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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과 “재기”
2014년 07월 27일 14시 13분  조회:2035  추천:0  작성자: 동녘해
“어리석음”과 “재기”
―주여창선생을 추억하며
 
장이무
 
 
주여창선생이 영면하셨다. 로일대학자들이 한분, 두분 세상을 떠나신다. 이것은 누구도 거역할수 없는 세월의 힘이다. 주선생은 그래도 장수하셨다고 할수 있다. 그이께서는 20세기 중국지식분자의 전형적인 인생행로를 걸어오셨다. 그의 자서전을 읽었는데 사실 그의 인생경력이 그렇게 놀라운것은 아니였다. 사람들이 그의 인생이 평범하지 않다고 하는것은 그와 《홍루몽》에 얽힌 평생의 인연때문인것 같다. 이러한 인연은 그로 하여금 중대한 력사적풍운변화속에서 누구도 감당할수 없는 독특한 역할을 하게 했다. 이 점은 20세기 중국인의 문화상상중에 있는 《홍루몽》의 독특한 위치 및 그 의의와 같은것으로서 주선생의 평범한 학자생애에 극히 평범하지 않은 의미를 부여한다. 주선생은 사실 20세기후반기에 중국대륙의 풍운변화속에서 능히 중국의 전통적인 정신을 계승한 정수적인 인물이라고 할수 있다. 그의 존재는 우리들로 하여금 중국의 대 변혁가운데서도 변하지 않는 많은 물건들이 계승, 발전되고있었다는것을 알게 하였다. 어느 민족의 운명이나 흥망성쇠가 있다. 그리고 또 어느 민족이나 그 민족을 수호하는 일부 령혼적인 인물이 필요한데 그런 인물은 력사와 문화의 정신적인 분위기속에서 나타나게 되는것이다. 주선생의 의의는 사실 그 객체의 력량에 대한 느낌과 중국문화의 진귀환 보물인《홍루몽》에 있는것이다. 주선생은 우리에게 다채로운 “홍학”세계를 펼쳐주었다. 만약 주선생이 없다면 20세기후반기의 중국의 문화사는 어딘가 적막하게 느껴질것이요, 조설근과 《홍루몽》도 지기가 없게 될것이다. 나는 늘 이상한 생각을 굴리군 한다. 《홍루몽》의 경우는 주선생을 만났기에 전보다 확실히 달라진것이 아닐가? 물론 주선생 본인도《홍루몽》에 대하여 일생동안 집착을 보였다고 말쓴하신적이 있다.
주선생은 사실 나의 중학시절의 우상이였다. 그때 우리 집에는 옛 버전의 《홍루몽의 새로운 증거(红楼梦新证)》라는 책이 있었다. 그때는 “문화대혁명”시기여서 새로운 책이 부족했다. 나는 부모들의 장서를 뒤져보기를 무척 좋아했다. 《홍루몽의 새로운 증거》는 번체자를 사용했는데 배판도 세로짜기로 되여있어서 읽기가 매우 불편했다. 책은 보풀이 일었지만 그 내용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특히 그 《력사사건편년(史事编年)》은 강옹건(康雍乾) 3대 력사사건을 집성했다. 책에는 정사의 기재도 있고 야사의 이야기도 있었는데 소설을 읽는것처럼 생동한 느낌이였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주여창이라는 존함을 처음 접하게 되였다. 후에 그 책의 새로운 버전이 나와 독자들을 기쁘게 했다. 나는 인차 그 책을 사서 다시 통독했다. 새로운 버전에는 이전 버전에 없던 새로운 내용들이 보충되여 그야말로 당시 홍학의 집대성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책을 통하여 나는 “홍학”의 복잡성을 알게 되였다. “홍학”을 리해한다는것은 단지 소설에 대한 연구뿐만이 아니라 판본이 있고 가세가 있고 탐일(探役)을 중심으로 하는 방대한 계통이다. 하기에 겉보기는 자질구레해보이지만 속내를 따져보면 오묘하기 그지 없다. 외인들의 눈에는 늘 따분하게 보일수도 있지만 알고보면 안에 수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겨져있다. 이를테면 조설근초상의 진가여부, 잃어버렸던 “정본(靖本)”의 신비한 이야기는 셜록홈즈의 탐정이야기처럼 전기적이였다. 이러한 점들은 모두 나로 하여금 주선생에 대하여 경모의 정으로 충만되게 했다. 당년에 모씨가 《홍루몽》을 너무 좋아해서 다섯번이나 읽었다는 말도 있다. 하기에 “홍학”은 의심할바 없는 저명한 학설이며 “홍학”을 담론하는것은 당시의 류행문화였다. 주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두가지 느낌이 강렬했는데 지금도 인상이 깊다. 