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얘들아, 들었니? 최신 소식이다.>> 문소리와 함께 승화가 교실로 뛰여 들어오며 소리쳤다. 승화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고있었다. 얼굴은 방금 뛰여와서인지 빨갛게 상기되여있었다. 하지만 동학들은 별로 궁금해하는 눈치를 보이지 않았다. 승화에게는 노상있는 행동이였던것이다. 아니나 다를가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승화쪽에서 되려 숨기지못하고 내용을 방송했다. <<방금 내눈으로 똑똑히 봤다. 은경이, 은경이가 걔 어머니와 함께 교무실에 들어가더라.>> 승화는 손까지 흔들며 기본내용을 다 전달하고는 어떠냐 하는듯 동학들을 빙~ 둘러보았다. 삽시에 동학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은경이가 어떻더니? 몸이 몹시 축했더니?>> 누군가 승화에게 물었다. <<아니야, 내 보기엔 원래 보다 더 실해진것 같았어. 음~ 원래 미츨한 장미였다면 지금은 푹 퍼진 함박꽃이라 할가?>. 승화가 두 손으로 활짝 핀 함박꽃을 그려보이며 신비하게 두눈을 껌뻑거렸다. <<자식, 함박꽃 좋아하네. 암튼 꽃이면 되는거지 뭐.>> <<은경이가 마음고생을 무지도 했을 거다.>> <<그래,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살하려고까지 했겠니?>> 동학들이 은경이를 두고 걱정을 하고있을 때 출입문이 열렸다. 담임선생님의 뒤로 은경이가 따라 들어왔다. 승화의 말대로 은경의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다. 전에 쩍하면 눈을 올롱하게 뜨고 <<그건 말이다…>>하고 서두를 떼던 도고하고 깔끔하던 은경이가 아니였다. 동학들은 측은한 눈길로 은경이를 바라보았다. <<은경이, 제자리에 가서 앉아라.>> 담임선생님께서 <<제자리>>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은경이는 머리를 수긋한채로 두번째 줄 세번째 책상을 찾아 들어갔다. 바로 미림이의 뒤자리였다. 은경이는 미림이의 옆을 지나다가 책상우에 놓인 미림이의 필기장을 팔로 쳐서 땅에 떨어뜨렸다. 툭! 하고 가벼운 소리가 났다. 은경이는 와뜰 놀라며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괜찮아. 은경아.>> 미림이가 허리를 굽혀 필기장을 주으며 상냥스럽게 말했다. 갑자기 은경이가 미림이의 손에서 필기장을 나꿔채서 책상우에 콱 하고 던졌다. <<괜찮다구? 속에 없는 말을 하지 말아! 내가 모르는 줄 아니?>> 은경이의 너무나도 신경질적인 반응에 미림이는 깜짝 놀라서 멍하니 은경이를 건너다 보았다. 은경이의 눈은 이글이글 타고있었다, <<미안, 은경아. 책이 떨어지는거야 늘 있는 일이지 뭐. 정말 괜찮아.>> 미림이가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러건 말건 은경이는 자기의 자리에 가서 앉더니 책상에 머리를 틀어박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이럴줄 알았어. 이럴줄을 알았다니까. 너희들 원래 부터 날 미워하고있었지? 그래, 날 눈에 든 가시처럼 미워했던거야.>> 동학들은 모두들 숨을 죽이고 은경이를 지켜보았다. 조용한 교실에서는 은경이의 흐느낌소리만이 구슬프게 울려퍼졌다. 잠자코 은경이를 지켜보고있던 담임선생님께서 조용히 은경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은경아!>> 담임선생님께서 은경의 어깨를 다독이며 나지막하게 불렀다. 은경이는 화들짝 놀라며 머리를 쳐들었다. 은경의 눈에는 공포와 증오와 애절함이 섞여서 흐르고있었다. <<은경아, 마음을 넓게 가지고 옛날처럼 동학들을 대해라, 동학들은 언제나 은경의 편이란다.>> 담임선생님께 은경의 어깨에 부드럽게 오른손을 올려놓으며 말씀하셨다. 은경의 입가에 경멸에 찬 웃음이 찰랑 스쳤다. <<아닌데요. 얘들은 모두가 위선자들이예요. 뒤에서 모두들 내가 죽었으면 했을 거에요. 내가 죽지않고 돌아오니 심술이 나 하는 거예요.>> 은경이가 동학들을 쏘아보며 이사이로 한마디한마디 내뱉었다. 은경이의 목소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동학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은경아,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제발. 우린 모두 네가 빨리 회복되기를 손꼽아 빌었단다. 이건 진심이야.>> 미림이가 머리를 돌리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갑자기 은경이가 <<악!>> 하고 소리치며 일어났다. <<이 여우같은년, 마귀같은 년! >> 은경이는 와락 달려들어 미림이의 머리칼을 잡아챘다. 