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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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6일 13시 03분  조회:2929  추천:78  작성자: 우상렬
 


뚜푸~

연변이 어떤 곳이냐? 조선족이 많이 사는 곳. 조선족이 많이 사는 곳이니 술놀음이 많은 곳. 그렇다. 그래서 나는 연변에 있을 때 술에 절여 있었다. 몸에서 술 냄새가 풀풀 났다. 1차, 2차, 3차에 새벽에 두부-뚜푸~ 소리가 날 때까지 퍼 마시다나면 녹초가 될 때가 많았다. 여기에 이튼 날 땡하고 해 뜰 날이 되어도 일어나지 못하고 머리가 땡 해나서 하루 점도록 누워있는 꼬락서니는 내 스스로도 못봐주겠다. 그래서 이제 술은 절대 안 마셔, 술 마시면 개아들놈이야 하면서도 또순이, 갑순이, 금순이를 붙여주면 또 한잔 하는 내 꼬락서니라구야 정말 못 말리지. 그리고 또 후회하고...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것이 저 멀리로 도망가기. 그런데 바로 이때 학교당국에서  포스트닥인지 무언지 나도 잘 모르는 닥을 하러 저 멀리로 가라니 어디 이렇게 아다리가 맞아떨어질 수 있으랴! 이래저래 나는 복 있는 놈이다.

그래 나는 비행기를 타고 훨훨 날아 이 머나먼 남쪽 땅에 와 있다. 처음에는 그래도 노마에 가면 노마법을 따르는 식으로 적응을 하느라고 호기심에 신비감까지 느끼며 그럭저럭 보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영 말이 아니다. 내 꼬락서니를 좀 보라. 하루 점 도록 앉아 하는 짓이란 책하고 씨름하기. 그래 이젠 지겹다, 지겨워, 책도. 어떤 놈도 나를 한잔 하자고 불러주지 않는다. 연변에서 그렇게 흔하게 마신 술 한 잔 할 친구 없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내 친구가 없다. 외롭다. 쓸쓸하다. 왕따 당한 느낌이다. 한없이 잡쳐지는 기분. 그래서 ‘잔 들고 권할 이 없으니/달을 불러 마시노라/달빛에 내 그림자 해서 세 사람이니/술 맛이 절로 나네’,「月下獨酌」의 이백시가 절로 읊어진다. 나도 시인이 되려는가봐. 오랜만에, 정확히 말해서 가물이 콩 나듯이 어쩌다 술 장소가 생기면 나의 기분은 붕 뜬다. 그런데 이것도 잠시, 나의 기분은 풍선이 펑 하고 터지듯이 곧바로 터지고 만다. 술은 있으되 술 마실 친구들이 없다. 냠냠 맥 물 같은 포도주나 맥주를 한 잔 부어놓고 마시는 흉내만 내고 안주만 냅다 먹어주기에 여념이 없는 작자들. 점잖고 세련된 척 하지만 먹기에 바쁜 너희들, 내 보기에 탁하다 못해 민하다. 그래서 내가 붙여준 이름 먹자주의들, 딱 맞다 딱 맞아. 모두들 잘 먹어 얼굴에 게기름이 번지르하다. 못 먹은 나만은 비루먹은 개처럼 깨죄죄하다. 실은 술만 퍼 마시는 사이 먹자주의자들이 어느새 싹 먹어치우고 말았으니, 못 먹는 것도 당연지사지.

