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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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우리 문학의 새 지평
2019년 07월 08일 13시 26분  조회:875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우리 문학의 새 지평

우상렬

 

 

또 새로운 한해다. 묵은 한해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한해를 전망해볼 시점이다. 우리 문학도 례외가 아닌 줄로 안다. 그럼 아래에 우리 문학을 되돌아보고 새 지평을 전망해보도록 하자.

일단 우리 문학의 개념 및 범주를 좀 넓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문학의 제1요소는 언어. 위대한 고리끼가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 하여 이것이 절대 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절대 진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거늘! 우리 문학의 제1요소도 언어, 그것도 조선어. 우리는 여기에 너무 매여왔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조선어로 창작하지 않은 작품은 모두 조선족 문학 개념 및 범주에서 배제해왔다. 여기에 우리의 맹점이 있는 줄로 안다. 고전적인 민족 문학의 정의는 본 민족의 삶의 터전에서 출생한 본 민족의 작가가 본 민족의 언어로 본 민족의 생활을 반영하고 본 민족의 삶의 터전에서 돌아간 작가의 작품을 말한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본 민족’ 것이 되여야 한다. 그래서 속인주의요, 속지주의요 하는 말이 나오고 언어문제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한 민족의 문학이 이런 요소들을 동시적으로 만족을 줄 때 그것은 가장 리상적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현실은 항상 리상과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디아스포라 문학이 더욱 그렇다. 그것은 소수자로서 항상 동화에 로출되여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발적인 혹은 피동적인 동화는 알게 모르게 진행되여왔다. 문학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조선족 문학의 경우 우리는 일찍 그런 리상적인 경지를 에누리없이 추구하고 지켜왔다. 중국공산당의 훌륭한 민족정책은 이것을 담보해주었다. 그중에 어느 하나라도 결격사항이 되면 그것은 민족 문학이 아니다. 속인주의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언어 하나만 놓고 보아도 그렇다. 조선족의 경우, 우리의 1세대, 2세대들은 중국어를 잘 못했다. 잘 못한 만큼 조선어에서 민족 정체성을 확실하게 느꼈다. 그 어디에 가서든지 조선어 한마디만 들어도 더없는 친밀감과 반가움을 느끼며 민족 동질성을 확인한다. 그러니 조선어를 떠나 조선족 문학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조선어를 포기한 조선족 문학이야말로 천방야화에 다름 아니다. 리근전을 좀 보자. 그의 집은 일찍 조선에서 길림지구로 이주해왔고 그의 언어생활을 보면 한어에 능했다. 그는 일찍 중국공산당을 따라 혁명했고 한어판 길림신문사에서 사업했다. 그는 주로 문필사업에 종사하면서 한어로 문학작품을 창작하게 되였다. 이로부터 그에게는 자연히 하나의 콤플렉스가 생긴 줄로 안다. 바로 조선어 창작 콤플렉스 말이다. 그는 조선족 작가로 남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언어가 하나의 큰 걸림돌이 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1960년대 초반 한어로 창작한 장편소설 《호랑이벼랑》을 조선어로 번역시켜 출판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가 연변으로 전근하고 연변작가협회 주석이 된 후에는 피타는 노력을 하여 일부 조선어 창작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어 창작 콤플렉스는 가셔지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1980년대 초반 조선어 장편소설 《고난의 년대》가 역시 번역을 통하여 출판된 데서도 알 수 있다. 보다 싶이 우리의 제1세대, 제2세대 작가들의 조선어 창작 집착은 대단하다. 조선어는 조선족 문학의 제1요소, 제1표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개방 후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개혁개방 전에는 비조선어 창작의 ‘조선족 문학’이 전혀 존재할 자리가 없었다면 그 후는 상황이 좀 달라졌다. 일단 조선족의 한어 창작이 충격적이였다. 1980년대 초반부터 조선족 한어 창작이 본격적으로 선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단 연변대학 한어학과와 중문학과에 다니는 조선족 대학생들이 한어로 창작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표인물이 阿南(본명은 정병남)이 되겠다. 그는 시, 소설을 당시 유명한 《작가作家》, 《민족문학民族文学》, 《당대시가当代诗歌》, 《시가보诗歌报》, 《천지天池》 등 신문 잡지 간행물에 발표하였다. 특히 그의 시는 《当代大学生诗歌选萃》, 《中国第三代青年诗人探索诗选》 등 당시 대학생이나 청년 시인들의 최고 시선집에 수록되여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적어도 연변대학에서 대학생 미녀들이 우러러보는 계관시인이 되였던 것이다. 여기에 1980년대 초 연변대학에서는 ‘조선어창작반’ 하나와 ‘한어창작반’ 하나를 꾸렸다. 물론 여기서 ‘한어창작반’은 조선족 한어 창작 진작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막연히 연변지구 한어 창작 발전을 위한 것이였다. 그런데 여기서 역시 조선족 한어 창작의 꽃이 피여났다. 천화는 그 보기가 되겠다. 그녀는 미인인 데다가 한어를 한족들보다 더 잘한다. 그는 당시 연변대학 학교급 명사회였다. 물론 한어로 사회를 했다. 조선어도 그만하면 잘했다. 그런데 그는 한어로 소설을 창작했다. 수준급이다. 그래서 당시 인기만점리에 달렸다. 