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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최동일 장편소설-천사는 웃는다

아픔속에서 크는 나무
2010년 03월 10일 15시 17분  조회:1767  추천:0  작성자: 동녘해
아픔속에서 크는 나무

군이네는 끝내 은경이와 한마디 대화도 나누지 못한채 병원을 나왔다. 그들은 모두 은경의 모습에서 큰 충격을 받았는지 말 한마디 없이 머리를 푹 숙이고 걸음만 재우쳤다. 시립병원 앞에있는 공공뻐스정류소에서 친구들은 제 각기 흩어졌다. 미림이랑 몇몇은 7선 뻐스를 타고 먼저 떠났다.
<<곧추 집으로 가니?>>
규호가 군이 옆으로 다가서며 조용히 물었다.
<<그래, 집으로 가야지. 저녁 때가 다 되는데.>>
군이가 서산에서 빨갛게 타오르는 석양을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지, 군이야. 넌 여기서2선을 기다렸다가 타고 가야지?>>
규호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서운함이 깃들어있었다. 군이는 직감적으로 규호에게 무슨 할 말이 남아있음을 느꼈다.
<<규호야, 너, 3선을 타려면 신문사역에 가야지 않니? 출판사쪽으로 해서 두 정거장을 더 가야 도착할수있는가?>>
<<그래.>>
규호가 머리를 끄덕였다.
<<가자, 내가 널 동무해줄게.>>
<<넌 어떻게 가자구?>>
<<괜찮아. 3선을 타고 가다가 북동시장역에서 내려 두정거장 정도 더 걸으면 집에 도착하는데 뭐.>>
<<그래두 어떻게 그렇게 돌아가겠니?>>
규호가 미안스럽다는듯 군이를 바라보았다.
<<가자. 신체단련을 한다고 생각하지 뭐.>>
군이는 규호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규호도 인차 군이를 따라섰다. 군이와 규호는 잠간 말 없이 조용히 걸음만 옮겨놓았다.
<<군이야~>>
규호가 갑자기 군이를 바라보며 짧막하게 불렀다.
<<어, 규호야 왜?>>
<<아무리 생각해도 울아버지, 어머니와 리혼하는게 옳은것 같다.>>
규호의 목소리는 몹시 가라앉아있었다. 군이는 잠간 걸음을 멈추고 규호를 뚫어지게 건너다보았다. 지난번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리혼을 두고 그렇게 흥분하던 규호의 변화가 이상하게 생각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리혼하는게 옳은것 같다구?>>
규호는 군이를 보며 힘껏 머리를 끄덕였다.
<<너, 지난번에 뭐라 했니? 어머니가 기어이 아버지와 리혼하겠다면…>>
군이는 뒤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정말 리혼하면 어머니를 죽여버리겠다며 절규를 하던 규호의 그 말을 차마 다시 옮길수가 없었던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규호가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확실하게 말했다.
<<어떻게?>>
<<리혼하는게 아버지가 행복해지는 길이야, 난 그렇게 믿어. 나도 인젠 심리준비가 다 됐구.>>
<<너의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시니?>>
<<어제 밤에 아버지께 나의 생각을 말했다. 아버지도 생각해 보신다 했어.>>
군이와 규호는 말하면서 신문사 앞의 청년공원까지 걸어왔다.
<<가자, 청년공원에 들어가 잠간 앉았다 가자.>>
군이가 규호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들은 나무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규호가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규호가 군이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나눈지 이틀이 되던 날 저녁무렵, 규호의 어머니는 정말 규호네 집을 찾아왔다. 그때까지 어머니가 설마 진짜 아버지를 찾아올수있을가 하는 생각으로 어머니가 왔다는 사실을 아버지께 말하지 않고있던 규호는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출연에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랐다.
<<가세요. 어서 돌아가세요. 아버지가 금방 돌아와요.>>
<<안돼, 아버지를 보고갈거다. 만나서 직접 말해야겠다.>>
어머니의 태도는 뜻밖으로 몹시도 강경했다.
<<그럼 있으세요. 내가 나갈테니까.>>
그냥 지청구만으로는 어머니를 돌려보낼수 없음을 느낀 규호가 밖으로 나와 버렸다. 어머니가 집에 온 사실을 먼저 아버지께 말씀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규호는 집옆에 난 골목길을 따라 종종 걸음을 놓았다. 뻐스역까지 거의 도착할 무렵에야 규호는 삼륜차를 몰고오는 아버지와 마주쳤다.
<<규호야, 너 어디로 가니?>>
아버지께서 삼륜차에 앉은 대로 반갑게 소리쳤다. 규호는 아버지 곁으로 뛰여가서 대답했다.
<<어디로 가긴요. 아버지 마중을 나왔죠.>>
<<그래?>>
아버지는 매우 기뻐하셨다.