아, 연변아, 그립다.‘床前明月光,疑是地上霜./擧頭望明月,低頭思故鄕.’이백의‘靜夜思’가 아니라 나의 ‘靜夜思’로 받아주렴. 나의 그 술친구들 그립다. 먹자주의자들보다 세련되지 못한 것 같지만 훨씬 멋이 있는 나의 마시기주의 친구들이 그립다. 철이야, 돌이야, 땡이야, 내 연변에 가면 술 사줘야 해. 많이많이. 내 여기서 마시지 못해 기갈 들었던 만큼. 아니, 더 많이. 또순이, 갑순이, 금순이도 부르고. 우리 술상에서 세속의 골치 아픈 모든 거 다 털어버리고 형님에, 동생에, 아저바이, 조카... 권커니 작커니 참 재미있고 멋있었다. ‘한 잔 먹세그래, 한 잔 먹세그래...’‘將進酒 ’의 송강정철이 우리가 아니냐? 그래 영웅호걸이 따로 있냐?  한 잔 하고 호쾌하게 천하를 호령해보는 것도 내 멋이지. 사실 나는 영웅호걸이고 자시고 다 떠나 그저 통하는 수컷들 몇이 만나 별 볼 일 없이 한 잔 하며 시시컬컬 희희작작 거리는 것이 내 인생의 최대낙의 하나다. 여기에 암컷 몇이 끼어들면 더 좋고. 암컷이야 통하든 안하든 관계없이 다다익선. 아이 다 키운 놓은 아준마들이 할 일 없이 만나서 맥 물 놓고 인생에 최대의 낙인양 수다를 떨듯이 말이다. 근엄한 책보기와 논문 쓰기에만 돌입한 중대가리 같은 내 여기 인생은 역설적으로 그것을 말해준다.   

그래 술 마신다고 못해내는 일이 어디 있냐? 더 잘 해내는 우리가 아니냐? 잘 나도 내 청춘, 못 나도 내 청춘... 우리 내 멋대로 살기요. 이제 우리 연변에서 뚜푸~ 소리날 때까지 마시기요!

2007.11.1



中國左翼作家聯盟


1920-30년대는 적어도 동아시아 범위에서 무산계급문학운동이 팽배하던 시기이다. 일본, 조선, 중국에서 무산계급문학단체들이 연이어 결성되었다. 일본의 ‘나프’, 조선의 ‘카프’, 중국의 ‘左聯’이 그 전형적인 보기다.

‘左聯’은 ‘中國左翼作家聯盟’의 약칭으로서 1930년 3월 2일 上海犊樂安(DARROCK)路233號에 있는 중화예술대학 청사에서 성립을 선포했다. 현재의 上海多倫路文化名人街에 있는 虹口區多倫路201弄2號가 그 자리다. 이 청사는 남향으로 좌정한 3층 서양식 건물이다. 이 청사는 1980년 상해시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고 2003년 1월에 애국주의 교육기지로 명명되었다.


              ‘左聯’성립대회가 열린 중화예술대학청사정면



  ‘左聯’성립대회터기념관의 1층에는 성립대회터가 있다. 당시 50여명이 성립대회에 참석했다. 연단 바로 앞 석에는 대회에서 천거한 3인의 주석단성원인 魯迅,沈端先(夏衍), 钱杏顿이 앉았다.

        ‘左聯’성립대회가 열린 회의실


  ‘左聯’성립대회에서 潘汉年이 중국국공산당을 대표하여 연설을 했다. 그리고 冯乃超가 준비경과보고를 하고 郑伯奇가 강령에 대해 설명을 하였다. 그 다음 ‘左聯’의 이론강령과 행동강령을 통과하고 ‘맑스주의문예이론연구회’를 성립하였다. 마지막에 魯迅이 「좌익작가연맹에 대한 건의」란 제목으로 연설을 하였다. 대회에서는 魯迅,沈端先、冯乃超,钱杏顿,田汉,郑伯奇,洪灵菲으로 구성된 7인 집행위원을 선거하였다. 그리고 蒋光慈,周全平이 후보집행위원으로 선거되었다.


魯迅을 비롯한‘左聯’의 7인 집행위원


 

회의는 오후 2시부터 저녁 7시까지 진행되었다. ‘左聯’성립대회터기념관 2층에는 ‘창건․발전’, ‘문학성과’, ‘반항․희생’,‘기념․연구’4개 부분으로 된 전시관이 있다. 그리고 별도로 한 칸에는 ‘左聯’맹원들이 사용하던 일부 유물들이 놓여져 있다.

