인은 등이 약간 휜 중년남자였다. 우리는 그를 리아저씨라고 불렀다. 리아저씨는 얼굴이 누르께하고 몸이 여위다 못해 금시 바람에 날려버릴것 같았다. 하여 나는 그가 엄중한 영양불량이나 심한 난치병이 있지 않을가고 생각하였다. 리아저씨는 딸애가 너무 말썽을 일으켜 얼마전에 큰 화병을 앓고 며칠전에 출원했다고 말하였다. 우리가 세를 맡으려고 하는 그 집은 리아저씨가 딸이 시집을 가면 주려고 준비해놓은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리리라고 부르는 그 딸은 근본 아버지의 감수에 대하여 달가와하지 않고 얼마전에 사천에서 온 한 남자와 함께 심수로 도망을 쳤다는것이였다. 리아저씨는 딸이 자기를 버리고 심수로 간것에 대해 별로 의견이 없었다. 하지만 딸을 꼬드긴 그 사천사람에 대해서는 격분하였다. 리아저씨는 짙은 하북방언으로 이렇게 말했다.
“참, 그 애가 어쩌면 외지사람하구 도망갈 생각을 다했을가?”
아버지를 배신하고 심수로 간 리리때문에 우리는 순조롭게 북경에서 집을 구할수 있었다. 집은 매우 정교하게 꾸며져있었다. 인테리어를 전공한 내가 보아도 흠집을 잡기 힘들었다. 아니, 내가 되려 그 집 장식에서 전업적인 계발을 받았다고 해야 할것이였다. 가구는 모두 새것이였다. 침대나 쏘파에 씌운 비닐마저 아직 걷어내지 않았었다. 옷장에서는 여전히 장식기름냄새가 간간이 풍겨나왔다. 바닥과 통한 베란다는 매우 널직했다. 왕천은 창턱을 짚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시공현장의 기중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리아저씨, 왜 흔들의자는 갖추지 않았나요?”
내가 웃으면서 왕천에게 한마디 했다.
“넌 리아저씨를 아버지로 착각하는게 아니냐?”
나는 그때 머리수건을 쓴채로 방안의 먼지를 털어내고있었다. 집안은 겉보기에 아주 깨끗한듯했지만 정작 손을 대니 곳곳이 먼지투성이였다. 왕천은 내가 열심히 걸레질하는것을 보고 말했다.
“대충 하고 그만둬라. 너 진짜 이 집을 제 집으로 착각하는게 아니냐? 힘을 남겼다가 후에 진짜 제 집을 만났을 때 써라.”
후에 나는 한 장식회사에서 설계원으로 일하게 되였다. 업주들과 인테리어에 대해 상의할 때마다 내 집을 장식하고있다고 착각할 때가 많았다. 하기에 나는 매번 설계를 할 때마다 갑절 신경을 써서 구석구석 따듯하고 안온한 느낌이 풍기게 했다. 이런 사업태도는 업주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고 많은 업주들이 직접 나를 찾아와 일을 맡겼다. 일들이 너무 밀려 인츰 시간을 내지 못할 때면 며칠씩이라도 기다렸다가 다시 찾아왔다. 기다리기에 급급한 일부 업주들은 나에게 돈봉투까지 건네면서 자기 일을 먼저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나의 수입은 점차 높아졌지만 퇴근은 날로 더 늦어졌다. 따라서 왕천은 나의 전문 보디가드나 다름없게 되였는데 매일 내가 퇴근할무렵이면 회사아래에 와서 기다렸다. 늦은 밤이면 거리는 그야말로 한산했는데 행인을 기다리는 불법택시들에서 가끔 담배불이 반짝일뿐이였다. 왕천은 길가의 감탕나무사이에 쪼크리고 앉아 나의 사무실창문을 외롭게 지켜보았다.
왕천은 취직이 잘되지 않았다. 그는 대학교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했기에 겉으로는 아주 박식하고 배포유한것 같았지만 직접 취직 일선에 나서서는 자기가 배운 전업이 그닥 소용이 없는 무용지물이라는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도 둬번 취직하였었지만 모두 시용기를 넘기지 못한채 용돈 몇백원을 받아들고 나와버렸다. 그는 다시 세번째 회사를 찾아볼 흥취를 잃고말았다. 아니, 실지는 용기를 잃었다고 해야 할것이였다. 어느날 밤, 왕천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너 생각컨대 내가 무용지물 같지?”
그때 왕천은 창문유리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짙어가는 밤장막을 감상하고있었다. 머리와 가까운 창문유리에는 왕천의 절망 어린 얼굴이 비껴있었다. 짙어가는 어둠은 왕천의 절망과 함께 당금 유리를 깨고 온 집안에 덮쳐들것만 같았다.
그날 나는 로임을 받았었다. 기본로임에 장려금을 합하니 꽤나 되였다. 거기에 보스가 또 일을 잘했다고 따로 500원을 얹어주었었다. 나는 그 돈을 고스란히 왕천의 손에 쥐여주면서 그가 입에 침이 마르게 나를 칭찬할것이라고 수판알을 튕겼다. 하지만 왕천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돈을 침대우에 훌 던져버렸다. 그 바람에 돈이 침대우에 되는대로 널렸는데 마치 누군가 마구 던진 꽃종이를 방불케 했다. 나는 얼굴에 가득 담았던 웃음을 거두고 왕천의 눈치를 살피면서 그를 위안했다.
“나는 네가 북경으로 온 목적이 단지 취직을 위한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왕천은 머리를 돌려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와락 당기며 품에 꼭 그러안아주는것이였다. 그렇게 한참동안 머리를 나의 어깨에 기대고있던 왕천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하다.”
이튿날아침, 내가 눈을 떠보니 그는 벌써 창가에 붙어서서 어슴푸레 밝아오는 동녘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있었다. 그는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듣고 인츰 머리를 돌리는것이였다. 벌겋게 충혈된 두눈으로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 순간 그의 얼굴에는 뭐라고 형용할수 없는 묘한 웃음이 가볍게 깔려있었다. 나는 오래동안 그의 그런 종잡을수 없는 웃음을 본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왕천이 뭔가를 충분히 생각해둔후 나를 놀리느라고 짓는 습관적인 웃음이였다. 그럴 때면 내가 어떻게 물어도 그는 그냥 모르쇠를 놓았다. 내가 그 표정때문에 불안해서 어쩔바를 모르다가 드디여 분통을 터쳐야 그는 짐짓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적당하게 둘러댈뿐이였다. 이것은 나와 왕천이 오랜 생활속에서 형성한 일종의 소통습관 같은것이였다. 어쩌면 그 습관이 다소 과도하다 할수 있었지만 그래도 왕천은 나중에 나에게 새로운 기쁨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이번에도 그는 내가 입을 열기전에 앞질러 말했다.
“여보, 나 책 한권을 쓸거야.”
우리는 그렇게 조용하면서도 편안하게 나날을 보냈다. 1509호에서 그는 나중에 요절하고야말 자기만의 꿈을 싹 틔우고있었던것이다.
집값은 사람들을 놀래우면서 올리뛰였다. 나는 그무렵에 업주들의 얼굴에서 매일 큰 리익이나 챙긴듯한 그런 행복감을 읽고있었다. 하지만 나는 되려 말할수 없는 처량함과 아픔을 느끼고있었다. 나는 “내 집 마련의 꿈”과 점점 더 멀어지고있었다. 나는 그 처량함과 아픔을 왕천에게 내비치지 않았다. 그때 그는 자기를 잊은듯한 경지에 처해있었다. 그의 눈확은 하루가 다르게 깊이 꺼져들어갔지만 두눈에서는 광기에 가까운 오기가 빛발치고있었다. 그가 두눈을 껌뻑거릴 때마다 나는 그의 눈까풀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는것만 같았다.
