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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옛날 고향의 김장철 댓글:  조회:1335  추천:0  2015-11-11
11월이면 우리고향에는 각 단위마다 재무과나 공무과가 바빴다. 사처로 배추밭을 찾아 다니면서 어디에 더 좋은 배추가 있나? 어디에 더 싼 배추가 있나?하고 연길근교에 있는 채소대를 찾아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달아 다니며 배추밭을 찜한다. 그 찜한 배추 밭은 바로 우리 회사거나 우리단위, 혹은 우리 공장의 몫으로 … 우리들의 한해의 김장, 즉 다시 말하면 겨울나기 채소를 마련하는것을 도맡는다. 우리 어릴적부터 우리가 장가를 가서 애 낳고 썩 얼마후,중국이 개방해서까지 우리 연길시에서는 이렇게 가을 김장 배추를 각 단위에서 채구해서 나누어 주고 … 그리고는 다음달 월급에서 결산하고 … 하였다. 11월이면 우리 방직공장에서는 각 공단별로 겨울김장배추나 감자, 그리고 무우등을 본인들이 요구하는대로 기록하여서는 요구한 수량대호 집집이 단위의 차로 집문앞까지 운송해 준다. 누구하나 자가용은 물론 이어커 하나 없던 세월이라 차는 단위의 차로 무료로 운반해 주었다. 배추 캐는 날이면 차간车间이거나 공단마다 사람을 될수록이면 딱 필요한 사람, 다시 말하면 일선에 필요한 사람만 남아 생산을 유지하고는 모두들 옷들을 두툼이 챙겨 입고 배추캐러 떠난다. 차라야 트럭이 고작이다. 그때 당시 우리는 모두가 평등하다 보니 운전간에 서로 앉겠다고 서두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는 어찌나 춥던지 … 날씨가 요즘보다 더 추운것은 아니겠는데 … 아마도 옷들을 너무 보잘것 없이 엷게 입어서 그랬던가부다. 하여간 너무나 추워서 방직공장 준비차간에서 솜을싼 투레기 보자기를 그대로 목에다 두루거나 머리에 쓰거나 … 하는 늠들도 있었다. 달리는 트럭에 요즘 가축을 운반하는것처럼 그대로 노천에 노출되여서 바람을 맞으며 배추밭이나 감자밭 그리고 무우밭을 향해 달린다. 그렇게 추워도 당시에는 그런 차도 별로 타 보지 못한 이들도 있어서 그 트럭위에 앉아 스피드 호사를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때는 따뜻한 운전석을  간부들에게 양보하는 인간들도 있었으나 ... 없지 않아 있어으나 아주 드믈었다.  그래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요즘 그누가 한대 밖에 없는 트럭의 운전좌석에 먼저 올라 령도에 자리를 내지 않으면 ㅎㅎ 이튿날로 모가지가 날아 나지 않을가부다. 아! 나도 처음 외국에 나갔을때 망신한적이 있다. 아침 일찍 직원들을 출퇴근시키는 봉고차가 있는데 나는 일찍 나가서 멋도 모르고 우리 고향식대로 먼저 타는게 임자라고 운전수 좌석에 덥석 앉았다. 스스럼없이 부끄럼하나 없이 말이다. 본래 나이로 보아도 내 나이는 기숙사 그누구 보다 많았다. 그런데 차장이란 자식이 뒤늦게 나오더니 앞좌석문을 열고 그대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내려”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내가 더 먼저 나왔는데 “이~자식!“하고 속이 울컥거렸으나 그놈이 차장이고 바로 내 상급이라 잠간 머뭇거리고 있는데 뒤에 대리, 내가 사랑하는 박대리가 “정형 이 뒤에 자리 있어요 여기앉아요.“ 하기에 박대리 옆에 자리를 잡고 출근하는데 온하루 냉가슴 앓았다. “쬐꼬만 녀석 차장이라고 .,..” 썩~ 후에야 알았다. 자본주의는 본래 평등이란 없다는것을 … 우리가 배운 평등은 또 너무나 몰상식한 평등이였단것을 어쨌든 우리 그때는 대체로 누가 먼저 운전석에 앉으면 그게 그의 자리였다. 11월이면 우리는 각 부처거나 각 반별로 아니면 공단별로 배추를 얼마나 요구하는가고 ... 요구대로 신청한다. 우리 엄마, 엄마때는 보통 한집에 천근좌우였다.  그때는  집집이 식구가 많아서 항상 먹을 것이 모자라고 반찬이 모자라는 때여서 … 처음 새살림을 하는 젊은이들은 누가 몇식구에 얼마나 요구하는가에 따라 본인도 거기에 비슷하게 맞춰서 배추를 등기?한다.  나는 82년도 결혼하였는데 그해엔  남의집 세방살이에 김치를 담굴처지가 되지 않아 배추를 요구하지 않았다. 다음해에 난 작은 집을 분배 받았고 그래도 김치굴이라는 것이 있었기에 대충 어름잡아 겨울나기 3개월 푼푼히 처서 100일로 계산하고 거기에 배추 한포기 사나흘 먹는다고 계산하여 배추를 35 포기 를 예산하여 한포기당 4,5근 좌우로 쳐서 150근을 보명하였다. 단위에서 몇몇 젊은이들이 나의 계산에 머리를 끄덕이며 대체로 젊은이들은 나와 같이 백여근 씩 보명하였다. 물론 욕심이 많은이도 있어서 될수록 김치독이나 김치굴에 보관할수 있을 정도로 보명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당시에 김치움은 보온이 괜촪으면 통풍이 잘 안되고, 통풍이 잘되면 보온이 잘 안되또 매일 김치움 뚜껑으로 덥고 열고 하며 온도를 조절하기에는 너무나 벅차고 힘들었다. 그래도 돈을 아끼려는 욕심, 그리고 남보다 더 장만하려는 부질없는 승벽심에 많은 생배추거나 김치를 될수록 많이 장만한다. 11월이면 우리는 각 단위별로 채대를 찾아서 찜해놓은 배추는 배추 채대에 장사들이 배추 캐러 오라고 통지하면 그날로 차를 갖고 밭에 간다. 트럭에는 배추 캐러가는 사람들로 가득채우고 어떤데는 저울이 없기에 우리는 큰 저울을 차에 싣고 간다. 거기에다 문짝같은 널판자를 깔고는 그위에 배추를 올려놓고 한사람몫씩 저울에 달고는 그대로 차에 싣는다. 그리고는 거기에 다음사람배추를 싣고는 그 중간에 원단이나 신문지로 표시하고 또 다음사람몫을 싣는다. 그런데 어느밭이나 다 그러하듯이 배추밭에도 밭머리 배추는 그닥 좋지 않아서 모두들 처음에 다시 말하면 밭머리 배추를 가지기를 싫어한다. 그러면 먼저 일하기 싫어 오지 않는 사람들의 배추를 먼저 달아 싣는다. 보통 그런 배추는 포기가 작고 질이 차하다. 그렇게 반나절 고생하고는 모두들 점심때면 허기가 지면 차간에서는 간단한 건량을 사고 빼갈두어병 … 거기에 된장을 사서는 밭에 생배추속을 빼서는 된장에 뚝~찍어 술안주 삼는다. 뭐 “시장이 반찬이라”고 당시에는 그렇게 배추속+된장 안주에다도 넘 많이 마셔서 일도 바로 못하는 늠들도 종종 있었다. 요즘 어른들은 당시 배추가 맛있었다고 하는데 내생각에는 그래도 굶고 배고파서 맛있었지 않았나 싶다. 머 생가지도 뚝 따서 생오이 처럼 맛나게 먹을 정도였으니 … 이렇게 집까지 날라온 배추는 이튿날부터는 양지쪽에 배추를 널기 바쁘다. 요즘은 몰라도 당시 배추는 집집이 꼭 양지쪽에다 배추를 널어 시들구군하였다. 그렇게 낮에는 널어 놓고 밤이면 다시 모아서 무져 놓고는 얼지 않게 벼짚가마니 같은거나 헌 투레기 원단이나 보자기 같은 것으로 덮어 놓고 아침이면 또 널어 놓고 하여간 집집이 김치를 만들어 굴에 넣기전까지는 이런 고생을 많이들 한다. 이런 고생은 내가 방직창 사층집에 살때까지하였는데 그후엔 내가 외국에 나가다 보니 얼마후 까지 계속되였는지 … 이렇게 며칠 지나면 온동네 아줌마들이 바빠진다. 대체로 김장을 먼저 시작하는이들은 대부분 집에서 주부로 있는 아낙네들이다. 그들이 먼저 김치를 소금물에 담근다. 그리고 하루나 이틀을 재워서 배추 숨을 죽이고는 그 소금물든 배추를 꺼내서 다시 깨끗한 물에 깨끗이 씻는데 …. 이것을 초절임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집집이 줄지어 살던때였는데 ...정말 속담 그대로 “이웃이 바로 사촌”이였던 시대여서 그 배추를 담금었던 그 소금물을 그저 버리기 아까워서 이웃집에 물어 본다. 