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전 한국은 중국에게 '서울'을 '漢城(한청)'이라 부르지 말고 '首爾(서우얼)'로 불러달라고 청구하였으며 중국은 마침내 이 청구를 받아주었다. '서울'을 '한청(漢城)'이라 부르지 말아달라는 요구를 제출한지 오라며 이에 대한 중국측의 태도는 ‘그럼 어떻게 불러 달라느냐, 너희들이 이름을 지어 우리에게 알려다오’였다. 한국측에서 ‘서울’이라는 음에 어느 한자를 써야 좋을지 몰라 10여년 고민하다가 최근에야 마침내 '首爾' 두 자를 고안해 낸 것이지 중국이 질질 끌며 한국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실 중국과 한국 사이에 이런 논란이 이것뿐 아니다. ‘한청(漢城)-서울(首爾)’, '남조선-한국', '중공-중국' 등은 이미 해결된 것이고 아직 현안으로 남은 것이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단 이런 문제에 대하여 비교적 대범한 중국이 한국처럼 옹졸하게 걸고 들지 않을 다름이다.
우선 ‘중국’이라는 칭호도 문제점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중국의 고유명사를 중국 現時 普通話(표준어) 발음대로 적고 있는데 그러면 ‘中國’을 ‘중궈’라고 표기해야 맞다.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등은 현시 발음대로 적으며 ‘中國’은 왜 현시 발음대로 ‘중궈’라 적지 않고 1,000여년 전에 이미 사라진 음으로 적는가?
한국이 중국의 ‘香港’과 ‘奧門’을 ‘샹강’과‘아우먼’이라 부르지 않고 ‘홍콩’과‘마카오’라 부르는 것에 대해 중국이 시비를 걸자면 큰 시비꺼리이다. ‘중국으로 회귀한지 오란데 왜 아직 식민지 때 부르던 이름을 계속 쓰고 있느냐?’ ‘중국이 한국을 “조선총독부”라고 불러주면 당신네 동의하는가?’라면 한국이 어떻게 대꾸할 판인가?
‘국제 사회에서 “홍콩”, “마카오”라고 부르므로 그렇게 부르는데 무슨 잘못이냐?’고 변명하겠지만, 그렇다면 ‘중국이 한국을 국제 사회에서 부르는 것처럼 “까우리(高麗-Korea)”라고 부르면 한국이 동의할 것인가? 만약 국제 사회에서 부르는 것에 따른다면 왜 “중국”을 “차이나(China)”라고 부르지 않느냐?’고 반박하면 어떻게 대꾸할 것인가?
‘”서울”이면 어떻고 “한청”이면 어떻나?’라는 중국 사람의 질문에 가장 유력한 반박이 ‘서울대학으로 보낸 편지가 한성대학으로 잘못간다’였다. 이렇게 잘못간 편지가 10년에 몇번 되는가? 아마 가물에 콩나듯 할 것이다. 이는 위의 ‘홍콩’ ‘마카오’의 시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필자는 1992년 초 한국경제를 소개한 70만자 편폭의 책자를 써 中信出版社에서 출판한 적이 있다. 이 책은 한국측 모 신문사 및 연구소와 중국측 中國國際信託公司 간의 협력 프로젝트이며, 해당 신문사가 책임지고 1,000달러짜리 광고 50개를 본책에 내기로 하고 시작한 것이다.
1991년에 두 나라가 수교될 것으로 추측했던 것이 수교가 되지 않아 원래 <韓國經貿手冊>로 시작한 책 이름이<南朝鮮經貿手冊>로 바뀌게 되였다. 책 이름에 ‘남조선’이라 했다며 그 신문사에서 끝내 광고를 유치해 주지 않아 중신출판사는 엄청난 적자를 보았으며 필자도 2년간 거의 헛수고를 하였다. 자기네는 공공연하게 ‘중공’이라 하며 ‘한국’이라 표기해야 한다고 억지를 쓴 것이다.
이런 논란은 지명, 국명뿐 아니다. 본문에서는 아직 남은 현안으로 볼 수 있는 '중국어(中國語)' 문제도 운운해 보련다.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중국 주체민족 '漢族'의 언어 '한어(漢語)'를 '중국어(中國語)'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中國語'라는 명사가 없다. 지난 세기부터 한어를 '國語'라고 했었다. 이는 '中國語'의 생략어로 볼 수도 있지만 中華人民共和國이이 성립된 후에는 이내 없애버리고 ‘한어’로 고쳐불렀다. 그 리유는 중국에는 56개 민족이 있고 각 민족은 각자가 쓰는 언어와 문자를 포함해 일률로 평등한데 한어만을 '國語' 또는 '中國語'라고 부르면 大漢族主義의 혐의가 있다는 논란 때문이다.
중국 어학 巨匠 북경대 교수 王力 선생이 해방전에 쓴 저서 <中國音韻學>을 해방후 再刊할 때 <漢語音韻學>이라 이름을 고쳤다. 그러면서 ‘<중국음운학>이라 하면 대한족주의의 혐의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고친다’는 聲明을 붙였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중국 내 56개 민족의 언어를 망라해 '中國語'라고 부를 수 있다는 潛在적인 개념이 생긴다. 한어는 그 중의 한 언어에 불과 하며 따라서 중국 내 각 소수민족이 쓰는 언어도 中國語中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황당무계한 논리 같지만 결코 필자의 말장난이 아니다. 문혁 때 연변대학에서 '中文系' 산하에 朝鮮語와 漢語 두 가지 전공을 설치한 적이 있다. 이런 조치는 위의 논리대로라면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조선족들의 강렬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었다. 아마 여타 소수민족도 자기네 말을 '中國語'라고 부르는 것을 원치 않아서인지 '中國語'라는 명사는 좀처럼 유행되지 않고 있다.
중국 각 대학의 중문계, 즉 중국언어문학계에서 한어, 한문학만 취급하면 역시 대한족주의의 혐의가 생기기 때문에 '중국 소수민족 문학'이라는 과목을 설치하고 있다. 적어도 북경대 중문계는 이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소수민족 언어는 취급하지 않으므로 56개 민족의 문학을 망라한 '중국 문학'은 있어도 56개 민족의 언어를 망라하는 '中國語'는 없는 셈이다.
력사적으로 한국에서는 '중국어'라는 말을 쓰지 않았었다. 조선조 때 중국어를 배우는 교과서 <노걸대(老乞大)>의 '乞大(키따)'는 '契丹(키단)'의 음역이다. 좀 후에 나온 <박통사(朴通事)>에서는 중국어를 '한아어언 (漢兒語言)'이라 불렀고 또 후에는 '華語', '官話' '한(漢)말'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중국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지는 몇십년밖에 안 된다.
한국에서 '중국어'를 '한어'라고 고쳐 불러주어야 도리상, 예의상 맞다. 이는 ‘서울’이냐, ‘漢城’이냐 보다 더 심각한, 중국의 정치제도와 관계되는 문제이다. 단 중국은 한국이 '중국어'라 부르던, '한어'라 부르던 상관하지 않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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