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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진달래는 어디갔소?! 댓글:  조회:1316  추천:1  2013-05-31
봄이 오니 갖가지 꽃들이 울긋불긋 피여 기분이 좋아지오. 집앞에 공원에는 작년 9:3 을 쇠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였는데 정말 아름답구만. 전에 있던 콩크리트 길도 모두 대리석으로 바꾸어 놓고 거에 나름대로 무슨 꽃무늬 ? 삼아 멋지게 포장하였소. 그리고 갖가지 나무 꽃들을 심어 놓더니 정말 울긋불긋 꽃피는 아름다운 공원이 되였소. 그런데 미중부족이라 할가?! 아니다! 큰 착오인것 같소.   공원에 심는 꽃들이 말이오. 작년에 심었던 꽃들이 가을이 되니 다 죽어버려 올봄에 또 다시 땅을 번지고 새로 심는구만, 난 도대체 무슨 꽃을 심는가  유심히 살펴 보았더니 작년에 심었던 꽃들과 똑 같은 꽃나무? 와 풀들이였소. 난 작년에는 9;3이 다가오니 급하여 피여있는 멋진 꽃들을 가져다 놓았는가 하였댔소.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이렇게 해마다 봄이면 땅을 번지고 새 꽃모들을 사서 심고 여름이면 그 곷들이 만발하고 가을이면 그 꽃들이 지고 겨울이면죽고 ...  그리고 봄이면 또 꽃모들을 사서 옮기는 모양이오. 내가 지나가다가 우연히 꽃 심는 분들과 물어 보았소. “이꽃들은 해마다 이렇게 다시 심어야 합니까?” “그럼요.”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그들의 말투로 미루어 저들의 눈에는 내가 이상하고 싱거운 놈으로 보인 모양이오. 나는 공원에서 제기차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공원에 원예관리자를 욕하였소.  “ 저 바보 같은 놈들이 해마다 저렇게 많은 인권비를 들여 꽃을 심고 밭을 번지고 할 것 있어? 차라리 우리고향의 꽃들을 심으면 한번만 심으면 되는데 ...  “ 나의 말에 제기차는 친구들도 동감이였는데 몇몇 친구만은 나를 가소롭다는듯 비웃었소. ”이보오 당신, 그럼 그들이 어떻게 돈  벌겠소? 꽃자래우는 사람도 돈 좀 벌어야 되지 않겠소 ... 머 국가에서 주는 돈이니 머 상관 할것 있소?” 난 그의 말에 너무 놀랐소. 국가에 돈이라 상관할 일이 아니라니 ... 오 ~ 아직 우리고향에 시민들의 수양은 말이 아닌듯 하오.  그렇게 외국에 나간 사람이 많고 한국에 갔다온 사람은 100%에 가까운데 ... 외국에서 돈만 벌어왔지 외국 국민들의 좋은 사상의식은 배워오지 않았는가보오. 나라의 돈이 바로 우리인민들에게서 걷은 세금에서 산생한 것인데 ... 나라돈이 바로 우리의 땀인데 ... 나라의 돈이 바로 "쌈지돈"인데... 난 오늘도 꽃을 심는 분들을 보면 속으로 욕하오.  어떻게 저런 꽃종들을 골랐는가 누가 원예사인가? 옛날에 외국에 달이 더 밝다고 하였다더니 꽃도 남방에 꽃이 우리고향에 꽃보다 더 이쁘단 말인가.  물론 남쪽에 꽃이 더 이쁜것이 많다만 ... 아니오.  꽃은 우리 연변의 꽃도 이쁜것이 아주 많소.  우리땅에는 우리종자를 심어야 한다오. 우리 진달래 고향이란 연변인데 어쩌면 공원안에  진달래가 한그루도 없단 말이오? 개살구 꽃도 아주 이쁜데 개살구 꽃도 하나도 없고만.  함박꽃, 개나리...등도 얼마나 이쁘오!  우리고향연변에 야생화도 정말 이쁜것이 많소.  그런데 왜서 자꾸만 외지에 종자만 가져다 심는지 이상하오?! 잘 살지도 않고 키우기도 힘들고 겨울이면 죽어 버려 봄이면 또 다시 심어야 하는 남방에 꽃들을 말이오. 고향의 원예사들은 무얼하고 밥을 먹는지 ...  우리고향에 꽃은 왜 길거리에서 하나도 볼수가 없는지 모르겠소.  누구의 지시인지 ... 왜 남방의 것만 자꾸만 가져다 심는지 모르겠소. 실지로 한국에서는 외국의 풀을 한강변에 심었다가 너무 번식이 강하여 토종풀들을 싹 죽여 버려서 몇년전 부터 그 풀들을 다 뽑아 버리기로 하였다오 그런데 그풀들이 어찌나 생명력이 강한지 ...  더욱이 한강변이라 기계화도 못하고 약도 못치고 전부다 인공으로 하나 둘 뽑는데 숱한 돈을 들였다오. 우리땅에는 우리꽃을 심어야 한다오. 그래야 잘 자라고 그래야 우리 특색이 살아나고 남들이 우리 고향에 오면 우리고향에 특색이 살아나는 꽃, 남방에는 없는 꽃들을 감상하고 부러워 하게 말이오. "남과 똑같이 해서는 남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을 명심하오.   우리땅에는 우리것, 우리진달래 같은 토종꽃들을 보고 싶소. 이대로 나가다간 연변에 진달래는 먼 옛날의 이야기로 되지 않을가 싶소.  