‘左聯’맹원들이 사용하던 일부 유물


‘左聯’의 길은 험난하였다. 그것은 국민당 반동정부의 진압을 받기도 한 피비린내 나는 길이었다. ‘左聯’5열사는 이 역사적 사실을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

1931년 1월 17일, 5명의 ‘左聯’맹원이 漢口路에 있는 上海東方旅館에서 회의하다가 반역자의 밀고로 체포되었는데 결국 2월 7일 龍華에서 희생되었다. 魯迅은 ‘左聯’5열사의 비보를 듣고는 馮雪峰과 더불어『前哨 ․ 紀念戰死者專號』라는 ‘左聯’기관간행물을 펴냈다. 그리고 국민당 반동정부를 성토하는 많은 글을 썼다.「잊어버리기 위한 기념」이라는 유명한 글은 바로 이때 쓴 것이다. ‘左聯’성립대회터기념관 뒷 화원 내에는 ‘左聯’5열사의 조각상이 있다.

‘左聯’5열사 조각상


‘左聯’은 1936년 봄에 해산되었다. ‘左聯’은 중국공산당이 리드하고 魯迅을 기수로 한 혁명문학단체였다. ‘左聯’은 ‘5.4’신문학전통을 계승하고 맑스주의문예이론을 소개하고 전파하였으며 무산계급혁명문학을 제창하고 진보적인 문예대오를 육성하였으며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문예작품을 창작하였고 국민당의 반혁명문화 ‘토벌’을 분쇄하는 등 면에서 휘황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하여 중국현대문학사 및 혁명사에서 빛나는 한 폐지를 장식하고 있다. ‘左聯’은 새 중국의 혁명문학 전통의 시원으로 된다. 그런 만큼 상해의 ‘左聯’성립대회터는 중국 무산계급 혁명문학의 한 메카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2007. 10. 30


바가지콤플렉스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넓은 세상에 짧은 인생의 아이러니를 여행이 많이 커버해주니 말이다. 새로운 곳에 가서 호기심과 신비감의 만족과 충족만으로 나는 만족한다. 그런데 여행자들 제일 골치 아픈 거 하나가 바가지콤플렉스다. 형형색색의 토산품들이 구매욕을 자극한다. 그런데 사자니 바가지요금을 안기지 않는지~ 맞아, 바가지요금이다하고 제풀에 놀라 구매욕이 쏙 수그러들고 만다. 그래 집에 돌아가서는 샀어야 되는데, 샀어야 되는데 후회막급이다가 인편에 다시 부탁하는 해프닝도 벌어지기도 한다. 바가지콤플렉스에 놀아난 것이다. 인간의 악마 같은 존재와 요사한 존재가 만들어낸 바가지콤플렉스. 이 바가지콤플렉스는 우리를 괴롭힌다. 특히 여행의 암적 존재다. 즐거운 여행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그러니 우리는 이 바가지콤플렉스를 떨쳐버려야 한다.   

자, 그럼 바가지콤플렉스를 떨쳐버리는 비결 공개.

아예 안 사는 원칙. 아무리 싸게 주니깐 사라고 물고 늘어져도 본체만체 안 사주기. 그런데 이것은 너무 소극적이고 쫀쫀하다 보니 쉽게 기분 나쁘게 번질 수 있다. 그러니 적극적이고 대범하게 생각해보자. 모든 것은 생각의 문제이니 말이다. 그래 道적인 경지로 생각을 바꾸어보자. 적어도 道敎적인 경지로 말이다. 大音稀聲, 大象無象이 아니냐. 그러니 大買無買 경지를 창출하면 된다. 아무 것도 안 샀지만 모든 것을 산 듯한 그런 느낌. 여기에 身外之物 운운까지 곁들이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 정말 物外에서 노는 道적인 경지를 맛보게 된다.

그리고 가령 바가지를 썼다고 하자. 바가지를 썼으니 기분 좋을 리 없지. 그렇다고 안달아 해보았자 내속만 더 상하기. 그러니 아Q적인 정신승리법이 없지 않아 있지만 베푼다고 생각하면 홀가분하다. 거지한테 베푼다는 그런 식 말이다.