특히 뭇조선족남자대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였다. 그러던 그녀가 졸업을 해서 향항 사업가에게 시집을 가서 뭇조선족 남자대학생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그녀가 《고려녀인高丽女人》이라는 한어소설집을 출판하여 새로운 꿈속의 련인梦中情人이 되였다. 1980년대 말에 들어서 또 한명의 조선족 한어창작의 대가 최건崔健이 나타났다. 그는 자작 가사, 곡으로 전국을 뒤흔들어놓았다. 그의 <아무 것도 없네一无所有>, <붉은 천쪼각 하나一块红布>, <새 장정 길 우의 록新长征路上的摇滚>, <붉은기 아래의 알红旗下的蛋> 등 일련의 노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행했던 좌적 정치 하의 맹목적인 개인숭배 및 개혁개방 후 무력감, 허전함, 초조감 같은 것을 통기타 록 형식으로 타매하고 발산하여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로부터 중국 가요계에서 한동안 ‘최건시대’를 장식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다가 신세기에 들어서서는 중국 10대 70세대 미녀작가의 한 사람으로 불리우는 김인순이 등장하여 단편소설 <엄마의 된장국집妈妈的酱汤馆>, 장편소설 《춘향春香》 등 작품으로 제10차 중국소수민족 최고 문학상인 ‘준마상’을 타기도 했다. 역시 70세대 작가인 전용선이 자기의 장편소설 《눈우의 승냥이雪狼》를 개편하여 찍은 텔레비죤 련속극 《벼랑 끝에서悬崖》는 중국에서 텔레비죤 련속극 《잠복潜伏》의 뒤를 이어 두번째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외에도 백산白山TV방속국에 출근하면서 한어로 수필과 소설을 창작하는 김창국, 돈화에서 개인사업을 하며 한어시가 창작을 하고 ‘연변신시학회’ 회장으로 활약하는 안병국, 영구에서 기업가로 활약하는 정용호의 상업제재 장편소설 《히든카드》, 《무소유》, 성도에서 사업가로 활약하며 한어시집을 네댓권 출판해낸 임아정 등 유수의 조선족 한어 창작 작가들이 있다. 한마디로 조선족 한어 창작은 개혁개방 후 끊임없이, 어쩌면 나날이 돋보이면서 발전되여왔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들 한어창작을 ‘본 민족의 언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조선족 문학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중국 조선족은 현실적으로 조선어와 한어의 이중언어 사용자고 전통적으로 한문 창작과 조선문 창작이라는 이중문학 창작을 해온 사정을 감안할 때 한어 창작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물론 한 작가가 조선어와 한어 이중언어로 창작을 한다면 가장 리상적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조선족 한어 창작자들을 보면 단지 그들에게 있어서 ‘모어’인 한어로만 창작을 하고 있다. 사실 문학창작은 모어 수준이 되여야 할 수 있는 만큼 이것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이런 조선족 한어 창작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이 조선족 문학의 개념 및 범주에 들어감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의 고전적인 민족문학의 정의를 놓고 볼 때 충분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지만 필요조건은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속인주의, 속지주의, 작품내용 등 여러 필요조건을 따질 수 있겠지만 속인주의, 즉 그들의 조선족이라는 민족성분 하나로 조선족 작가로 보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 중국 국내의 경우를 보면 다른 소수민족들은 대개 이 속인주의 하나로 작가의 민족성분을 따지고 있다. 례컨대 몽골족의 마라친부玛拉辛夫는 《망망한 초원茫茫的草原(상,하)》, 장승지张承志는 《심령사心灵史》, 장족 작가 짜시다와扎西达娃는 《서장: 은밀한 세월西藏:隐秘的岁月》, 《서장: 고무줄에 묶은 혼西藏:系在皮扣上的魂》, 《그 후줄근한 여름날들夏天酸溜溜的日子》, 이족의 아래阿莱는 《모든 것이 끝났다尘埃落定》 등 장편을 한어로 창작하여 주류문단의 긍정을 받고 본 민족의 대표작가로 자리매김되였다. 여기서도 알 수 있다 싶이 이런 한어 창작은 우리 소수민족 문학이 주류 문학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첩경의 하나가 되겠다. 현재 우리 조선족 문학은 조선어 창작이 절대다수를 이루는 만큼 연변작가협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독수리전략’ 즉 조선어 창작과 한어번역을 동시에 추진하는 전략도 바람직하지만 여기에 문제점이 없는 것이 아니다. 번역 속도가 창작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번역질이 원작보다 못한 것 등은 그 보기가 되겠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우리 조선족 작가들의 경우 한 작가가 조선어와 한어 이중언어로 창작하는 것이 최선의 경지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그 차선의 경지를 선택하자는 것이다. 즉 조선어 창작을 할 작가들은 계속 그대로 창작하도록 하는 대신 한어 창작을 하는 작가들을 조선족 작가로 긍정하고 포옹하자는 것이다. 사실 조선족의 이런 한어 창작은 주류문단의 충분한 긍정을 받고 있다. 최건을 놓고 보아도 중국 당대문학 연구의 권위자인 진사화陈思和 교수의 말을 빌리면 개혁개방 후 1980년대 말 중국인의 사상정서를 가장 화끈하게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래 이런 훌륭한 작품들을 우리가 어떻게 밀어버릴 수 있나 말이다. 작가와 동족인 우리 스스로가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앞으로 조선족 한어 창작은 점점 더 상승일로를 달릴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은 또한 어쩌면 우리 조선족 문학이 조선, 한국으로 대변되는 배달반도문학 및 기타 해외 배달민족의 문학창작과 다른 특징의 하나가 되겠다. 따라서 김호웅, 조성일, 김관웅 작으로 된 《중국조선족문학통사》(연변인민출판사, 2015.)에서 최초로 최건, 김인순을 취급하고 제1차 ‘단군문학상’ 선정에서 한어창작부문을 설치하여 전용선을 뽑은 것은 하나의 좋은 스타트라고 말할 수 있다. 

