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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꽃이 떨어지는 소리
2014년 10월 09일 09시 11분  조회:1909  추천:0  작성자: 동녘해




꽃이 떨어지는 소리

최동일


1


꽃이 스러지고있었다.
여기저기 되는대로 너부러지고있었다.
뭇꽃들이 아파서 파르르 떨고있는 그속에서 민우는 실성한듯 소리쳤다.
“내 신, 내 신…”
제딴에는 급해서 소리 지르느라 안달을 떨었건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민우의 가슴은 터질것만 같았다. 민우는 반듯이 누운채 주먹으로 가슴을 북 치듯 쿵쿵 쥐여박다가 두눈을 번쩍 떴다.
꿈이였구나!
민우는 가볍게 “후—”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비록 꿈이라고는 하지만 어쩐지 기분이 씁쓸해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무슨 꽃이였더라? 왜 꽃모양이 이렇게 아리송하지? 과연 무슨 꽃이였더라?
집마당이라고 하는 그곳에서 갑자기 괴성이 터졌던것이다. 민우는 무엇인가 큰일이 일어날것만 같은 불안감을 느끼면서 그 공간을 벗어나려고 허둥댔다. 헌데 그 순간 발에신이 신겨져 있지 않았던것이다. 민우는 급해서 허둥거리며 자기의 람색 “N”표 운동신을 찾아헤맸다. 아무리 찾아도 신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선가 또 괴성이 터져올랐다.
쓰러진 꽃들이 흐느끼고있었다.
민우는 두려움이 가득찬 목소리로 “내 신, 내 신…” 하고 소리를 지르다가 깨여난것이다.
부잇한 시선을 뚫고 하얀것이 눈에 비쳐들었다. 순간 “여기가 어딜가?”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쳐지났다. 민우는 두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뜨면서 하얀것을 쳐다보았다. 분명 하얗게 회칠을 한 천정이였다. 민우는 두눈을 퀭하니 뜨고 한참이나 천정을 쳐다보다가 맥없이 두눈을 슴뻑거리며 옆으로 돌아누웠다. 옆에는 몸만 쏙 빠져나간듯한 이불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기분 나쁘게 코를 자극했다. 땀냄새 같으면서도 또 몇해나 찌들어버린 먼지냄새 같기도 했다. 민우는 그 냄새를 의식하기 바쁘게 인차 손바닥을 오무려 입과 코를 막으며 몸을 일으켜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자굽에 듬성듬성 피여있는 이름모를 꽃들이 한눈에 안겨왔다. 꽃들이 피여있는 바자옆에서 축구뽈을 굴리고있는 몇몇 남자애들이 보였다.
민우는 그제야 자기들이 2학년 후학기의 기말시험을 마친 기념으로 어제 왕우구에 여름캠프를 왔고 밤에 여준이랑 몇몇 “N사단” 성원들이 민박집을 빠져나가 맥주를 마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우의 눈앞에는 어제밤에 있었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지났다.
그들이 맥주를 사들고 찾은 곳은 개구리울음소리가 신나던 개울가였다. 그들은 개울가에 나란히 앉아서 한 사람이캔맥주 한통씩 뜯어들었다. 돌돌 노래하며 흐르는 시원한 개울물에 두발을 담그고 개구리울음소리를 반주삼아 맥주를 마시는 민우의 기분은 선경에서 노니듯 걷잡을수 없이 설레이였다.
“자, 우리 ‘N사단’의 번영발전을 위하여!”
민우가 선창을 하자 여럿은 한결같이 건배를 불렀다. 첫 통은 그렇게 기분 좋게 배속으로 들어갔다. 컴컴한 밤이라 녀성인 담임선생님이 찾아올 념려도 없었다. 기분이 떠오르자 그들은 히히닥닥 권커니작커니 시름 놓고 맥주를 마셔댔다. 가지고 갔던 맥주를 다 마시고난 그들은 또 개울물에 들어서서 가슴이 뻥 뚫리게 물싸움을 하다가 늦어서야 숙소에 들어왔다.
민우는 두손 엄지로 태양혈을 지그시 누르고있다가 밑둥 잘린 나무처럼 훌렁 누워버리며 이불을 머리우까지 활 당겨 썼다.

2

사실 민우는 어제 처음 맥주를 마셔본것이 아니였다. 평소에도 주말이면 자기들 “N사단”성원들과 함께 강변이나 산에 가서 맥주를 마시고는 알몸으로 일광욕을 즐겼었다. 알콜이 몸에 배면서 사지가 나른해나고 몸뚱이가 파아란 하늘로 둥둥 떠오르는듯한 그 느낌은 한주일간 교정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말끔히 하늘로 날려보내는것 같았다.
민우는 늘 그 느낌을 잊지 못하고있었다. 하지만 맥주가 늘 그렇게 고마운것은 아니였다. 혹시 정서를 통제하지 못하고 과음을 하고난 이튿날이면 속이 메슥메슥해나고 머리가 빠개지는듯 아팠었다. 그럴 때면 민우는 세상만사가 귀찮아지고 당금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지려는듯한 두려움 비슷한것이 엄습해와서 괜히 짜증이 나고 불안스러웠다.
그때면 민우는 이불속에서 머리만 빠끔히 내민채 “아줌마, 물!” 하고 신경질적으로 주방을 향해 소리지르군 했다. 그때쯤이면 집에 가정도우미로 일하는 아줌마만 남아서 설겆이를 하고있으리라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잠간 지나면 아줌마는 꿀을 탄 시원한 물을 담은 고뿌를 쟁반에 받쳐들고 민우의 침실로 들어온다. 어머니보다도 나이가 한참이나 이상인분이였지만 민우는 그에게 심부름을 시키면서 조금도 미안하다는 생각을 가져본적이 없었다.
시세무국 국장으로 있는 아버지도 시공상국에서 어느 부서의 주임으로 사업하는 어머니도 민우의 이런 행실을 나무란적이 없었던것이다.
민우네 집에서 가정도우미로 일하는 아줌마도 민우의 시중을 들면서 투정을 부리는 자기 집 막내에게 심부름을 해주는것만치나 당연한것으로 생각하고있는지 조금도 기색이 흐려진적이 없었다.
민우는 이렇게 가정의 우월한 생활환경을 당연한것으로 알며 “작은 황제”로 커가고있었던것이다.
가정의 우월한 생활조건은 학교에 와서도 민우를 무서운것이 없는 “왕자”로 나서게 했다.
“N사단”은 민우가 제일 자부감을 느끼는 동아리였다. 민우네 학급은 학교에서 소문난 “부자반”이였다. 학부모들중에는 장사를 하는분들이 많았다. 비록 공부와 장사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였지만 웬 일인지 세무국 국장과 장사군이라는 학부모들 지간의 오묘한 관계가 민우네 학급에까지 영향을 미치는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학급에서 민우의 말은 신비하리만치 잘 통하고있었다. 특히 부모들이 시내중심에서 큰 식당을 경영하고있는 여준이는 민우의 충실한 팬이였다. 민우가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애였다. 그래서인지 민우도 여준이를 노복 다루듯 하지만 그래도 제일 믿어주고 아껴주는 편이였다.
민우가 로따(老大)로 불리우는 “N사단”은 사실 여준이가 민우을 내세우기 위해 만들어낸 “부자집”자식들의 동아리였다.