이른아침이면 그는 밤을 밝히며 컴퓨터 건반을 두드리던 그 손으로 나를 흔들어 깨웠다. 워낙 자애롭고 따스하던 그 손길은 급하고 지어 조폭하게 변했다. 그 미묘한 변화는 나에게 일종 새로운 느낌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몽롱하고 취한듯한 느낌속에서 한번 또 한번 고조에 들어갔다. 내가 출근할 때면 그는 달콤하게 꿈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어린애처럼 부담없이 편하게 누워있는 그를 살펴보면서 나는 꿀이라도 마신듯한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나는 허리를 굽혀 그에게 달콤한 키스를 해주었다. 그런 날이면 출근하는 내내 기분이 상쾌하였다.
나는 더 이상 “내 집 마련”에 큰 희망을 품지 않았다. 오직 왕천만 내곁에 있으면 모든것에 만족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린애 같은 왕천을 바라보면서 내가 책임지고 왕천이를 “키울것”이라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나는 늘 집세때문에 근심하였다. 이미 집세가 한배나 올랐던것이다. 다행히 우리가 살고있는 1509호는 여전히 우리가 들어올 때의 그 집세값을 유지하고있었지만 언젠가는 꼭 오르게 될것이였다. 만약 집세가 절반 오른다면 나와 왕천이가 쓸 생활비는 천원도 되지 않을것이였다. 매번 집세값을 주는 날이면 나는 숨이 한줌만해서 왕천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왕천은 그무렵에 리아저씨와 깊은 인연을 맺고있었다. 집세를 물 때가 딱히 아니더라도 왕천은 2, 3일에 한번씩 리아저씨를 찾아가 한담하였는데 마치 북경에서 친척을 만난듯한 기분까지 들게 했다.
왕천은 리아저씨를 찾아갈 때 늘 과일이나 보건식품을 사들고 갔다. 한번은 자아심리조절에 관한 도구서적까지 사가지고 간적이 있었다. 왕천은 리아저씨가 그 책을 읽으면 능히 딸이 사천남자와 함께 도망을 쳤다는 그 음영에서 벗어날수 있을것이라고 했다. 리아저씨도 왕천이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리아저씨는 왕천의 손에 파 한단을 들려주거나 마늘 몇쪼각을 들려보낼 때도 있었다. 또 어떤 때는 만두 한봉지 들고 오기도 했다. 왕천은 리아저씨네 집 일은 우리 집 일처럼 잘 알고있었다. 그러는 왕천이를 보면서 나는 리아저씨가 혹시 요즘 시내의 세집값이 놀랍게 오르고있다는 사실을 모르는것은 아닐가고 추측도 해보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리아저씨가 보내준 만두가 돌멩이처럼 생각되여 도무지 삼킬수 없었다.
그날 밤, 하늘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우뢰가 진동하면서 가끔 번개까지 쳤다. 그러다가 또 우박이 쏟아져 유리창을 때리기도 했다. 그때 왕천은 컴퓨터앞에 앉아 나를 미치게 하는 그 부드러운 손으로 자판을 두드려대고있었다. 나는 이불속에 누워서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꿈나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얼마 안되여 다급한 발걸음소리에 놀라 잠을 깨고말았다. 눈을 뜨고 사위를 살펴보니 왕천이 집안에서 불안한 기색을 띠고 왔다갔다하고있었는데 우리에 갇힌 성난 승냥이를 방불케 했다. 나는 불안한 눈길로 왕천을 바라보면서 글을 쓰다가 난국에 빠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갑자기 침대머리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베개밑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나는 두눈을 살풋이 감고 그가 어디에 전화를 거는가에 신경을 도사렸다. 전화가 통하자 리아저씨네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급해서인지 아주 높았는데 리아저씨가 병이 도져서 급히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것이였다. 나는 너무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왕천은 나를 흔들어 깨우면서 빨리 병원으로 가보자고 했다. 어딘가 을씨년스러운 느낌마저 드는 엘레베터안에서 나는 의아한 눈길로 왕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 어쩌면 리아저씨와 텔레파시가 통하는게 아니니? 혹시 네가 리아저씨가 밖에서 본 아들이라도 되는게 아니냐?”
내 말에 왕천은 신경질적으로 나를 쏘아보더니 성난듯이 한마디 했다.
“너 우리 엄마를 뭘로 보는거냐?”
나는 늘 왕천이와 리아저씨가 한집식구 같다고 생각하였는데 필경 내가 근심하던 일이 발생했다.
그 토요일의 이른아침, 나는 전과 다름없이 제시간에 눈을 떴다. 창밖은 금방 희붐히 밝아오고있었다. 나의 손은 습관적으로 오른쪽을 더듬었다. 응당 왕천의 가슴이 나의 손에 만져져야 했는데 손끝에는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나는 깜짝 놀라 자리를 차고 일어나 앉았다. 왕천의 이불은 포개여진채로 있었다. 컴퓨터앞에도 왕천은 없었다. 순간 나는 자신이 어딘가에 버려진 어린애와 같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머리속에 찾아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나는 엄습해오는 공포를 의식하며 다급히 왕천의 이름을 불렀다. 그때 자물쇠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를 깨울가 저어되는듯 아주 낮게 들렸다. 나는 머리칼이 곤두서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두눈은 움직이는 자물쇠쪽으로 쏠렸다. 출입문이 조용히 열리고 왕천이 발볌발볌 들어섰다. 나는 성난 사자마냥 소리쳤다.
“너 어디 갔던거야?”
왕천은 너무 놀라서 말까지 더듬었다.
“너… 너 잠이 깼니?”
왕천은 침대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두손에는 비닐봉지가 몇개 들려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뛰여내려가 왕천의 품에 안겨버렸다. 그 바람에 왕천은 비닐봉지를 든 두손을 높이 들고 어쩔바를 몰라했다.
“기다려, 내가 이 남새들을 랭장고에 넣고 올게.”
나는 여전히 왕천의 품에 안겨 떨어질념을 하지 않았다. 나의 가슴은 그때까지도 쿵쿵 높뛰고있었다. 나는 흥분을 누르지 못하고 그만 왕천의 옷을 와락 당겼다. 그 바람에 왕천은 손에 들고있던 비닐봉지를 떨어뜨렸다. 안에 있던 남새가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따스한 해살이 카텐을 뚫고 들어와 그우에 찍혀져있는 참죽이 살아있는듯 생기를 띨무렵에야 나는 다시 잠에서 깨여났다. 나는 침대머리에 두었던 머리핀을 찾아 긴 머리에 얹은후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 왕천의 볼에 가벼운 키스를 했다. 이어 나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날은 오랜만에 특근이 없는 날인지라 나는 왕천이를 위해 솜씨를 펴보려고 작심했다. 내가 출근한후 왕천은 혼자 집에 있으면서 늘 있는대로 대충 끼니를 에우다보니 얼굴이 홀쪽하게 되였다. 나는 그새 창작도 일종의 체력로동이라는것을 잊고 살았던것이다. 나는 어쩐지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것 같아 왕천에게 너무 미안했다.
왕천이 잠에서 깼을 때 나는 이미 84개의 물만두를 빚어놓고있었다. 왕천은 침대머리에 턱을 고이고 누워 매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앞치마를 두르고 서서 물만두를 빚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보, 날마다 이런 나날을 보낼수 있으면 좋겠지?”
“그래, 이제 네가 이름을 날려 큰 돈을 벌게 되면 난 출근하지 않을거야. 그때면 우린 날마다 이런 나날을 보낼수 있겠지.”
순간 왕천의 눈빛이 전에없이 밝아졌다.
“책이 출판되여 큰돈을 벌면 나는 먼저 너에게 큰집을 사줄거다. 넌 그 집에서 살면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거야. 그럼 나는 날마다 너를 볼수 있게 되는거지.”
그 말에 나는 약간 웃음기를 띠면서 익살스럽게 물었다.
“그렇게 날마다 바라보다가 어느날 내가 싫증이 나면 어떻게 하려구?”
