頂上 아닌데도 여왕 접견 허용
英, 아편전쟁서 中 눌렀지만 170년 만에 처지 '역전'
"유럽에서 영국은 독일이나 프랑스에 뒤떨어져 있는 게 현실이다."
16일부터 사흘간 이어지는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영국 방문을 앞두고, 류샤오밍(劉曉明) 주영(駐英) 중국대사가 기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영국의 자존심을 긁는 말을 했다. 류 대사는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원한다면 중국의 인권에 대해 언급하지 마라"고 영국 정부에 경고성 발언도 했다. '외교적 결례'라고 생각될 수 있는 중국의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중국은 리 총리와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의 면담을 강력히 요구해 성사시켰다. 해당국 정상(頂上)이 아닌 인사가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영국 정부는 중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간소화 등 중국 측 요구 대부분을 수용하기로 했다. 영국의 이런 '저자세 외교'는 리 총리가 들고 오는 '돈 보따리'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기업인 약 150명과 동행하는 리 총리는 원전 건설 등 180억파운드(약 31조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영국 언론은 발끈했다. 영국 더 타임스는 "영국과 중국의 외교전에서 여왕이 장기판의 졸이 됐다"고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은 "류 대사의 발언은 과거 식민지 역사를 가진 국가(영국)에 21세기에는 누가 '갑(甲·top dog)'인지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홍콩 매체인 성도환구망(星島環球網)은 "일부 영국인이 아직도 중국과 교류하면서 '제국의 심리'를 버리지 못했다"며 "중국은 G2(세계 2대 강대국)까지 지위가 올랐지만, 영국은 날로 저물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은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뼈아픈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012년 5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티베트 분리 독립운동을 이끄는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 이후 캐머런의 방중 계획이 취소되고, 중국의 영국 투자 계획도 줄줄이 무산됐다. 영국은 1840~1842년 중국과 아편전쟁을 벌여 승리했지만, 이런 관계가 170년 만에 완전히 뒤바뀔 처지에 놓였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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