언제부터인지 학교에서는 일률로 교복을 입게 되였다. 하기에 평소 입는 옷으로는 “부자집” 애들이나 “평민집” 애들을 구분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늘 어떻게 돈자랑을 할가 궁리하던 여준이는 신을 가지고 문장을 짓기로 했던것이다. 학교에 신에 대한 규정은 없으니 명표신을 신고다니며 돈자랑을 해보자는 심사였다. 여준이는 며칠이나 인터넷을 뒤져 “N”이라는 브랜드가 류행이며 값도 여러가지로 소비수준을 나타낼수 있다는것을 알고는 제일 처음으로 사신었다. 여준이는 N표 운동신을 신고 학교에 가서 민우를 보자마자 자랑을 늘어놓았다.
“민우야, 그래도 신은 고급이 다르더라. 봐라, N표.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신이래. 특히 롱구를 할 때 편해서 제격이라나? 660원을 주고 샀어. 진짜 편하다니까.”
여준이는 N표 운동신을 신은 발을 들어보이며 시뚝해서 말했다.
“N표? 그게 그렇게 좋은거냐?”
“그럼, 나 인터넷을 다 뒤져보았는데 운동신 치구는 N표가 제일이래. 그래서 한컬레 샀는데 진짜야. 한번 신어볼래?”
여준이가 당금 신을 벗을 자세를 취하며 민우의 기색을 살폈다. 민우의 기색이 확 변했다.
“짜식, 제까짓게 있으면 얼마나 있다구? 그잘난 신을 신어보라는거야? 암튼 좋다니까 한컬레 사기는 하겠다만.”
그날 민우는 하학후 곧추 백화상점으로 갔다. 아니나다를가 N표전용신매대가 따로 있었다. 가격도 백원좌우로부터 1200원에 달하는것까지 없는것이 없었다. 민우는 두말없이 제일 비싼 1200원짜리를 찍었다. 판매원이 신을 민우앞에 내밀었다. 민우는 판매원앞에 발을 들이밀었다. 판매원은 민우앞에 꿇어앉아 정성스럽게 신을 신겨주었다.
“자, 인젠 걸어보세요.”
민우는 어깨에 힘을 주며 일어섰다. 감각때문인지 발이 날듯이 가볍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민우는 판매원을 향해 히쭉 웃고는 돈가방에서 카드를 꺼내여 판매원앞에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저기 가서 싸인해주세요.”
판매원이 민우에게 웃음을 지어보이며 카운터를 가리켰다. 민우는 신을 신은채로 판매원을 따라 우줄우줄 카운터를 향해 걸어갔다.
이튿날아침, 민우가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애들이 욱 몰려들었다.
“진짜 괜찮은 신이야. 제법 편안하다니까.”
“정말 좋아보이는구나. 얼마를 줬니?”
누군가 부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비싸지 않아. 제일 비싸다는게 겨우 1200원이였어. 좀더 비싸야 하는건데.”
“1200원?”
누군가 덴겁하여 소리쳤다.
“짜식 놀라긴.”
민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씩 하고 입가에 찬웃음을 피워올렸다.
이튿날부터 학급에는 한컬레 또 한컬레의 N표 운동신이 나타났다. 며칠사이에 십여컬레나 되였다. N표를 신은 애들은 대부분 평소 민우를 싸고돌던 “부자집” 애들이였다. 어느날 롱구를 끝내고 상점에서 음료수를 마시다가 여준이가 별안간 엉뚱한 제안을 했다.
“봐라, 우리 모두 N표를 신었잖니? 똑같이 롱구를 즐기구. 민우야, 우리 ‘N사단’을 묶는것이 어떻니?”
“뭐? ‘N사단’?”
민우가 웬 소리냐는듯 눈을 올롱하게 치뜨며 여준이를 바라보았다.
“그렇지. 우리가 바로 우리 학급의 중심이란 말이다. 특히 민우, 네가 우리 학급의 로따(老大)가 아니니? 그러니 우리의 힘을 합하자는 의미에서 N표 운동신을 신은 애들 동아리를 묶자는거다. 함께 롱구도 하고 등산도 하고 그리고 다른 학급 애들이 까불어치면 힘을 합쳐 대적도 하고말이다. 애들아, 우리 민우를 로따로 모시는것이 어떻니?”
여준이의 말에 곁에 있던 애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동시에 좋다고 소리쳤다.
민우는 이렇게 얼결에 ‘N사단’의 로따로 군림했다. 당연히 여준이는 이인자가 되였고 민우의 눈치를 보아가며 애들을 손아귀에 거머쥐였다.
어떻게 무어진 동아리였든지간에 여럿이 힘을 합치니 정말 무서운것이 없었다. 그들은 점심시간만 되면 무리를 지어 롱구를 쳤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되면 가까운 산으로 등산도 갔다. 그들이 한마음이 되여 모여다니는것을 보고 그 동아리에 들지 못한 애들은 못내 부러워했다. 생각 같아서는 누구나 그 무리에 들고싶지만 “N사단”의 첫째 조건인 N표 운동신을 사는것부터가 부담으로 느껴지는 애들이 많았었다. 게다가 롱구를 치고는 모여서 음료를 사 마시고 등산을 간다며 돈을 모아 식료품을 사고 차비를 모으고 하는 소비를 웬만해서는 따라갈수 없었던것이다. 하여 “N사단”은 학급의 일부 애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요, 가깝고도 먼 “당신”으로만 여겨질뿐이였다.

3

민우는 속이 쓰리고 가슴이 침침해났다. 목에서 심한 갈증이 몰려오면서 겨불내가 확확 풍겼다. 민우는 습관적으로 누구에게라 없이 소리쳤다.
“물, 물물!”
애들이 뽈을 차는데만 정신이 팔려 민우의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누구 하나 뛰여오는 애가 없었다. 민우는 뽈을 굴리는 애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야, 못 들었냐? ”
뽈을 차던 애들이 못박힌듯 굳어져서 소리나는쪽을 바라보았다. 민우의 눈이 가늘게 찢어지고있었다.
“로따!”
여준이가 창문쪽으로 달려오며 얼굴에 웃음을 담았다. 민우는 그러는 여준이를 거들떠보는체도 하지 않고 여전히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귀들 먹었냐? 물, 물!”
“귀가 멀었냐? 로따가 물을 떠오라지 않냐?”
여준이가 민우의 말을 받아 누구에게라 없이 재방송을 했다. 애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차…찬물을 달래?”
석이가 나서서 민우와 여준이의 눈치를 번갈아 살폈다. 민우와 여준이의 눈길이 일제히 석이의 얼굴에 가 꽂혔다. 순간 석이는 흠칫 몸을 떨면서 머리를 푹 숙였다.
일찍 아버지를 병으로 잃고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석이는 사실 평소 민우네를 따라다닐 엄두조차 못 내는 애였다. 동네시장에서 콩나물장사를 하는 어머니의 수입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석이는 N표 운동신은 고사하고 20원짜리 헝겊신이라도 발가락이 나가지 않는것을 다행으로 알고있었다. 하지만 석이에게도 “N사단”은 선망의 대상이였다. 하여 가끔 민우네들이 롱구를 칠 때면 곁에서 롱구뽈을 주어 바치군 했다. 그러던 석이가 오늘 민우앞에 나선것이다.
여준이가 씽하고 석이쪽으로 잰걸음을 놓더니 오른다리를 날려 석이의 엉뎅이를 걷어찼다.
“야, 돌대가리.”
“알았다, 알았어. 시…시원하게 찬…찬물이지.”
석이가 더듬거리며 말꼬리를 흐리우자 민우가 꽥 소리질렀다.