10    정 떨어지는 내고향 댓글:  조회:1749  추천:2  2013-03-18
노모가 저멀리 운수공사에 가서 무료교통카드를 만들려고 갔다. 그런데 집문을 들어서며 툴툴 거리며 자신을 탓한다.   "에구 에구 이정신 좀 봐라 이젠 죽어야지 글쎄 호구부를 갖고 가지 않았지 머야!"   "아니? 신분증이 있는데 호구부는 왜 가져 오라는 건가요?!"  난 너무나 의아해 모친에게 다시 물었다.   "엄마! 신분증이 있으면 될터인데 호구부는 해서 뭐 한답니까?!" "이건 신분증이 아니라서 안된대 호구부를 같이 가져와야 된대!" "아니 신분증 복사본에 본인이 직접갔는데 왜 안된다고 그럼까 ?!" "안된다니 안되는거지 ..." 당연히 것처럼 말씀하신다.   나는 열 받았다.   "엄마 이것이 신분증 하고 똑같은 것인데 무엇때문에 안된답니까?" "내가 아니? 거기서 안된다하니 안된다는 것이지 ... " 혼자 내가 아니 거기서 안되면 안되는 거지 내가 아니 거기서 안되면 안되는 거지 몇번이나 이렇게 되뇌이다가 내가 아니 ... 하면서 흥얼흥얼 거리며 서랍을 들추고 장농을 뒤지고 가방을 뒤집고 하더니 호구부가 없다고 한다.   "아니 엄마 호구부는 어디에 있는데 ... " 엄마는 호구부가 어디에 뒤었던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한참후 엄마가 하시는 말씀 옳지 전번에 둘째가 가져 갔지 ...  본래 엄마의 호구부와 신분증은 가두에서 90세 이상 노인들에게 드리는 보험비인가 아니면 보조인가 하는 돈을 준다고 호구부를 신분증과 같이 가져 오라 하여 가두에 가져 갔는데 거기서 그것을 두고 가라 하여 두고 왔는데 이젠 석달이 다 되였는데도 돌려주지 않고 있었다.   참 기막혔다. 아무리 만만디 중국이라고 해도 이건 말도 완되는 것이다. 어쩌면 남의 호구부의 신분증을 이렇게 오래 갖고 있는지 ... 안되면 안되고 되면 된다고 하던지 ... 무엇이 그렇게 오랜지 ...   거기에 또 신분증 복사본이 안된다는 운수공사! 작년에 서류를 보면 엄마의 교통카드 만들었던 서류가 그대로 컴푸터에 남아 있겠는데 ... 신분증이 없이 안된다고 호구부를 가져 오라가 하는 이들이 정말 너무 하다. 자기 엄마나 아버지라면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그먼데를 다시 두번 걸음을 시킬가 ?   저멀리 한국이나 일본에는 신분증 복사본이 없이 신분증 번호만 끝자리만 암기하여도 되는데 ... 심지어 핸드폰에 사진을 찍은 신분증도 공항에서는 똑같이 사용되고 있는데 ...   아직도 멀었다. 중국은 그들 자본주의 서비스를 따라 가자면 멀고도 멀었다. 이런 불쾌한 서비스를 받을 때마다 나는 내고향이 정이 떨어지고 자꾸만 외국 생각이 나곤한다.  
9    가로수 없는 연길! 댓글:  조회:1515  추천:0  2012-08-15
푸른 가로수는 하늘하늘 춤추고 예쁜 꽃송이는 방긋방긋 웃어요. 학교로 가는 길은 하냥 즐거워 노래와 웃음이 길에 넘쳐나요.  소학교때 부르던 노래이다. 내가 어릴때는 연길시 가로수는 대부분 단풍나무로 되였었다. 단풍나무는 가을에 울긋불긋 정말 보기도 좋았다. 연길시에는 아스팔트길이라고는 백화앞에 십자로 나있던 길, 다시 말하면 동서남북으로 뻗은 길이 전부였던 것 같다. 그래서 가도에 가로수도 별로 없었다. 저기 멀리 공인문화궁으로 가는 길에는 그래도 큰 수양버드나무 가로수가 멋지게 길양옆에 느려져 있어서 거기는 정말 보기도 좋았다. 그 길도 자연돌을 장방혀으로 깍아서 다듬은 돌을 깔았댔었는데 ... 아마도 그길이 연길시에서 제일 좋은 길이 아니였던가 싶다. 후에 어느 대가리? (요즘 고향에 백성들은 영도를 이렇게 부름)가 바뀌면서 그 아까운 돌길을 하루 아침에 없애 버리고 아스팔트로 바꾸어 버렸는데 ... 그대가리 나쁜 영도는 안광도 부족해서 그비싼 돌길을 뜯어 어디에 버렸는지 ...  물론 영도들이 오고가는 빈관으로 들어 가는 길이 덜컹거리는 불편함을 없애려고 한 것이였었겠다만 요즘 생각하면 어쩐지 씁쓸하다. 얼마 되지도 않는 백년대계로 대대손손 두고 쓸 자연산 돌을 깎아서 만든 멋진 길이 머리가 나쁜 어느 대가리 명령에  하루아침에 소실되다니 ... 안광이 부족한 어느 머리가 부족한 령도의 명령에 사라지다니 ... 누구와 토론도 없이 연구도 없이 깊은 생각도 없이 안광도 없이 ... 연길에는 옛것이라고는 ?! 굳이 손꼽아 본다면 연대에 일본놈들이 지은 건물하나가 옛것으로 달랑 남아 있는 실정이다. 외국에나 타향에서 오래 살다보면 고향 생각이 나는데 그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바로 어릴때 즐기던 곳이 아니면 어릴때 멋있어 보이던 곳들이다. 본래 연길은 그닥 크지도 않은 조그마한  소재지였던지라 내가 외국생활 20여년에 고향이 그릴울때면 떠오르는 것이 나의 모교였고 그다음 바로 그 연길시 문화궁 앞에 돌길이였고 그리고 그길옆에 늘어선 버드나무 가로수였다. 그리고 멋진 가로수는 연대 앞에 정문으로 들어 서면 아름드리 우거진 비슬나무, 아무리 해볕이 따가운 날씨라도 연대 정문에 들어서면 해빛을 한점없이 똑마치 깊은 삼림속 아치형 자연동굴처럼 하늘을 가려준 가로수가 있었는데 그것이 그렇게 멋지였고 항상 기억에 새삼스레 떠 올랐는데 고향에 돌아오니 아쁠싸 연대정문의 가로마저도 깡끄리 없어지고 자그마한 흑송으로 대체 되였더라. 물론 더 멋진 수종을 옮기는라 더 멀리 보고 바꾼 가로수였겠다만 난 어쩐지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하루 아침에 다 뽑아 버리고 다 바꾸어 버리는가 말이다. 본래 가로수는 그대로 나두고 옆에 또 작은 가로수를 심어 놓고 그것이 큰 다음 잘라 버리거나 옮겨도 늦지 않을텐데 ... 어쩌면 그렇게 추호도 미련도 없이 송두리채 뽑아 버린단 말인가. 그 큰 나무를 무슨 원쑤나 맺은 듯이 송두리채 미련도 없이 ... 어릴때 부터 "나무를 사랑하자! 자연을 사랑하자" 배우는 우리, 거기에 그런것을 배워 주는 선생님들을 배양하는 고향의 일류대학교에서 말이다. 그러니 그들이 배양한 간부들도 그모양 그꼴이 아닐가 싶다. 어느고중 학교에서는 너 그렇게 공부를 하다간 공원다리 건너 있는 대학도 못간다. 하고 책망하고 있다던데 너무 부질없는 조롱은 아닌가부다. 요즘 연길시를 보면 길은 멋드러지게 손을 보았는데 가로수? 멋진 가로수가 하나도 없다. 어쩌다 있다면 손목만한 굵기의 앙상한 소나무 그것도 드믄드믄 서 있는데 그것마저 비뚜로 서 있지 않으면 거의 말라 가거나 썩어 가고 있다. 내가 전번에 어느 공원에 모여서 노인들의 한담속에 가로수 말이 나오기에 귀담아 들었는데 노인들이 하는말 연길에 가로수는 심어 놓고, 이듬해는 뽑아놓고, 대가리 하나 바뀌면 가로수도 바뀌고 금방 바꿔 놓은 그가로수가 자랄가 싶으면 또 머리나쁜 대가리가 바뀌고 그러면 또 가로수도 바뀐다고 한다. 오죽하면 "쪼르레기 가로수"란 수필도 나왔겠는가?! 가로수에 쪼르레기를 달아서 영도가 바뀔때면 가로수도 쪼르레기를 열고 바꾸어 버리고  아주 쉽다는 멋진 풍자 수필도 나왔다니 얼마나 가로수를 바꾸었으면 이런 멋진 풍자수필이 나왔겠는가 하는 말이다. 하여간 이번 자치주 성립을 맞이하여 길들은 멋지게 손을 보고 있는데 그 질은 어떨지 몰라도 이번에는 좀 가로수를 멋지게 심었으며 ... 백년은 몰라도 50년은 갈만한 가로수로 바꾸었으면 ... 그리고 어떤 수종이라도 가로수로 선택하면 다시는 바꾸지 말았으면 ... 오죽하면 연길시에는 애 손목굵기만한 가로수 한대도 없겠는가 가로수가 없는 연길이 멋있으면 또 얼마나 멋있겠는가 오~ 가로수 없는 연길시여?!      