배달반도를 제외한 다른 나라 배달민족의 경우를 놓고 볼 때 그들은 일단 훌륭한 민족정책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사회주의국가였던 쏘련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주 초기 우리 말 창작 명맥을 겨우 유지해오다가 점점 사라지고 전격 해당 지역 주류언어로 창작을 진행하는 데로 나아갔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제1세대 김달수, 김사량이 우리말로 창작을 진행했다면 제3세대, 제4세대로 나아가면서 점차 일본어창작이 주류를 이루게 되였다. 현대 가족의 파탄을 보여준 단편소설 <가족시네마>로 이름을 남긴 유미리는 그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영어로 창작된 장편소설 《네이티브》로 유명한 한국계 미국인 작가 리창래李昌来의 창작도 마찬가지다. 이런 나라들에서나 세계문학 연구가들은 바로 속인주의, 즉 작가의 민족성분 하나로 그들 작품을 고려인문학 혹은 재일교포문학으로 획분하고 있다. 이런 상황하에서 우리는 언어 하나에 매여 그들 작품을 고려인문학 혹은 재일교포문학 혹은 미국한인문학의 개념 및 범주에서 배제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할 수 없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즉 세계적인 배달민족 문학 차원에서 놓고 볼 때도 조선족 한어 창작은 엄연히 전반 중국 조선족 문학의 개념 및 범주에 들어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오픈된 마인드로 조선족 문학의 자장을 넓힐 필요가 있다.      

