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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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우상렬 연변대학 교수 별세, 향년 58세 댓글:  조회:385  추천:0  2021-07-11
우상렬 연변대학 교수 별세, 향년 58세     연변대학 조한문학원 우상렬(禹尚烈) 교수가 2021년 7월 10일 오후, 지병치료에 효험을 보지 못하고 향년 58세로 별세하였다.      장례식은 2021년 7월 13일(화요일) 오전 9시 연길장의관에서 엄수된다.     고 우상렬 교수는 1963년 3월 심양에서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그후 선후로 조선 김일성종합대학 객좌 교수, 한국 배재대학교 객원 교수, 사천대학 박사후 연구원 등으로 강의와 학술연구에 정진했다.     주요저서로는《광복후 조선족현대문학연구》,《서방미학사개론》,《한국학산책》등 다수가 있다.  
170    자률과 규제 댓글:  조회:1464  추천:0  2021-01-13
[두만강칼럼] 자률과 규제 -우상렬 인간은 자률적인 존재이다. 인간성을 선한 것으로 본 성선설자들은 대부분 이렇게 본다. 맹자가 집안 어른을 사랑하는 데로부터 자연스럽게 다른 집 어른을 사랑하는 데로 나아가며 집안 아이들을 어여삐 여기는 데로부터 자연스럽게 다른 집 아이들을 어여삐 여기는 데로 나아간다고 한 것은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유럽에서 18세기 독일의 철학가이고 미학가인 칸트가 인간의 순수도덕의지를 강조한 것도 그 보기가 되겠다. 인간은 리성적이고 착하니 충분히 자률에 맡겨도 무난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규제적인 존재이다. 인간성을 악한 것으로 본 성악설자들은 대부분 이렇게 본다. 순자가 인간은 자기 밖에 모르는 리기적인 존재이기에 반드시 강한 법적 규제를 가해야 된다고 한 것은 그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성악설이 주류를 이루면서 법제를 강조해왔다. 어쩌면 유럽 사람들의 원죄의식도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럼 인간은 자률적인 존재인가 아니면 규제적인 존재인가? 결론은 간단하다. 자률적인 존재이면서 규제적인 존재이다. 이로부터 자률과 규제는 네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네가 있는 변증법적 관계가 형성된다. 따라서 이런 변증법적 관계로부터 우리 삶을 조직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삶에는 이 량자의 관계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문제점들이 있다. 너무 규제에 치우치다 보니 자률을 묵살하는 경우이다. 교통질서를 놓고 보자. 언젠가 나는 남방의 한 현대화 대도시에 출장을 갔었다. 다른 것은 다 마음에 들었는데 전반 도시가 굉장히 갑갑하고 억압감을 주어 하루도 더 있기 싫었다. 도로 가름대가 눈에 거슬렸다. 도로 중앙선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도로 량켠 인행도 쪽에도 철제가름대를 설치해놓았다. 물론 철제가름대를 보기 좋게 하느라고 여러가지 색칠도 했다. 그러니 인행도의 사람들이 애초에 차도에 못 들어오도록 규제를 해버렸다. 답답함을 느꼈다. 오히려 대도시가 작아보이고 초라해보였다. 규제는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닌데… 우리의 교육을 살펴보자. 우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 교육,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금지교육, 한마디로 규제적인 교육을 많이 해왔다. 물론 이런 교육이 효과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초등교육일수록 이런 교육이 필요한 줄로 안다. 그러나 자기가 알아서 공부하고 배우기, 이런 자률적인 교육도 대단히 필요하다. 고등교육일수록, 인생의 보다 많은 과정은 스스로 배우는 것이라 할 때 더구나 필요한 줄로 안다. 현재 우리 교육의 문제점은 바로 이런 자률교육이 부족한 데 있다. 특히 고등교육에 있어서 개성과 주체성이 형성된 대학생들이라 자률학습이 위주가 되게 해야 한다. 그런데 규제적인 필수과목이 너무 많고 자률적인 선택과목이 아직 적은 것이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스스로 잡게 해야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고기를 잡을 때 그것은 자률적인 즐거운 선택이 될 것이다. 사실 맞춤형 교육이라는 것도 이런 자률이 안받침될 때 효과적인 것이다. 규제, 우리 인간 삶은 이것을 떠날 수 없다. 규제가 필요하다. 특히 현재 코로나19와 같은 비상시기에는 규제가 절실히 필요하다. 규제를 하지 않을 때 인간은 굴레 벗은 말처럼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하여 우의 경우처럼 규제를 해서는 안된다. 자률을 홀시하거나 무시한 규제 말이다. 규제는 어디까지나 자률을 이끌어내야 한다. 규제가 자률에 녹아들게 해야 한다. 이로부터 인간의 삶은 어떤 의미에서 점점 규제를 풀어가는 과정 즉 자률에 맡기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률을 통한 자유의 획득이다. 자률이란 자기 의사에 따라 자기가 알아서 하기, 그러면서도 공공적인 합의나 사회적인 법도에 부합되는 것, 그러니 자연스럽고 즐겁고 합리적일 수 밖에 없다. 공자가 말한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随心所欲不逾矩)” 경지가 되겠고 로자가 말한 “스스로 다스려지는(無爲而治)” 경지가 되겠다. 그러니 자률은 인간 삶의 한 리상적인 경지라고 말할 수 있다. 바로 규제를 통해 자률이 형성되였을 때, 규제가 자률의 피와 살이 되였을 때 규제를 풀어야 한다. 때문에 도시 철제가름대도 사람들이 인행도를 자률적으로 오갈 때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교육도 학생들이 스스로 원하고 행할 때 자률에 많이 맡겨야 한다. 이로부터 보아 규제는 과정이고 자률은 결과이다. 현재 이런 자률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선진국에서는 자률에 의한 NGO―시민단체들이 우후죽순마냥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뜻이 맞는 사람들 끼리 모여 사회공익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자타나 사회를 막론하고 자률적인 합의에 의하여 의사 결정을 도출하는 민주로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길림신문
169    우리 좀 우아하게 삽시다 댓글:  조회:1769  추천:6  2020-08-24
연길은 현재 전국문명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너도나도 떨쳐나서 분발하고 있다. 일시에 새로운 면모가 펼쳐지는 듯하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촌티를 많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우리는 돈에 너무 연연하는 것 같다. 천민자본주의적 냄새가 많이 풍긴다. 연길은 먹을거리가 풍성한 미식의 도시다. 조선족음식에 조선음식, 한국음식, 한족음식〜 찍고 박기다. 그런데 제법 그럴듯한 식당에 들어갔다가도 메스꺼울 때가 있다. 입구 카운트 한 귀퉁이에 황금색 구리로 실물보다 몇 배 크기로 주조한 두꺼비가 입을 쩍 벌리고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입에는 중국 돈 제일 큰 액면인 백 원짜리를 선두주자로 많은 돈을 물고 말이다. 분명 나보고 돈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다. 돈도 돈이겠지만 두꺼비 몸뚱아리에 난 특유의 우둘투둘 옴 모양이 몸서리치게 한다. 그 옴 모양이 당장 내게로 옮겨 붙을 것 같으니 말이다. 나는 이 두꺼비가 눈에 띄일 때는 자기도 모르게 몸서리치며 빠른 걸음으로 피해 달아난다. 그럼 왜 이 을씨년스러운 두꺼비를 카운트에 모셔놓았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두꺼비는 조선족이나 한족이나를 막론하고 민속학적으로 복두꺼비라 식당 주인이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는 기원을 담아 모셔놓았다고 한다. 또 어떤 식당은 보면 두꺼비보다는 좀 점잖게, 그래도 무슨 귀신딱지 같은 財神爺-재물을 가져다준다는 관우상을 모시고 있다. 그 멋진 관우님이 어찌 이렇게 속되게 변해버렸는지, 참! 그래 '잘 모셨다'. 연변대학교, 우리 조선족 교육, 문화의 메카-성지. 나는 우리 대학교 주위가 먹자골목이 되는 것도 아니꼽지만 돈 냄새를 확 풍기는 것은 더구나 꼴 볼견이다. 우리 연변대학교 정문 앞 길을 건너 좀 오른 쪽으로 치우쳐 우뚝 선 건물 꼭대기를 한 번 보라. 거기에 돈이 박혀있지 않은가. 옛 날의 구리엽전 모양을 크게 주조하여 말이다. 물론 구리엽전 모양이되 변형을 주고 있다. '상평통보' 같은 글자가 박혀있을 주변에 태극무늬를 박아 넣은 것이 다르다. 그러나 전반적인 이미지는 분명 구리엽전을 연상시킨다. 그 태극무늬는 세상이 아무리 변화무쌍해도 돈만 많이 벌게 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 이 구리엽전이 전반 건물의 중간지점 꼭대기에 척 붙어있으니 돈, 돈, 돈을 부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세상의 모든 돈은 우리 건물 안으로 말이다. 그래 건물주의 '포부'도 참 야무져! 요새 우리 중국도 좋은 일이 많은 것 같다. 쩍 하면 시상식이 아니더냐. 무슨, 무슨 상이 어쩌면 그렇게도 많은지! 사실 이상할 것도 없지. 좋은 일, 좋은 사람이 있으면 표창하고 상을 주고 해야지. 좋은 일, 좋은 사람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상에 따르는 상금이로다. 요새 시장경제니 맨 입으로 표창만 하고 상장만 줘서는 안 통한다. 상응한 상금을 주는 것도 정상적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굳이 이 상금액수를 큰 간판에 큰 수자로 달달달 써서 사회자가 큰 소리로 돈 수자를 또박또박 외우면 수상자는 두 손으로 그 큰 간판을 높이 들어 흔들어대며 거들먹거리니 말이다. 그래 정말 '잘 났다'! 이 세상 돈 참 좋지. 이 세상 돈 싫어할 놈 있나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사람 먼저 있고 돈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 돈을 좀 우습게 볼 줄 알아야 한다. 물론 돈 없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니깐 정당하게 돈을 벌어야 할 뿐만 아니라 챙겨야 한다. 그렇다하여 돈 욕심을 내는 것은 꼴불견이다. 위의 행태들은 바로 돈 욕심을 너무 속되게 노골적으로 격에 안 맞게 드러낸데 문제점이 있다. 돈에 있어서 우리는 양반정신, 귀족정신을 좀 갖출 필요가 있다. 옛날 우리의 진정한 양반들은 돈과 거리가 멀었다. 청빈함을 생활의 지조로 삼았다. 아예 돈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정신  적인 우아함을 많이 추구했다. 나는 그래도 한국에 아직 이런 양반정신이 좀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중국 사람들은 돈을 직설적으로 말하고 직접 만지기 좋아하는 것 같은데 한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다음 디테일을 보자. 돈, 돈, 돈... 한국 사람들은 치사한 감이 들어 직접 거론하기를 좀 난감해하고 월급봉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경조사나 남에게 큰 돈을 줄 때도 봉투에 넣어 건네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으로 되어 있지 않은가. 우리가 지금도 너도나도 이전에 양반이었다고 하는 데는 적어도 이런 정신적인 우아함을 많이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돈을 둘러싼 유렵의 귀족정신이란 것도 그렇다. 귀족들은 돈에 그리 연연하지 않고 우습게 보아오기도 했다. 정신적인 우아함 내지 도고함을 추구했다. 이에 반해 귀족들을 치고 올라오는 초기 자산계급들은 돈이라 하면 눈에 벌개서 설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에 19세기 비판적 사실주의대가 발자크는 멸망해가는 귀족에 대해 지대한 동정을 보냈고 욱일승천하는 돈의 구린내가 나는 천민자본주의에 대해 질타했던 것이다. 그래 우리는 양반정신과 귀족정신에서 분명 본받을 것이 있다. 적어도 이 욕망시대 돈에서 초탈하는 우아한 모습을 배우야 한다. 양반과 귀족은 돈이 많아서 그럴 수 있다고? 물론 돈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우아한 모습은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 하나의 마인드고 삶의 자세다. 연길시를 전국문명도시로 건설하고 우리 매개 시민이 문명시민으로 되는 데는 바로 이런 우아한 모습이 필요하다. 우리 좀 우아하게 삽시다!        2020.8.23 출처 : 동북아신문
불은 누가, 니가 조심해야지, 남자야!-재미나는 김정권의 □ 우상렬 김정권의 단편소설 (연변일보 2020. 3. 20)은 피뜩 보면 그저 우리 시대 다반사로 만나게 되는 바람 피우는 마당에 적반하장-도적이 도적이야 하는 식으로 허위적이고 철면피한 남자를 풍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간단치가 않다. 그것은 모더니즘의 표현주의적인 상징수법으로 남자와 녀자의 정신세계를 정신분석학적으로 잘 풀이하고 있어 인상적이고 재미나다. 먼저 남자의 정신세계를 보자. 남자는 불(알)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항상 훨훨 타번진다. 그 불은 강렬하고 외향적이다. 녀자에게도 지피고 싶다. 그래서 항상 녀자를 찾아 돌아다닌다. 그런데 우리의 사회도덕 내지 법은 이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로부터 남자들은 ‘정신분렬’- 의식세계와 무의식세계의 분렬을 가져온다. 의식세계에서는 사회도덕 내지 법을 받아들인다. 어떤 의미에서 소설 속의 남자가 끊임없이 녀자에게 ‘불조심’을 이야기한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무의식세계에서는 불의 욕망이 계속 타번지고 있다. 그래서 객관적 조건이나 계기가 이루어지면 자기도 모르게 주동적으로 불질을 하게 된다. 소설에서 녀자가 입원한 사이 외간녀자를 집에까지 끌어들여 바람을 피운 것은 그간의 사정을 잘 말해준다. 남자들은 이런 의식세계와 무의식세계라는 정신세계의 ‘분렬’ 속에서 그런 허위적이고 철면피한 속성을 천성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것이 의식세계에서 군자연하면서 녀자에게 ‘불조심’을 운운할 때가 현실에서 전형적인 한 보기가 되겠다. 다음 녀자의 정신세계를 보자. 녀자는 불(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녀자는 랭정하다. 제일 좋은 불을 받아들여 가장 리상적인 후대번식을 하는 것이 최고 목적이다. 그래 일단 아이가 생기면 남자는 뒤전이고 아이가 먼저다. 녀성에게는 모성이 우선이고 전부이니깐. 이것이 녀자의 의식세계다. 이에 남자에 대한 생각은 무의식세계에 침전된다. 그런데 남자와 다른 점은 녀자의 외간남자 생각은 잘 타오르지 않는다. 물론 집안남자의 사랑을 잘 못 받는다는 소외감, 그리고 봄날 같이 싱숭생숭한 날, 여기에 ‘프로메터우스’ 같은  멋진 남자가 유혹할 때 자기도 모르게 혹은 피동적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소설에서 또 한번 ‘대형 사고’, 즉 ‘활짝 열린 창문으로 훈훈한 봄기운이 집안으로 들어와 록색의 카텐을 살짝살짝 흔들어놓’고 녀자가 ‘베스타’ 수를 놓을 때 ‘프로메터우스’의 출현으로 “그만 달려들어 쫓아가다 창문 밖으로 휙- 날아나갔다.”는 바로 이것을 말해준다. 보다싶이 은 이런 남자와 녀자의 복잡한 사랑학적인 정신세계를 진실하게 잘 반영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남자와 녀자의 사랑심리는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례컨대 남자가 외간녀자를 집안에까지 끌어들이는 필연적인 주동성을 보인다면 녀자는 ‘건망증’이나 “어마나!”, 그리고 ‘프로메터우스’의 공격하에 자기도 모르게 우연히 혹은 피동이나 강박적으로 그 ‘불(알)’에 로출될 뿐이다. 그리고 남자가 녀자에 대해 과장적인 적반하장, 즉 ‘문건락실’이나 ‘첫째도 불조심…’, ‘서면조항’ 강조는 남자의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를 잘 나타내고 있다. 에서 남자의 이런 과장적인 적반하장은 결과적으로 지대한 자아풍자가 된다. 이런 풍자는 남자의 표리부동의 모순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되기도 하지만 녀자가 반격적으로 남자에게 일련의 ‘불조심’시키는 데서 나타난다. 이를테면 “불이야!”로 남자를 팬티바람으로 밖에 내쫓기, ‘콘돔목걸이 선물’하기, ‘팬티 앞에 빨간 색실’로 ‘불조심’ 수놓기 등이 바로 그런 것이다. 따라서 남자야말로 정신병자 같은 존재가 되고 만다. 바로 이런 풍자에서 “불은 누가, 니가 조심해야지-남자야!”, 녀자의 매서운 눈초리가 안겨온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그것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베스타’에 불을 달아 남자의 자는 이불우에 던지는 공격적인 행동주의로 나아간다. 어쩌면 너 죽고 나 죽고 하는 이판사판! 녀자는 사랑에 온 목숨을 걸기도 하니 말이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이 소설은 성을 둘러싼 하나의 페미니즘소설로 볼 수 있다. 소설에서도 언급했지만 ‘미투’의 강한 목소리가 들린다. 에서 녀자는 조용하고 차분하나 남자는 요란하고 들떠있다. 마치 남자가 주동권을 쥐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소설이 전개될수록 녀자가 점점 주동권을 잡아간다. 남자가 녀자의 손아귀에서 놀아난다. 그런데 녀자는 남자를 포기하지 않고 가정을 유지하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이것도 가정을 무엇보다 중시하고 유지하려는 녀심의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그것은 녀자가 어쩌면 ‘남자는 다 그래!’의 남심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 주인공은 막연히 남자와 녀자다. 구체적인 이름도 없다. 별로 개성적인 표현도 없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전형적인 모더니즘 표현주의 소설의 한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표현주의 소설은 많은 상징성을 구사함으로써 작품의 의미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남자와 녀자는 바로 하나의 전 인류적인 상징적 인물이다. 이를테면 각기 남자와 녀자의 정신세계를 잘 보여주는 상징코드가 되겠다. 우리는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오, 남자는 저렇구나! 오, 녀자는 저렇구나!로 남자와 녀자의 정신세계를 알게 될 것이다. 이 소설에서 진짜 불이 난 상황을 얘기하는 듯한 첫 부분도 실은  진한 상징성을 띠고 있다. ‘불’은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이미지가 되겠다. 그것은 바로 남녀간 사랑의 불길의 상징에 다름 아니다. 이런 사랑의 불길은 부부간에 피여나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놓고 보면 우리는 적어도 우의 정신분석학적인 정신세계 때문에 외도적인 사랑의 불길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불길을 엉뚱한 데 지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현실에 있어서 기혼 남자와 녀자들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이런 엉뚱한 불길을 남자 혹은 녀자 누가 지폈든 우리는 같이 꺼야 한다. 그래야 현실적인 우리 사랑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첫 부분 실제적인 화재는 녀자가 지핀 엉뚱한 불길의 상징으로서 바로 부부간이 합심하여 끄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엉뚱한 불길을 가지고 자꾸 물고 늘어지면 부부 사이 의가 상하고 금이 가게 된다. 남자의 과장적인 적반하장의 결과가 바로 이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남자의 엉뚱한 불길-외도를 알고도 녀자는 리해심과 아량으로 용서하고 따끔하게 ‘불조심’을 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리해할 수 있다. 너네, 잘난 남자들, 그렇게 되여먹었으니 별수 있나. 그래도 앞으로는 조심해라! 한번은 있지, 두번은 없다! 녀심의 앙큼하면서도 매서운 메시지다. 에서 술독 좌우명도 중요한 상징적 코드가 된다. 삐딱하게 기울어져있는 술독, 거기에 술이 차기 시작하면 바로 섰다가 술이 다 차면 다시 기우는 술독… 이것은 바로 정상과 일탈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우리 인간의 정신세계를 상징한다. 인간은 항상 맑은 정신만으로 못 산다. 좀 흐리터분해지고 싶다. 그래서 술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 해서 내내 흐리터분해서는 안된다. 맑은 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정상과 일탈의 교향곡을 타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정신이 건전해진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정신실존이다. 그러니 좌우명으로 삼을지어다! 이 소설은 인간에 대한 이런 정신실존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남녀, 특히 남자의 외도에 대해서도 쉽사리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리해 만세, 리해심이 앞서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필치로 담담하게 서술을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 녀자가 수놓는 ‘활화산’, 고대 그리스, 로마의 신들인 프로메디우스, 베스타 등도 나름 대로 묘한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은 짧은 단편소설이라는 편폭 속에 정신 분석학적인 인간의 정신세계 및 현실적인 인간실존 그리고 사랑학 등을 모더니즘 표현주의의 상징수법으로 잘 보여주어 우리 조선족 문단에 간만에 독특한 읽을거리를 제공하여 기껍다.   김정권은 원래 극본으로 대성했지만 정년퇴직을 한 후부터는 수필, 시, 소설… 한마디로 종횡무진 문학의 전방위로 진출하고 있다. 나이와 달리 그의 사유는 아직 민첩하고 발랄하다. 그는 점입가경으로 많은 좋은 작품을 써내고 있다. 이번 은 한 보기가 되겠다. 앞으로가 기대된다. 백세시대이니깐! 연변일보 
167    ‘자궁’회귀본능 댓글:  조회:576  추천:0  2020-07-08
[길신론평] ‘자궁’회귀본능 소설가 김혁의 단편소설 〈련꽃밥〉을 평함 ⊙우상렬 인간에게는 ‘자궁’회귀본능이라는 게 있다. 우리가 나서 자란 고향이 바로 우리의 ‘자궁’의 하나. 인간은 어디에 가든 이 ‘자궁’을 잊을 수 없어 항상 그리워한다. 그래 ‘자궁’회귀본능이라는 것을 외우게 된다. 김혁의 단편소설 〈련꽃밥〉(‘두만강’ 문학상 수상작)은 바로 우리의 ‘자궁’회귀본능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 시작에 주인공은 페촌이 된 고향마을을 찾아간다. 그것은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찾는 것이였다. 어쩌면 주인공은 고향을 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고향이 물질적으로 가난해서 주동적으로 떠났으니 말이다. 이것이 의식세계의 직실한 보기이리라. 그런데 “간밤에 고향으로 간다는 흥분에 꺼둘려 충전을 깜박”한다. 고향은 무의식적인 ‘자궁’회귀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흥분된 것이다. 이런 ‘자궁’회귀본능은 타향에서 고생을 하면 더 발동되는 법이다. 주인공을 보자. 그는 랭동창고에서 악덕업주를 만나 육체적 고달픔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인격적 모욕까지 받으며 ‘시까름’을 당한다. 그래서 경남의 오지 한우농장에 숨어들었다. 그리고 안해의 위장결혼이 ‘진짜’결혼까지 가는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안해와의 해후는 비극의 생생 보기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고향은 “한때는 제법 풍요와 번성을 자랑했던 마을이였다.” 바로 이 마을에서 주인공은 마을문화관의 책상물림―화이트칼라로 일을 했는데 비교적 잘 나가는 축이였다. 그래서 수상도 하고 사랑도 싹트고 마을에서 가장 고운 련꽃같은 안해를 얻게 된다. 그리고 자기를 꼭 빼닮은 아들도 보게 된다. 한마디로 여기는 꿈이 피여나고 행복이 무르녹던 곳이다. 현실과 과거의 이런 대비 속에서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피여나는 것이 ‘자궁’회귀본능이다. 이는 일종 향수이기도 하다. 이런 ‘자궁’회귀본능은 객관적인 계기나 자극에 의해서도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이 작품에서 마을의 련못이 자연히 “마을 앞 커다란 자연못에 련꽃이 무성해 련화촌으로 불리던 고향마을”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시도 때도 없이 련못에 나와 ‘자궁’회귀본능 즉 향수를 달랜다.“그 감흥에 옮아들어” “우리 연변에도 련이 난답니다. 두만강 홍련이라고”는 직접적인 주석으로 된다. 여기에 농장주의 “그럴테지,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고향의 제것이 더 아름다울 걸세”는 정곡을 찌르며 가슴에 와닿는다. 여기에 농장주는 한술 더 떠 “이보게 옌벤 나그네, 이제 제것을 완상(玩赏)하러 가시게. 꽃잎이 싹 다 지기전에 말일세.”는 직접적인 추동으로 된다. 이런 ‘자궁’회귀본능은 삶의 도리나 리치를 터득하게 되면서 실천으로 나아가게 된다. “련꽃을 마음에 들이면 욕심을 씻고 평정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선친은 늘 말씀하셨네. 무욕의 평정한 마음은 안락과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데 선친께서 가르치셨던 그 간단한 리치를 난 여태 실천해 오지 못했지.” 농장주의 이 말은 바로 그간의 사정을 말해준다. 그래서 주인공이 “나도 여태 완상할 줄 모르고 살아왔슴다. 그 꽃 말임다.”라고 되뇌인 것도 자연스럽다. 이제 주인공은 진정으로 ‘완상’하고 나면 자기도 모르게 그 ‘자궁’회귀본능이 작동되여 귀향의 길에 오를 것이다. ‘자궁’회귀본능—사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가장 아늑한 ‘자궁’같은 고향을 그린다. 이것은 어쩌면 집단무의식 같은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아름다운 못을 버리고 뿔뿔이 헤여져 떠났던 것인가?”라고 하며 자기도 모르게 반문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집단무의식을 의식적으로 끌어올려 음미하며 완상하게 될 때 고향은 이제 추물이 아니라 더 아름답게 안겨온다. “고향의 련못은 스스로 꽃잔치를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식물, 동물 등 생명의 하모니. 그것은 유구한 자연의 원생태. 한국 한우농장의 인공적인 것보다 더 진실하고 확실하다. 자연은 그대론데 사람은 가고 없구나(物是人非). 그래서 결국 겨우 필림 한 장으로 달래보는‘자궁’회귀본능. 현실은 이외에 별도리가 없단다. 작품은 “빨리, 또렷이 인화되라고 사진을 따뜻이 손아귀에 품어 가슴에 대였다. 내 가슴에서 련꽃 한점이 바야흐로 피여오르고 있었다.”로 마감한다. 여기서 련꽃은 ‘자궁’회귀본능을 달래는 하나의 상징코드이다. 한마디로 〈련꽃밥〉은 식상하기 쉬운 한국제재를 정신분석학적인 ‘자궁’회궁본능이란 집단무의식으로 풀이하여 새롭다. 이것은 재한 조선족들에게 하나의 귀향의식을 자극하기도 한다. 동시에 조선족 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창출하여 긍정할 만하다. (작자는 연변대학 교수)[길신론평]‘자궁’회귀본능 —소설가 김혁의 단편소설 〈련꽃밥〉을 평함 ⊙우상렬 인간에게는 ‘자궁’회귀본능이라는 게 있다. 우리가 나서 자란 고향이 바로 우리의 ‘자궁’의 하나. 인간은 어디에 가든 이 ‘자궁’을 잊을 수 없어 항상 그리워한다. 그래 ‘자궁’회귀본능이라는 것을 외우게 된다. 김혁의 단편소설 〈련꽃밥〉(‘두만강’ 문학상 수상작)은 바로 우리의 ‘자궁’회귀본능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 시작에 주인공은 페촌이 된 고향마을을 찾아간다. 그것은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찾는 것이였다. 어쩌면 주인공은 고향을 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고향이 물질적으로 가난해서 주동적으로 떠났으니 말이다. 이것이 의식세계의 직실한 보기이리라. 그런데 “간밤에 고향으로 간다는 흥분에 꺼둘려 충전을 깜박”한다. 고향은 무의식적인 ‘자궁’회귀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흥분된 것이다. 이런 ‘자궁’회귀본능은 타향에서 고생을 하면 더 발동되는 법이다. 주인공을 보자. 그는 랭동창고에서 악덕업주를 만나 육체적 고달픔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인격적 모욕까지 받으며 ‘시까름’을 당한다. 그래서 경남의 오지 한우농장에 숨어들었다. 그리고 안해의 위장결혼이 ‘진짜’결혼까지 가는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안해와의 해후는 비극의 생생 보기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고향은 “한때는 제법 풍요와 번성을 자랑했던 마을이였다.” 바로 이 마을에서 주인공은 마을문화관의 책상물림―화이트칼라로 일을 했는데 비교적 잘 나가는 축이였다. 그래서 수상도 하고 사랑도 싹트고 마을에서 가장 고운 련꽃같은 안해를 얻게 된다. 그리고 자기를 꼭 빼닮은 아들도 보게 된다. 한마디로 여기는 꿈이 피여나고 행복이 무르녹던 곳이다. 현실과 과거의 이런 대비 속에서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피여나는 것이 ‘자궁’회귀본능이다. 이는 일종 향수이기도 하다. 이런 ‘자궁’회귀본능은 객관적인 계기나 자극에 의해서도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이 작품에서 마을의 련못이 자연히 “마을 앞 커다란 자연못에 련꽃이 무성해 련화촌으로 불리던 고향마을”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시도 때도 없이 련못에 나와 ‘자궁’회귀본능 즉 향수를 달랜다.“그 감흥에 옮아들어” “우리 연변에도 련이 난답니다. 두만강 홍련이라고”는 직접적인 주석으로 된다. 여기에 농장주의 “그럴테지,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고향의 제것이 더 아름다울 걸세”는 정곡을 찌르며 가슴에 와닿는다. 여기에 농장주는 한술 더 떠 “이보게 옌벤 나그네, 이제 제것을 완상(玩赏)하러 가시게. 꽃잎이 싹 다 지기전에 말일세.”는 직접적인 추동으로 된다. 이런 ‘자궁’회귀본능은 삶의 도리나 리치를 터득하게 되면서 실천으로 나아가게 된다. “련꽃을 마음에 들이면 욕심을 씻고 평정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선친은 늘 말씀하셨네. 무욕의 평정한 마음은 안락과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데 선친께서 가르치셨던 그 간단한 리치를 난 여태 실천해 오지 못했지.” 농장주의 이 말은 바로 그간의 사정을 말해준다. 그래서 주인공이 “나도 여태 완상할 줄 모르고 살아왔슴다. 그 꽃 말임다.”라고 되뇌인 것도 자연스럽다. 이제 주인공은 진정으로 ‘완상’하고 나면 자기도 모르게 그 ‘자궁’회귀본능이 작동되여 귀향의 길에 오를 것이다. ‘자궁’회귀본능—사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가장 아늑한 ‘자궁’같은 고향을 그린다. 이것은 어쩌면 집단무의식 같은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아름다운 못을 버리고 뿔뿔이 헤여져 떠났던 것인가?”라고 하며 자기도 모르게 반문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집단무의식을 의식적으로 끌어올려 음미하며 완상하게 될 때 고향은 이제 추물이 아니라 더 아름답게 안겨온다. “고향의 련못은 스스로 꽃잔치를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식물, 동물 등 생명의 하모니. 그것은 유구한 자연의 원생태. 한국 한우농장의 인공적인 것보다 더 진실하고 확실하다. 자연은 그대론데 사람은 가고 없구나(物是人非). 그래서 결국 겨우 필림 한 장으로 달래보는‘자궁’회귀본능. 현실은 이외에 별도리가 없단다. 작품은 “빨리, 또렷이 인화되라고 사진을 따뜻이 손아귀에 품어 가슴에 대였다. 내 가슴에서 련꽃 한점이 바야흐로 피여오르고 있었다.”로 마감한다. 여기서 련꽃은 ‘자궁’회귀본능을 달래는 하나의 상징코드이다. 한마디로 〈련꽃밥〉은 식상하기 쉬운 한국제재를 정신분석학적인 ‘자궁’회궁본능이란 집단무의식으로 풀이하여 새롭다. 이것은 재한 조선족들에게 하나의 귀향의식을 자극하기도 한다. 동시에 조선족 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창출하여 긍정할 만하다. 길림신문 
