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구나. 무슨 일이있었니?>> 군이가 집에 들어서자바람으로 아버지께서 기다렸다는듯 물었다. <<네.>> <<무슨 일인데 이렇게 늦은거니?>> 아버지께서 군이를 지켜보며 인차 동을 달았다. 군이는 그러는 아버지를 돌아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별 일 아닙니다.>> 말을 마친 군이는 침실문을 열고 들어가버렸다. 이어 <<탕!>>하고 문닫기는 소리가 들렸다. 찬 바람이 쌩~ 부는듯한 군이의 태도에 아버지는 망연자실한듯 멍하니 군이의 침실문을 바라보았다. 전에 없던 군이의 반상적인 행동에 아연해진 아버지였다. (웬 일일가? 사춘기가 오는건가?) 아버지는 절레절레 머리를 저으며 주방으로 들어가 저녁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수저까지 갖추어 놓았는데도 군이는 침실에서 머리를 내밀지 않고있었다. 아버지는 군이의 침실로 다가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군이야 밥 먹자.>> 아버지의 출연에 군이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며 불부은 소리를 했다. <<들어올 때 문을 두드리면 안돼요?>> <<뭐야? 너 요즘 웬 일이니? 아버지가 아들 방에 들어오며 노크를 해?>> <<저두, 제 생활이 있단 말이예요?>> <<그게 뭔데? 아버지가 보면 안될 사생활이 뭔데?>> 아버지께서 군이를 향해 도전적으로 물었다. <<됐어요.>> 군이는 신경질적으로 궁실거리며 침대에서 내려 주방으로 갔다. 아버지도 그러는 군이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가 걸상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군이야, 우리 진지하게 대화를 해야하지 않겠니? 아버지는 그럴 필요성을 느끼는데.>> <<……>> <<학교에서 유쾌하지못한 일이라도있은 거니? 아버지께 털어나 봐라. 혹시 도움이 될지 아니?>> <<……>> 군이는 볼부은듯 숟가락이 부러지게 밥을 퍼서 입에 넣었다. 아버지는 그러는 군이를 이윽토록 지켜보다가 말을 이었다. <<아버지를 믿고 속시원히 말해봐라. 그래도 아버지는 사람들의 심령을 그려내는 작가가 아니냐?>> 아버지께서 약간 롱담기섞인 목소리로 자부심에 차서 말씀했다. 군이는 반찬을 집다말고 우습다는듯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 믿음이란게 뭐죠?>> <<어?>> 아버지께서 굳어진 얼굴로 뒤말을 잇지못하셨다. 군이의 당돌한 물음에 뭔가를 의식한듯싶었다. 하지만 인차 얼굴을 풀며 허허허 웃어버렸다. <<자식, 아버지를 시험치겠니? 믿음이란 서로 간에 비밀이 없음을 말하는거지. 너와 나사이처럼 말이다.>> 군이는 저가락을 밥사발우에 내려놓으며 역시 날이선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와 나사이에 비밀이 없어요?>> <<그래, 없지.>> 아버지께서 확신에 차서 말씀했다. <<아버진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맹세 할수있어요?>> <<그럼, 자식이란 무엇이니? 내 몸밖의 또 다른 내가 아니냐? 근데 무슨 비밀이있겠니?>> 아버지가 군이의 밥사발에 된살이 많이 붙은 삽겹살을 한점 짚어놓았다. 군이는 어버지께서 짚어주신 삼겹살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아버지,우리 교과서에 <위선자>라는 단어가 있거든요.>> 말하는 군이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스쳐지났다. <<위선자라구?>> 아버지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듯 했다. <<무슨 뜻인지 잘 몰라서 사전을 찾아 봤더랬어요. 뭐라고 해석했는지 알아요? 사전에서는 위선자를 <겉으로만 착한 체 하는 사람>이라고 해석했어요.>> 군이는 저가락을 식탁우에 착 소리나게 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와~ 배부르다.>> 군이는 흐느적흐느적 걸어서 자기의 침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은 마치도 세상을 다 살아온 할아버지의 배포유연한 모습같았다. 그러는 군이를 바라보며 아버지는 말못할 허전함을 느끼고있었다. (사춘기의 반항 때문일가?) 