미림이는 <<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두손으로 자기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담임선생님께서 힘껏 은경이의 팔을 잡아당겼다. 은경이는 미림이의 머리칼을 놓지 않으려고 바락바락 힘을 썼다. <<은경아, 이러지 말어, 은경아!>> 담임선선생님께서 미림이의 머리칼을 잡은 은경이의 손을 뜯어내며 급하게 소리쳤다. <<은경아, 이러지 말어. 이러면 너만 더 힘들어지잖니?>> 군이가 뛰여가서 담임선생님을 도와 은경이의 손을 뜯어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은경이는 드디여 미림이의 머리칼을 잡았던 손을 풀었다. <<너희들, 조심해라. 다 없애버리고 말겠다. 다 없애버려!>> 은경이는 누구에게라 없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가방을 확 나꿔채가지고 휑~하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은경아, 잠간만.>> 담임선생님께서 은경이를 따라 나가며 애타게 소리쳤다. 망가져가는 제자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마음이 찢기는 순간 같았다. 담임선생님의 목소리는 안타까움에 파르르 떨리고있었다. 뛰여나가는 담임선생님을 멍하니 바라보던 미림이가 갑자기 얼굴을 싸쥐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꺽꺽 하는 울음소리는 그렇게도 슬프게 고요한 교실을 녹이고있었다. 은경이가 뇌과병원 정신과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한 사람도 승화였다. 교무실 앞을 지나다가 은경이 어머니가 담임선생님과 이야기하는 소리를 엿들었다는 것이였다. 누구하나 뭐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머리를 수긋하고 책만 들여다보았다. 도무지 서로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담임선생님께서 하루 총결을 지으며 은경이에 대해서 말씀해서야 승화의 말이 사실임이 증명되였다. <<선생님, 이번 주 토요일에 저희들이 은경이를 보러 가겠습니다.>> 군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담임선생님께서 머리를 끄덕이셨다. <<그래, 너희들의 진정으로 은경의 얼어버린 마음을 녹여줘라. 지금 은경이에게 제일 수요되는 약은 아마도 너희들의 진정일것이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말을 마치고 동학들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의 눈길이 강한 빛을 뿜고있었다. 군이는 선생님의 타는듯한 그 눈길을 보면서 갑자기 목이 메여왔다. 담임선생님이 녀자분이라면 어떨가 하는 생각이 야릇하게 머리를 스쳤다. 군이는 담임선생님께서도 지금 속으로 눈굽을 찍을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눈굽에 주먹을 올렸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불깃불깃한 눈으로 묵묵히 교실을 나갔다. 하지만 동학들은 누구하나 일어날 념을 하지 않았다. 군이가 조용히 교단에 올랐다. <<얘들아, 토요일까지 하루가 남았구나. 하루 동안 은경이에게 보낼 선물을 준비하자. 물건으로가 아니라 저마다의 진정으로 말이다. 은경이가 마음이 편할 때 볼수있게 편지를 한통씩 쓰는게 어떻겠니? >> 군이는 동학들에게 고마운 눈길을 보냈다.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맞이주제반회도 얼마 남지않았다. 아마도 은경이는 이 주제반회에 참가할수 없을것 같구나. 어느 순간, 은경이가 우리들의 편지를 보고 자기의 마음을 적을수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6년동안 함께 했던 우리의 우정을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주제반회에서 진실하게 이야기 할수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우리 함께 은경에게 힘을 주자.>> 누군가 먼저 조용히 박수를 쳤다. 삽시에 교실에서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군이를 비롯한 몇몇 학급간부들이 동학들의 편지를 가지고 뇌과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토요일 오후 3시경이였다. 은경이는 2층 병실에 입원해있었다. 군이는 복도를 걸으면서 창문으로 병실안을 들여다보았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병실안을 분주히 거닐고있었다. 은경이는 214호 방에 들어있었다. 