166    공간거리 댓글:  조회:1158  추천:0  2020-06-24
공간거리 우상렬(연변대학 교수) 코로나19(전염병)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 사이 공간거리를 확인시켰다. 바이러스 예방에 적정 공간거리는 필수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줄을 서도 앞뒤에 공간거리를 두고 있다. 이런 공간거리 두기는 이제 전염병이 정복된 후에도 우리 생활에 정상적인 형태로 자리를 잡을 것 같다. 사실 인간은 자기 공간확보와 더불어 피차간 적정 공간거리를 유지해왔다. 그래서 서로 부딪칠 수 밖에 없는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는 사람들을 짜증이 나게 한다.   이번 코로나19가 미국이나 유럽에서 크게 확산된 것은 그들의 사람접촉 방식과 많이 관계된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전통적인 사람접촉 방식을 보면 밖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스쳐지나가는 경우는 밝은 표정에 서로 손을 들며 “하이―” 한다. 멈춰서서 주고받을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악수하는 것이 기본이고 좀 친밀감을 나타낼 때는 두손을 상대방의 등뒤로 포개며 포옹한다. 이것이 미진하면 볼을 엇갈라 맞춘다. 이것으로도 미진하면 입술을 맞춘다. 물론 련인 사이가 아닐 때는 혀가 작동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들의 사람접촉은 근거리 밀착으로 나아간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전염병 전파의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이 점에 대해 유럽 사람들도 반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코로나19가 극복되면 이런 방식이 계속 통할지가 의문이다. 그러나 전통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우려되는 바가 없지 않아 있다. 이번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많은 나라들에서 사람접촉 방식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온 것 같다. 화상회의, 영상채팅, 온라인강의 같은 현대 IT과학기술을 동원한 조치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구체적인 대인접촉에서도 변화가 많다. 례컨대 한국의 경우 악수 대신에 주먹정면을 부딪치기, 아예 손보다는 팔꿈치 부딪치기, 아니 아예 신발 부딪치기 등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접촉 방식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것도 거치장스럽다고 생각된다. 이번에 아예 전통적인 대인접촉 방식을 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대인접촉 방식은 서로 만났을 때 두손은 포개여 공손하게 앞으로 갖다붙이고 서로 허리를 굽혀 인사말과 더불어 인사를 하게 되여있다. 물론 일본사람들처럼 90도까지는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우리는 한 45도 쯤 되게 허리를 굽힌다. 서로 편안한, 적당한 각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세대 차이가 있는 아래사람이 웃사람을 만났을 때, 례컨대 손자벌 되는 세대가 할아버지벌 되는 세대를 만났을 때 조건이 허락하는 한 사지를 바닥에 딱 붙이고 납작 엎드려 절을 한다. 한마디로 우리의 전통적인 인사법은 육체적으로 직접 접촉하지 않는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니 대인접촉을 통한 전염병 전파를 방지하는 데는 효과적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전통적인 대인관계 인사법을 보편화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실 전염병 예방 차원에서 보면 중국의 전통적 대인접촉 인사법이 가장 리상적이라 생각된다. 왼손으로 주먹을 쥔 오른손을 감싸고 가슴 우로 높이 들며 인사말과 더불어 인사를 하는 것 말이다. 물론 이 방식도 서양의 악수와 더불어 ‘내 손에 아무 무기도 없소’ 하는 평화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데서 생겨났다고 하지만 악수처럼 직접적인 대인접촉이 아니라 피차간 거리를 둔 접촉인 만큼 인사는 인사 대로 하면서 전염병 예방에 비교적 효과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의 경우보다 좀더 쉽고 홀가분해서 좋다. 여하튼 이번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한 모지름과 더불어 우리 동양의 가치가 돋보이는 듯하다. 특히 우리의 점잖고 간접적인 대인접촉 방식을 떠올리게 되여 마음이 족하다. 우리의 그 점잖고 간접적인 대인접촉 방식이 세계인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하며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인사법으로 고정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져본다. 길림신문
165    저자세(低調)와 고자세(高調) 댓글:  조회:1791  추천:0  2019-07-30
[두만강칼럼] 고자세(高調)는 부정적으로 풀이될 수도 있지만 ‘고자세 일하기’(高調做事)라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즉 무슨 일을 함에 있어서 높은 질을 요구하며 최선을 다하여 최상의 성과를 올린다는 것이다. 직업적으로 이야기하면 무슨 일을 하든지 일단 하게 되면 돈을 떠나 열심히 하며 그 방면의 ‘베트랑’이 되여 최고를 자랑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직업정신, 개인의 리해득실을 떠나 직업을 위해 죽고 살고 하는 장인정신이야말로 ‘고자세 일하기’(高調做事)의 하나의 전형적인 표현이 되겠다. 영화 《타이타닉호》에서 항해사가 왜 려객선을 좀더 든든하게 만들지 못했지 하며 참회하는 모습, 선장이 침몰하는 려객선과 운명을 같이 하는 모습은 그 한 보기가 되겠다. 한사람이 성과를 올려 옆사람들이 칭찬하고 사회적으로 긍정할 때 기고만장해하지 않고 항상 응분의 일을 한 것처럼 겸양의 미덕을 나타내는 이것을 이른바 ‘저자세 사람되기’(低調做人)로 볼 수 있다. 뢰봉이 자기는 아껴 먹고 아껴 쓰면서 모은 돈을 재해지구에 보내면서도 이름자 하나 남기지 않은 것은 이런 ‘저자세 사람되기’(低調做人)의 최고 경지가 되겠다.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에 묵묵히 자원봉사를 하거나 누가 알아주든 말든 좋은 일을 찾아하며 이 세상의 빛이 되는 분들도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저자세 사람되기’(低調做人)의 실천자들이다. 고금중외를 막론하고 이런 ‘저자세 사람되기’(低調做人)와 ‘고자세 일하기’(高調做事)가 바로 우리 인간사회를 발전시켜온 원동력이다. 이것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필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에게는 바로 이 ‘고자세 일하기’(高調做事)가 부족하다. 우리는 일단 직업을 생계를 유지하는 돈과 많이 련계시킨다. 이른바 돈을 많이 주는 직업이야말로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면서 월급에 목을 맨다. 그렇지 못한 직업엔 아예 왼눈도 팔지 않는다. 가령 그런 일터에서 일한다 해도 빈둥거리며 나그네 말죽 먹이듯 대충대충 눈가림한다. 지금 중앙에서는 부분적 공무원들이 자리만 떡 차지하고 할 일도 하지 않거나 옳바르게 하지 않는 ‘복지부동’현상을 다스리고 있다. 이런 눈가림이나 ‘복지부동’ 앞에서는 ‘고자세 일하기’(高調做事)를 운운할 수조차 없다. 어떤 사람들은 어쩌다 쥐꼬리만한 일을 하게 되면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도처에서 으시대면서 제 자랑에 침 마를 새가 없다. 이러다보니 ‘저자세 사람되기’(低調做人)는 더구나 글렀다. 자기의 잘남을 드러내지 못할 때는 꼭 팔부가 되는 것처럼 여기고 모두들 내가 무슨 재간 있소, 뭐 잘하오 하며 목에 피대를 세우고 자랑하는 것, 그야말로 참 꼴불견이다. 거기에는 진정성이 떨어지고 온갖 ‘쇼’적인 것이 란무한다. 그래서 소위 ‘잘난’ 사람들 끼리의 아귀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저자세 사람되기’(低調做人)와 ‘고자세 일하기’(高調做事)― 이것은 우리 인간, 특히 우리 현대인간들에게 있어서 더없이 소중한 인간미덕이다. 이 량자의 하모니, 그것이야말로 성숙된 인간의 징표가 되겠다. 그 하모니가 쉽지 않다고 해도 그 경지는 우리가 반드시 추구해야 할 바이다. 길림신문/우상렬(연변대학 교수)
164    [작품평]아픔과 치유 댓글:  조회:1605  추천:0  2019-07-19
아픔과 치유 -의 경우 우상렬   사람이 살아가는 데 아픔이 따르기 마련이다. 人生十有八九不如意-인생 십중 팔구는 뜻 대로 안된다지 않던가. 그러니 아픔이 없을 수가 없다. 인간은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쫓는 존재라 할 때 아픔은 자연히 치유의 대상이 된다. 이로부터 아픔과 치유는 현단계 보편적인 담론으로 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문학도 례외가 아니다. 문학치료학이 이것을 말해준다. 본고에서 살펴보게 될 단편소설 〈세상처럼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아픔과 치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럼 우리 같이 〈세상처럼 느껴지는 것〉 속으로 골인해보자. 〈세상처럼 느껴지는 것〉에는 우연으로 인한 아픔의 이야기들이 많다. 우연성과 필연성의 문제, 하나의 철학적인 문제인 줄로 안다. 우리의 삶은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학이 인간학이라 할 때 같은 론리가 적용됨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우리의 문학은 이 때까지 너무 필연성을 많이 강조해온 듯하다. 이른바 생활의 본질, 시대정신 등 필연성의 범주에 속하는 전형성을 강조한 반영론이 바로 그렇다. 우연성이라는 것도 바로 필연성의 반영임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사실 우리의 세상과 삶에는 우연성이 란무하다. 생로병사는 우리 인생의 하나의 비극적인 필연이 되겠다. 그래 불교에서 이것을 강조하지 않던가. 그런데 바로 이 생로병사의 필연 속에 수많은 우연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 인생본연의 가장 중요한 실존문제로 안겨오는 생사, 즉 우리가 언제 태여나고 언제 죽는가 하는 문제조차도 지극히 우연성의 베일에 가려있다. 여기에 로병, 즉 늙고 병드는 문제도 마찬가지. 언제부터 어떻게 늙고 병드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우연에 속한다. 필연을 벗어나거나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연도 지천에 깔려있다. 오늘 펀펀하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교통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는 비극, 그래 무엇으로 풀이해야지? 우연으로 밖에. 그럼 지극히 내 개인적인 경우의 사례를 좀 들어보자. 미안하지만 나는 공부를 잘 안하는 만큼 잘 못한다. 그런데 나는 시험을 잘 친다. 그것은 시험문제가 내가 복습을 잘한 데서만 잘 나오니 그럴 수 밖에. 전적으로 우연의 행운! 사랑도 마찬가지. 나는 현재 내 안깐(아내)과 저렇게 만나 요렇게 요 모양으로 살지 정말 생각지 못했다. 나는 전적으로 우연의 인연이라는 하느님 덕택으로 생각한다. 몇백만, 몇천만의 1이라는 로또도 마찬가지∼ 이른바 현대라는 세상과 삶은 대단히 복잡하고 변화다단하고 일사천리로 내달린다. 실로 헛갈리고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어떤 의미에서 우연성이 그 어느 때보다 란무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연성의 문제, 우리 세상과 삶에 좋든 궂든 많은 영향을 준다. 물론 좋은 영향은 좋아서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궂은 나쁜 영향은 문제가 된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이 나쁜 영향이야말로 오히려 문학의 감로수가 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문학은 가벼운 송가보다는 어두운 인생을 직시하고 그것을 적라라하게 보여주는 비극성이 더 충격적이고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조원의 단편소설 〈세상처럼 느껴지는 것〉은 일단 우리 세상과 삶에 있어서 이 우연성의 비극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우리 세상과 삶에는 인생이 뜻대로 안되는 만큼이나 아이러니나 역설적 비극이 많다. 잘살려고 노력한 것이 오히려 더 못살게 되는 아이러니나 역설의 비극, 아름다운 기원을 담은 것이 오히려 사람을 해치는 아이러니나 역설의 비극,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형국의 아이러니와 역설의 비극은 그 보기가 되겠다. 〈세상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런 아이러니나 역설적 비극도 잘 보여주고 있다. 〈세상처럼 느껴지는 것〉에서는 주로 부모자식 두 세대의 비극적 운명을 다루고 있다. 먼저 부모세대인 강필두와 조순재 부부를 보자.   강필두는 “‘파란 돼지의 해’인 을해乙亥년 1935년생의 돼지띠로 태여났다. 하지만 복돼지로는 될 수 없었다.” 그의 인생은 신산하였다. 그의 ‘잘살아보려던 욕망은 파멸되였다’지 않는가. 그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말년의 알콜성치매로 오는 기억상실일 수도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실패한 인생. 구체적으로 보면 그의 인생은 두번 크게 꺾인다. 그는 원래 중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N진의 조선족소학교에 배치받았다. 그만하면 잘 나가는 괜찮은 청년이였다. 여기에 ‘열혈문화청년의 개성을 불태웠다’지 않는가. 그런데 반우파투쟁시기 “그것이 화근이 되여 학생들에게 ‘불건전한 사상을 주입하는 교육자’라는 감투를 쓰고 학교에서 쫓겨나서 N진 술공장으로 전근 발령이 되였다. 술공장의 단순로동자로 좌천되였다.” 우파로 몰렸던 것이다. 그래 ‘과거도 미래도 없는 암울한 현실에서 강필두가 가까이할 수 있었던 것은 술이였다.’ 젊음의 정상적인 아름다운 패기가 아이러니하게도 타도의 대상이 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문화대혁명시기 억울하게 반혁명으로 몰려 고깔모자를 쓰고 비판을 당하는 등 갖은 수모를 당한다. 그의 이런 인생비극은 ‘그 때’ ‘미친 세상’ 같은 시대상으로 놓고 보면 필연적이라 해야 하겠다. 그런데 사실 그 때는 ‘미친 척함서 세상 살믄 된’다. 이렇게 보면 강필두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골방샌님 ‘돌대가리 필두량반’은 고지식하지 않던가. 그리고 여기에 그의 ‘귀는 팔랑개비고 의욕은 하늘에 삿대질할’ 정도다. 따라서 그의 이런 개인적 성격과 포부, 어쩌면 개인적인 성격약점이라 할 수 있는 우연적 요소들이 결국 비극의 화근이 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에 ‘강필두의 교원시절의 과오를 파헤쳐서 반혁명으로 몰아간’ 왕얼, ‘쌀독에 붙여놨던 황색그림’이 우연한 객관적인 도화선이 되였다. 한마디로 그의 인생비극은 필연성을 나타내는 우연성의 작간에 결정타를 입은 데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로부터 그의 인생은 내리막길을 걸으며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 속에 빠지고 어둠 속 새잡이에서 ‘복수의 화신으로 변해버’려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는 개혁개방의 좋은 세월을 만나 ‘부자 된다꼬 오리부업’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골방샌님의 자기 주제를 모르는 망동에 불과했다. ‘돈, 돈, 돈. 세상이 좋아졌기로 골방샌님에게 돈따발 쏟아질 리야.’ 실제로 그의 오리부업은 ‘수백마리의 오리들의 뻐드러진 랑자한 죽음의 현장무더기’의 처참한 결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강필두와 강희경은 강림촌에서 야반도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다싶이 이 비극도 결국 따져보면 강필두의 개인적인 재간의 한계에 기인하는 것으로 밖에 풀이할 수 없다. 한마디로 강필두의 비극은 보다 많이 성격비극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사회비극보다는 이런 성격비극[1]에 더 모를 박고 있다. 조순재는 강필두가 ‘로동자’라는 리유 하나로 ‘가족을 배신하’고 시집을 가버린다. 그런데 ‘비루하고 고단하고 치졸한 삶’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남편과 함께 ‘이사짐에 눌리우고 처진 자신들의 불확실한 그림자를 밟으며 강림촌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들의 그림자에는 무서워하는 표정이 있었다.’ 그들에게 ‘일가친척들은 비난의 쓴웃음을 보냈’던 것이다. 그녀는 남편 덕에 촌놈신세를 벗어나려다가 오히려 더 촌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녀는 남편의 우파, 반혁명 신세에 련루되여 더 고생을 한다. 그녀는 만삭이 되여서도 일밭에 나가야 했다. 그녀는 결국 아들의 억울한 감옥살이 및 오리부업 실패로 자살을 하고 만다. 그녀의 비극적 운명도 결국은 자기 의지와는 관계없이 우연적인 계기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여왔다.  자식세대인 강희수와 강희경 남매를 보자. 강희수는 만삭이 된 어머니가 들에 새참을 갖다주고 오다가 자기도 모르게 낳은 아이다. 어쩌면 그는 우연히 이 세상에 왔다. 그는 어느 하루 아침에 공부가 싫어져 학교를 그만둔다. 우연적인 학교 중퇴다. 그리고 ‘강희경의 질투와 나분의 질투 사이’에서 우연히 빚어진 ‘강간’사건에 말려든다. 결국 나분이가 ‘물증인 나비머리핀을 제공하’고 ‘범죄 물증이 발견된 범죄현장을 제공하’기도 한다. 공안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피해자 쑈훙은 인정을 했고 물증과 사건현장도 확보된 완벽한 범죄’였다. 그런데 이것은 전적으로 우연적인 질투로 인한 가짜 강간사건이였던 것이다.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로 몰고 간’ 것이다. 그래서 강희수는 실로 ‘청산별곡’의 ‘믜리도 괴리도 업시- 미운이도 고운이도 없이 / 마자셔 우니노라- 맞아서 우는구나’[2]의 형국이 되고 만다. 자기도 모르는 우연의 덫에 치여 억울하게도 인생의 파란곡절을 겪게 된 것이다. 강희경은 어릴 때 ‘나분의 미모와 나분의 총명과 나분의 부유와 나분의 재능과 겨룰 자기의 빈약을 느껴’며 많은 콤플렉스 속에 초라하게 살았다. 그래 ‘방아간집 외손자’를 두고 나분에게 은근히 심한 질투심을 느낀다. 결국 나분에게 전해주라는 ‘방아간집 외손자’의 나비머리핀을 전해주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화근이 되여 오빠인 강희수가 우연히 강간사건에 억울하게 말려들어 인생을 망친다. 그녀는 이 모든 사연을 잘 안다. 그래서 ‘그토록 아름답고 눈부신 조그마한 큐빅이 박힌 나비머리핀이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로 몰고 간다는 것에 강희경은 몸서리를 칠’ 수 밖에 없다. 아름다운 것과 범죄의 아이러니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이날 이 때까지 스스로의 가슴 속에 삼켜서 품고 있었다.’ 심한 죄의식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사랑에서도 불행하다. 그녀는 남편과 리혼을 한다. 그런데 “전남편이였던 대춘이 교통사고로 사망된 뒤에야 강희경은 대춘이 생명보험을 해두었으며 그 수혜자는 ‘강희경’이라는 걸 알게 되였다.”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몰라보고 놓쳤던 것이다. 사랑의 비극에 다름 아니다. 그녀의 예지가 부족한 성격비극으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그녀는 ‘눈물을, 울분을, 슬픔을 삼키는 데 버릇되여’있는 비극적 인물이다. 강희경은 많은 죄의식을 안고 산다. 그녀는 ‘그 나비머리핀을 나분에게 곧바로 전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 것이다. / 나분과 그 소년은 결혼을 했을 수도. / 강희수는 감옥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며 원양어선에도 가지 않았을 것이며 미국으로도 가지 않았을 수도. / 조순재도 자살을 하지 않았을 수도. / 강필두도 타지에서 쓸쓸한 죽음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기와 상관없는 모든 우연적인 비극을 자기의 원인으로 돌린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속죄를 하고 있다. ‘미안이라는 말 한마디로 속죄할 수 있을 정도의 미안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준비도 안된 상대에게 하는 사과는 사과도 아니다, 사과를 받아준대서 자신이 저지른 죄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속죄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짐이다, 강희경은 이렇게 믿어왔고 자신을 괴롭혀왔다.’ 보다 싶이 〈세상처럼 느껴지는 것〉의 주인공들은 자기 의지와는 관계없이 우연성이나 아이러니로부터 야기된 요인들 때문에 모두 나름 대로의 아픔을 안고 살거나 살았던 것이다. 이 소설은 일단 이 문제에 대해 풀이를 하고 심사숙고하고 있다. ‘강희경은 삶에 따르는 우연과 삶의 가능성을 재고 있었다. 우연이라는 사소하고 하찮은 존재들이 삶을 무자비하게 흔들어버렸으며 가능성이라는 일말의 기대조차도 매장해버렸다. 어쩌면 우연은 필연의 또 다른 형태의 존재였는지도 몰랐다.’ 바로 강희경이 느끼는 이 ‘우연’의 철학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강희경은 아픔의 치유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사실 이것은 작가의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그것은 일단 ‘∼ 인간들아, 제발 개처럼 물고 뜯지 말거라.’, ‘∼ 무식하고 외롭고 볼품 없고 제멋대로이고 리기적인 인간들’이 되지 말라는 아름다운 주문인 것이다. 좀 공허할지라도 그것은 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과 인도주의에 가닿은 말이다. 세계명작들인 똘스또이의 《부활》이나 빅또르 유고의 《비참한 세계》의 주지도 바로 이런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리고 ‘∼ 말을 너무 삼키면 속이 썩는다. 속으로 뭉쳐삼킨 말들이 몸을 썩게 하는’ 만큼 시원하게 뱉어버리고 털어버려야 한다. 인간은 표현의 동물이 아닌가. 말하는 것,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된다. 여기에 표현을 통해 소통하게 되고 리해만세에 이른다면 그것은 하나의 완전한 치유가 된다. 개혁개방 후 우리는 반우파투쟁으로부터 문화대혁명시기까지 서로간에 맺힌 그 피 묻은 앙금들조차도 ‘리해만세!’로 풀지 않았던가. 그래서 강희경은 ‘미안해요. 오빠.’ 하고 강희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지 않던가. 그것은 ‘용서. 용서라고 이름이 붙여지는 순간부터 용서는 용서로 남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희경은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겠지만 오빠도 내려놓을 때 안됐어요?’를 권유한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막무가내로 ‘잊고 살어. 다 잊고 살자.’는 강희수의 소극적이고 퇴행적인 치유방법에 대한 시정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잊자고 하면 더 잊혀지지 않는 법이거늘. 〈세상처럼 느껴지는 것〉에서는 한술 더 떠 ‘하지만 용서는 개인의 것만은 아니기도 할 것 같아. 세월이 인간에게 해야 될 용서도 있지. 세월이 인간에게 구할 수 없는 용서의 그 아픔을 우리는 속수무책이 되여 어찌됐든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니겠나? 쉽지 않은 세상은 버티라고 생겨난 것일지도 몰라.’로 한층 승화된 주제적 의미를 창출한다. 즉 미시적인 개인의 용서문제 뿐만 아니라 거시적인 세월이나 시대, 사회적인 용서문제도 제기한다. 그런데 이런 용서가 실제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을 때 어떻게 하겠는가? 그것이 세월이나 시대, 사회의 원론 혹은 원천적인 비극일 경우에 말이다. 작가의 결론은 ‘쉽지 않은 세상은 버티기’란다. 그것은 ‘속수무책이 되여 어찌됐든 견뎌야 하’는 ‘그 아픔’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월이 약이라 하지 않던가. 세월이 흐르고 나면 스스로 치유가 되는 법이다. 어쩌면 그것은 아름다움으로 안겨올 수도 있다. 뿌쉬낀의 ‘생활이 그대를 속이더라도∼’의 론리처럼 말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세월이라도 참고 견디면 아름다운 생활은 꼭 온다지 않던가. ‘그래 우리도 언젠가 옛말하면서 살겠지∼’ 하는 론리. 그래서 지난간 것은 모두 아름답다고 했던가. 참고 견디는 락관성이 가장 좋은 치유의 하나가 된다는 말이 되겠다. 한마디로 〈세상처럼 느껴지는 것〉은 철리적인 문학치료학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그럼 이 소설의 제목 〈세상처럼 느껴지는 것〉의 의미도 자연히 해명될 줄로 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느끼자는 것, 즉 우연과 필연의 세상, 어쩌면 보다 많이 우연으로 나타나는 세상, 그것이 피해갈 수 없는 필연의 아픔일지라도 그대로 느끼면서 표현하고 소통하며 리해만세로 치유해가는 삶의 자세를 취하고저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 관통된 나비이미지의 상징적 의미도 자연히 해명될 줄로 안다. 나비, 나풀나풀, 나란히 나풀나풀, 그것은 천사 같은 자유로움이고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나비머리핀이고 목제나비가 등장한다. 따라서 ‘관두껑을 덮기 전, 강희경은 나비머리핀을 강필두의 손에 쥐여주었다.’ ‘1985년 강림촌에서 강필두와 함께 야반도주하던 강희경의 손에 꼭 쥐여졌던 나비머리핀이였다.’도 리해가 간다. 그런데 ‘공안일군이 꺼내든 쑈훙의 나비머리핀, 강희수의 고기발 초막에서 수색된 나비머리핀을 보면서 강희경은 무서웠다.’ 악마 같은 범죄의 상징이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아이러니에 다름 아니다. 보다 싶이 나비이미지는 소설에서 우리 세상과 삶에 있어서의 천사와 악마 같은 극단적인 아이러니를 나타내고 있다. 이 소설에서 부모세대인 강필두와 조순재는 한 많은 세상을 떠남으로써 원혼으로 남아 치유문제를 운운할 여지도 없는 듯하다. 비극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그러나 진정한 문학치료학은 이런 원혼도 달래주어야 하거늘! 그러나 자식세대들인 강희수와 강희경 남매는 아픔에 대한 표현, 소통, 리해를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다.  이상 보다 싶이 〈세상처럼 느껴지는 것〉은 현 단계 문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조선족문단에는 아직 부족한 아픔과 치유의 문학치료학 문제를 다루고 있어 주목된다. 그러면서 그것은 장면전환이나 슈제트전환에 있어서 굳이 이야기 전개의 내재적 론리를 나타내는 ‘1, 2, 3∼’으로 하기보다는 ‘와/과’, ‘그리고’ 식의 ‘&’로 수많은 아픔과 치유를 시사하고 있다. 그것은 실로 문학치료학적인 서사구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알게 모르게 이러저러한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가 한번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한번 읽어보는 것만으로 치유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 만큼 의의와 가치가 있는 줄로 안다. 그런데 앞부분 아픔의 문제와 뒤부분 치유의 문제의 형평성, 어쩌면 치유가 더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이 너무 소략하고 의론적으로 된 점 그리고 전반적으로 볼 때 아픔과 치유라는 초점에 잘 맞춰지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외에 소설이 좀 지리멸렬할 정도로 슴슴하다. 좀 발랄하고 재미나게 썼더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처럼 느껴지는 것〉은 조원선생이 이미 발표한 ‘나비야 나비야 모르포나비야’, ‘블랙 블랙 블랙아웃’과 같은 나비계렬 소설의 하나가 되겠다. 그는 아픔과 치유의 문학적 명수다. 그의 성공적인 문학치료학이 계속되기를 기원한다.      [1] 유럽에서는 비극을 고대 그리스시기 운명비극, 문예부흥시기 성격비극, 현대의 사회비극으로 나눈다. 이른바 성격비극이란 쉐익스피어의 《햄리트》에서 보듯이 주로 인물의 성격적 문제에서 비극의 원인을 찾고 있다. 이에 반해 사회비극은 비극의 원인을 주로 사회적 원인에서 찾는다. [2] 배달민족 고대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한 구절. 자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건에 우연히 말려들어 상처 입은 상황을 메타포를 동원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출처:2017 제6호