소금물을 쓰겠는가고 … 그러면 그집에서는 그대로 그 집에서 담았던 배추물 (소금물)에 다시 또 배추를 담군다. 울 엄마는 옆집에서 소금물을 가져 가라니 그대로 일요일 늦잠자는 나를 깨워서 옆집 김치독에서 소금물을 퍼 오게 하였던 기억도 있다.  엄마는 그 소금물을 손으로 찍어 입어 넣어 소금간을 보더니 소금을 약간 더 넣고는 바로 배추를 다듬어 거기에 넣는다. 하여간 당시에는 이렇게 이웃사촌이라 김장 때면 소금물이라도 서로 나누어 쓰곤 하였다. 며칠후 초절임이 된 후에는 배추를 싹 씻어서는 고추 양념을 바른다. 그때는 대채로 고추가루에 마늘을 같이 넣고 절구나 방아간에 찧은 양념이 고작이였다. 개방후에는 그래도 김치에 사과배도 넣고 파도 넣고 하였으나 그것은 썩 후였다. 배추를 양념까지 바른후에는 그것을 바로 굴에 넣어야 된다.  그리고 배추는 될수록 추울때에 넣어야 오래 보관 된다고 될수록이면 손을 호 호 불며 동지가 썩 지난후에야 시작한다. 그때면 남자들이 도와서 굴에 넣어 준다. 나도 바께쯔에 담아서는 굴에 넣어 주면 엄마가 담아서는 한포기씩 독에 넣는다. 독에 다 넣으면 그날 저녘에는 생김치! 금방 담근 생김치를 그대로 찢어서 만포식할 수가 있다.  생배추김치는 그대로 대가리 쪽을 따고는 찢어 먹어야 제 맛이다. 우리는 배추 김치를 담그고 난후, 그 남은 양념 량에 따라 깍뚜기를 담그거나 채지도 담근다. 물론 그것들의 독은 작은 독이다. 이러면 우리 김장은 끝~ 엄마들은 그다음부터는 큰시름을 던 셈이였다. 어떤이들은 그래도 작은 김치굴을 넓게 쓰는라 김치굴 안에 감자굴을 덧 파고는 거기에 널판자로 뚜껑을 해서 덮는다. 그러면 작은 김치굴 안에 작은 움이 하나 더 하는 셈이여서 무우거나 감자를 더 넣을수도 있었으나 그것도 넘 일찍 봄이 찾아 오거나 김치움뚜껑관리가 부지런하지 못하거나 서툴다보면 많은 생배추 무우 감자 그리고 김치등은 봄이면 그대로 변소에 공동변소에 가만히 가져다 버린다.  하여간 우리가 어릴적에는 봄이면 우리마을에 있는 공동변소에는 썩은 감자, 속이간 무우, 그리고 시여서 뭉클어 버린 김치를 심심잖게 볼수가 있었다. 감자는 그래도 싹이 나면 싹이난 부분을 싹뚝 잘라 버리고는 감자칼에 갈아서 감자떡을 해 먹을수가 있다. 감자는 얼어버리면 언 감자떡이 된다. 요즘 레스토랑에 가면 감자떡을 시꺼먼 감자떡을 만들어 한개에 1, 2원씩 팔던데 당시에는 정말 먹기싫은 음식중에 하나였다. 큼직한 열콩을 삶아서 박은 꼬장감자떡은 처음 한두때는 그런대로 먹을만 하였지만 … 정말 봄이면 언 감자떡을 매일 먹어야 할 정도였다. 하지 않으면 냉장고도 없는데 움에 그대로 두면 그 감자가 다 썩어 버리니깐 빨리 빨리 갈아서 떡이라도 만들어 먹어야 했다. 미처 갈지 못해 떡을 만들지 못하면 그대로 썩어 버린다. 정말 그때는 썩은 감자떡이란 말이 있었다. 요즘처럼 냉장고나 있었으면 그래도 두고 두고 먹고 싶을때 먹을수도 있었으련만… 당시에는 정말 먹을 반찬도 별반 없어서 그저 배추 김치나 깍두기 아니며 영채 김치 거나 갓김치들 밖에 없었던 같다. 기껏 저장할 것이라고는 무우나 감자 혹은 당근이 고작이였던것 같다. 집집이 별로 생활력 차이가 없기에 대부분 대체로 이러했다. 그때는 아마도 배추 한근에 3전씩 하였던것 같다. 요즘 애들은 믿을지도 모르겠다. 좌우간 그때 그시절 우리는 11월이면 김치굴 손질한다. 김장배추 장만한다. 무우를 굴에 넣는다. 감자를 움에 넣는다… 정말 바쁘다. 그리고 게방후부터는 사과배거나 귤도 한박스씩 굴에 넣고 양력설이거나 음력설 좌우에 종종 꺼내 먹군하였다. 요즘은  고층 아파트들이라 김치굴이 없다. 우리도 굴이 없어서 그때 그때 담그어 먹거나 하다가 올해는 마누라가 김치 냉장고를 기어코 사자고 하여 하나 샀더니 거기에 30포기나 들어가기에 어째다 오래만에 김장을 담그는 폼이 났다. 자연히 그 옛날 우리 가난하던 시절 김장철이 주마등처럼 스치기에 생각나는대로 긁적거렸다.  
10    "누워서 챔뱉기" 댓글:  조회:1362  추천:1  2015-07-05
이 주정배 나이가 바야흐로 환갑이 지나고 보니 별로 글쓰는 재미가 식어진다. 전에 연통에 있을때는 그나마 적잖은 원고비에 팬들이 댓글이나 달아 주고 하여 글쓰는 재미가 솔솔 하였는데 요즘은 그 마저도 없어지고 모두가 누가 글을 썻나 ? 무슨 새글을 썻나 하고 대충 기웃거리다가 가버리고 일언방구?도 안 뀌니 왼통 재미가 없다.   대신에 요즘은 워이씬이나 카카오란 것이 핸폰에 나와서 그것이 그렇게 정보가 빠르고 하여 나도 그쪽으로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는데 ….   오늘 뜻밖에 조선족 아줌마에 대한 워이씬이 친구한테서 보내져와서 재밌게 보았다.   어쩌면 나도 외국에서 한국사람들과 많이 동고동락을 하였었고 한국에도 다년간 돈벌이를 하다가 돌아온 나다.   때문에 그김성이란 여사?가 전중국에 퍼뜨린 한국에 대한 단상이라고 할가 (제발 단상이라고 승인하면 좋겠다. 짧은 생각이란 말이다.) 하여간 그 언니의 어느 매체에서 연설을 하는 동영상을 올렸는데 내가 보아도 대부분 맞다.   (우리민족은 어쩌면 너무 있는체 하고 너무 잘난체 하고 너무 아는체 하고 너무 잘하는체 하는것이 흠이다.) 라고  나의 선생님이신 고 허흥식농민시인이 우리 민족의 네가지 체병에 대한 언급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 민족의(한국,북한인 포함) 보편적인 습성인것만을 틀림이 없는것 같다.   너무 있는체 한단 말이다. 썩전에 내가 한국에 가자 한국분들과 연통에서 변론을 벌인적이 있는데 그때에 어느분이 중국은 한국보다 30년은 뒤떨어졌다고 하더라. 하여 내가 발끈하여 중국에 첨단 공업은 한국보다  많이 앞서서 세계 3위권 안에 있다고 하였더니 코웃음 치더라 잘못 알고 있다고 …  하여간 내가 보기에는 공업기술이나 첨단 공업 기술은 정확히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고하여도 국민의 수준 만큼은 30년이 떨어졌다는 평에 공감된다. 중국 사람들의 의식형태 수준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人穷志不穷" 이라고 "거지 자존심만 강하다"고 나도 한국에 있을때는 한국분들과 많이들 다투고 얼굴을 붉혔었다. 오죽하면 나의 어느 글에서는 10년 안에 연길에 93 빌딩을 짓는다고 뻥을 쳤을가 ... 30년 떨어졌다는 그 삼십년 설이 듣기 싫어서 한국에 63 빌딩에 30을 더올려 93 빌딩을 10년안에 짓는다고 뻥을 쳤는데 아직 우리 고향에는 그렇다 할만한 빌딩은 없고 ... 겨우 100여 메터 되는 모아산탑이 그나만 나의 뻥을 무마 시켜 준 것 같기도 하다. 서울 남산타워와 가히 우열을 가릴수 있은니 하는 말이다. (그것도 요즘 심사에 들어가서 말이 아니란다.)   각설하고/ 김성이란 조선족 언니가 한국에 요청으로 한국에 가다가 당한 봉변? 아니 봉변은 아닌것 같고 본인이 그저 얻어 들은 한국사람들의 한국말, 그것도 저희들끼리 하는 입속말을 알아듣고 그것을 큰 문제 삼아 대형국영 티비에서 대한민국을 비웃어 주는데 나는 듣다가 실소를 금치는 못했다. 머 김성이란 조선족 언니가 중국말 수준은 대단하던데 우리말 수준은 어떨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는가 싶다.   언니도 조선족인데 한국이 조국이 아니릴지라도 우리의 모국이라 할수가 있지 않을가 싶다. 다시 말하면 당신의 조국이 아니랄지라도 어머님의 조국이란 말이다. (祖国就是自己的国家。简单来说,祖国是祖先开辟的生存之地,人们崇拜、爱惜和捍卫这片生生不息世代相传的土地。人们对祖国的感情包括了对国家主权,大好河山,灿烂文化以及骨肉同胞的感情。母国,即文化上的祖国。那些本人已经拥有他国国籍的人,其祖先世代居住的国家即是其的母国。)   때문에 김성이란 중국의 스타! 우리 조선족 언니가 대한민국을 그런 국영 방송에서 까지 비웃어 전세계에 웃음거리로 만든것은 어찌보면 너무 한 감이 없지 않다고 못하겠다.     어찌보면 우리말 속담 그대로 이런것을 두고 "누워서 침뱉기"라 하는것이 아닌가 싶기도하다. 물론 이런 연설은 중국사람이나 몽고족이나 ... 아니면 한국말 잘 하는  다른 민족이 한 연설이라면 나도 박수갈채는 몰라도  물개박수라도  보낼터지만 …  우리에 스타 우리민족의 스타가 중국 공영 방송에서 저의 고국? 아니면 모국?인 한국을 비웃어 준데에 대해서 어쩐지 "황련을 씁은듯"​ 씁쓸하다.  쩝쩝…