왕천은 별말이 없이 담배 한가치를 꺼내여 불을 달았다. 삽시에 왕천은 뽀얀 담배연기속에 잠겨버렸다. 나는 태평스럽게 담배를 피우고있는 왕천이를 향해 소리쳤다.
“묻잖아? 못 들었어?”
왕천은 뜻밖에도 성이 나있었다.
“나 워낙은 너와 함께 아름다운 미래를 그려보자고 했거든. 헌데 그렇게 외길로 나가니?”
    나는 그러는 왕천이 너무 천진하게 느껴져 까르르 웃으면서 마지막 물만두를 마저 빚었다. 나는 일어나 사처에 뿌리워진 밀가루를 닦으면서 물었다.
“창작은 어떻게 돼가?”
“곧 끝나게 돼.”
왕천이는 그때까지도 성이 가시지 않은것 같았다.
익은 물만두를 금방 다 건졌는데 갑자기 초인종소리가 울렸다. 나와 왕천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우리는 북경에 아는 사람이 없는데 누가 주말 점심에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것일가? 속구구를 하면서 급히 문을 열어보니 뜻밖에도 리아저씨였다. 그의 손에는 락화생기름 한통이 들려있었다. 순간 나의 가슴속에서는 뭔가가 툭- 하고 떨어져내리는듯싶었다. 하지만 왕천은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 참 잘 오셨네요.”
말을 마친 왕천은 주방으로 들어가서 수저 한쌍을 더 내왔다. 리아저씨의 홀쪽한 얼굴에는 야릇한 웃음 한줄기가 어려있었다. 그 웃음이 억지스러워서인지 리아저씨의 얼굴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형용하기 어려운 험상궂은 모습을 연출하고있었다.
리아저씨는 열정적으로 맞아주는 왕천에게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있었다. 그는 마치 심문을 기다리는 범인마냥 쏘파끝에 쪼크리고 앉아 연신 손바닥을 비비고있었다. 리아저씨는 왕천이 앞에 가져다놓은 물만두를 보면서 오히려 고통스럽게 이마살을 찌프렸다. 리아저씨는 그새 또 많이 여윈것 같았다. 리아저씨는 내가 그를 위해 마련한 차물을 보더니 급히 몸을 일으켰다.
“자네들, 먼저 식사를 하게나. 난 잠간후에 다시 오겠네.”
나는 급히 리아저씨를 잡으면서 말했다.
“다 한집식구처럼 생각하면서 왜 이러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리아저씨의 표정에서 이번 걸음은 집세때문이라는것을 읽어낼수 있었다. 하기에 나는 더구나 리아저씨를 남겨 물만두를 권하면서 그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려고 마음 먹었다. 내가 하도 죽기내기로 잡아끄는통에 리아저씨는 도로 쏘파에 눌러앉았다. 리아저씨의 흐릿한 눈동자는 막연하게 천정에 설치된 무리등을 바라보고있었다. 나는 마치도 “자네들도 신혼살림에 쉽지 않을테지. 휴—” 하고 내쉬는 리아저씨의 한숨소리를 듣는것만 같았다. 나는 순간 코끝이 시큼해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나는 울먹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며칠 지나 왕천이 일자리를 찾으면 곧 생활이 나아질거예요.”
리아저씨는 떨리는 손을 호주머니에 집어넣더니 쪼그라든 담배 한가치를 꺼냈다. 나는 왕천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눈짓을 했다. 왕천은 인차 컴퓨터앞으로 다가가 자기의 담배를 가져다가 리아저씨에게 권하고는 불을 붙여드렸다. 리아저씨는 담배를 크게 한모금 빨았다.
“아저씨, 의사가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지 않던가요? 그런데 왜 또 피우기 시작했어요?”
리아저씨가 갑자기 담배연기에 사래가 들려 련속 기침을 해댔다. 그 바람에 밀랍 같던 얼굴이 불그레 달아올랐다. 리아저씨는 담배 한가치를 다 태운후 또 한가치를 꼬나물었다. 왕천이 리아저씨의 손에서 담배를 빼앗았다.
“안돼요, 더 피우면 안돼요.”
왕천의 목소리에는 친인에게만 할수 있는 강압적인 기분이 섞여있었다. 나는 그러는 왕천을 향해 두눈을 부릅떴다. 그러자 왕천이 나를 건너다보며 말했다.
“너 뭘 안다구 그래? 지난번에 의사가 말하기를 리아저씨가 계속 담배를 피우면 생명위험마저 감수해야 한댔어.”
리아저씨는 자신의 왜소한 몸뚱이를 들어 쏘파안쪽에 옮겨놓으며 입을 열었다.
“별것 있나. 난 이미 살만치 살았다니까.”
말을 마친 리아저씨의 눈에 이슬 몇방울이 맺혀 반짝이였다. 하지만 눈물은 금방 눈확을 벗어나자마자 얼기설기 맺혀진 주름에 스며들어버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화제가 이상하게 흐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리아저씨는 집세를 올릴 문제를 토론하러 온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찾아온 원인을 알고싶어서 리아저씨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저씨, 혹시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닌가요?”
리아저씨는 말없이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 리아저씨의 눈에는 로인들에게서만 볼수 있는 그런 쓸쓸함이 가득 담겨져있었다. 리아저씨는 이어 왕천이에게 머리를 돌리고 말했다.
“리리가 돌아왔네.”
리리는 아버지를 보러 온것이 아니라 더 이상 떠돌아다닐 형편이 안되여 돌아왔던것이다. 리리를 데리고 도망을 쳤던 그 남자는 심수에서 갑자기 무슨 기발한 구상을 했던지 운남 서려에 가서 보석을 수구하겠다고 떠났다 한다. 처음에 리리는 그 말을 듣고 그 남자보다도 더 기뻐했다는것이다. 애초에 리리는 그 남자의 머리속에서 흘러나오는 괴상한 부자꿈에 현혹되여 그 남자를 따라나섰던것이다. 리리도 서려의 “돌도박(赌石)”에 대하여 진작 소문을 들은적이 있었던것이다. 운수가 좋으면 돈 만원이 하루밤에 몇백만원으로 새끼를 칠수 있다고 했다. 하여 리리는 심수의 작은 방에 들어박혀 기나긴 기다림을 시작했다고 한다. 한달 또 한달, 하루 또 하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그 남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소식조차 없었다 한다. 그러던 어느날, 리리는 집주인으로부터 거리로 내쫓기게 되였던것이다.
여기까지 말한 리아저씨는 고통스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 남자가 분명 보석을 구매하러 운남으로 간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리리를 떼버리려고 거짓말을 한것이라는것이였다. 왕천은 리아저씨에게 종이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아저씨, 리리가 돌아온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 남자의 진면목을 하루빨리 아는게 하루라도 늦게 아는것보다 더 좋은거지요. 아니면 꼭 크게 상처를 받게 될것이니까요.”
리아저씨는 종이로 천천히 눈까풀이며 눈귀며 눈두덩이며 눈섭이며를 닦고 또 닦았다. 종이는 눈물에 젖어 한덩이로 되여버렸다. 리아저씨는 그 종이를 손바닥에 꽁꽁 움켜쥐고는 아무 말도 없이 멍하니 왕천이와 나를 바라보았다. 리아저씨의 흐릿하면서도 눈물에 젖은 두눈을 보면서 나는 말할수 없는 불안에 떨었다.
리아저씨는 힘들게 일어나 차탁을 지나서 둬걸음 걸어가 손에 움켜쥐였던 종이를 쓰레기통에 넣고는 후들후들 문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리아저씨의 손이 금빛의 문손잡이에 닿았다. 리아저씨는 길게 한숨을 몰아쉬더니 큰 결심이나 한듯 머리를 푹 떨구면서 말했다.
“미안하구려. 이달안에 집을 리리에게 내주어야겠네.”