8    노파심?! 댓글:  조회:1397  추천:1  2012-08-13
우리말 속담에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정말 말그대로 내가 외국에 십여년 살다가 고향에 돌아오니 강산이 변하였다. 연길에서 태여나고 연길에서 자란 나도 연길의 거리를 모르겠는데 ... 오래만에 고향에 돌아 왔다가 고향백화에 들러 쇼핑을 즐기는데 친구가 점심먹으러 한성호텔로 오라는데 한성호텔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알턱이 있는가 그래서 대뜸 " 야 한성호텔이 어디야 ?" 하였더니 하는말 " 모르면 택시타라! 택시는 본래 연길을 모르는 촌놈들이 잘 타고 다니더라! " 한다. "제길! 외국돈 벌어 보지 못한놈들! " 난 속으로 투덜 거리며 택시를 잡아 탔는데 ... 백화에서 한성호텔은 코앞인 것도 모르고 ... 돈 5원 버렸다. 그 5원이 아까운것보다 내가 어찌나 가소롭던지 ... 택시기사는 나를 얼마나 비웃어겠는가 이촌놈이 ...돈 좀 있는 모양이라고 ... 아니면 땅부자가 된 촌놈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여간 10여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고향이 어찌나 많이 변했는지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틀린데가 없다고 할수 있겠다. 그래서 외국에서 돌아온 나는 될수록이면 고향의 길도 익힐겸 운동도 할겸 걸어 다닐 때가 많다. 종종 뻐스도 타보고 하면서 연길의 골목골목을 누비기를 즐긴다. 더욱이 요즘은 연길은 9:3 앞두고 대대적인 변모를 하고 있다. 어찌보면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도 아주 옛날 속담으로 분류 될수밖에 없는것 같다. 요즘 연길시가 변하는 것을 보면 정말 하루가 모르게 변모를 하는데 밤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어찌나 빨리 변하는지 ... 전번에는 한달? 아니?! 한달도 아니다 그저 십여일 외지에 유람 갔다가 돌아온 나는 정말 놀라 자빠질뻔 했다. 연길에 러시아 거리엔 정말 말그대로 러시아식 집들이 생겼는데 ... 눈이 휘둥그래 질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로시아 집들 보다 더 로시아 식으로 지었는데 둥글고 뽀족한 건물들이 어쩌면 며칠새에 이렇게 지어 진단 말인가?! 난 너무도 놀라서 주위에 지기들 한테 물어 보았더니 그것이 모두가 포멀로 된 집이라는 것이다. 오 ~ 그러고 보니 하루아침에 건물이 로시아 식으로 바뀌고 멋진 새집으로 바뀌는 이 모든 것들은 포멀로 만든 가짜건물들이였던 것이다. 하여간 가짜 천국이란 불명예스런 이름을 안고 있는 중국에 우리고향은 요즘 이렇게 하루 아침에 새건물들이 우후죽순마냥 일어서고 있는데 ... 본래 느리기로 소문이 있는 만만디 중국사람들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다그치고 있는데 ... 그질량이 제대로 보증 될까? 몇달이나 갈까? 그어느날 토네이도가 아니더라도 조금 센바람이나 불어치면 연길 하늘에는 건물파편들이 사처로 날아 다니지나 않을가 ? 요즘 난 연길시의 변화하는 모습을 내려다 보면서 은근히 로파심이 앞서는 것은 웬일일까? 제발 부질없는 로파심이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7    조선족 거지?! 댓글:  조회:2111  추천:2  2012-05-08
이글을 주제가  비렁뱅이를 쓴 것이여서 제목을 그대로 조선족 비렁뱅이라고  달까 고민에 고민하다가 전자사전을 찾았더니 사전에 비렁뱅이는 거지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나오더라 그러나 거지는 비렁뱅이를 높이 부르는 말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이글의 원제목, 조선족 비렁뱅이로 부터 조선족거지로 고쳤음을 알리는 바이다.   츨근은 항상 전철을 이용하는 나다. 전철은 정착, 출발이 정확하여 지각할 념려가 없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자가용을 이용하여 출근하는데 … 지각하는 분들이 많다. 지각한 분들과 물어 보면 무조건 길이 막힌 것이였다. 난 십년을 하루 같이 정말 지각 한번 하지 않았다. 집에 있을 때도 그랬고 남미에서 근무 할 때도 그랬으며 한국에 있는 지금도 그러하다. 강남에서 강북으로 출퇴근하는 나 지각한번 없는 것은 대한민국 대중교통이 그렇게 잘되여 있다는 것을 말한다. 전철이 그렇게 내 출퇴근을 칼처럼 지켜 주었기 때문이다. 뭐 막힐 념려 없겠다. 뭐 빵꾸 날 념려 없겠다. 정말 대한민국전철은 칭찬을 백번도 더 받아 천만번을 받아야 마땅할가 싶다. 세계적으로도 최고라고 하는 말은  의심할 나위조차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나의 호감을 얻은 전철이 요즘 나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다. 그것은 전철에 거지가 들락날락 하는 것이다. 요즘 세월에 머리를 쓰지 않는 직업이 없다시피 거지들도 그 직업상 새로운 전략과전술이 시대의 발전에 따라 나날이 향상 하는 것 같다. 십년전 거지들은 조그마한 녹음기에 애절한 노래를 틀어놓고 전철을 오고 가고 하였고. 몇년후 좀 더 발전 한 거지들은 하모니카를 불거나 자신이 직접 노래를 하며 동냥을 하고 하였었다. 그러다가 어느때 부터인가 자그마한 32 절 지에 자신의 불쌍한 신상과 함께 가련한 요구를 복사한 종이를 일일이 나누어 주고 다시 거두어 들이는 식으로 동냥을 하더라. 뭐 껌을 돌리던가 손수건을 돌리던가 등 많은 동냥의 고수들이 자기들  머리를 굴려 보지만 그직업도 이글로벌의 대불황을 이기기는 쉽지가 않은가 싶다. 