9    비행장 눈치기 댓글:  조회:1309  추천:0  2014-12-06
아침에 기상하니 밤중에 꽤 많은 눈이 내렸다.   “어 ! 오늘은 제기차기는 다 틀렸군…” 난 주섬 주섬 옷을 주어 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행여나 제기를 찰 수가 있지 않을가 싶어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였다. 눈은 퍼그나 와서 눈을 치지 않고는 제기를 찰수가 없었다. 나는 그래도 어디 눈 칠 도구가 없나 싶어 찾아 보았다. 공원 청소하는 중국 아줌마가 대나무 비자루 하나 두고 간 것이 있어서 그것으로 눈을 쓸어보았으나 눈이 좀 많이 내려서 비자루로는 역부족이다. 포장박스로 밀어 보니 그것은 생각밖에 꽤나 괜촪았다.   “이 없으면 이몸”이라고 난 포장박스를 쪼개여 그것으로 밀고 대나무 비자루로 쓸고 공원에 있는 우리제기 차는 운동장의 눈을 치였다. 머 운동장이라고는 하나 별로 크지도 않은 겨우 20평 남짓이 될가 하는 운동장?에 눈을 겨우?치고 나니 출근시간이 가까워 오는지라 나는 바삐 집에 와서 아침밥을 먹고 출근길에 올랐다. 눈이란 인간들이 밟기 전에 치워야 쉽고 깨꿋이 칠수가 있다. 다년간 북방에서 살고 어릴때 부터 눈을 많이 쳐온 나인지라 눈치기에는 해박한 상식?이 있다. 나는 남들이 회사앞뜨락을 밟아 놓기전에 가서 눈을 치려고 서둘러 여전보다 일찍 출근하였다.   그러나 이미 많은 장사군들이 앞다투어 장사를 서둘다 보니 모두들 나보다 앞서서 출근하여 이미 회사 앞은 그들의 발자국으로 아수라장이였다.   정말 첫눈치고는 많이 온셈이였다. 아침부터 눈을 치고 출근하자마자 눈을 친 난 피곤한 몸을 쉬우면서 진붉은 홍차 한잔을 따랐다. 진붉은 홍차는 나를 그옛날 붉은기 펄펄 날리던 그때 그시절로 되돌아가게 하였다….   옛날 눈만 오면 우리는 무조건 달려가는 곳이 있었으니 그것은 학교 운동장도 아니요. 자동차가 다니는 큰 신작로도 아니였다. 고속도로는 당시에는 하나도 없었고 철길에 눈도 아니였다. 우리가 최우선으로 달려가 눈을 치는 거기는 바로 연길 토배기는 다 아는 그곳, 그곳은 바로 연길 비행장이였다. 눈만 오면 학과도 뒤로 미루고 무조건 삽이나 비자루를 들고 저멀리 비행장으로 달려갔다.   연길시에서 학교(중확교)를 다녔던 사람이라면 눈오는 날이면 무조건 비행장 생각이 날것이다. 만약 비행장 눈치기 생각이 없다면 그분은 아마도 연길시 사람이 아니면 시골서 올라온 사람! 한국분들의 말그대로라면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이 아니면 북한 특무가 아닐가?!     그때는 그래도 집집이 헛간이거나 사랑간?이라는 것이 집집에 하나씩 있어서 거기에 는 난방으로 쓰는 석탄이거나 화목들이 가득한 가운데 꼭 삽이나 곡괭이거나 혹은 곽지나 낫 같은 것들이 어느 구석에 세워 두지 않으면 어느 천장에 곧혀 있었다.   머 요즘 애들은 삽은 알고 있겠는지 모르겠지만 서울에서는 어느 국민학교 교과서에 “낫놓고 기억자도 모른다”는 속담이 나오니 낫이란 무언가 물어 보더란다. 정말 기막힌 선생님은 낫을 칠판에 그려 놓고 이런 것이라고 해석해도 아무도 모르더란다. 도대체 애들이 어디서 실물을 본적이 있어야 알지? 어찌보면 요즘 애들은 그옛날에 우리 때에 이머리를 갖고 태여 나며 모두가 천재일것이 틀림이 없으나 낫놓고 그윽자도 모르는 무식한? 놈은 틀림이 없는것 같기도 하다.   우리 그때는 그렇게 눈만 왔다하면 모두들 삽 한자루거나 비자루 하나씩 들고 저멀리 비행장으로 향하였다. 학교에서는 대렬을 지어 가기도 하였는데 비행장에 가서는 모두들 제 단위에서 맡은 구역에 눈을 치는라 바쁘다. 눈은 본래 눈 온뒤 이튿날에 가장 맵짭은 날씨인데 그런 날씨에 눈을 치다보니 귀를 얼구거나 손발을 얼구는 애들이 대단히 많았다.   요즘 학부형들은 만약 그런 눈치기에 애들을 동원시켰다가 귀나 손발을 얼구어 돌아 온다면 대 난리가 나지 않을가 싶다. 적어도 학부형들이 교장의 목덜미를 잡고 교육부 부장한테 끌고 가지 않을가 싶다. 우리애를 누가 이렇게 만들어 놓았을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때 우리 부모들은 어째 그렇게 온순한지 … 난 60 이 다된 지금도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그래도 어찌 보면 그때 우리 부모들이 참 존경스럽다. 참! 그렇게도 온순하다가도 어떻게 혁명에는 그렇게 열정이 높던지 당시에 유명하던 코신부대들이 바로 우리 어머니들로 결성된 조직이 아니였던가…   비행장 눈치기 가면 그래도 기대하고 은근히 바라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점심이였다. 비행장이라 비행사들의 식당에서 나오는 점심이라 그많은 사람들한테 밥까지는 다 주지 못하지만 그 소탕국은 모두들 한사발씩 나누어 주는데 정말 맛있었다. 소고기는 정말 소가 장화 신고 지나 갔는지 몇오리가 둥둥 뜬것이였지만 그 추운 날씨에 뜨근은 쇠탕은 정말 죽인다.   더욱이 그때는 모두가 어찌나 가난하였던지 그런 멀건 국물도 정말 맛이 있었다. 그래 그런지 난 아직도 60이 넘은 이나이에도 눈이 많이 오면 비행장 눈치기가 생각나며 비행장 눈치기 하면 그 구수한 소고기 국물이 생각나군 한다.   눈치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 올때면 모두들 삽을 들 맥도 없이 피곤한것도 있겠지만 재미로 삽들을 비행장 콩크리트바닥에 질질 끌고 오는데 그 소리 또한 비행기 발동소리보다도 뒤지지 않게 소음이 대단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이미 강추위에 언귀거나 언발을 뒤늦게 발견한다.   우리큰형은 그 비행장 눈치기에서 귀를 얼구어서 저녘에 어머니한테 꾸중을 모질게 들었다. 멋부리는라 모자를 쓰지 않았다고 말이다. 추운데 무슨 멋이 있는가고 손으로나 아니면 목수건으로라도 머리를 동일것이지…   책망을 하시면서도 어머니는 가지 말린것을 물에 불구어 놓았다가 그것을 삶은 물에 형의 귀를 담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둘째 형도 발을 얼구어서 형이 불근 가지물에 자기 발도 집어 넣고 … 참 그때는 그래도 누가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그저 그것으로 끝내였다.    요즘 부모들 같으면야 될가. 이튿날로 당장 교장 사무실에 찾아 가지 않을가 싶다. 참 그때 우리 부모들은 어쩌면 어질다면 대단히 아니 지나치다 싶이 어질었고 혁명에 헌신하는 것을 보면 또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참 대단한 우리 어머니 세대였고 정말 가난하고 무식해도 세계혁명을 하였던 우리 어머니 세대였다.    그때는 모든것이 혁명을 위한 것이였고 모든것이 전비(战备)를 위한 것이였고  모든것이 혁명조직을 위한 것이였다.    난 오늘 온 눈을 치다보니 그 옛날 눈오는 날이면 달려가던 비행장 눈치기가 생각났다. 눈을 치지 않으면 미제국주의가 쳐들어 오는데 우리 비행기가 날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요즘은 세월이 많이 좋아져 그런 눈치기는 이미 옛말이 되였다.      