조선족 한어 창작을 강조하는 마당에 새로운 딜레마가 생기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발표지 문제가 나선다. 주류문단에 한어 창작 간행물이 많지 않은가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많다. 그래 우리의 많은 한어 창작 작가들이 이런 간행물을 리용하고 있다. 김인순이나 전용선, 아남 같은 작가는 일류 간행물에 발표하여 원고료도 톡톡히 챙기고 있다. 그런데 일반 작가들은 그렇지 못한 줄로 안다. 이 모든 것을 떠나 우리는 조선족 한어 창작을 조직하고 고무격려하며 육성하는 차원에서 전문적인 조선족 한어 창작 간행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전문 조선어 문학지는 《연변문학》을 비롯하여 4~5종을 헤아린다. 조선족의 실제 작가수나 독자수를 감안할 때 적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쩌면 원고, 독자, 판매 등 면에서 내부적인 소모전이 벌어지기도 하는 줄로 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조선족 문학잡지 생태를 좀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를테면 《연변문학》을 《조선족 문학》(잠정)으로 개명하여 조선족 문학의 종자 종합잡지로 하고 다른 문학지 가운데 한 잡지를 《조선족 한어창작작품 및 조선어작품 번역작》(잠정)으로 개정하고 전문 조선족 한어작품 및 조선어작품 한어번역작을 싣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잡지는 현재 시, 수필, 소설 등을 동시에 싣는 종합지보다는 이런 쟝르를 분공하여 싣는 전문지로 만들자는 것이다. 례컨대 《조선족 시》(잠정), 《조선족 수필》(잠정), 《조선족 장편소설》(잠정) 등 전문지로 새로 나게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문성을 추구하게 되면서 작품질도 올라가게 되여 독자들의 인기를 끌 줄로 안다. 그리고 현재 북경에서 간행되고 있는 조선어판 《민족문학》은 전문 주류문학 및 다른 소수민족 문학을 번역 소개하는 전문지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국내 조선족 작가는 물론, 배달반도를 비롯한 세계 배달어권에 중국문학을 소개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면서 중국문화를 세계에 홍보하는 국가전략에도 매치가 되는 것이다. 이런 조률을 거쳐 조선족 문학지의 생태평형은 제대로 이루어질 것으로 사료된다. 물론 모든 것은 말이 쉽지 실제로 추진하는 데는 많은 문제가 있을 줄로 안다. 특히 잡지 판매 등 경제효률적인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사실 조선족 문학지는 현재도 중국공산당의 훌륭한 민족정책 하에 유지되고 꾸려지고 있지만 앞으로 특히 새로운 조률을 통한 생태평형을 가져오고 지속적으로 꾸려지는 데도 이런 정책적인 배려가 없어서는 안된다. 적어도 재정적인 전격 지원으로 시장경제의 충격을 막아야 한다. 조선족 문학지는 시장경제와 정면으로 부딪칠 여건이 객관적으로 마련되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위기 및 멸종에 처한 소수민족 문화를 구원하고 부축하는 국가의 민족사무 정책에도 전적으로 부합된다.