내 소비수준에서 놓고 볼 때 바가지가 아니다는 생각. 일반적으로 자기 나라보다 뒤떨어진 나라에 가면 돈이 맥 있어 진다. 그래서 일반 소비는 느끈이 감당할 수 있다. 그 나라 생활수준에서 보면 비싸게 바가지를 쓴 것 같지만 자기 나라 수준에서 보면 그리 부담되는 소비는 아니다. 내 소비가 감당할 수 있을진대 왜 하필 바가지로 생각하겠는가? 기분 나쁘게 스리 말이다. 같은 값이면 분홍치마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 진짜 베푸는 신사숙녀 스타일도 이런 것이다.

적어도 이 몇 가지를 뇌리에 떠올려보면 바가지콤플렉스는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다.


2007.11.1




나와 선생

인생은 아이러니다. 내가 샌님이 되었으니 말이다. 워낙 나와 선생은 악연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선생들한테 많이 당한 느낌이다. 소학교에서 중학교로, 학벌이 높아지면 질수록 더 그런 것 같다. 그 중에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몇 가지를 들어본다. 소학교 때 별로 잘 못한 거 없는 것 같은데 젊은 체육선생한테 한번 맞아 터졌다. 초중 때는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여 내내 지각을 지는데 세워놓고 제 자리로 잘 들여보내지 않는데 불만을 표시하느라고 항상 쉬엇 자세로 비뚤하게 서 있다가 그만 우리 담임선생한테 복사뼈가 채여 탱탱 부어나기도 했다. 내가 다리를 저는 것을 본 우락부락 싸움 잘 하기로 이름난 둘째 형이 주먹을 휘두르며 윽윽 하자, ‘거저 때렸겠나? 맞을 짓을 했으니깐 때렸지. 뇌두라! 고운 아이 매 하나 더 준게다’라고 아버지가 으흠하며 말렸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고중에 올라와서 수학시간에 소설 <수호전>을 보다가 수학선생한테 들켜 그 남한테 빌린 소설을 갈기갈기 찢기우기도 했다. 나의 문학꿈이 산산이 쪼각나는 순간이었다. 내가 소학교에서 고중을 다닐 때까지는 분명 사도존엄을 비판하던 때이건만 우리 선생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드센지? 우리는 많이들 기가 죽어 있었다. 그래서 선생지위 臭老九고 무어고 떠나 선생하면 질색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 연변대학교 입학통지서를 받았을 때 졸업하면 중학교 샌님이 된다는 말에 입학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때 대학 붙기가 하늘에 별 따기건만. 그런데 그때 입학통지서가 온 대학에 가지 않으면 1년간 대학입학시험 자격을 취소하는 판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간 것이 연변대학교이다. 1년간 놀며 그럭저럭 공부하다가 돌아오기로 작심하고. 그런데 1년간 공부하는 사이에 어느 새 대학공부가 재미났고 연변대학에 정 들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 샌님으로 배치 받아가는 나는 꼭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가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 강의는 그럭저럭 떼우고 이판사판으로 석사연구생시험을 준비했다. 붙으면 새로 공부하고 못 붙으면 下海하고. 그런데 개빵으로 붙었다. 연구생공부를 무난히 끝마쳤다. 그런데 운명의 신은 나를 대학교 샌님으로 들어앉힌다. 대학교 샌님이고 뭐고 선생노릇은 딱 질색이었다. 그런데 주위에서 하면 된다, 잘 한다 식으로 짜른 바지 춰주는 바람에 그럭저럭 한 2-3년하고 박사를 한답시고 한국에 유학행을 떠났다. 그런데 지도교수와의 악연은 나를 너무나 피곤하게 하였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고 번역 출판한 책을  갖다 바치면 그 책을 탕, 탕 책상에 매치며 전공에 아무런 관계도 안 되는 이 잘난 책을 왜 번역하는가하며 야단이다. 용돈 좀 마련하느라고 진행한 번역을 이렇게 닥달하니 나는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가난한 중국유학생의 처지를 못 알아주는 지도교수가 너무나 야속하고 얄미웠다. 이래저래 나는 지도교수와의 관계가 꼬이고 꼬여 결국 박사학위 논문도 10년 가까이 가서야 겨우 심사를 받을 수 있었다. 나의 박사학위는 정말 눈물 젖은 박사학위.