163    [작품평]이색적인 수필과 소설 읽기 댓글:  조회:1556  추천:0  2019-07-18
이색적인 수필과 소설 읽기 우상렬   필자가 여기서 이색적이라 함은 적어도 우리 조선족 문단에서 허련순의 수필 과 단편소설 같은 작품들이 적기 때문이다. 물론 이색적이라 해서 꼭 가치를 확보하는 것은 아니다. 이색적이면서 우리를 깨도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게 하고 개별적이면서 전형성을 확보하는 예술로 승화되여 그 가치가 빛나기 때문이다. 그럼 아래에 그 가치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인간은 지극히 의식적이고 리성적인 존재다. 이런 의식과 리성이 미치지 않는 데가 없는 것 같다. 아는 것이 힘, 인간은 바로 이 아는 것의 의식과 리성의 힘으로 이 세상을 정복하여 ‘우주의 정화, 만물의 령장’이 된 줄로 안다. 인생은 더없이 복잡하고 헛갈리는 듯하다. 그런데 결국 따져보면 삶과 죽음이라는 단순한 카테고리로 정리해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놓고 볼 때 인간은 삶에 대해 많이 담론해왔고 죽음에 대해 많이 소홀했던 것 같다. 아니 소홀했다기보다는 많이 피해왔다. 죽음은 무서운 존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죽음이 무서운 존재인 만큼 허황하나마 인간의 종교의식은 발전해왔다. 그래 죽음을 갈무리할 천국, 천당이 없는 종교가 있단 말인가. 사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죽음은 우리를 따라다닌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죽음을 우리의 무의식 심처에 처박아두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병원에 가기 싫어하고 화장터에 가기 싫어하고 죽은 사람을 보기 싫어한다. 이 모든 것들은 바로 우리의 무의식 속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분명 동물과 다른 자의식을 갖고 있다. 이런 자의식은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되돌아보고 직시하는 것이다. 죽음도 례외가 아니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의식, 죽음학이라는 것이 생겨나기도 한 것이다. 죽음은 삶에 못지 않게 중요하고 또한 그것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자유의지에 따른 자살이나 안락사도 긍정적인 의미에서 담론거리가 되기도 한다. 이른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준비하고 마련하는 지극히 의식적이고 리성적인 존재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사실 전통적으로 놓고 볼 때 우리 민족의 무속신앙은 이런 죽음의식을 기저에 깔고 있기도 하다. 이 세상에서 먹을 것, 입을 것 다 만족받으며 원과 한이 없이 살다가 저세상으로 가야 혼이 떠돌며 해코지를 하지 않는 옳바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서나 이 세상에서 잘살기를 위해 노력해왔다. 오늘날 현대라는 현 시점에 있어서 특정 민족이나 신앙을 떠나서 인간은 다시 죽음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허련순의 수필 은 전형적인 한 보기가 되겠다. 이 수필의 제목이 시사하다 싶이 이 수필은 산 자 스스로의 죽음 고별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 고별식은 일반적으로 산 자가 죽은 자를 위해 하는 것인데 말이다. 우리는 보통 죽으면 다인 것으로 여겨왔다. 죽은 후의 모든 것은 오롯이 산 자의 몫으로 남는 듯했다. 죽은 자에 대한 인간적 례우나 배려 및 장례식, 고별식 같은 거 말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죽은 자는 모른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 않는가. 산 사람만이 안다. 따라서 이것은 어쩌면 산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산 사람을 위한 것이 되고 만다. 그래 부모가 살았을 때는 불효를 하다가도 죽게 되면 ‘효’의 극치를 연출하는 것, 죽은 자의 위망을 빌어 조의금을 알뜰히 챙기기가 그 보기가 되겠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산 자가 자의식이 있을 때 스스로 자기의 죽음을 의식하고 장례식이나 고별식을 하는 것이야말로 ‘죽은 자’ 중심이 되지 않겠는가. 사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스스로의 생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내가 언제 태여나고 죽을지… 우리는 이 세상에 전혀 무의지적으로 오고 간다. 나는 이 점에서 우리는 고양이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양이는 자기의 죽을 때를 안다. 그래서 고양이는 스스로 자기가 살던 곳을 멀리 떠나 자기의 무덤자리를 파고 조용히 운명을 맞이한다고 한다. 인간은 이렇지 못하기 때문에 그 죽음은 산 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의식적이고 리성적인 존재로 자기의 죽음을 정시하고 맞이하고 해석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인간의 유서문화 및 자살, 안락사 등 죽음의 선택 그리고 단절의 죽음보다는 순환의 ‘돌아가다’의 론리가 그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허련순의 은 바로 이런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인간의 무의식적인 죽음을 의식세계로 끌어올려 철학적인 담론을 한 수필임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이 때까지 사는 것에만 련련하고 삶을 많이 이야기해왔고 죽음은 될 수 있는 한 피해왔고 담론의 대상에서 제외시켜왔다. 특히 우리 민족은 죽음을 이야기하면 얄궂고 방정맞은 것으로 여겨왔다. 사실 삶과 죽음은 같이 가는 것이다. 상반상생의 변증법적 론리를 가지고 있다. 삶이 있어 죽음이 더 돋보이고 죽음이 있어 삶이 더 돋보이는 형국인 셈이다. 어떤 의미에서 삶보다도 죽음이 더 중요하다. 죽음이 있어, 죽음에 대한 인간의 자의식, 리성적인 의식이 있어 지극히 인간다운 모습을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죽음을 안다는 것은 결국 삶을 잘살았다는 증거’가 아니더냐.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산 자의 고별식’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이것이 죽음에 대한 지극히 인간다운 모습일지라도 그것은 현 단계에 있어서는 아직 전위적인 하나의 시작에 불과하다. ‘미리 치른 장례식’의 전례를 보면 기껏해야 북미에서 두차례 그리고 김현철이 세번째인 셈이 아닌가. 죽음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려 공공연한 담론의 거리로 만든 사람들, 분명 인간의 새로운 죽음문화를 창출하는 선구자들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이들은 죽음을 알고 죽음을 초탈한 사람들”, “죽음을 삶으로 살아냈으며 죽음을 아름다운 삶으로 완성시킨”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죽음문화가 우리들에게 낯설고 충격적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것도 생일파티와 함께 하는 죽음의 고별식. 의 저자도 마찬가지. “나로서는 너무 충격적이였고 생소하고 낯설었다. 한편 궁금하기도 하였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왠지 가슴에 총을 맞은듯 먹먹해났다. 경이로움과 처연함, 그리고 짠한 슬픔과 이름할 수 없는 쓸쓸함까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찬사를 드려야 할지 아니면 위로를 드려야 할지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이런 경우에는 대체 어떤 말을 해야 하는 것일가?” 이것이 우리 모두의 느낌이였을 것이다. 은 이런 충격적인 사실이 충격적인 만큼 ‘낯설기’에 성공하고 또한 사색의 여지를 주어 성공적이다. 나는 이 순간 로댕의 을 떠올려본다. “생각한다. 고로 인간은 존재한다.” 그래 생각하는 사람이 무엇을 생각했을가? ‘지옥의 문’ 우에서 지옥을 내려다보며 생각을 하는 것을 봐서는 영낙없이 죽음에 대해 생각을 했을 것이다. 죽음이 우리의 하나의 영원한 명제이니 사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놓고 볼 때 도 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죽음을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죽음을 단순히 자연스러운 생리적인 죽음만으로 보지 않고 인생관과 련계되고 죽음의식이나 자세와 련계된다 할 때 그것은 문화적이고 철학적이다. 그런데 그것이 ‘산 자의 고별식’-‘미리 치른 장례식’일진대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죽음문화이고 죽음철학임에 틀림없다.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 충격에서 벗어나 올똘한 의식과 리성을 회복할 때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산 자의 고별이 합리하고 필요하며 미리 치른 장례식이 합리하고 필요한가고? 의 저자는 여기에 손을 드는 듯하다. ‘이것은 사람이 살아서 인간의 권리로 할 수 있는 삶에 대한 마지막 례의이고 또한 자기 죽음에 대한 신고식이 된다는 의미로 더없이 멋진 일이 될것이다.’ 이것은 저자가 충격적인 사실에 림해 ‘경이로움과 처연함 그리고 짠한 슬픔과 이름할 수 없는 쓸쓸함’, ‘찬사를 드려야 할지 아니면 위로를 드려야 할지’와 같은 복잡한 사상감정의 파노로마를 거쳐 죽음을 령혼승화로 보면서 자연스럽게 도출한 결론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충분히 우리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석연치 못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 우리의 무의식적인 자자연연自自然然한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전통적인 죽음의식이나 장례식이 전적으로 부정적이기만 한 존재인가. 하물며 현단계 인간은 너무 로고스-의식적이고 성적으로 살기만 하여 무미건조하고 피곤하며 힘들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명제 하나가 이 로고스해체가 아니던가. 그러니 굳이 죽음까지도 산 자 스스로 미리 직시하며 의식적이고 리성적으로 처리해야만 하는가. 적어도 감정상에서나 무의식상에서 죽음이 싫고 불행하고 무서운 존재일진대 이것은 너무 잔혹하다. 의 주인공처럼 자기의 생일파티와 더불어 죽음의 고별식을 한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느낌일가. 거기에 참가한 사람들은? 축하? 비애? 참, 난감하게 만들 것이다. 인간의 감정은 순식간에 두 극단을 달리기가 힘들다. 그럼 축하도 아니고 비애도 아닌 그런 어정쩡한 감정… 그래 굳이 인위적으로 이렇게 난감하고 어정쩡하게 만들 필요가 있는가. 이른바 올똘한 의식과 리성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식으로 우리를 또 피곤하게 만드는 하나의 케이스가 아니겠는가… 여하튼 은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사색을 불러일으켜 좋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던가. 허련순의 단편소설 은 현단계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화제인 소통과 치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다 보면 알게 모르게 이러저러한 상처를 안고 살기가 십상이다. 인간은 어떤 때 자기도 모르게 자기 혀를 깨물듯이 자기 스스로와도 부딪치며 자기 스스로가 미워날 때가 있다. 하물며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며 사는 세상에서야 더 말해 뭐 필요하겠는가. 물론 눈에 보이는 육체적 상처도 상처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더 큰 문제가 된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런 마음의 상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돋보인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것이 무슨 심리상담이요, 정신분석이요, 신경과요 하는 것들이다. 일심동체라는 부부간도 마찬가지다. 을 보면 녀주인공은 ‘이미 원상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상처를 받았다. 어떤 결과이든 그녀한테는 일방적인 상처일 뿐’이지 않은가. 사실 이 작품에서 녀주인공보다는 남주인공 준이의 상처가 더 심각하다. 준이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남자가 방황하는 것은 어릴 적에 받은 상처가 깊어서 그러는 것’이지 않던가. 정신분석학에서 놓고 보면 이런 ‘어릴 적에 받은 상처’는 인간의 무의식 속에 남아 그 사람이 성년이 된 마당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작품에서 보면 ‘배 다르고 성이 다른 네 아이들이 싸우거나 말썽을 일으킬 때마다 시어미 역정에 개 옆구리를 찬다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쩍하면 막내인 준이한테 분풀이를 했다. 상대방이 데리고 들어온 자식을 욕하고 때리면 구설수에 오르고 마을에서 손가락질 당하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 친자식인 준이한테는 함부로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였던 모양이다.’ ‘형제들 역시 심기가 불편할 때마다 준이한테 풀기가 일쑤였다. 이런 이률배반적인 갈등 속에서 준이는 자신에게만 가해지는 폭력과 불평등을 겪으며 점차 부모에 대한 원망이 컸고 형제에 대한 믿음도 없었다. 늘 혼자이고 외로웠다.’ 소설에서 이런 애정결핍증은 남주인공이 어릴 때 형이 가출하고 아버지가 나를 멀리하면서 더해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래동안 아버지를 원망했어. 아버지에게 진정한 아들은 형 뿐이라고 말이야.”하고 늘 원망 속에 살아갔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듯한 형이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하면서 말이다. 남주인공 준이는 전형적으로 어릴 때 애정결핍증 속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어른이 된 마당에 ‘남자는 유난히 친구를 좋아했다. 단 하루라도 친구를 만나지 못하면 금단 증세를 보일 정도였다.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면 한밤중이라도 친구들을 불러냈고 심지어는 부부가 간만에 외식하는 자리에도 친구들을 불러내여 동석했다. 그렇다고 그 친구들이 남자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였다. 밤중에 불리워나오거나 남의 부부 사이에 끼워 식사를 하는 것이 좋기만 하겠는가. 그들은 눈쌀을 찌프리거나 끊임없이 하품을 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썩 달갑지 않음을 나타내군 했다. 남자는 눈치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늦은 시간까지 지루하게 친구들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혹여 중간에 누가 먼저 자리를 뜨면 기어이 쫓아가서 데려오군 하였다.’ ‘그래서 친구를 많이 사귀였고 친구가 없으면 하루도 견디기 힘들어했는지도 모른다.’ 이상하고 병적인 데가 있다.  소설에서 이런 애증결핍증도 결핍증이겠지만 남주인공 준이의 형에 대한 죄책감이 더 큰 문제가 된다. 이 죄책감이 이 소설의 기본 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준이는 형의 가출이 결과적으로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형의 가출에서 단 한번도 자유롭지 못했’다. ‘형이 잘못되면 자신의 탓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어린 시절부터 늘 불안했고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자신이란 있을 수 없었다. 깨여있는 시간 뿐만 아니라 잠든 시간에도 형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있었다.’ ‘형이 돌아오면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될 것이고 집안의 평화도 찾아오리라고 믿었다.’ 한 인간이 이런 죄책감에 매몰될 때 그는 주체성을 상실하고 제정신이 아니다. 온 넋을 다 빼앗기는 마조히즘적이 되기 쉽다. 독실한 카톨릭신자가 신부 앞에서 고해성소를 할 때의 심정이라 할가. 어쩌면 준이가 바로 이렇다. 어른이 되여 결혼을 한 마당에도 마찬가지. 그는 자기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지 않는가. 형의 돌아옴이 그의 구세주에 다름 아니였다. 형은 결국 돌아왔다. 그런데 ‘희열이나 기쁨과 같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였다. 원망과 미움이 희열과 혼재하여 어떤 것이 진실한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실로 그것은 애증의 감정이리라! 일단 학수고대하던 형이 돌아왔으니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의식 차원의 감정일 것이다. 그런데 다음 순간 ‘자신의 지난 세월을 송두리채 빼앗아가버린’ ‘억울’함이 북받칠 때 ‘원망과 미움’이 자기도 모르게 휩쓸게 된다. 이것은 어쩌면 무의식 차원의 감정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 형의 가출이 결국 형 스스로의 잘못으로 인기된 것임을 상기할 때 ‘형의 책임을 따지고’ 싶기도 하다. 이것 또한 또렷한 의식의 추궁이기도 하다. 의식과 무의식이 헛갈리는 애증의 감정,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진실한 내면풍경이다. 사실 소설에서 ‘그가 가는 곳’은 바로 형이 있는 곳이다. 형이 돌아옴으로, 형을 만남으로 그는 자기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마음을 정리하며 령혼은 평온을 찾는다. 주체적인 자아를 회복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 하여 그 형이 정답고 사랑스러운 존재는 아니다. 그래서 어쩌면 마음이 정리되고 령혼이 평온을 찾는 대로 그 형을 떠나고 싶고 잊고 싶다. 그 형은 주체적인 자아상실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이는 매번 형을 만나고 와서는 여느때와는 다르게 열심히 샤와를 한다. ‘조금 후 빠른 손놀림으로 온몸에 비누칠하는 소리가 매끄럽게 철버덕거렸다. 평소에는 한번의 비누칠로 끝났는데 웬 일인지 세번 네번을 덧칠하며 오래오래 씻었다. 꼼꼼하게 씻어내야 할 리유라도 생긴 것일가? 남자는 가죽이라도 벗겨내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 같았다.’ ‘멎을듯 멎지 않고 끊임없이 질척거리던 물소리가 드디여 멎고 살갗을 쥐여짜듯 빠드득 빠드득 살을 털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가 샤와실에서 거듭 비누칠을 해가면서 빡빡 씻어내려고 했던 것은 구경 무엇이였을가.’ 사실 그가 씻어내려고 했던 것은 자기 령혼에 파고든 형의 모습이였을 것이다. 준이가 마지막에 운명하는 ‘형의 귀가에 대고 절규하듯 소리’친 ‘형! 우리 곁으로 돌아와줘서 고마워!… 잘 가!’는 그간의 사정을 집약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한마디로 형이 돌아옴으로써 스스로의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형이 세상뜸으로써 그의 음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한테로 가는 것이 그에게는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이로부터 그는 자기도 모르게 형, 아버지 사이에서 얽히고 맺힌 애증결핍증이나 죄책감 같은 무의식적 마이나스감정응어리가 풀린다. 보다 싶이 이 소설은 남주인공 준이의 차원에서 놓고 보면 애증결핍증과 죄책감에 부대끼는 한 인간이 자기를 찾고 ‘자신을 돌려받고 싶’은 령혼구제 과정에 다름 아니다. 바로 이 과정을 통해 ‘그동안의 세월이 덜 억울할 것 같’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소통과 치유가 되겠다. 녀주인공 차원에서 볼 때도 마찬가지. 남녀 주인공은 이제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신혼이건만 트러블이 생긴다. 문제는 주로 남주인공한테 있는 듯하다. 그런데 녀주인공이 남주인공을 끊임없이 알아가고 리해해가면서 트러블은 해소된다. 처음 ‘녀자는 자신의 남자에 대해서도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러다가 ‘남자가 녀자한테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었다. 처음 있는 일이였다.’ 리해의 실마리는 바로 이런 들려주고 들어주며 소통하는 데 있다. 이런 소통을 통해 서로 리해를 하게 되고 리해를 하게 되면 서로 치유가 되는 법이다. 여기서 리해가 관건이다. 그래서 중국사람들은 조화로움을 추구하며 ‘리해만세!’라는 말을 잘하는 듯하다. 리해를 하고 나면 인간적 동정이 앞서게 되니 치유가 쉽게 되는 것이다. “그 친구도 많이 외롭고 불쌍한 놈입니다…” ‘송의 말을 들으면서 잠간이지만 녀자는 마중물처럼 눈물이 고이’지 않던가. “그런 소리 여직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처음으로 남자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자신이 남자의 마음을 알지 못해서 오래도록 기다리며 방황한 것처럼 어쩌면 남자 역시 그녀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남자에게 자신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기에 남자의 방황을 부추긴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소설에서 남녀주인공 사이 소통하고 리해하고 치유하는 데 녀주인공이 주동적이다. 녀성의 부드러움과 따뜻한 모성이 넘치는 소통과 치유의 퍼포먼스를 보자. ‘녀자가 남자의 손을 잡았다.’ “그런 말을 왜 나한테 하지 않았어요?” ‘녀자는 가슴 끝이 시리고 아렸다. 아픔에서 그를 조금이라도 끌어내고 싶었다. 녀자가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살포시 기대며 하늘을 가리켰다.’ ‘녀자는 돌아오는 길에 꽃집에 들려 남자가 좋아하는 금잔화 한묶음을 샀다.’ 그러니 남주인공은 ‘참으로 오랜만에 환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는가. 그는 ‘금잔화를 사온 사람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다 싶이 이 소설은 남녀주인공이 처음에 소통을 하지 않아 불리해로부터 오는 트러블로부터 마지막에 소통하고 리해하는 과정을 통해 화해의 하모니 속에 치유를 이끌어내고 있다. 소설에서 “아직도 부부의 진실이 뭔지 모르겠어…”라고 되뇌이고 있지만 실은 이런 소통과 치유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남녀주인공의 소통과 치유의 과정을 서로를 리해해가는 내면풍경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이 소설은 전형적인 심리소설이 되기에 충분하다. 남주인공의 애정결핍증과 죄책감을 둘러싼 무의식적인 표현 및 녀주인공의 사랑을 둘러싼 의식무의식적인 녀심, 그리고 남녀주인공의 호상 리해의 과정 등이 돋보인다. 우리 문단에 흔치 않은 심리소설임에 또한 은 충분한 값어치를 확보하고 있다.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많다. 그것은 현대인간들이 세계화요, 국제화요 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개방화 시대에 살면서도 오히려 무슨 개성이요 자아중심이요 하며 리해득실에 얽힌 에고이즘 마음의 울타리를 쌓고 소통과 치유를 하지 않는 데 있다. 그래서 현재 소통과 치유는 범세계적인 문학주제의 하나로 되고 있다. 허련순은 우리 조선족문학의 선두주자로 일찍 장편소설 《바람꽃》,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로 디아스포라문학, 장편소설 로 바로 소통과 치유의 문학을 개척하여 세계문학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하며 조선족문학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 단편소설 은 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가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 소통과 치유를 보여주었다면 은 부부 사이 소통과 치유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전형화 차원에서 볼 때 그것은 인류 보편의 소통과 치유 문제로 리해할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처음 읽으면 삼각련애를 기본 틀로 한 전형적인 3류 대중소설을 보는 듯한 감을 준다. 점입가경으로 남자의 외도에 대한 의심이 녀주인공과 더불어 더 깊어간다. 남자의 늦은 귀가 및 이상한 행동, 안마원에서의 긴가민가, 남편의 동기를 만나 기막힌 사연을 얻어듣기, 남편의 숨겨놓은 계정에서 ‘선이란 녀자’의 메일 확인, 남편의 절친 송을 통한 ‘완벽한 복수와 일탈’… 남자의 사생활을 은밀히 보는 듯한 관음증에 만족을 주면서 말이다. 작가는 성동격서声东击西식으로 끊임없이 연막탄을 치면서 이런 의심과 관음증적인 만족을 최고도로 끌어올리다가 남자의 어릴 때 가정 내 불편한 사연을 드러내면서 그 의심과 만족을 고무풍선 터뜨리듯이 터뜨린다. 그제야 독자들은 정신이 확 들며 깨도가 되면서 3류 대중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적, 특히 무의식적인 내면풍경을 추구하며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담론인 소통과 치유의 문제를 풀이하고 있어 가볍게 다룰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을 읽는 묘미 또한 여기에 있는 줄로 안다. 모두 모아 과 은 ‘나’도 한번 ‘고별식’을 해보고 싶고 ‘그 곳’에 가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출처:2017 제5호
162    《살구꽃 피는 계절》을 읊어보셨습니까? - 우상렬 댓글:  조회:1472  추천:0  2019-07-16