조선족 문학 창작은 두말할 것도 없이 조선어로 창작한다. 그런데 이 조선어 사용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좀 새로운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여기서 조선어 하면 물론 우리 중국 조선족이 사용하는 조선어를 말한다. 적어도 남북과 구별되는 조선어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기적으로 중국 조선족 조선어규범집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언어 면에 있어서 일종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기도 하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 되겠다. 그런데 우리 조선어가 북의 조선어와 남의 한국어와 본질적인 구별점이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물론 없다. 전통적으로 같은 민족으로서 사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 언어를 어휘론, 문법, 음운론 세 범주로 나누어볼 때 뒤의 두 범주, 즉 문법, 음운론은 변화가 가장 적은 것으로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지역적인 방언차이 쯤으로 보면 된다는 것이다. 가령 두음법칙의 경우 지키면 어떻고 안 지키면 또한 어떻단 말인가. 이것을 가지고 굳이 북쪽 편이니 남쪽 편이니 하며 편 가르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완전명사 ‘-것’ 같은 것도 마찬가지. 앞에 붙여쓰면 어떻고 안 붙여쓰면 어떻단 말인가. 그러니 이런 것은 통일하면 가장 좋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자기 나름 대로 선택해서 쓸 일로 보면 되는 것이다. 현시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다원공존이 멋진 것이다. 그러나 어휘는 언어에서 시대와 더불어 산생하고 발전하며 변화가 가장 심한 부분이라 규범을 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우리 조선어의 경우는 중국의 실정에 맞추어 어휘들을 정리하고 규범할 필요가 있다. 바꾸어 말하면 어휘만은 중국특색이 나는 부분은 그 특색을 살려 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언어사용에서 과잉반응을 보일 정도로 너무 민감하다. 례컨대 한국식을 무조건 조선어식으로 고치기는 그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사실 언어의 가장 일반적인 론리를 볼 때 언어의 인기나 류행은 종합국력에 의해 좌우지된다. 어느 나라의 종합국력이 세면 그 나라의 언어가 강세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어의 경우는 좋은 보기가 되겠다. 이렇게 놓고 볼 때 한국어가 배달언어권에서 류행됨은 아주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일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상황을 놓고 볼 때 많은 글 쓰는 이들이 한국 물을 먹었고 글을 쓸 때 한국 컴퓨터 워드프로세스를 사용하고 있다. 하물며 이 워드프로세스는 사용하기가 대단히 편리하다. 잘못된 철자나 띄여쓰기를 표시해주며 바로잡아주기도 한다. 여기에 또한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에 가있으며 조선족 문학의 한국 진출을 꾀한다 할 때 한국식 표현은 우리가 막을 것이 아니고 제창해야 할 서사규범으로 승격해야 한다. 이렇다 할 때 편집들이 수고스럽게 굳이 조선어식으로 고치는 수고도 덜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왜서? 우리는 언어를 어디까지나 사용하기에 편리한 도구로 생각하지 않고 이데올로기적인 묵직한 정치로 생각하는 데 문제가 있는 줄로 안다. 좀 홀가분하게 살자. 적어도 언어사용 선택에서만은 그렇게 하자.            