그중 하나는 분위기가 절대 무겁지 않다는것이다. 주선생의 학술문장은 생동하고 흥미롭다. 사소한 고증이라도 그 필치가 읽는이들을 황홀하게 한다. 두번째는 여러가지 도리와 사리에 통달했다는것이다. 주선생은《홍루몽》의 판본, 조설근의 가세 그리고 80회후의 줄거리에 대한 탐구와 예술감정문화에 대한 관심을 융합시켜놓았다. 나는 주선생의 뛰여난 박학과 비길데 없는 집중력에 탄복한다. 그때로부터 나는 스스로 무엇이라고 설명할수 없이《홍루몽》에 집착하는 “홍학”애호자로 되였다. 나는 줄곧 어쩌면 다소 기묘하다고 할수 있는 학문의 발전에 관심을 가졌으며 “홍학”에 대한 시시비비에 빠져 살았다. 나는 전업적인 연구자가 아니기에 비록 그렇다할 견해를 발표하지 못했지만 장애령이 말한것처럼 “홍루몽에 미쳐버린 사람”과 비슷하게 되여버렸다. “홍학”에 빠져버린 나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소모했다. 이 점은 나로 하여금 더욱 쉽게 중국의 풍부함과 복잡성을 리해하게 했으며 중국문화의 넓고도 심오함을 느낄수 있게 했다. 내가 나 개인과 목전의 상관 연구외에도 중국의 정서와 지식에 대하여 약간의 료해를 가지게 된것은 모두 주선생이 나에게 준 최초의 계몽결과라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으로 주선생을 만난것은 지난세기 80년대초에 북경대학에서였다. 그 무렵, “홍학”은 사람들의 깊은 중시를 받고있었다. 중문전업에는 “홍학”을 연구하는 학생소조가 있었다. 그 핵심인물은 후에 재담과 연극대본을 창작하여 명성을 떨치다가 한창 나이에 세상을 뜬 량좌이다. 이 학생소조는 줄곧 아주 활약적이였으며 일부 문장도 발표했다. 나와 한 학급에 다녔던 마흔래도 그 소조에 참가했었는데 그는 당년에 “홍학”에 푹 빠져있던 재간 많은 녀학생이였다. 그녀는 고중때 벌써 《홍루몽학술지》에 문장을 발표했는데 그것은 후날에 나온 “신개념작문”에서 우승을 하기보다 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할수 있었다. 우리의 소년시대는 “문화대혁명”후기였다. 그때는 젊은이들에게 적합한 문화가 발달되지 못했었기에 그들은 인차 성인들의 문화를 접촉하게 되였고 쉽게 그속으로 빠져들게 되였다. 소조에서는 주선생에게 특별강좌를 부탁했다. 주선생은 그번에도 “홍학”에 대하여 담론했다. 그는 《홍루몽》의 정취에 푹 빠져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가 장화시(葬花诗)를 읊으면서 도취되여있던 모습을 잊을수 없다. 강연을 하는 주선생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다. 그는 청중들의 반응 같은것에는 중시를 돌리지 않고 자기의 세계에만 푹 빠져있었다. 그는 마치 자기도 《홍루몽》중의 한 인물로 된듯싶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 세계는 우리의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인것 같았다. 그는 사실 그 세계에서 여유롭게 헤염치기를 더 바랐을것이다. 그는 가보를 헤아리듯이 판본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가세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그러한것들은 모두 학자의 직업적인 사업이 아니라《홍루몽》과의 마음의 투합이였다. 그후 나는 여러 장소에서 주선생을 만나게 되였다. 그의 여위고 허약한 신체와 쇠약한 시력 및 청력은 그의 여유로움을 저애할수 없었다. 이로보아도 주선생은 자기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주선생은 겉보기에 온화하고 조예가 깊어보였는데 전통적인 유학자의 풍도가 있었다. 말할 때 그는 목소리가 가늘고 부드러웠다. 그러나 내가 보건대 그의 성격은 아주 강렬하고 극단적인 면이 있었다. 우리들이 추측하는 조설근이나 소설에 나오는 가보옥과 비슷한데도 있었다. 이를테면 정을 위해서는 “어리석게”도 놀수 있는 기질이 있다는것이다. 이 “어리석음”이란 바로 일종의 강렬한 성격이고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끝없는 집착이다. 