8    해우소 댓글:  조회:1543  추천:0  2012-09-05
해우소?! 해우소란 단어를 난 대한민국에서 처음 들었다. 그것도 어느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가 내글을 보시는 애독자 한분이 나의 글을 보시고 한마디 적어 놓았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씌였다. "주정배님의 글은 항상 잘 나가다가 해우소로 간다." 고。 난 정말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저 아는것처럼 "ㅎㅎㅎ" 하고 웃어 넘겨 주었다. 물론 그 “해우소”란 뜻도 모르는 나는 내글을 잘 썻다는 뜻인지 나쁘다는 뜻인지 모르고 그저 ㅎㅎㅎ 했다는 말이다. 얼마후에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고서야 오~ 이런 명사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우소란 중국글로 쓰면 해:해방할 해, 다시 말하면 해방군 해자에 우: 근심우자에 소: 장소 소자를 합친 단어로서 근심을 해결하는 장소란 뜻이 되겠다. 어떻게 보면 내글에 독자가 달아놓은 댓글은 조금 독자가 내글에 대한 비웃음의 뉘앙스와 의도가 틀린 것이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하면 고민을 해결하는 장소란 뜻이라면 내글은 정말 괜찮은 글, 다시 말하면 마지막, 다시 말하면 내글의 결말에 가서 고민을 해결하는 장소로 간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나 내글에 단 댓글은 그저 측간이란 말을 멋지게 나도 모르는 단어를 골라 쓰는라 골라쓴 단어인것 같다. 아니면 그 댓글을 다신 님은 아마도 그런 해우소가 있는 절을 즐겨 다니는 분이 거나. 목탁을 두드리며 나미아미타블을 부르는 분이였던 모양이다. 하여간 난, 이 주정배 글의 애독자 때문에 이 해우소란 단어를 배우게 되였다. 솔직히 말하면 고향에는 이단어를 모르는 분들이 적지 않다. 왜냐면 이단어는 전자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로서 절이나 사찰에서 화장실을 일커서 말하는 명사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나의 글은 대부분 이렇게 독자를 잘 끌고 가다가 나중에 이독자의 말마따나 해우소로 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내글의 중점은 항상 마지막 단락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사찰이나 절에서 언제부터 화장실을 해우소라 불렀는지 몰라도 우리 선조는 옛날부터 화장실을 여러가지로 불렀다. 변을 보는 곳이라고 변소라! 똥을 누는 곳이라고 똥수간? 뒤에서 보는 뒤를 보는 곳이라 뒷간, 항상 앞쪽에 있지 못하고 집 가장자리나 측면에 차지 하고 있다고 해서 측간? ... 하여간 이 화장실에 대한 이름은 많기도 하였다. 이런 저런 이름중 어느것 하나 현시대에 맞는 이름이 없었던지 아니면 종양미외 하는 한국분들이여서 그런지 그들은 그대로 외국식으로 화장실이라고 부르게 되였던 모양이다. 어쩐지 우리연변 사람들은 맨처음 이화장실이란 명사에 거부감이 적지는 않았었다. 어쩌면 사람이 죽으면 화장하는 화장터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 또 거기에 중국사람들은 위생간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니 ... 종내는 고향에서 한국에 다녀오는 사람이 백프로?에 달하더니 그대로 한국식?! 화장실이란 단어가 그대로 입에 붙었던것 같다. 저 두만강 건너 북한에서는 어떻게 부르는지 ... 아직도 우리 할아버지 때처럼 측간이나 똥숫간이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으나 모르긴 해도 앞으로 멀지 않아 북한에서도 화장실이라 불러질 것은 의심할 나위조차 없는듯!하다. 혹간 모른다. 북한식 우리말 만들기 달인들이 모여 연구하면 멋진 우리말 명사가 탄생할지도. 전번에 서장에 유람갔다오다가 난 죽는가 했다. 기차가 처음 떠날때는 그런대로 괜찮은 화장실, 아니 화장실이라기에는 너무해서 변소라고 하자. 오 ~ 말도 말라. 기차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 인간의 오물이 찰랑 대는데 남자들은 그런대로 작은 것은 서서 보기에 별문제인데 여성들, 모든 볼일을 앉아서 보는 여성들은 정말 어떻게 볼일을 보았는지 ... 정말 불가사의하다. 정말 서장으로 가는 화장실에 몰래 파파라치족들이 있었다면 별 멋진 동작, 희한한 자세, 어찌보면 이번 올림픽에 탄생한 한국체조선수의 xxx 1 보다 못진 않은 동작도 나오지 않을 가 싶었다. 서장행 기차에 앉은 이튿날 부터는 난 아예 맥주를 먹지 않았다. 화장실을 가기 싫어서 말이다. 될수록이면 마시는 물도 줄이고 그저 침대에 누워서 잠만 억지로 청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될말인가? 서장을 가자면 2박 삼일을 가야 하는데 ... 굶고서 갈수가 없는데 ... 먹으면 볼일이 생기는데 ... 막~ 처음에는 누가 일회용 쓰레빠를 주어서 반갑게 받아 신었는데 장강을 넘어서면서부터 화장실엔 오물이 장강처럼 출렁대는데 쓰레빠를 신고 들어 가기는 틀렸고 그대로 여행간다고 반짝반짝 닦은 구두를 다시 신고 화장실을 다니는데 ... 그다음부터는 점점 불어 나는 인간의 배설물! ... 정말 말도 못하겠더라. (다음에 기차 여행을 할때면 꼭 장화를 챙겨가리라 !) 고 결심할 정도였다. 서장에서 이박삼일을 구경하는 내내 나는 돌아 올때의 뒷일, 그 뒷근심이 태산 같아서 구경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이미 돌아오는 티켓은 끊어 놓은 터이라 ... 울며 겨자 먹기로 또 그기차를 타고 돌아 오는데 ... 기차 타기 전에 화장실을 갔다오고 ... 금방 검표를 시작하기전에 또 갔다 왔으나 기차를 타고 좌석을 정하자 마자 또 화장실 가고 싶은데 ... 난 정말 환장하겠더라. 이런것을 두고 아마 노이로제라고 하지 않는가 싶다. 나는 화장실 노이로제가 걸렸던 것이다. 정말 난 돌아 오는 길에는 빵 밖에 먹지 않았다. 그것도 마른 빵을 억지로 씹어서 삼키면서 ... 물한모금도 먹지 않고 ... 2박삼일 큰 것을 참아 왔다. 오늘 특히 이 해우소에 더불어 화장실 생각이 떠올라 타자를 치기 시작한 것은 우리 연변에 지금 이런 화장실이 변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오락터나 광장이나 공원등 요즘은 생활이 좋아지니 이런 오락 장소도 많이지는 추세인데 어디던 즐기다 보면 이 화장실 걱정이 태산 같다. 더욱이 이 주정배 나는 어디가나 먹기 좋아 하고 놀기 좋아 하는 이주정배인데 ... 요즘은 정말 마음껏 놀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않는다. 전번 서장여행 후부터는 화장실 노이로제가 와서 그저 기차만 탔다~ 하면 화장실을 가고프고, 장도뻐스만 탔다해도 화장실이 그립고, 길만 떠난다면 차타기전에 화장실을 꼭 들어가 앉았다가 나오는 난, 정말 화장실 노이로제가 걸린 병신이 된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일본이 그립기도 하다. 일본엔 뻐스에도 화장실이 있고 전철에도 화장실이 있다. 정말 말그대로 일본 전체가 해우소인것 같기도 하다. 요즘 고향의 변화는 정말 천지개벽이다. 전번에 글에 썼듯. "십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시대"가 아니라 하루만에 고향이 변하는 "천지개벽의 시대"가 열린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 화장실 노이로제가 있는 주정배 같은 사람들은 제쳐 놓고도 보통 시민들을 위하여서라도 우리 연변에는 고향의 발전에 알맞게 해우소가 좀 많아야 되겠다. 저 하남다리, 연신교... 등  놀이터에 마다에는 밤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놀러 오는데 화장실이라곤 다리 밑에 숨겨져 있는 변소 뿐이였다. 어쩌면 변소를 측간이라 불러온 우리, 사돈집과 변소는 멀어야 된다는 우리민족의 풍습상 뒷간을 다리 밑에 숨겨 놓은 것은 좋으나 어쩌면 그것도 아닌것 같다. (어쩌다 새것이 하나 있던데 그마저 개방되지 않고 있었다.) 우리 연변에 하나 밖에 없는 강, 고향의 강, 어머니강에 화장실 오물이 그대로 방치 되지 않았는가 싶은 근심도 없지 않아 생기기도 한다. 요즘은 그래도 그 화장실을 없애 버리는 것 까지는 좋은데 그 화장실이 없으면 또 많은 주정뱅이, 나같은 주정배들이 그대로 부르하통하에 쉬 ~ 하고 노상방뇨하지 않을 가 싶기도 하다. 요즘 적지 않은 화장실을 자치주 성립을 앞두고 부셔 버리는 것까지는 좋은데 빨리 연변의 의식수준에 맞게 화장실을 지었으면 좋겠다. 멋지게 ... 깨끗하게 ... 아름다운 화장실, 진정 해우 할수 있는 해우소를 말이다. 어쩌면 돈 받는 화장실이라도 추진시켜서 개인적인 경쟁이라도 시켜서 깨끗한 화장실!이 있었으면 ... 어쩌면 돈을 좀 받더라도 저 진달래 광장에도, 아리랑 광장에도, 공원에도, 여기 부르하통하반에도 ... 근심걱정없이 깨끗한 화장실 다운 해우소를 지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깨끗한 화장실, 진정 화장실 다운 화장실! 절에서 일커는 해우소! 근심을 해결하는 이런 해우소! 해우소다운 해우소가 정말 그립고도 그립다.  