네사람이 한방을 쓰고 있었는데 모두 은경이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호사가 문을 떼고 들어서며 은경이를 불렀다. <<친구들이 널 보러왔다. 은경아.>> 멍하니 벽을 마주한채 동상처럼 앉아있던 은경이가 군이네를 향해 머리를 돌렸다. 눈길은 여전히 굳어진채로 초점이 없었다. <<은경아, 우리가 보러왔다. 동학들이 너에게 쓴 편지를 가지고 왔다.>> 군이가 은경의 옆으로 다가가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은경아. 정말 보고 싶었다. 너두 우리가 그리웠지?>> 미림이가 은경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미림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던 은경이가 픽 웃어버렸다. <<우리 아버지 부자다. 바쁜 일이 있으면 나에게 말해라. 다 해결된다니까.>> 미림이는 은경의 말에 뭐라고 대답할수가 없어서 담당호사에게 눈길을 돌렸다. 담당호사가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 은경이와 맞장구를 쳐주었다. <<은경이 참 좋겠다. 아버지가 부자 돼서. 은경아, 우리 빨리빨리 치료하구 나가야지? 아버지가 집에서 기다리는데.>> <<히히히히… 우리 아버진 감옥에 안간다. 우리 아버진 부자거든. 우리 아버지, 엄청 돈이 많거든. 우리 아버지 부자다…>> 은경이는 두서없이 주절거리고있었다. 군이네는 가슴아프게 은경이를 바라보다가 가방에서 가지고 온 편지들을 꺼내서 은경이에게 내밀었다. <<은경아, 보고싶을 때 봐라. 친구들이 널 그리며 쓴 편지란다. 모두들 네가 빨리 낫기를 기다리고있단다. 우린 한 반에서 공부하던 동창들이 아니냐? >> 은경이는 군이의 손에서 편지묶음을 받아 가슴에 꼭 가져다댔다. 초점없이 데글거리던 두 눈을 꼭 감았다. 감겨진 눈에서 구슬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있었다. 제 정신으로 돌아온걸가? 군이네는 긴장해서 담당호사의 얼굴을 살폈다. 담당호사도 군이네와 마찬가지로 은경이를 주시하고있었다. 갑자기 은경이가 손에 든 편지묶음을 담당호사 앞에 내밀며 애원에 차서 소리쳤다. <<이 돈을 다 드리겠습니다. 집을 팔아서라도 받은 돈을 다 물어드리겠습니다. 우리 아버질 감옥에 넣지 마세요. 네? 우리 아버지를 집에 보내주세요, 아버지~>> 은경이는 통곡하며 벽구석을 찾아 쪼크리고 앉았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당황한 눈길을 마구 날리고있었다. <<진정제주사를 맞고 한 잠 자게 해야겠다. 너무 흥분해서 저런다.>> 담당호사가 군이를 보고 말했다. 군이네는 묵묵히 은경이에게 손을 흔들어보이며 병실에서 나왔다. 긴 복도를 지나며 누구도 말이 없었다. 뚜벅뚜벅 발걸음소리만이 청승스럽게 긴 복도를 울렸다. <<참, 너무 잔인하다. 어쩜 은경이가…>> 밖으로 나오자바람으로 미림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누구를 탔하겠니? 은경이 아버진 응당한 벌을 받은거 잖아. 집을 팔아서 은경이 아버지에게 수속비를 낸 사람들도 많다던데…>> 누군가 미림의 말을 받았다. <<그래, 은경의 아버진 응당한 벌을 받았다고 하자. 하지만 은경인 저렇게 안 돼도 되잖니?>> 미림이가 흥분에 들떠 목소리를 높였다. 미림이가 어째서 그렇게 흥분하고있는지 군이는 은근히 알것같았다. 군이는 미림의 말을 긍정하며 자기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미림이 말이 맞아, 은경인 얼마든지 저렇게 안될수도 있었지. 하지만 은경이는 평소 자기의 아버지를 너무 믿었던거야. 우상처럼 믿던 아버지가 사고를 치니 일시 방향을 잃은거지 뭐. 생활의 방향이 없어지니 이 세상 무엇이나 다 무서워 보이고 자신 없어진거지.>> <<참, 난 그것을 리해하지 못하겠단 말이다. 유치원이나 1, 2학년 때라면 몰라도, 고급학년에 올라온 후에는 저절로 자기의 주장을 길러야 하는게 아니니? 생활에서 자기의 주장이 없다면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의지하면서 살아야 하는거야. 평소에는 보호산이 있어서 큰 소리를 치며 당당한체 할수있어도 그 보호산이 없어지면 생활의 방향을 잃게되는거지. 은경이가 이 점을 더욱 잘 말해주잖아?>> 미림이는 마치도 온갖 세파를 다겪은 누나가 동생들을 가르치듯 오돌차게 자기의 뜻을 펼쳐나갔다. 군이는 알것같았다. 이것이 미림이의 진정이고 미림이가 가파로운 14살 인생길에서 배우고 깨친 인생의 철리라고 생각했다. 군이는 머리를 끄덕였다. 사람이란 아픔속에서 크고 크면서 살아가는 도리를 깨치는 것이라고 믿고싶었다. 깨치는 도리가 많을수록 세상을 살기가 더 쉬워질것이라고 생각했다. 군이는 머리를 건듯 쳐들고 앞을 향해 힘있게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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