나는 박사학위를 받고 줄곧 대학교 샌님노릇을 해왔다. 어쩐지 이때쯤은 대학교 샌님이 싫지 않았다.

나는 항상 학생들을 너그럽게 대해왔다. 嚴師出高徒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하고 친구가 되고 싶었다. 나는 선생과 학생의 관계를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로 대입해본다. 선생은 시어머니, 학생은 며느리, 여기에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듯이 학생도 선생으로 될 수 있고... 그리고 시어머니가 된 며느리가 새로운 며느리를 대하는 상반되는 두 가지 태도를 상정해본다. 시어머니 위엄을 살려 내가 당했으니 너도 한번 당해보아라하는 식. 그리고 이해심이 앞서며 오히려 인간적인 배려를 많이 해주는 식. 선생이 학생을 대하는 태도도 이 두 가지로 상정해볼 수 있다 할 때 나는 단연 후자를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웃으며 매부 좋고 누이 좋은 식으로 보다 많이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자율에 맡기는 유연함을 보인다.


2007. 11.2


 

작은 것의 미

미학에는 어떤 대상물이 미로 되는 데는 적중한 크기여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적중함을 벗어나는 적중함보다 큰 것에서 미를 찾기 좋아하는 듯하다. 여하튼 많이, 큰 것, 다다익선... 맹목에 가까운 아집. 인간의 욕망의 팽창으로 보아야 하나.

그런데 인간은 분명 적중함보다 작은 것에서 미를 찾는 경향도 있다. 작은 것의 미가 바로 그것이겠다.

멋대가리 없이 훌쩍 커버린 어른보다는 강보에 싸인 어린이가 고와 보인다. 

우리가 애완용이라고 키우는 것들도 보면 전부 손에 가지고 놀게 좋도록 작은 것. 큰 개가 아니고 강아지... 이런 거.

커쿨지게 큰 남자보다는 가날프게 작은 여자가 곱다.

조비연, 중국 한나라 때 미인. 작은 미인. 너무 작아 한성제의 손바닥에서 춤을 출 정도였다고 한다. 정말 매미허리에 버들가지 같은 작은 유연함에 바레라도 추었겠지. 

등소평, 이름처럼 작고 평평한 머리. 큰 것들은 쿵 하고 넘어져서는 다시 일어나지 못 해도 넘어졌다가는 다시 일어나군 하는 영원히 넘어질 줄 모르는 오또기. 작은 고추 매운 식의 작은 거인. 이런 역설이 등소평을 더 없이 멋있는 사나이로 만든다.