“돌대가리, 왜 그리 어정거려?”
“아…알았다니까. 미…민우야, 잠간만…”
석이는 민우가 서있는 집안으로 달려들어가 수도가에서 비닐바가지를 찾아들고 수도꼭지를 틀었다. “쏴—” 소리를 내면서 물줄기가 쏟아져내렸다. 석이는 그렇게 한참이나 물을 뽑아버린후 바가지를 수도꼭지에 가져다 댔다. 민우는 수도옆에 서서 오른손으로 아래배를 슬슬 문지르며 거슴츠레 내리 뜬 두눈으로 석이를 찍어보고있었다.
“마…마셔라, 시원할거다.”
석이는 애써 얼굴에 웃음을 바르면서 민우앞에 두손으로 물바가지를 내밀었다. 민우는 그러는 석이의 얼굴에 눈바늘을 꽂으며 물바가지를 받아들어 꿀꺽꿀꺽 서너모금 마셨다. 석이는 굳어진 입술을 실룩거리며 민우의 표정을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시원하지? 파…파는 광챈수이(矿泉水)보다 더…더…”
“그래, 더 시원하다.”
민우는 입가에 묻은 물방울을 손등으로 쓱 닦더니 물바가지를 든 손을 천천히 석이의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석이가 민우앞에 한발 다가서며 물었다.
“어째? 한 바가지 더…더 달라니?”
“아니. 너나 마셔, 마시라구. 흐흐흐…”
민우는 바가지를 우로 들어올리더니 바가지에 남은 물을 천천히 석이의 머리에 쏟아부었다. 준비없이 찬물을 머리에 들쓴 석이는 어깨를 옹송그리며 오스스 몸을 떨었다.
“어이, 돌대가리. 시원하지? 그치, 시원하지? 하하하…”
민우가 바가지를 수도꼭지아래에 있는 물독에 철렁 뿌려넣으며 너털웃음을 했다.
“얌마, 돌대가리. 너 로따께 인사 안해? 손 안 쓰구 샤와했으면서.”
여준이도 민우를 따라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동을 달았다. 석이는 찬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연신 훔치면서 어깨가 축 처져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문어구에 서서 친구들과 함께 집안 광경을 구경하던 상필이가 석이의 뒤통수를 찰싹 갈기며 소리쳤다.
“얌마. 너 이 대가리두 돌덩이지?”
“맞아, 이 대가리두 공골(콩크리트)일게다.”
곁에 선 친구들이 “와—와—” 괴상한 소리를 치면서 석이의 어깨며 엉뎅이를 찰싹찰싹 갈겨주었다.
“짜식, 둔해빠져가지구.”
민우는 그제야 베개옆에 널린 바지며 런닝그를 주섬주섬 주어입고는 신을 신으려고 바닥쪽으로 어정버정 내려왔다.
“아—악!”
바닥을 내려다보던 민우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굉장하게 기분 나쁠 때나 터지는 고함소리였다. 애들은 숨을 죽이고 민우의 표정을 살폈다. 민우의 입술이 파들파들 떨리고있었다.
“민우야, 왜? 왜 그러니?”
여준이가 목소리를 한껏 깔고 조심스럽게 민우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민우의 눈길이 여준이 쪽으로 홱 탈렸다. 여준이는 민우의 눈길을 피해 머리를 숙였다. 민우가 그러는 여준이를 일별하며 혀끝을 이발에 눌러 바닥에다 찍 하고 침을 쏘았다. 분위기가 당금 폭발할듯 긴장해졌다.
석이는 불똥이 또 자기에게 튈것 같아 비실비실 뒤걸음을 치면서 연신 여준이를 훔쳐보았다.
드디여 우뢰가 터졌다.
“어느 놈이냐? 어느 놈이냐구!”
“왜…왜? 민우야, 왜 그러니?”
여준이가 민우앞에 한발 다가서서 말까지 더듬으며 다급히 물었다. 민우가 그러는 여준이를 쏘아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눈깔이 멀었어? 내 신, 내 신이 없어졌잖아? 내 신!”
그제야 친구들은 신을 벗어두었던 바닥에 눈길을 박았다. 아니나다를가 바닥에는 끌신 두짝이 달랑 놓여있을뿐 1200원을 주고 샀다는 N표 운동신은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은 서로서로 눈길을 날렸다.
갑자기 누군가 소리질렀다.
“야, 삐리삐리. 너 미쳤어?”
그 소리에 친구들의 눈길이 일제히 상필이에게로 쏠렸다. 그 바람에 상필이는 깜짝 놀라 굳어졌다. 여준이가 상필이쪽으로 다가가더니 엉뎅이에 발길을 날렸다.
“너 간이 밖으로 밀밀 나왔구나. 너, 감히?”
“왜…왜 그러니? 너희들…”
“왜라니? 너 감히 로따의 신을 신었어? 이게 미쳤나?”
“아닌데, 아…아니라니까.”
“아니라구? 네깟것이. 그러면 그 N표는 뭐야?”
여준이가 날이 선 목소리로 소리질렀다. 친구들이 웬 일이냐는듯 여준이와 상필이를 번갈아보았다. 아니나다를가 상필이의 발에는 파르스름한 색상의 N표 운동신이 신겨져있었다.
“너…너…”
민우는 분해서 말까지  더듬더듬거렸다. 그 바람에 상필이는 너무도 놀라 사시나무 떨듯 와들와들 몸을 떨었다. 민우는 그러는 상필이를 향해 버럭 소리질렀다.
“야, 쌍삘이. 너 뭘 하고 섰어. 빨랑 그 신을 벗지 못하겠니?”
“미…민우야, 이 신은 내 신이다.”
“뭐라구? 네 신이라구? 네가 하루새에 금봉황이 됐다는거야 뭐야?”
여기서 잠간 말끝을 맺은 민우가 별안간 여준이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야, 짭새야.”
그 바람에 여준이가 깜짝 놀라며 민우를 쳐다보았다. 민우가 흥분해서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여준이를 다그쳤다.
“이 짭새야, 너 뭐하는 놈이야? 빨랑 저…저 쌍삘이 발에서 나의 신을 벗겨오지 못하겠니?”
“알았다. 아…아…알았다. 새끼들, 뭘하구 있니?”
여준이가 친구들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그 광경을 구경하고있던 친구들이 여준이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상필이한테 욱 몰려들었다. 상필이는 뜻밖에 터진 사태에 너무도 놀라 선자리에 퐁당 물앉으며 한껏 몸을 옹송그렸다. 하지만 애들은 상필이의 정서는 웬 개떡이냐는듯 살피지도 않았다. 어떤 애들은 상필이의 팔을 잡았고 어떤 애들은 상필이의 다리를 붙들었으며 또 어떤 애들은 허리를 굽혀 상필이의 발에 신겨진 신을 벗겨내려 했다. 상필이는 그 와중에도 신만은 빼앗기지 않으려는듯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신을 부여잡고있었다. 누군가 그러는 상필이의 손을 꽉 밟아버렸다. 상필이는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손을 뗐다. 그 순간 누군가 상필이의 발에서 신을 벗겨냈다.
여준이가 그 애의 손에서 신을 받아 급히 민우앞에 가져갔다. 민우는 신경질적으로 여준이의 손에서 신을 받아들고 유심히 살폈다. 갑자기 민우가 손에 들었던 신을 상필이앞에 뿌려던지며 두덜거렸다.
“아니잖아. 내 신이 아니란 말이야,”
“아니라구?”
