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病 床 記 / 文學, 1966, 5月 創刊號
서정범
중국에선 70여 세 된 어떤 노인이 개미의 움직임을 보고서는 일기예보를 정확히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물고기들도 장마가 지기 전에 는 입질이 활발하여 태공들을 기쁘게 해 주고 있다. 큰 장마에 대비해서 먹이를 많이 먹어두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상스러운 것은 내 꿈에 물고기를 보면 틀림없이 그 날은 비가 온다. 이 꿈은 낚시의 스승인 원 선생님의 꿈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비롯하는데 그 분의 꿈에 물고기를 보면 비가 온다는 것이다. 아마도 꿈이 이렇게 옮겨지는 것은 꿈에 물고기를 보면 비가 온다는 사실이 잠재의식으로 스며 있다가 온도나 습도 등 비가 올 수 이는 기상조건이 잠자는 피부를 통해 신경통 환자가 날이 꾸물거리면 신경이 쑤시듯, 신경에 자극을 주어 잠재의식에서 물고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리라.
그런데 내 꿈에 보이는 물고기는 모두가 곱게 빛나는 금잉어인 것이다. 수많은 별아가씨들의 입김이 얼어 눈이 내리면, 함박눈이 내리면, 나는 자하문 고개를 혼자서 걷기를 즐겨 한다. 눈이 내릴 때에는 그림자가 없지만 자하문 고개를 걸을 때에는 따스한 낭만의 그림자를 밟게 되는 것이다. 내리는 눈송이에서 두 개의 별이 빛나고, 오선의 악보가 펼쳐지고 거기에는 고운 음성이 녹음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한 십여년 전 어느 겨울이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창밖을 내다보니 정오부터 내리기 시작한 함박눈은 쉬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문득 눈 내리는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을 바라보니 여선생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함께 걷고 싶다. 여선생은 무척 쌀쌀한 편이어서 짖궂은 남선생들이 농담을 걸다가 콧방을 맞는 형편이니 말도 한번 건내보-지 못한 나로서는 망신만 당할 것 같아 망설였다. 그렇지만 용기를 내어 내 일생에 있어서는 처음인 아베크 신청을 했다.
눈의 휴식을 당하고 싶지 않으세요라는 쪽지를 써서 여선생의 책상에 슬며시 갖다 놓았다. 쪽지를 보는 그네의 표정이 굳어지면 그냥 퇴근해 버릴 준비까지 하고서 냈던 것이다. 자리에 돌아와 쪽지를 본 그네는 무척 당황하는 눈치였다. 곁눈으로 주시하던 나는 마음이 약간 놓였다. 나는 그 때같이 눈이 약간 옆으로 째져 있는 게 고맙다고 여긴 적은 없다. 만약 눈이 옆으로 째져 있지 않고 세로라면 곁눈으로 보려면 얼마나 어색하고 힘들었을까?
눈(雪), 눈(眼)이 너무 많지 않아요라는 열 자의 회신이었다. 내리는 눈이 많을 뿐더러 학생들의 눈이 많지 않느냐는 것이다. 효자동서 자하문 고개로 접어들면 길 양 옆의 가로수의 가지가 맞닿아 눈꽃의 터널을 이룬다. 눈은 계속 내려 발목이 푹푹 빠진다. 눈꽃의 터널에 이르자 그네는 이러한 절경은 처음이라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머리를 젖혀 눈송이를 받아 먹는 그네의 눈이 무척 고왔다. 나는 별이 두 개 떠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네는 하늘을 한번 휘둘러보더니 이렇게 눈이 오시는데 별이 어떻게 뜨느냐는 귀여운 항의였다. 그네의 두 눈이 별같이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발길이 끊어진 자하문 고개엔 하늘도 땅도 북한산도 숨죽어 있는데 눈송이만이 살아서 두 개의 별 빛만을 곱게 빛내고 있었다.