착하기만 하던 아들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정말 아들에 대한 자부감으로 가득찼던 아버지의 가슴에 랭수를 끼얹는 격이였다. 아버지는 군이를 따라 들어가 구경을 따져볼가고 생각을 굴리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설걷이를 시작했다. 군이의 침실에서 열광적인 쟈즈음악이 흘러나왔다. 군이는 두눈을 지긋이 감고 걸상등받이에 몸을 맏겨버렸다.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쟈즈음악의 열광에 빠져버리고싶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였다. 사색의 실마리는 헝클어진 삼뭉치마냥 큰 덩어리를 이루며 군이의 머리속을 파고들었다. 가정을 지키자던 엄마의 편지며, 엄마의 꼬리를 잡겠다고 나선 승화며, 시를 발표하겠다고 편집선생님을 찾아다닌다는 승화의 어머니며, 마약장사를 하다가 총살을 당했다는 미림이의 아빠며, 그 자식을 남보다 못지않게 키워내겠다고 고향을 등진채 낯설고 물선 이 도시를 찾아온 미림의 엄마며, 그리고 돈많은 한족사람과 함께 살겠다고 리혼을 제출하고 있다는 규호의 새 어머니며… 군이는 벌떡 일어나 침대에 몸을 던지고는 이불로 머리를 확 감싸쥐였다. 숨이 막혀왔다. 군이는 그냥 그렇게 세상이 뚝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짧게 머리를 스쳤다. 점점 숨이 턱에 닿아왔다. 군이는 머리를 감싸쥔채로 이불과 내기라도하듯 가쁘게 숨을 톺았다. <<후~>> 드디여 군이는 이불을 확 걷어버리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눈앞이 핑~ 돌아가는듯한 감을 느꼈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요란스러운 쟈즈음악의 발빠른 리듬을 헤치며 전화벨소리가 간간히 울려왔다. 군이는 침대에서 뛰여내려와 수화기를 움켜잡았다. <<여보세요.>> 수화기 저쪽에서 석쉼한 녀인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흘러왔다. 군이는 침실을 꽉 메우고있던 쟈즈음악소리를 꺼버리고 전화기옆에 걸상을 당겨 앉았다. <<군이니? 엄마다.>> <<네, 엄마!>> 군이가 짧게 대답했다. <<아프지는 않니? 공부는 잘하니? 편지는 받았니? 아버지는 있니? 미안하다, 엄마가! 흐흐흐흑…>> 엄마는 군이가 대답 할 사이도 없이 련주포를 쏘고는 먼저 흐느끼기 시작했다. <<엄마, 시름 놓으세요. 군이예요. 저도 인젠 다 컸어요.>> <<엄마가 미안하다. 전번에 그 편지를 보내지 말아야 하는데. 네가 뭘 안다구, 군이야, 얼마나 속상했니? 내가 미쳤지? 그저 급하고 기막힌 마음에 흑흑흑…>> 전화선을 타고 와 귀전을 치는 엄마의 목소리는 군이의 아픈 가슴을 발기발기 찍어놓기 시작했다. 군이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엄마, 시름놓으세요. 저두 공부를 잘하구, 아빠도 잘해요. 날마다 꼭꼭 제시간에 퇴근해요. 오늘 저녁에도 삼겹살볶음을 해주어서, 영~ 배부르게 먹었어요.>> <<……>> <<엄마 시름놓으세요. 엄마가 올 때까지 제가 우리집을 잘 지킬게요. 엄마가 돈을 벌어 보내서 산 집이 아닌가요?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했어요. 꼭 잘 지킬게요. 엄마!>> 저도모르게 눈물이 두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전화 저쪽에서도, 전화 이쪽에서도 잠간 아무말 없이 침묵이 흘렀다. <<군이야, 밥 많이 먹어라!>> 엄마의 울음섞인 목소리와 함께 툭 하고 전화가 끊겼다. 뚜-뚜- 하는 경고음이 흘러왔다. 군이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군이는 책상우에 머리를 틀어박고 두눈을 꼭 감아버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시골태생이였다. 시내물이 마을 앞으로 돌돌돌 흘러지나는 아름다운 시골마을에서 아래웃집으로 집을 잡고 살아온 아버지와 어머니는 소학교도 함께 다니고 중학교도 함께 다녔었다. 마을 어른들은 그러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천상배필이라고 했다. 그 소리가 부끄러워 어머니는 한때 의식적으로 아버지를 피해다니려고 마음 먹었었다. 하지만 생각하지말자고 해도 저절로 생각나는 사람이 아버지였다. 