그날 나는 점심을 먹은후 왕천과 함께 환락곡에 가서 즐겁게 보낸후 왕부정에 가서 가로등이 반짝이는 밤거리를 거닐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북경에서 사는 느낌을 향수하려고 마음 먹었던것이다. 나와 왕천은 사는게 힘들어 오래동안 북경의 밤거리를 거닐어보지 못했었다.
리아저씨의 불안한 목소리를 타고 내려진 축객령은 다시 우리와 북경이란 지구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하게 했다. 우리는 북경이라는 큰 바다에 떠있는 한방울의 기름에 지나지 않았던것이다.
물만두는 식어버리고 마늘은 맑은 식초에 푹 퍼져있었다. 집안에서는 사람을 토하게 하는 혼탁한 기운이 흐르고있었다. 나는 침대머리에 앉아 머리를 쳐들어 태양이 하얗게 변했다가 다시 담홍색으로 물들고있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안은 차츰 피빛으로 물들고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기중기는 웬 일인지 작업을 멈추고 각양각색의 자세를 취한채로 석양의 어둠속에 자취를 감춰가고있었다. 왕천은 술에 취한 사람처럼 침대에 쪼크리고 앉아 연신 중얼거리고있었다.
“씨팔, 내 집!”
멀리 보이는 거리에 가로등이 밝아서야 나는 마치 꿈속에서 깨여나기라도 한듯이 몸을 일으켜 전등을 켰다. 나는 차탁우에 놓여져있는 물만두를 주방으로 가져간후 간단히 설겆이를 했다. 그후 행주를 들고 나와 허리를 굽혀 차탁을 닦았다. 작은 물방울들이 차탁우에 올려놓은 유리를 적시고있었다. 물방울은 닦고닦아도 여전히 유리우에 맺혀있었다. 유리우의 물방울은 워낙 깨끗이 닦을수 없는 모양이였다. 나는 문뜩 행주질을 멈추고 막연하게 천정을 쳐다보았다. 눈앞이 흐려졌다. 눈물이 앞을 가리우는듯싶었다. 그때 왕천이 중얼거렸다.
“흥, 리리. 그 실팍한 몸뚱이를 거리에 내던져도 누가 한눈 팔지도 않을걸. 사진으로만 보아도 그는 십중팔구 시집을 가지 못할 물건이였지. 그 사천남자는 도대체 무슨 놈의 눈이란 말인가? 리리 같은 녀자를 데리고 도망을 다 치다니. 아마 약을 잘못 먹어도 단단히 잘못 먹었을거야.”
왕천이 리리를 욕질하고 저주하는 사이에 나는 방안을 깨끗이 청소하였다. 잠시 할 일이 없게 된 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가슴속 밑자락으로부터 갑자기 말 못할 서러움이 꾸역꾸역 솟아올랐다. 왕천의 입은 여전히 쉬지 않고 리리를 욕해대고있었다. 마치도 리리가 우리의 집을 빼앗기라도 한것처럼 말이다. 나는 왕천의 욕설이 어느때 가서야 끝날가고 생각해보았다. 그러다가 왕천이 나의 위안을 기다리고있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아통이 터졌다. 나는 침대머리에 놓여져있는 베개를 주어 왕천에게 던지며 소리쳤다.
“궁시렁거리지 말구 우리 이제 어디로 이사갈지나 생각해봐.”
갑자기 베개에 얻어맞은 왕천은 잠간 멍해있다가 해면베개를 주어 가슴에 대고는 낯선 사람을 바라보듯이 나를 뜯어보는것이였다. 한참후 왕천은 자신없이 이렇게 말했다.
“그러게. 인젠 우리 어디로 가야 하나?”
 
비가 내렸다. 서늘한 비줄기가 얼기설기 기승스럽게 퍼붓고있었는데 마치도 뽀얀 안개를 방불케 했다. 비줄기가 나의 시선을 가로막아 나는 더 이상 1509호실의 깜찍한 창문을 제대로 볼수 없었다. 비속에서 거리며 차들이며 층집들이 모두 몽롱하게 나의 시야로 찾아들었다. 거리에서는 각양각색의 우산들이 춤추듯 오고갔다. 우산아래의 사람들은 비때문에 조금도 걸음에 영향을 받는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더 여유롭게 비를 즐기는것 같았다. 비속에서 움직이는 행인들의 모습은 마치도 선경속에서 노니는것 같았다.
“인간세상”홀이 차츰 사람들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좌우와 앞뒤에 모두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허리를 꼿꼿이 살려 출입문쪽을 바라보았다. 왕천이 들어와서 첫눈에 나를 알아보지 못할가봐 근심이 되는듯싶었다. 나는 이미 “인간세상”에 홀로 한시간이나 앉아있었던것이다.
나의 마음속에는 워낙 왕천이에 대한 분노가 가득 쌓여있었다. 하지만 1509호실에 대한 회억으로 그에 대한 한가닥 련민이 생겨났다.
내가 다시 시계를 내려다볼 때 왕천은 이미 내앞에 와 앉아 두손을 들어 흐트러진 긴 머리칼을 쓸어넘기고있었다. 차디찬 물 두방울이 나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어쩌면 두방울의 눈물 같이 느껴졌다. 나는 그 물방울을 닦지 않았다.
왕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래 기다렸니?”
나는 잠간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아니, 나도 금방 왔어.”
나는 우리의 상봉을 얼마나 많이 그려보았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나는 상상속에서 그한테 덮쳐들어 귀뺨을 몇대 갈겨주고는 그의 해석도 듣지 않고 몸을 돌리군 했었다. 그때 왕천이가 뒤에서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달려오면 더 멋질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작 왕천이 진짜로 내앞에 앉아있는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코끝이 시큼해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왕천의 얼굴은 많이 수척해있었고 표정도 너무 따분해보였다. 그리고 더욱 나를 아연하게 하는것은 그의 몸에서 지독한 술냄새가 풍긴다는것이였다. 왕천은 담배를 꺼내여 불을 붙였다. 매캐한 담배연기는 지독한 술냄새와 섞여 나를 습격해왔다. 갑자기 토하고싶어졌다. 나는 급히 코와 입을 감싸쥐였다. 그러자 왕천이 담배불을 비벼끄려고 서둘렀다.
“먼저 밥을 먹자.”
왕천이 손을 흔들어 복무원을 불렀다. “어향육사(鱼香肉丝)”와 도마도닭알볶음을 청했다. 이것은 전에 내가 즐겨 먹던 료리였다. 왕천은 또 이과두(二锅头)술도 한병 청했다. 내가 놀라운 눈길로 왕천을 뚫어지게 건너다보자 그는 수집은듯 나를 보면서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나 인차 술을 끊을거다. 이건 마지막 한번이야.”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왕천에게 “너 원래 술을 마시지 않잖니?” 하고 물으려다가 입술까지 나온 말을 도로 삼켜버렸다. 그가 지금 어떻게 살고있든지 나하고 무슨 상관이람. 그는 담배 한가치를 꺼내들었다가 문뜩 나를 의식했던지 흘끔 내쪽을 훔쳐보고는 도로 넣어버렸다. 그의 손가락은 여전히 하얗고 가늘었는데 피뜩 보면 어떤 동물의 발을 련상시킬수 있을것 같았다. 상우에 올려놓은 두손이 갑자기 푸들푸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왕천은 두손을 한데 모아쥐고 극력 떨림을 통제하려고 했다. 그러자 두손만 아니라 어깨까지 부들부들 떠는것이였다. 나는 그러는 왕천의 몰골을 건너다보면서 말했다.
“담배 피우고싶으면 피워라, 이곳은 그러잖아도 담배연기천진데 뭐. 네가 피우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은 피우고있잖니?”