‘살구꽃 피는 계절’이라, 구미가 동한다. 우리에게는 분명 살구꽃 피는 계절이 있었다. 그럼 살구꽃 피는 계절은 어떤 계절이였던가? ‘살구꽃처럼 환하던/ 두 사람의 봄을 그리며’ ‘살구나무 아래서/ 백년해로 다짐하던 그날 밤’, ‘시처럼 만발한/ 살구나무 꽃바다’에서 알 수 있다싶이 그것은 영원한 사랑이고 다함없는 행복에 다름 아니다. 사실 살구꽃은 언녕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사랑, 행복의 상징코드로 되여있다. 이 서정서사시는 처음 이런 상징코드로 행복멜로디를 뽑아내는가 싶더니 급전하강으로 비극멜로디가 흘러나온다. 행복멜로디는 어쩌면 이 비극멜로디의 전주곡으로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이 비극멜로디의 충격은 크다. 또한 이 비극멜로디가 서정서사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 비극멜로디는 순정남과 마음 변한 녀인의 충돌 속에 일어난 것이다. 전통적인 가부장사회에서 대개 남자가 변심하고 녀자가 눈물을 흘리는 형국인데 이것은 그게 아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사실 이것은 우리 조선족사회의 사랑비극을 읊고 있다. 살구꽃 피는 산골에서 오손도손 그래도 행복했는데 가난이 문제다. 그래서 그 개도 안 먹는 돈 때문에 녀자는 남편과 가짜 리혼을 하고 외국으로 간다. 그런데 ‘몸이 멀어지면 맘도 멀어지’는가, 녀자의 가짜리혼이 진짜리혼으로 둔갑한다. 마음이 변한 것이다. 인간성 파멸의 비극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다른 녀인의 손 한번/ 아니 잡은 채/ ‘일편단심 민들레’로/ 하얀 순정을 지켜”온 순정남에 대한 배반으로 된다. 따라서 아름답던 사랑도 파멸된다. 호랑이 잡던 사냥군 사나이와 ‘선녀처럼 눈부신’ 처녀는 천생배필이건만. 그래서 그 사랑의 비극이 더 충격적이고 우리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이런 비극이 연출되고 있다. 이 서정서사시는 분명 이런 사랑비극을 읊으면서 제목을 이라 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의 역설이면서 그것을 더 돋보이게 한다. 이 서정서사시는 바로 이런 사랑비극을 읊고 있어 사회적 의미와 시대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 전통적인 아름다운 녀성의 순결미 및 순수하고 진지한 사랑의 파탄이기에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노스텔지아에 기인하는 일시적인 가벼운 감상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과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 인간이 영원히 간직해야 할 아름다운 인간성이고 사랑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의 감정이 희박해지고 헌신짝처럼 내버려지는 현시대에 있어서 말이다. 따라서 은 제목이 시사하다시피 바로 그런 아름다운 인간성과 사랑에 대한 갈구를 톺아내고 있다. 그래서 시적 자아는 ‘올해도 살구꽃이/ 구름처럼 흐드러진 범진령’, ‘살구꽃 피는 계절/ 아!/ 그 계절이 그립다…’고 되뇌이고 있다. 그래서 이 서정서사시는 더 값진 줄로 안다. 시인은 바로 이런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존재들이다. 김학송도 여기에서 례외는 아닌 줄로 안다. 하지만 은 비극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지막 부분에 ‘그 이름도 청순한 민들레촌,/ 순이는 딸애와 함께/ 이 마을의 새 주인이 되였다’, 그리고 ‘아빠의 귀여운 손녀가 어느덧/ 학교 갈 나이가 되였다’로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져주기도 한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어찌 희극 뿐이랴. 비극이 생기고 있는 것도 정상. 인생은 희노애락의 파노라마가 아니더냐. 그래 우리는 비극에 대해 정시하기도 해야 하겠지만 정상으로 대할 수 있는 평상심도 가져야 한다. 은 이런 정상적인 평상심을 읊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어 좋다. 우리 시대정신과도 통한다. 산 사람은 어떻게 해서나 살아야 한다. 그 비극을 딛고 말이다. 그래 우리는 누구나 을 한번 읊어볼 필요가 있다. 이 시는 얼마 전 조문판 《연변일보》 ‘해란강문학’ 코너 전면에 실려있었다. 김학송의 시는 워낙 우리 조선족의 삶의 정서를 그 누구보다도 감명 깊게 읊어낸다. 그는 우리의 희노애락을 시의 꽃으로 피워내는 명수다. 그는 우리 조선족의 대표적인 향토 서정시인이 되기에 손색없다. 김학송의 서정서사시 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것은 우의 사상내용이나 서정도 한몫 했겠지만 간만에 접하게 되는 서정서사시 형식이 신선하다. 사실 우리 조선족 시에는 이런 서정서사시 형식이 없은 것이 아니다. 새 중국이 성립되여 얼마 안되는 1950년대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개혁개방 후에 김철의 를 비롯하여 얼마간 나타났다. 사실 한 시대를 거창하게 노래하는 데는 이런 서정서사시가 제격이다. 그런데 현단계 우리 조선족 시단에는 이런 서정서사시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 시대가 많이 세속화되고 파편화되면서 시인들도 스케일이 작아지면서 짧은 서정시에 많이 연연하기 때문인 줄로 사료된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김학송의 은 새롭고 돋보인다. 그것도 이전의 서정서사시가 우리 조선족의 혁명력사 제재를 많이 취급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 조선족의 현실생활을 제재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은 민족적 색채가 진하다. 첫 시작에 등장하는 ‘호랑이’도 그렇고 ‘민들레촌’도 그렇고 ‘순이’도 그렇고 민족적 정취를 풍기는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이미지 및 그 조합들이 생경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정답다. ‘뜨락의 살구꽃도 궁둥이를/ 요상하게 흔드는걸 보니’, ‘내물의 입술도 바짝 마르는 걸 보니/ 아마도 말 못할 속사연이 있었나 보다’. 사랑의 변심을 이렇게 자연의 상징적 이미지의 력동적인 의인화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의 서정이 직설적이고 공허하기 보다는 이미지화된 만큼 진정성이 넘치면서 차분해서 더 몸에 와 닿는다. 례컨대 안해의 변심 때문에 슬픔에 젖은 순정남의 슬픔을 시적 자아는 객관상관물로 뻐꾸기를 끌어들여 ‘뻐꾸기만 뻐꾹뻐꾹/ 어리석은 나그네를 비웃으며 날아간다’로 야속하고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은 우리 조선족 시단에 하나의 좋은 시작이 될 줄로 안다. 우리 조선족 시단의 ‘살구꽃 피는 계절’을 꿈꾸어본다. 출처:연변일보 2019년6월 21일 발표
161    [작품평]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손톱> 댓글:  조회:1064  추천:0  2019-07-15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손톱〉 우상렬   学而优则仕-공부 잘하면 출세한다는 말이 우리 머리속에 꽉 박혀있다. 그래서 지금도 너도나도 공부, 공부다. 내가 1980년대 초 대학교에 붙고 다닌 동기도 전적으로 이런 출세에 있었다. 그럼 그 출세란 무엇이냐? 쉽게 말하면 3대 차별, 모택동이 그래도 없애자 했던 3대 차별 즉 도시와 농촌 차별, 정신로동과 육체로동의 차별, 공업과 농업 차별에서 적어도 도시에서 정신로동에 종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지식인이 전형적이겠지. 그래서 아무리 구린내 나는 지식분자라 해도 냠냠 지식분자가 되고 싶은 게다. 그런데 사실 지식분자라는 게 별 게 아니다. 도시인에 정신로동자라 해도 별 볼일 없는 존재다. 대개 한자리 출세는 고사하고 남 밑에서 치닥거리나 하는 소시민에 불과하니 말이다. 한영남의 초단편소설 은 이것을 말해준다.  소설의 주인공 ‘그’는 안해, 아이 단란한 핵가족에 차를 끌고 출근하는 출근족에 그럴듯해보인다. 그러나 사실 그는 지극히 별 볼일 없는 존재다. ‘그는 늘 그랬’지 않은가. ‘누구의 말이든 듣게 되면 다 일리가 있어보이고 세상사람들의 말은 거의 절대진리처럼 느껴지군 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였는지 모르지만 왠지 자기는 정말 굉장히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아주 굉장히 새롭고 굉장히 단단한 어떤 리론(그것을 리론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이랍시고 척 꺼내놓는데 다른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그만 그 견고한 리론들이 다 어이없이 허물어지고 그는 번마다 패배자로 되여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남의 말에도 척척 멋진 말들을 리론처럼 막 쏟아내지 않는가. 그들의 말들은 그대로 진리 같아 보였고 자기는 형편없이 초라한 존재로만 느껴졌다. 사상을 복제하지 못한다는 성양의 말은 얼마나 믿음직하고 론리적이고 진리 같아 보이는가.’ 실로 스스로 자인하는 ‘번마다 패배자’이고 ‘형편없이 초라한 존재로만 느껴진’다. 그는 동료들 사이 쓰잘데 없는 잡담 가지고도 ‘내심 자책하며 약간 쑥스러워진 이 장면을 어떻게 모면할 것인가 궁리하고 있’는 신경과민에 마조히즘적인 소시민적 존재다. 그렇다 하여 그에게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직원들 휴식은 아무렇게나 잘라먹어도 상관없는 모양이다.’, ‘토요일에도 출근이다.’, ‘그래, 그럼 당신이 그 2천원 가지고 주말마다 토요일 꼬박꼬박 출근하시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소리가 잘도 먹혀들어가는 게 이 회사의 생리이다.’ 그에게는 불만이 많다. ‘사전 편찬도 마찬가지이다.’, ‘본래 이런 일은 출판사에서나 할 일이지 연구원에서 할 일이 절대 아니다. 그런 걸 존경하는 원장님께서 퇴직 전에 국가2급이라도 되여볼 양으로 직원들 전체가 반대하고 상급 부문에서도 반대하는 것을 부득부득 우겨서 국가프로젝트를 따내왔다.’, ‘결국 직원들이 개고생해서 사전을 만들어낸다고 치자. 그러면 그야말로 토씨 하나 건드리지 않은 원장은 총기획자에 주필에 편집위원회 주임에 등등 생색낼 수 있는 곳에 전부 자기 이름자를 척척 박아넣을 것이고 누워서 떡 먹기로 국가2급 혹은 잘되면 국가1급까지 될 것이다. 직원들이야 고작 몇푼 안되는 돈 주며 콩알사탕으로 어린애 달래듯하면 될 터이고 상급자들은 그 덕에 자기네 성적도 올라갈 것이므로 칭찬마저 해줄 것인즉 이래저래 좋은 일만 쭈욱 기다리는 판이다. 원장은 원장이길래 그리고 프로젝트를 따내와서 국가지원금을 가져온 공신이길래 닥달질만 하면 되였다. 속도를 내라 그렇게 해서 어느 천년에 일 마무리하냐, 다른 곳에서는 일 바로 하지 않아서 국가지원금 다시 되가져갔단다, 갖은 위협과 공갈이 섞인 채찍질을 해댄다. / 그러고 보니 그는 회사에 출근해서도 은근히 원장으로부터 부원장으로부터 서기로부터 주임으로부터 부주임으로부터 자주 옆구리 찔리워왔었다.’ 그는 똑똑하다. 알 것은 다 안다. 세속의 더러운 생리를 환히 꿰뚫고 있다. 그는 구경 지적인 지식인이니깐. ‘그는 어느 날 그런 것에 생각이 미치는 순간 마치 본의 아니게 왕의 당나귀 귀의 비밀을 알아버린 리발사마냥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나 ‘그래도 그렇달 뿐이다. 그야말로 회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말단의 말단인 그가 뭐라고 한대서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을 터이니 말이다.’ 그의 현실적 리성이 이것을 일깨워준다. 그러니 그는 힘든 대로 현실에 안주할 수 밖에 없다. 그저 빨리 퇴근하여 집에 돌아가 아이나 어르고 마누라 해주는 밥에 반주술이 그리울 뿐이다. 热炕头老婆孩子-‘아늑한 보금자리’ ‘따뜻한 구들’에 ‘내 마누라’, 내 새끼 끼고 천륜지락을 누리는 모범남편에 다름 아니다. 그러면서도 언감생심 ‘어디를 봐도 이쁘기만 한 성양’에게 ‘유난스레 포즈를 한껏 취하’기도 하는 색기도 없지 않아있다. 전형적인 농경문화로부터 변형된 현대 도시 소시민적인 꼬락서니이기도 하다. 요새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는 小资情结-나만의 아늑한 세계에 도취하려는 소시민적 콤플렉스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게 불편하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왜 그래야 하는지 그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그 불편함이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생리화되여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그는 19세기 로씨야 비판적 사실주의 문학의 전형적 인물의 하나인 ‘쓸모 없는 사람’과 꼭 닮아있다. 현실의 부정과 비리를 꿰뚫어보고 거기에 불만을 품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어쩌지 못하고 하는 일 없이 속으로 끙끙 앓기만 하는 그런 못난이 말이다. 물론 그에게는 현실의 부정과 비리에 맞서는 용기도 있다. ‘자기만이 무엇이든 납득이 잘되지 않는 모양’이 아니더냐. 그는 퇴근길에 ‘울퉁불퉁’ 무지막지한 아낙이 사달이 된 교통체증에 자기도 모르게 끼여들어 바른 소리 한마디를 한다. 그런데 아낙의 기세찬 역공습에 그만 후회막급이 되고 만다. ‘이 더러운 습관을. 이 미친 습관을. 왜 나서기를 나서냐 자꾸. 그렇다고 해결을 시원하게 보기나 하는가. 사람이 그만큼 끼여들었다가 망신 당하고 옆구리 찔리고 했으면 좀 정신을 차려야지. 반팔십 나이나 어린가.’ 그에게도 언젠가는 정의감이 넘치고 평지돌출의 용감성이 있은 줄로 안다. ‘사람이 그만큼 끼여들었다’고 하지 않던가. ‘다들 그렇고 그렇게 쉽게 넘어가주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자꾸 ‘망신당하고 옆구리 찔리고 하’다 보면 현실과 조률하게 되고 타협하게 된다. 이것을 모난 돌의 모가 다 마모되여 매끌매끌하게 되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모났던 돌이 정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비극이다. 인간에게 있어야 할 정의감과 용감성이 다 마모되고 아래우, 좌우 눈치나 보면서 원리원칙 없이 누이 좋고 매부 좋게 얼렁뚱땅 매끌매끌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 또한 전형적인 닳아빠진 소시민적 근성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그는 이런 것에 또한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40 불혹의 나이건만 말이다. 그는 ‘아니, 근데 어디서 저런 아낙이야? 그리고 그 비쩍 마른 사내는 또. 내가 더러워서 못산다. 내가.’로 자기도 모르게 우뚝우뚝 치받는 밸을 못 삭인다. 그래서 그는 술로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당장 그 욕쟁이 아낙과 비쩍 마른 사내에 대한 불미스런 기억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을 뿐이다’. 술은 림시방편적인 하나의 탈출구일 뿐이다. 그러나 취중진담에 심각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말이야. 우리는 왜 잘못된 걸 분명히 알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건가?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술 마신 김에, 화김에 음주운전도 서슴지 않는다. 보다 싶이 그는 항상 모순 속에서 헤매인다. 지식인의 지적인 당위성에 기초한 정의감과 용감성 대 소시민의 현실적인 나약함과 전전긍긍 사이에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도시 소지식인들의 회색적인 심리세계이기도 하다. 물론 〈손톱〉의 그는 지식인이다. 3천페지나 되는 사전을 만드는 지식인이다. 그러나 그는 소시민적인 小资情结에 놀아나는 소지식인에 불과하다. 后天下之乐而乐,先天下之忧而忧-즐거움은 남에게 먼저 양보하고 불행은 내가 먼저 떠안으며 杀身取义-의를 위해서 몸을 서슴없이 바치는 전통적인 위대한 선비도 아니고 인간 실존과 전반 세계나 사회적인 문제 같은 거창한 담론에 흥분하고 놀아나는 대지식분자도 아니다. 그는 바로 눈앞의 리해득실에 놀아나고 조금 정의감과 용감성에 놀아날가 하다가도 꽥 소리치면 머리를 움츠리고 마는 그리고 속으로는 꼼지락거리는 王八-자라 같은 초라한 존재다. 도시문화에 의해 산생된 신종 ‘잡종’에 불과하다. 그래 이것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아니란 말인가. 그래도 도시 지식인이라고 어깨에 힘을 주고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 말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그’는 수시로 능청스러운 자조적인 심사를 드러낸다. ‘그래도 여기 꾸욱 박혀서 이 지긋지긋한 작업을 꾸준히 하는 까닭은 어쩌면 딱히 다른 일도 할 줄 모른다는 리유도 한몫 톡톡히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어쩌면 지식분자들은 ‘딱히 다른 일도 할 줄 모른다.’ ‘그래, 당신들 다 정확하고 정확하고 정확하고 정확하다구. 나 같은 바보들만 오류덩이다. 이제 됐나?’ 스스로 물앉고 마는 형국이다. ‘남자의 손톱답지 않게 갸름걀죽하게 생긴 녀석’, 스스로 남자답지 않다는 말이 되겠다. ‘정직하고 원칙성 강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서기님도 당장 래일부터 로임을 주지 않는다고 해보라. 출근이고 뭐고 바로 할 것인가.’ 이것은 아이러니를 동원한 하나의 풍자가 되겠다. 그의 이름은 강철웅, 별명은 쇠때곰-꿋꿋함이 넘치는 사나이 이름이고 별명이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 못하다. 이것 또한 겉모양과 내실의 통일을 기하지 못한 자아풍자가 되겠다. 한영남 시나 소설에서 이런 능청스러운 자조나 풍자는 자주 등장한다. 우리 도시의 회색적 지식인들은 바로 이런 자조나 풍자의 자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의 ‘그’의 전형적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은 별로 극적 충돌도 없고 극적 사건도 없다. 그만큼 지리멸렬하고 재미가 없는 초단편소설이다. ‘그’의 출근과 퇴근 사이 그렇고 그런 늘 반복되는 하루 생활을 자연주의적으로 가감없이 원색적으로 주절대는 것 같다. 1990년대부터 우리 중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전형적인 신사실주의新写实主义 창작방법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까딱 잘못하면 재미도 재미겠지만 별 의미도 없게 된다. 고기도 잃고 구럭도 잃는 꼴이 되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작자는 이 점을 잘 알고 있는듯하다. 그래서 작자는 상징적인 장치를 효과적으로 리용하고 있다.  우선 소설의 제목 을 보자. 소설에서 손톱은 서두와 결말의 조응관계를 형성하며 전반 소설을 아래우로 감싸는 독특한 ‘액자’형 모양새를 낸다. 손톱은 오른손 새끼손톱으로서 별 볼일 없는 주인공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서두에서 손톱은 ‘별스레 고분고분하지 못하다’. 이것은 주인공의 무의식적인 반발 내지 반항의식을 나타낸다. 결말에서 손톱은 ‘가쯘하게 잘라져있었고 매끈하게 다듬어져까지 있었다.’ 이것은 주인공의 고분고분 순화된 의식을 나타낸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주인공의 반발 내지 반항의식도 좋고 고분고분 순화된 의식도 좋고 그것은 모두 손톱에 집중되면서 손톱은 이 소설을 리해하는 중요한 상징적 키워드로 된다. 여기에 중간 부분에 간간이 거론되는 ‘손톱’-‘갑자기 잊고 있었던 새끼손톱이 쿡 약지 옆구리를 찔러댔다.’, ‘이 녀석이 언제 이렇게 자라났을가.’, ‘갑자기 그동안 잊혀졌던 새끼손톱이 또 약지 옆구리를 쿡 찔러댄다. 이번에는 느낌이 아주 강렬했다.’, ‘오늘 저녁에는 이 녀석을 손 좀 봐야지. 암 봐야 하구 말구.’, ‘그는 갑자기 이상해진 새끼손톱을 어떻게 조리할가 유심히 살피며’ 등은 서두와 결말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이런 의식과 무의식의 이중심리를 수시로 튕겨주고 있다. 이로부터 ‘손톱’을 제목으로 잡은 것은 적재적소다. 소설에서 거론된 아프리카 하이에나나 독수리도 하나의 상징코드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짐승들이다. 왜서? 그것은 ‘늘 다른 짐승들이 힘겹게 잡아놓은 사냥물을 끼여들어 가로채기’ 때문이다. 보다 싶이 하이에나나 독수리는 남의 로동성과를 독차지하여 명리를 노리는 원장 같은 기생충적 인간들을 상징한다. 소설에는 한국 왁스의 노래 가 출퇴근할 때 두번 나온다. 이 노래도 상징성을 띠고 있다. ‘그’는 이 노래를 좋아한다. 그것은 ‘어쩌면 자기 강철웅 자신을 쓴 노래 가사가 아닐가 싶을 정도로 그의 모든 것이 들어맞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사실 강철웅 그만이 아니라 우리 모든 남성들에게도 들어맞는 노래인 것이다. 그것은 남성들이 거세당한듯 초절이 배추잎처럼 후줄근해진, 우리 현실 남자들의 자기 위안적인 갈구를 드러낸 백일몽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그’가 퇴근길에 등장한 ‘비쩍 말라보이는 차주인’도 하나의 상징적 코드다. 그것은 현단계 음성양쇠를 드러내면서도 무지막지한 악에 추호도 어쩌지 못하고 퇴각령, 줄행랑을 놓기 바쁜 초라한 우리네 남성들의 모습이다. 여기에 어쩌다 정의롭게 끼여들었다가 역시 퇴각령, 줄행랑을 놓기 바쁜 ‘그’의 모습과 클로즈업되면서 현대 도시 소지식인들의 희극적인 모습에 다름 아니다. 이상 소설은 많은 상징적 장치나 코드를 적재적소에 효과적으로 리용함으로써 인물, 주제의 내연과 외연을 확충하고 있다. 따라서 은 어떤 의미에서 초단편소설적인 단순한 인물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전달하는 사회적 메시지는 대단히 풍부하다. 로신의 처럼 말이다. 이외에 은 서술인칭이나 시각에서 독특하다. 이 소설은 전반적으로 볼 때 전지적인 제3인칭 서술로 된듯하다. 그런데 작자는 구체적인 서술을 진행함에 있어서 제한적인 제1인칭 서술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우에 례문들은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객관적인 제3인칭과 주관적인 제1인칭이 유기적으로 녹아든 감을 준다. 해석학에서 말하는 시계视界융합, 즉 작가와 ‘그’의 시계융합을 가져오면서 독자들도 그 시계융합에 빠지게 하며 진실성을 획득한다. 또한 많은 부분에서 ‘그’의 감각, 느낌, 생각 등을 나타내게 되면서 심리색채가 진하다. 독자들로 하여금 ‘그’의 심리세계에 빠지게 한다. 결론적으로 전반 소설이 심리소설인 감을 준다.  은 현단계 중국 주류문단이나 한국문단에서 많이 보게 되는 전형적인 도시 서사로서 소지식인의 난감하고 힘든 회색적인 도시생활을 반영한 훌륭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적어도 우리 조선족문학의 제재 령역을 확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출처:2018 제5호
160    김정권의 시맛으로 좀 느끼해진 설명절 맛을 바꾸자 댓글:  조회:1010  추천:0  2019-07-11
김정권의 시맛으로 좀 느끼해진 설명절 맛을 바꾸자 우상렬   나는 김정권을 잘 모른다. 그가 소품을 잘 쓰는 소품가, 소설을 잘 쓰는 소설가 쯤으로 알고 있을 따름이다. 그의 소품이나 소설은 좀 능청스러운 유머나 해학이 있어 인상적이였다. 언젠가 그가 소설로 상을 탄듯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 그의 시 몇수를 접해보고 나는 그를 달리보게 되였다. 소품이면 소품, 소설이면 소설, 시면 시… 문학예술을 능수능란, 다재다능하게 다루는 모습이 부럽다.    아직 설명절 기분이 가시지 않아 술에 절어 흐리터분하고 고기붙이에 좀 느끼하겠는데 김정권의 시맛으로 머리맛과 입맛을 상쾌하게 좀 바꿔보는 것은 어떨지. 〈혼길魂道〉을 좀 보자. 죽음을 얘기하고 있는듯하여 좀 께름직하다. “내 누이”의 저승길 천당행을 기원하고 있지 않는가. “꽃잎의 향기를 묶은 하늘 빈소에 / 별들이 조용히 문상 온다.” 그것은 “불아기佛亚旗”에서 보다 싶이 불교적인 천당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죽음은 서러운 것. “달의 눈물 똘랑 떨어지”지 않던가. “불아기佛亚旗”도 결국은 “찢어진” 것. 누이도 이 세상에 미련을 느끼는듯. “한밤의 모가지에서 떨어져나온 / 저-어 접동새 울음 한아름”이 들려오지 않던가. 김소월의 ‘접동새’처럼. 이렇게 놓고 볼 때 이 시는 반전을 가져오는가. 결국 그래도 이승, 이 세상의 인간생활을 긍정한 현세중심 시로 볼 수 있다. 이 세상은 어디까지나 살아볼 만한 것.  〈노래가 울면〉은 바로 이 세상에 대한 아름다운 기원을 톺아내고 있다. 이 시는 ‘운다’는 비극적인 행위이미지로 관통되여있다. 바로 이런 행위이미지 주체들의 대비 속에서 시적 주제를 풀이해내고 있다. 여기서 호랑이, 사자, 사람, 달, 별, 강 이미지주체들과 노래, 꽃 이미지주체는 하나의 대비항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앞의 이미지주체들로 대변되는 이 세상 삼라만상 즉 모든 것이 울더라도, 바꾸어 말하면 비극적 상황에 잠기더라도 뒤의 이미지주체들로 대변되는 이 세상 가장 소중한 것, 즉 즐겁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희극적 상황의 영주를 기원하고 있다. 이를테면 극단적인 상황설정 속에 시적 자아의 인간세상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기원을 톺아내고 있는 것이다. 문학이 인도주의라 할 때 이 시는 바로 문학의 본령에 가닿았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 잎새〉도 마찬가지. 이 시는 인생의 마지막 로경의 지꿎은 생명력을 노래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늙어가기 마련이다. 늙다 보면 “눈도 다 곯아 별도 볼 수 없”게 되고 “이석이 없는 귀도 다 가”며 “피도 다 말라 입도 벌릴 수 없”게 된다. 여기에 가슴은 “세월에 짓이겨져 갈비살에 / 구멍이 숭숭 뚫린 그 흉벽으로” 남는다. 인생로경 본연의 실존적 비극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비극을 딛고 일어선다. 그것은 “황이 든 동공으로 무얼 보시려고 / 그처럼 마른 눈꺼풀을 떠시는 겁니까?”, “바람에 흩날리는 귀지만으로 / 누구의 말소리를 들으시려고 / 그처럼 가랑잎귀를 강구시는 겁니까?”, “해진 입술 하나로 무슨 말을 하시려고 / 그처럼 비인 하늘을 머금으시는 겁니까?”, “그 누구의 맥박을 품지 못해 / 그처럼 얇아진 가슴 접지를 못하십니까?”의 반복되는 반문법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한마디로 그것은 “아, 흙으로 가기 직전까지라도 / 한사코 가는 손목 풀지 않는 / 저 처연한 몸부림이여!”에 다름 아니다. 사실 그것은 “처연한 몸부림”만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 늙어감에 굴복하지 않는 비장함이다. 〈마지막 잎새〉에 깃든 상징적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실로 헤밍웨이의 명작 와 같은 경지를 창출하고 있다. 따라서 “아아, 그리움에 삭아버린 기발이여!”는 젊음, 생에 대한 “그리움”으로 안겨온다. 그래서 그것이 “삭아버렸”을지라도 영원히 휘날릴 하나의 “기발”임에 틀림없다. 이상 놓고 볼 때 이 시는 한편의 인생 찬미시가 되기에 손색 없다. 현재 로인사회가 거론되고 있는 마당에 이 시는 한번 읊어볼 만한 시.    인간세상은 이래저래 살아볼 만한 것. 그럴진대 그의 시 〈석류〉에서는 어쩔 수 없이 당하는 폭압일지라도 그 불행을 묵묵히 꿋꿋이 삭이며 다른 사람에게 살맛을 돋구어주자는 삶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런 메시지는 “오직 안으로만 닫아맨 상처”라는 시각적 이미지와 “내 입속에서 새콤히 젖어라”는 미각적 이미지들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 승화되면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그래 인간세상에 어찌 아름다운 사랑이 없을소냐. 〈나팔꽃 순정〉을 보자. 이 시는 보았기에 벗었지, 벗었길래 보았지의 사랑의 짝자꿍 경지를 노래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순진무구한 인간본연의 자연스러운 사랑모습이여라! 어쩌면 현대인간으로서의 우리가 언녕 잃어버린 그런 노스텔지아적인 순정사랑이여라! 그의 시는 인간세상을 초탈하여 우주공간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만큼 시적 령역이 넓다는 말이 되겠다. 〈시간의 광란〉을 보자. 이 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랑과 비극의 파노라마를 보고 젊음과 늙음의 변증법적 관계를 본다. 사랑이면 사랑이고 젊음이면 젊음이지, 여기에 비극과 늙음이 또한 생겨나고 따라붙으니 “시간의 광란”이든지 “광란의 시간”이라고 할 만도 하다. 그런 만큼 “열광하는가?”, “누구인가”로 의문을 가져보기도 하고 “누구의 손에 뿌리워져 / 저렇게도 식을 줄 모르고”, “그렇다면 저 태양을 동여 / 휘두르는 자”로 재미나고도 아름다운 상상을 가져봄직도 하다. 이 시는 이런 천고의 천진란만한 의문과 상상을 첫시작과 마지막에 조응시켜 강조함으로써 철리적인 우주시로 승화된다. 어쩌면 우주를 다 알기에는 영원히 역부족인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 이런 철리시는 그 나름 매력이 있다. 또한 이런 철리시는 맑스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 인류의 아동시기 천진란만한 상상을 보여주어 우리에게 영원한 매력을 주지 않는가. 이 시는 역시 천고의 의문과 상상을 거침없이 날린 굴원의 이란 시와 비슷한 경지를 창출하고 있다.   그의 시는 지극히 개인적인 서정을 토로하는 마당에도 우리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구멍난 질경이 잎으로 하늘을 보면…〉을 보자. 이 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고 있다. 그 아버지는 베옷을 입고 꼴망태를 메고 쪽지게를 진 촌부였다. 그런데 그것은 “땀에 삭은 베옷냄새 물씬”하고 “제비둥지 같은 살주름이 뭉클”하며 “휘여진 무릎이 야위게 걸어오”는 초라한 비극적인 이미지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시적 자아는 가슴이 아프다. 아버지의 “구멍이 숭숭 뚫”린 “물 낡은 뼈”는 이것의 보다 직실한 보기에 다름 아니다. 다음 순간 “저 뼈를 구멍낸 자는 누구던가?”로 시적 전환을 이루면서 시적 자아의 뼈저린 통한이 클라이막스를 이룬다. 시적 자아는 스스로를 “한마리 철없는 벌레”로 단죄한다. 왜서? 그것은 “내가 파먹은” 구멍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구멍으로 바람이 불어와” 가슴이 시린 것이다. 이 시는 이런 통한을 통하여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고양시키고 있다. 그래 이 시는 내리 사랑이 있고 올리 사랑이 없고 이제 모시자 하나 모실 어시가 가고 없다고 할 때 우리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는가. 자식된 사람으로서 부모에 대한 이런 느낌은 영원히 빚으로 남는 것이다.   그의 시는 예술적인 면에서도 씹을 만한 감칠맛이 난다. 〈구멍난 질경이 잎으로 하늘을 보면…〉을 보자. 이 시는 시적 이미지 및 그 조합이 뛰여나다. 일단 질경이, 하늘, 베옷, 쑥국새, 제비둥지, 꼴망태, 쪽지게, 벌레, 쓰르라미, 저대라는 객관 상관물을 동원한 이미지 및 그 조합으로 전통적인 비극적 농촌서정을 잘 톺아내고 있다. 여기서 질경이, 하늘, 베옷, 쑥국새, 제비둥지, 꼴망태, 쪽지게는 아버지와 클로즈업되면서 아버지의 상징기호로 된다. 그리고 벌레, 쓰르라미, 저대 이미지는 시적 자아와 클로즈업되면서 시적 자아의 내면세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 이 시는 우의 세 련에서 “구멍난 질경이 잎으로 하늘을 보면”을 첫구로 반복하면서 전통적인 비흥比兴수법에서 흥, 즉 사실적인 이미지로 흥을 돋구고 분위기를 잡았다면 아래 세 련에서는 흥을 받아물고 분위기에 잦아들면서 그것을 고양시키는 수법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서사와 서정의 유기적인 결합을 잘 이루고 있다. 이외에 구체적 이미지 및 그 조합도 참신하고 인상적이다. 이를테면 “황혼 한아름 짊어진 쪽지게”로 늦게 귀가하는 아버지, “야위게 걸어온다”와 “물 낡은 뼈”로 객관의 주관화, 즉 가엾은 아버지를 리얼하게 잘 이미지화했다면 “쓰르라미 노래 해금줄에 스쳐온다”와 “마디마디 구멍 뚫려 바람에 시린 저대”로 주관의 객관화 즉 시적 자아의 주관적인 감수를 리얼하게 잘 이미지화했다. 특히 “시린 저대” 이미지는 새로운 발견이 있는 독특함을 기하고 있다. 이외에 〈나팔꽃 순정〉에서는 아무 관계도 없는 객관적인 나팔꽃과 별을 엉뚱하게 련결시킨 데서 시적인 상상력이 돋보인다. 그리고 소녀를 나팔꽃으로 대유하되 본문에서는 나팔꽃 소리 하나 안한 것이 특색이면 특색이다 하겠고 마지막에 “별이 쑥스러운듯 얼굴 돌린다”로 파제破题, 즉 해답을 줌으로써 수수께끼를 푸는듯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석류〉에서는 적극적인 삶의 메시지라는 원 관념을 보조관념인 ‘석류’를 끌어들여 효과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시적 상상력 또한 일품인데 례컨대 벌겋게 익은 석류를 “천둥의 주먹에 맞아 / 벌겋게 터진 입술”로 ‘낯설게’ 이미지화하고 계속해서 석류 속 모습을 “그 속엔 피 묻어 / 아픈 이발이 오구구”로 참신하고도 재미나게 이미지화하고 있다.  물론 김정권의 시는 일부 껄끄러운 점을 안고 있기도 하다. 례컨대 이미지 조합이 좀 어색하고 난삽한 경우가 있다. 〈혼길魂道〉에서 “바람의 노래 실은 달구지”라든가, “찢어진 불아기佛亚旗는 노을”이라든가, “젖은 락엽 같은 / 내 누이의 허벅지”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이미지를 조합한 감을 준다. 〈구멍난 질경이 잎으로 하늘을 보면…〉에서 “쓰르라미 노래 해금줄에 스쳐온다”는 좀 당돌한 감을 주고 ‘꽃잎의 향기’는 ‘꽃의 향기’로 하는 것이 론리적이고 자연스럽다. 〈석류〉에서 “빨간 울음” 같은 통각적 이미지는 앞뒤 문맥으로 볼 때 론리적으로 잘 맞지 않는 감을 준다. 그리고 “소녀의 성기”(〈나팔꽃 순정〉) 같은 원색적이고 딱딱한 표현은 좀 삼가하는 것이 좋을듯하다. 이외에 〈시간의 광란〉은 좀 의론적인 산문화로 흐르고 만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 느끼해진 설명절 입맛을 좀 바꿨는겨요? 김정권선생한테 감사할지어! 김정권선생, 다음 설명절 때 또 봅시다. 아니, 요 근간에 또 봅시다.  
