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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수학자에서 성추행범으로 전락한 전 서울대 교수의 겉과 속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5월18일 22시48분    조회:5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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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2009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식. 이 상을 수상한 강석진(54) 전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가 수상 소감 자리에서 느닷없이 시 한수를 읊었다. 유치환의 ‘깃발’이란 시였다. 맑은 마음으로 학문에 정진하겠다는 의미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제자와 인턴 등 여학생 9명을 상습 추행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북부지법은 지난 14일 강 전 교수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고 3년간 신상정보공개, 160시간의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을 명령했다. 상습적인 강제 추행 혐의로는 드문 중형이다. 서울대는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달 1일 그를 파면했다.

 강석진 전 교수. /TV조선 캡처
 
강석진 전 교수. /TV조선 캡처
 
강석진이란 이름 석 자는 그간 그가 몸담았던 수학계에서 가장 위쪽에 자리해 있었다. 순수 대수학의 한 분야인 표현론의 대가로 꼽히는 그는 1998년 젊은 과학자상을 시작으로 2006년엔 한국과학상, 2009년엔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2002년 그가 펴낸 ‘양자군과 결정 기초 입문’이란 책은 하버드와 예일대 대학원에서 강의 교재로 채택되기도 했다. 그가 MIT와 예일대 등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모은 것으로, 미국 수학계가 동양인이 쓴 교재를 정식으로 인정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지난 10여년간 스타 교수로 통했다. 점잔 빼는 교수님도 아니었다. 평소엔 배낭에 셔츠차림을 하고 다니며 학생들과 곧잘 어울렸다. 대학원생들 논문을 평가하면서는 ‘ABCD’ 대신에 ‘이건 큐트(cute·귀여운)하다’ 혹은 ‘저건 매그니피슨트(magnificent·감명깊은)하다’는 식으로 등급을 매겼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수학자들이 논문을 쓸 때 최고로 추구하는 가치는 아름다움과 멋”이라며 “이를 위해선 수학도 알아야 하지만, 물리적이고 합리적인 언어도 잘 배워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축구 선수를 꿈꿨던 그는 서울대 자연대의 축구부 지도교수를 맡을 정도로 운동도 잘했다. 종종 학생들과 축구를 즐기는데, 실력이 웬만한 아마추어 이상이었다고 한다. 힙합을 즐기는 교수로도 유명했다. 학내 힙합 동아리 지도교수를 맡으며, 팝핀과 같은 춤을 학생들과 같이 췄다. 무대에 올라 모자를 비뚤게 쓰고 춤을 추는 그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교수들 사이에선 ‘못 하는 게 없는 부러운 인생을 사는 사람’으로 통했다.

그러나 그의 이면엔 뒤틀린 성 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집요하게 여학생들을 추행했고, 이런 추행은 일회성이 아니라 상습적으로 10여년간 이어졌다. 피해 학생들이 서울대에 제보한 내용에 따르면, 그는 고등과학원 교수를 마치고, 2004년 서울대로 돌아온 뒤 한 학기에 2~3번 맥주 파티 등을 열어 마음에 드는 학생들의 번호를 자연스레 알아냈다. 그 자리에서 여학생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게 한 후, “내 휴대폰으로 보내”라고 말해 자연히 연락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연락은 매번 식사 제안이나, 상담 제안 등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그의 추행은 2008년부터 시작됐다. 2008년 2회, 2009년 1회, 2010년 2회, 2011년 초 1회, 2012년 1회, 2014년 4회 등 2008년 초부터 지난해 7월 말까지 9명의 여학생을 상대로 11차례 강제추행을 한 것이다. 피해 여학생들은 그가 지도하는 수학과 학생이거나 힙합 동아리의 학생, 수학과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 등 모두 그의 영향력 아래 있는 학생들이었다.

추행은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됐다. 일단 학생들을 밖으로 불러낸 뒤 술을 마시면서 몸을 더듬는다거나, “내 무릎에 앉아라” “내 손이 큰지 네 가슴이 큰지 궁금하다” 등의 얘기를 했다. “교수님 말고 오빠라고 불러라”는 말도 했다.

법원은 강 전 교수의 이런 범행이 계획적이고 반복적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는 강제추행 범행을 반복해 저지르는 습벽이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며 “신체적 접촉이 용이한 상황을 만든 다음 강제추행에 나아가는 등 일정한 추행 패턴이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11월 강석진 전 교수 성추행과 관련해 학생들이 서울대 본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지난해 11월 강석진 전 교수 성추행과 관련해 학생들이 서울대 본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법원은 또 기소된 공소사실 등 드러난 추행 외에도 추행과 성희롱 행위가 빈번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드러난 강제추행 외에도 피해 여대생들의 사정으로 수사대상이 되지 못한 숨은 추행 또는 성희롱 행위가 빈번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 서울대 인권센터에는 인정된 범죄사실 외에 부적절한 문자메시지와 언어적 성희롱 사례 등이 수십 건 더 제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교수는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수학을 전공한 이유를 이렇게 얘기했다. “수학이든 다른 무엇이든 학문은 사람이 되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우리는 수학을 통해 스스로에게 정직하는 법을 가장 먼저 배운다.” 정직한 법을 가르치는 수학을 통해 그가 배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검찰과 강 전 교수 양측은 모두 항소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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