하루라도 아버지를 보지못하면 뭔가를 잊어버린듯 싶고 마음이 불안하였다. 정말 아버지가 보고싶을 때면 아버지네 집에 소금을 빌러가는것처럼 꾸며서라도 먼발치에서 아버지를 보고야 시름을 놓았다. 그 그리움을 못이겨 어머니는 초중2학년 때 먼저 아버지께 비밀편지를 보냈었다. 아버지도 마을의 꽃으로 불리우는 어머니의 비밀편지가 싫지 않았다. 이렇게 시작된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동구밖을 가로지나는 철다리우에서도, 마을 뒤산을 덮은 사과배나무 아래에서도 아기자기 엮어졌다. 하지만 불행은 쌍으로 온다고 고중 시험을 치던 해, 외할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외삼촌마저 채석장에서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어머니는 고중입학통지서를 받고도 현성에 있는 고중으로 갈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없으면 허리를 상한 외삼촌의 병 수발을 할 사람이 없었고 어머니가 없으면 때시걱을 끓일 사람도 없었다. 어머니는 미칠것만 같았다. 비록 현성과 시골에 떨어져 있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늘 꽃편지를 보내왔고 어머니도 늦을세라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주군 했다. 아버지는 대학을 졸업하고 현성의 어느 중학교에 교원으로 배치를 받았다. 그해 아버지께서는 정식으로 어머니와의 결혼을 집에 제기하셨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천정이 낮다고 올리뛰며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을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어머니에 대한 일편단심을 꺽지않으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끝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진정에 감동하고 간단하게 결혼식을 올려주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현성에 자그마한 세집을 얻어 살림을 시작하셨다. 군이는 바로 그 현성의 작으마한 세집에서 고고성을 울렸다. 아버지는 교학을 하는 한편 시도 쓰고 소설도 쓰면서 적극적으로 활약을 하셨다. 그때 어머니는 현성의 작은 식당에서 주방장으로 일하다가 시장에 작은 가게를 세내여 옷장사도 했다. 비록 살림이 빠듯하고 일이 힘들어도 아버지가 계시기에 언제나 행복한 어머니였다. 군이가 일곱살 나던 해, 아버지는 연룡도시에 있는 한 잡지사에 전근을 하게 되였다. 아버지보다도 더 기뻐하신 이는 어머니였다. 하지만 연룡도시에서의 생활은 상상처럼 그렇게 행복한것만은 아니였다. 모든것을 새롭게 시작해야했던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운 마음만으로는 안되는 일들이 참 많았다. 군이는 지금도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아버지의 엷은 로임봉투를 사이에 놓고 다투시던 기억이 새롭다. 그 달따라 아버지는 이러저러한 부조로 꽤 많은 돈을 날려버린 모양이였다. <<반년치 집세도 이번 달에 물어야 하고, 군이의 유치원 학비도 물어야 하는데요. 그리구. 아버님 생신도 이번 달에 들었는데…>> <<어떻게 하라는거요? 좀 바가지를 적게 긁을수는 없소?>> 아버지께서 무섭게 소리를 치고있었다. 그러는 아버지가 무서워 군이는 어머니의 뒤에가 숨었다. 어머니께서는 군이를 꼭 안아주더니 소리없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셨다. 군이도 어머니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께서는 집뒤에 있는 버드나무 아래에서 서럽게 어깨를 들먹이며 울음을 터뜨리셨다. 군이는 그러는 어머니가 무서워서 함께 소리내여 울었다. 얼마 안되여 어머니께서는 가정을 지키고 자식을 공부시키고 남편을 더 크게 출세시키려면 돈을 벌어야겠다며 리자돈을 맡아가지고 한국수속에 덤벼들었다. 가족을 위한 어머니의 정성에 하느님도 감동을 했던지 어머니는 한번에 한국수속을 성공했다. 어머니는 한국에 가서도 억척스럽게 일한 모양이였다. 군이네는 일년만에 리자돈을 다 갚고 2년이 좀 더 지나자 작지만 그래도 아빠트라고 한채 제집을 장만할수있었다. 