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장 김치매대에서 만난 소년이였다. 검은 테 안경을 건 얼굴색이 하얗고 얼굴에 비례해 입이 약간 클사한 소년이였다.
“무슨김치 좋아하세요?”
입이 약간 커서 그랬던지 시름없이 하얗게 들어나는 이빨이 참 맑다는 생각이 처음이였다. 내가 어디 잘 못 들어섰나 착각이 들었다. 이빨이 맑아보이는 소년의 청순한 이미지는 생계때문에 뛰여다니는 사람들로 치렬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야시장의 김치매대가 아니라 해볕 좋은 어느 길옆 카페의 고요한 무드속에 펼쳐져야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침에 담근거예요. 배추김치. 조미료 일절 넣지 않고 맛을 냈어요. 몸에 좋을거예요.”
목소리가 티없이 맑게 들렸다. 소음 많은 장마당에서 유난히도 나의 귀를 편하게 하는 바스음이여서 더욱 친절하게 들렸는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소년에게 매료되여 매대앞에 걸음을 멈추었고 김치에 한번, 사구려소리로 떠들썩한 장마당의 진풍경에 한번 그리고 맑은 이빨을 가진 소년의 하얀 얼굴에 한번 눈도장을 찍어갔다. 소년은 그 시각 그 자리에서 그렇게 김치를 팔면서 그렇게 웃고있었다. 눈망울이 새물새물 웃고있었다. 그 웃음이 하얀 얼굴을 타고내려 입가에 작은 파문을 일궈내고있었다. 파문이 이는 그 웃음에 미역을 감고 매대우에 사뿐히 올라앉은 김치라면 상긋한 그 파문처럼 아삭아삭 새콤달콤 입맛을 달달 볶아줄것이라고 생각되였다.
“이놈으루.”
나의 오른손식지가 소년의 얼굴만치나 상큼하게 생긴 몸뚱이에 고추가루를 함빡 빠알갛게 바르고 누워 임자를 기다리고있는 배추김치를 가리키고있었다.
“네, 아저씨. 잠간만요.”
소년은 달콤한 웃음을 선불로 나에게 보내주었고 이어서 익숙한 솜씨로 배추김치 한포기를 집어 곱게 포장한후 앉은뱅이저울에 달랑 올려앉혔다.
“십원 팔십전이예요. 십원만 주세요.”
역시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말이였다. 밥상에서 배추김치잎을 쭉 찢어 밥숟가락에 얹어주는 아들놈을 보는것 같이 친근하게 느껴져 나도 기분 좋게 한술 떴다.
“어, 되겠어? 장사 이렇게 해서. ”
맑은 이빨이 먼저 나에게 웃음을 날려보냈다.
“괜찮아요. 제집에서 담그는건데요 뭐.”
순간 앞마당에 자라는 살구나무에서 잘 익은 살구를 한바가지 가득 따주며 “많이 먹어. 제 마당에서 나는건데 뭐." 하시던 고향마을 박할머니의 자애로운 목소리가 귀전을 스치는것 같아 코등이 시큰해났다. 움트는 초봄과 떠나가는 마가을? 빠끔히 머리 내민 콩 꽃과 잘 익은 할머니표 된장? 도무지 어울릴것 같지 않은 두폭의 그림을 두고 고패쳐 오르던 그 시각의 그 감동은 또 무엇이였을가?
나는 유심히 소년을 읽으며 “감사!” 하고 마음을 전했다.
“제가 감사하죠. 맛있게 드시고 또 찾아주세요.”
순간 소년을 알고싶은 충동이 올리밀었다.
몇살이나 됐을가? 왜 김치매대에 섰을가? 저 순진한 웃음에 어울릴만큼 마음도 편하고 즐거울가? 어느때까지나 김치매대를 지킬가? 그게 과연 얘의 꿈일가?
모든것을 제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데 습관이 되여있는 나였지만 이빨이 맑아보이는, 소박한 바스음성으로 “제집에서 담그는건데요 뭐... 맛있게 드시고 또 찾아주세요.” 하고 말하는 그 소년에 대해서만은 함부로 생각하고 판단할 자신이 없었다. 소년에서 아득히 멀리 간 년장자라고 자처하고있던 나였지만 도무지 그 시각 그 곳의 그 풍경에 딱 어울릴만한 멘트를 칠수 없었다. 섣부른 나의 식상한 말 한마디가 소년에게는 어떻게 비쳐질가 주저심이 들었다. “조미료를 일절 넣지 않고 맛을 낸” 김치를 파는 소년앞에 내가 여태 먹어왔던 화학조미료냄새를 팍팍 풍길것 같아 두려웠던것도 그때였다.