저번에는 두 부부가 손에 손을 잡고 전철에서 미니오디오를 틀어 놓고 동냥을 하는데 얼굴모양새를 보니 한국인은 같지 않고 동남아에서 온 사람 같았다. 실지로 가락동 모 식당에 친구들과 만찬을 하고 있는 중에  코큰 외국인 거지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 나는 유창한? 스페인어로 한바탕 쏴 준 적도 있었다.   오늘아침에는 빼곡히 정말 콩나물 시루처럼 빼곡히 들어찬 전철에서  우 우! 우! 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그쪽으로 머리를 돌렸으나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로 하여 무슨 일인지 알길이 없었다. 그소리는 점점 다가 오더니 드디여 내 눈앞에 나타 났는데 바로 거지였다. 더럽고 남루한 옷을 입은 거지는 찌그러진 종이컵 하나 들고 무작정 아가씨들 앞에 굴어 앉아 돈 줄 때 까지 우! 우! 우! 하고 우랑우탄 같은 소리를 대구 지르는 것이다. 너무나 당황하고 창피한 아가씨들은 부득불 지갑을 열수 밖에 없었다.   참 노련한 거지 , 반강박 반협박에 가까운 동냥이였다. 여성들 중에도 아가씨들의 연약한 심리, 그리고 수집음, 그리고 인간들의 눈총을 역이용한 협박적 동냥이였다. 전번에 나의 어느 글에서 썼듯이 거지는 어느 나라나 다있다. 중국엔 인구가  많으니 거지도 많다. 그러나 거지가 제일 많은 나라는 뭐니뭐니 해도 인도란다. 인도에서는 거지들도 데모를 하여서 웃긴 적도 있었다. 거기서는 거지들을 업신여기고 때리고 욕하고 하는 모양이여서 자신들도 인간이니 인간적으로 대해 달라고 데모를 하였다고 한다. 아무리 인도였어도 거지에 대해서는 인도적이 아니였던 모양이였다.   미국에서는 거지도 거지교회를 설립하겠다고 해서 그것을 제지 하였다가 많은 여론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던 적이 있다. 세계에서 자유와민주를 제일 모범적으로 실현하고 있다는 국가에서도 거지에 대해서는 그닥 자유를 허용치 않았던 것 같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거지가 어디에나 다 있는가부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모두들 항일 투사들의 자손들 이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우리 어릴적에는 조선족장사군은 없었다. 중국사람들은 길거리에서 해자불을 팔던가 마마콩을 팔던가 아니면 땅쿨로을 팔던가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 조선족은 이런 장사군이 없었단 말이다. 우리민족은 다른 민족보다 낯가죽이 엷다고 할 수가 있지 않을가 싶다. 또다시 우리좋게 덧붙힌다면 천성이 어질고 순진한 양같아서 이런 길거리 간상하고는 맞지 않다 이거다. 항상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발은 안친다。” 고 정말 우리 조선족을 두고 만든 속담같다는 말이다. 실지로 연변에 유명한 왕청현의 장기 공장의 장기통에도 양에게 우리민족복장을 입혔던 적도 있었다. 얼마나 선량하고 마음착한 민족이였으면  … 난 그때에 그것을 보고 난 어찌나 실감이 나던지…   그래서 우리민족은 길거리 장사군도 없으니 간상이란 있을 수도 없다. 누가 조선족도 옛날에  간상이 있었다면 그것은 철두철미한  헛소리가 아니면 잠꼬대이다.  그래도 정말로 본 사람이 있었다면 난 그분에게 묻고싶다. 내고향에서는 그런 "부끼는 바로 도새비"라고 한다고.   우리 조선족은 중국에서는 그래도 머리를 쓰는 일을 하였겠지만 한국에 와서는 그런 일에 종사 하시는 사람이 별반 없다. 대부분 머리가 아닌 대가리나 굴리는 그런 하잖은 3 D 4D  일에 종사 하고 있다. 이런 힘이나 쓰고 밥심으로 돈버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머리를 굴리면 굴릴수록 대가리만 아프다. 때문에 그저 대가리나 굴리고 잔꾀나 부리면 된다. 잔꾀도 잘 못 굴리면 골만 아프다.   그러나 전번날, 어느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를 보고 조선족도 거지가 있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중무장 하고 맥가이버 칼까지 갖고 거지 생활에 뛰여 들었다는 조선족 나그네 … 칼도 그나그네의 똥담마냥 너무 작은 맥가이버 칼이여서 큰일을 저지르지도 못하고 한국 오리지널 거지한테 된통 당했다는 … 그리고 그 노숙자들도 인정이 넘쳐 났다는 … 그리고 그기사를 쓴 기자 양반도 양말을 두컬레나 선사 받았다는 둥…   하여간 기사를 읽고도 내대가리에 남는것은 그 조선족 거지가 있다는 사실 뿐이였다. “ 가재는 게편이다”는 말도 있지만… 어쩌다 돈 팔고 한국까지 나왔다가 거지가 되였을가 싶다. 오죽하면 … 얼마나 힘들었으면 … 그얼마나 가고 싶은 고향일진데 그렇게 거지로 전락되면서도 고향에 돌아 가지 않을까?(기자는 원래 이런 것을 주제로 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현시대 이런 디지털 시대, 국제화시대에 와서 우리 민족이 비렁뱅이가 나왔다고 하니 정말 황당한 일이다. 계속 고향에 있었으면 돈은 많지 않아도 거지가 될 우려는 없지 않았을가도 싶었다.   그럼 우리민족의 비렁뱅이는 어떻게 생겨 났을까? 나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세계 20대문명국가에 돈벌러 들어 간 대한민국, 말그대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들어갔을 대한민국, 이런 대한민국에 찾아온 우리민족이 어찌 자신의 힘으로 벌지 않고 이런 부끄러운 직업을 택했을까 ?  그리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직업을 택하였을가고…   한국의 기자는 왜 이런것에 중점을 두지 않았는지 ... 정말 유감이였다.          