159    [작품평] 아,그 향긋함... 댓글:  조회:1070  추천:0  2019-07-09
아, 그 향긋함… -주향숙의 시와 수필 우상렬   주향숙은 우리 문단의 재녀다. 시도 쓰고 수필도 쓰고… 다재다능하다. 이번에 시 11수에 수필 4편을 선보여 눈이 즐겁다. 눈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향긋함 속에 잠긴다.   주향숙의 시를 보자.  그녀의 이번 시는 일단 농촌 관련 시들이 돋보인다.  농촌 부모님을 노래한 시들을 보자.  은 바로 ‘당신’으로 대변되는 부모님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부모님은 너무도 초라하다. 세상 그 누구도 알아주는 이 없다. “세상은 당신의 얼굴을 모르”지 않은가, 는 한평생 “자꾸만 낮게 엎드려” 땅만 바라보고 농사만 지어온 풀뿌리인생들이다. 그들은 주어진 운명에 순종하며 “순하디 순하”게 살아온 인생들이다.  도 부모님의 초라한 농부 일생을 노래하고 있다. 그것은 “언제 한번 / 화려한 꽃들을 바라본다거나 /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꽃처럼 향기로운 세상 앞”에 “언제나 부끄러웠고 편안하지 못한” 비참한 일생이다. 이에 시적 자아는 자식된 도리로 더없는 안스러움을 느낀다. 그래서 “꽃들의 향기가 / 서서히 부서져가는 시간 속에 진동했다”고 한다. 이것은 한평생 농사짓다가 세상을 뜬 부모님에 대한 다함없는 애도와 추모의 표현이리라!  에서도 부모님들은 농사일을 운명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벽을 만들어” 자신을 가두었다. 농사일은 “지친 시간의 무게”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그것은 “헛일처럼 슬프고 / 존재하지 않는듯 허무하다”. 별로 남은 것이 없고 허무맹랑하기만 하다. 농부 일생에 대한 회의이기도 하여라!  주향숙의 이런 농부시들은 물론 자기의 부모님들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리 부모님들의 노래가 되지 않던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부모님들은 바로 그렇게 살았던 것이다. 그녀의 다른 농촌 관련 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에 나오는 엄마가 우리 엄마가 아니고 우리 농가집 생활이 아니란 말인가. 이 시는 지난 세월 땡전 한잎 없이 빠듯한 우리네 농가집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얼음과자 하나 살 돈조차도 없어 우리 엄마들이 ‘쌀을 퍼담고 나가’ 바꿔먹던 시절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얼음과자를 바꾸자 소나기가 쏟아져 허무맹랑할 때도 있었다. 자연도 가난한 농가집 살림을 놀리는듯하다. 주향숙은 신사숙녀의 숙녀에 도시녀의 깔끔함과 인테리의 지적인 멋이 풍기지만 그녀는 뛸 데 없는 농부의 딸이다. 그녀의 마음이 농촌에 가있고 농민의 희로애락과 같이 뛰놀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떤 가을’이 그녀를 속상하게 했다면 ‘가을’은 또한 그녀를 얼마나 기쁘게 했던가. , 어떤 가을의 비극이 연출된다. 그것은 주책할 수 없는 무정한 자연재해가 “희미한 희망조차 뭉텅뭉텅 베여내”고 있다. 그래서 헛되이 땀방울만 흘린 것이다. 따라서 쌀 한톨에 목숨 건 농부인생에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비굴하”고 가련하지만. 자연의 조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농사군의 비애가 흘러나온다. ,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고 즐거운 만풍년의 전원풍경이 펼쳐진다. “이삭 패는 / 소리가 유정하”고 “넉넉하게 넘실대는 / 금빛 들판이 향기롭”거늘 만풍년! 여기에 “당신의 이마를 만지는 / 밝은 해살이 눈부시다”. 천인합일의 경지! “한켠에서 풀을 뜯던 소가 / 아무도 모르게 씩 웃는다”. 미물도 유정타-“그 어데라 없이” “뭉클”한 이 가을이 정답다.   다음 주향숙의 시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시를 보자.  , 사랑하는 님과의 리별의 정한을 노래하고 있다. 그것은 “기억들을 핥으며 눈물에 젖”고 “가슴 저리”는 비극적인 기나긴 그리움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입 맞출 수 있을가”, “저 바다에서 껴안을 수 있을가”로 상상을 날려보기도 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내 의지와는 상관 없다. “내 생은 몽유병 환자처럼 / 먼 기다림의 그늘 속으로 홀로 걸어들어가”지 않던가. , 잃어버린 사랑에 대해 은밀히 그리워하는 정을 노래하고 있다. 함께 밥을 먹었던 아름다운 기억이 그리움의 모멘트가 된다. 이 공식共食은 하나됨의 원형적 상징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너는 오늘 무엇을 먹을가”, “이제 다시 마주보며 / 밥을 먹을 수 있을가”로 은밀히 추측하고 기원해본다. 그런데 가망이 없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고 식욕마저 없어진다. “내가 밥을 먹는 것이 / 기적이라 불리여져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결론적으로 ‘나’는 “밥을 날마다 먹을”지라도 “은밀히 아파하”지 않을 수 없다. 우의 두 사랑시가 리별이나 잃어버린 사랑의 비애를 읊었다면 는 좀 이색적인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 바로 사랑하는 님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려는 마조히즘적인 녀심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시적 자아는 어쩐지 아프다. 그러나 그 아픔을 사랑하는 님에게 “스며들”게 할 수 없다. 그래서 “내 아픔들이 / 내 가슴 깊이로 뿌리를 내리”게 한다. “그리고 깊은 슬픔은 / 짐짓 모르는 척” “너의 앞에서 / 나는 꽃으로 활짝 피여났으면 좋겠다”고 기원한다. 결국 “알록달록한 꽃잎으로 물들”어 “네게 즐거움이 되고 싶”으며 “너의 곁에서 / 너랑 더불어 웃고 싶”은 것이다. 전형적인 마조히즘적인 사랑. 그것은 어쩌면 사랑의 최고경지! 주향숙의 시에는 트라우마-상처의 문제도 등장한다. 그것은 외부로부터 입은 그 어떤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다. 인간은 살다 보면 이런 상처에 로출되기가 쉽다. 은 지꿎은 상처-슬픈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기억은 “돌이 되”고 “부서져버려” “숨소리도 들리지 않고 / 꼼짝하지도 않”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기억이 터지고 / 푸르게 푸르게 번지는 슬픔”을 주책할 수 없게 된다. 바로 “오랜 기억은 스스로 불타 / 그 푸른 연기로 시간을 덮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처의 뒤죽박죽이고 원래 “몸속에 그토록 뜨거운 것이 / 고여있은 줄 이제 알았다”. 이것은 무의식적 상태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시에서 제목 은 “푸르게 푸르게 번지는 슬픔”, “그 푸른 연기”와 련결이 되면서 하나의 력설이 된다. 이 시는 정신분석학적 원리를 기저에 깔고 있다. 인간은 심한 상처를 입어 어쩔 수 없게 되면 심리방어기제를 동원하여 그 상처를 무의식 속에 깊숙이 박아두며 잊어버린다. 그런데 그 상처는 자기도 모르게 수시로 튀여나와 당사자를 괴롭힌다. 인간은 상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럴진대 상처에 대한 평상심도 가질 만한 법. 도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 알게 모르게 입게 되는 상처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상처는 “맨살 / 맨가슴 / 맨정신”, “다시 자라”가 상징하듯이 심하고 억울하며 덧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아프더라도 참고 견디노라면 그것은 결국 축복으로 돌아온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어 기껍다. 그래 “피냄새 나는 꽃들”이라도 평화의 꽃이 아니더냐. 전반적으로 볼 때 주향숙의 시는 밝다기보다 어두운 쪽이 더 짙은 편이다. 그렇다 하여 비관실망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성숙된 녀인의 아련한 농촌 노스텔지어이고 은밀한 사랑의 멜로디이며 아픈 상처의 치유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 문학의 영원한 주제들이다. 그래서 그 향긋함도 영원한 것이다.  그녀의 시는 순연한 사실주의로 흘렀다. 상징으로 대변되는 현대시와는 다르다. 그녀의 시는 아무리 사실주의적이라 하지만 아직 그리 여물지 못한 작품들이 있다. 너무 직설적이고 빤한 게 문제다. 따라서 의 경우 은밀히 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시의 내재적 론리나 맥락도 긴밀하지 못하거나 어색한 작품들이 있다. 의 경우 얼음과자 부분과 소나기 부분의 련결은 그 한 본보기가 되겠다.    주향숙의 수필을 보자. 그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사람의 숲에서 사람이 그립다고. 는 바로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겉모양을 보면 “내가 알고 있고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어진다”. “내가 속한 단체방만 해도 40여개가 된다는 게 좀은 놀라울” 정도로 요란하다. 그런데 “곁에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냥 느낌이 그렇다”. 혼자인 느낌만 갈마든다는 것이다. 왜서? “사람마다 장사군이 되여있다”. 그래서 리해에 따른 리합집산의 존재들이다. “몇십명이 모인 그룹에서 일여덟명이 다시 그룹을 만들고 그 속의 서너명이 다시 그룹을 만들기를 하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내가 어딘가에 간신히 속해있다는 것에 안도했지만 다시 또 배제되여있을지도 모른다는 서글픈 감상에 젖기도 했고 야릇한 배신감에 가슴이 긁히기도 했다”.  사실 인간은 진정을 추구하고 지기를 구한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녀인은 자기를 예뻐해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한다士为知己者而死,女为悦己者而容”는 말이 생기고 “이 한 생에 지기 하나만 얻으면 만족이여라人生一世得一知己者足也” 하는 말도 생긴 줄로 안다. 이 수필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온밤에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누군가의 시구처럼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 우리는 누군가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 그래서 자꾸 새로이 ‘우리’를 만들어가지만 갈증은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인간은 “늘 혼자로 남을 수 밖에 없었고 그 허전함을 견디려고 또 그룹을 만들 수 밖에 없는지 모른다”. “그 속에는 은밀한 관계들이 배타적인 성격을 띠며 존재해있다. 서로를 배제하는 일이 우리의 존재의 일부가 되여버렸다”. “그러나 한편 내가 배제한 인간에 대한 혹은 나를 배제한 인간에 대한 그리움을 앓는다는 것은 슬픔이면서 다행한 일이다. 서로의 언저리에 가닿기 위해 안깐힘을 쓰며 시간을 더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이렇게 모순적인 존재이면서 결국 “배제하고 배제당하여 자신 하나로 졸아든 세상 속에서 나는 나에게 문자를 보내”는 마스트베이션적인 가련한 존재가 되고 만다.  이 수필은 어쩌면 유럽 현대철학을 개척한 쇼펜하우어의 유명한 고슴도치이야기를 풀이하고 있는듯도 하다.  이를테면 추운 겨울 두마리 고슴도치가 있었는데 서로 추우니 자기도 모르게 가까이 가게 되였다. 그런데 가까이 가면 갈수록 서로의 가시에 찔리우게 되였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서로 떨어지게 되였다. 그런데 또 춥다. 그래서 또 가까이 간다. 그런데 또 찔리운다. 그래서 또 떨어진다… 우리 현대인간들의 비극을 이렇게 형상적으로 풀이한 글이 또 있단 말인가.  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비극을 수필적으로 풀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수필은 우리 현대인간들의 비극적 실존을 풀이하는 데만 그친 것이 아니고 하모니의 희극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마지막에 “한 육체는 다른 한 육체로 체온이 흘러야 한다. 한 가슴은 다른 한 가슴에로 사랑이 흘러야 한다. 한 령혼은 다른 한 령혼에로 갈망이 흘러야 한다. 그렇게 지닌 모든 것들이 서로에게로 흘러서 외로움을 끝내야 한다. 그 흐름이 멈추지 말아야 우리는 결국 살아있는 생명체인 것이다.”로 결국 우리 인간 사이 가장 바람직하면서도 중요한 소통과 화합의 문제를 이끌어내고 있다. 좀 공허하기는 하지만. 이 수필은 제목에서 뿐만 아니라 “나는 지금 혼자다. 이 세상으로부터 떨어져나온듯이 혼자가 되였다.”에서 보다 싶이 직접 주제로 돌입하는 방식开门见山을 취했을 뿐만 아니라 거침없이 ‘외로’운 비극적인 반反주제를 종횡무진으로 풀어가 강한 충격파를 던져주고 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가서 반反주제에 반해 우리 인간 사이 소통과 화합의 긍정적인 정正주제를 토로하고 있어 강한 인상을 주며 설복력을 기하고 있다.   는 우리 인간 사이 진정한 사랑의 교감을 호소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서로 사랑을 주는 존재이고 사랑받는 존재로서 진정어린 사랑이 흘러넘치는 세상을 만들자는 데 있다. ‘나’의 깨달음을 보자. “사랑은 가슴을 열게 하고 가슴은 사랑을 향해 열리는 것이였다.” 그런데 “사랑을 향해 가슴을 여는 일도 또 누군가를 향해 사랑을 주는 일도 그것이 서로 빗나가지 않고 고스란히 전해져서 온전히 나누는 일은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서로 성실하게 주고받아들이면 되는 일”로서 그것은 간단하기도 하다. 한마디로 그것은 사랑주의다. 즉 “사랑한다는 것은 산다는 것”이고 “사랑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으며 결국 살아가는 일 자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랑이야말로 “하루를 덥힐”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고 복되게 하는 감로수인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는 늘 상대를 향해 가슴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다가서는 누군가를 노려보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심각하게 사고한다. 그리고 어떤 선입견을 내세우며 딱딱한 벽 뒤로 몸을 피하거나 멀찌감치 도망을 간다. 가끔은 망설이느라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고 의심하고 배척하기도 한다. 사랑을 받아들일 줄 모르며 그런 준비가 되여있지 않다. 불의와 불신임의 세상이 그렇게 만들어준”다. 여기에 “상대를 탓하고 미워하기 전에 우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로 우리 스스로의 반성의 자세를 촉구한다. 이를테면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웠는지 불편하지 않고 편안하였는지 차겁지 않고 따뜻하였는지 불안하지 않고 확고하였는지 거짓되지 않고 진실되였는지…” 하고. 이렇게 할 때 우리 살아가는 세상은 사랑이 충만한 현실적인 인간의 락원으로 된다는 것이다.  이 수필은 ‘이름 모를 풀꽃’과 ‘나’ 사이 사랑의 인연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인간과 인간 사이 사랑의 하모니를 풀이해내고 있다. 이 수필은 “사랑을 향해 가슴을 열 줄 알고 고맙게 받아주고 사랑받는다는 행복에 몰입할 줄 아는 령혼을 가진 풀꽃”, “늘 그 자리에서 온힘을 다해 따뜻한 사랑으로 다가서는 태양” 등 자연과 교감하며 거기서 한수 배우는 경지를 창출하고 있다. 은 약속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여기에는 본인에 얽힌 약속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약속론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일상생활적인 약속, 세속적인 약속, 영원한 약속, 일시적인 약속, 리기적인 약속, 리타적인 약속, 거창한 약속, 시시한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의 약과 독을 비롯하여 속속들이 론의된다. 그러다가 결국 마지막에 가장 바람직한 ‘약속’ 하나를 건져낸다. “언제 어디서든 잘 있는다고 약속할게”. 그래 이것이야말로 “어쩌면 서로를 위해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지 않겠는가.  이 수필은 역시 开门见山식으로 첫 시작에 약속에 관한 10개의 물음을 라렬하며 분위기를 조성하고 독자들을 몰입시킨 것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본문에서 약속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아기자기, 조곤조곤 풀어내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 맺게 되는 약속들을 기저로 하고 있어 설득력을 확보하고 있다. 는 뭐니뭐니 해도 쌀이 막대民以食为天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기서 “밥을 먹어야 하는 이 세속성”을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고 “그 본능은 누가 뭐래도 위대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자 거룩한 일이다. 삶의 가치 만큼”이라고 력설한다. 따라서 아무리 힘든 때라도 “밥을 먹고 있으면 서서히 마음이 편안해진다”. “밥을 먹고 나면 다 이겨낸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처럼 또 다른 정신적인 무엇을 추구하”는 존재다. “꿈이나 사랑이나 행복과 같은 것들이나 예술이나 과학이나 철학과 같은 것들도 모두 밥을 먹고 존재해왔”던 것이다. 물질 제1, 정신 제2의 유물변증법에 가닿고 있다. 그리고 이 수필은 밥 먹는 행위의 문화적 의미를 되살리고 있다. 그것은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그렇게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끼리 나누는 일”인 것에 다름 아니다. 는 제목도 소박하다 못해 그저 그렇고 쌀이 막대라는 론의거리도 식상해지기 쉬운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적인 론의와 몸에 와닿는 진정성으로 승부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주향숙의 수필은 영국 베이컨의 ‘지식은 곧 힘이다’식의 고전적 중重수필에 가깝다. 그러니 그것은 신변잡사를 취급한 수기식 수필이거나 진한 감정을 토로한 서정수필이 아니다. 따라서 그녀의 수필은 일단 제재 선택이 무겁다. 이를테면 현대인간들의 비극적 인간관계(),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사랑주의(), 인간에게 있어서 약속의 의미(), 인간에서 있어서 먹는 것의 중요함()이 그렇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이 살아감에 있어서 이런 것을 비켜갈 수 있는가 말이다. 이런 것들은 우리 삶과 더불어 같이 가는 영원한 과제인 것이다. 우리 인간의 실존문제이기도 하다. 이로부터 그녀의 수필은 깊은 삶의 도리와 철리를 깨우치며 우리를 심사숙고하게 만든다. 따라서 그녀의 수필은 예술적인 면에 있어서 자연히 의론적이고 사변적으로 흐른다. 수필의 내적인 론리가 돋보인다. 이런 중수필은 지식량이나 자기 나름 대로의 독특한 관점 및 론리적 전개력 등이 없으면 쓰기 바쁜 문체이다. 그러나 그녀의 수필은 이 모든 것을 잘 갈무리하고 있다. 이런 수필들을 감상하면서 변신을 위한 주향숙의 모지름이 잘 안겨왔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녀성적인 섬세함과 잔정이 넘치는 서정수필을 많이 구사한 줄로 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성적인 거창함과 의론, 사변 및 론리를 장기로 하는 중수필을 구사하고 있다. 그녀의 다재다능함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하튼 변신을 추구하는 녀인은 멋있다. 아니, 작가는 멋있다. 그녀의 화려한 변신은 계속될 줄로 안다. 물론 주향숙의 수필에는 같은 새로운 발견이 부족하고 에서처럼 좀 자질구레한 감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중수필로서의 격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작이 절반이라고 이미 좋은 시작을 하고 있음에라 지극히 희망적이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앞날은 창대하리라!     주향숙의 시와 수필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 잠입가경으로 시와 수필의 꽃봉오리를 피우리라. 시와 수필 쓰다 보면 언감생심 다른 장르, 아예 내친 김에 소설까지다. 앞날을 기대해봄직하다. 그대는 젊었거늘! 그대는 붉은 정열로 향긋하고 성숙되였거늘!
158    [평론]우리 문학의 새 지평 댓글:  조회:938  추천:0  2019-07-08
우리 문학의 새 지평 우상렬     또 새로운 한해다. 묵은 한해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한해를 전망해볼 시점이다. 우리 문학도 례외가 아닌 줄로 안다. 그럼 아래에 우리 문학을 되돌아보고 새 지평을 전망해보도록 하자. 일단 우리 문학의 개념 및 범주를 좀 넓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문학의 제1요소는 언어. 위대한 고리끼가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 하여 이것이 절대 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절대 진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거늘! 우리 문학의 제1요소도 언어, 그것도 조선어. 우리는 여기에 너무 매여왔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조선어로 창작하지 않은 작품은 모두 조선족 문학 개념 및 범주에서 배제해왔다. 여기에 우리의 맹점이 있는 줄로 안다. 고전적인 민족 문학의 정의는 본 민족의 삶의 터전에서 출생한 본 민족의 작가가 본 민족의 언어로 본 민족의 생활을 반영하고 본 민족의 삶의 터전에서 돌아간 작가의 작품을 말한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본 민족’ 것이 되여야 한다. 그래서 속인주의요, 속지주의요 하는 말이 나오고 언어문제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한 민족의 문학이 이런 요소들을 동시적으로 만족을 줄 때 그것은 가장 리상적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현실은 항상 리상과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디아스포라 문학이 더욱 그렇다. 그것은 소수자로서 항상 동화에 로출되여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발적인 혹은 피동적인 동화는 알게 모르게 진행되여왔다. 문학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조선족 문학의 경우 우리는 일찍 그런 리상적인 경지를 에누리없이 추구하고 지켜왔다. 중국공산당의 훌륭한 민족정책은 이것을 담보해주었다. 그중에 어느 하나라도 결격사항이 되면 그것은 민족 문학이 아니다. 속인주의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언어 하나만 놓고 보아도 그렇다. 조선족의 경우, 우리의 1세대, 2세대들은 중국어를 잘 못했다. 잘 못한 만큼 조선어에서 민족 정체성을 확실하게 느꼈다. 그 어디에 가서든지 조선어 한마디만 들어도 더없는 친밀감과 반가움을 느끼며 민족 동질성을 확인한다. 그러니 조선어를 떠나 조선족 문학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조선어를 포기한 조선족 문학이야말로 천방야화에 다름 아니다. 리근전을 좀 보자. 그의 집은 일찍 조선에서 길림지구로 이주해왔고 그의 언어생활을 보면 한어에 능했다. 그는 일찍 중국공산당을 따라 혁명했고 한어판 길림신문사에서 사업했다. 그는 주로 문필사업에 종사하면서 한어로 문학작품을 창작하게 되였다. 이로부터 그에게는 자연히 하나의 콤플렉스가 생긴 줄로 안다. 바로 조선어 창작 콤플렉스 말이다. 그는 조선족 작가로 남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언어가 하나의 큰 걸림돌이 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1960년대 초반 한어로 창작한 장편소설 《호랑이벼랑》을 조선어로 번역시켜 출판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가 연변으로 전근하고 연변작가협회 주석이 된 후에는 피타는 노력을 하여 일부 조선어 창작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어 창작 콤플렉스는 가셔지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1980년대 초반 조선어 장편소설 《고난의 년대》가 역시 번역을 통하여 출판된 데서도 알 수 있다. 보다 싶이 우리의 제1세대, 제2세대 작가들의 조선어 창작 집착은 대단하다. 조선어는 조선족 문학의 제1요소, 제1표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개방 후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개혁개방 전에는 비조선어 창작의 ‘조선족 문학’이 전혀 존재할 자리가 없었다면 그 후는 상황이 좀 달라졌다. 일단 조선족의 한어 창작이 충격적이였다. 1980년대 초반부터 조선족 한어 창작이 본격적으로 선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단 연변대학 한어학과와 중문학과에 다니는 조선족 대학생들이 한어로 창작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표인물이 阿南(본명은 정병남)이 되겠다. 그는 시, 소설을 당시 유명한 《작가作家》, 《민족문학民族文学》, 《당대시가当代诗歌》, 《시가보诗歌报》, 《천지天池》 등 신문 잡지 간행물에 발표하였다. 특히 그의 시는 《当代大学生诗歌选萃》, 《中国第三代青年诗人探索诗选》 등 당시 대학생이나 청년 시인들의 최고 시선집에 수록되여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적어도 연변대학에서 대학생 미녀들이 우러러보는 계관시인이 되였던 것이다. 여기에 1980년대 초 연변대학에서는 ‘조선어창작반’ 하나와 ‘한어창작반’ 하나를 꾸렸다. 물론 여기서 ‘한어창작반’은 조선족 한어 창작 진작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막연히 연변지구 한어 창작 발전을 위한 것이였다. 그런데 여기서 역시 조선족 한어 창작의 꽃이 피여났다. 천화는 그 보기가 되겠다. 그녀는 미인인 데다가 한어를 한족들보다 더 잘한다. 그는 당시 연변대학 학교급 명사회였다. 물론 한어로 사회를 했다. 조선어도 그만하면 잘했다. 그런데 그는 한어로 소설을 창작했다. 수준급이다. 그래서 당시 인기만점리에 달렸다. 특히 뭇조선족남자대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였다. 그러던 그녀가 졸업을 해서 향항 사업가에게 시집을 가서 뭇조선족 남자대학생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그녀가 《고려녀인高丽女人》이라는 한어소설집을 출판하여 새로운 꿈속의 련인梦中情人이 되였다. 1980년대 말에 들어서 또 한명의 조선족 한어창작의 대가 최건崔健이 나타났다. 그는 자작 가사, 곡으로 전국을 뒤흔들어놓았다. 그의 , , , 등 일련의 노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행했던 좌적 정치 하의 맹목적인 개인숭배 및 개혁개방 후 무력감, 허전함, 초조감 같은 것을 통기타 록 형식으로 타매하고 발산하여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로부터 중국 가요계에서 한동안 ‘최건시대’를 장식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다가 신세기에 들어서서는 중국 10대 70세대 미녀작가의 한 사람으로 불리우는 김인순이 등장하여 단편소설 , 장편소설 《춘향春香》 등 작품으로 제10차 중국소수민족 최고 문학상인 ‘준마상’을 타기도 했다. 역시 70세대 작가인 전용선이 자기의 장편소설 《눈우의 승냥이雪狼》를 개편하여 찍은 텔레비죤 련속극 《벼랑 끝에서悬崖》는 중국에서 텔레비죤 련속극 《잠복潜伏》의 뒤를 이어 두번째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외에도 백산白山TV방속국에 출근하면서 한어로 수필과 소설을 창작하는 김창국, 돈화에서 개인사업을 하며 한어시가 창작을 하고 ‘연변신시학회’ 회장으로 활약하는 안병국, 영구에서 기업가로 활약하는 정용호의 상업제재 장편소설 《히든카드》, 《무소유》, 성도에서 사업가로 활약하며 한어시집을 네댓권 출판해낸 임아정 등 유수의 조선족 한어 창작 작가들이 있다. 한마디로 조선족 한어 창작은 개혁개방 후 끊임없이, 어쩌면 나날이 돋보이면서 발전되여왔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들 한어창작을 ‘본 민족의 언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조선족 문학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중국 조선족은 현실적으로 조선어와 한어의 이중언어 사용자고 전통적으로 한문 창작과 조선문 창작이라는 이중문학 창작을 해온 사정을 감안할 때 한어 창작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물론 한 작가가 조선어와 한어 이중언어로 창작을 한다면 가장 리상적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조선족 한어 창작자들을 보면 단지 그들에게 있어서 ‘모어’인 한어로만 창작을 하고 있다. 사실 문학창작은 모어 수준이 되여야 할 수 있는 만큼 이것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이런 조선족 한어 창작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이 조선족 문학의 개념 및 범주에 들어감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의 고전적인 민족문학의 정의를 놓고 볼 때 충분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지만 필요조건은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속인주의, 속지주의, 작품내용 등 여러 필요조건을 따질 수 있겠지만 속인주의, 즉 그들의 조선족이라는 민족성분 하나로 조선족 작가로 보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 중국 국내의 경우를 보면 다른 소수민족들은 대개 이 속인주의 하나로 작가의 민족성분을 따지고 있다. 례컨대 몽골족의 마라친부玛拉辛夫는 《망망한 초원茫茫的草原(상,하)》, 장승지张承志는 《심령사心灵史》, 장족 작가 짜시다와扎西达娃는 《서장: 은밀한 세월西藏:隐秘的岁月》, 《서장: 고무줄에 묶은 혼西藏:系在皮扣上的魂》, 《그 후줄근한 여름날들夏天酸溜溜的日子》, 이족의 아래阿莱는 《모든 것이 끝났다尘埃落定》 등 장편을 한어로 창작하여 주류문단의 긍정을 받고 본 민족의 대표작가로 자리매김되였다. 여기서도 알 수 있다 싶이 이런 한어 창작은 우리 소수민족 문학이 주류 문학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첩경의 하나가 되겠다. 현재 우리 조선족 문학은 조선어 창작이 절대다수를 이루는 만큼 연변작가협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독수리전략’ 즉 조선어 창작과 한어번역을 동시에 추진하는 전략도 바람직하지만 여기에 문제점이 없는 것이 아니다. 번역 속도가 창작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번역질이 원작보다 못한 것 등은 그 보기가 되겠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우리 조선족 작가들의 경우 한 작가가 조선어와 한어 이중언어로 창작하는 것이 최선의 경지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그 차선의 경지를 선택하자는 것이다. 즉 조선어 창작을 할 작가들은 계속 그대로 창작하도록 하는 대신 한어 창작을 하는 작가들을 조선족 작가로 긍정하고 포옹하자는 것이다. 사실 조선족의 이런 한어 창작은 주류문단의 충분한 긍정을 받고 있다. 최건을 놓고 보아도 중국 당대문학 연구의 권위자인 진사화陈思和 교수의 말을 빌리면 개혁개방 후 1980년대 말 중국인의 사상정서를 가장 화끈하게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래 이런 훌륭한 작품들을 우리가 어떻게 밀어버릴 수 있나 말이다. 작가와 동족인 우리 스스로가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앞으로 조선족 한어 창작은 점점 더 상승일로를 달릴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은 또한 어쩌면 우리 조선족 문학이 조선, 한국으로 대변되는 배달반도문학 및 기타 해외 배달민족의 문학창작과 다른 특징의 하나가 되겠다. 따라서 김호웅, 조성일, 김관웅 작으로 된 《중국조선족문학통사》(연변인민출판사, 2015.)에서 최초로 최건, 김인순을 취급하고 제1차 ‘단군문학상’ 선정에서 한어창작부문을 설치하여 전용선을 뽑은 것은 하나의 좋은 스타트라고 말할 수 있다.  배달반도를 제외한 다른 나라 배달민족의 경우를 놓고 볼 때 그들은 일단 훌륭한 민족정책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사회주의국가였던 쏘련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주 초기 우리 말 창작 명맥을 겨우 유지해오다가 점점 사라지고 전격 해당 지역 주류언어로 창작을 진행하는 데로 나아갔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제1세대 김달수, 김사량이 우리말로 창작을 진행했다면 제3세대, 제4세대로 나아가면서 점차 일본어창작이 주류를 이루게 되였다. 