여준이가 두눈을 올롱하게 뜨며 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래, 아니야. 내 신은 끈을 저렇게 매지 않았어. 저렇게 매지 않았다구.”
말을 마친 민우가 상필이쪽에 머리를 돌렸다.
“야, 쌍삘이, 너 저 신, 어디서 났어?”
상필이는 한옆에 서서 입을 실룩거리고있다가 억울함을 당한 신하가 상전을 향해 진정을 호소하듯 말했다.
“그렇지, 민우야. 난 정말 너의 신이 어디 갔는지 모른다.”
“듣기 싫어. 내가 묻잖아? 너 저 신, 어디서 난거냐구?”
“산거야.”
“뭐 샀다구? 네가 N표를 샀다구? 하하하…”
상필이의 말이 천방야담이라도 되는듯 민우가 두눈을 크게 뜨며 너털웃음을 했다. 그 바람에 상필이가 얼굴을 붉히며 더듬거렸다.
“진짜 사…산거다. 서…서시장에서 50원을 주고 산거다.”
별안간 애들의 웃음소리가 터졌다.
“하하하하… 쌍삘이, 너도 우리 ‘N사단’에 가입하고싶다 이거지?”
“허허허허… 삐리삐리도 생활이 꽃펴나는 모양이구나.”
상필이가 애들의 웃음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너희들과 같이 롱구도 하고 등산도 하고… 그러고싶어서…”
“삐리삐리, 생각은 야무지네. 너 그래 저따위 짝퉁 N표를 신으면 우리 ‘N사단’ 성원으로 될수 있을줄 알았니? 우리 ‘N사단’이 그래 저 같은 짝퉁인줄 아니? 하하하하… 내 잃어진 신은 1200원짜리다. 1200원.”
상필이는 숨을 죽이고 잘근잘근 아래입술을 씹으면서 머리를 들지 못했다.
“야, 너희들 빨랑 내 신을 찾아놓지 못하겠니? 집주변이구 어디구 다 돌아보란 말이다? 어제밤에 분명 이 바닥에다 벗어놓았거든. 너희들도 내가 신을 벗는걸 보았댔지?”
애들은 민우의 눈치를 살피며 머리를 끄덕였다.
“새끼들, 빨리 나가 신을 찾지 못하겠니? 나가자.”
여준이는 누구에게라 없이 한마디 하고는 자기가 먼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애들은 집주변에 널려 민우의 N표 운동신을 찾기 시작했다.

4

신이 어디로 갔을가?
민우는 바닥에 있던 끌신을 끌고나와 마루에 놓여져있는 쪽걸상에 앉아서 신을 찾느라 사처로 뛰여다니는 애들을 멀거니 바라보며 속궁리를 했다. 하지만 도무지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제밤 친구들이랑 함께 돌아온후 분명 바닥에다 신을 벗어놓았던것이다. 십여명의 친구들이 한 구들에 누웠는지라 무더워 창문이며 출입문이며를 닫지 않았었다. 다른 애들의 신은 다 있는데 유독 민우의 신만 사라진것이다. 민우는 모르기는 해도 자기들이 단잠에 든후 마을의 좀도적이 와서 제일 눈에 뜨이는 자기의 신을 훔쳐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쳇, 누가 내 신이 제일 멋있으라고 했나? 참…
민우는 혼자 시무룩이 웃으며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애들이 하나 둘 풀이 죽어 돌아왔다.
“없어, 신이 어디에도 없구나.”
“민우야, 어쩌니 그 좋은 신을 잃어버려서.”
애들이 민우의 눈치를 살피며 한마디씩 했다.
“괜찮아, 괜찮다구. 집에다 전화를 해서 운전수를 보고 신을 한컬레 사오라면 되지 뭐.”
민우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 제법 손사래까지 하며 대답했다.
“집에 운전수까지 다 있구… 참 대단하다, 민우야.”
상필이가 민우옆에 한발 다가서며 부러운듯 말했다.
“그렇지, 이 시내에 운전수까지 두고 사는 집이 얼마나 된다구. 민우니까 되는거지.”
여준이가 민우앞에 손가락을 내두르며 침을 날렸다. 민우는 시뚝한 눈길로 그러는 애들을 쓸어보며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고 말했다.
“참 우리 시내가 정말 작단 말이다. 제일 큰 백화에 가봐도 1200원짜리 신밖에 없거든. 큰 도시에는 몇천원짜리 신도 다 있다는데…”
“뭐? 신 한컬레를 몇천원씩 한다구?”
“왜? 첨 듣는 소리냐? 촌뜨기 같은게.”
민우는 허허허 웃으면서 핸드폰번호를 눌렀다. 얼굴에 싱글벙글 웃음을 담고 핸드폰을 귀가에 가져가서 대방의 신호를 기다리던 민우의 얼굴이 점차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애들의 얼굴도 민우와 함께 굳어져갔다. 민우는 손가락에 힘을 주어 다시 핸드폰번호를 꾹꾹 눌렀다. 하지만 대방에서는 여전히 핸드폰을 받지 않는 모양이였다.
“씨팔, 다 뒤져버린거야? 왜 전화를 안 받아?”
“왜? 너네 집 운전수가 전화를 안 받니?”
여준이가 민우앞으로 다가섰다. 민우는 신경질적으로 여준이를 째려보다가 머리를 돌렸다. 어쩜 여준이가 뭐나 다 알고있으면서 일부러 자기를 간지르는것 같이 생각되였던것이다.
사실 민우가 자기네 집 일군처럼 부리는 운전수는 아버지네 단위의 운전수였던것이다.
“좀 있다가 다시한번 해봐라. 혹시 핸드폰을 두고 나갔는지 아니?”
“씨팔, 이래서 안된다니까. 운전수인 주제에 핸드폰을 두고다니다니.”
민우는 마치 핸드폰을 두고나간 운전수를 옆에 둔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애들은 그러는 민우를 바라보면서 동감이라는듯 머리를 끄덕였다.
“집합이다. 등산하러 간다—”
앞집에 주숙을 잡았던 부반장 나리가 민우네를 향해 오다가 마루앞에 모여서 민우를 둘러싸고있는 애들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어쩌니? 민우야, 너 신이 없어서 등산을 못하겠구나.”
상필이가 걱정되는듯 민우를 향해 한마디 했다.
“할수 없지 뭐. 그렇다구 이 끌신을 끌고 등산을 할수는 없는거구. 가자, 가서 선생님께 청가는 맡아야지.”
민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끌신을 고쳐 신으며 누구에게라 없이 말했다.
“그래, 가서 잘 말하면 선생님이 청가를 줄거다.”
“물론이지, 내가 뭐 가기 싫어서 안 가자는것도 아니구. 허허허… 암튼 너희들, 오늘 잘해야 한다.”
“여부가 있니? 알았다. 시름을 놔라, 민우야.”
여준이가 안심하라는듯 민우를 향해 자신있게 주먹을 흔들어보였다.
“그래야지, 오늘 등산에서 1등을 해야 우리 ‘N사단’의 얼굴이 서지?”
“그래. 등산 하면야 물론 우리가 일등이지. 우리는 ‘N사단’이니까.”
애들은 서로 민우의 눈치를 살피며 너 한마디 나 한마디 들까불어댔다.
“좋아, 제씨들 어서 가자구—”
민우가 어깨를 으쓱하고 두팔을 쩍 벌리며 말했다.
“가자— 등산이다.”
애들은 소리치며 집합장소를 향해 뛰여갔다.