6    식품 ≠ 약 댓글:  조회:1680  추천:1  2012-04-19
친구가 입원하였단다.   아주 친한 친구라 즉시로 “어디야“하고 급급히 달려가 보았더니 아직은 저승길과는 십만팔천리인것 같더라   그래도 꽤 급이 있는 친구인지라 도처에서 병문안을 오는데 …   그겨를에도 약광고를 하는 인간이 있었다. 본래 주원한 사람이 별로 없는 병동이였다. 온 층에 우리친구 혼자 침대에 누워있고 대여섯명이 그주위에서 노가리를 까고 있었다. 링게를 꽂은 병자를 눕혀놓고 그무슨 암에서 부터 을형간염, 당뇨, 고혈압에 대해서 쟁론이 끝이 없었다.   본래 모두들 이젠 내리막길을 걷는 인생인지라 그저 모이면 정말 중국말 그대로 "三句话不离本行" 이라고 반백이 넘는 나이에 들어 서면서 부터 모두들 모이면 그저 건강에 대한 담론이 본항이 되였다.   한 분이 “내가 준 약을 먹었보았나” 하고 친구에게 물으니 친구가 하는 말 “네 가 준 약을 먹고 지금 당도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감사한다. 그말에 귀가 번쩍 띄인 어중이 떠중이 무슨 약인가 하는데 … 친구가 약을 하나 꺼내 보이는데 포장이 잘된 자그마한 갈색병이였다. 모두들 앞다투어 손에 손을 이어서 넘겨가며 그약병을 둘러 보는데 … 모두들 값을 묻고 효능을 묻는다.   약을 가져온 친구가 그대로 일장연설을 펼치는데 정말 어찌보면  연변의학원에 교수님도 울고갈 연설이였다.   드디여 마지막으로 내손에 넘겨진 약을 내가 살펴 보았더니 이건 약이 아니였다.   예의상 그친구가 일장설화가 끝나기를 기다려 내가 한마디 던졌다.   이건 약이 아니구만 그말에 발끈한 그친구가 나에게 반문한다. “약이 아니면 뭐요?”   나는 그병을 들고서 해석하였다. 이병에 든 것이 약이라면 약에 대한 제약등기번호가 박혀 있어야 하는데 이런 등록번호는 커녕 아무것도 없소.   한마디에 꿀먹은 벙어리가 된 그친구는 이번에는 말바꾸어 이건 보약이라는 것이다. 보약이라면 요즘 시중에 널려 있는 다단계 식품 같은 그런 보약이라도 식품에 대한 첨가성분이 박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건 그런것이 아무것도 없다. 요즘 다단계 보약?이란 것을 보면 어쩌면 일반 超市에서 파는 과자보다도 영양가가 없는 것이다.   “정말 미안하지만 요즘은 간단한 과자같은 식품도 당분함량이나 칼숨함량 심지어 염분함량까지도 표시되여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으니 어디에 등록도 되지 않고 검증도 맞지 않는 맨물보다 더 못할수도 있는 똥물이나 다름이 없소?”하고 내가 다시 공격하였더니 그친구는 졸지에 얼굴이 붉그락 푸르락 하더니 “당신 인터넷에 다 올라 있는 약을 믿지 않는구만 한번 인터넷에 들어가 보오!” 하는 것이였다.   난 또 한마디 던졌다. 요즘은 인터넷은 누구나 홈페이지를 만들수 있고 소유할수 있다고 나도 나의 자그마한 블로그를 갖고 있는데 … 인터넷에 검색하면 똑같이 나온다고 … 인터넷을 모르는 노인들을 얼려 가지고 이런 개사료보다도 영양가가 더 없는 물건을 보약이라고 어떤 병이라도 다 맞는 만병통치약으로 둔갑시켜서 노인들을 얼려 먹는 그들은 정말 너무 하오 하고 그자리에서 되받아 주었다.   그분이 얼굴이 지지 벌개지여 말문이 막히자 나도 어딘가 좀 너무한 감이 있어서 다시 자세히 해석했다.   약이란 첫째 그약 성분이 밝혀 져야 하고 둘째 약의 부작용이 필히 표시되여야 한다. 세상에 부작용이 없는 약은 없다. 말하자면 임신부 산모는 복용금지나 고혈압환자나 저혈압환자는 복용금지 등 … 셋째는 약의 생산일과 유통기한이 명확히 표시되여야 하고 넷째 생산지나 상호가 꼭 표시되여야 하고 마지막으로 중요한것은 의학검증을 거쳤다는 의학등록번호가 꼭 있어야 하는 것이다.고 조용히 해석하였다. 이런 것들이 적혀 있는 약도 가짜가 기지부수이라고 ... 약은 꼭 의사의 처방하에 써야 된다고 부언하였다.   병원주원실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환자가 하나뿐인 주원실에서 노가리를 까던 친구들이 자리가 슴슴해 졌던지 하나들 떠나 갔다. 그 약장사 친구도 떠나 갔다. 내가 악수를 청하였지만 그친구는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바이바이 하더라     나도 머쓱해졌다. 초면목인 친구의 친구를 내가 너무 했나 싶어 친구를 돌아 보니 친구는 나를 보고 웃었다.   그리고 한마디 던진다. “너는 너무 아는게 힘이고 참지 못하고 말하는 그입이 문제야 그래서 친구를 잃어 버리지 …”   나도 수긍하였다. 하지만 아이때 버릇 여든 간다고 반백이 넘어도 이렇게 할말은 참지 못하는 나다. 특히 주정배는 술만 들어가면 더 참지 못한다. 그래서 여직까지 이렇게 승진도 못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르고 팔았다면 바보같은 친구이고 알면서 돈벌기 위해 친구를 속이고 판 친구라면 이런 친구는 나도 굿바이다.   그리고 덧붙힌다면 오늘은 정말 한잔도 하지 않았는데도 참지 못했다.        