현대 가족의 파탄을 보여준 단편소설 로 이름을 남긴 유미리는 그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영어로 창작된 장편소설 《네이티브》로 유명한 한국계 미국인 작가 리창래李昌来의 창작도 마찬가지다. 이런 나라들에서나 세계문학 연구가들은 바로 속인주의, 즉 작가의 민족성분 하나로 그들 작품을 고려인문학 혹은 재일교포문학으로 획분하고 있다. 이런 상황하에서 우리는 언어 하나에 매여 그들 작품을 고려인문학 혹은 재일교포문학 혹은 미국한인문학의 개념 및 범주에서 배제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할 수 없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즉 세계적인 배달민족 문학 차원에서 놓고 볼 때도 조선족 한어 창작은 엄연히 전반 중국 조선족 문학의 개념 및 범주에 들어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오픈된 마인드로 조선족 문학의 자장을 넓힐 필요가 있다.       조선족 한어 창작을 강조하는 마당에 새로운 딜레마가 생기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발표지 문제가 나선다. 주류문단에 한어 창작 간행물이 많지 않은가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많다. 그래 우리의 많은 한어 창작 작가들이 이런 간행물을 리용하고 있다. 김인순이나 전용선, 아남 같은 작가는 일류 간행물에 발표하여 원고료도 톡톡히 챙기고 있다. 그런데 일반 작가들은 그렇지 못한 줄로 안다. 이 모든 것을 떠나 우리는 조선족 한어 창작을 조직하고 고무격려하며 육성하는 차원에서 전문적인 조선족 한어 창작 간행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전문 조선어 문학지는 《연변문학》을 비롯하여 4~5종을 헤아린다. 조선족의 실제 작가수나 독자수를 감안할 때 적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쩌면 원고, 독자, 판매 등 면에서 내부적인 소모전이 벌어지기도 하는 줄로 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조선족 문학잡지 생태를 좀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를테면 《연변문학》을 《조선족 문학》(잠정)으로 개명하여 조선족 문학의 종자 종합잡지로 하고 다른 문학지 가운데 한 잡지를 《조선족 한어창작작품 및 조선어작품 번역작》(잠정)으로 개정하고 전문 조선족 한어작품 및 조선어작품 한어번역작을 싣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잡지는 현재 시, 수필, 소설 등을 동시에 싣는 종합지보다는 이런 쟝르를 분공하여 싣는 전문지로 만들자는 것이다. 례컨대 《조선족 시》(잠정), 《조선족 수필》(잠정), 《조선족 장편소설》(잠정) 등 전문지로 새로 나게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문성을 추구하게 되면서 작품질도 올라가게 되여 독자들의 인기를 끌 줄로 안다. 그리고 현재 북경에서 간행되고 있는 조선어판 《민족문학》은 전문 주류문학 및 다른 소수민족 문학을 번역 소개하는 전문지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국내 조선족 작가는 물론, 배달반도를 비롯한 세계 배달어권에 중국문학을 소개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면서 중국문화를 세계에 홍보하는 국가전략에도 매치가 되는 것이다. 이런 조률을 거쳐 조선족 문학지의 생태평형은 제대로 이루어질 것으로 사료된다. 물론 모든 것은 말이 쉽지 실제로 추진하는 데는 많은 문제가 있을 줄로 안다. 특히 잡지 판매 등 경제효률적인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사실 조선족 문학지는 현재도 중국공산당의 훌륭한 민족정책 하에 유지되고 꾸려지고 있지만 앞으로 특히 새로운 조률을 통한 생태평형을 가져오고 지속적으로 꾸려지는 데도 이런 정책적인 배려가 없어서는 안된다. 적어도 재정적인 전격 지원으로 시장경제의 충격을 막아야 한다. 조선족 문학지는 시장경제와 정면으로 부딪칠 여건이 객관적으로 마련되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위기 및 멸종에 처한 소수민족 문화를 구원하고 부축하는 국가의 민족사무 정책에도 전적으로 부합된다. 조선족 문학 창작은 두말할 것도 없이 조선어로 창작한다. 그런데 이 조선어 사용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좀 새로운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여기서 조선어 하면 물론 우리 중국 조선족이 사용하는 조선어를 말한다. 적어도 남북과 구별되는 조선어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기적으로 중국 조선족 조선어규범집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언어 면에 있어서 일종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기도 하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 되겠다. 그런데 우리 조선어가 북의 조선어와 남의 한국어와 본질적인 구별점이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물론 없다. 전통적으로 같은 민족으로서 사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 언어를 어휘론, 문법, 음운론 세 범주로 나누어볼 때 뒤의 두 범주, 즉 문법, 음운론은 변화가 가장 적은 것으로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지역적인 방언차이 쯤으로 보면 된다는 것이다. 가령 두음법칙의 경우 지키면 어떻고 안 지키면 또한 어떻단 말인가. 이것을 가지고 굳이 북쪽 편이니 남쪽 편이니 하며 편 가르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완전명사 ‘-것’ 같은 것도 마찬가지. 앞에 붙여쓰면 어떻고 안 붙여쓰면 어떻단 말인가. 그러니 이런 것은 통일하면 가장 좋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자기 나름 대로 선택해서 쓸 일로 보면 되는 것이다. 현시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다원공존이 멋진 것이다. 그러나 어휘는 언어에서 시대와 더불어 산생하고 발전하며 변화가 가장 심한 부분이라 규범을 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우리 조선어의 경우는 중국의 실정에 맞추어 어휘들을 정리하고 규범할 필요가 있다. 바꾸어 말하면 어휘만은 중국특색이 나는 부분은 그 특색을 살려 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언어사용에서 과잉반응을 보일 정도로 너무 민감하다. 례컨대 한국식을 무조건 조선어식으로 고치기는 그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사실 언어의 가장 일반적인 론리를 볼 때 언어의 인기나 류행은 종합국력에 의해 좌우지된다. 어느 나라의 종합국력이 세면 그 나라의 언어가 강세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어의 경우는 좋은 보기가 되겠다. 이렇게 놓고 볼 때 한국어가 배달언어권에서 류행됨은 아주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일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상황을 놓고 볼 때 많은 글 쓰는 이들이 한국 물을 먹었고 글을 쓸 때 한국 컴퓨터 워드프로세스를 사용하고 있다. 하물며 이 워드프로세스는 사용하기가 대단히 편리하다. 잘못된 철자나 띄여쓰기를 표시해주며 바로잡아주기도 한다. 여기에 또한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에 가있으며 조선족 문학의 한국 진출을 꾀한다 할 때 한국식 표현은 우리가 막을 것이 아니고 제창해야 할 서사규범으로 승격해야 한다. 이렇다 할 때 편집들이 수고스럽게 굳이 조선어식으로 고치는 수고도 덜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왜서? 우리는 언어를 어디까지나 사용하기에 편리한 도구로 생각하지 않고 이데올로기적인 묵직한 정치로 생각하는 데 문제가 있는 줄로 안다. 좀 홀가분하게 살자. 적어도 언어사용 선택에서만은 그렇게 하자.             조선족 문학 창작의 부실을 평론에서 찾는 분들이 많다. 일리가 있다. 문학은 적어도 창작과 평론이라는 쌍두마차로 윈윈의 날개로 달려야 한다. 현재 우리 조선족의 문학 열기는 대단하다. 각종 문학단체가 우후죽순마냥 생겨나고 문학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연변을 놓고 보면 공식적인 연변작가협회 및 그 산하 분과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민간차원의 ‘어머니수필회’, ‘단풍수필회’, ‘연변시인협회’ 등 단체가 활약하고 있다. 이들이 정기적으로 출판하는 《단풍수필집》, 《시향만리》 등은 우리 문단의 한떨기 꽃으로 피여나고 있다. 산재지구를 보면 흑룡강성에서 조선족문인협회, 료녕성에서 조선족문학회, 청도에서 조선족문인협회가 활약하고 있다. 료녕성 조선족문학회에서는 《료녕조선족문학통사》까지 나왔고 청도 조선족문인협회에서는 정기적으로 문학지 《갯벌에서 주은 하얀 진주》를 펴내고 있다. 그리고 ‘재중동포작가통일문학방’, ‘시사랑모임’, ‘백천문학’ 등 위챗계정에서의 문학활동이 돋보인다. 이외에 한국에서도 조선족문인협회가 활약하고 《동포문학》이 발간되고 있다. 이런 문학적 열기는 연변작가협회에서 조직하는 문학강습반에 가보면 더 확실하게 안겨오는듯하다. 로, 중, 청 각 세대 문학지망생들이 빼곡하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문학의 화신이 되여 안겨온다. 그리고 누가 젊은이들의 문학창작 열기가 식었다 하던가. 위챗계정에서 ‘글밤영상토크쇼’를 보면 80세대들의 문학적 열기와 감수성이 톡톡 튄다. 그리고 얼마 전에 연변작가협회에서 조직한 ‘청춘문학상’ 수상작들을 보면 80세대, 90세대들의 문학실력을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문학은 지극히 희망적이다. 그런데 강한 추진력으로 당근과 채찍의 역할을 충분히 해야 할 평론이 이런 창작 열기에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것은 어쩌면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그럼 왜서 평론이 이렇게 처지게 되였는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일단 평론인재의 결핍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현재 조선족의 평론가수는 작가수보다 태반 부족이다. 기본 비례가 맞지 않다. 그래 몇 안되는 평론가가 시면 시, 수필이면 수필, 소설이면 소설 닥치는 대로 하는 판이다. 시 전문, 수필 전문, 소설 전문, 이런 전문 평론 분공이 되여있지 않다. 그러니 평론 수준이 들쑹날쑹이다. 쟁명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만세평론이 많다. 그것은 좁은 문단이라 작가와 평론가 사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잘 아는 사이라 작가들이 자기의 제2세와 같이 여기는 작품에 대해 평론 소신껏 품평하기도 불편한 점이 없지 않아있다. 주류문단처럼 문단이 넓어 이 눈치 저 눈치 볼 필요 없이 소신껏 평론할 수 있는 객관적 환경이 마련되지 않은 아쉬움이 남는다. 연변작가협회에 전문 평론분과가 있기는 하나 전반적으로 볼 때 년령구성이 로령화되여있다. 젊음의 피가 필요하다. 그럼 어떻게 조선족 문학평론을 진작시키겠는가? 이것은 사회와 대학교의 력동적인 관계 속에서 대학교 문학선생들, 즉 학원파를 평론계에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 연변대학교의 경우만 봐도 문학평론에 종사할 소질을 갖고 있는 젊은 선생들이 많다. 그런데 이들한테는 동기부여가 잘 되여있지 않다. 민족문학 발전의 중요성이나 사명감에 대한 강조도 중요하겠지만 학교 당국에서 이번에 국가에서 특수학과, 특수대학双一流을 꾸리는 동풍을 타고 평론에 대한 중시를 돌리고 교수성과 평가에서 특별가산점 등 여러 조치를 취해 실제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조선족 문학과 평론의 발전을 위하여 연변대학교 같은 대학교들에서 투철한 민족의식을 갖고 조문학부를 본거지로 하여 문학창작과 평론과를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1980년대 초반 연변대학교에서 조선어작가반과 한어작가반을 꾸린 성공적인 경험이 있지 않는가. 현재 조선족 문단의 많은 중견작가들은 그 때 작가반을 나온 작가들이다. 이 경험에 비추어 문학창작과 평론과를 설치하면 말 그대로 창작과 평론의 윈윈효과를 가져와 조선족 문학의 발전을 이룩하게 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럴 때만이 연변대학교는 조선족 문학 및 문화의 중심이나 최후 보루로서의 제 구실을 하게 될 줄로 안다. 그리고 조선족 문학 전문 평론지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조선족 문학 평론은 여러 종합문학지에 곁방살이로 간간이 발표되고 있을 뿐이다. 조선족 문학을 리드해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전에 《문학과 예술》이라는 전문 평론지가 있어 그래도 평론이 얼마간 활기를 띠면서 조선족 문학을 리드해간 시기를 생각하면 자연히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우의 내용을 좀 정리해보면 그것은 우리 문학의 새 지평을 여는 객관적인 주변환경에 대한 론의가 되겠다. 그럼 아래에 우리 문학창작 자체, 즉 주관적인 창작 내부 문제로 눈을 좀 돌려보자.  우리 조선족은 배달반도로부터 ‘눈물 젖은 두만강’을 건너 이주해왔다. 따라서 이주, 정착 및 개척의 력사는 우리 문학의 무궁무진한 독특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이른바 이민문학 창작이 그것이다. 그래서 1980년대 초반 리근전의 장편소설 《고난의 년대》, 1990년대 초반 최홍일의 장편소설 《눈물 젖은 두만강》, 1990년대 후반 최국철의 장편소설 《간도전설》은 이 방면의 성과작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노린 초점은 다르다. 《고난의 년대》는 계급투쟁 론리, 《눈물 젖은 두만강》은 인간성 론리, 《간도전설》은 저층 서사적인 론리로 많이 흘렀다. 여기에 얼마 전에 최홍일이 다시 상중하 대부작 이민소설로 《룡정별곡》을 창작하여 인기를 끌었다. 그는 이 소설에서 민족경제, 민족자본가를 중요한 한갈래로 다루어 이채를 돋구었다.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말할 수 있다. 보다 싶이 이민문학은 끊임없이 부동한 새로운 경지를 창출함으로써 우리 조선족의 독특한 이민력사가 하나하나 복원되며 완전성을 기하게 될 줄로 사료된다. 이로부터 결과적으로 또한 우리 조선족 문학의 독특한 한 풍경선이 이루어질 줄로 안다. 이것은 장승지张承志가 《심령사心灵史》에서 중국 회족의 독특한 이슬람교를 통하여 신앙의 힘을 노래하고 장족 작가 짜시다와扎西达娃가 《서장: 은밀한 세월西藏:隐秘的岁月》, 《서장: 고무줄에 묶은 혼西藏:系在皮扣上的魂》, 《그 후줄근한 여름날들夏天酸溜溜的日子》에서 장족의 신비한 종교정신과 신앙의 힘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독특한 원시색채와 신화매력을 발산한 것과 비슷하다.  우리 조선족은 다분히 디아스포라적인 특색을 띠고 있다. 이주 초기 배달민족 신분, 그러다가 새 중국이 창립된 후 중국 국민 신분, 즉 중국 조선족이라는 독특한 신분을 띠게 되였다. 코리아드림, 국적소동 등은 이것을 말해주는 케이스들이 되겠다. 현재 세계는 말 그대로 세계화의 바람 속에 대량의 디아스포라를 량산하고 있다. 따라서 디아스포라는 세계적인, 어쩌면 영원한 문학소재가 되겠다. 따라서 우리 조선족 문학이 이 소재를 다루게 됨은 세계문학의 보편적인 주제에 맥이 가닿고 있다. 허련순의 장편소설 《바람꽃》,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는 좋은 스타트가 되겠다. 앞으로 이 방면의 창작이 얼마든지 계속 기대된다.  현재 우리 조선족은 한국에 공식적인 집계로 60여만명, 민간적인 ‘집계’로 80여만명이 체류해있다고 한다. 1/4 이상이 거기에 가있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조선족 생활은 우리 조선족 문학의 한 노다지판이 되겠다. 강호원의 장편소설 《추적》은 한 결실이 되겠다. 현재 이 방면의 작품이 많이 창작되고 있지만 아직도 발굴할 여지는 많다. 이를테면 조선족의 눈에 비친 한국 형상 및 한국사람의 눈에 비친 조선족 형상 그리고 량자의 력동적인 관계 등 여러 차원에서 계속 창작 예봉을 들이댈 필요가 있다.  우리 조선족은 어디까지나 중국 국민이다. 우리는 중화민족의 한 가족으로서 보다 많이 국내 여러 민족, 특히 주류민족인 한족과 많이 어울려 산다. 그런데 현단계 우리 문학에는 이 방면의 내용이 아쉽다. 최국철의 단편소설 를 비롯하여 일부 작가들의 작품에서 간간이 나타날 뿐이다. 청도조선족작가협회에서 발간하는 작품집 《갯벌 속에서 주은 하얀 진주》에 그래도 이 방면의 내용이 많이 내비치고 있어 기껍다.    그리고 문학이 인간 실존을 다룬다 할 때 인간 보편의 삶의 존재 양상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방면에서 젊은 세대들의 작품이 돋보인다. 례컨대 김금희의 중편소설 는 바로 현대 인간들의 노마드적인 삶의 실존, 박초란의 중편소설 은 현대 월광족, 욜로족들의 삶의 실존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이번 ‘청춘문학상’의 수상작들을 보면 우리 조선족 젊은이들의 중국 국내 내지에서의 사랑, 사업, 생활을 통하여 현대 젊은이들의 실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좋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 조선족 문학은 인간학 그리고 인도주의 차원에서 조선족의 삶을 얼마든지 다양하게 조명할 수 있다. 여기에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한 화두로 대두된다. 얼마 전에 연변작가협회 소설분과에서 조선족 소설의 출로를 찾아 세미나를 조직한 적이 있다. 이 문제에 있어서 필자는 내용도 내용이겠지만 순문학도 통속소설처럼 좀 재미나게 써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상 전반적인 론의를 종합해보면 그것의 초점은 우리 문학의 새 지평을 여는 데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문학은 이런 저런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희망적이다. 우리 문학의 새 지평이 열리는듯하다. 새 지평은 열리되 그것의 도안은 우리 손에 달려있다. 모두다 들어라, 아름다운 채색 붓을!  
157    [두만강칼럼] 무덤, 그 을씨년스러운 무덤 댓글:  조회:2137  추천:0  2018-09-18
인간의 주검처리는 하나의 문화이고 큰 학문이다. 바로 장례문화가 그렇다. 따라서 삶 만큼이나 중요시되여왔다.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토장을 하다가 새 중국이 성립된 후 화장을 법적으로 규정했다. 주은래, 등소평 등 중앙의 고위급 간부들이 유언까지 쓰며 솔선수범했다. 사실 화장은 불교에서 많이 행하던 장례문화였다. 과학적이고 위생적이며 합리적인 면이 있기에 국가법으로 정하게 된 줄로 안다. 그런데 지금 이 국가법까지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새 세기 초반에 사천 성도지역에 얼마간 머문 적이 있었는데 어쩌다 시골 쪽을 다녀보니 여기저기 무덤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웠다. 그 때 나는 그래도 우리 조선족이 사는 연변, 연길은 무덤 하나 볼 수 없이 깔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연변, 연길에도 늘어나는 것이 새 무덤이다. 가끔 등산하면서 산기슭에 이런 무덤들이 무질서하게 여기저기 널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분들은 ‘내 산에 묻는데 뭐가 잘못된 것’인가고 반문한다. 그리고 모아산삼림공원 안에도 무덤이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다. 바로 등산길 옆에 말이다. 참말 기분이 잡친다. 등산길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다가 음산한 분위기를 느끼게 되니. 이렇게 기를 쓰며 토장하는 것은 땅속에 묻혀야 안식한다(入土爲安)는 낡은 장례문화의식이 뿌리 깊기 때문이다. 땅속에 묻히지 않으면 허망 나도는 주검처럼 가장 비참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 인간의 존엄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배려가 없지 않아있다. 호랑이도 죽으면 가죽이라도 남기는데 사람은 죽어서 무덤이라도 남겨야 이 세상에 온 흔적이 있게 된다는 관념이 가미한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고리타분한 생각이다. 사실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흔적을 남기는 데는 전통적인 큰 업적을 이루는 것(立功), 인간의 사표가 되는 것(立德), 훌륭한 저술을 하는 것(立言)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방도가 아니겠는가. 진정으로 立功, 立德, 立言했을 때 사람들이 세세대대로 외우는 것, 이 자체가 영원한 기념비이다. 사실 누구나 토장한다면 좁은 이 땅덩어리가 문제이다. 지금 어디나 땅은 좁고 사람이 많기에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밀어내는 형국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요즘 좀 생활이 넉넉해지니 저 세상 가서 잘살라고 이것 저것 다 챙겨주고 크고 호화로운 무덤을 쓰며 집안의 부를 비기고 신분을 과시하는 현상이 만연되고 있다. 산 사람이 사는 것도 힘든데 무덤 때문에 자연을 파괴하고 상처받아야 한단 말인가. 또 화장을 거부하는 것은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를 손상없이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관념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살아서 이렇게 해야지만 주검에까지 이것을 적용하는 것은 좀 무지막지하다. 우리는 각 민족, 각 지역의 장례문화를 존중해야 한다. 주검을 칼탕을 쳐서 독수리에게 먹이는 천장이든, 물에 띄워보내는 수장이든, 나무 우에서 말리우는 풍장이든… 그것이 하나의 문화인 만큼. 그런데 문화도 시대와 더불어 과학성, 합리성을 가미하며 발전한다. 하여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며 수목장이요, 잔디장이요, 가족장이요 하는 많은 새로운 장례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우리도 이런 새로운 장례문화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서로 교류하고 보완하면서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보편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길림신문 2018.9.17
  평 론   성장소설《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경우   우상렬     인생은 고비고비 고개길인줄 안다. 이 고비가운데서 사춘기는 하나의 진고개라고 해야 하겠다. 이 진고개를 잘못 넘어 인생을 망치는 비극도 종종 벌어진다. 그러나 이 진고개를 잘 넘기면 인간은 훌쩍 커버리고 성숙된다. 사춘기의 야누스적인 존재는 문학의 프로포즈를 받기에 족하다. 이로부터 18세기 유럽에서는 독일작가 괴테의 “소년 웨르트의 번민”으로부터 시작하여 일련의 사춘기 남녀들을 다룬 소설들이 창작되였는데 이를 아울러 “교양소설” 혹은 “성장소설”이라고 부르게 되였다.  중국의 경우를 놓고볼 때 전통적으로 유교적로인문화의 지배때문에 소년 소녀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 그러다가 1919년 “5.4운동”과 더불어 본격적인 현대사회에 들어서게 되면서 엽성도, 빙심 등 문학대가들에 의해 어린이들이 문학적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새 중국이 성립된후 어린이들이 혁명사업의 후계자라는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그들을 반영한 많은 문학작품들이 산생되였다. 《반짝이는 붉은 별》, 《붉은 아이들》, 《어린 병사 장알》 등 작품은 그 보기가 되겠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정치사상적인 리념적색채만 추구하다보니 성장소설 본연의 모습과는 좀 다르게 표현되였다. 이것은 어쩌면 당시 정치 제일의 시대적콘테스트하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정통적인 성장소설의 중국에서의 독특한 변종이라고 볼수 있겠다.  개혁개방은 정치적정서를 약화시키면서 문학이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하였다. 이로부터 중국의 새로운 시기 문학에서도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성장소설이 창작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중국주류문단에서 왕삭의《동물의 사나움》, 조선족문단에서 김혁의 《마마꽃 응달에 피다》, 허련순의 《뻐꾸기는 울어도》 등은 그 보기가 되겠다.  본고는 왕삭의《동물의 사나움》과 김혁의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비교고찰을 통하여 한족과 조선족 성장소설의 전형적인양상을 살펴보고저 한다.      1)본격적인 비교론의     《동물의 사나움》과《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모두 “문화대혁명”을 시공간으로 하고있다. 왕삭은 1958년에 출생했고 김혁은 1965년도에 출생했다. 이로부터 체험의 차원에서 그들은 “문화대혁명”세대라고 할수 있다. 그리고 그 구체적공간배경을 보면《동물의 사나움》은 작가가 자란 북경을,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작가가 나서 자란 룡정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동물의 사나움》이 북경의 지역성을 많이 나타냈다면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민족성을 많이 나타냈다고 볼수 있다. 례컨대 《동물의 사나움》이 “70년대 중기, 자동차와 고급호텔, 상점 등이 그리 많지 않고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 북경을 배경”으로 하고있다면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는 “프롤로그”에 나오는 룡드레우물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해란강지명에 관한 유래 및 “지금으로부터 백년전 우리 고장은 천만년 묵은 진펄에 갈대숲이 우거진 이름 없는 고장이였는데 어느해인가 전주 리씨성을 가진 사람 하나가 처자를 데리고 들어와 집을 잡게 되여 처음으로 인가가 생겼다.”는데서 보여지는 민족의식이나 이주민의식을 나타내고있다.  《동물의 사나움》과《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왕삭과 김혁의 체험의 문학으로 볼수 있다. 왕삭이 실제로 중학교때 이미 “투스타(두번의 감옥행)”를 했었다면 김혁도 실제로 갓난아기때 버려진 경력 및 야성적인 패싸움경력 등을 갖고있는데 이런 느낌과 경력은 이들이 작품을 창작하는데 좋은 바탕이 되였을것이다. 사실 김혁은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프롤로그에 관한 창작경위에 대해 “저에게 제일 큰 충격을 가져다준것”을 운운하면서 그 체험의 문학을 증명하고있다. 그러나 그들의 체험의 문학적형성화는 지극히 다르다.      (1)홀가분함과 무거움   《동물의 사나움》과《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일인칭 회억형식을 취하여 주인공들의 사춘기이야기를 꺼내고있다. 일인칭 주인공들로는 15살의 왕소군과 13살의 김찬혁. 물론 이 일인칭은 내포적작가로서의 작가의 그림자가 짙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꺼내는 출발점은 서로 사뭇 다르다.  《동물의 사나움》이 “이 도시의 모든것은 신속하게 변화하고있었다. 집이나 거리 외에도 사람들의 복식이나 화제까지도 변화하고있었다. 오늘에 와서 이것들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였는데 류행어로 한다면 모던한 도시로 변한것이다. 유적도 남지 않았다. 모든것이 철저하게 박탈당했다.”를 바탕으로 한 일종의 노스탤지어적인 시각이였다면《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일종 “그때 왜 그랬지?” 하는 반성적인 시각이였다. 이로부터 두 작품은 “문학대혁명”에 대해서도 상당히 다른 시각을 나타내고있다. 이를테면《동물의 사나움》에서 “문화대혁명”이 어른들의 광란이였다면 어린 자기네들한테는 더없이 자유롭고 즐거웠던 시기였다는것이다. 자기네들은 “배워도 쓸모 없고 잊어버릴 그러한 지식들”을 배우지 않아도 되였지만 오늘의 애들은 무거운 책보에 눌려 쓸데없는것을 배우며 입시때문에 숨돌릴 새도 없는데 그 모습이 불쌍해난다는데서 이 점이 더 잘 드러난다. 그들은 당시 “어디로 가는 청춘남녀들이 똑같은 군복을 입고있었다. 군복은 류행과 신분을 보여주고있었던것이다.” 라는 시대적분위기하에서 잘 나가는 선택받은 군관자제들로서 그럭저럭 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군대에 들어갈수 있는 자신의 앞날에 만족하며 현실을 즐기고 놀자는 쪽으로 많이 흘렀다. 《동물의 사나움》의 영화제목이 “해빛찬란한 나날”들로 된것이 그 사정을 잘 말해준다.  그러나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문화대혁명”을 어른들뿐만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음영을 드리워준 악몽으로 받아들인다. 이 글에서는 김찬혁을 비롯한 상철형님, 짜그배누나, 똥파리 등 인물들이 사회독버섯으로 변한데는 그들 나름대로의 피해갈수 없는 객관적원인이 있다고 쓰고있다. 어릴 때 숭배해마지 않던 경찰아버지가 정치풍파때문에 “5.7간부학교”로 쫓겨가고 결국 목숨을 잃은 김찬혁, 젊음의 전도를 가로막는 봉건적혈통론의 피해자로서 아버지와 “계선을 똑똑히 갈라야 하는” 상철형님,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오히려 죄가 된 그래서 결국 그 희생양이 된 짜그배누나… 이들은 “그 사회에서 그래야 살아남는다는것”을 알게 된다. 하여 “상철형님 같이 성정미 좋고 열심히 사는 사람도 건달틈에 끼이게 되는것”이다.  보다싶이 결손가정의 사회적비극이 이들 순진무구한 애들의 마음을 뒤틀리게 했던것이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는 이 점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있다. 례컨대 문예콩쿠르준비를 할 때 김찬혁은 고리끼의 “해연의 노래”를 외우려 하지만 결국은 이붓아버지의 강권으로 마야꼽스끼의 시 “당과 레닌”을 외우게 된다. 김찬혁은 처음에 연극 “농부와 뱀”에서 농부역를 맡았댔지만 체육과대표의 아버지가 혁명위윈회 주임이여서 결국은 그 역을 체육위원에게 넘기고 자기는 뱀역을 한다. 한 학급의 “앵무새”는 공부를 잘하지 못하지만 모주석어록을 잘 외워서 최우수상을 받는다. 그래서 김찬혁은 “앵무새”를 미워하게 된다. 사실 어린 “앵무새”가 “벙어리 엄마를 위해 리해도 가지 않는, 한자라도 틀릴가봐 걱정되는 모주석어록을 힘들게 외우’는 장면은 하나의 시대적비극이라고 볼수 있는것이다. 무관심과 무방비 상태에 놓인 아이들은 변태로까지 나갈수 있다.  《동물의 사나움》에서 사사로이 떠돌아다니는 《만나의 회억록》을 읽고서 “내”가 모든 아름다운 감정에 멸시와 증오의 감정이 생겼다고 한것은 그간의 사정을 말해주기도 한다. 눈을 슴벅거리며 손가락을 빠는 김표는 영낙없는 애이다. 그런 그가 변소틈새로 녀자의 치부를 훔쳐보다가 나중에는 속옷을 훔치는데로 나간다. 볼품 없는 속옷은 물론, 생리대까지 훔치고 다닌다. 여러번 걸려 혼쭐이 나도록 두드려 맞고 학교에서도 퇴학을 당하지만 그 버릇은 고쳐지지 않는다. 심지어 콘돔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기도 한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는 김표의 이런 형상을 통하여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시키고있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는 또 직접 어른들의 세계를 통하여 맹렬한 현실비판을 가하고있다.  례컨대 회충 할아버지가 모택동초상을 그리다 점의 위치를 잘못 그린 일로 문화관에서 쫓겨난다든가, “현성(마을)의 화가들은 모두 우경기회주의분자로 지목되여 그림 그릴 사람이 없었다”든가, 결국 회충 할아버지가 그리게 되였는데 도료가 엎질러지면서 모택동초상화의 얼굴을 덮어버리게 되였고 그 일이 커지게 되자 투쟁 받으면서 고생하기보다는 자살을 선택하는 편이 나을것 같아 자살하게 되였다는 사건은 당시의 “좌”적경향 및 개인우상숭배의 엄중성을 잘 보여주고있다.    “귀신의 집”에 사는 “마스크귀신”의 정체규명을 통해서는 “문화대혁명”시기 연변의 류혈사건을 폭로하고있다. 그리고 회충의 음식에 대한 집착을 그린 대목에서는 “공급이 어려운 시대다. 음식을 비롯한 모든 물건은 표에 따라 공급했다. 회충네는 남자 형제가 다섯이였는데 외할아버지까지 계셨다. 회충- 길룡이는 막내다. 음식에 대한 그의 탐닉은 이러한 사정에서 기인한다. 녀석의 혀바닥에는 늘 설태가 끼여있었다.”, “장례날 회충이 보이지 않아 식구들이 법석이는데 회충은 헛간에서 장례에 쓸 음식을 훔쳐먹다가 발각된다. 화가 난 형들은 회충을 때리며 회충이 주머니속에 감춘 음식을 꺼내 그의 입에 강제로 밀어넣는다.” 이 장면은 정말 눈물 없이는 볼수 없는 절대적으로 빈곤한 당시의 시대상을 폭로하고있다. 이로부터 작가의 말을 빌리면 “어른들의 세계가 빚어낸 공포가 그렇게 우리를 강요하고있다. 우리는 공포를 스스로 접수해서는 꿈에까지 안고갔다가 비명을 지르며 해탈의 쾌감을 맛보군 했다. 우리는 자주 공포와 만났고 그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각종의 해탈방식을 찾군 했다.”(《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에필로그에서. 이하 출처를 밝히지 않은 인용은 모두 에필로그에서)  여기서 보다싶이《동물의 사나움》에서 어른들의 세계가 아이들에게 별로 큰 영향을 주지 않고있었다면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는 “우리”에게 의식적인 측면뿐만아니라 “꿈에까지 안고가”는 무의식적인 측면까지 영향을 주는 절대적인것이였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주인공들은 바로 《그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각종의 해탈방식》으로 반사회적인 청춘의 반항을 했던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주는 자극과 그 자극 뒤에 숨겨진 쾌감”을 즐기군 했던것이다.  