조선족 문학 창작의 부실을 평론에서 찾는 분들이 많다. 일리가 있다. 문학은 적어도 창작과 평론이라는 쌍두마차로 윈윈의 날개로 달려야 한다. 현재 우리 조선족의 문학 열기는 대단하다. 각종 문학단체가 우후죽순마냥 생겨나고 문학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연변을 놓고 보면 공식적인 연변작가협회 및 그 산하 분과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민간차원의 ‘어머니수필회’, ‘단풍수필회’, ‘연변시인협회’ 등 단체가 활약하고 있다. 이들이 정기적으로 출판하는 《단풍수필집》, 《시향만리》 등은 우리 문단의 한떨기 꽃으로 피여나고 있다. 산재지구를 보면 흑룡강성에서 조선족문인협회, 료녕성에서 조선족문학회, 청도에서 조선족문인협회가 활약하고 있다. 료녕성 조선족문학회에서는 《료녕조선족문학통사》까지 나왔고 청도 조선족문인협회에서는 정기적으로 문학지 《갯벌에서 주은 하얀 진주》를 펴내고 있다. 그리고 ‘재중동포작가통일문학방’, ‘시사랑모임’, ‘백천문학’ 등 위챗계정에서의 문학활동이 돋보인다. 이외에 한국에서도 조선족문인협회가 활약하고 《동포문학》이 발간되고 있다. 이런 문학적 열기는 연변작가협회에서 조직하는 문학강습반에 가보면 더 확실하게 안겨오는듯하다. 로, 중, 청 각 세대 문학지망생들이 빼곡하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문학의 화신이 되여 안겨온다. 그리고 누가 젊은이들의 문학창작 열기가 식었다 하던가. 위챗계정에서 ‘글밤영상토크쇼’를 보면 80세대들의 문학적 열기와 감수성이 톡톡 튄다. 그리고 얼마 전에 연변작가협회에서 조직한 ‘청춘문학상’ 수상작들을 보면 80세대, 90세대들의 문학실력을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문학은 지극히 희망적이다. 그런데 강한 추진력으로 당근과 채찍의 역할을 충분히 해야 할 평론이 이런 창작 열기에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것은 어쩌면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그럼 왜서 평론이 이렇게 처지게 되였는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일단 평론인재의 결핍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현재 조선족의 평론가수는 작가수보다 태반 부족이다. 기본 비례가 맞지 않다. 그래 몇 안되는 평론가가 시면 시, 수필이면 수필, 소설이면 소설 닥치는 대로 하는 판이다. 시 전문, 수필 전문, 소설 전문, 이런 전문 평론 분공이 되여있지 않다. 그러니 평론 수준이 들쑹날쑹이다. 쟁명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만세평론이 많다. 그것은 좁은 문단이라 작가와 평론가 사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잘 아는 사이라 작가들이 자기의 제2세와 같이 여기는 작품에 대해 평론 소신껏 품평하기도 불편한 점이 없지 않아있다. 주류문단처럼 문단이 넓어 이 눈치 저 눈치 볼 필요 없이 소신껏 평론할 수 있는 객관적 환경이 마련되지 않은 아쉬움이 남는다. 연변작가협회에 전문 평론분과가 있기는 하나 전반적으로 볼 때 년령구성이 로령화되여있다. 젊음의 피가 필요하다. 그럼 어떻게 조선족 문학평론을 진작시키겠는가? 이것은 사회와 대학교의 력동적인 관계 속에서 대학교 문학선생들, 즉 학원파를 평론계에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 연변대학교의 경우만 봐도 문학평론에 종사할 소질을 갖고 있는 젊은 선생들이 많다. 그런데 이들한테는 동기부여가 잘 되여있지 않다. 민족문학 발전의 중요성이나 사명감에 대한 강조도 중요하겠지만 학교 당국에서 이번에 국가에서 특수학과, 특수대학双一流을 꾸리는 동풍을 타고 평론에 대한 중시를 돌리고 교수성과 평가에서 특별가산점 등 여러 조치를 취해 실제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조선족 문학과 평론의 발전을 위하여 연변대학교 같은 대학교들에서 투철한 민족의식을 갖고 조문학부를 본거지로 하여 문학창작과 평론과를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1980년대 초반 연변대학교에서 조선어작가반과 한어작가반을 꾸린 성공적인 경험이 있지 않는가. 현재 조선족 문단의 많은 중견작가들은 그 때 작가반을 나온 작가들이다. 이 경험에 비추어 문학창작과 평론과를 설치하면 말 그대로 창작과 평론의 윈윈효과를 가져와 조선족 문학의 발전을 이룩하게 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럴 때만이 연변대학교는 조선족 문학 및 문화의 중심이나 최후 보루로서의 제 구실을 하게 될 줄로 안다. 그리고 조선족 문학 전문 평론지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조선족 문학 평론은 여러 종합문학지에 곁방살이로 간간이 발표되고 있을 뿐이다. 조선족 문학을 리드해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전에 《문학과 예술》이라는 전문 평론지가 있어 그래도 평론이 얼마간 활기를 띠면서 조선족 문학을 리드해간 시기를 생각하면 자연히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우의 내용을 좀 정리해보면 그것은 우리 문학의 새 지평을 여는 객관적인 주변환경에 대한 론의가 되겠다. 그럼 아래에 우리 문학창작 자체, 즉 주관적인 창작 내부 문제로 눈을 좀 돌려보자. 

우리 조선족은 배달반도로부터 ‘눈물 젖은 두만강’을 건너 이주해왔다. 따라서 이주, 정착 및 개척의 력사는 우리 문학의 무궁무진한 독특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이른바 이민문학 창작이 그것이다. 그래서 1980년대 초반 리근전의 장편소설 《고난의 년대》, 1990년대 초반 최홍일의 장편소설 《눈물 젖은 두만강》, 1990년대 후반 최국철의 장편소설 《간도전설》은 이 방면의 성과작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노린 초점은 다르다. 《고난의 년대》는 계급투쟁 론리, 《눈물 젖은 두만강》은 인간성 론리, 《간도전설》은 저층 서사적인 론리로 많이 흘렀다. 여기에 얼마 전에 최홍일이 다시 상중하 대부작 이민소설로 《룡정별곡》을 창작하여 인기를 끌었다. 그는 이 소설에서 민족경제, 민족자본가를 중요한 한갈래로 다루어 이채를 돋구었다.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말할 수 있다. 보다 싶이 이민문학은 끊임없이 부동한 새로운 경지를 창출함으로써 우리 조선족의 독특한 이민력사가 하나하나 복원되며 완전성을 기하게 될 줄로 사료된다. 이로부터 결과적으로 또한 우리 조선족 문학의 독특한 한 풍경선이 이루어질 줄로 안다. 이것은 장승지张承志가 《심령사心灵史》에서 중국 회족의 독특한 이슬람교를 통하여 신앙의 힘을 노래하고 장족 작가 짜시다와扎西达娃가 《서장: 은밀한 세월西藏:隐秘的岁月》, 《서장: 고무줄에 묶은 혼西藏:系在皮扣上的魂》, 《그 후줄근한 여름날들夏天酸溜溜的日子》에서 장족의 신비한 종교정신과 신앙의 힘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독특한 원시색채와 신화매력을 발산한 것과 비슷하다. 