마당에는 벌써 많은 애들이 모여있었다. 먼저 달려간 누가 담임선생님에게 민우가 신을 잃어버린 이야기를 한것 같았다. 애들속에서 뭔가 열성스레 이야기를 하고있던 담임선생님이 민우를 향해 걸어오며 입을 열었다.
“민우야, 어쩌니? 신을 잃어버렸다구?”
민우가 그러는 담임선생님을 바라보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괜찮아요, 선생님. 인차 새 신을 사서 가져오라고 운전수에게 전화를 치겠어요. 금방 올거예요.”
“그래도 그렇지. 너의 신이 참 좋아보이던데.”
“수수해요. 까짓 1200원 밖에 안하는건데요뭐.”
“그래도 그렇지, 1200원이 어리냐? 암튼 남아서 천천히 구석구석 잘 찾아봐라.”
말을 마친 담임선생님은 동학들에게 눈길을 돌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들 들었죠? 민우동무가 어제밤에 신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동무들도 시간나는대로 찾아보세요.”
“네—”
애들이 길게 소리를 뽑았다.

5

민우는 서쪽으로 사라져가는 대오를 멀거니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민박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금방 굽인돌이를 돌아서자 큰 비술나무그늘밑에 앉아서 한담을 하는 몇몇 할머니들이 보였다. 할머니들은 손에 든 삶은 옥수수에서 알을 뽑아 입에 넣고 호물호물 씹으며 무엇이 그렇게 우스운지 호호호 소리나게 웃음을 날리고있었다. 시내에서는 좀처럼 볼수없는 풍경이였다. 또 시내에서라면 그런 풍경에 눈길을 돌릴 민우도 아니였다. 하지만 한적한 시골에 와서 신까지 잃어져 딱히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에 띄워 보는 장면인지라 저으기 호기심이 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민우는 끌신을 줄줄 끌면서 어슬렁어슬렁 할머니들쪽으로 다가갔다.
“로친은 어제밤에 땐스(电视)를 봤수?”
앞이가 홀랑 나가버린 할머니가 입을 호물거리며 눈웃음을 했다. 그러자 코등에 꺼먼 기미가 큼직하게 박힌 할머니가 손사래를 하며 말했다.
“봤지. 로친은 뭘 보구 그러우?”
앞이가 나가버린 할머니가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어제밤에두 땐스서 영 높은데 있는 놈을 붙잡았다우. 숱한 돈을 받아먹구 탐오했다우. 쳐죽일 놈, 먹을만 하무 되지 돈 그리 많아 무에 쓴다우?”
“그러게 말이우. 옛말에두 ‘혼자 먹다가 배 터져 죽으라’했재이우?”
“그러게. 그놈 애비, 에미는 그런 말두 안 배워줬는게랑게.”
“그럼그럼, 그놈 에미는 태몽에 두더지 땅굴 파는것만 봤는게라이.”
“그러게. 호호호…”
“옳소. 흐흐흐…”
할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비술나무밑에서 터져올랐다.
코등에 꺼먼 기미가 있는 할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태몽에 언제 두더지 굴을 파는거랑 나오는 법이 있다우? 나는 금시초문이우.”
“그게사 그놈이 하두 쳐죽이구싶게 미워서 그러는게지. 그 돈이면 저 아래마을 장령감이나 구제 좀 해주겠소. 그 집 로친 늘그막에 한국 가서 아예 안 오는게 아잉가?’
“돈 많은 한국령감 해서 사는가보지비. 암튼 장령감을 어이 한다우?”
“그러게, 옷이랑 입구 다니는 꼴을 보믄 영 말이 아닙데.”
“밥두 먹구 다니는 모얘 아닙데. 맨날 알딸딸해서 노들강변 부르는걸 보므느…”
“이 문뒤(문둥이)들아, 왜 더운 밥 먹구 동네집 령감 걱장서꺼늘 하멘서 주책들인가? 좋은 아침뱁(밥) 처먹구서리 그리 할 일도 없능가?”
두 할머니가 찧고빻고 하는것을 잠자코 듣고만 있던 몸집이 한국 력도선수 장미란만치나 실한 할머니가 금가락지를 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나무랐다.
민우는 한참이나 할머니들의 입씨름을 지켜보다가 피뜩 어제밤 꿈 생각이 나서 할머니들곁에 바싹 다가서며 허리를 굽석했다.
“안녕하세요?”
“뉘집 총객(총각)인지 음전하기두 해라.”
앞이가 홀랑 나간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민우는 그 할머니에게 한번 더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할머니, 꿈이 맞나요?”
“호호호… 총객두 꿈을 꿨수?”
“저 나이에 꿈이라믄사 호호호… 살마대(팬티) 젖는 꿈이겠지.”
“호호호… 보오, 저 총객이 낯이 빨개지는걸. 말해보우. 무슨 꿈을 꿨나?”
“저 어제밤 꿈에 신을 잃어버렸는데요.”
“미시게라꼬(무엇이라고)?
코등에 꺼먼 기미가 박힌 할머니가 두눈을 화등잔처럼 키우며 물었다. 민우는 그러는 할머니에게 눈길을 돌리며 반복했다.
“할머니, 저 어제밤 꿈에 신을 잃어버렸다구요. 발에 신는 신이 사라졌더라구요.”
“저런, 꿈에 신이 없어지면 안 좋은디.”
“네? 안 좋아요?”
“저런, 문뒤야. 웬 새 빠진 소리를 하노? 거야 다 옛날에 미개해서 하던 소리지. 지금 젊은이들이야 무슨 좋고 안 좋고가 있누? 꿈이사 다 도투(돼지)자리에 개꿈이디.”
몸집이 실한 할머니가 코등에 검은 기미가 있는 할머니를 나무랐다. 그러자 코등에 검은 기미가 있는 할머니가 얼굴 표정을 늘어뜨리며 입을 열었다.
“내사 괜히 말해보는게지. 옛날에는 꿈에 신이 사라지면 부모상을 당한댔수. 말이사 바른대루 해야디.”
“할머니, 부모상이라는게 뭔데요?”
“그게사 부모 돌아간다는 얘기지, 지금 젊은이들은 그런 말을 안 쓰는감?”
코등에 검은 기미가 있는 할머니가 그것도 모르냐는듯 민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순간 민우는 할머니의 눈길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흠칫하다가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떠듬거렸다.
“그럼 꿈이 마…맞아요? 할머니.”
“맞기는 뭐가 맞는겨? 로망 난 할망구들이 할일없어 씨벌이는게지. 총객, 근심 마우, 근심을. 지금이 어느땐데. 우리 아들은 미국이라는데를 다 갔소. 호호호… 비행기를 타구 갔다우. 흐흐흐…”
몸집이 실한 할머니가 아들 생각만 했도 좋은지 걸걸하게 웃어제꼈다.
민우는 그러는 할머니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할머니들의 꿈얘기가 괜히 귀전에 맴돌아 기분이 잡쳤다. 민우는 기울어지는 기분을 돌려세울 양으로 휙휙 휘파람을 불면서 어정버정 걸음을 옮겼다.
가로수들이 건들건들 춤을 추고있었지만 민우는 찜통속에 몸을 던진듯 괜히 숨쉬기마저 가빠났다. 민우는 연신 주먹을 들어 땀도 흐르지 않는 이마를 닦았다.