이러한 “어리석음”은 그의 재능과 충분하게 결합되였다. “어리석음”과 집념만이 아니라 넓은 흉금과 박식한 지식은 주선생으로 하여금 《홍루몽》의 신비한 경지에서 여유롭게 노닐게 했던것이다. 주선생의 재기는 줄곧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이면에서 그는 전종서선생과 아주 비슷하다. 그들은 워낙 외국어를 학습했지만 중국문화의 깊은 리해로 충만되여있었다. 주선생의 뛰여난 재간은 일찍 호적과 전종서 선생의 높은 긍정을 받았었다. 그는 양만리의 시에 주석을 단적도 있다. 그리고 서법을 론하거나 시사를 쓰고 감상하는데도 뛰여난 견해를 가지고있었다. 그의 문언시는 아주 뛰여나다. 가장 전기적인 이야기는 그가 조설근의 시를 모방하였는데 홍학자들이 진품이라고 단정했다는것이다. 모두들 그 시가 진짜 조설근의 손에서 나온것인줄로 알았던것이다. 나중에 주선생이 자기가 모방한것이라고 이실직고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어리석음과 재기는 바로 주선생의 령혼이였다.
고학을 하던 년대, 주선생은 어디에도 의지할데가 없어 중국의 전통속으로 돌아왔다. 그에게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그는 중국문화의 우월성과 아름다움을 굳게 믿었고 중화문화의 필연적인 복흥을 굳게 믿었던것이다. 중국문화에 대한 그의 강렬한 신념은 그로 하여금 그의 큰 관심과 여러 방면의 재능을 모두 그의 인상속에서 누구와도 비길수 없는 인재라고 느껴지는 조설근과 그가 창작한《홍루몽》에 쏟아부었다. 조설근과《홍루몽》에 대한 집념은 주선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어리석음과 재주를 모두 그 한점에 집중하게 했다. 주선생은 뛰여난 재능이 있는것만치 중화문화의 일오(壹奥)[i]에 대하여서도 체험이 깊었다. 그는 홍학자로 될 필요성이 완전히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재기로 보면 능히 전종서선생처럼 고금동서를 넘나드는 거인으로 될수 있었던것이다. 주선생은 영어에 아주 능했는데 오래전에 벌써 륙기의《문부》를 영문으로 번역하였었다. 나는 전에 주선생이 만약 홍학의 그 얼키고 설킨 시시비비에 말려들지 않았다면 지금 보건데 아주 자잘한것 같은 일들에 정력을 소비하지 않았다면 그가 이루어낸 업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컸을것이고 중화문화에 대한 그의 리해는 가능하게 더욱 넓게 퍼졌을것이라고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나는 또 주선생이 절대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을것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만치 주선생은 “어리석었던것”이다. 하지만 이런 “어리석음’과 그의 재기가 결합되였기에 그에게서는 고리타분한 냄새를 좀처럼 맡을수 없었다. 주선생은 절대 재기가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고증을 죽은 학문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는 범속하지 않은 자신의 깨달음으로 고증을 했다. 그는 뛰여난 시인처럼 자기의 창조성과 상상력으로 학문을 증실했던것이다. 주선생이 나와 같은 “홍학”애호자들을 제일 탄복시킨 일은 바로 “조선(曹宣)”에 대한 고증이다. 이것은 주선생의 재기와 사실이 결합된 제일 좋은 증명이며 또한 주선생의 제일 휘황한 고증이라고도 할수 있다. 그는 순전히 추단으로 출발하여 조설근의 할아버지 조인에게 조선이라고 부르는 형제가 있다고 제기하였다. 이것은 모두들 그 사람의 자를 “자유(子猷)”로 부르는데서 비롯된것이다. 《시경》과 같은 고서에서 “선”은 “유”와 관련이 있다. 이로부터 그 사람의 이름은 “조선”이지 절대 “조의”가 아니라고 판단했던것이다. 이 사실은 후에 나온 사료들에 의하여 증명되였다. 이러한 고증은 바로 주선생의 고금동서를 주름잡는 해박한 재기와 진실을 밝히려고 집념하는 “우직함”을 증명해주는것이다.