소년이 넘겨주는 김치봉지를 받아들고 몸을 돌리면서 문뜩 한없이 작아지는 스스로를 느꼈다. 딴에는 무슨 “가”노라고 자처하는 이 몸뚱이를 소년의 옆에 나란히 세울 자신이 없었다. 소년의 옆에 나란히 서서 스쳐가는 여느 사람들에게 손바닥만한 내 얼굴을 보여줄 용기가 없었다. 얼굴에 맑은 웃음을 활짝 피우고 서서 하늘에 한점 부끄러움이 없이 “...조미료 일절 넣지 않고 맛을 냈어요.” 하고 말할만한 신심이 없었다. 그게 진실한 나의 그림이여서 슬펐다. 구겨버리고싶었다. 나를 작아지게 하고 슬퍼지게 하는 그 그림을 갈갈이 찢어버리고싶었다. 하지만 그런 패기마저 근본 남아있지 않다는것을 마흔 아홉살의 이 나그네는 그 시각 모름지고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언제부터였을가? 과연 언제부터 나는 이렇게 변하기 시작했을가?
도무지 그 시점을 짚어낼수 없었지만 내 가슴에도 전에는 분명 소년과 같은 순진함과 당당함이 자리하고있었던것만은 사실이다.
룡문이라고 부르는 시골마을 합작사에 《고옥보》라는 이야기책이 매대를 찾이하고 앉은것은 내가 열두살나던 그해 봄이였다. 친구들이 하도 재미있다기에 나도 그 책을 한권 갖고싶었다. 그 책을 살만한 돈을 엄마가 쉽게 내놓을수 없을것이라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나는 얼굴을 붉히며 더듬거렸다.
“돈은 없구, 신바닥을 모아놓은게 조금 있으니 그걸 수구소에 가져다 팔아 살래.”
눈물이 쿡 하고 솟아오를것만 같았다. 열두살을 살던 그날의 그 소년은 자기에게 페물꾸러미를 안고 수구소에 들어가 돈 몇십전을 받아쥘수 있는 용기가 있을것이라고 생각못했던것이다.
“사내가 돼가지구. 욕심만 있구 담은 없는게지.”
엄마가 머리를 돌리면서 혼자말 비슷이 한마디 했다.
순간 나는 발딱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날 나는 당차게 수구소문을 두드렸다. 일생에서 처음으로 나에게 속하는 이야기책을 나는 그렇게 손에 넣었다. 나는 열두살 소년의 맑은 가슴에 고옥보를 모셔들였다.
과연 언제부터였을가? 어린 시절 나의 롤모델이였던 고옥보님이 나의 심령에서 사라진것은.
놀랍게도 나는 내 소년을 함께해주었던 롤모델이 살아진것을 발견하게 된것이다. 롤모델이 사라진 황페해진 내 마음의 터밭에 남겨진 허위와 오만과 실망과 망연함을 발견하게 된것이다.
언젠가 “우리는 지금 영웅이 없는 시대에 살고있다.”는 글을 읽은적이 있다. 영웅이 없는 시대, 정신이 없는 시대, 신앙이 없는시대, 오직 자기 리익. 자기 체면만을 위한 시대에 살고있다는 말이 되겠다. 나도 당신도 지금 배 부르게 먹고 따스게 입고 살면서도 노상 힘들고 지쳐있는것은 바로 자기 리익, 자기 체면에 대한 지나친 추구때문은 아닐가?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어구에서 나는 잠간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돌렸다. 멀리서 소년의 모습이 보여왔다. 그 시각 세속의 어떤 눈길도 개의치 않고 떳떳하게 김치매대를 지켜서있는 그는 더 이상 이빨이 맑아보이는 바스음성의 애된 소년이 아니라 세상속에 우뚝 선 작은 거인이였다.
<<길림신문>> 2014년 4월 24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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