7    대한민국 설문조사를 비웃어 ... 댓글:  조회:1439  추천:0  2012-04-05
이글은 오래전에 쓴 글인데 요즘 대한민국에서 총선을 앞두고 또 설문조사가 한창이여서 옛글을 다시 올리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1jpg 본래 늦동이 본 분들은 다 그렇지만 그 친구는 그 누구보다도 더 유별했다.   전에는 놀러가서 한잔 할라치면 아들 없는 설음에 한탄과 더불어 한숨만 쉬면서 외로움을 그저 술로 달래던  것이 이제는 놀러가면 그저 아들 자랑이다. 남자들 모두가 아들자랑 할때는 뻥을 많이 친다. 어찌보면 세상에 제일 예쁜 것이 제 자식 같고 제일 총명한 것이 제자식인 것 같기 때문이다. 다 커서 자란것을 보면 결국엔 그 애비에 그 아들이다.  " 싸리긁에 싸리난다." 고.   전번 날에도 그 집에 놀러 갔는데... 술맛이 없어서 딱 다섯병만 마시고 일어 났다. 술상에 마주 하면 나는 옛날부터 제일 싫어 하는것이 있는데 술안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주정배는 술 마실때 술안주를 가리는 법이 없고 술가리는 법도 없다. 그저 술만 있으면 된다. 무슨 술이라도 상관 없다. 안주는 물론 족발을 제일로 치지만 없으면 그저 김치쪼각이라도 있고 하면 된다.   내가 술자리에서 제일 싫어하는것이 뭔고하면 바로 로인네가 주새없이 젊은 사람들과 앉아서 끝까지 뻗치며 ... 삼차까지 가는 것이고,  다음 하나는 애들이 앙기엉기 기여서 술상에 매달리는 것이다. 누가 또 욕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자신은 어릴때가 없었고 늙을 때가 없을가봐 하고 ... (ㅎㅎ 어릴때는 기억이 없고 늙으면 꼭 주의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친구는 애들을 너무 좋아 하다보니 술상에 애가 앙기앙기 기여 오면 나처럼 마누라를 불러서 애를 안아 가라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고 얼~싸 기다렸다는 듯, 덥석 안어서 뽀뽀한다, 비빈다, 난리법석 하는것이 똑마치 몇달 출장갔다 돌아온 애 아버지 같다. 친구의 마누라가 술판이 식을까봐 어린애를 받아 안으려 와도 주지도 않는다.   요즘은 고놈 늦둥이가 말도 몇마디 할줄 아는데 친구 뻥이 더 심해졌다. 마치도 아들이 시나 읊는듯이 뻥을 치고 있다. "꿈보다 해몽" 이라고 그친구 통역을 거쳐서야 나는 그늦둥이 올랑거리는 말을 겨우 알어 들을 수가 있었다. 친구는 어느때 부터 또 뻥을 치고 다닌다. 아들이 트로트를 부른다는 거다. 소웃다 꾸레기 터질일이다. 이제 겨우 아빠! 엄~마 를 부를수 있는 애새끼가 어떻게 트로트를?... 난 믿지도 않았다.   그 애가 부른다는 노래는 나는 도저히 알아 듣지도 못할 곡목이였다. 그래도 친구는 분명 태진아의 명곡 "바보" 를 불렀다고 우겨 대는데 ... 나는 허허 웃었다.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바보야 ! 네가 부르는 바보도 못알어 듣겠더라 , 자기도 음치인 주제에 ...   요즘은 또 쩍하면 마누라하고 둘이서 설문조사를 한다. " 아가 ! 엄마와 아빠하고 누가 더 이쁘니 ... " 하면 아가는 " 엄마" 하고 대답한다. 그러면 엄마는 손벽을 짝짝치면서 애의 볼에도 발에도 뽀뽀를 한다 난리다 그리고 친구한데 자랑한다 " 보세요 애가 나를 더 이쁘다고 하지 않아요?! " 그러면 친구는 샘이 나서 못견딘다 .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 아가야 아브지하고 엄마가 누가 더 이쁘니 " 하면 그 늦둥이아가는 " 아빠! " 하고 대답한다.   그러면 친구도 또 마누라 한테 우긴다. " 보오 나를 이쁘다고 하지 않소?!" 가만히 들어보면 친구나 친구의 마누라는 모두 물어 볼때는 응당 이쁘다고 해야 할 명사를 앞에다 놓았다.ㅎㅎ 아마도 "돼지가 더 이쁘니? 엄마가 더 이쁘니?" 하고 물어 보았더라도 아이는 "돼지~" 하고 대답하였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후 아이가 단어를 좀 많이 알고 인정을 알기 시작할때 부터는 有道 질문이 시작 되는 것이 였다. " 아가야! 아버지가 어제도 너를 목마 해주었는데... 아빠가 더 예쁘지" 하면 애는 그 목마를 다시는 타지 못할가 겁나서 아이는 " 아빠" 하고 대답하고 엄마는 한술 더 떠서 " 얘 엄마가 어제도 아이스크림 사주지 않았어 엄마가 더 이쁘지 " 한다. 아이가 조금 사유가 있으니 이렇게 경제적인것으로 아니 물질적인것으로 유도질문을 하는것 같았다. 길있는 질문을 말이다.   나는 속으로 그 부부가 애를 갖고 재밌는 유도질문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히 요즘 대한민국의 설문조사가 생각났다. 대한 민국의 설문조사는 많기도 하다. 전화설문조사.길거리 싸인, 설문 조사 ,인터넷 설문 조사 ...등등.   더욱이 요즘은 대선을 앞두고 이런 설문조사는 不知其數 이다. 이런 설문조사는 친구의 부부가 늦둥이를 데리고 장난하는 것과 같다.   난 이런 설문조사를 하는것을 보면 어쩐지 신빙성이 없고 믿지도 않는다. 그 질문을 잘 들어 보라 바로 우리 친구 부부가 아들과 장난삼아 하는 유도 질문과 별 다를바 없다. 어떤때는 우리는 그연령 그지식 수준 직업 등을 인간의 옷차림에서 찾아 볼수 있다.이것도 설문 조사식으로 말하면 + - 5% 하자.   그리고 옷차림에서 이런것을 알수가 있다면 여론 조사는 신빙성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조사 과정을 누가 따라다니며 확인 할수도 없고 ... 거기에 요즘 경제에 대해서 묻다가 ... 실업률을 묻다가 ... 직업을 물어 본다음 ... 그상대자의 속마음을 이렇게 낱낱이 읽은 다음  본질문을 하는것이다.   우리 친구부부간에 애를 데리고 장난삼아 묻는 질문처럼 누가 더 이쁘니 하다가 거기에 길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요즘 경제가 어떻다고 봅니까 ? 정치가 어떻다고 봅니까? 그렇게 질문을 하다가 현정권에 불만이 있는 사람 같으면 슬쩍 묻는 것이다. 노무현을 어떻게 봅니까 ? ( 세계에서 제일 불쌍한 대통령이다.)   요즘 기름값 때문에 여론조사가 많다. 이런 여론 조사도 그렇다. 버스타고 출퇴근하는 분들과 물어 보라 기름값이 자꾸만 오르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무조건 더올라야 한다고 할것이다. 다음 차가 꼭 막혀서 짜증을 내고 있는분들과 물어보라 그도 아직 기름값이 싼거요, 이렇게 차들이 막히는것을 보면 하고 대답할것이다. 그래 이런 설문조사가 신빙성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언론계도 많은 비리가 터지고 있는데 남의 것을 받아 먹고 그사람의 편을 들지 않을수가 없지 않는가? 그리고 또 상급의 입맛을 고려하여야 하고 선배의 충고도 기억해야 하고 그리고 자기 개인의 관점이 그 설문조사에 들어가는데... 그런 설문조사를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독자는 어리석은 것이다. 처음 나도 믿었다. 그러나 이젠 믿지도 않는다. 너무나 많은 여론조사 설문조사 네티즌조사 .... 나는 믿을수가 없다. 물론 세상에는 절대적이란 없다고 모든 설문 조사를 통털어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입장이 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서있는 자리가 말이다. 