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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그 순간
2010년 03월 11일 07시 12분  조회:1104  추천:0  작성자: 동녘해








그 날의 그 순간

도무지 참을것같지않던 격한 감정도 스르르 녹아버리면서 (너무했잖아?)하는 후회가 가슴을 파고 들었다. 그래서 (아니야, 응당한거지...)하고 자신을 달래보려고했지만 사나이의 얼굴에 맺혔던 이슬같은 땀방울과 물통을 들 때 이마에 불끈 솟던 굵은 피줄이 눈에 삼삼 감겨들어 가슴이 점점 찜찜해왔다. (그래, 오늘은 정말 재수에 옴붙은 날이야, 그 자식들만 아니여두...) 애써 잊으려던 그일이 또 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며칠전부터 컴퓨터가 인터넷에 련결이 잘 안되고 가끔 련결선이 떨어지기도 해서 몇번 다닌적이 있는 컴퓨터봉사부에 찾아갔었다. 기술원은 급한 일이있어 다른데로 나가고 견습공이 자리에 있었다. 간단한 고장같아서 견습공에게 컴퓨터의 상태를 말하자 자기 재간으로 얼마든지 고칠수있다며 따라나서는것이였다. (아무면 뭘해? 컴퓨터만 고치면 되지.)하는 생각으로 견습공을 이끌고 집으로 와서 컴퓨터를 맡겨버렸다. 한참이나 컴퓨터를 가지고 부산을 떨던 견습공은 부품이 없어서 고칠수없다는것이다. 하여 어느상태냐면서 컴퓨터를 살펴보니 먼저 설치되였던 프로그램들이 모두 삭제되여버렸다. 삽시에 울화통이 터져 컴퓨터를 원 상태로라도 복구해놓으라고 들이대자 자기로서는 할 방법이 없다는것이다. 말하는 견습공의 얼굴은 사색이 되여버렸고 눈굽이 젖어드는것이 당금 울음이라도 터치기 직전이였다. (참, 세상에 일이 안될라니...) 생각같아서는 한대 쥐여박기라도 하고싶었지만 우거지상이 된 견습공을 보니 마음이 여리여지기 시작했다. 돌아가서 기술원에게 당하는 견습공을 보는듯싶고 이 일을 계기로 일자리라도 떼우면 어린나이에 얼마나 큰 타격일가? 하는 생각을 하니 차마 더 뭐라고 할말이 없었다. (에라 선심을 쓰는셈치자!) 이렇게 자신을 달래며 올 때의 약속대로 봉사비 20원을 견습공의 손에 쥐여주며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견습공은 몇번이고 감사하다고 허리를 굽혔다.견습공을 보낸후 한쯤 지나서 기술원에게 핸드폰으로 견습공이 못믿어워서 그냥 보냈으니 시간을 내서 한번와보라고 련계를 했다. 헌데 기술원의 대답이 명답이다. 자기의 견습공이 봉사비까지 받아가지고와서 제대로 되는것을 보았다는데 또 내가 어디를 잘못 조작했다는것이다.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더니 그 말을 듣자 정말 억이막혀 뭐라고 할말을 찾을수없었다. (그래, 내가 바보야, 바보지.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본 내가 바보지...) 쓰거워지는 입을 다시며 눈을 지긋이 감고 분을 삭이고 있을 때 홀연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받을 생각도 않고 그대로 있다가 전화벨이 너무도 근질기에 울려대서 신경질적으로 일어나 수화기를 들었다. “점심에 물을 불렀습둥?” 무뚝뚝한 나그네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네!. 근데요.” “제가 잘못해서 비싼물을 보냈씀다. 그러니 표 한장을 더 주겠습니까?” 이건 또 홍두깨같이 무슨 소리냐면서 자초지종을 물으니 자기의 불찰로 한통에 15원짜리 물을 송달했으니 내가 물표를 한장 더 주어야 값이 맞는다는것이였다.애써 사그리려던 분노가 또 터지고 말았다. “당신이 물을 잘못 송달했으면 제대로 된 물을 가지고 와서 바꿔어가는것이 도리 아네요?” “40근짜리 물을 메고 6층까지 올라가자니 너무 힘들어서 그래꾸마.” “이보세요. 댁이 6층까지 올라오는건 힘들구 내가 물표 한장을 버는건 그렇게 쉬운줄알아요? 나 한통에 15원짜리 물을 먹을 신세가 못되니 제대로 된 물을 가지고 와서 바꿔 가세요”> 말을 마친 나는 수화기를 활 놓아버리고 터지는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거렸다.그렇게 하기를 십여분 후,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후닥닥 일어나 문을 열어보니 물통을 멘 40대의 사나이가 문밖에 서있었다. 색바랜 곤색잠바를 입은 사나이는 추위 때문인지 얼굴색이 검푸르고 입술이 갈라터져있었다. “내 불찰로 그만, 사실 이 물인데...” 사나이는 뒤말을 얼버무리였다. 초췌한 사나이의 얼굴을 마주하자 차마 뭐라고 입을 뗄수가 없었다. 나는 원래 받아두었던 물통을 들어내다 사나이 앞에 놓아주었다. 사나이는 물통을 들어 힘들게 어깨에 올렸다. 상체에 너무 힘을 주어서 그런지 이마에 굵은 피줄이 불뚝불뚝 일어나 있었다. “후에두 자주 불러 줍소.” 말을 마친 사나이는 층계를 따라 뚜벅뚜벅 힘겹게 발을 옮겨놓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뭐라고 할말을 찾지못하고 층계를 내리는 사나이의 뒤모습을 멀거니 바라만 보았다. (내가 웬일이지, 나에게 그래 <잘못 가져오면 뭐랍니까?. 덕분에비싼물을 맛보게됐군요.> 하고 웃으며 물표 한장을 더 뿌려줄 흉금도 없는걸가? 전에 컴퓨터견습공에 대한 믿음이 깨여지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처리했을가... ) 이런 생각이 들자 괜히 얼굴에 열이가며 누군가의 시험에 들어서 추태를 보인것같은 불안감에 가슴이 침침해났다. 그리고 컴퓨터봉사부의 견습공은 거짓말을 하는 순간 무엇을 생각했을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고 또 물나르는 사나이는 40근짜리 물통을 메고 6층을 오르며 무슨 생각을 굴렸을가가 알고싶어졌다. 그렇다. 사람들은 왕왕 베푼만큼 받아오는데 습관이 돼왔고 또 그 베품에 실망을 느꼈을 때는 대방을 탓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발 물러서서 그날의 그 순간에 그는 어째서 그렇게 처리할수밖에 없었을가를 다시 한번 짚어본다면 우리의 생활속에는 용서못할 죄가 없을것이고 또 뉘우치지못할 잘못이 없을것이다.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한발 물러서서 주변을 돌이키는 여유가 부족한것이고 또 당신이 어떤 시선으로 일을 보는가 하는것이다. 좀 더 넓게 생활을 포옹하는 방법을 배우자. 컴퓨터봉사부의 그 견습공이 이 밤을 편히 잘수있기를 빈다. 그리고 힘겹게 층계를 내리던 사나이의 뒤모습이 눈앞에 선히 보여오는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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