갓 오금을 뜬 알락강아지 두마리가 어미개를 따라나와 재롱질을 하고있었다. 민우는 걸음을 옮기다말고 어미개와 강아지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강아지들은 앙증맞은 다리를 옮겨 어미개의 뒤를 졸졸 따랐다.
어미를 따라나오니 그렇게 좋니?
민우는 문득 강아지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들처럼 아장아장 걸음마를 옮길 때부터 민우는 보모의 손에서 커야 했다.
민우의 인상속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손님이였다. 아버지, 어머니는 일년사시절 아침 일찍 나갔다가는 밤 늦게야 술냄새를 풍기며 들어오기가 일쑤였다. 그때면 민우는 한잠에 빠져있군 했다. 간혹 민우가 자지 않을 때 들어왔다 해도 아버지, 어머니는 피곤 어린 얼굴을 대충 씻고 자리에 들어버리군 했다.
유치원에 다닐 때 민우는 자식들을 마중온 부모들이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었다. 량쪽으로 부모들의 손을 잡고 걷다가도 “장백산이 돌아간다—” 하고 소리치며 몸을 빙 돌려 곤두박질을 하는 친구들을 볼 때면 부럽다 못해 한번 때려주고싶은 생각까지 들군 했었다. 그렇게 심기가 불편해진 날이면 민우는 자기를 데리러 유치원에 온 보모를 보고 이것도 사내라 저것도 사내라 떼질을 쓰군 했다. 보모는 불평 한마디 없이 민우가 사달라는 놀음감을 사고는 령수증을 뗐다. 보모가 건네주는 놀이감을 품에 안고 령수증을 호주머니에 넣는 보모를 바라보면서 저 네모난 종이는 무엇일가 하고 생각을 굴려보았다. 유치원에 다니는 민우로서는 도무지 그 네모난 종이가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 알수 없었다. 그래서 어느날 보모에게 그 네모난 종이장을 어디에 쓰는것인가고 물었다. 그러자 보모는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부자집도련님이 다르긴 다르구나. 벌써부터 그게 궁금해지는게. 그 네모난 종아장은 령수증이라고 하는건데 이 물건을 얼마에 샀습니다 하고 증명을 하는거란다. 그런 령수증이 없으면 사람들이 민우네 돈을 마음대로 뜯어먹어도 모를테지. 안 그래?”
민우는 어찌 그럴수 있느냐는듯한 눈길로 보모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나쁜 놈이 되잖아? 왜 그 네모난 종이장을 안 가지면 사람들이 우리 돈을 뜯어먹어?”
“호호호… 요 총명한걸… 물어보는것을 좀봐. 례를 들어 그렇다는 말이지.”
“례를 들어 아줌마도 그 네모난 종이장이 없으면 우리 돈을 뜯어먹을거야?”
“이런, 얘가 무슨 소리를 이렇게 하니? 생사람을 잡겠네.”
보모가 민우를 째려보며 새된 소리를 질렀다. 순간 민우는 보모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후부터 민우는 보모에게도 아무 말이나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있어도 속에 두고 오래오래 혼자 생각할뿐이였다.
민우는 갑자기 무척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콩콩콩—”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강아지들이 괜히 미워지기 시작했다. 민우는 길섶에서 돌멩이를 주어 강아지를 향해 힘껏 뿌렸다. 그 바람에 여유작작 산책을 하던 강아지들이 놀라 허둥댔다.
“씨팔.”
민우는 영문없이 욕지거리를 하며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운전수의 핸드폰은 신호가 통하는데 여전히받지는 않았다.
민우는 이상하게 생각되였다. 전에는 종래로 이런 일이 없었던것이다. 어디에 있다가도 민우가 전화를 해서 “아저씨 데리러 오세요.” 하고 한마디만 하면 운전수는 곧 달려와서 민우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던것이다.
“이 사람이, 정말 핸드폰을 두고 어디 나갔나?”
민우는 애써 제 좋은 생각을 골라하며 모를 일이라는듯 머리를 뱅뱅 젓다가 집 전화번호를 눌렀다. 원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넣을가고 생각을 했었는데 어머니가 신경질을 부리면서 다 큰 놈이 신까지 잃어버렸느냐고 핀잔을 할것 같아 인차 생각을 고쳐먹었던것이다. 민우는 집에 전화를 넣으면 보모가 전화를 받을것이고 그러면 보모에게 신을 사서 운전수에게 보내라고 통지를 할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와이—”
신호가 가서 한참만에야 대방의 석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모의 목소리인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귀에 선것 같기도 했다.
“저 민운데요, 아줌마 맞아요?”
“그래, 나다.”
“아버지네 단위 운전수아저씨 있잖아요, 왜 전화 안 받아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보모의 목소리가 많이 시큰둥하니 잦아들어있었다. 민우는 “아무리 큰일이 있어도 그렇지 내가 누군데 감히 이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 하는 생각이 들면서 괜히 심통이 불편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민우는 핸드폰에 대고 꽥 소리질렀다.
“웬 일인데 그래요? 모두들 미쳤어요? 나 신을 잃어버렸단 말이예요, 신을. 신이 있어야 집에 가든지 말든지 할게 아니예요?”
“뭐, 신을? 이걸 어쩌니? 신을 잃어버리다니…”
보모의 목소리가 떨리고있었다.
“어쩌긴요? 운전수아저씰 보고 빨리 한컬레 사오라면 될걸 가지구. 날마다 와서 아버지를 모셔가는 운전수아저씨 말이예요.”
“인젠 안될것 같구나. 거기서 방법을 대봐라.”
“왜 안돼요?”
“집에 돌아오면 알게 될거다. 이만 놓는다.”
말이 끝나기 바쁘게 보모가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가 덜컥 들려왔다. 핸드폰에서는 인차 “삐—삐—” 하는 단절음이 날아왔다. 민우는 벙어리가 된 핸드폰을 퀭— 하니 내려다보다가 마루에 덜렁 던져놓고는 분해서 씩씩 모두숨을 몰아쉬였다.
“웬 일이야, 이것들이 모두 웬 일이야?”
민우는 입술을 꽉 깨물면서 두눈을 꼭 감아버렸다. 눈까풀에 너무 힘을 주어서인지 눈동자가 아파나면서 노란 별똥 같은것이 톡톡 튀여올랐다. “저걸 어쩌니? 신을 잃어버리다니…” 하던 아줌마의 근심어린 목소리가 아프게 귀전을 자극해왔다.
신을 잃어버렸다는데 아줌마는 왜 그렇게 놀랄가? 아줌마도 “신을 잃어버리면 부모상을 당한다”는 옛말을 들어서일가?
말 못할 근심이 스멀스멀 민우의 신경을 건드렸다. 머리속에서 아물아물하던 어제밤의 꿈자리가 확연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분명 집앞이긴 했지만 지금 민우네가 사는 호화로운 집은 아니였다. 그 집앞으로 아버지랑 어머니랑 뭔가를 열심히 나르고있었는데 얼굴들이 꼭 어느 만화책에서 보았던 새앙쥐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우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뭔가를 나르느라 분망한 어머니의 팔을 잡고 물었다.
“지금 나르는게 뭔가요?”
“얘를 봐라, 지천에 먹을것 천지인데 생겼을 때 숨겨둬야지 이따가 없으면 숨기자 해도 안될걸.”
“헹여라차, 헹여라차. 날라들이세. 힘을 합쳐 남모르게 날라들이세.”