왕천은 감격스러운듯 나를 향해 머리를 끄덕이더니 급히 담배를 꺼내여 불을 붙이고 걸탐스럽게 빨아댔다. 순간 담배불이 빠알갛게 달아오르더니 한참이나 반짝반짝 빛을 뿌렸다. 왕천은 그렇게 빨아들인 담배연기를 오래도록 입안에 물고있다가 후- 내뿜었다. 하지만 그때 담배연기는 보이지 않고 연한 입김 같은것이 몇오리 흘러나올뿐이였다. 그러자 왕천의 눈은 처음보다 훨씬 정기가 돌았다.
왕천이 물었다.
“너 잘 지내고있지?”
남들이 보건대 나는 확실히 잘 지내고있다 할수 있었다. 지금의 남자친구가 나를 보배마냥 아껴주고있었던것이다. 남자친구는 한 녀자가 필요로 하는 모든것을 소유하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집, 승용차,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능히 생활의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될만한 저축도 가지고있었다. 반면에 그는 “전 안해”와 15살 나는 아들도 가지고있었다. 나는 그에 대하여 만족한다고 할수도 없었고 또 만족을 하지 않는다고 할수도 없었다. 불만족 되는게 없으면 만족된다고 할수도 있는것이였다.
궁금해서 죽겠다는듯한 왕천의 눈길을 바라보면서 나는 얼굴에 가벼운 웃음을 띠우고 한마디 했다.
“그럼, 잘 지내고있지.”
나의 대답에 실망했는지 왕천은 얼굴에 약간 그늘을 지으며 머리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는것이였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있었다. 큰 비방울들이 총알처럼 땅에 내리꼰지고있었다. 행인들은 비를 피해서 황망히 어디론가 뛰여가고있었다.
급히 거리를 가로질러 뛰여가던 한 남자가 갑자기 달려오던 승용차와 부딪쳐 허망 공중으로 솟아올랐다가 옆에서 달리던 다른 승용차우에 풍덩 떨어져내렸다. 그 사람은 큰 새마냥 두팔을 쩍 벌리고 자석에라도 끌리듯 그 승용차우에 떨어져 철썩 붙어버리는것이였다. 하지만 달리던 승용차는 멈출줄을 모르고 여전히 그 속도로 비속을 달려 잠간새에 시선에서 사라져버렸다.
왕천은 막연한 눈길을 돌리더니 다시 머리를 푹 숙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구나. 생각 못했어.”
나는 왕천의 말뜻을 제대로 리해하지 못하고 의아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왕천이 아래말을 이었다.
“그때 네가 떠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니?”
순간 나는 폭발하고말았다. 이것이 그래 당년에 그가 아무 예고도 없이 나를 떠나버린데 대한 해석이란 말인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떠난게 아니였지. 응당 네가 인간세상에서 증발해버렸다고 해야지.”
왕천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웃음이 비꼈다.
“그때 나는 집을 얻어보려고 떠난것이였어. 너 내가 쓴 쪽지를 보지 못했니?”
나는 너무도 분해서 부르르 떨면서 소리쳤다.
“그래 넌 나를 그곳에서 기다리라고 했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그 작은 방안에서?”
 
만약 왕천이 그렇게 화제를 그 시절로 돌려가지 않았다면 나는 어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던 두칸짜리 그 집을 기억해내지 못할수도 있을것이였다. 하지만 그 시각, 그 남자의 거슴츠레하고 느끼하던 눈길을 떠올리노라니 나는 가슴속으로부터 말 못할 괴로움이 꾸역꾸역 괴여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 사람은 그야말로 돼지대가리 같은 얼굴에 느끼한 두눈을 가진 호색한이였다. 나와 왕천이 간단하게 짐을 꾸려가지고 그 집 문안에 들어서는 순간, 그 사람은 나의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뚫어져라 부담스럽게 살펴보는것이였다. 나중에는 그의 눈길은 다시 나의 풍만한 엉뎅이에 와서 멈추었다. 무엇이나 꿰뚫어볼듯한 그의 눈길앞에서 나는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듯 불안하게 몸을 떨었다. 나는 황망히 적삼목깃을 우로 당겨올렸다. 그러자 그 사람은 더욱 흥분되여 거슴츠레한 두눈을 련속 슴벅거리는것이였다. 하지만 순진한 왕천은 그때 그 사람의 엉큼한 심보를 보아내지 못하고 되려 나에게 그를 “장오빠”라고 부르라고 귀띔했다. 그 사람은 40여살쯤 되여보였는데 우리와 함께 집을 쓸 사람이였다. 그는 자기의 딸 정도밖에 안되는 가냘프게 생긴 녀자애와 함께 남쪽 방을 쓰고있었다.
우리는 북쪽에 있는 해볕이 잘 들지 않는 방에 들게 되였다. 그때 우리의 수입으로는 그런 방에 들수 밖에 없었던것이다. 그게 싫다면 농촌으로 돌아가는수 밖에 없을것이였다. 나와 왕천은 둘 다 본능적으로 농촌에 대하여 거부반응을 가지고있었다. 하기야 나도 왕천이도 모두 농촌에서 왔기때문이였다. 고중시절에 그처럼 목숨을 걸고 대학입시를 본것도 사실은 그 농촌을 벗어나기 위한것이였다. 이미 대학까지 졸업한 마당에 나도 왕천이도 절대 농촌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던것이다. 북경근교의 농촌에 집을 잡는것마저 우리는 인생의 비애로 간주하고있었던것이다.
우리가 짐을 방에 옮길 때 그 남자는 과분한 열정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남자가 실팍한 몸집을 의식적으로 내 몸에 비비는것이 죽도록 싫어났다. 왕천이 몸을 돌리기만 하면 그 남자는 눈을 끔뻑하면서 나에게 윙크를 보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나와 아는 사이이기라도 한듯싶었다. 그 남자와 함께 사는 가냘프게 생긴 녀자는 비스듬히 문턱에 기대여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적의에 찬 눈길로 나를 쏘아보고있었다.
그날 밤은 달빛이 아주 좋았다. 나는 오래도록 혼탁한 공기에 절어버린 어슴푸레한 달빛만 보았었지 그처럼 밝은 달은 본적이 없는것 같았다. 왕천은 그날 밤, 글을 쓰지 않고 진작 나의 옆에 누워있었다. 우리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처량한 마음으로 1509호실에서의 랑만적인 하루하루를 그리고있었다.
1509호실을 떠나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방안을 깨끗이 청소했다. 그번 청소는 어쩌면 우리가 1509호실에 들어가서 제일 참다운 한차례라고 할수 있을것 같았다. 나는 집안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걸레질을 해서 먼지 하나 숨어있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들어올 리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 곧 그곳을 떠나야 하는 나를 위해서였다.
문밖에서 끌신을 끄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소리로 보아 한두 사람이 아니라 십여명이 동시에 오가는듯싶었다. 나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끌신소리가 끝나기를 내심하게 기다렸다. 얼마나 오래 지났던지 끌신소리가 요행 끝나버렸다. 내가 금방 잠이 들려는데 왕천이 조용히 일어나 책을 번져들었다. 그와 동시에 밖에서 한 녀인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마치도 우리가 그 어떤 살인현장에 와있는것처럼 오싹한 분위기를 조성해주었다. 나와 왕천은 약속이나 한듯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나 앉았다. 녀자의 고함소리는 그 남자네 방에서 울려나오고있었다. 비록 그 방과 우리 방은 문을 두개나 사이두고있었지만 녀자의 목소리는 마치도 우리 방에서 들리는듯 그처럼 똑똑했다. 나와 왕천은 소리없이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 남자와 녀자가 싸우는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니 싸우는것 같지도 않았다. 녀자는 그렇게 소리를 질러댄후 차츰 신음소리를 내는것이였다. 따라서 침대머리가 힘있게 벽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왕천은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시무룩이 웃음을 빼여물었다. 그는 손에 들었던 책을 한쪽에 훌렁 던지고는 급히 나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나는 왕천이와 달리 기분이 엉망으로 치달아오르고있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나의 가슴을 더듬는 왕천의 손을 쳐버렸다.