아버지가 인젠 돌아오라고 재촉해도 어머니는 자신이 번돈으로 마음놓고 군이를 공부시키겠다면서 다시 3년계획을 세우셨다. 이것이 바로 어머니의 발자취였다. 이렇게 아버지와 자식을 위해 뒤 한번 돌아볼사이 없이 달려온 어머니였다. 어머니께서 방금 고향을 등지고 이국타향에서 전화통을 부여잡고 흐느끼신것이다. 군이는 벌떡 일어섰다. 주먹으로 눈굽을 쓱 닦고는 아버지의 침실을 향해 걸어갔다. 아버지는 책상앞에서 뭔가를 열심히 쓰고 계셨다. 그 시각 돋보기를 눈에 걸고 부지런히 필을 날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감히 범접하기 어렵게 무거워보였다. 군이는 문역에서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그 바람에 아버지께서 필을 날리다말고 머리를 돌렸다. <<어, 군이! 웬 일이니?>> <<아니예요.>> <<들어와라. 아버지도 군이에게 하고싶은 말이있는데.>> <<아니예요,>> 군이는 뒤말을 얼버무려버렸다. 정작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하니 들어가서 아버지의 기분을 망가뜨리고싶지 않았다. 군이는 문역에 선대로 머뭇거리다가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아참, <우리말사전>이 여기 있나 해서요. 그래요 제 칸에 있거든요. 책꽂이에요. 그냥 쓰세요,갈게요.>> 군이는 쫓기듯 자기의 침실로 돌아왔다. 군이는 책상앞에 턱을 고이고 앉았다. 돋보기를 걸고 열심히 뭔가를 써내려가던 아버지의 얼굴이 또렷이 눈앞에 떠올랐다.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방금 자신의 반상적인 행동이 꼭 아버지에게 간파되였을것 같아 불안스러웠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께서 얼마나 서운해 하실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치자 못내 가슴이 쓰려났다. 따져보면 이 3년사이, 아버지도 무척 바삐 보내셨다. 아버지는 전날 저녁, 술을 과음한 날을 빼고는꼭아침밥을지어군이와함께먹었고한주일에한번씩은꼭꼭군이와자신의옷을빨았다집안구석구석도언제나먼지한점앉을세라청소를게을리하지않았다 군이의 일이라면 열밤중에도 나서시는 아버지였다. 하여 담임선생님은 학교에 곤난한 일이있으면 아버지를 부르기 좋아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두말없이 학교에 와서 선생님께서 만족하실수있게 일을 처리해 놓군 했다. 학부모회의가 있을 때마다 여느 학부모님들은 아버지를 두고 아버지자 어머니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일터에서도 아버지는 능수였다. 지난해에는 선진사업일군으로 상급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가끔 멋진 시나 소설을 써서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것이 군이가 알고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였다. (이런 아버지가 정말 승화의 엄마를 꼬시려고 낯뜨거운 일을 할수가 있을가?) 군이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닐거야, 승화가 잘 못 알고있을거야, 근데 승화가 두분이 다방에서 나오는것을 제눈으로 똑똑히 봤다는것은 무엇을 설명하는것일가? 쳇, 다방에서 나오면 다 나쁜가? 승화, 그 자식이 너무 오도방정을 떠는거지 뭐. 그래 그럴거야, ) 군이는 애써 합리한 리유를 달아 아버지를 변호해주고싶었다. 하지만 뇌리를 치는 어머니의 편지를 떨쳐버릴수 없었다. (그래, 어머니께서는 한국에서 아버지에 대한 무슨 이야기를 들은것일가? 무엇이 어머니를 그렇게 불안하게 하셨을가?) 생각할수록 군이는 미궁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였다. 군이는 신경질적으로 컴퓨터의 전원을 꾹 눌러켰다. 찌륵찌르륵~ 컴퓨터에 전류가 들어오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났다. 군이는 그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모니터가 밝아지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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