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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최동일 장편소설-천사는 웃는다

미움이란 없다
2010년 03월 10일 15시 15분  조회:1807  추천:0  작성자: 동녘해
미움이란 없다

승화의 생일파티가 끝난것은 오후 2시무렵이였다. 군이와 친구들은 승화 아버지의 배웅을 받으며 승화네 집에서 나왔다.
규호는 자기가 승화의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은것이 못내 감격스러워 무시로 벙글거리고있었다. 미림이는 그러는 규호를 재밌다는듯 바라보며 까르르 입을 열었다.
<<규호야, 너 오늘 벙어리 례단 받은 거야?>>
규호가 시무룩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수 있지. 히히히히. 쩍하면 답새겨 놨는데, 승화가 무슨 생각하구 나까지 초대했을가? 히히히히… 초대하지 않았다가 내가 알면 재미 없을것 같았던 거지, 흥! 아마 그래서 일거야.>>
규호의 말을 들으며 미림이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있었다. 평소 규호가 승화를 살갑게 대해주지 않는다는것은 동학들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였기 때문이다.
<<승화, 그 애가 전화번호를 잘못 누른게 너한테로 갔겠다.>>
미림이가 짐짓 규호의 비위를 긁어댔다. 과연 미림의 말에 규호가 목소리를 높이며 반박했다.
<<이것 좀, 모르면 입을 다무시죠, 난 전화를 받은게 아니라, 어제 오후 하학할 때 벌써 기별을 들었다. 승화가 직접 자기의 생일파티에 꼭 와달라구 하더라.>>
<<정말? >>
<<두말이면 잔소리지.>>
규호가 씨뚝해서 대답했다.
<<이상한데, 아마도 승화, 그애가 너에게 사탕폭탄을 던지는것 같다.>>
미림이가 얼굴에 묘한 웃음을 띄우며 규호를 향해 까르르 웃어보였다.
<<이 렴치없는것들아, 방금 생일파티에 가 잘 대접받구 나오면서 그건 왜 씹구있니? 승화에게 미안하지두 않아?>>
군이가 얼굴에 웃음을 날리며 악의 없이 핀잔을 주었다. 그 바람에 규호도 미림이도 우습다고 깔깔 소리내여 웃어제꼈다.
<<욕을 먹어도 그렇게 좋니? 웃는걸 봤으면… 근데 규호야, 너 오늘 왜 늦었니?>>
청년공원 대문을 지나며 군이가 말머리를 돌렸다. 오늘 승화의 생일파티에 규호가 약속 시간보다 반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던것이다. 군이의 물음에 규호는 깜짝 놀라는듯싶더니 잠간 군이와 미림이의 얼굴을 일별했다.
<<그럴 일이 있었다. 우리 공원에 들어가 앉을가?>>
해맑던 규호의 얼굴에 옅은 구름이 스쳤다. 군이와 미림이는 가볍게 규호를 향해 머리를 끄덕였다. 규호가 먼저 공원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라일락이 탐스럽게 피여난 오솔길섶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갈돌을 예쁘게 깔아놓은 오솔길 아래에는 아담한 인공호수가있었다. 인공호수에서는 빠알간 금붕어들이 자유롭게 헤여놀았다.
양뿔머리를 한 예쁘게 생긴 녀자애가 엄마의 손을 잡고 금붕어를 구경하고있었다.
<<엄마, 금붕어도 엄마가 있나?>>
녀자애가 까아만 두눈을 깜빡이며 어머니에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니의 얼굴에 금방 웃음꽃이 피여났다.
<<금붕어도 엄마가 있지. 금붕어 엄마는 한번에 예쁜 금붕어새끼를 여러마리 낳는단다.>>
<<그럼 저 금붕어들은 다 쌍둥이겠네.>>
녀자애가 또 금붕어를 가리키며 종알거렸다. 그바람에 녀자애의 어머니도 웃고 군이네도 웃었다.
<<얼마나 귀엽니?>>
미림이가 속삭이듯 말했다.
<<좋을 때지… 근심도, 걱정도 없구, 아마도 저 녀자앤 이 세상이 다 금붕어처럼 빠알갛게 보일거다.>>
<<하하, 요즘은 웬 일들이야. 너희들 모두가 시인이 되는 기분이다.>>
군이가 규호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규호는 머리를 돌려 군이를 바라보더니 옆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어 호수에 뿌렸다.
<<오늘 갔어. 아까 기차역에 나갔다 오느라고 늦은거야.>>
규호의 말에 군이는 일시 갈피를 잡지 못해서 되물었다.