아버지가 뭔가를 자루에 넣어 등에 지고 문앞을 지나며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민우는 그 뒤를 따랐다. 아버지는 화사하게 웃고있는 뭇꽃들 밑에 난 컴컴한 굴속으로 들어갔다. 굴안에는 번쩍번쩍 빛이 나는 금궤 같은것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민우는 너무도 신기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마음껏 그것들을 만지다가 아버지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대지가 작렬하는듯하던 괴성은 바로 그 순간에 터졌다. 괴성과 함께 아버지, 어머니는 한순간에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내가 왜 해괴망측한 그런 꿈을 꾸었을가? 도대체 집에 무슨 일이 있다는것일가? 내 신은 누가 훔쳐갔을가?
민우는 이상해지는 기분을 달래며 민박집으로 돌아와 마루우의 쪽걸상에 쪼크리고 앉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자기를 둘러싼 애들때문에 여간만 흥성거리지 않던 마당에서졸지에 사람을 괴롭히는 괴괴함이 흐르는것만 같았다. 민우는 몰려오는 외로움을 뼈속까지 느끼며 불안해지는 눈길을 두리번두리번 사처에 날렸다.
푸름을 자랑하며 너울너울 춤을 추는 키다리 옥수수의 설레임소리도 그 순간에는 부정을 피우다 쫓기워 도망가는 바람난 아낙네의 숨 가쁜 헐떡임처럼 부산하게 들렸다.
처마자락을 스쳐지나며 지지배배 노래하는 청제비의 구성진 지저귐소리도 그 순간에는 건침을 탁탁 튕기며 네거리에서 악담을 퍼붓는 어느 아낙네의 거친 목소리처럼 구질구질 성가시게 들렸다.
바자굽에 피여난 이름모를 꽃들이 찌는듯한 무더위에 기를 상했는지 가녀린 목을 갸웃이 숙이고 우는듯 웃는듯 바람에 하느적이고있었다.
민우는 “무더위에 지친 저 꽃들이 죽지는 않을가?” 하는 근심이 머리속에 자리를 잡아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민우는 피곤한 신경을 날카롭게 긁어대는 모든것을 피해 집안으로 들어갔다. 민박집아줌마가 들어와서 거두었는지 나갈 때까지만 해도 몸만 쏙 빠진대로 구들에 널려있던 이불들이 반듯하게 포개여져 벽밑에 놓여있었다.
민우는 이불에 등을 기대고 비스듬히 누워 멀거니 천정을 쳐다보다가 다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민우는 약간 떨리는 손가락으로 어머니의 핸드폰번호를 눌렀다.
“지금 거신 핸드폰은 꺼진 상태입니다.”
아무 감정도 없는 안내음이 민우의 귀전을 아프게 때렸다. 민우는 입술을 감빨며 핸드폰을 퀭 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핸드폰에 손가락을 가져가 아버지의 번호를 눌렀다.
“지금 거신 핸드폰은 꺼진 상태입니다.”
똑같이 덤덤한 안내음이 날아와 귀속을 파고들었다.
순간 민우는 온몸이 나른해나면서 전에 없던 피곤기가 몰려왔다. 민우는 이불에 등을 기댄채로 스르르 두눈을 감았다.

6

민우는 갑자기 밖에서 와짝 떠드는 소리가 들려 두눈을 번쩍 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등산하러 갔던 애들이 돌아오며 좋아라 떠들어대고있었다. 민우는 애써 정신을 추스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에 붙어섰다.
“민우야, 봐라. 이게 뭐게?”
손에 뭔가를 들고 뛰여오던 여준이가 멀리서 민우를 발견하고 휘두르며 소리쳤다.
“뭔데?”
민우가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크게 물었다. 어느새 민우가 서있는 창문가로 뛰여온 여준이가 손에 든것을 민우의 눈앞에 흔들어보이며 시뚝해서 말했다.
“봐라. 내가 잡은거다. 이놈이 글쎄 스르르 오솔길을 지나가지 않겠니? 척 보니 독사 같더라. 그래서 돌멩이를 찾아들고 쫓아가 대가리를 명중하고 내리쳤지. 하하하… 아무리 독사면 뭐래. 내 돌 한매에 쭉 뻐들어지는거야. 어디라구! 이 어른의 손에서, 하하하…”
여준이는 민우를 보라는듯 억지로 너털웃음을 하며 아래말을 이었다.
“민우야, 이놈을 껍질 벗겨 저녁에 구워먹자. 뱀고기가 그렇게 맛있단다. 쫄깃쫄깃한게. 아, 근데 너희 집 운전수 신을 가져왔니?”
여준이가 뱀에 대한 말을 하다가 화제를 픽 돌려 신에 대해 물었다. 민우는 여준이의 물음에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오겠지 뭐.” 하고 한마디 얼버무려버렸다. 그 바람에 여준이는 아직도 오지 않았나 하는듯한 눈길로 민우를 바라보다가 인차 얼굴에 웃음을 바르며 화제를 돌렸다.
“뱀고기중에서도 독사고기가 제일 맛있대. 뱀고기는 구워서 소금에 살짝 찍어먹어야 제맛이래. 하하하… 이놈아, 오늘 우리의 안주나 돼봐라. 야, 돌대가리.”
여준이가 너털웃음을 웃다가 갑자기 석이쪽으로 머리를 픽 돌렸다.
“왜…왜? 여…여준아.”
석이가 여준이의 옆으로 다가서며 더듬거렸다. 여준이는 손에 들었던 뱀을 석이에게 던져주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돌대가리, 너 이 뱀껍질을 벗겨 잘 건사해둬라. 오늘밤에 로따랑 맛있게 구워먹을거니까.”
“뭐? 내…내가 이 뱀 껍질을 버…벗기라구?”
“왜? 못 알아들었니? 한번 더 말해줘?”
“아…아니, 난 뱀껍질을 버…벗길줄 모르는데…”
“그래서?”
“아…아니다.”
석이는 여준이가 던져준 뱀을 주어들고 집뒤로 사라졌다. 그제야 여준이는 애들을 둘러보면서 소리쳤다.
“가자, 우리 강변에 가서 물놀이나 하자. 등산을 하느라 온몸이 땀벌창이 되였구나.”
“그래, 민우야. 여준이가 등산에서 개인1등을 했단다. 여준이가 어찌나 빨리 오르던지…”
상필이가 여준이앞에 한발 다가서며 목청을 한 옥타브 높였다. 여준이가 그러는 상필이의 어깨를 툭 치며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시뚝해서 한술 떴다.
“까짓걸 가지구. 내 N두 괜찮은거라니까? 산을 오르는데 어찌나 발이 가볍던지…”
여준이는 기다렸다는듯 N표 운동신을 신은 발을 친구들에게 들어보였다. 민우는 그러는 여준이를 아니꼽게 쏘아보다가 성가신듯 날이 선 목소리로 “빨랑 꺼져!” 하고 소리쳤다.
“아니지, 아니지. 우리 어찌 로따를 두고 갈수 있겠니? 상필아, 너의 신을 벗어 민우를 줘라.”
여준이가 제옆에 선 상필이에게 크게 소리쳤다.
“나…난 신을 더 가져오지 않았는데…”
“그래서? 그까짓 짝퉁두 아깝다는거니? 왜? 몸이 근질거려나니?”
“아…알았어.”
상필이가 못마땅한듯 여준이를 흘끔 건너다보고는 호— 한숨을 내쉬면서 신을 벗었다.
“얌마, 뭘해? 빨랑 민우에게 신을 신겨주지 않구?”
여준이가 다시 상필에게 눈총을 쏘았다. 상필이는 신을 주어들고 민우앞에 다가가 신을 내려놓았다.