그자리 그입장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문제를 생각하고 ... 모든 인간은 이렇다.  자신이 부동산에 투자한 것이 많거나 강남에 집이 있는 기자 양반들이 현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좋아할리 만무하고 노무현을 좋아할리가 없다.   요즘 노무현씨에 대하여 여론 조사를 진행하시는 ... 그리고 그것을 자꾸만 신문에 중요한 자리에 배치하는 그기자들의 숨겨진 목적도 불보듯 뻔하다. 바로 요즘 노무현씨가 자신들을 ... 때문이고,  기자실을 통페합 시켰기 때문에 그이에 대한 보복적인 공격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가 '지주, 부농'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난 대한민국 설문조사 하는 것을 볼때마다. 나의 그 늦장가간 친구가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코웃음이 절로 난다.  " 흥 또 애들장난하는군 ~~~"          
6    대한민국 대가리는 어디갔소?! 댓글:  조회:2464  추천:4  2012-02-02
서울에 가보면 이상하게도 대가리란 대명사는 사라졌소. 행여나 시골에 가면 들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서울에서는 대가리란 명사는 들을 수도 볼수 도 없단 말이요. 식당이나 정육점에 가보아도 대가리란 말 대신 머리로 대신한다오. 소머리국밥. 돼지 머리고기…등등. 대가리는 분명 우리말에 있는 고유명사요. 개, 돼지, 소, 말, 등 짐승들의 머리를 일러 대가리 라 부른다오. 그밖에 짐승들에 따로 쓰는 명사는 주둥이, 아가리, 눈깔, 등 우리말에는 이렇게 짐승과 인간 을 구별하여 쓰는 명사가 많소. 이런 명사 자체에는 나쁜 뜻이 포함되지 않았소. 이런 명사는 다만 우리인간에 붙여 쓸때 그 의미가 나쁜 의미로 파생되는 것이오. 즉 개 대가리 같은 늠, 주둥이 닥쳐 ! 눈깔을 흘뜨기는… 등 이렇게 이런 명사는 인간에 쓸 때 만 나쁜 말이 되는 것이란 말이오. 그런데 서울에서는 이런 수많은 명사들이 사라져 버리고 쓰지 않고 있소. 심지어 난 포장마차에서 닭똥집이란 말하였다고 핀잔을 받은 적도 있다오. 닭똥집!? 내가 요구하는 메뉴에 그들은 조소를 보냈소. 난 어안이 벙벙했다오. 알고보니 닭똥집을 그 무슨 닭모래주머니라고 부른다나, 나원, 참 , 기막히고 환장하겠소. 혹시 이런 닭 모래주머니도 돈이 없고 가난한 포장마차에서 대포소주나 하는 우리들이 먹으니 그렇지 , 만약에 돈이 있고 미국이나 유학? 이거나 이민이나 갔다 온 분들이 많이 먹으면 혹시 영어로 된 이름이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소. @#$%^& 하고 말이오. 전에 고향에 있을 때 연대 교수님이 이런 실화를 들려주었오. 김일성장군님이 산책을 나왔다가 나무한그루가 멋있게 자란 것을 보시고 물어 보았다오. “저기 저나무는 무슨 나무냐," 고. " 예, 개오동나무 입니다." 하니깐 김일성이 되물어 말하기를 그 멋있는 나무를 왜 개오동이라 하는냐? 했다오. 이튿날부터 북한에 개오동나무는 김일성나무라 불러졌다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이것이 실화라오. 이것은 김일성종합대학에 유학 갔던 교수님이 친히 들려 준 이야기이고. 개고기가 단고기로 되여 버린 것도 이런 비슷한 유래가 있다오. 장군님도 나라는 개X 같이 해 놓고도 그 개자는 제일 싫어했던 모양이요. 해방전쟁 때 중국 흑용강 목단강 일대의 내두산에 여토비 호접미, 그녀는 얼굴이 길어서 길다는 長자가 든 소리를 그렇게 싫어해서 그녀의 앞에 서는 긴 것은 길다고 말하지 못하고, 짧지 않다고 에둘러 말하였다고 하더니만 ... ㅎㅎ 단고기가 뭬요? 단고기가?!… 어느 날, 또 돼지나 소들이 우리인간이 인간!스럽지 못하게 짐승차별을 한다고 북조선 사람들과 데모를 하지 않겠는지도 모르겠소. 왜 개고기만 단고기냐, 하고 말이요. "우리고기는 쓴 고기냐" 고 우리도 가축,똑같은 사료를 먹고 자란 고기인데 말이요. 하여간 요즘 광우병이요, AI 조류독감이요, 광견병이요. 많은걸 보면 이런 짐승들이 우리인간과 데모를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때문이 아닌지도 모를 일이요.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지로 사랑, 짐승에 대한 사랑이 어디에 표현되는지 ... 하여간, 고유명사가 세종대왕때 부터 써오던 고유명사가 어버이 수상님 한마디 말에 소실되다니… 그런데 여기 서울에서 이고유명사 대가리는 어떻게 어느때 어디서 사라졋는지 누구도 모른다오. 어는 대가리학자 ? 아니 한국식으로 부르자면 머리학자(고위급학자) 한마디에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만 그이유를 모르겠소, 도대체 통 모르겠단 말이오. 문명! 문명 때문에?! 우리언어를 발전을 못시킬망정 지키지도 못하며 이렇게 잃어버리고 소실 되게 까지 하시니 대한민국의 국어학자들은 무엇을 하시고 밥을 드시며 여직껏 계시였는지 모르겠소. 그 양늠의 말만 수없이 발전시킨답시고 영어 토배기 나라에서 조차 알아듣지도 못하는 또라이 영어를 수도 없이 양산 시키고…말이오. 정말 삶은 쇠대가리가 웃는단 말이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인 듯 하오. 그 양늠들이 한국서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여 짐승에 쓰는 대가리란 말을 모르고 한국 말을 한다는 것이 돼지머리고기라 불렀더니 그것이 멋있고 유식해 보인다고 그저 무조건 양 늠의것은 좋다고 따라 하시는 양반들이 그것을 따라 하시니…그것이 문명하고 유식해 보인다고 따라 했다는 설도 있소. 하긴 대통령도 미국에 가면 @#$%^ 연설하고 일본에 가면 고레와 난데쓰까 하고 고래고래 자랑차게 연설하시니 앞으로 우리말이 크게 필요한것 같지도 않소만. 이주정배는 부질없는 노파심이 많아서 이런 글을 올리오. 스페인엔 이런 속담이 있소. " 쓴맛이 없으면 단맛도 필요 없을 것이다." 그렇소, 나쁜말이 없으면 좋은 말은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좋은말도 좋은말인지 모르지요. 좋고 나쁨은 비교에서 나오는 것이니깐. 미운것이 있어야 고운것이 존재하고 높은것이 있어야 낮은 것이 있는 법이요. 짐승에 쓰는말은 짐승에만 쓰면 되오. 짐승에게 쓰는 말은 짐승에게 써야 듣기도 좋고 ... 망아지! 송아지! 강아지! 얼마나 듣기 좋소 ! 우리말처럼 아름다운 말이 이세상에 없는줄 아오. 우리말을 잘 알고 쓰기오.그무슨 소대가리,개대가리 돼지대가리 같은데에 존경어를 붙혀서 소머리, 돼지머리, 개머리라고 부르면서도 그고기를 푹 고아놓고 그고기를 뜯어 먹으며, 국물까지 후 후 불면서 마시면서도 대가리란 명사만 머리로 바꾸어 놓으면 짐승들이 우리 인간들에 감격해 마지 않을가 싶소 ?! 정말 이런것을 두고 삶은 개대가리가 웃는다고 하지 않을가 싶소. 인간, 우리인간이나 서로 존중하며 살기오 ! 소대가리나 돼지대가리나 아니면 개대가리 같은 고유명사를 없애고 문명한체 하시지 말고 제발 불상한 삼국에서 온 외국인이거나 우리동포들을 일터에서 개X 같은 욕이나 하지 말기를 진정 바램이오.