<<누가 갔니?>>
<<어디로 갔기에?>>
미림이도 한술 떴다. 규호는 다시 한번 작은 돌멩이를 주어 호수에 던져 넣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어머니라는 사람이 영~ 가버렸다.>>
<<아,>>
군이가 신음비슷한 소리를 냈다.
<<어머니라는 사람이라니? 그런게 어딨니? 어머니면 어머니구 아니면 아닌거지.>>
미림이가 규호의 곁으로 한뼘 다가 앉았다.
<<떠난다고 전화가 왔더니?>>
<<아니, 지난 목요일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리혼수속하러 갔었어, 떠나면서 말하는거야, 리혼수속이 제대로 되면 토요일에 북경으로 들어간다구. >>
규호는 잠간 말끝을 맺고는 두손으로 땅을 짚고 머리를 쳐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갑갑해나는 모양이였다. 그때까지도 무슨 영문인지를 확실하게 모르고있는 미림이는 분위기를 보니 끼여들 틈이 보이지 않아서 참견은 못하고 그저 규호만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그래서 오늘 역전에 나갔댔구나. 잘했다.>>
군이가 진심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군이야, 너두 그렇게 생각하니?>>
규호가 군이에게 눈길을 돌렸다. 촉촉히 젖어오르는 규호의 눈길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있는듯싶었다. 군이는 규호를 향해 말없이 무겁게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규호는 감격어린 눈으로 군이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진심으로 자기를 리해해주고 믿어주는 군이를 두고 규호는 마음속으로부터 감격해 하는 모양이였다. 규호가 말을 이었다.
<<첨엔 역전에 나가지 않으려고 생각했었다. 어머니를 증오하기까지 했거든. 근데 어머니가 떠나겠다는 날이 가까와 올수록 마음이 불안해나는거야. 그래서 그냥 어떤 모습을 하구 떠나는가를 보기나 하자구 나가기로 했지.>>
<<너의 어머니가 아버지와 리혼하구 다른 데로 간거니?>>
미림이가 끝내 궁금증을 참지못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규호는 미림이에게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미림이가 안스러운듯 젖어든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 아픔이 있었구나.>>
<<어머니는 혼자 대합실밖에서 서성거리고있더라. 어머니는 나를 보더니 엎어질듯 달려오는거야. 와서는 나의 목을 끌어 안고 마구 울기 시작하는거야.>>
군이도 미림이도 조용히 규호의 눈길을 지켜 봐 주었다.
<<첨엔 그냥 말못할 반감이 생겨서 어머니의 품을 벗어나려고 몸을 비탈았지. 그럴수록 어머니는 더 으스러지게 나를 껴안는거야. 도무지 뺄수가 없었어. 난 어머니에게 그런 강한 힘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거든. 그래서 어머니에게 그냥 몸을 맞겨버렸어. 어머니는 오래도록 말 한마디 못하고 울기만 하는거야.>>
규호는 잠간 하던 말을 줄이고 다시 머리를 쳐들었다. 눈길은 어느새 저 하늘을 떠가는 구름송이에 가 멎어있었다. 유유히 떠가는 구름쪼각과 함께 규호의 젖어버린 눈길도 어디론가 흘러가고있었다. 어쩜 흘러가는 구름에서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내려고 집착하는것 같았다. 미림이는 또 다른 규호를 보는것 같았다. 평소 말없이 있다가는 엉뚱한 일들을 깜짝깜짝 벌려내는 우직한 규호의 마음속에도 14살 소년의 여리디 여린 감성이 숨어있음을 보아낼수있었던것이다.
<<그럼 어머닌 영 떠나버린거니?>>
미림이가 규호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겠지뭐, 어머니는 나를 붙들고 한참이나 울기만 하다가 한마디 하더라. 나에게 미안하다는거야. 그말을 남긴후 어머니는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대합실로 뛰여들어갔어. 따라 들어가보니 어머니네 식구들이 모두 나와 있더라. 어머니가 도망간후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였지. 서로가 어색한 기분이여서 뭐라고 말할것도 없구, 난 개찰구에까지 나갔댔어. 기차가 떠나갈 때까지 바라보았지. 그때까지 울고있는 어머니가 차창으로 보여왔어.>>
<<규호야, 너의 어머닌 너를 고맙게 생각할거다. 아무래도 떠나는 사람인데 좋은 추억을 가지고 떠나게 하는게 얼마나 좋니? 너 오늘 잘 나간거야.>>
군이가 규호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아주었다. 규호는 고맙다는듯 머리를 끄덕였다.