이때 따르릉 여준의 핸드폰이 울렸다.
“빨랑 신겨주라니까.”
여준이는 다시한번 상필이를 닥달하면서 핸드폰을 들었다.
“응, 엄마. 그래, 잘 놀구있지. 우리 금방 등산을 하구 내려왔어. 그래, 내가 일등을 했지? 엉? 뭐…뭐라구? 정말이야?!”
여준이가 입을 떡 벌리며 민우쪽에 눈길을 주었다. 모두들 여준이의 거동에 놀라 잠간 굳어졌다.
“엄마, 그게 정말이야? 정말 잡혀들어갔어? 쇠고랑을 차구? 수쇄까지 찾단 말이야? 그럼 완전 망한거잖아?”
여준이가 다시한번 민우쪽에 눈길을 가져갔다. 번쩍이는 여준이의 두눈동자가 얼음같이 차겁게 느껴졌다.
“뭐가 쇠고랑을 찼다는거야? 망하긴 뭐가 망해.”
민우가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흐흐흐흐…”
여준이가 웃고있었다. 친구들은 더구나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여준의 얼굴에 눈길을 박았다.
“상필아, 롱담을 한거야. 그 새끼 뭐가 대단하다구 네가 신까지 신겨주겠니? 그만 둬.”
“뭐? 뭐라구?”
상필이가 굳어졌다.
친구들도 굳어졌다.
“이 새끼, 너 방금 뭐라 했니?”
민우가 씽하니 다가가 여준의 엉뎅이를 걷어찼다.
“이 새끼 봐라, 오냐오냐 해줬더니…”
여준이가 민우의 배를 향해 오른다리를 날리고는 소리쳤다.
“민우 저 새끼, 수뢰범의 아들이다. 저 새끼 애비, 오늘아침 검찰에 잡혀갔다.”
“뭐뭐, 뭐라구?”
“이 수뢰범의 새끼 같은게. 방금 우리 엄마 전화에서 똑똑히 말했다. 너네 애비 손목에다 쇠고랑을 차구 끌려가는걸 직접 봤다구.”
“죽여라, 요 죄범새끼.”
평소 민우에게서 귀뺨깨나 얻어맞은적이 있는 애들이 우야 달려들어 민우를 치고 밟았다. 워낙 주먹이 세서 친구들의 “로따”로 군림한것이 아닌지라 친구들이 함께 달려드니 도무지 당해낼 힘이 없었다. 등이며 엉뎅이며 지어 머리에까지 발길이 날아들었다. 민우는 이대로 맞아죽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잘 튀겨진 새우처럼 잔뜩 몸을 옹그려붙이고 두팔로 머리를 꼭 끌어안았다.
“그만해라. 인젠 강변에 가서 물놀이나 하자.”
여준이가 친구들을 향해 크게 소리를 쳤다.
“그래, 여준아. 가자.”
상필이가 여준이앞에 한발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여준아, 인젠 네가 우리 로따를 해라.”
“짜식, 내 원래 저새끼보다 힘이 더 세거든. 가자.”
“가자.”
애들이 여준이를 따라 강변쪽으로 우르르 쓸어갔다. 민우는 그때까지도 죽은듯이 땅에 쓰러져있었다. 누구의 발길에 채웠던지 입술이 터져 퉁퉁 부어올라있었다. 애들이 멀리로 살아진후에야 민우는 간신히 일어나 앉았다.
이게 사실일가? 어쩌면 이런 일이 다 생긴단 말인가? 아버지가 수뢰범이라니? 무엇을 잘못하면 수뢰범이 되는걸가?
민우는 머리가 빠개지는듯 아파나서 뭐가 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미…민우야.”
이때 낮다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민우는 지긋지긋 아파나는 목을 간신히 돌렸다. 석이가 왼손에 껍질을 바른 뱀을 들고 오른손에 N표 운동신을 들고있었다.
“김석아.”
민우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민우야, 일어나라. 안에 들어가자”
석이가 다가와 민우의 발밑에 N표 운동신을 내려놓았다.
“이…이 신을 어디서?”
민우가 동공을 키우며 석이를 바라보았다. 석이가 민우의 기색을 힐끔 살피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은 나 새벽에 소변 보러 나왔다가 여준이가 이 신을 집뒤 장작더미에 숨기는것을 우연히 보았댔다.”
“뭐라구? 그런데 너 왜 아까는…”
“여…여준이가 무서워서…”
석이는 낮은 목소리로 버벅거리다가 뒤말을 잘랐다. 민우도 진작 석이의 뒤말을 듣고싶지 않았는지 머리를 픽 돌려버렸다.
아까 길에서 보았던 어미개와 알락강아지들이 배를 땅에 붙이고 엎드려 두눈을 살풋이 감고 볕쪼임을 하고있었다. 순간 그놈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민우의 머리를 치고들어왔다. 부러울 지경으로 시름없이 엎드려있는 어미개와 강아지들을 보는것이 심통이 터질것 같았다. 민우는 땅에서 흙덩이을 주어 그놈들에게 뿌렸다.
“깨개갱—”
어미개와 강아지들이 와뜰 놀라 일어나 웬 일이냐는듯 왕왕 짖으며 꼬리를 착 내리뜨리고 집뒤로 도망갔다.
“아까 등산하러 가면서 여준이가 애들에게 말했어.”
석이의 가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민우는 석이쪽에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석이는 여전히 왼손에 껍질을 바른 뱀을 들고 오른손에 N표운동신을 들고 서있었다. 민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랬는데?”
석이가 민우를 다시한번 힐끔 훔쳐보고는 아래말을 이었다.
“여준이가 말이다. 아까 너네 아버지가 가능하게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구… 검찰원이라는데서 얼마전부터 너네 아버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구…”
“돌대가리. 너너, 너는 왜 여준이 꼬랑대질 안하구…”
민우가 석이의 멱살을 와락 거머쥐였다.
“미미, 민우야, 나…난 웬지 네가 불쌍해보여서…”
석이가 다시 뒤말을 동강냈다.
“개소리 말구 아가리 닥쳐.”
민우가 별안간 석이의 귀뺨을 올리부치고는 집뒤를 향해 걸어갔다. 민우의 두다리가 휘청거리고있었다.
“민우야, 신, 신을 신어야 집에 가지.”
석이의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렸다. 민우는 두손바닥을 쫙 펴 귀를 막고 허둥지둥 걸음만 옮겼다. 방금 민우에게 쫓겨 집뒤에 들어온 강아지들이 아르릉아르릉 건가래를 끓이면서 물어뜯기를 하고있었다. 방금까지 어미개와 함께 볕쪼임을 하던 강아지들 같지 않게 송곳이를 드러내고 결투를 벌리고있었다. 결투를 하는 강아지들이 갓 피기 시작하던 뭇꽃들을 어지럽게 쓸어눕혔다. 꽃잎이 찢어지고 꽃봉오리들이 떨어져내렸다.
민우가 갑자기 허리를 굽혀 떨어진 꽃송이를 주어들었다. 민우의 두눈에서 콩알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있었다.
“미, 민우야.”
석이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민우를 불렀다.
“떨어지긴 왜 떨어져, 왜왜… 왜 떨어지냐구.”
민우는 왼손으로 꽃송이를 꽉 움켜쥐였다가 입에 막 쑤셔넣고 와작와작 씹어댔다. 민우의 두입귀로 뻘건 꽃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시각 석이는 분명 어디선가 들려오는 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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