5    김정일의 족보 댓글:  조회:3258  추천:1  2011-12-19
우리민족의 姓 은 중국한자문화가 유입되던때 즉 삼국시대로 부터 중국에서 들어왔다. 때문에 한자를 쓰지 않으면 그뿌리를 알수가 없는것 같다. 우리는 성씨와그본관을 보고 그집안의 내력과 고향 , 선조들의 역사를 알수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한집안의 몇대 후에는 그갈래가 너무 많이 뻗고 너무 오래되여 한가문의 역사도 다 기억하기란 쉽지 않아서 그집안의 뿌리나 역사를 후세에 길이 전하고...하기 위하여 집안의 남자들의 이름자중 한자를 따서 그성씨의 뿌리와 서열을 따질수 있게 책에 기술하였데 이것이 바로 족보이다. 族 譜 는 중국사람은 家 譜 라고 하던데 아마도 이것도 중국 문화에서 배워 왔는지 아니면 우리선조가 새로 발명한 것인지는 역사의 기록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어쨋든 서양에는 이런 족보란것이 없더라. 말로는 왕족이나 귀족들의 남작, 후작, 백작같은 집에서는 이런 비슷한것이 있다고 하던데 나는 보지는 못했다. 하여간 전지구촌에서 우리민족처럼 족보가 잘되여 있는 민족은 없는것 같다. 혹 어떤분들은 그따위가 무엇이 그렇게...중요해서 ...우리는 족보를 모르고 살아도 잘살아 왔고 또 잘살고 있고, 앞으로도 문제 없다고 생각할런지 모르겠지만... 만약 이족보가 없다면 우리의 후대들은 앞으로 누가누구인지 누가 형제인지 누가 나와 한집안 혈육인지도 모를것이다.그러면 근친결혼으로 인하여 우리의 후대들은 한대한대에 내려갈수록 그머리가 아둔하여 지고 저능아가 많이 생기고...우리는 ... 저도 모르게 동화될수도... 그리고 민족의 순결도 잃어질수도... 아마도 이때문에 현명한 우리 선조들은 옛날 그멀고먼 옛날부터 이런 근친결혼을 극도록 반대 하였고... 제지하였고...인젠 법에서 까지 ... 하지 않았는가 싶다. 우리조선족은 멀리 타향에서 살다나니 모두들 부모멀리 혼자 떠나서 타향살이 하시던 몸이라 족보를 갖고 고향을 떠나신 사람은 극히 적었던지... 어쩌다가 족보를 갖고 있는 집들이 간혹 있다고 들었다. 하여간 한국이나 북한처럼 많지는 않은가부다. 그나마 한국분들이 거금을 주고 족보를 사간다는 말이 많이 돌았던것을 보면 아마도 우리 고향엔 족보가 씨가 말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우연히 북한 김일성동지의 족보가 떠올랐다. 무슨 김씨인지 모르겠는데... 지금 새로운 족보를 최신식으로 만들고 있는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내생각에는 김일성 동지도 김씨네 오리지날 족보는 있겠는데... 항일 할때 잃어버렸는지...하여간 김일성 동지부터 새로운 족보를 만들고 있는것이 틀림이 없는것 같다. 어버이 수상님: 김일성 동지, 아들; 김정일 동지, 손자; 김정남...이러고 보니 이집에서의 족보는 아버지의 이름자에서 한글자를 따서 다음세대의 이름을 짓는것 같다. 다시 봐라 김일성, 김정일, 김정남 ...이렇게 나가면 다음세대 이름은 불보듯 뻔하지 않는가.? 바로 김?운 ? 이란 말이다. 우리선조들은 아버지의 이름자를 따서 자식이름을 지을수 없는것으로 알고 있는데... 수상님만은 예외인것 같다. 이것도 분명 관습법에 어긋난 위헌이다.족보를 어떻게 마음대로 관습에 어긋나게 만들수 있는가?!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족보라는 관습이 분명 존재 하는데 말이다.   500 년도 더되는 관습법을 위반하다니 ... 수상님도 너무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수도이전도 관습법에 위반되여서 이전을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4    새로운 계급투쟁! 댓글:  조회:2348  추천:2  2011-10-26
중국에 모택동이 말씀하였던가?  “반란에 도리가 있다”고 ... 이한마디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각종 파들이 어찌나 많았던지 ...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지긋지긋하다. 물론 도리가 없는 반란은 없겠지만... 하여간 그때문에 중국에서는 숱한 문물들을 때려 부수고 불사르고 ... 하였었다. “까닭없는 무덤이 없다”고 도리가 없는 반란도 없겠다고 할수가 있다. 그때는 노래도 없었고 어쩌다 지은 노래들을 보면 모두가 한결같이 북경을 노래하지 않으면 모택동을 노래했고 ... 노래가사에 사랑이란 두글자가 들어갔다하면 무조건 독초로 분류되지 않으면 황색으로 시들어 버리군 했다. 그때 우리 반란파들이 즐겨 부른 노래 하나 있었으니... "혁명은 손님을 접대하거나 밥을 먹는 것이 아니며. 문장을 짓거나 수놓이를 하는것도 아니고. 혁명은 폭동이며 한계급이 다른 한계급을 뒤엎는 격렬한 행동이다. "라는 노래가사인데... 아마도 당시의 최고지시에 곡을 붙혀서 불렀던 것이다. 이노래는 당시의 반란파들의 군가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다. 혁명은 폭동이며 ... 격렬한 행동이다. 그렇다면 요즘 자본주의 국가들인 미국이나 유럽에서 일어나는 시위나 파업은 무엇인가. 그래 그들이 하는 시위나 파업이 손님을 접대하거나 ... 문장을 짓거나 수놓이를 하는 것이고 격렬한 행동이 아니란 말인가. 격렬한 행동은 폭동이며 다른 계급을 뒤엎자는 혁명이다. 난 요즘 자본주의국가들의 이런 파격적인 집체 행동을 보고 이 노래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당시 중국에 암탉이 해를 치던 세상에 전례없는 문화대혁명때 그 최고 지시가 떠올랐다. "반란에 도리가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반란에는 무슨 도리가 있는가. 더 쉽게 벌고 더많이 먹겠다는것이고 더 잘 먹고 더 잘 살겠다는 것이다. 그들의 불만은 1%에 있는데 그것이 바로 빈부차이에 대한 불만이다. 빈부차이는 정확히 말하면 자본주의제도하에서 불가피면적인 필연적인 산물이다. 위대한 도사 모택동이 일찍 말씀하신 "착취가 있는곳에는 투쟁이 있고 압박이 있는곳에는 반항이 있다"는 모택동의 최고 지시가 千 眞 萬 確 천진만확 의 진리라는 것을 입증했다. 착취가 없다면 그들이 불만이 존재하지 않을테고 압박이 없었다면 반항이 생겼을가.천부당 만부당하다. 압박이 있고 착취가 있는곳에 반항은 불가피한 것이며 파업은 필연적인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사회는 ; 모든 인간은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또 그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가하는것"이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파업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그리고 파도식으로 하나가 일어나고 하나가 잦아들고 하나가 잦아들면 또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인간들의 인생은 불만족의 계속이기 때문에 오늘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허락한다면 명년이나 후에는 또 다른 요구가 생기고 다른 욕구가 불타 오른다. 그렇다면 이런 모순은 어느때 없어지는가? 그것도 간단하다. 더이상 지배자와 피지배자란 계급이 없는 그때 ,계급이나 계급의 모순이 없는 그때, 전국민의 노고대중이 주인이 되는 그때, 바로 그때에 이런 파업은 영원히 영원히 다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그사회가 바로 빈부차이가 없는 사회 계급이 없는 공산주의 사회가 아닐가 싶다. 그렇다면 그어느날 이찬란한 꿈! 지구촌 99%가 갈망하는 공산주의 사회가 진정 실현되지 않을가 ?! 꿈이였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미련이 남아 돌아선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멀어진 그대 ... ...