<<인젠 어머니를 증오하지 않기로 했다. 증오해서 뭘해. 필경은 나를 키워준 분인데. 어디 가서든 잘 살면 좋은거지 뭐. 인젠 나에게서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없어졌어. 그래 미움이란 없는거야.>>
애써 담담한체 목소리를 가다듬는 규호의 얼굴은 빠알갛게 피여오르고있었다.
<<그럼 너의 아버진 어쩌니?>>
미림이가 근심스러운듯 물었다.
<<울아버지?>>
규호가 짤막히 되물었다. 미림이가 여전히 정색해서 머리를 끄덕였다.
<<새 장가보내지무. 난 꼭 울아버지를 다시 장가 보낼거야.>>
규호가 신심에 차서 이야기를 했다. 군이는 열띈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는 규호를 이윽히 바라 보았다.
<<우리 아버지, 인젠 정말 행복해야 해! 난 아버지보구 새 어머니를 데려오라고 말하겠다. >>
규호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있었다. 절대 롱담이 아닌것 같았다.
<<규호야, 너, 지금은 녀자들이 안 밉니?>>
군이는 피뜩 떠오르는것이 있어 규호에게 짤막하게 물었다. 규호가 후~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몰라, 하지만 우리 아버지에겐 녀자가 있어야 해. 누군가 옆에 있어야 울아버지가 행복할수있을거야. 외롭지 않을거야.>>
<<옆에 네가 있잖니?>>
미림이가 끼여들었다.
<<아니야, 울 아버진 나에게 고생스럽다는 말을 안하셔. 내 앞에서 아버진 그냥 강한체만 하거든. 나는 그게 아닌줄을 안지 오랜데.>>
그말을 들으며 군이가 정곡을 찔렀다.
<<아버지만을 위해서 새 어머니를 모시겠다는거니? 넌 새 어머니가 필요없구?>>
<<내가? 나라면 문제가 달라지지. 난 정말 녀자가 싫거든, 으~ 생각만 해도 불안해나거든.>>
<<그럼 장가는 어떻게 갈건데?>>
미림이가 피씩 웃음을 날리며 바투 들이댔다. 규호도 피씩 따라 웃더니 말했다.
<<누가 장가를 간댔어? 난 독신주의야, 울아버지의 삶이 산 교재로 날 그렇게 가르치는데? 죽어도 난 울아버지처럼은 안 살거야. 녀자들, 헤잇, 어떻게 믿어.>>
규호는 또 무언가 격한 감정이 치미는지 조약들을 주어 호수에 던졌다. 돌은 수면에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잔잔한 파문을 일어갔다. 미림이는 잠간 퍼져가는 파문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독신주의는 무슨 얼어죽을 독신주의야? 난 커서 좋은 남편을 만나 아들 낳구, 딸두 낳구, 잘 살고싶은데.…>>
오손도손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자기의 미래를 그려보는지 미림의 얼굴에는 달콤한 미소가 퍼져가고있었다. 규호가 그러는 미림이에게 찬물을 껴얹었다.
<<시집 좋아하고있네. 너같이 드살짝이 센 계집애를 어느 남자가 데려간대? 수호전의 흑선풍 리규나 환생하면 모를가? 크크크…꿈을 깨라, 꿈을 깨!>>
<<너 리규호!>>
미림이가 주먹을 메고 달려들었다. 규호가 벌떡 일어나 뛰여가며 소리쳤다.
<<시집간대요~ 시집간대요~>>
군이도 그들을 따라 일어섰다. 미림이는 종주먹을 쥐고 규호를 쫓아가고있었다. 규호의 건들건들한 목소리가 차분한 5월의 해살을 헤치며 바람에 날려왔다.
<<시집간대요~ 시집간대요~ 말괄량이 미림이가 시집비유 났대요~>>
규호와 미림이는 깔깔 거리며 저쪽까지 갔다가는 돌아오고 돌아왔다가는 또 뛰여가며 시름 없는 한순간을 즐기고있었다.
<<어머니를 증오하지 않기로 했다… 인젠 나에게서 미움이 없어졌어, 그래 미움이란 없는거야.>>
군이는 흥분에 들떠 이야기 하던 규호의 목소리가 방불히 귀전을 스치는듯싶었다. 미움을 긁어버린 14살 소년의 마음속 끝자락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여오르는 맑은 향기가 바람에 날려오는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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