서양사람과 우리 동양사람을 비하면 우리 동양사람이 작다. 육식을 하는 그들과 곡식을 먹는 우리의 차이라 할가. 서양사람은 키가 큰 만큼 주먹질 권투에 능하다. 그러나 작은 우리는 아랫도리 발놀림을 잘 한다. 중국의 무술이고 한국의 태권도라는 것도 주로 이런 발놀림이다. 키가 작은 한국군인하고 키가 큰 미국군인이 싸움을 할 때 키가 작은 한국군인이 발놀림으로 키가 큰 미국군인의 아랫도리를 공격하면 이기기는 떼놓은 당상이라고 한다. 그 거시기라는 것도 그렇단다. 여자들 꺼는 잘 모르지만 남자들 꺼는 분명 ‘양놈’들이 우리보다 크단다. 그래서 우리를 기죽게 한단다. 그런데 우리 것은 작지만 그들보다 더 빻빻하게 뻐기고 고사포를 더 멋지게 쏴댄단다. 사실 이런 힘의 논리만이 아니고 작은 취미를 많이 드러내는 우리 동양은 바로 이 작은 것으로 승부한단다. 미국사람, 마우제이의 한 종류. 기발한 창의력은 있어 기상천외의 희기한 것을 잘도 만들어낸다. 반도체 라디오, 처음 그들이 만들어낼 때 들고 다니기에는 불편한 정도로 컸다고 한다. 그런데 모방을 잘 하는 일본이 어느새 모방하여 포켓 반도체를 만들어내니 그것이 세계에 유행했단다. 그리고 미국에서 컴퓨터를 집채 같이 크게 만들어내니 일본에서는 깜찍하게 만들어내고 냉장고를 우둑지게 만들어내니 산듯하게 만들어내고... 결국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벌어들이는 격. 그래서 미국에서 무슨 세계지식재산권보호니 하는 것을 만들어내기에 용을 뺏다는 것이다. 깜직한 소일본은 분명 작은 것의 미의 재미를 톡톡히 본 듯하다. 이렇게 놓고 볼 때 한국의 석학 이어령이 지적한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정말로 적중하다.  

나는 조 작달마한 새기들이 어떻게 시집가지 하고 항상 노파심을 태울 때가 많다. 그런데  고 작달마한 새기들이 시집만 잘도 간다. 나는 한국 드라마『소문난 칠공주』를 보면서 고 조그마한 땡칠이를 누가 데려갈고 하고 은근히 근심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 법대생이 프러포즈고 자시고 막 달려들지 않는가? 고 작지만 또르르한 땡칠이의 눈에 법대생은 빠져들고 말았네.

세계 많은 도시를 죽 살펴보면 수도는 한 개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많은 것의 중심지가 되면서 인구, 면적 할 것 없이 비대해진다. 사람이 바글바글 하다 보니 사람이 귀찮아질 때가 많다. 그러나 저 흑룡강 북대황에 사람이 하도 적다 보니 사람을 보기만 해도 반가울 때가 많단다. 비대해진 수도를 줄이기 위해 왕왕 주위에 작은 위성도시를 건설하여 인구의 흐름을 유도한다. 나는 북경이나 상해 같은 큰 도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 하나 만나자해도 버스 타고 택시 타고 지하철 타고 찾아가기가 바쁘다. 만나는 즐거움보다 가는 과정이 더 고통스럽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기가 반갑지 않다. 아예 포기하고 싶을 때가 더 많다. 나는 우리 연길을 좋아한다. 걸어서 1시간 이내로 동서남북 어느 방향이든지 가 닿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연길의 아담사이즈보다도 작아 보이는 1시간 생활권이 참 좋다. 현재 연룡도니 뭐니 하며 큰 도시를 만든다고 야단들인 것 같은데 나는 그리 반갑지 않다. 현재 내가 잠간 와 있는 가히 세계적으로 제일 큰 도시라고 할 수 있는 3200만 인구의 중경직할시를 보니 시내에서 한 번 옮기는데 차만 타다나면 하루해가 어느새 다 가고 마니 좋은 세월 다 보낸 셈이다. 그래서 나는 땅이 넓은 중국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워낙 출장을 가기 좋아하고 여행을 하기 좋아하는데 정말 내 인생에 지겨운 차속에서 보낸 시간만 해도 얼마나 되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안티테제로 한국을 좋아한다. 대한민국이 아니라 1일 생활권의 소한민국이 좋다. 하루면 온 나라 어디든지 휘젖고 다닐 수 있어 좋다.

어느 경제학자의 말을 들어보니 현 단계 전 세계가 시장경제의 네트웍으로 돌아가는 마당에는 덩치가 작은 나라가 기동영활하게 잘 적응하고 대처할 수 있어 좋단다. 같은 논리로 대기업이나 그룹보다는 중소기업이 시장경제를 휘젖고 다닐 수 있는 여지가 더 많다고 한다.