《동물의 사나움》에서 작가는 소년소녀들이 학생의 본분에서 벗어나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련애나 무리싸움 같은 일탈적행위를 하는것에 대해 “사춘기의 애젊은 기분으로 놀아난 랑만”으로 보면서 은근히 마스터베이션을 하고있다. 하지만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작가는 “이는 일종의 건강치 못한 욕구였다. 생명의 욕구는 특별히 왕성하나 리성이 외려 깨여있지 못했던 우리는 어둠을 더듬으며 공포속에서 방향을 찾고있었다. 그래서 벗어나려 종주먹을 쥐고 달리는 아이들, 우리는 방황과 허무속을 헤매던 우리의 어제날 모습에 부정적인 시각을 들이대고있었다.” 고 했다. 보다싶이《동물의 사나움》이 사회성이 거세된 한무리 사춘기악동들의 지극히 정상적인 일탈의 노스텔지아적인 희극을 보여주었다면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는 사회성이 절대적으로 가미된것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한무리의 사춘기 소년 소녀들이 무서운 악동들로 될수 밖에 없는 사회적비극을 보여주었다. 이로부터《동물의 사나움》은 왕삭 고유의 의미해체 즉 무의미를 표방하는 “건달문학”적특색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있다.  아래 작가의 술회는 이 점을 직설적으로 말해주기도 한다.  “신체가 한창 발육단계에 있을 때 우리는 불행하게도 3년재해를 맞게 되였다. 그리고 한창 교육을 받아야 할 나이에 ‘문화대혁명’을 경과했다. 하기에 우리 세대는 이른바 전형적인 ‘영양불량세대’인것이다. 아무런 재간도 가진게 없이 고작해야 두부모만한 글 3, 5천자를 읽을수 있을뿐이다. 뜻은 크면서도 재간은 그닥지 않은 우리 세대는 평생을 그처럼 평범하게 살아갈수 밖에 없는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발밑에서 묵묵히 받침돌이 되여줄수 밖에 없는것이다. 그래도 사람에게 막다른 길밖에 없는것은 아닌지 사회가 변혁을 가져온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동풍을 타고 안일만 탐할수도 없었다. 금후 세상에 발을 붙이기 위하여 다시 옛 늪에서 솟아나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하여 글을 쓰게 되였다-왕삭”  이렇게 심히 자조적이고 피해의식이 있는 작가, 그는 단지 생계를 위해 옛것을 뒤져 긁적일뿐이라고 말한다. 물론《동물의 사나움》은 왕삭의 의도와 달리 객관적인 차원에서 사춘기 소년소녀들이 그렇게 밖에 할수 없없던 사회적원인을 추적할수 있다. 이에 반해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김혁의 치렬한 작가정신에 기인된 의식적인 사회적의미에 대한 추구의 사실주의정신을 보여주고있다. 김혁은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자기의 사춘기 성녀-짜그배누님과 “사람장사”를 하며 경찰서를 들락날락하게 되는 그의 타락적인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현실비판의식을 오늘날에까지 끌어오고있다.      (2)사춘기 본연의 모습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사춘기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어 우리 모두의 공감대를 형성하고있다.  그럼 사춘기 본연의 모습이란 어떤것인가? 사춘기는 말그대로 이성에 눈을 뜨고 사랑을 추구하게 되는 시기이다. 그런데 사춘기때 이성은 알쏭달쏭하고 신비하다. 그것은 알고싶고 한번 따먹고싶은 금단의 열매이기도 하다. 《동물의 사나움》에서는 고씨형제무리들이 왕부정거리에 몰켜서서 오가는 녀자애들을 집적거리는것과 미란의 고씨형제네 집에서의 외박에서 보여지는 시탐적인 금단의 열매―성적접촉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그것은 관음증으로 많이 나타난다. 김표와 김찬혁의 녀성생리해부도환등보기, 녀자목욕탕 엿보기는 그 일례가 되겠다. 물론 이런 관음증이 병적으로 치달을 때는 문제가 된다. 김표가 전형적인 실례이다. 그러나 김표도 나중에는 짜그배누님의 성녀 같은 보살핌에 정상을 찾는다.  사춘기에는 보통 사랑을 하는데 그 사랑은 대개 첫 눈에 반하는 순수하고 헌신적인데가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짝사랑에 가깝다. 《동물의 사나움》에서 마소군은 우연히 미란의 집에서 그녀의 사진을 보는 순간,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김찬혁은 사진관에서 우연히 짜그배누님을 보는 순간 그만 사랑에 빠지고만다. 하여 마소군은 거리에서 미란을 만나는 순간 친구사귀기, 프러포즈 등을 하다가 그것이 먹혀들어가지 않으니 누나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일종 남자의 공격성이 묻어나는 접근-치근덕거리기이다. 김찬혁에게 있어서 짜그배누님에 대한 사랑은 보다 많이 짝사랑으로 나타난다. 그는 꿈에 몽정을 하고 사진 한장에 흥분해하며 시원한 마스터베이션적배설도 한다.  그러나 김찬혁의 사랑은 지극히 순수하고 고상하고 헌신적인데가 있다. 짜그배누님에 대한 그의 사랑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수 있다. 동네아줌마들이 아무리 짜그배누님을 남의 남편을 빼앗는 성품이 나쁜 여우라고 불러도 찬혁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는 머리칼이 길지 않은데도 짜그배누님이 보고싶고 또한 그녀한테서 머리를 깎고싶어 리발관을 찾아가기도 한다. 또한 짜그배누님을 위해 이붓아버지의 빠찌나 정신이 안 좋은 “체조선생”의 빠찌를 훔쳐다준다. 찬혁이가 짜그배누님의 소원을 풀어주려고 필사적으로 무용신훔치기에 골인하는 모습도 그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사춘기사랑은 충동적이고 맹목적이며 일종 허영의 만족에 불과한것일수도 있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주인공은 다 당시로는 상상도 할수 없는 “년상의 녀인”을 사랑한다. 그런데 마소군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누나벌 되는 미란과 사귀는 목적은 일종 친구들한테 자랑하기 위한데 불과한것이기도 하다. 마소군이 친구들에게 미란을 소개할 때 얼마나 기분이 좋고 어깨가 으쓱해했는가. 그리고 마소군과 김찬혁은 자기가 좋아하는 녀자를 위해 일종 기사도적인 정신을 발휘하기도 한다. 마소군이 위험을 무릅쓰고 높은 보이라굴뚝에 올라간다든가, 김찬혁이 짜그배누님을 위해 아줌마들 집문에 “꼬끌피새”를 걸어두는것으로 보복을 한것은 그간의 사정을 잘 말해준다. 사춘기사랑에도 질투 같은것이 없는것은 아니다. 《동물의 사나움》에서 미란이 고씨네 형제와 좋아하자 질투의 불이 붙은 마소군은 미란이를 만나기만 하면 괜히 트집을 걸고 약을 올린다. 그리고 술기운을 빌어 한달음에 미란의 집에 달려가 그녀를 강제로 범하려고 한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도 찬혁이는 짜그배누나가 똥파리와 좋아하는데 대해 은근히 기분이 잡쳐한다. 김찬혁이 이붓아버지를 미워하는 원인은 양어머니에 대한 은근한 사랑때문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말하여《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사랑의 백태를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사춘기사랑의 무의식적인 측면까지도 잘 보여주고있다. 사춘기는 독립적인 자아의식이 싹트는 단계이다. 어디에 매이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행동하기를 좋아한다. 사춘기때는 누구든지 한번쯤은 집을 뛰쳐나갈 생각을 할것이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악동들이다. 그들은 어른들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하며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한다. 그들은 학교 가기 싫어하고 아예 학교에 가지 않기도 한다. 《동물의 사나움》의 마소군은 늘 일로 멀리 출장 가있는 아버지가 더없이 고맙게 느껴진다. 아버지가 출장 가면 아버지의 단속에서 벗어날수 있는 자유로움을 얻을수 있기때문이다. 마소군은 아버지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렇게 진지하게 연설을 하는데도 건성으로 들을뿐이다. 그는 언제나 그 모양 그대로이다. 공부는 머리에 아예 없다. 만능열쇠로 남의 집 문을 따고 들어가 빈둥거리는것이 재미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무료함의 극치를 연출한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김찬혁은 자기가 어머니의 친자식이 아니라는것을 알게 되자 정체성의 위기를 가져오며 자기의 근본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가출하여 똥파리무리에 가입한다. 그리고 늘 보기 싫은 이붓아버지를 골탕 먹이며 “흐루쑈브” 등 별명을 붙여 풍자, 조소한다.  사춘기는 청춘의 활력이 넘친다. 그래서 어른이 된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사춘기 소년 소녀들은 금기를 깨고 어른들을 모방하여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것을 멋으로 여긴다. 이로써 어른이 된듯한 느감을 향수하려고 한다. 그들의 솟구치는 청춘의 활력은 영웅심리로 발동되기도 한다. 이로써 남자애들은 한번쯤 싸움도 해보고싶어하게 된다. 《동물의 사나움》에서 마소군은 스스로 “나에게는 세계인민의 해방을 위한 밀어버릴수 없는 책임이 있다”고 여기며 어느 본보기극에 나오는 영웅처럼 자신의 “동지”들을 위해 의리를 지킬것을 다짐한다. 그는 어느날 중국과 쏘련이 싸우게 되면 참군하여 영웅이 되려고 생각한다. 고씨네 형제는 마지막에 실제로 입대한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는 똥파리조차도 어릴 때 영웅이 된 삼촌을 우상으로 받들었고 군인이 되고파 입대하려 한다. 하지만 그가 너무 어려 받아주지 않자 무지막지하게 출장 온 해방군의 머리를 돌로 쳐 군모를 빼앗는다. 이로부터 똥파리는 “군복 입는것만을 고집하는 꼴볼견”으로 된다. 그들의 이런 영웅심리는 제대로 발산되지 못할 때 강호의리식의 패거리작당을 묻게 된다. 《동물의 사나움》에서 고씨네 형제를 중심으로 한 군관자제들무리,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똥파리를 중심으로 한 영국더기무리, 사마귀무리, 마씨네 형제무리가 바로 그 보기가 되겠다. 그들은 “어느 골목에서는 누가 우두머리”라는 식으로 힘겨루기를 하고 패권을 다툰다. 이것은 스스로를 “잘 났다”고 증명하는 하나의 진실한 보기로 된다. 《동물의 사나움》에서 고씨네 형제무리가 복수를 위해 출동하여 상대아이들과 싸우고 마소군이 무자비한 영웅성을 나타내며 나중에는 차까지 동원하여 크게 무리싸움을 준비하는것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똥파리무리와 사마귀무리, 쌍두마차무리, 마씨네 형제무리 사이에 서로 찧고 빻기 그리고 마지막에 대판으로 벌어진 무리싸움 등은 그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3) 통과의례   인간은 커가는데 고비고비 인생의 고비를 넘기게 된다. 그 많은 고비가운데서 사춘기는 하나의 중요한 고비이다. 일종 성년의 고비라고 할수 있겠다. 그래서 옛날에는 어른들이 사춘기의 청춘들에게 의식적으로 정해진 과업을 주었는데 그것은 일종 성년이 되는 통과의례였다. 그래서 이 통과의례는 성년의례가 되기도 한것이다. 사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사춘기를 지나고 난후 훌쩍 커져있다. 이로부터 사춘기는 통과의례적인 원형질로 우리 문학에 나타난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바로 이런 통과의례적인 사춘기를 이야기하고있다. 두 작품은 모두 도입부 “지나간것은 아름답다.”는 회억식프롤로그를 지나 본문에서 사춘기의 충동으로 성년식통과의례를 거치게 되며 에필로그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하기에 이 두 작품은 모두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장소설로 정립된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주인공들은 모두 꿈을 갖고있다고 했다. 《동물의 사나움》에서 “나”는 영웅이 되고싶은것이 꿈이고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나”는 룡이 되고싶다는 꿈을 갖고있다고 했다. 물론 “나”를 비롯한 주인공들이 꼭 영웅이 되고 룡이 된것은 아니다. 《동물의 사나움》이나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주인공들은 어른이 된 시점에서 일단 자기네들이 겪은 사춘기때의 유치함, 유아독존 등 모든 부정적인 면을 잘 알게 된다. 그러나 이 부정적인 면이 그들의 가장 아름다왔던 소년소녀 시절의 한 모습이였고 또한 그것이 오늘 훌쩍 커버린 성년의 전사(前史)임을 상기할 때 그들은 바로 상반상성(相反相成)의 인생의 정, 반, 합으로 흐르는 변증법을 보아내기도 했을것이다. 인생은 상반상성속에서 커가는 법이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주인공 마소군이나 김찬혁은 눈 먼 짝사랑을 하고 사랑의 질투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사랑을 배워가게 된것이다. 그들은 그속에서 육체적으로도 컸다. 어느날, 나는 거울앞에서 신체의 변화를 깨닫고 “옷을 홀딱 벗는다.” 나의 양물을 보고는 놀라 “얼른 옷을 입는다.” 김찬혁은 라체는 부끄럽게 생각한다.  고씨네 형제들은 어엿한 인민해방군이 되고 다른 친구들도 그럴듯한 사업가로 성장한다. 김찬혁은 처음의 겁쟁이로부터 결국 사마귀의 유혹과 위협에도 드팀없이 견뎌내는 용감한 사나이로 커간다. 그는 파출소에서 놓여나왔지만 도로 파출소로들어가는 동고동락의 “의리”도 배우게 된다. “사람질을 할것 같지 못하던 김표”는 두눈이 실명된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자기의 두손으로 열심히 살아간다. 이로부터《동물의 사나움》이나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어른이 된 주인공들은 감회가 새롭다. 마소군과 김찬혁은 어엿한 문필가가 되여 자기 인생의 성장서사를 한다.  《동물의 사나움》의 주인공은 20년 동안의 거대한 변화에 노스텔지아적인 향수에 젖는다. 그리고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주인공은 사춘기의 광란을 겪고도 거뜬히 사회의 어엿한 일군으로 자라난데 대한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있다. 이를테면 “그동안 많은 기분 나쁜 일 또 기분 좋은 일이 있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모든것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였다. 제목처럼 말이다. 수두를 할 땐 그렇게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었는데 그 시기를 이겨내고나니 그 흔적들이 꿈만 같고 소중하게 여겨지는것처럼 말이다.” 그럴진대 김혁은 “지나간 세월을 다시 돌이켜보면 숨길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두 작품은 진락정애(尘埃落定)의 지나간 사춘기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고 현실을 정시하고 앞을 내다보는 결연함을 내비치기도 하는것이다.     (4)사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창작방법에 있어서 사실주의적인 특색을 보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좀 다르다. 이를테면 《동물의 사나움》이 시대의 본질이요, 주류요 하는데서 많이 벗어난 신사실주의로 흘렀다면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그래도 시대의 본질과 주류를 물고 늘어진 정통적인 사실주의로 많이 흘렀다. 그래서《동물의 사나움》이 시대적인 거대담론보다는 주변부의 미세담론으로 나아갔다면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주변부의 미세담론을 하면서도 간접적으로 시대적인 거대담론을 담아낸것이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세부묘사에서 상당히 성공적이다. 특히 세부묘사를 통한 인물심리의 표현은 상당히 성공적이다. 《동물의 사나움》에서 고씨형제무리들이 왕락해를 위해 복수하러 갔을 때 마소군이 벽돌장을 들고 과장된 동작으로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때리면서 일종 무독불장부(无毒不丈夫)의 독함을 보이려 한다거나 복수를 하고 와서 목욕하는 장면에서 아이들의 천진란만성 그리고 파출소에 잡혀갔을 때 족쇄를 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겁이 나서 울음을 터뜨리고는 친구들한테 짐짓 그것은 하나의 쇼에 불과했다고 거짓말하는 장면에서는 무의식과 의식의 이률배반 등을 잘 보여주었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도 똥파리무리가 김찬혁을 위해 체육과대표를 혼내주는 장면에서의 김찬혁의 여린 심성 그리고 첫 무리싸움에 참가한 김찬혁이 상철형님의 권고로 허겁지겁 달아나는 장면에서 깡패초보로서의 심리, 마지막 패거리싸움장면에서 김찬혁이 돌을 왼손에 쥐였다가 오른손에 바꿔 쥐는 동작을 반복하는 장면에서 알게 모르게 갈마드는 두려움,짜그배누님의 구미에 맞추는 일련의 짝사랑표현 등은 그야말로 일미라고 할수 있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다양한 예술수법도 구사하고있다. 례컨대 패러디, 아이러니, 풍자, 상징, 자기반영성 등 특색을 나타내고있는것이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일종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무용담 같은 호기를 보여주고있다. 그것은 어쩌면철모르는 어린이들이 멋모르고 놀아나는 짓거리에 다름 아니라고 할수 있다. 이로부터 그것은 자연히 일종 어린이들의 어른되기 내지는 어른을 모방하기라고 할수 있겠다. 이런 모방을 나타내는데는 패러디수법이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인줄로 안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는 영웅호걸들을 그린 중국고전 《수호전》에 대한 패러디를 보여주고있다. 《동물의 사나움》에서 고씨형제를 산대왕으로, 왕락해를 이신(贰臣)으로, 우북배를 구미호로, 미란을 사교계의 꽃으로 명명한다든가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똥파리, 회충림표, 짜그배누님, 홍상청형님, 마스크귀신, 앵무새 등 별명을 쓴다든가 하는것은 모두 《수호전》에서 영웅호걸들의 별호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김찬혁이 똥파리무리에 가입하는 대목에서 투명장으로 자전거를 훔쳐오도록 하는것은 《수호전》에서 산적들이 행하던 행태와 아주 비슷하다. 이를테면 림충의 량산박 입적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는 깡패, 건달을 취급한만큼 “씨팔, 내 알게 뭐야(我他妈才不关心)”, “똥꼬치 같은 놈새끼” 등 사실주의적인 걸죽한 쌍욕도 제격이지만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아이러니수법도 돋보인다. 례컨대 김찬혁의 똥파리무리 입적대목에서 똥파리가 “모주석을 배반한 림표를 똥꼬치라고 생각하고 언뜰언뜰한 사막에 떨어져 죽은 림표라 생각하고 피나게 쳐봐.”라고 말한것이나 악동들이 “동방홍”. “산아제한”,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 등 혁명노래를 열심히 부르는 장면, 쌍두마차의 형 마가가 술을 부으면서 “계급립장을 튼튼히 하자”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그 동기와 효과, 신분과 행위의 모순으로부터 아이러니를 창출하면서 유머감을 주고있다. 이런 아이러니는 독자의 현재적시각과 당시 인물들의 력사적시각의 모순에서 생겨난것에 다름이 아니다. 물론 “당시 말마디에 모주석어록과 정치적구호를 끼워넣는것이 법도처럼 집행되고 시체어처럼 류행된 상황”을 고려하는 력사적시각에서 볼 때 이런 아이러니는 아주 자연스러운것이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풍자적수법도 효과적으로 리용하고있다. 례컨대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김표가 “나”를 집에 데려다가 녀자생식기해부도를 보여주는가 하면 목욕탕에 끌고 가 그 안을 훔쳐보게 하고는 본보기극보다 낫지 않느냐며 우쭐댄다. 이것은 당시 따분하고 메마른 문화생활에 대한 하나의 시니컬한 풍자가 아닐수 없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집안의 술표를 훔쳐 회충 할아버지에게 갖다 바치는 에피소드는 절대적빈곤시대의 눈물겨운 시대적공소를 통한 풍자에 다름이 아니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상징성도 잘 나타내고있다. 제목 자체를 보아도 그것은 상징적메시지임에 틀림 없다. 《동물의 사나움》은 한무리의 사춘기에 처해 제멋대로 놀아나는 아이들을 사회성이 거세되고 “동물성”이 살아나 “사납게” 놀아나는 원초생명의 약동쯤으로 본것 같다. 그러나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는 그 한무리의 사춘기 아이들을 꽃으로 보면서 그것을 “응달”로 상징되는 광란의 사화환경속에서 핀 보기 싫은 “마마꽃”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주인공 “내”가 똥파리무리에 들어 잘 적응되지 못하는 상황을 “온몸에 마마꽃이 피였을 때처럼 병적인 가려움을 느낀다”로 상징하고있다. 육체적인 상황으로 정신적인 상황을 상징하고있는 셈이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를 전반적으로 볼 때 에필로그와 프롤로그가 조응을 이룬다. 이 소설들을 중간에 본격적인 이야기를 진행하는 일인칭수법의 사실주의소설로 볼수 있다. 그런데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동물의 사나움》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자기반영성(메타글쓰기)의 수법도 구사하고있다. 이를테면 진지한 사실주의방법으로 독자들을 글속에 들어가게 하다가 가담가담 창작과정 그 자체를 반영하는 글쓰기의 허구성 및 개연성을 곁들여 독자들을 뜻밖으로 느끼게 하는것이다. 이것은 거짓말이니 믿지 말라는둥,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정확히 얘기할수 있겠는지 모르겠다는둥 하는 제스처로 독자들을 헷갈리게 만든것이다. 실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작가의 진정성이 무너지고있다고 봐야겠다.  이외에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인물형상부각에 있어서 아이들을 취급한만큼 간단명료하고 단순할수 밖에 없을것 같다. 그러나 이것 또한 성장기 아이들을 그린만큼 복잡다단해질수 밖에 없을것 같다. 이런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놓고 볼 때 《동물의 사나움》이 인물형상 부각에 있어서 앞의 경우에 많이 치우쳤다면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후자의 경우에 많이 치우친것으로 볼수 있다. 어떻게 보면《동물의 사나움》은 개개인의 개성적성격보다는 동물처럼 맹목적으로 놀아나는 아이들의 일반적성격을 많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는 보다 많이 개개인의 개성적성격을 부각하기에 힘썼다. 례컨대 짜그배누님을 그리는 경우에도 그녀가 상철형님을 좋아하지만 자신의 리익을 위하여 똥파리와 사귀기며 결국 상철형님과 결혼하고 마지막에는 리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먹충이 같은 회충의 “주머니에서 맨 마지막으로 령감의 틀이가 나온다. 회충은 이를 보고 황소울음을 터뜨린다.”고 한 대목에서는 회충을 단지 먹충이로만 볼수 없는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고있다. 그리고 방공동모험장면에서 길룡이가 나오지 않자 김찬혁이 초조해하고 “손전지를 그에게 줄거지” 하며 김표에게 화를 내기도 하다가 결국 길룡이를 찾아떠나는데서 그의 인간적인 면이 살아나고있다. 그리고 “회충은 마가를 내보내라며 침을 꿀떡 삼키면서도 고집을 부린다. 나는 식탐을 부려 속물 취급하던 회충이 다시 보인다”에서는 식충이로밖에 보이지 않던 회충의 사나이 같은 확실함 및 선견지명이 돋보이는것이다.     2) 마무리   이상 비교론의를 일언이페지하면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중국주류문단과 조선족문단의 전형적인 성장소설의 한 케이스로 볼수 있다는것이다.  왕삭은 《동물의 사나움》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것으로 판단된다. 그는 적극적으로《동물의 사나움》을 영화 “해빛찬란한 나날”로 개작하는데 참여한다. 그는 “해빛찬란한 나날”에서 단역을 맡기도 한다. 김혁도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 대해 나름대로 애착을 가지고있다고 봐야겠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2003년-2004년까지 《장백산》잡지에 련재되였고 2005년에 작가의 수정을 거쳐 다시 합본으로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판되였다. 그리고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 제6회 “진달래”문예상 문학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중국 당대 주류평단에서는 왕삭이 “독특한 심미적가치와 개인적경험묘사에 주력한 작품”들을 쓴다고 평한다. 그의 소설은 대부분 범범을 일삼는 도시 젊은이들의 삶을 거침없이 그려 내는것이 특징이다. 이때문에 그의 소설은 이른바 “범죄소설”로 분류되기도 한다. 《동물의 사나움》은 전형적인 그 한 보기가 되겠다. 김혁은 문학을 “상처”우에 핀 꽃이라고 말한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그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이로 볼 때《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비슷한 성질의 소설인것 같다. 그러나 이들이 추구한 경지는 상당히 다르다. 《동물의 사나움》이 일종 “문학을 희롱하는듯”한 유희적경향을 나타냈다면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동물이 자기의 아픈 상처를 핥듯 진지한 유의미적경향을 나타내고있다. 이로부터 《동물의 사나움》이 일종 개인적인 성장에피소드의 한 잠꼬대로 안겨온다면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사회적인 인간성숙의 전사(前史)로 안겨오게 되는것이다.          참고문헌:   왕삭, 《동물의 사나움》 대해출판사, 2001. 김혁, 《마마꽃 응달에 피다》 연변인민출판사, 2005. 장영봉, 륙만승, “자유의 곤경-왕삭의 소설 《동물의 사나움》을 읽고” 유방학원학보, 2005. 5. 서민, “왕삭과 문화대혁명후기의 도시류랑자-《동물의 사나움》을 시례로” 상해문화, 2009. 1. 조상, “《호밀밭의 파수군》과《동물의 사나움》의 부동점을 론한다” 새과정연구인문예술, 2009. 4. 갈동휘, “문학의 주체성 표현-《동물의 사나움》,《1975년에 부쳐》, 《작은도시의 호걸》을 실례로” 광동기술사범학원학보, 2009. 8. 중국조선족작가 김혁의 문학서재 전경업, “생명, 그 노래는 레드-김혁의 장편소설 《마마꽃응달에 피다》가 말하는 성장과 그 허무를 두고, “중국조선족작가 김혁의 문학서재”   “연변문학” 2012년 2월호 
155    문화강국-프랑스 댓글:  조회:6384  추천:8  2014-07-23
프랑스는 분명 잘 사는 선진국. 그런데 여기에 와 보니 사람들 살기 어렵다고 야단이다. 불경기란다. 세계경제 한파가 아직도 휩쓸고 있단다. 매년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는 잘 살 수밖에 없다. 매년 자국민보다 훨씬 많은 외국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으니 말이다. 세계 제1의 관광국. 관광수입만 해도 먹고 살만 할지어! 그럼 왜서 사람들, 프랑스로 몰려들지? 그것은 다름 아니라 프랑스에는 문화가 있기 때문. 바로 이 문화 때문에 프랑스는 유럽 내지 세계의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과거에 화려한 역사를 지녀온 수많은 나라들이 쇠퇴나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에 이르러서도 세계 최강대국의 하나로서 당당히 자리매김되고 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건설된 것이 아니다. 프랑스문화도 하루아침에 건설된 것이 아니다.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문화를 중시해왔다. 일찍 샤를 5세가 루브르궁에 초창기 문학작품들, 즉 973권의 필사본으로 개인서가를 만들어서 소장하면서 루브르는 단순한 궁전이 아니라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 필사본들은 현재 국립도서관의 기초가 되었다. 그러다가 루이13, 루이14의 17세기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문화사업을 국책으로 추진해왔다. 루이13은 1634년에 프랑스학원을 세운다. 이어서 루이14가 1661년에 무용학원, 1962년에 카페트제작소, 1663년에 명문학원, 1664년에 회화와 조각학원, 1666년에 과학원, 1667-1672년 기간에 파리천문대, 1669년에 음악학원, 1671년에 건축학원, 1680년 파리희극원 등을 세웠다. 이런 기관들은 국가에서 투자하고 관리하는 문화기구로서 프랑스문화사업의 골격을 이루어놓았다. 루이14는 정치와 재정적인 조치를 취하여 대량의 국외의 문화엘리트들을 섭외하여 프랑스가 유럽의 문화중심이 되게 했다. 태양왕이라 불리던 루이 14세는 베르사유궁정으로 상징되는 프랑스의 황금시대를 맞이하여 절대왕정의 절정기와 더불어 문화도 그 시대의 한 절정을 이루어 놓았다. 그 무지막지할 봉건군주가 말이다. 발레도 루이 14세의 발명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보다 경탄케 하는 것은 프랑스대혁명시기 그 혼란의 와중에서도 ‘민족유산’이라는 개념이 산생되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3개 중요한 국가문회기구 즉 국가당안관, 국가도서관, 중앙예술관을 설립했다. 이런 기구들은 바로 유산을 보호하고 국민을 교육하며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예술인재를 육성하기 위한데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18세기와 19세기는 ‘프랑스세기’라고. 실로 프랑스는 이 근현대에 있어서 줄곧 세계 보편의 정신가치를 창출하여 세인의 주목을 끌고 공감대를 형성했다. 주지하다시피 18세기 프랑스계몽운동은 사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계몽한 운동이였다. 그것은 한 차례 미증유의 사상해방운동이였다. 봉건의 예속성을 타파하고 나의 주체성을 찾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철학사상, 디드로의 ‘의심은 철학을 향해 내디딘 첫 걸음’과 무지몽매를 불사른 ‘백과전서’, 몽테스키의 입법, 사법, 행정 3권의 분립을 주창한 “법의 정신을 논함”, 그리고 볼테르의 인류의 존엄과 자유를 숭상한 인도주의를 체현한 “철학사전”, 루소의 평민의 콤플렉스를 발산한 ‘하늘이 부여한 인권’과 ‘주권은 민중에게!’라는 사상을 나타낸 “사회계약론”, “참회록”... 이들 기라성 같은 사상이 결국은 프랑스자산계급대혁명의 ‘인권선언’ 및 자유, 평등, 박애의 슬로건으로 집약되고 공화정의 새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부리예, 쌩시몬으로 대표되는 프랑스공상사회주의사상은 1871년 파리꼼뮨으로 승화되어 세계사회주의 새 시대를 열기도 했다. 이로부터 놓고 볼 때 20세기 초 우리 중국의 주은래, 등소평 등 우수한 공산주의자들이 프랑스에 와서 구국의 진리를 찾고 탐구한 것도 지극히 정상적이다. 이 200여 년간 프랑스는 수많은 걸출한 문학가, 예술가와 과학가를 배출하기도 한다. 문학가로는 샤다뿌리앙, 발자크, 스탕달, 위고, 죠지·상, 메리매, 프로벨, 대듀마, 쇼듀마, 보드렐르, 도데, 졸라, 범이나, 로만·롤라, 음악가로는 백료차, 고낙, 비즉, 득표씨,화가로는 득라그락와, 모네, 마네, 득가, 뢰뇌아, 세쌍,조각가로는 로댕, 려득… 과학영역을 보면 라와석이 1777년 산소를 중심으로 한 연소이론과 질량보존법칙을 세워 화학의 한 차례 혁명을 이끌어 내어 18세기 과학발전의 가장 휘황찬란한 성과의 하나로 되었다. 그리고 “화학요강”에서 33종 원소의 분류표를 상상해내 인류 최초의 진정한 화학원소표가 되었다. 1864년 파시득은 현대미시생물학의 초석을 닦아놓았고 1885년 7월 6일,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에게 미친개 면역접종법을 진행하여 의학실천의 중대한 발전을 가져왔고 1898년, 물리학자 큐리부부는 레디움을 발견하여 한차례 물리학의 혁명을 일으켰다. 프랑스의 이런 성과는 노벨상으로 이어진다. 1901년 프랑스의 래네·소리보려다모가 세계적으로 처음으로 문학노벨상을 받은 이래로 1985년 크로득·세몽이 재차 문학노벨상을 받은 80여년 사이 도합 12명이 수상하여 세계 제1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영국, 독일, 이태리, 서페인, 러시아 등 기타 유럽문화대국의 거의 배가 된다. 과학영역에서는 11명이 물리, 4명이 화학, 6명이 생명(의학)도합 21명이 수상했는데 미국, 영국, 독일과 더불어 세계 최다다. 그래서 우리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문학을 하려면 프랑스로!’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로부터 사실 세계의 문학, 음악, 미술 등 많은 예술활동은 파리에 집중되고 꽃펴나고 반발과 공명을 되풀이하면서 새로운 틀 속에서 다시 창조된다. 