3    터치페이 댓글:  조회:2830  추천:2  2011-08-15
터치페이 터치란 영어로 손을 대거나 손으로 건드리거나 다치다는 말이다. 페이는 무엇을 갚다 지불하다 치르다 이런 말인데 한국 젊은이들 속에서는 요즘 이런 터치페이가 유행이란다. 터치페이란 한마디로 손을 댄 물건에 값을 지불한다는 말이 되겠다. 여기서의 용도는 자신이 먹은 음식은 자신이 지불하라는 말이 되는 셈. 이 말의 기원은 어디인지는 모르겠고 한국에 들어 온지는 그 역사가 멀지 않은 몇 년 전부터 였던 것 같다. 즉 다시 말하면 한국 분들이 일본으로 돈 벌러 가던 그 시절 그때에 일본에서 배워온 말이 아닌가 짚어 본다. 물론 동양에서 서양문화를 제일 먼저 접수하고 빨리 실행하는 일본사람이 서양에서 배워온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일본음식은 담아 나오는 음식마다 값이 매겨져 있고 그 접시의 크기 모양 그리고 거기에 담은 음식의 고하에 따라 값이 틀리다. 거기에 짠돌이 같은 일본 사람은 서로 먹은 음식값을 지불하기 싫어해서 거기에 사람마다 음식의 기호가 틀리고 음식의 량이 다르니 이런 터치페이, 서양식터치페이를 빨리 배워가지고 나온 것도 아닌가 싶기도하다. 한국음식은 이렇게 음식을 접시마다 값을 매긴 것이 아니고 음식의 분량에 따라 값을 매긴다. 고기는 1인분에 얼마? 탕은 대 중 소로 나누어서 값을 매기는데 아주 합당하다. 정말 두 식구면 2인분 세 식구면 3인분 시키면 된다. 그런데 우리고향에서는 중국식을 아직도 고집하고 있더라. 요리에 따라 값이 다르게 매겼는데 그 량도 아주 많다. 저번에 친구들의 초대에 나갔는데 한 사람이 하나씩 시켰다는 요리가 사람이 아홉이니 아홉가지가 나와야 하는데 쌍으로 나와야 한다고 한가지를 추가 시켰는데 보기만 하여도 도저히 다 먹을 수 없을 것이 알렸다. 그런데 거기에 무식하게 요리를 시킨 우리보다 더 무식한 식당의 노반이란 여자는 다 먹지 못할것임에 뻔할 뻔자인데 보너스로 한접시 하나 더 올려 주는데 난 어이 없었다. 정말 보너스를 주려면 버릴 것은 주지 말고 … 다른 것으로 주던지 아니면 … 그대로 음식은 태반이 남았는데도 모두들 채는 집을 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맥주만 들이 마시는데 … 난 그 음식이 남아 버려지는 것이 정말 아까웠다. 그 음식이 아까워서 한 젓가락이라도 더 짚는라고 부지런히 젓가락질 하였는데 그만 음식이 너무 기름져서 외국생활을 너무 오래한 난 이튿날에 설사하는데 장장 5일을 누워 앓았다. 휴~ 후에 친구들과 또다시 술상을 벌렸는데 내가 물었다. 왜 이렇게 낭비 하는가고. 했더니 한 친구는 중국사람들은 이렇게 낭비해야 面質가 선다고 생각한다. 고 한다. 그리고 한 친구는 이것은 옛날부터 내려온 전통이란다. 전통이라면 아마도 중국이 개혁개방 하면서 공산당 간부들이 국가 돈을 갖고 배 두드리며 처먹고 버리고 하던 그 시절부터 내려온 전통이 아닌가 싶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국가 돈으로 처먹고는 절반도 못 먹고 버리면서 끝에는 담배 한 보씩 나누어 가지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게트림 하며 이수시개로 이쑤시며 식당문을 나서는게 창피스러운줄도 모르고 그게 무슨 큰 자랑거리라도 되는 듯 배를 쑥 내밀고 얼굴이 벌개서 큰소리로 웃고 떠들고 @#$%^&*(하면서 작별인사를 나누던 시절에 내려온 전통이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그것이 아니지 않는가? 요즘 우리는 그 누구도 공가의 돈으로 그렇게 먹고 트림 할 사람은 없다. 모두가 퇴직하고 집에서 놀고 있는 주제에 그 옛 버릇 나쁜 버릇만 남아 있어서 … 중국의 모택동동지도 일찍 이렇게 말씀하셨다." 떠벌려 낭비하는 것은 제일 큰 죄악이다 "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낭비해서 되겠는가. 진정 자기가 돈을 지불 한다면 자기가 피땀으로 모아 번 돈이라면 이렇게 낭비 할까 그리고 자신이 외국에서 갖은 능욕을 참아가며 피땀으로 번 돈이라면 이렇게 낭비 할건가 하고 의심이 된다. 우리도 이런 낭비벽을 없애려면 한국사람들이 일본의 터치페이를 그렇게 웃던 것이 일본사람을 따라 배우듯 우리도 한국사람들을 깍쟁이라 비웃지 말고 이런 터치페이를 하루 빨리 배우는 것이 우리 생활에서 낭비가 줄어드는 지름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한마디 더 붙혀 말할 것은 “시에미 학대를 받으며 시집살이 한 며느리가 며느리를 맞으면 똑같이 그 시에미처럼 된다”고 하던데 일본늠의 터치페이를 웃던 한국 분들이 요즘은 일본의 터치페이를 시작하고 있듯이 한국늠들을 그렇게 욕하던 우리 민족도 터치페이를 할 그날이 꼭 돌아오고 말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2    영화하녀&중어번역 댓글:  조회:2540  추천:0  2011-05-09
중국이란 이름은 영어로 차이나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은 영어를 따서 중국물건들을 비웃곤 한다. 중국물건은 차이가 난다고 . 한국에 있을때 나는 그래도 중국에서 태여났다고 한국분들이 중국을 비웃거나 욕하거니 조소를 할때면 마음이 언잖고 속이 편하지 않아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쏘아 붙히거나 아니면 반박하기가 일수였다. 그런데 내가 중국에 와보니 확실히 중국물건과 중국사람들은 좀 차이가 나는것 같다. 중국말대로 한다면 정말 差异가 있단 말이다. 전번에 우유에 멜라민이 검출되여 전세계를 웃기더니 요즘 또 우유에 똑같은 멜라민이 검출 되였다고 하니 정말 머라 말할 수가 없다. 이건 머 그저 차이가 나는 수준이 아니고 정말 인간의 탈을 쓰고 어쩌면 어린애들이 먹는 우유를 갖고 그런 천추에 용납하지 않을 죄를 저질른다 말인가. 중국에서는 이런 먹는 것을 갖고 장난치는 놈은 총살도 하게 되여있는데도 이런 부도덕한 비인간적인 일들이 끊이지 않으니 정말 차이나는 差异가 있는 것 같다. 그래 정말 가짜 천국이란 말이 어떻게 보아도 반박할 건데기는 없는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중국에서 태여 났고 중국의 공산당이라 할지라도 ... 그런데 오늘 너무 심심하여 무료하여서 무료영화를 인터넷으로 보는데 이런?! 영화도 가짜가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그 유명한 "하녀"란 영화가 공짜로 다운 받을 수 있기에 다운 받아 보는데 정말 화질도 좋고 음질도 좋아서 정말 흐믓했다. 그런데 한참 습관대로 밑에 자막을 보다가 난 어쩐지 한국어와 자막이 도대체가 맞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자막에 신경이 씌여 자막과영화의 대사를 비교해 보니 이건 머 말도 안되는 자막인 것이다. 번역이 틀려도 이렇게  틀릴수가 없겠는데 ... 번역이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없겠는데 ... 이건 머 한국말을 듣고 번역한 것 같지도 않았다. 난 머리를 절레 절레 저으며 끝까지 자막과 영화의 대사를 비교하며 보았다. 정말 말도 안되는 번역이였다. 중국말 그대로 말한다면 당나귀입에 말이발이란 말이다. 즉, 文不對題란 말이다. 파는 물건이 가짜가 있다는 소리는 들었고 먹는 식품이 불량이 있다는 말도 들었지만 보는 영화마저도 가짜번역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이번역을 누가 하였는지 정말 한국말을 조금이라도 아는 조선족이 번역하였으면 절대로 이런 번역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누가 그저 영화를 보면서 그장면을 보고 자기절로 대사를 만들어 넣은 것 같더라. 말하자면 우리집에 90 되는 노모가 드라마를 보면서 당신자신이 제 마음대로 해석하고 이해하면서 보는 것과 같다고 할가. 이것은 그저 단순히 영화 번역이 틀렸다고 웃어 넘길 일이 아닌것 같다. 세계명작인 상을 받은 영화를 이렇게 마음대로 제생각대로 번역한 것은 어찌보면 초상권 침해로도 볼수 있을 것 같다. 말하자면 명작을 졸작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하는 말이다. 독자들은 시간이 나면 한번 중국에서 번역한 하녀란 영화의 자막을 잘 살펴 보라 ! 이런 가짜를 그래 용납할 수가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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