주선생은 사실 극단적으로 두가지 종류의 인물을 찾아헤맸다. 중화문화에 대한 그의 큰 관심과 서방의 충격아래에 있는 중화문화에 대한 사수는 그로 하여금 아주 원대한 문화적인 사야를 가질수 있게 했다. 하지만 그는 이상할만치 세부적인것들에 집념을 했고 고증에 집착했다. 하여 그는 시와도 같은 드넓은 심경과 조금도 어김없는 고증을 결합시켰던것이다. 그러다보니 간혹 사람들로 하여금 필요이상 과도하게 해석을 하는것이 아니냐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를테면 조설근의 가세에 대하여 주선생은 시종 “풍윤설”과 “료양설”을 고집했는데 치렬한 론쟁이 있었다. 지어는 부동한 설법을 가지고있는 사람들과 대인관계에서 응어리까지 가지고있었다. 사실 조설근이 “풍윤인”이라는것은 5대전의 사실로서 조설근의 창작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하지만 주선생은 여전히 조설근과 송나라의 조연의 관계를 이어놓으려고 했고 그로부터 조설근과 위진시대의 조씨가문을 련결해보려고 애를 섰다. 이것은 사실 중화의 “시경과 례기 전문가”의 핵심문제와 관계되는것이다. 조씨네 가문은 중원의 명문귀족으로부터 만주의 노예로 전락되였는데 그 상황이 매우 복잡하다. 때문에《홍루몽》의 위대함에 유전자적인 기초가 있게 되였다. 이러한 생각을 두고 우리는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할수 있지만 사실은 주선생의 시심이라고 할수 있다. 그는 조설근과 중화문화를 너무나도 사랑했었기에 제일 광대한 구상을 하지 않을수 없었을것이다. “홍학”은 현대 중국에서 제일 독특한 학술공간으로서 전통적인 중국문화를 제일 직접적으로 표현했는바 중화문화의 제일 직접적인 체현이라고 할수 있다. 그의 텍스트의 풍부함은 중화민족의 문화적미의 제일 직접적인 체현이다.
그는 전통과 현대성의 직접적인 련속성을 증명하였다. 하기에 “홍학”은 또한 현대적인 텍스트이다. 사람들은 현대적인 개인해방의 시각에서 이 텍스트를 상세히 밝혀내고있다. 《홍루몽》에는 현대와 전통적인 중국의 복잡한 풍정이 어울려있다. “홍학”은 소설연구외에도 현대적인 학술에 실제운행의 본보기를 제공하여주었다. 판본이나 가세 혹은 탐일(探佚)을 막론하고 모두 전통과 현대가 련결되는 한개 방면으로 된다. 주선생의 독특한 점은 그가 이 모든 점에 대하여 모두 중대한 공헌을 했다는것에 있다. 제일 보귀한것은 주선생의 시심과 재기와 학식이 이처럼 교묘하게 결합될수 있었다는것이다.
주선생이 타계하셨다. 우리는 다시 그와 같이 글재주가 뛰여난 천재적인 학자를 모실수 없을것이다. 력사적인 고증과 현대적인 방법이 결합되고 억압감속에서 창조력이 충만되였던 인물이 우리곁을 떠나셨다. 주선생은 현대중국의 하나의 자랑이다. 그는 자기의 전통이 진귀하다는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있으며 《홍루몽》이 있음으로 하여 이 나라에 진정으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화정신이 있다는것을 알려주고있다. 이 점은 어떠한 변화라도 개변할수 없는것이다. 주선생의 경지를 따를만한자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있을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참답게 이러한 흥미있는 서적들을 읽어내려갈것이며 주선생과 함께《홍루몽》과 조설근의 세계에서 마음껏 헤염을 칠것이다.
 
(최동일 역)
 
일오(壹奥):일음곤(壹音困), 주선생은 전에 한 홍학자의 문학과 사학 기초가 그닥지 않다면서 이 학자가 일(壹)을 호(壶)라고 읽었는데 사실 이것은 부동한 뜻을 가진 두글자라고 지적했다.
 
 《중국당대문학작품선집》조선문판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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