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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알" 없어진 시계
2014년 12월 28일 20시 36분  조회:2430  추천:0  작성자: 주정배
아마도 내가 열세네살 정도 되였을때쯤 들은 이야기이다. 우리 친구 하나가 연변 병원 동네 애들이 연변병원로비에 있는 커다란 시계의 불알을 욕심낸다고 ... 그들 병원동네에 있는 애들 몇은 머리를 써서 밤에 인적이 드믄 틈을 타서 병원로비에 있는 그 시계 불알을 도적질 하기로 합의 되였었단다. 
 
그리고는 비오는날  밤 병원에 환자나 환자들 가족이 극히 드믄 틈을 타서 그 대형시계의 왕 불알을 훔치기로 계획하였다. 그날밤 그들은 주밀하게 이층에 올라가는데 한놈, 그리고 문앞에 한애가 망을 보고 다른 한놈이 그 시계의 뚜껑을 열고 시계 불알을 빼서 옷속에 감추고 밖으로 나가자 마자 우르를 밖으로 쓸어 나갔다. 
 
그런데 그 시계 불알은 생각밖에 아주 가벼웠다. 동이라면 적어도 돌처럼 무거워야 하겠는데 ...
 
연집강 강둑에 가서 불알(시계추)을 빼서 가만히 살펴보니 쯔쯔쯔 시계 불알은 속이 텅빈 얇다란 동이였다. 
그래도 다문 얼마라도 받겠지 하고 그대로 무쇠장수(그때는 무쇠장수라고 불렀음)한테 가져가 저울에 달았더니 동값으로 20몇전을 주더라나 ...
 
20전 짜리 불알을 도적질 하려고 비오는 날에 그것도 세명이서 망을 보면서 "전략과 전술"을 쥐여 짰던 그들은 너무나 허구퍼서 자신들의 웃음거리로 친구들과 재미삼아 말하는것을 들은 기억이 있는데 아마도 이 시계 불알은 그들에 의하여 없어진 것이  아닐가 싶다.
 
요즘은 그들의 나이도 이미 환갑이 넘었으려니 이들도 어느날 몸이 말째거나 편찮으면 연변병원에 와서 이 불알 없는 시계를 보고 허구픈 웃음을 짓지 않을가 싶다.
 
 
우리가 어리던 그때는 정말 이렇게 큰 시계는 연길에도 몇개 있은것 같지가 않다. 울집에는 장춘에서 만든 자그마한 벽시계가 하나가 벽에 걸려 있었었는데 옆집에 봉춘이란애가 항상 시간을 물어 볼때가 많았다. 불시에 문을 뚝 떼고는 "몇십둥"하고 말이다. 머, 문을 두드리거나 인기척을 하는것은 너무나 예절스러워서 웃음거리가 될수도 있던 시대였으니 그럴법도 하다. 노크란 습관화 되지도 않은 부담스러운 예모였다고나 할가 하여튼 그때는 그렇게 시계가 귀하디 귀할때였으나 인심만은 최고였지 않을가.  정말 말그대로 "이웃이 사촌"이던 시대였으니 누가 문을 뚝 따고 "몇십둥" 물어보아도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알려 주었다. 
 
그로부터 얼마후 벽시계보다 그 알람이 울리는 사발시계가 나오니 그 사발시계가 집집이 하나씩은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사발시계는 매일 매일 탑을 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벽시계는 보름에 한번씩  탑을 주면 되지만 이 자명종이 달린 사발시계 (탁상시계)는 혹시 까먹고 탑을 주지 않으면 그저 그대로 멈춰 버린것을 모르고 늦잠을 자다가 학교에 지각한 적도 몇번 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몇년후, 우리가 빈하중농 재교육을 받을 때인가부터 손목시계라는것이 유행이 되면서 모두들 손목에 시계를 차고 멋 부리는라 팔을 걷어 올리고 다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농촌에 내려간 첫해 가을에 분농을 받은 것이 백원 겨우 턱걸이 하였는데 엄마가 거기에 20원 돈을 더 보태여 상해표 시계를 사준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때는 상해표 는 120원이고 동풍표란 것이 있었는데 그 시계는 료녕에서 만들었던지지 ... 모두가 상해표 보다 동풍이 못하였고 디자인도 못하였었고 질량도 못하였으며 그 가격도 20원 차이가 났던것 같다.
 
내가 시계를 차고 집체호에 가니 내시계를 모두가 한번씩 빼서 차보고는 부러워 하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리고 어떤 집체호 여자들은 밥짓는 시간을 알기위한다는 아름다운구실로 내 시계를 종종 빌려 차기도 하였고 어느 촌의 친구는 맞선을 보러 갈때 남의 손목시계를 빌려 차고 다닌던 시대였다.
 
요즘은 그따위 시계는 누가 그저 주어도 차고 다니지 않는다. 전번에 볼라니 누나네 집에 서랍속에 아직도 그 기계시계 하나가 굴러 다니고있는데 누가 차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90 넘은 우리 로모도 내 조카가 준 여자용 금도금을 한  손목시계를 차고 있는데 …
 
하여간 요즘 주변에 손목시계를 찬 인간은 별반 없다. 간혹 있어도 그것을 부러워 하는 이도 빌려 차보는 일은 더욱더 없다. 시계대신 스마트 폰이다. 그것만 있으면 전화도 시간도 날자도 요일도 ... 심지어 신문같은 뉴스거나 영화마저 볼수 있는 무엇이나 다 되는 스마트폰을 갖고 다닌다. 참 좋은 세상인것 같다.
 
그렇게 말끔하게 가난 하던 시절 병원에 시계 불알을 훔쳐 팔아 먹으려고 하던 시절,  정말 영화 볼 돈 15전이 없어서 아버지 놋수가락을 가져다 팔아  영화를 봤다가 어머니 한테 되게 꾸지람을 받던 친구들도 있었으니 …
 
휴 ~ 그때는 왜 그렇게 가난했던지 ?! 요즘 애들은 말해도 믿지 않을 것 같다.
 
뜻밖에 마누라 아파서 연변병원에 약 20 여년 만에 와보니 병원도 대단히 변하였는데 구석에 처박혀 있는 이 커다란 시계가 눈에 익어 다시 찬찬히 보는데 …그때 그 어릴때 들은 시계 불알 이야기가 새삼스레 떠올라 심심 풀이로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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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2 ]

2   작성자 : 라주
날자:2016-12-07 20:40:22
한생을 살아오면서 보고 느낀 사실중에는 쓸것이 많습니다. 공연히 수필은 이렇게 써야한다 저렇게 써야한다면서 쟁론이 많은데 제가 보기에 수필은 인상이 깊은 사연들을 알기쉽게 쓴다면 거기에 소박하고 느껴지는 감화가 있다고 봅니다. 선생이 쓴 이 수필은 참 지난날을 회상하게 하면서 많은 느낌을 불러다 줍니다. 잘 보았습니다.
1   작성자 : 비적
날자:2015-01-24 11:52:13
나같으면 불알 건실하게 달린 시계 연변병원에 기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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