우리는 어쩌면 분명 작은 것을 더 선호해 왔다. 러시아 마우제이 큰 명태보다는 우리의 작은 명태가 더 맛있고 좋다. 한족들 큰 오이보다는 작은 조선오이가 더 좋고, 한족들 큰 고추보다는 작은 조선고추가 더 맵고 맛있고. 그렇쟈?


2007. 11.12



내 이름은 돈

개도 안 먹는 돈, 더러워! 퉤 하고 땅에 던져 보았다(나는 이렇게 부실하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개미떼들처럼 달려든다. 너도 나도 줏겠느라고. 에익, 사람들 개보다 더 더럽다.

나는 매일 강의를 한다. 학생이고 자시고 고 새별 같은 눈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금전으로 되어 보인다.

식당에 손님들이 와자작 들어온다. 순간 식당사장의 눈에 와그르르 돈이 굴러들어오는 모습으로 변한다.

의사는 병 주고 약 준다. 죽기는 바라지 않는다. 죽지 않고 겔겔 하면서 비싼 약 많이 쓰기 바란다. 병 주고 약 주기의 아이러니, 이 역설,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지? 세계 예술거장 챠플린은 자기의 영화『도시의 빛』인가에서 아이가 유리를 깨면 어른이 가서 해 넣어주고 돈을 버는 이 세상 돈에 얽힌 황당한 먹이사슬의 세태를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 돈이 생겨나서부터 이런 거다. 見錢眼開가 아니냐? 돈이 우상이다. 그러니 세계문학사에 3대 수전노가 생겨나지 않았느냐? 쉐익스피어 주인공의 돈타령-검은 것을 희게 하고 파파 늙은 노파를 새파란 처녀로 둔갑시킨단다. 우리 문학사의 흥부의 돈, 돈, 돈 돈타령...

나는 요새 이상한 병에 걸렸다. 돈병에 걸렸다. 나도 이제는 나이를 먹을 대로 먹었는지 아랫도리가 맥이 쫙 빠지는 것이 두 다리가 휘청휘청해난다. 그래서 부부 간에 천륜지락이고 자시고 정말 귀찮기만 하다. 그런데 나의 거시기는 돈을 보면 흥분한다. 그래서 우리 마누라가 그 짓을 하고 싶으면 야, 돈 봐라! 하고 빨락빨락 백 원 짜리 한 장 내들고 꼬신다. 그러면 그 놈은 슬슬 발동이 걸린다. 그기에 야, 한 장 더 하면, 좀 더 머리를 쳐들고, 잘 한다, 또 한 장 더 하면 머리를 중천에 들고 , 잘 한다, 또 한 장 더 하면 완연한 고사포가 된다. 그래서 우리 마누라가 나에게 지어준 이름-남자기생.


2007. 11.13


하늘을 쳐다 봐!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짧은 인생에 다람쥐 채 바퀴 돌 듯 요 연길 좁은 세상에만 맴돌아 치겠나, 이 넓은 세상에 말이다. 이렇게 생각만 하면 나는 곧 바로 떠나간다. 저 멀리로.

기차를 탄다. 지겹도록 타는 기차에 좀 질린다. 그래서 옆에 사람과 말을 걸어본다. 그런데 말은 한두 마디 안팍에 끊기고 만다.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는 말을 하기 싫어하는 법인가봐. 그래서 저 앞에 예쁜 처녀동지를 미학적으로 감상한다. 그런데 그 처녀동지는 나의 정겨운 눈을 ‘流氓’이라는 한 마디 말로 밀막아 버린다. 참,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말할 사람이 없고 보아 줄 사람이 없다. 외롭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차창으로 저 먼 산, 먼 하늘을 바라보기. 세월아, 네월아, 하루 종일 쉼 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의 영혼은 흰 백지상태가 되고 만다.