우리 조선족은 다분히 디아스포라적인 특색을 띠고 있다. 이주 초기 배달민족 신분, 그러다가 새 중국이 창립된 후 중국 국민 신분, 즉 중국 조선족이라는 독특한 신분을 띠게 되였다. 코리아드림, 국적소동 등은 이것을 말해주는 케이스들이 되겠다. 현재 세계는 말 그대로 세계화의 바람 속에 대량의 디아스포라를 량산하고 있다. 따라서 디아스포라는 세계적인, 어쩌면 영원한 문학소재가 되겠다. 따라서 우리 조선족 문학이 이 소재를 다루게 됨은 세계문학의 보편적인 주제에 맥이 가닿고 있다. 허련순의 장편소설 《바람꽃》,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는 좋은 스타트가 되겠다. 앞으로 이 방면의 창작이 얼마든지 계속 기대된다. 

현재 우리 조선족은 한국에 공식적인 집계로 60여만명, 민간적인 ‘집계’로 80여만명이 체류해있다고 한다. 1/4 이상이 거기에 가있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조선족 생활은 우리 조선족 문학의 한 노다지판이 되겠다. 강호원의 장편소설 《추적》은 한 결실이 되겠다. 현재 이 방면의 작품이 많이 창작되고 있지만 아직도 발굴할 여지는 많다. 이를테면 조선족의 눈에 비친 한국 형상 및 한국사람의 눈에 비친 조선족 형상 그리고 량자의 력동적인 관계 등 여러 차원에서 계속 창작 예봉을 들이댈 필요가 있다. 

우리 조선족은 어디까지나 중국 국민이다. 우리는 중화민족의 한 가족으로서 보다 많이 국내 여러 민족, 특히 주류민족인 한족과 많이 어울려 산다. 그런데 현단계 우리 문학에는 이 방면의 내용이 아쉽다. 최국철의 단편소설 <왕씨>를 비롯하여 일부 작가들의 작품에서 간간이 나타날 뿐이다. 청도조선족작가협회에서 발간하는 작품집 《갯벌 속에서 주은 하얀 진주》에 그래도 이 방면의 내용이 많이 내비치고 있어 기껍다.   

그리고 문학이 인간 실존을 다룬다 할 때 인간 보편의 삶의 존재 양상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방면에서 젊은 세대들의 작품이 돋보인다. 례컨대 김금희의 중편소설 <노마드>는 바로 현대 인간들의 노마드적인 삶의 실존, 박초란의 중편소설 <월광곡>은 현대 월광족, 욜로족들의 삶의 실존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이번 ‘청춘문학상’의 수상작들을 보면 우리 조선족 젊은이들의 중국 국내 내지에서의 사랑, 사업, 생활을 통하여 현대 젊은이들의 실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좋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 조선족 문학은 인간학 그리고 인도주의 차원에서 조선족의 삶을 얼마든지 다양하게 조명할 수 있다. 여기에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한 화두로 대두된다. 얼마 전에 연변작가협회 소설분과에서 조선족 소설의 출로를 찾아 세미나를 조직한 적이 있다. 이 문제에 있어서 필자는 내용도 내용이겠지만 순문학도 통속소설처럼 좀 재미나게 써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상 전반적인 론의를 종합해보면 그것의 초점은 우리 문학의 새 지평을 여는 데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문학은 이런 저런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희망적이다. 우리 문학의 새 지평이 열리는듯하다. 새 지평은 열리되 그것의 도안은 우리 손에 달려있다. 모두다 들어라, 아름다운 채색 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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