5    오십보 笑 백보 댓글:  조회:1870  추천:2  2012-04-09
인지상징이란 성어가 있다. 다시 해석하여 덧 붙혀 말하면 인간의 상식적인 정이라고나 할까?   또 다시 말한다면 모든 인간에게 존재하는 인간에 통하는 정이란 말이 되겠다.   우리말에는 또 고슴도치도 제 새끼를 함함하다고 한다는 말도 있다. 아무리 못난 새끼랄지라도 제새끼면 곱다고 이쁘다고 총명하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인지상징이란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요즘 대한민국의 텔레비프로들을 보면 어쩌면 모두들 하나같이 제새끼 제에미에 제애비까지 함께 나와서 출현을 하는 바람이 부는데 이것도 어떻게 해석하면 인지상징에 속한다고 할수가 있지 않을가만은 어쩐지 나를 비롯해 수 많은 시청자들을 눈쌀을 찌프리게 한다.   저들은 별로 생각없이 재미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생각에는 이것은 아닌것 같다. 아무리 저들의 좌지우지할수 있는 프로라 하지만 저들은 그렇게 웃고 떠들고 재미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내생각에는 이것은 아니다. 이건 아니잖아!   실지로 그들의 자식들이 일반 평민들의 자식들보다 더 이쁘고 똑똑한데가 있더라도 이것은 아니란 생각이다. 그들은 별로 생각없이 잘나고 못나고 똑똑하고 떠나서 누구도 공평하게 참가시키는지는 몰라도 이것은 아니란 생각이다.   실지로 이런 프로그램, 즉 다시 말하면 어린이 프로그램이 수요된다면 정상적인 과정을 거쳣으면 한다. 모두들 그런 연예인이 되지 못해 미칠지경인 이세월에 저들의 자식들을 어릴때부터 데리고 나와 훈련시키고 연습시키며 훈련하는 꼴이 된 셈이란 말이다.   이세상이 다 이런 텔레비 프로그램처럼 된다면 이세상이 어떻게 될가도 싶다.   공항에서는 또 우리 자식들을 우선적으로 연습시키고 비행기 운전 훈련을 시키고 전철에서는 뻐스에서는  … 국회에서도 모두들 아버지가 국회위원이면 아들도 국회에 들락거리는 세월이 되지 않을까도 싶다.   자본주의에는 평등한 경쟁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닌것 같다. 어쩌면 아이들 때 부터 경쟁은 이미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갖게 된다.   그저 불쌍한 농민들로 태여난 사람들이 억울하게 애들을 밭일에 데리고 갈수가 없어서 서울로 올려 보내는식이 되는 세상이다. 결국에는 이런 세월에 서울로 가보았쟈 요즘같은 이런 식으로 모두들 제자식들을 애때부터 훈련 시켜 가는데 어디 승산이 있을가보냐만은 그래도 어떨궁 해서 도시로 서울로 올려 보내는 농민들을 보기가 정말 애처롭고 불쌍하며 가련하다.   세상이 이런 요지경이 된 마당에도 북쪽을 욕할때에만은 모두들 앞장이다. “세상에 삼대 세습이라니 이런 천하에 몸쓸 놈들 같으니라고 … 지금 어느 시대인데 …이건 말도 안돼 ?!” 하면서 말이다.   난 어찌보면 아니 요즘 텔레비프로들을 보면 김일성 그들의 삼대 세습도 그렇게 욕할게 못된다고 본다. 적어도 저들은 이런 텔레비 프로를 저들만 좋아서 희희락락 거리는 저들만은 욕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가 아니면 욕할 면목이 없지 않을 가 싶다.   저들이 저들 어린 애들을 데리고 텔레비에 출연하고 애비, 에미들을 모시고 텔레비에 출연하는 것이나 그게 그거다.   다시 말하면 오십보 백보란 말이다. 어찌보면 이런 나쁜 습관도 세세대대로 물려받아 그애들이 자라면 또 저들의 자식들을 출연시킬것이고 그애들이 자라면 또 … 이런 것이 바로 저들이 연예계를 저들 혼자 독식하는 세습의 시작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요일에 하는 지력경쟁처럼 각 유치원을 돌아 다니며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 저들이 북쪽에 김일성부자들을 비웃을 자격이 있단 말인가?! 그래 이런 습관이 관습으로 되여 가고 있지 않단 말인가?! 그래 이런 관습이 바로 세습으로 이어 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 이런것을 두고 오십보 笑 백보라 해도 과하지 않을가 싶다?!              
4    "쩐타마디 부요랜" 댓글:  조회:2043  추천:2  2011-12-22
참, 누가 말했던지 ?! 우리조선민족은 하느님이 주신 은덕으로 사람마다 두가지 언어를 구상할수가 있다고 ... 머, 요즘 조선족애들, 조선족 삼세 사세들은 두가지가 아니라 세가지는 보통이요. 네가지 언어를 장악한 애들도 엄청 많소. 일어에 영어까지 장악한 애들도 그렇게 많다 이거요. 하느님이  하사하신것인지 아니면 쫓겨 다니며 경치구경한다고 ... 서러운 타향살이에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배워진 것인지는 이글의 주제와 하등 상관 없소. 조선족이 중국말이나 한국말을 장소에 따라, 아니면 분위기에 따라 골라 쓰는 조선족! 이런 양반 망신은 발바리가 시킨다고 조선족 망신만 시키고 다니며, 거기에 중국어 까지 써가며 조선족이라는 것을 광고? 하고 다니는데 ... 이런 파렴치한 인간들을 비웃어 이글을 쓰오. 우리가 연변2중을 졸업하고 집체호가 내려 갔을때 일이요. 그때 생산대대장이 우리말을 잘하지 못해서 회의 할 때 중국말로 회의를 한다고 하였소. 우리는 왜 그런가 하였더니 군복무 3년하고 돌아와서 우리조선말을 싹 잊어 버렸다는 거요. 참 나원, 20년 배운 우리말을  군복무 삼년만에 싹 잃어 버리고 중국말을 주어 왔다는 그생산대장이 우리는 너무나 이해가 되지 않았었소. 더욱이 우리가 내려간 생산대엔 조선족이 백프로인데 중국말로 회의를 하다니 말도 되지 않는 일이요. 더욱더 웃긴것은 그의 중국말로 회의를 진행하는 그 중국말 수준을 듣고, 우리는 그만 실소를 하고 말았소 .