<<빨리 올라 타라. 제꺽 가자.>>
<<아니요. 아버지, 제가 밀게요. 걸읍시다.>>
<<허허허, 그래? 그것도 좋지. 아들하구 나란히 걸어본지도 오랜데.>>
<<주세요. 제가 밀게요.>>
규호가 삼륜차손잡이를 잡았다
<<괜찮대두. 빨리 가자.>>
아버지께서 삼륜차를 밀며 걸음을 옮겼다. 군이는 자기 앞에서 걸어가시는 아버지의 뒤모습을 잠간 응시했다. 허리를 구부정하고 삼륜차를 미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렇게도 작아보였다.
<<아버지,>>
규호가 아버지곁으로 다가서며 나직히 불렀다.
<<어.>>
아버지께서 머리를 돌렸다.
<<아버지께 하지못한 말이 있어요.>>
<<그게 뭔데?>>
아버지께서 다잡아 물으셨다. 규호는 잠간 머뭇거리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집에 어머니가 와있어요.>>
<<뭐라구?>>
아버지는 자기의 귀를 의심하는듯싶었다.
<<집에 어머니가 와있다구요.>>
<<엄마가? 집에 왔다구? 엄마가 왔다구?>>
아버지가 어린애처럼 환성을 질렀다. 규호는 그러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가자, 빨리가자. 어때? 어머니가 몹시 축하셨지? 많이 힘들어 보이지?>>
아버지는 규호를 재촉했다. 규호는 아버지의 독촉을 못이겨 삼륜차에 올라 앉았다. 규호는 차마 그처럼 기뻐하시는 아버지께 어머니가 리혼을 제기하러 왔다고 밝힐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힘차게 페달을 밟으셨다. 아버지의 얼굴은 해덩이가 내려앉은듯 활짝 밝아있었다. 어머니가 떠나가신후 규호는 그렇게 밝은 아버지의 얼굴을 본 기억이 없었다. 저 밝은 아버지의 얼굴에 쏟아질 폭풍우를 생각하니 규호는 정말 미칠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집문앞에 나와서 규호네를 기다리고있었다. 먼저 어머니를 발견한 아버지께서 삼륜차에서 뛰여내려 소리치며 어머니를 향해 뛰여갔다.
<<여보, 여보~>>
한달음에 어머니옆에 다달은 아버지가 어머니의 목을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올줄 알았소. 돌아올줄 알았다니까. 규호의 엄만데. 우리 규호의 엄만데…>>
분명 아버지의 목소리는 떨리고있었다.
<<네. 규호 아버지. 그 동안 잘 있었어요?>>
어머니가 아버지의 품에서 몸을 빼며 아무 색채도 없는 다디찬 목소리로 인사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그런 기분도 느끼지못하시고 다시 어머니의 손을 와락 잡았다.
<<됐소. 돌아왔으니 됐소. 고맙소. 정말 수고했소.>>
아버지는 흥분으로 어머니의 손을 마구 흔들더니 규호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규호야. 가자. 우리 시내에 가서 식당놀이를 하자. 엄마의 환영식을 해야지.>>
아버지의 얼굴은 여전히 싱글거리고있었다.
<<아니예요. 규호 아버지, 오늘은 안돼요. 할말도 있구요.>>
어머니께서 여전히 차디찬 목소리로 말했다.
<<할말이라니, 천천히 하면 되지, 이게 얼마만이요.>>
<<중요한 말이에요. 아마도 오늘 저녁에 꼭 해야할것 같아서요.>>
어머니는 몸을 돌려 먼저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어머니는 과연 아버지에게 돌아온 사연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버지의 얼굴은 약간 경련을 이르키는듯싶더니 점차 검푸르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주먹으로 구들바닥을 탁 내리치며 투우장에 나선 성난 황소처럼 소리쳤다.
<<리혼이라니? 미친소리를 걷어치우오. 리혼이라니!>>
<<인젠 쏟아놓은 물이예요. 저도 어쩔수가 없어요>>
어머니도 사뭇 견결하게 나왔다.
<<생각해보세요. 다시 오겠어요.>>
아버지에게 자기의 뜻을 다 밝히고 난 어머니는 뒤도 돌아보지않고 돌아갔다. 아버지는 사라져가는 어머니의 뒤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아버지는 긴긴 밤을 엎치락뒤치락 하며 잠을 못이루고 있었다.
이튿날, 어머니는 또 아버지를 찾아왔다. 아버지의 태도는 여전히 견결했다. 지금처럼 갈라져있더라도 리혼만은 절대 안된다는것이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행악질을 해대며 꿈을 깨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날밤, 어머니가 돌아가자 아버지는 혼자서 흰술을 꾸역꾸역 마셔대기 시작했다. 어느새 술 한병이 굽이났다. 아버지는 술독이 올라 뻐얼개진 눈으로 안스럽게 규호를 바라보았다. 규호는 그러는 아버지를 지켜보기 괴로와 자기의 방으로 올라갔다.