이튿날아침, 우리는 출근을 서두르다가 그 남자가 객실에 퍼더버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것을 보게 되였다. 그 남자는 나를 보더니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두눈을 슴뻑거려보이는것이였다. 나는 온역을 피하기라도 하듯이 바삐 문을 밀고 나왔다. 공공뻐스에 앉았지만 나는 여전히 거슴츠레하고 느끼한 눈길이 나의 뒤를 뚫어져라 지켜보는듯하여 온몸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왕천에게 메쎄지를 보냈다.
“나 그 집에서 살기 싫어.”
왕천이 인차 답장을 보내왔다.
“나도 그 집이 싫어.”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대흥의 새로운 아빠트에다 분회사를 설립한다고 했다. 나는 기회를 놓칠세라 그쪽으로 가겠다고 신청했다. 내가 이 소식을 알렸을 때 왕천은 순간 멍해지는것이였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
“함께 옮겨가는거지. 그 부근에서 세집을 찾으면 되는거지 뭐. 그래도 너의 창작은 지장이 없잖아?”
왕천은 내 말에 매우 흥분해하면서 그 남자를 찾아가 남은 방세를 돌려달라고 청을 들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견결히 반대해나섰다. 금방 이사를 들어온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수 있느냐 하는것이였다. 나중에 그 남자는 나가든지 말든지 관계는 않겠으나 계약금과 남은 집세는 돌려줄수 없다는것이였다. 왕천은 돌아와서 절대 그 자식을 용서할수 없다면서 분개해 말했다.
“너 먼저 회사의 숙소에 들어가 살아라. 나는 보증코 이 집에서 계약이 끝날 때까지 살거다. 하루라도 그 자식을 득을 보게 할수야 없지.”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왕천은 이 말을 할 때 벌써 나를 떠나려고 마음 먹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순진하게도 그의 말에도 일정한 도리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동시에 세집 두개를 쓴다는것은 어느 모로 보아도 정상적인 일이 아니였던것이다.
분회사의 실무는 본 회사에 있을 때보다 엄청 더 분망했다. 분회사나 나나 다 이 지역에서는 아직 그 어떤 믿음도 얻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하기에 모든것을 령으로부터 시작해야 했다. 나는 매일 16시간 이상 일을 했다. 하루종일 집면적을 재고 설계도를 그리고 업주들에게 설계도를 해석하고 설계도를 수정하느라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를 때가 많았다. 매일 밤, 침대에 누울 때면 언제나 다리며 발등이 퉁퉁 부어있었다.
어느날, 나는 우연히 왕천이 보내온 메시지를 받았다.
“여보, 당신이 그립소.”
나는 간단하게 회답을 했다.
“나 지금 바빠.”
그때로부터 왕천의 메시지가 차츰 적어졌다.
그새 왕천은 회사에 와서 나를 한번 보고 갔다.
그날 나는 한 업주와 설계도를 토론하고있었다. 그 설계도는 이미 그 업주와 세번이나 토론하고 수정을 한것이였다. 하지만 그 업주는 여전히 꼬치꼬치 따져가면서 흠집을 찾고있었다. 나는 점점 정서가 저락되여갔고 당금이라도 그 업주라는 사람의 따귀를 올리붙이고싶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내 얼굴에 웃음을 쥐여바를수 밖에 없었다. 하기에 나의 미소는 언제나 습관적으로 굳어져있었는데 어찌 보면 웃는 가면을 뒤집어쓴듯해보였다. 얼굴근육이 뻐근해날 때면 나는 나의 직업을 두고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나는 늘 자신이 컴컴한 동굴속을 걷는듯한 착각을 하군 했다. 나는 한시바삐 그 동굴을 헤여나오기 위해 진종일 악을 쓰고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나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찬란한 해볕을 향수하고싶었다. 마음껏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였다. 나는 매일 그 지지리도 힘든 동굴을 헤집고있었던것이다.
그날, 왕천은 복잡한 사무실에 앉아서 수시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비켜주다가 나중에는 아예 벽에 붙어서있었다. 그 가련한 모습은 누군가에 의해 던져진 마네킹 같아보였다. 왕천은 내가 조용히 앉아서 자기와 말할 계제가 못되는것을 보고는 어느 순간인가 조용히 자리를 떠나버렸던것이다.
그무렵, 나는 여전히 사무실에서 업주들에게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이고있었다. 그러다가 문뜩 머리를 쳐드는 순간, 창문을 통하여 멀어지는 왕천의 뒤모습을 보게 되였다. 왕천의 길다란 머리칼은 바람에 날려 마구 헝클어져있었다. 살 때 몸에 잘 어울리던 적삼이 훌렁해져서 마치 되는대로 마대쪼각을 몸에 걸친듯해보였다. 워낙은 꼿꼿해보이던 등이 굽어서 목이 더 길어보였는데 걸음을 걸을라 치면 온몸이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아빠트경비실문앞까지 간 왕천은 머리를 돌려 나의 사무실이 있는쪽을 바라보고있었다. 나는 또 한번 코끝이 찡해났다. 생각 같아서는 뛰여내려가 그를 끌어안고 한바탕 통곡이라도 하고싶었다.
그날 밤, 나는 악몽을 꾸었다. 꿈속에서 본 환경은 그렇게도 눈에 익어보였다. 나는 어느 소택지에 서있었다. 주변은 짙은 안개에 싸여있었다. 나는 미동도 없이 그렇게 서있었다. 움직이기만 하면 소택지에 빨려들어갈가봐 두려움에 떠는듯싶었다. 공포가 극에 달하자 나는 그만 히스테리적으로 소리를 지르고말았다. 하지만 누구도 화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도 조용해서 내가 마치 창세기전에 돌아가있는듯싶었다. 내가 절망에 달해 그 자리에 넘어지려는 찰나 눈앞에 가늘고 흰 손이 보였다. 그 손은 자욱한 안개속에서 나의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너무도 기뻐서 와락 그 손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손은 나를 피해 천천히 들려지더니 이어 가볍게 흔들리는것이였다. 너무나도 처량한 리별의 순간을 연출하고있었던것이다.
꿈에서 깨여난 나는 급히 왕천에게 전화를 했다. 왕천의 핸드폰은 이미 꺼진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의 핸드폰이 그렇게 영원히 꺼져버릴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두눈을 퀭하니 뜨고 날이 샐 때까지 침대에 앉아있었다. 내가 남 5환에서 차를 갈아타고 북 5환에 도착하여 왕천이가 혼자 남아있는 그 세집으로 갔을 때 나를 맞아주는것은 그 남자의 거슴츠레하고 느끼한 눈길과 갸날픈 몸매의 그 녀자가 내쏘는 적의에 찬 눈길이였다.
왕천은 이미 그 집에 살고있지 않았던것이다. 내가 우리가 살았던 북쪽의 그 방에 들어가보니 찢어진 원고지가 방안을 가득 메우고있었다. 왕천의 심혈이 슴배여있는 원고지는 갈기갈기 찢어진채 그렇게 죽어있었던것이다. 찢어진 원고지를 밟고 선 나의 두발은 마치도 차디찬 얼음우에 맨발로 서있는듯한 느낌이였다. 내가 가져가지 않은 옷가지들은 정연하게 포개져 행리가방에 들어있었다. 대학으로부터 줄곧 나를 따라다녔던 그 행리가방은 먼지 한점 없이 깨끗하게 닦아져 연한 빛까지 뿌리고있었다. 가방손잡이에 쪽지 한장이 끼워져있었다.
“여보, 너무 힘들지? 내가 노력해서 꼭 집을 마련할게. 그래서 당신을 편하게 할게. 기다려줘.”