나는 이 백지상태의 영혼으로 이곳저곳을 헤맨다. 이곳저곳을 헤매다보면 오만가지 사람을 다 만나건만 나는 늘 외롭다 못해 쓸쓸해난다. 그러면 나의 영혼은 멍해진다. 그래서 나는 내가 떠났던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여기에는 내가 아는 사람들이 참 많다. 우리는 만나 왁자지껄 한 잔 하며 잘 놀아댄다. 그런데 나는 계속 외롭고 쓸쓸하다. 이 세상에 자기 자신처럼 자기를 알아 줄 사람이 어디 있나 말이다. 자기 스스로도 자기를 잘 모르는 인간이 아니냐? 그래서 옛 사람들은 말했던가, 한 생에 知己 하나만 생겨도 만족스럽고 행복한 일이라고.

그래서 나는 등산을 좋아한다. 오늘도 산을 찾아 간다. 李白의 ‘相看兩不厭, 只有敬亭山’의 「獨坐敬亭山」을 외우며. 산꼭대기에 앉아, 외롭고 힘이 들 때는 하늘을 봐!하고 외쳐본다.


2007. 11.12



바가지콤플렉스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넓은 세상에 짧은 인생의 아이러니를 여행이 많이 커버해주니 말이다. 새로운 곳에 가서 호기심과 신비감의 만족과 충족만으로 나는 만족한다. 그런데 여행자들 제일 골치 아픈 거 하나가 바가지콤플렉스다. 형형색색의 토산품들이 구매욕을 자극한다. 그런데 사자니 바가지요금을 안기지 않는지~ 맞아, 바가지요금이다하고 제풀에 놀라 구매욕이 쏙 수그러들고 만다. 그래 집에 돌아가서는 샀어야 되는데, 샀어야 되는데 후회막급이다가 인편에 다시 부탁하는 해프닝도 벌어지기도 한다. 바가지콤플렉스에 놀아난 것이다. 인간의 악마 같은 존재와 요사한 존재가 만들어낸 바가지콤플렉스. 이 바가지콤플렉스는 우리를 괴롭힌다. 특히 여행의 암적 존재다. 즐거운 여행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그러니 우리는 이 바가지콤플렉스를 떨쳐버려야 한다.   

자, 그럼 바가지콤플렉스를 떨쳐버리는 비결 공개.

아예 안 사는 원칙. 아무리 싸게 주니깐 사라고 물고 늘어져도 본체만체 안 사주기. 그런데 이것은 너무 소극적이고 쫀쫀하다 보니 쉽게 기분 나쁘게 번질 수 있다. 그러니 적극적이고 대범하게 생각해보자. 모든 것은 생각의 문제이니 말이다. 그래 道적인 경지로 생각을 바꾸어보자. 적어도 道敎적인 경지로 말이다. 大音稀聲, 大象無象이 아니냐. 그러니 大買無買 경지를 창출하면 된다. 아무 것도 안 샀지만 모든 것을 산 듯한 그런 느낌. 여기에 身外之物 운운까지 곁들이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 정말 物外에서 노는 道적인 경지를 맛보게 된다.

그리고 가령 바가지를 썼다고 하자. 바가지를 썼으니 기분 좋을 리 없지. 그렇다고 안달아 해보았자 내속만 더 상하기. 그러니 아Q적인 정신승리법이 없지 않아 있지만 베푼다고 생각하면 홀가분하다. 거지한테 베푼다는 그런 식 말이다.

내 소비수준에서 놓고 볼 때 바가지가 아니다는 생각. 일반적으로 자기 나라보다 뒤떨어진 나라에 가면 돈이 맥 있어 진다. 그래서 일반 소비는 느끈이 감당할 수 있다. 그 나라 생활수준에서 보면 비싸게 바가지를 쓴 것 같지만 자기 나라 수준에서 보면 그리 부담되는 소비는 아니다. 내 소비가 감당할 수 있을진대 왜 하필 바가지로 생각하겠는가? 기분 나쁘게 스리 말이다. 같은 값이면 분홍치마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 진짜 베푸는 신사숙녀 스타일도 이런 것이다.

적어도 이 몇 가지를 뇌리에 떠올려보면 바가지콤플렉스는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다.


200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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