아버지는 자리도 펴지않고 옷을 입은채로 누웠다. 잠간 잠드신듯싶던 아버지께서 일어나 규호의 방문을 열었다.
<<규호야, 아버지는 정말 너에게 에미 없는 아픔을 더는 주지말자고 그랬는데. 이 불쌍한것아.>>
규호의 친어머니가 행방없이 사라진후 새 어머니를 친 어머니로 알고 크는 규호에게 다시는 어머니의 사랑을 잃지 않게 하자고 그렇게 바라는 아버지였던것이다.
이튿날에도 아버지는 의연히 삼륜차를 몰고 일거리를 찾아나섰다. 규호는 그날 밤에도 아버지께서 혼자 술을 마시고 이불속에서 내내 한숨을 쉬는 것을 눈치채고있었다.
그후에도 어머니는 두번이나 아버지를 찾아와 울고불며 리혼을 해달라고 란리를 피우고 갔다. 아버지는 번마다 안된다고 잡아떼다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후 술을 마시고 한숨으로 밤을 샜다.
아픔에 치를 떠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규호는 깊은 생각을 굴렸다. 과연 아버지께서 이렇게 어머니를 잡아두는것이 옳을가? 진정 아버지는 그게 더 행복하실가? 규호는 새 어머니에 대한 원한이고 리혼으로 오는 자기의 아픔이고를 떠나 처음으로 아버지를 대신해서 생각해보았다. 어머니의 마음은 진작 아버지곁을 떠난지가 오래다. 이미 돈 많은 한족사람의 품에서 사치를 배우고 사치에 습관되여온 어머니는 다시 삼륜차를 몰아 그날그날 생활을 영위해가는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오지 않을것이다. 규호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린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것을 어머니를 기다리며 배워서 알고있었다.
어제밤, 아버지께서 돌아오시자 규호는 마음을 다잡고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 할 말이 있어요.>>
<<그래, 해 봐라!>>
아버지께서 규호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리혼하세요.>>
규호는 끝내 진종일 가슴속으로 되네이던 말을 해내고야 말았다.
<<뭐라구?>>
아버지께서 깜짝 놀라셨다.
<<리혼하세요, 저 때문이라면 리혼하세요. 아버지가 괴로와 하시는것을 더는 못보겠어요.>>
아버지께서 또 긴 한숨을 내쉬였다.
<<엄마 없는 애라는 소리를 듣는게 얼마나 힘든지 너 아니? 비록 새 엄마라지만, 지금까지는 그래도 기다리면서라도 마음은 든든하지 않았었니?>>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이미 다른 데로 갔어요! 어떻게 잡아올수도 없잖아요? 보내버리세요. 저도 다 컸어요. 아버지가 편하다면 보내버리세요.>>
<<규호야!>>
아버지는 규호의 어깨를 꽉 끌어안아주었다. 아버지의 두 볼에서는 주먹같은 눈물이 주르륵 굴러떨어졌다.
규호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어쩜 새 어머니를 기다리며 눈물마저 말라버렸는가 싶던 아버지에게도 아직 눈물이 남아있다는것을 규호는 이제야 느끼고있었다…
규호는 말을 마치고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두눈에는 눈물이 아니라 그 무엇을 결심한듯한 장엄함이 어려있었다.
<<정말 괜찮겠니?>>
군이가 근심스러운 눈길로 규호를 바라보았다. 규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정말 많이 생각해봤다. 첨엔 막막하기도 하구 무섭기도 하구, 살고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마음을 굳히구 다시 생각하니 그렇게 무서운것도 아닌것 같아. 글구 뭐 아버지, 어머니가 리혼한 애들이 한둘이니? 그래도 모두들 잘 뻗쳐가고있지 않니?>>
<<하긴 그래, 우리도 인젠 다 컸으니까.>>
<<그래, 피해가지 못할 일이라면 맞다들어 보는거지 뭐.>>
<<규호야, 너 참 멋져!>>
군이는 으스러지게 규호의 손을 잡아주었다.
<<아버지를 독촉할거야. 빨리 어머니와 리혼해버리라구. 그리구, 거뜬한 마음으로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을 쇠달라구 할거야.>>
규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두어깨를 쩍 벌리고 힘있게 앞으로 걸어갔다. 군이는 규호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어쩜 한그루의 소나무를 보는듯싶었다.
한여름의 폭풍우에도, 엄동의 설한속에도 푸름을 잃지 않고 대굵게 커가는 한그루의 꿋꿋한 소나무를 보는듯싶었다.
군이는 아픔속에서 크는 나무이기에 더 튼실한것이 아닐가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굴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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