우리 몇몇은 그래도 참고 입다물고 있었는데 ... " 국왕님이 벌거 벗었소 "하고 소리친 그 옛동화속의  철없는 어린애 처럼 우리 집체호 꼬맹이가 어릴때 부터 중국학교에 다니고 중국애들과 놀아서 우리말, 조선어을 별로 잘하지 못하는것은 물론 예모예절도 중국여자와 별반 차이거 없는 그녀가 글쎄 그 우리말을 군에서 잃어 버렸다는 생산대장을 그자리에서 까 주었다오. 에고 ~ 중국말을 잘 못하누만... 하고 말이요. 그녀가 그생산대장의 중국어 실력을 적발?한 뒤로 부터 그생산대장은 어디서 금방 우리조선말을 주어 오더니 우리말로 회의를 하였다오. 이것은 동불사의  실화라오. 이 주정배가 군에서 제대하고 방직공장에 분배 받았는데 ... 이 방직공장의 당위서기라는 양반도 회의때마다 중국말 장편발언을 하는데 ... 그양반이 띠이, 띠얼, 띠싼 큰문제에 작은 띠이 띠얼 띠싼 ... 으로 장편 연설을 할때면 우리 직공들은 끄덕끄덕 조는 사람이 절반이였소. 우리 당지부에 젊은 친구는 그의 발언에서 아 ~ 아 ~ 를 빼면 시간을 30% 이상 절약 할수가 있다고 꼬집기도 하였소. 더욱 웃기는 것은 그이의 연설은 해마다 제목만 살짝 바꾸어 놓고 그 원고를 그대로 몇년을 牛足처럼 삶고 고우고 우려서 방직공장에서 퇴직할때까지 써 먹었다는 것이 우리당원들의 필기에서 확인 되였소. 이렇게 우리 고향에는 중국말을 잘 하지도 못하면서도 중국말로 발언하기 좋아 하는 분들이 매우 많소. 또 중국에서는 중국말을 쓸수 밖에 없는줄 아오. 그것은 한족과 조선족이 함께 어울려 있는데 한족들은 우리말을 알아 듣지 못하기 때문이요. 사실 중국에 사는 사람이 중국말을 모른다면 그것도 좀  그렇소. 그러나 이젠 중국말을 잘한다고 자랑하기는 좀 시대를 너무 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소. 물론 우리 아버지세대 즉 다시 말하면 조선족일세는 중국말을 몰랐소.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저 니디워디 정도나 알고 있었던것 같소. 대혁명때 부터인가 우리 조선족은  쏘련 수정주의와 결별하고  조선수정주의를 외면하면서 중국혁명의 앞장에 서면서? 부터우리 조선족들은 중국말을 배우는 사람이 유별히 많아 진것 만은 사실이오. 어떤 가정에서는 부모들이 애들을 중어를 가리키는라 우리말을 전혀 하지 않는 집들도 있었소. 그리고 이런 가정은 고향에서 한때는 인기를 타기도 했지만 ... 지금은 모르긴 해도 많이는 몰라도 조금 후회는 할것도 같소 . 머, 연길에서 생활하는데는 중국말을 몰라도 크게 애로를 느낀적은 없었소.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우리말로 가르치고 우리글로 교과서도 있고, 텔레비도, 신문도, 방송국도 모두 우리말을 쓰고 있고 ... 그래서 그런지 우리 연변사람은 중국말을 안쪽 조선족보다는 잘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오. 안쪽에 조선족들은 원래 많아야 한개 공사 적으면 한개소대씩 한족과 어울러  있고 도시에 사시는 분들은 매일 한족과 뒹굴다 싶이 하니 우리말을 할사이가 별로 없오. 그러니 안쪽 조선족들은 당연히 우리 연변조선족보다 중국말을 잘하는줄 아오 . 그리고 그들의 중국말수준은 중국사람과도 별반 차이가 없는분들도 다수인줄 아오만, 난 어쩐지 어떤 조선족분들, 특히 중국말을 깨나 한다 하시는 분들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중국말을 쓰는것을 보면 어쩐지 가소롭다고나 할가 아니면 씁스레 하다고 할가 그들이 중국말을 찌꺼릴때마다  얼굴을 찡그리게 되고 눈을 흘기게 되는 이주정배요. 어쩌다 중국말 하기를 즐기는 조선족분들과 한자리에 앉아 술잔을 나누다가 보면 그저 대고 중국말을 하는데 정말 왕짜증 날때가 한두번이 아니였소. 솔직히 어떤 분들은 중국말 수준이 별로인 분들도 적지 않더만 제딴에는 중국말을 좀 한답시고 상대를 가리지 않고 대구 중국말을 쑤셔 대는데 ... 전번에  어느 일요일날, 고향의 중국친구들과  중국식당에 들어 갔댔소. 식당안에는 이미 50대 남녀 여라문명이 상두개를 겹상하여 둘러 앉았는데 ... 아마도 누구의 생일인듯 하였소. 머 물론 생일이고 어쩌다 만나고 하니 웃고 떠들고 소리치고 쌍소리 하는 것 까지도  좋았소. 그리고 한잔 들어 가니  醉中眞談이라고  요즘 애인이 없는 늠은 모자란 늠이라더라 ...  한국에 온 늠이 애인 안 차고 다니는 늠 없어 ...  머 병신이 아닌이상  어쩌구 저쩌구 ... 여기까지도 괜찮았고 들어 줄만 하더구만 ... 하긴 중국말 배울때 초토마디 부터 배우고 일본말 배우면 바가요로 부터 배운다더만 자본주의의 타향살이에 배우는 것이 바람 피우는 것부터 아닌가 싶기도 하오. 그런데 술 두어순 더 건배가 붙더니 그다음은 가관이였소 ... 중국말이 술기운에 저절로 터져 나왔는지 술판 분위기에 슬그머니 흘러 나왔는지는 몰라도 절반이 중국말을 하고 절반은 조선말을 하는데 ...  떠들고 소리치고 ...  !@#$%^&*   하더니, 어느덧 싸움이 벌어 진 것이였소.  "아야 , 마야 ~  "나도 중국말이 저절로 튀여 나왔소. 그런데 돌아서 나오는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를 할수가 없었소. 왜 뒤끝에 가서 중국말을 꼭 하고야 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소. 차라리 애초 부터 중국말만 하던지 아니면 아니면 한국말만 하던지 ... 꼭 한잔 들어가고 망신스러운 짓거리 할때만 중국말이 튀여 나오는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요. 왜 조선족에 더불어 중국사람까지 망신 시키는지 ... 더 이상한 것은 이들이 중국에서도 공공장소에서  이런 포재를 피우고 다닐때는 또 조선말을 즐겨한다 이거요. 나의 그중국친구는 여직껏 말없다가  중국말이 나오고 싸움판이 벌어지니 한마디 하더군요. "쩐타마디 부요랜"  그리고 한국친구도  책망 했소.  "18늠들, 돼늠이 다 되였어 ..." 난 중국친구와 한국친구의 욕설을 들으면서 노파심이 생겼소. 우리 조선족이 이렇게 머저리처럼 놀다가는 언젠가는 진정 상가집개 신세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닐가 ?!