고전주의, 계몽주의, 사실주의, 낭만주의, 자연주의, 유미주의, 다다이즘, 미래파, 추상주의에서 쉬르리얼리즘(초현실주의) 등 세계문학예술사조가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이에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 대통령이 된 드골은 “희망회억록”에서 “그 어떤 시대에도 프랑스는 천성으로부터 출발하여 ‘하느님의 위대한 사업’을 완성하고 자유사상을 전파하며 인류의 기수가 되리라!”고 호매롭게 말한다. 그리고 봉피두 대통령은 1970년대 제1차 세계석유파동 때 ‘프랑스는 석유가 나지 않지만 사상이 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실로 프랑스는 사상대국!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의 상징. 프랑스는 1959년 7월, 제5공화국시기 세계적으로 처음으로 문화부를 국가기관으로 설립한 나라다. 당시 드골대통령은 프랑스 유명한 작가 마얼롤을 장관으로 임명했다. 그리고는 이어서 정부령으로 문화부의 직책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즉 절대 다수의 프랑스인들로 하여금 인류, 더욱이 프랑스의 문화걸작을 접근할 수 있게 하고 프랑스문화유산에 흥취를 가지게 하며 문화예술창작을 촉진하고 예술원지를 번영하게 하는데 있다. 미트랑 대통령이 집정한 14년 간(1981—1995)문화사업에 보다 많은 자금을 투입하고 문화의 공익성을 강조했다. ‘문화부의 사명은 모든 프랑스사람의 발명창조의 능력을 키우고 그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자기의 재능을 검증받게 한다. 그리고 자기의 뜻에 따라 예술훈련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집단의 공동이익을 위하여 전국과 지방 및 부동한 사회단체의 문화재부를 보호하며 예술작품과 예술사상의 창조를 위하여 지지와 방조를 제공하며 그런 작품들로 하여금 많은 감상자를 획득하게 한다. 그리고 세계문화와의 자유로운 대화 속에서 프랑스문화예술의 발전을 촉진하도록 한다.’ 그 후 희라크 대통령집권시기에는 프랑스문화를 추진하고 보급하는 것을 세계에서 프랑스의 대국적 지위를 새롭게 확립하는 중요한 조치로 여겼다. 마얼롤 대통령집정 시기는 ‘대중으로 하여금 평등하게 문화복지환경 속으로 들어가고 참여하며 융합되게 하’기 위하여 문화부에서는 전체 공민이 문화사업에 들어서게 하고 예술가의 사회복지보호를 강화하는 정책을 폈다. 프랑스의 문화정책은 뭐니 뭐니해도 문화민주주의에 있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중앙집권제이다. 모든 것이 수도 파리에 집중되어 있다. 문화도 마찬가지. 파리의 경우 근교를 포함하여 70여개의 박물관과 기념물들이 있다. 나는 1937년 만국박람회 때 건축된 반타원의 샤이오궁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거기에만도 영화박물관, 문화재박물관, 해양박물관, 인류박물관, 파리국립극장 등 문화시설이 즐비하게 꾸려져 있었다. 그래서 각 지방에도 각종 문화원을 세우고 도서관, 박물관, 기념관 등 문화시설을 건립했다. 물론 이런 시설들을 눈가림 식으로 대충 만드는 것이 아니다. 최고 멋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피카소미술관 하나만 놓고 보아도 알만하다. 피카소미술관은 유럽 여러 나라에 있는데 파리에 있는 것이 피카소 고국인 에스빠냐를 제치고 가장 높이 평가되는 것은 그 직실한 보기. 피카소미술관은 11년의 기획건설기간에 세 대통령에 다섯 문화부 장관이 참여했던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문화를 공민 권리와 복지로 취급하고 있는 만큼 모든 민중이 보편적으로 문화에 참여하고 누리도록 여건을 마련한다. 이로써 프랑스사람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쉽게 문화를 접해 문화인이 되게 하는데 있다. 현재 매년 전국 각지에서 조직하는 영화절만 해도 160개에 달한다. 그리고 매년 3월 ‘시인의 봄’, 6월 ‘노천음악회’ 등 전국적으로 행해지는 문화행사는 전국을 문화적인 분위기로 만든다. 10월은 각종 박람회가 많이 열린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자동차박람회로부터 쵸콜릿박람회 등의 다양한 박람회가 인기를 누린다. 그리고 많은 박물관이나 기념관 같은 데는 18세 이하는  무료이고 18-25세도 할인이 많다. 매월 첫째 월요일에는 모든 사람에게 무료. 그리고 최고급의 오페라나 발레 같은 경우 시작 30분 전에 180유로하는 최고 좋은 자리의 표가 남았을 때 학생, 실업자,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30유로에 판매한다. 그래 나 같은 놈은 싸구려나 공짜 기회를 이용하여 루브르궁도 공짜, 오르세도 꽁짜, 오랑주도 공짜... 재밋는 공짜로 돌아쳤지! 프랑스는 또 문화의 예외와 문화의 다양성원칙을 주장한다. 1993년 10월, 프랑스정부는 40여개 프랑스어국가지도자들이 참가한 프랑스어공동체수뇌회의에서 통과한 한 결의에서 ‘문화예외’의 개념을 천명했다. 이런 문화예외의 주장은 자연히 문화다양성의 원칙도 이끌어 내왔다. 2001년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의 회의에서 프랑스대통령 희라크는 정식으로 ‘문화다양성’의 개념을 제출한다. ‘문화를 글로벌화하되 문화의 다양성을 제창해야 한다. 이런 다양성은 매개 민족이 세계상에서 자기의 독특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자기의 매력과 진리로 인류의 재부를 충실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 것이다. 프랑스의 추동 하에 대회에서는 ‘문화다양성선언’을 통과했다. 그리고 2003년 프랑스는 카나다와 공동으로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에 약속력이 있는 ‘문화다양성을 보호할 데 관한 국제공약’을 통과할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2005년 주로 프랑스의 노력 하에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는 제33차 대회를 열어 ‘문화표현형식의 다양성을 보호하고 촉진할 데 관한 공약’을 통과했다. 이로부터 프랑스는 ‘자신의 문화특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미국식 문화 패권 및 제국주의에 맞선다. 1990년대 유럽연맹과 미국 사이 무역관세 총 협정에 관한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서 문화산품으로 하여금 ‘문화예외권’을 누려 일반 상품과는 달리 별도로 취급하게 하였다. 그리고 유럽연맹무역부장회의에서도 프랑스는 혼신의 힘을 다 하여 유럽연맹으로 하여금 유럽과 미국의 자유무역담판에서 시청산품을 예외로 취급하는데 동의하게 하였다. 사실 프랑스문화는 그 출발점에서부터 다양성의 색채를 띠었다. 이를테면 프랑스는 5세기에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서게르만계 프랑크족의 지배아래 놓이게 됨으로써 로마문화와 게르만문화가 융합되면서 그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프랑스는 여러 인종, 문화가 무난히 조화롭게 잘 지내고 있다. 전통적인 골족 및 그 문화, 그리고 이주해온 아프리카종족 및 그 문화, 아랍계 종족 및 그 문화, 아시아계 종족 및 그 문화, 이외에 유태계, 집시계... 서로 ‘파동(미안)’, ‘맥시(고마워)’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 실제로, 법적으로 종족기시나 문화멸시는 엄금되어 있다. 누구와 충돌했을 때 종족문제를 물고 늘어지면 절반은 이기고 들어간단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유난히 백인과 흑인의 커플이 잘 눈에 띠이기도 한다. 프랑스는 문화적인 콧대가 높다. 그러면서도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기념비적 건물을 지을 때는 전 세계 범위에서 입찰을 한다. 그래서 민족, 국적에 관계없이 가장 훌륭한 설계나 시공을 확보한다. 그래서 미트랑대통령 때 그랑루브르궁계획 하에 현재 유리금자탑입구 설계를 미국국적 중국인에게 맡겼고 오르세미술관의 설계는 오스트리아 사람에게 맡겼고 새 개선문의 설계는 댄마크 사람에게 맡겼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프랑스는 기회의 땅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세계 유수의 예술가, 문화인들이 프랑스로 몰려들고 있다. 사실 프랑스의 수도 파리의 지하철을 이용해보면 ‘Porte’가 들어가는 역이름이 상당히 많다. 이것은 어디어디로 향한 문이라는 뜻이다. 파리는 밖으로 그만큼 개방되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프랑스사람들은 동성애도 하나의 문화로 받아준다. 프랑스사람들은 성에 대해서는 즐겁게 담론한다. 그러나 개개인의 성적 취향에 대해서 묻는 것은 금물이다. 물으면 실례. 그런데 일단 말이 나왔을 경우, 예컨대 나는 이성만 사랑해라고 하면 너의 반쪽밖에 사랑할 줄 모르네라고 농담을 한단다. 그래서 동성애들이 미팅하고 활개치고 다니는 특정지역이 형성되기도 했단다. 요즘에는 동성커플을 위한 PMA(인공수정), GPA(대리출산), 어린이입양까지 정부 차원에서 합법화하는 토리비법안이 거론되고 있다. 물론 반발을 사기도 하지만. 그리고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도 형평성을 이루며 나름대로 꽃을 피우고 있다. 미트랑대통령 시절에 옛 감옥터를 이용한 파스티유민중오페라극장과 유레공원구에 록가수들이 대형공연회를 할 수 있도록 록음악센터를 세운 것은 그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사실 프랑스는 정치적인 파업도 하나의 문화로 승화시킨 나라다. 파리시청 건물 정면의 시계아래에는 프랑스의 국가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가 박혀있다. 바로 여기서 ‘시청 앞에서의 키스’라는 프랑스낭만을 만방에 알린 사진이 탄생하지 않았던가. 시정 앞 광장은 파업이라는 뜻의 그레브광장. 실제로 파업의 현장이 되기도 한다.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을 설치하여 시민들이 한때를 즐기게 한다. 프랑스사람들은 파업의 나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파업을 잘 한다. 혁명도 잘 한다. 프랑스대혁명, 1830년 7월혁명,  1871년 파리꼼뮨, 1968년 파리의 학생과 시민들을 중심으로 5월혁명... 그런데 이들 파업이 참 재미나다. 파업하는 쪽에서 폭력사태를 방지하고 과격시위자들의 합류를 막고자 자원봉사자들과 직업경호원들을 투입하여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며 나아가고 있다. 이런 것을 파업문화라 해야겠지! 프랑스문화는 참신성과 독창성으로 돋보인다. 튀는 멋진 개성이라고 해도 좋다. ‘내정불간섭’, 현재 ‘유엔헌장’에 명시된 국제관계의 기본준칙이다. 그런데 이 이념은 최초로 1793년 프랑스헌법에서 가장 먼저 제출된 것이다. 프랑스는 또한 유럽연맹(EU)의 제창자고 설계자고 추동자였다. 1950년 ‘유럽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사람 랑·모네가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의 구상을 최초로 제출하고 프랑스에서 제정한 유럽헌법조약이 2007년에 통과됨으로써 유럽은 현재 정치, 외교, 군사연맹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프랑스는 냉전이 결속된 후 초강대국 미국이 세계를 쥐략펴략하는 국면에 맞서 최초로 다극화세계를 구축할 데 관한 이념으로 미국의 단일주의에 맞선 다원주의원칙을 제출했다. 기후온난화문제에 맞서 책정 가능한 배기감량목표를 내왔고 세계적인 금융위기에 맞서 새로운 국제금융질서를 확립할 것을 호소했다. 이로부터 프랑스는 세계인들로부터 ‘사상독립, 창신돌출’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세계여론을 보면 프랑스는 종합국력으로 볼 때 2류 중등국가이지만 세계무대에서 일류대국의 역할을 논다. 그것은 다름 아닌 프랑스문화의 국제영향력 때문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사실 거창한 국제사회에서의 이런 개성적인 독창성은 제쳐두고라도 프랑스사람들의 일상생활의 스타일만 놓고 보더라도 마찬가지. 파리의 어머니강-센강의 다리를 좀 보자. 몇 세기 전부터 죽 30여개를 지어왔단데 같은 모양의 다리 하나 없다. 다 자기 나름대로의 모양새를 자랑한다. 그리고 건축을 좀 보자. 프랑스도 현대도시인 만큼 새로운 현대적인 건축을 많이 짓는다. 현재 내가 몸 담고 있는 파리7대학 부근은 새로운 도시개발구로 새로운 건축이 많이 들어선다. 그런데 그 건축들이 같은 모양새가 아니다. 극력 현대건축의 기하학적인 멋 없는 단순함에서 벗어나고 있다. 어떤 것은 네모꼴과 원형의 찧고 빻기, 어떤 것은 들쑥날쑥 허물어질 듯한 감을 주기도 한다. 또 어떤 것은 숭숭 구멍을 만들고 뻥 공간을 만들어 시원한 감을 주기도 한다. 파리7대학 바로 옆에 있는 프랑스국립도서관은 도서관답게 세 개의 펼쳐 놓은 거대한 책모양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여하튼 기발한 착상 속에 현대건축의 천태만상을 창출하고 있다. 그래서 파리7대학 부근은 많은 건축가들이나 건축을 배우는 사람들이 배우러 오는 성지가 되기도 한다. 프랑스사람들은 교육에서도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남과 다르게, 튀게’를 강조한다. 컴퓨터프로그램과나 디자인과에 다니는 중국 유학생들의 말을 들어보면 교수들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개성’, ‘독특함’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참 그기에 맞추기가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학생들은 잘 따라 가는데 말이다. 여기 사람들 일상 옷차림이나 치레를 봐도 참 재미나다. 잘 산다는 사람도 별로 명품이나 비싼 것을 입는 것 같지 않고 아무 거나 막 입는 것 같다. 그런데 어쩐지 그럴듯해 보이고 멋져 보인다. 그 사람, 그 옷에 딱 어울리는 것, 내 몸에 맞고 좋은 것이면 다다. 그리고 치레도 마찬가지. 나는 여기에 오기 전에 여자들 귀걸이만 있는가 했는데 여기에 와 보니 입술걸이, 코걸이, 눈썹걸이... 여러 걸이가 눈에 띠운다. 그리고 여자들만 이런 걸이를 하는가 했더니 많은 남자들도 이런 걸이를 하는걸. 프랑스사람들은 남이 어떻게 해 다니든지 절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는 여기 와서도 중국에서 하던 버릇대로, 제 버릇 개주랴~ 머리를 박박 밀었다. 그리고는 활개치며 강의에 들어가고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 누구도 나의 까까 중머리를 의식하지 않는다. 좀 허전해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우리 쪽 같으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조로 대학교수가 그런 머리... 하는 식으로 관심을 보였겠는데 말이다. 프랑스는 식당도 마찬가지. 보톨식당, 동성애식당, 빙하식당... 이상한 테마 별 식당이 많다. 여하튼 프랑스사람들은 우리 눈에 ‘괴짜’들이 많다. 나는 트람(유궤전차)을 내려 학교입구로 들어갈 때면 항상 머리를 들어 위로 쳐다보며 좀 걸음을 조심조심하게 된다. 워낙 거기에는 여러 가느다란 긴 쇠막대 위에 큰 바위들이 듬성듬성 얹혀 있기 때문이다. 해나 그 바위가 떨어지지 않을가 항상 조심하게 되는 내 마음. 에익, 예술도 감상할 줄 모르는 못난이!             프랑스사람들 자체가 문화를 아끼고 사랑한다. 프랑스사람들 일단 자기의 전통문화를 사랑한다. 그들은 19세기 중기 오늘의 현대적 파리도시를 건설한 오스만을 많이 욕한다. 건설의 명분으로 아름다운 옛 건물이나 명소를 많이 헐어버렸다고. 사실 나는 파리시내를 걷다보면 이 도시는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가 참 잘 어우러진 매력적인 도시라는 감을 자기도 모르게 느끼게 되는데도 말이다. 우리가 가벼운 현대에 더 많은 매력을 느낀다면 파리사람들은 어쩌면 무거운 전통에 더 매력을 느끼는 듯하다. 파리에서 마레지역은 제일 큰 역사보호구이다. 1500동의 옛 층집이 있다.그래서 파리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곳의 하나가 되고 있다. 파리7대학은 다른 곳에서 시교의 조용한 원래 밀가루공장지역으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그런데 건물이름이 참 재미나다. 우리 학과 사무실이 있는 곳의 건물은 밀가루창고라는 이름이고 내가 강의하는 청사는 정미소라는 이름이란다. 밀가루공장 건물을 수선해서 그대로 쓰면서 이름을 그대로 이어 받은 것이다. 건물의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서란다. 사실 프랑스사람들은 옛 것에 대한 정취가 다분한 것 같다. 내가 사는 동네는 현대건물이 많이 들어선 파리시교다. 그런데 그 현대건물들 사이를 지나다 보면 무슨 유적지를 발굴하다만 것처럼 주위는 정화된 가운데 돌덩어리를 늘어놓은 상황이 눈에 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기간에 루브르궁에 보관한 10만 개의 보물을 민간에 보관시켰는데 전후 한 개도 차실없이 회수했단다. 잘 보관되어 있었다. 훼손이 없었다. 생제르맹 데프레를 좀 보자. 전통적으로 살롱문화를 유행시킨 곳. 여기 주요 카페들은 예로부터 작가, 예술가, 출판업자들이 모여서 토론하는 장소.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작업실을 갖고 있고 19세기에 옮겨온 여러 출판사들도 모여 있다. 1945-55년 사르트와 보봐르, 그리고 까뮈를 중심으로 한 실존주의 및 그와 관련되어 부활된 보혜미아니즘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지금도 문학, 예술, 철학을 비롯한 문화인들의 사교의 활력적인 중심지로 되고 있다. 그래 나는 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군 한다. ‘생각하는 사람’들, 바로 프랑스사람들.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지? 바로 문화를 생각하는 거라고! 프랑스는 제도적으로 예술가를 예우하거나 문화사업을 지원한다. 예컨대 법적으로 창작자유를 절대 보장한다. 엄밀한 검증을 거쳐 일단 예술가로 인증이 되면 아뜰리(작업장)가 딸린 집을 싼 사용료만 내고 살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국가에서 창작계획서에 따라 지원하고 작품을 구매도 해준다. 세금도 거의 무료에 가깝다. 수입의 일부를 협회에 납부하면 된다. 기획, 공연, 영화 등 집중적인 작업을 하고 쉴 때도 국가에서 최저 생활비를 제공하여 준다. 그리고 문화사업을 지원하는 업체는 3%좌우의 세제혜택을 받도록 되어 있다. 여하튼 기본 의, 식, 주의 보장 하에 예술문화활동에 종사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뒷받침해준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예를 주고 있다. 사실 나는 루브르궁에 갔다가 ‘프랑스와-조제프 엥’이라는 유화를 보고 감개무량한 적이 있다. 그것은 일찍 1825년 1월 15일, 샤를 10세가 예술가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에도 파리 라틴지역에 있는 만신전에 전문적으로 역사상에서 걸출한 문학, 예술, 철학가를 기념하고 있다. 파리는 고급브랜드가 많다. 샤넬, 디오, 피얼카단, 스테롱... 파리에서 매년 두 차례 진행하는 복장전시회는 세계복장디자인의 스찔과 그 흐름을 이끌고 있다. 프랑스사람들은 자기의 이런 브랜드를 사랑하고 아낀다. 샹젤리제에 가보면 이런 명품브랜드는 한정 판매를 잘 한다. 그리고 요새 프랑스가 불경기라 포도산지나 포도주생산지를 외국에 처리하더라도 명브랜드는 절대적으로 고수한다. 명브랜드를 팔 경우에도 대개 자기가 경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단다. 사실 프랑스제품의 브랜드가치도 따져보면 거기에 배어있는 그들의 문화의 힘에 다름 아니다. 사람들은 프랑스문화의 힘에 감복하고 젖어들어 그 브랜드에 공감하게 되고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되뇌이게 되는 것이 바로 문화는 생산력, 브랜드, 힘. 샹젤리제 대로와 이어진 개선문의 뒤편에 일직선으로 뻗은 길을 지나 센강 건너면 약 3,2키로미터에 걸쳐 데팡스지구가 나온다. 이곳은 미래도시형으로 차도와 철도 등의 교통시설과 전원케이불 등이 지하로 들어가 소음이나 배기가스를 줄이고 고층빌딩가에 녹지를 조성했다. 넓은 광장에는 미로를 비롯한 60여명의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세자르의 12미터 크기의 정크아트의 ‘엄지손가락’ 조형물도 있다. 여기에는 빨강, 파랑, 노랑의 거대한 미래형 초현대식 건물이 조성되어 있다. 그  앞에는 내부가 뚫린 거대한 정육면체의 대형아치문-1989년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맞아 제2의 개선문이 세워져있다. 프랑스는 제2의 그랑-큰 도약과 개선을 꿈꾸고 있다. 이 도약과 개선에도 프랑스 국민일동은 ‘오직 문화만이 프랑스의 위대함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다. [끝] 2014.2.20 동북아신문 2014-7-21    
154    아이는 아이답게 댓글:  조회:7703  추천:3  2012-11-28
1980년대 초 처음 연변에 왔을 때 이곳 아이들이 엄마를 ‘“어머니’하거나 어른들에게 깎듯이 존대말을 쓰는것을 보고 매우 기특하게 생각했다. 우리 "안쪽"에서는 그냥 "엄마"라고 부르거나 어른들에게도 제멋대로 말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거기에 비하면 연변애들은 정말 성숙되고  "안쪽"애들은 정말 미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한번은 한 후배의 집에 놀러갔다가 5살 나는 후배의 아이가 당시송사를 얼음에 박 밀듯 줄줄 외우는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중국 고대문학사를 가르치는 교수들도 뺨칠 정도였다. 그리고 A, B, C, D... I love you! 하며 영어도 곧잘 했다. 그래서 우리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러자 그 애의 부모들은 희색이 만면하여 으쓱해했다. 그런데 어쩐지 그 아이의 몸에서는 슬픈 비극적 색채를 엿볼수 있었다.  우리 부모들에게는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우리는 아이들이 커 가는것, 어른이 되여가는것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른바 조기교육으로 아이들을 조숙시키는데는 분명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또 하나의 발묘조장(拔苗助長)이기때문이다.  인생에는 분명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중년기, 로년기 등 여러 단계가 있다. 인생은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갔다가 다시 한 단계, 한 단계 내려오는것이다. 인생은 단계마다 나름대로 할 일이 있고 재미가 있다. 그때그때 주어진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커가는것이 가장 바람직한 인생인줄로 안다. 례컨대 유아기에는 아무 곳에서나 마음대로 배설할수 있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좀더 큰 아동기에는 천진란만함과 순진함을 마음껏 발산할수 있다. 그것에 치기(稚气)와 어리무던함이 어려도 좋다. 맑스가 일찍 고대 그리스 신화의 매력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우리에게 영원한 즐거움을 주는것은 바로 인류 유년기의 천진란만함과 순진함을 가장 잘 나타냈기때문이라고 한것도 같은 맥락에서 리해할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조기교육은 아이들에게서 바로 이런 천진란만함과 순진함을 빼앗아 가고있다. 어른스러운 아이들을 만들고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이 들기전에 먼저 늙는(未老先衰) 조로현상을 부르게 된다. 우리의 사회는 영재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이른바 천성적으로 조숙한 또리또리한 애들을 대상으로 앞서 나가는 교육을 진행하고있다. 물론 수준에 맞춰 교육을 진행한다는 차원에서 볼 때는 하자가 될것이 없다. 실제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영재교육을 하느라고 조기교육에 열을 올려왔다. 애들 교육에 지극정성인 한국에서 태아가 6개월후부터 외계자극에 반응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임신부들이 너도나도 외국어학원에 다니며 오전에는 영어, 오후에는 중국어하며 외국어를 배우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배속에 있는 태아에게 외국어교육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사실 서로 수준이 다른 사람들이 한꺼번에 많이 몰려들여 외국어를 배우게 되면 언어혼란이 일어나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수 있다. 특히 뇌가 아직 완전히 형성되지 못한 태아에게는 이런 식의 교육이 부작용만 낳을뿐이다. 현실에서는 천성적으로 조숙한 영재들이 가물에 콩 나듯 얼마 되지 않는다. 반대로 범상한 아이들, 인생의 일반적인 단계에 따라 수걱수걱 커 가는 아이들이 많다. 그러니 무슨 조기교육이니 영재교육이니 하며 야단을 피울게 아니고 인생 단계의 순리대로 교육을 진행하는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소학생들에 한해 학교에 꼭 잡아두고 억지공부 같은것을 시키지 않는다. 공부강박관념이 생길가봐 평소에 공부 잘 하라는 말도 그리 하지 않는다. 정확히 학생들이 받아물만큼 공부를 시킨다. 그리고 교실도 가족분위기로 꾸며놓고 편안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한다. 아이들에 대한 부모들의 기대도 거창하지 않고 개구쟁이가 되여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커 달라는식으로 굉장히 생활적이다.  지금은 우리 중국에서도 한국에서처럼 학원사교육을 정돈하고 중소학생들의 학습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여러가지 특별조치들을 취하고있다. 우리의 교육이 이제 정도에 들어선것 같다. 아이가 아이인 정체성을 빼앗지 말고 아이는 아이답게 키워나가야 할것이다. 
153    명예콤플렉스 댓글:  조회:7844  추천:4  2012-11-21
인간이 육체적인 존재냐, 아니면 정신적인 존재냐 하는 문제는 인간의 기본 실존문제의 하나.  사실 인간은 보다 많이 정신적인 존재이다. 이것은 바로 명예콤플렉스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그럼 명예콤플렉스란?  인간은 미명을 얻으려 한다. 아니, 이 미명으로 세상에 영원히 남고싶어한다. 인생은 지극히 짧다. 아침이슬 같은 인생이 아니더냐? 그리고 인간의 육체는 쉽게 쓰러진다. 그래서 인간은 정신쪽으로 기울어질수밖에 없다. 정신적인 아름다운 이름,  명예에 승부를 걸게 된다. 이로부터 쌓이는것은 명예콤플렉스,  인간은 명예적인 존재. 이 점이 동물과 다르다. 실로 인간의 명예콤플렉스는 우리 삶의 도처에서 나타난다. 인간은 칭찬을 받기 위해 이 세상에 온듯하다. 칭찬은 내 명예에 대한 최저한의 기본적인 긍정. 어릴 때 어른들, 특히 선생님이 “잘했어” 하는 짧은 바지 춰주는 칭찬 한마디가 얼마나 기분 좋았던가. 이 세상이 모두 내것 같은 기분. 반면에 우리는 욕을 제일 듣기 싫어한다. 욕은 내 명예에 대한 부정적인 모욕이기때문.  우리는 “개 같은 새끼!”,   개를 들먹이는 욕소리에 발끈한다. 나의 인간적 인격—명예를 개 같은 짐승으로 다운시켰기때문이다. 우리는 너도나도 1등을 하려고 한다. 공부 1등, 달리기 1등… 요새는 별 볼일 없는 1등도 많이 만들어낸다. 먹기 1등, 마시기 1등… 우리는 너도나도 선진이 되려고 한다. 사상선진, 위생선진… 우리는 너도나도 모범이 되려고 한다. 학습모범, 로력모범… 우리는 너도나도 영웅이 되려고 한다. 전투영웅,  로력영웅…  우리는 장담을 하거나 담보를 할 때도 이 명예를 잘 들먹인다. 남자대장부라는 명예로… 조직의 명예로… 서방의 결투문화도 결국은 남자들의 그 명예 하나때문에 목숨을 걸지 않았던가. 그리고 우리의 량반문화도 그 량반명예때문에 곁불도 안 쬐는 등 해프닝을 많이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사실 한자리 하고싶어하는것도 명예콤플렉스와 관계된다. 무슨 “장”자라도 붙으면 명예도 올라가고 남들보다 한층 뛰여나 기분이 둥둥 뜨는듯. 특히 우리 관본위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명예직도 그렇게 많지 않은가. 명예주석, 명예회장, 명예사장… 그리고 어디 가든지 빠지지 않는 전임주석, 전임회장, 전임사장… 순수해야 될 학문의 세계도 마찬가지. 일자무식이더라도 본 학교에 공헌을 많이 했다고 명예박사라는것도 주지 않던가. 그리고 정년퇴임을 했을 경우 그 연연할 교직에 위로를 주고저 주는 명예교수… 명예콤플렉스는 아무리 어려운 곤난도 극복할수 있게 한다. 여기에 개인의 명예, 가문의 명예, 나라의 명예 등 명예의 동심원이 파노라마쳐갈 때 무궁무진한 힘이 솟기도 한다. 올림픽 1등을 하기 위해 선수들이 수없이 흘리는 땀동이가 이것을 말해준다.  명예콤플렉스는 죽음을 쉽게 초극하게도 한다.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인생은 자고로 누가 죽지 않는다더냐, 일편단심을 다해 청사에 길이 이름을 날리리”라는 시구도 있지 않던가. 한마디로 인간은 명예에 웃고 울고 살고 죽는다.  그렇다. 인간은 명예콤플렉스적인 존재. 그렇다 하여 이런 명예콤플렉스에 맹목적으로 놀아날 때 보기가 참 초라하다. 그래서 이런 명예도 콤플렉스가 되였다 할 때 우리에게는 승화의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의 선인들은 립덕(立德), 립공(立功), 립언(立言)을 얘기했던가. 립덕, 인간의 본보기가 되기—뢰봉, 초유록처럼. 립공(立功), 민족, 나라와 인류에 공을 세우기—아인슈탄처럼. 립언, 진리의 저서를 펴내기—공자의 “론어”, 사마천의 《사기》처럼. 뢰봉, 초유록, 아인슈타인, 공자, 사마천은 바로 립덕, 립공, 립언으로 인류명예의 최고경지에 올라야 할줄로 안다. 이렇게 놓고볼 때 이런 립덕, 립공, 립언이야말로 명예콤플렉스발산의 하나의 가장 리상적인 경로가 된다는 말이 되겠다.
152    봉살과 매살 댓글:  조회:8907  추천:39  2012-11-14
나는 교육자로서 자기도 모르게 은근히 봉살(奉杀)과 매살(骂杀)이라는 말에 마음이 끌린다. 그럼 봉살과 매살이란 무엇이냐? 앞의것은 올리춰서 죽인다는것이고 뒤의것은 그 반대, 즉 내리깎아 기죽여 죽인다는것이다. 가볍게 말하면 칭찬하기와 욕하기도 되겠다. 참 재미나는 말이다. 시사하는바가 많다. 이 말은 우리 중국의 대문호 로신선생이 자기의 잡문에서 아마 최초로 한줄로 안다.  사실 긍정적인 의미에서 봉살과 매살을 잘 구사하면 우리 교육에 대단히 효과적인 줄로 안다. 물론 원색적인 의미에서 놓고 볼 때 봉살과 매살은 교육에서의 두 극단을 잘 개괄하고있다. 봉살을 보도록 하자. 부모들이 아이들을 키우는데 우리 아이 기죽이지 않기 위해 오냐, 오냐 거저 곱다, 잘한다고 하기만 하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이렇게 큰 아이는 대개 기고만장, 안하무인격이 되여 사회에 나가서 사회생활을 잘 못하게 된다. 심할 경우에는 도덕은 더 말할것도 없고 법에 저촉되기도 한다.  이에 반해 매살을 보도록 하자. 부모들이 아이들을 키우는데 우리 아이 바르게 키운다고 조금만 빗나간다 싶으면 기를 죽이면서까지 엄하게 다스리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이렇게 큰 아이는 대개 전전긍긍하며 사회에 나가서 자기가 할 일도 대담하게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시기 어려운 세월에 많은 아이를 키우는 마당에 이런 매살의 경우가 많은 줄로 안다. 사실 동방과 서방에 있어서 봉살과 매살의 현상은 있되 그 비중은 좀 달랐다. 상대적으로 놓고 볼 때 동방의 경우, 우리는 설복교육을 하는 도덕적차원의 봉살이 많았고 서방의 경우는 랭혹하게 제재를 가하는 법적차원의 매살이 많은줄로 안다. 례를 들어 한 아이가 추운 겨울 방의 창문유리를 깨였다고 하자. 우리 동방의 경우라면, 얘야, 이 추운 겨울에 창문유리를 깨면 얼마나 춥겠니? 말하자면 정으로 마음을 움직여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하는 식. 그러나 서방의 경우라면 “그래 니가 깨서, 좋아, 하루 저녁 얼어봐라.”라고 하고는 정말로 그 추운 방에서 하루밤 지내게 하고는 이튼날 말한다. “그래, 어떠냐? 춥지? 앞으로 또 깨겠니?” “아니요!” 그럼 그렇겠지. 어른은 만족한 웃음을 짓는다.  사실 서방사람들도 봉살과 매살을 잘 구사해온줄로 안다. 이른바 당근과 채찍의 론리 즉 말을 들을 때는 당근,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채찍을 들이대는 식. 똑 마치 동물을 훈육하듯이 말이다. 여하튼 그들은 바로 당근과 채찍의 론리로 충동적이며 극단적으로 흐르기 쉬운 사람들의 기질을 잘 잡아온줄로 안다. 그럼 봉살과 매살, 어느 쪽이 옳은가? 원색적인 의미에서 그 어느 하나만 옳다고 고집을 부릴 때 그것은 편집광적인 극단. 극단은 금물. 때와 장소에 맞게, 구체적인 문제는 구체적으로 풀이하는 식으로 봉살이든 매살을 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례컨대 우리 교육에 있어서는 상대에 따라 처방을 내려야 된다고 생각된다. 우리 대학생들도 마찬가지. 그래서 나는 천성적으로 기가 약하고 억압적인 환경 혹은 결손가정에서 자란 애들에 대해서는 봉살 한다. 너는 된다, 하면 된다, 개천에서 룡 나는 법이 아니더냐. 룡, 룡 하면서 구렁이를 룡으로 만드는, 짧은 바지 춰주는 식. 이에 반해 천성적으로 기가 세고 귀족적인 환경 혹은 완전무결한 가정에서 자란 애들에 대해서는 매살을 한다. 너는 코대를 좀 낮춰, 다른 사람도 생각해야지, 모난 돌이 징 맞지 않더냐, 그러니 모를 좀 죽여, 하는 식으로.  사실 봉살과 매살은 한 학생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 사람은 원래 잘하거나 잘 나가게 되면 코대가 높아지는 법. 학생도 례외가 아니다. 이때는 매살을 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은 원래 잘 못하거나 잘 못나가게 되면 기가 죽게 되는 법. 학생도 례외가 아니다. 이때는 봉살 해야 한다.  보다시피 가장 중요한것은 봉살과 매살을 변증법적으로 구사하는데 있다. 그 관계의 끈이 끊어질 정도로 너무 팽팽해서는 안된다. 그렇다하여 그 관계의 끈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게 너무 느슨해서도 안 된다. 모든것은 도(度)의 문제. 때와 장소에 맞게, 구체적인 문제를 구체적으로 풀이하는 식으로 봉살과 매살을 변증법적으로 도에 맞게 행하는것이 우리 교육의 바람직한 자세고 삶의 지혜인줄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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