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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태풍 하이옌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필리핀 중부 타클로반이 위치한 레이테주와 인근 사마르섬을 잇는 연륙교 주변에서 13일 오전 교도소를 탈출한 죄수들과 정부군의 교전이 벌어지자 놀란 주민들이 급히 사마르섬 쪽으로 도망치고 있다. 타클로반/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한겨레]
음식 찾아 곳곳서 시민들 공격
이재민도 정부 식량창고 약탈
탕 탕.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13일 오전 10시15분(현지시각), 초대형 태풍 하이옌의 최대 피해 지역인 필리핀 레이테주 타클로반. 어린아이를 업은 필리핀 여성이 뛰기 시작했다. 삼륜차에 어린 딸을 비롯한 가족을 싣고 가던 한 남성은 레이테주와 사마르섬을 잇는 기나긴 연륙교를 향해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았다. 당황한 소녀가 하의만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달려나오며 울음을 터뜨렸다. 트럭과 오토바이들이 미친 듯이 가속페달을 밟으며 달아났다. 군인들은 초소에서 새로 탄창을 갈아끼우며 교전 준비를 서둘렀다.
태풍이 상륙했을 때 담장이 무너진 이곳 교도소에서 탈옥한 죄수들이 무장한 채 음식을 찾아 시민을 공격하며 폭동을 일으켜 현지 군인들과 교전이 시작된 것이다. 수감자들은 칼로 한 시민을 살해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클로반의 의사인 레지 아푸라(29)는 “타클로반 교도소에 600여명의 죄수가 있었는데 이번 태풍 때문에 그들이 풀려났고, 일부가 총칼로 무장한 채 도시 곳곳에서 음식을 찾아 시민들을 공격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을 보고 타클로반으로 돌아가던 길에, 사람들이 울부짖고 도망 나오는 모습을 보곤 되돌아 나왔다”며 한숨을 쉬었다. 주민 로레나 가바나는 “오전 9시쯤 폭동이 일어났다”며 “그들은 음식을 원한다. 죄수들이 이곳 반군세력과 결합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곳 군경은 죄수들과 교전이 있었다는 소문을 부인했다.
굶주림에 지친 이재민 수천명이 정부의 식량창고를 털려다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고도 일어났다. 타클로반 북부에 있는 알랑갈랑에서는 굶주린 생존자들이 12일 쌀이 보관된 창고로 몰려갔다가 벽이 무너지는 바람에 8명이 숨졌다고, 필리핀 국가식량국의 렉스 에스토페레스 대변인이 13일 밝혔다. 당시 창고 주변에는 군과 경찰이 배치돼 있었으나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속수무책이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타클로반에서 구조본부 구실을 하고 있는 시청에서 만난 구조대원들도 상황이 험악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필리핀에서 활동해온 기아대책본부 소속 성봉환(59) 목사는 “현지인 선교사한테서 ‘감옥에서 탈출한 죄수들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구조물자를 전달할 때 주의하고, 외국인은 쉽게 표적이 될 수 있으니 약간만 어둑해져도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를 들었다”고 말했다. 시청의 구조 관계자들 사이에선 11일 적십자 요원 한명이 구조활동 중 총에 맞아 숨졌다는 소문이 파다하지만, 아직 공식 발표는 없는 상황이다.
타클로반/정세라 김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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