 
비가 멎었다. 방금 비물에 말끔히 씻겨진 층집이며 거리는 이슬을 머금은듯 반짝반짝 빛이라도 뿌리는듯싶었다. 공기속에서 향긋하면서도 달콤한 냄새가 솔솔 풍기는것 같아 막혔던 가슴이 확 뚫리는듯했다. 나와 왕천은 “인간세상”문앞에 서서 리별을 준비하고있었다.
식사를 하는 내내 왕천은 묵묵히 혼자서 술잔만 기울였다. 술잔을 들 때마다 왕천은 습관적으로 “이건 마지막 잔이야. 내 말을 믿어.”라고 말했다. 술을 입에 털어넣은후 왕천은 술잔을 내려놓고 다시 고통스럽게 두손을 비벼댔다. 손등에 퍼런 힘줄이 불뚝불뚝 불거져올랐는데 그것은 빚어놓은 동상을 방불케 했다. 왕천은 그렇듯 힘들게 속으로 몸부림치고있는듯싶었다.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구나. 생각 못했어.”
왕천은 마사진 축음기를 풀어놓은듯 여전히 이 말만 반복했다. 그때 왕천은 근본 자기앞에 앉아있는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는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 자기앞에 누가 앉아있더라도 그는 역시 그 말만 되풀이할것 같았다. 그때 왕천의 몸에서는 알콜냄새가 지독하게도 풍겼는데 마치도 알콜에 불궈놓은 시체표본에서 풍기는 냄새 같았다. 그 냄새는 나에게 구토가 나게 했다. 나는 도무지 음식을 넘길수가 없었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비가 빨리 끊기를 바랐다. 비가 곧 끊을무렵에 왕천은 술병굽에 조금 남은 마지막 몇방울의 술을 쏟아내고있었다. 57도의 알콜농도를 가지고있는 술, 우수한 연료라고도 할수 있는 그 술이 왕천의 배에 모두 들어가버린것이다. 나는 언젠가 중의안마사가 안마를 하는 장면을 본적이 있는데 그때 그의 옆에 놓여져있는 “이과두(二锅头)”술을 담은 사발에서는 파란 불이 펄펄 날리고있었다. 안마사는 그 사발에서 불 한웅큼을 쥐여서 환자의 등에 발랐다. 파란 불은 환자의 등에서도 혀를 날름거리고있었다.
왕천은 술이 모자라는듯 술병을 꺼꾸로 들어 눈앞에 가져다댔다. 마치도 망원경을 집어다 눈앞에 대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밝혀내겠다고 모지름을 쓰는것 같았다. 나는 그때 왕천의 눈에 보이는것이 꼭 혼탁하고 몽롱한 세계일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어떤 세계이든간에 왕천이가 관심하는것은 병굽에 아직 남아있는 몇방울의 술일것이였다. 그것이 바로 내앞에 앉아있는 진실한 왕천이였다. 그 모습은 나에게 더 이상 그를 증오한다는것조차 부질없는짓이라는것을 알려주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왕천은 여전히 두손으로 술병을 움켜쥐고있었다. 그는 두눈을 퀭하니 뜨고 나를 바라보더니 한마디 했다.
“우리 집에 가볼가?”
나는 길옆에서 택시를 세우려고 손을 저었다. 그때 왕천은 나한테로 다가와 와락 나의 팔을 부여잡았다. 내가 신경질적으로 홱 팔을 내젓자 왕천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한쪽에 나가 쓰러지면서 이마를 갓돌에 부딪쳤다. 순간 쿵- 하는 소리는 내가 조심하지 않아 수박을 땅에 떨어뜨렸을 때의 소리를 련상케 했다. 나는 급히 뛰여가 왕천이를 부축했다. 그러자 왕천은 있는 힘을 다해 나의 팔을 부여잡았다. 그때 왕천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굽혀진 나의 팔뚝사이에 깊숙이 들어갔다. 어쩌면 물에 빠져 곧 죽음을 맞게 될 사람이 요행 떠내려오는 막대기라도 잡은듯한 형국이였다. 왕천은 후들후들 겨우 일어나서 다시 쓰러지려는 몸을 나의 몸에 기대고는 왼손을 들어 저쪽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우리 집이 저- 기 있다니까.”
나는 왕천이를 집까지 바래다주려고 마음 먹었다. 한때의 련인사이가 아니라 어쩌다가 본 보통친구라고 해도 왕천의 랑패상을 보고 그대로 지나칠수 없을것이였다. 나는 택시 한대를 잡아서 왕천이를 뒤좌석에 겨우 끌어올렸다. 나는 앞좌석에 올랐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막연하기만 했다. 내가 머리를 돌려 왕천에게 방향을 물으려고 할 때 왕천이 나를 향해 히쭉 웃으면서 말했다.
“앞에 있는 길어구에서 왼쪽으로 굽어들면 돼.”
그 말을 할 때 왕천은 근본 술에 취한 사람 같지 않았다.
택시에서 내리는 그 순간부터 나는 마치도 몽환세계에 들어선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언제나 눈에 웃음기를 살살 바르고 손님을 맞아주던 잡지가게의 주인이며 지하주차장문어구에 앉아있던 절름발이보안원이며 구운 오리목을 팔던 뚱뚱한 아줌마며 과일가게를 지키던 새각시며 그 많은 사람들과 환경은 어느 하나 눈에 익숙하지 않은것이 없었다. 나는 왕천이를 부축하여 아빠트출입문쪽으로 걸어갔다. 왕천은 내가 술에 곤죽이 되였다고 믿는 그 몸뚱이를 한껏 나에게 기대고있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대로 쓰러져버릴것 같았다. 하지만 실지 그 모양을 보면 왕천이 나를 겨드랑이에 끼고 간다고 할수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왕천이와 함께 엘레베터에 올랐다.
엘레베터에는 13층과 12층이 없었다. 12층 다음에는 직접 15층이였다. 엘레베터안에서 얼굴이 편하게 생기고 머리가 하얗게 바래진 할머니가 우리를 향해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순간 나는 그 할머니가 전에 주먹만한 깜찍한 강아지를 끌고 다니던 생각이 났다. 그 강아지의 이름은 “란귀비”였다. 어느날 할머니는 그 강아지를 잃어버리고 옹근 아빠트를 다 돌아다니면서 찾았었다. 그 할머니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렸을 때 할머니의 얼굴은 온통 눈물투성이였다.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그놈이 없다면 나도 살수 없을거요.”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내심으로부터 짜릿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자 마치 내가 그 강아지를 훔치기라도 한듯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서 할머니에게 물었다.
“란귀비는 찾았나요?”
할머니가 의아한 눈길로 나를 건너다보면서 물었다.
“누구던가? 그래, 우리 귀염둥이는 지금 집에서 자고있다오. 그놈은 참으로 엉뚱한짓만 골라하거든.”
왕천이 1509호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철저히 놀라버리고말았다.
“여보, 당신이 이 집을 그렇게도 좋아했었지? 지금 이 집은 당신것이요.”
하얀색옷궤는 여전히 벽에 붙어있었다. 옷궤문의 한쪽 손잡이가 떨어져있었는데 그것은 전에 내가 너무 힘들여 당겨 떨어진것이였다. 그때 잠시 맞는 나사못이 없어서 그 손잡이를 다시 달지 못했던것이다. 천을 씌운 쏘파는 여전히 문가의 그 구석쪽에 놓여져있었다. 오른쪽 팔걸이에는 테프가 붙여져있었는데 그것은 전에 왕천이 담배를 피우다가 조심하지 않아 구멍을 내서 붙인것이였다. 침대머리에 설치된 전등갓은 왼쪽이 흰색이고 오른쪽이 빨간색이였다. 왕천이 침대에 누워서도 책을 보기에 특히 그렇게 생긴 등갓을 고른것이였다. 컴퓨터상에는 여전히 나의 사진이 놓여져있었다. 사진속의 나는 마치도 그 집의 주인이라도 되는듯 집안의 모든것을 둘러보고있었다. 그 사진은 내가 대학교 교정 뒤산의 언덕에서 찍은것이였다. 나는 두손을 등뒤로 한채 짐짓 신중한 기색을 띤 얼굴로 왕천의 손에 쥐여져있는 사진기를 응시하고있었다.