소년시절에 아버지를 졸라 낚시에 따라 나선 적이 있었다. 집에서 한 십리가량 가면 큰 저수지가 있어 아버지는 늘 틈만 있으면 자전거를 타고 낚시를 가셨다. 아버지는 긴 대를 두 대 뻗쳐 놓으시고 나는 좀 떨어져 짧은 대 하나를 차려 주셨다. 정오가 넘도록 한 마리도 못 낚았다. 도시락을 먹으니 떨리기까지 했다. 괜히 따라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도 한 마리 못 낚으시니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실까 하고 눈치를 살피니 갈 낌새는 조금도 없으시다. 그럴바에야 바람이 가리우는 양지 쪽으로 낚시를 옮겨 놓고 불이나 피우며 기다리기로 하였다. 한참 불을 피우느라고 눈물까지 흘리다가 찌를 보니 온데간데 없고 낚싯대끝만 끄덕거리는 게 아닌가. 채었다. 네 치 가량의 붕어가 뒤로 내동댕이 처졌다.
아버지는 한 마리도 못낚았는데 내가 먼저 낚은 것이 여간 자랑스럽지가 않았다. 뒤이어 네 치, 다섯 치짜리와 발갱이가 잇달아 걸려 나오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두 마리가 함께 걸려 나오기도 한다. 찌가 옆으로 깜박거린다. 작은 고기가 미끼를 따 먹으려나 보다. 채었다. 의외로 큰 게 걸렸다. 내가 끌려 들어갈 것 같아 쩔쩔 매었다. 고기가 시야에 들어 왔다. 붉은 색깔의 고기다. 한 자가 훨씬 넘는 금잉어인 것이다.
아버지를 부르려다 혼자 잡아 자랑하고싶었다. 거의 손에 잡히려 할 때 금잉어는 머리를 휙 돌리더니 낚시를 뻗어뜨리고 날아나고 말았다. 분하다. 생각할수록 분하기 그지없다. 지금도 나는 낚시에 가면 놓친 그런 큰 금잉어를 잡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내가 미칠 정도로 낚시를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이 꿈을 낚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니 그날 그렇게 고기가 많이 낚여진 것은 하오부터 바람이 불어 내가앉은 자리에 흙물이일어 새 흙내를 맡은 고기들이 몰려 왔으리라.
요 며칠 전의 꿈이다. 자치가 되는 금잉어가 낚시에 걸렸다. 쩔쩔 매며 끌어내었다. 이상스러운 것은 금잉어의 눈이 사람의 눈인 것이다. 자하문 고개를 함께 걷던 그네의 눈동자다. 잉어가 눈을 깜박하니 이번에 사람의 눈대신 별로 변해 빛을 내는 것이 아닌가. 꿈에도 너무 신기해서 잉어를 두 손으로 꼭 쥐었다. 지금까지 핑핑하던 금잉어가 맥없이 죽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금잉어가 하얀 잉어로 변하였다. 다시 미끼를 끼워 던졌다. 이번엔 찌가 쑥들어간다. 채었다. 요동이 없는게 묵직하다. 조금씩 끌려 나온다. 물린 것이 보이는데 물린 것은 고기가 아니고 뼈만 앙상한 나 자신이 걸려 나오는 것이 아닌가. 위(胃)에 낚시가 걸렸다. 머리가 하얗게 희어져 있었다. 꿈이 깨었다.
일요일 아침이다. 내가 앓고만 있지 않으면 오늘은 금년들어 처음 낚시를 갔을 것이다. 위가 바늘로 찌르듯 아프다. 진땀이 난다. 어떤 불길한 예감이 몸을 오싹하게 한다. 머리가 아프다. 머리를 드니 빈혈증이 노랗게 일어난다. 창문을 열라고 하였다.
한창 꽃망울이 부풀러 오르고 있는 계절인데 밖에서는 철늦게 진눈깨비가 치적치적 내리고 있었다. 그 치적치적 내리고 있는 눈발 속에는 어설픈 나의 초상(肖像)이 내리고 있었다. 이 어설픈 나의 초상은 싸늘한 웃음을 띠고 쑥 들어간 눈으로 나를 응시하면 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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