3    市建&낭비 댓글:  조회:1838  추천:1  2011-11-04
드르릉 거리는 중장비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서 창밖을 내다 보니 대형포크레인 하나가 강둑에 난간, 콩크리트 난간들의 뿌리를 뽑고 있었다.  아니!? 불과 몇달전에 새로 도색을 하였던 것을 저렇게 비참하게 뿌리를 뽑다니 ... 공신에 사시는 노인들은 지나 가다 오다가 하면서 또 욕설을 느려 놓는다. 아니 이렇게 뽑을 거면 전번에 도색은 왜 새로 해 가지고 전번날에도 난간 쇠사슬을 다시 용접하고 수리하더만 왜? 또 이렇게 뽑아 버리지? 참 ! 이렇게 우리백성들의 세금을 낭비하고 있는 관료들이 언제쯤 정신 차릴가? 이젠 백성들도 옛날 시민들과 달리 어떤 것이 낭비고 어떤 것이 합리하고 어떤 것을 다 잘 알고 있었다. 모두들 아침이면 그들이 중장비로 기둥을 뽑아 버리는 것을 보면서 의논이 분분하더니 급기에 또 많은 욕설들이 아침부터 시작된다. 저기 저 철봉대와쌍봉대를 세운거 좀 보소!아유 이 거리표식판에 글씨를 좀 보소! 저기 앞 거리엔 가로수를 일년에 한번씩 바꾸는 것 같구먼 ...저 앞에 건물은 언제나 마무리를 한다오? 정말 시민들은 의견이 분분하였다. 이런 것을 어디에 누가 말해야 하는데 하는데 하면서도 아직도 고쳐지지 않는 것을 보면 누가 앞장서서 말하는 사람은 없는 가부다 모두들 뒤에서는 벼라별 욕설이 난무하고 탓하고 비웃지만 ... 정작 시정에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정건설에는 항상 백년대계로 질량제일이란 구호를 잊지 말고 장원한 관점으로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밀고 나가야 하는데 이건 머 시정간부를 바꾸면 가로수도 바꾸고 길거리에 말없이 멋지게 서있는 난간도 뿌리를 뽑는 지꺼리나 하는 것이 아닌지도 의심이 된다.  정말 새로 당선된 시정간부들은 당선되자부터 저런  잘 서있는 난간 뿌리를 뽑지말고 시정부에 불합리한 시정건설에 쓰는 경비를 낭비하는 관료주의 비리나 현상이나 뿌리를 뽑아 버렸으면 속 이 시원하겠다. 언제면 고향에 시정간부들이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가?!
2    双욕을 먹어도 싸다 댓글:  조회:2647  추천:0  2011-09-20
내가 외국에 나가니 한국분들은 만만디 중국이라고 항상 비웃고 그랬다. 나는 그래도  중국에서 태여 난지라 그들이 그런말 할 때마다 난 그다지 달갑지 않아하였지만 오늘 내가 고향에 돌아와 보니 정말 만만디는 만만디였다. 세상에 어느때 부터 닦고 있다고 하는 이란 쪽에 고속도로는 아직도 먼지가 풀풀 나고 ... 집을 지은지 삼년이 넘는다고 하는 건물들도 아직도 마무리가 되지 않고 ... ... 어느때 부터 지었다는 하남다리는 이제야 불이 밝히고 ...... 부르하통하반에 울고 있는 두형제를 비웃어 쓴 기사를 올렸더니 강물에 돌 던진격이고 ... 그래도 이런 그런 만만디 보다 더 몹쓸것은 질량문제이다. 무엇을 만드나 질량이 차한 것이다. 전번날에는 부르하통하 삼거리에 있는 신호등이 또 어느 분이 밤중에 사고를 내였는지 부서져 있은지 한달여반에 겨우 신호등 기둥 같은 같은 것이 있기에 오메 이제야 신호등을 세우는가부다 고 하면서도 속으로 정말 만만디는 만만디다 고 한국사람들의 그옛날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보니 그것은 한달전 망가진 신호등 기둥인것이 아니라 새로 세우는 거리표식이였다. 그렇다면 신호등은 언제 어느해에 세워질지 ... 감감무소식이다. 새로 세운 거리표식이라 여기는 무슨 거리인가 살펴 보았더니 이건 참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이였다. "공시거리"라고 써 있는데 난 한참 머리를 갸웃 거렸다. 공시거리라 새로 거리명을  지었나 ... 하고 말이다. 드뎌 밑에 한어를 보고 알았다. 공신거리를 받침하나 빼놓고  간판을 잘못 썼던 것이였다. 공시거리라 참 소웃다 꾸레미 터질 일이다. 이런 도로 표식을 만들었으면 누가 검사라도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머 급히 만드느라고 급해서? 헤덤베서 그랬다면 나도 이해는 하겠지만 이건 그런 간단한 것을 일주일이 거의 걸려 만든것이 그따위로 만들어서 달아 놓고 돈 받고 달아나 버렸는데 ... 이런 새 거리표식을 또 다시하라면 그늠들이 와서 또 손으로 쓱 받침하나  끝고 달아나면 이 거리표시는 또 병신이 되는 것이다. 태여나자 마자 병신된 거리표시가 또 언제까지 저길에 서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영원히 남지 않을까 싶다. 또 지나다니는 사람마다 욕설이 많다. 이건 또 어디서 만들었는가 시정부인가 아니면 양로단인가 이건 또 누가 만들었는가 한족인가 조선족인가 이건 또 누가 만들었는가 외지 사람인가부다. 고향에 대한 애착이 없다. 이건  또 어느  한족간부가 시켰다. 조선글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건 분명히 ... 전번날에는 삐걱 거리는 쌍봉대와철봉대 형제들을 욕하더니 이젠 또 거리표시를 더불어 쌍욕거리가 생겼다. 새로 선 도로 표식은 길량옆에서 오늘 아침부터 공신 삼거리에서 오고 가는 행인들의 쌍욕을 먹고 있다. 참 좀 검사라도 했으면 ... 일을 애들에게 맡겼으면 선생님처럼 꼭 시정부에서 나와서 검사를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내가 어릴때 학교 선생님은 항상 시험칠때 마다 헤덤비지 말고 하나하나 꼼꼼히 착실히 검사하며 답을 적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꼭 검사를 하고 또 하고 시험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리면 시험지를 바치라고 시험때 마다 신신당부하였다. 거리표식을 외지사람들에게 시킨 간부동지는 정말 쌍욕을 먹어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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