모든것이 그대로였다. 1509호실은 내가 문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그렇게 굳어져버린듯싶었다. 그렇게 굳어져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듯싶었다.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나의 두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왕천이 으스러지게 나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나는 왕천의 그 손길을 거절하지 않았다. 나의 눈물은 그대로 왕천의 가슴을 적시고있었다. 왕천은 가볍게 나의 등을 도닥이며 울먹거렸다.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구나. 생각 못했어.”
나는 별안간 주먹을 들어 왕천의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너 그새 도대체 어디로 갔던거야?”
그렇게 왕천의 가슴을 두드리고있노라니 그동안의 억울함이 눈물과 함께 뚤렁뚤렁 떨어져내리는듯싶었다. 왕천은 나를 끌어안았던 손을 스르르 풀더니 비틀거리면서 침대가로 다가가 앉았다.
“모든게 좋아졌다. 우리에게 집이 있게 되였다. 이제부터 너는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날마다 너를 볼수 있게 되였다.”
왕천은 갑자기 말을 끊더니 구역질을 했다. 나는 급히 화장실에 달려들어가 쓰레기통을 가지고 다시 침대가로 다가갔다. 그때 왕천은 침대궤에서 술 한병을 들춰내여 병채로 꿀꺽꿀꺽 마셔대고있었다. 나는 급히 술병을 빼앗으며 소리쳤다.
“너 죽으려고 그러니?”
왕천은 손을 뻗어 술병을 잡으려다가 내 몸에 부딪쳐 한쪽으로 훌렁 넘어져서는 힘들게 말했다.
“여보, 래일부터 나 정말 술을 끊을거야. 나를 믿어줘.”
어쩌면 집안의 모든것이 하나도 변한것이 없는듯싶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그래도 변한것이 있었다. 베란다에 참대로 만든 흔들의자가 놓여져있었던것이다. 방금 누가 앉았다가 일어난듯 의자는 가볍게 흔들리고있었다. 집안이 매우 깨끗한듯했지만 사실 집안은 구석구석 먼지투성이였다. 하여 어디를 다쳐도 선명하게 자국이 남았다. 방안의 공기도 매우 혼탁했다. 술냄새만이 아니였다. 그외에도 무엇인가 한창 썩어가고있는것 같았다. 구석구석에 술병이 숨어있었다. 소주병, 맥주병, 와인병… 없는것이 없었다. 차탁이며 침대궤며 주방궤며 랭장고며 지어는 화장실에도 술병이 있었다.
왕천은 침대에 쓰러져 가볍게 코를 골고있었다. 나는 창문이며 출입문을 열었다. 습윤한 공기가 집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나는 화장실에서 비자루와 쓰레받기를 찾아들었다. 그것들에는 얼기설기 거미줄이 늘여져있었다. 나는 먼저 그것들을 깨끗이 씻은후 집안 청소를 시작했다. 나는 밀걸레를 어느 정도의 각도로 해야 바닥을 제일 깨끗이 닦을수 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리고 또 비자루를 어느 정도 눕혀 쓸어야 먼지가 일지 않는다는것도 알고있었다. 이곳은 전에 나의 무대였었다. 하기에 나는 이 무대의 구석구석에 대하여 손금보듯 알고있었다. 종려색의 나무장판이 나의 손끝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기 시작했다. 나와 이 집의 관계를 잠시 잊은듯싶었다. 어쩌면 내가 줄곧 이 집에서 살고있었던듯싶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도 일상이 바빠서 이 집을 제때에 청소하지 못한줄로 생각하는것 같았다. 나는 흥얼흥얼 코노래까지 불렀다. 그 노래는 전에 왕천이 동학들과 함께 나의 숙소아래에서 부르던 그 노래였다.
문뜩 핸드폰에 메시지가 들어오고있었다. 남자친구가 보내온것이였다.
“여보, 일이 끝났어?”
가슴에서 뭔가가 떨어져내리는듯했다. 손에서 맥이 풀려나갔다. 밀걸레가 스스로 손에서 떨어져나갔다. 침대에 누워있는 왕천이를 바라보았다. 그때 왕천이는 여전히 잠들어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컴퓨터상에 올려놓고는 다시 밀걸레를 찾아들었다. 그때 밀걸레는 전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졌다.
객실청소를 끝낸후 나는 주방청소를 했고 이어서 화장실청소도 했다. 청소를 하면서 나는 줄곧 나와 나의 남자친구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과연 그 사람을 사랑하는것일가?
쓰레기는 구석쪽에 모아놓았는데 큰 비닐봉지로 세개나 되였다. 나는 주방궤 왼쪽의 제일 아래 서랍에서 비닐봉지를 더 꺼내려고 했다. 전에 나는 슈퍼마케트에서 물건을 담아온후 비닐봉지를 깨끗이 씻어서 차곡차곡 그곳에 모아두었던것이다. 나는 서랍을 당겨 열었다. 잘 정리되지 않은 비닐봉지들속에 빨간 증서 하나가 숨어있었다. 그것은 결혼증서였다. 나는 허리를 굽혀 결혼증을 주어 펼쳐보았다. 나의 눈에 안겨든것은 왕천과 한 녀자였다. 결혼증사진속의 왕천은 잔뜩 얼굴을 찌프리고있었다. 리가리라고 부르는 그 녀자는 더구나 얼굴에 수심이 가득 끼여있었다. 어쩌면 결혼증에 붙일 사진을 찍을 때 둘이 다투기라도 한듯싶었다. 사진사가 꼭 그들을 웃게 하려고 노력했을거지만 필경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을것이였다.
순간 나는 머리속이 하얗게 바래지는것 같았다. 아빠트의 제일 꼭대기에서 그대로 날아떨어지는듯한 환각이 들었다.
잠간 정신을 추스리고난 나는 다시 서랍을 뒤져보았다. 북경제3병원에서 떼준 병력카드가 있었다. 카드에 적힌 글은 도무지 내가 알아볼수 없을만치 갈겨쓰이여있었지만 나는 용케도 그중에서 “암”, “화학치료”라는 몇 글자를 읽어낼수 있었다.
나는 차디찬 벽에 간신히 기대여섰다. 하지만 몸은 점점 땅으로 미끄러져내렸다. 나는 바닥에 퍼더버리고 앉았다. 흰 타일은 인차 나의 엉뎅이를 차겁게 했다. 속은 아리다 못해 백쌍의 마귀손이 마구 헤집고 다니는것 같았다. 나는 뭐라고 소리치고싶었지만 끝내는 소리가 입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소리를 칠 힘마저 없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애써 몸을 일으킨후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벽을 짚으며 겨우 컴퓨터상앞으로 다가가 핸드폰을 찾아들었다. 남자친구에게서 온것이였다. 나는 흠칫 몸을 떨면서 급히 거절버튼을 눌렀다. 왕천이 침대에서 가볍게 몸을 비틀며 웅얼거렸다.
“여보, 여기 와. 내 한번 보자구.”
나는 남자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립수교에 있어요. 절 데리러 와주세요.”
깨끗하게 정리된 방은 내 마음에 꼭 들었다. 방안의 공기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비닐봉지에 넣은 쓰레기는 여전히 방 한구석을 지키고있었다. 나는 이제 내가 이 집에서 나갈 때 꼭 그 쓰레기를 던질것이며 문이나 창문도 잘 닫아놓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깊이 잠든 왕천이에게 포근히 담요를 덮어주었다.
 
 
류대(留待), 본명 곽귀종. 1970년 출생. 산동성 고당현 사람. 1989년부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 장편소설 《소리, 색》과 중, 단편 소설 여러편이 있음. 현재 북경의 모 잡지사에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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