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방학하면 달려가겠습니다.”
방학을 앞둔 요즘, 태동화교원은 매일같이 “7남매”의 전화를 받으며 무한한 보람과 벅찬 감동에 젖어든다. 그가 가슴으로 키운 “7남매”는 꿈을 안고 지구촌 곳곳에서 삶의 노래를 엮어가지만 늘 그의 품을 그리워하고 그의 사랑을 되새기고있다.
태동화교원의 “7남매”이야기는 2000년 가을학기부터 시작된다. 아들애가 태여난지 얼마 안된 시점이였는데 2명의 학생이 찾아와 “더 깊은 관심과 지도를 부탁”했다. 학생사랑이 극진하고 교수며 학생교양에서 이미 두각을 나타냈던터였다. 하지만 담임도 아니고 영아를 둔 엄마에 주부인 그가 2명의 학생을 “특별교육”한다는것은 쉽게 결심이 서는 일이 아니였다. 두 학생의 신뢰와 기대에 찬 눈길, 보다 성공적인 성장을 원하는 그 마음가짐에 결국 태선생은 그들을 집에 데려다 “특별교육”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각별한 학생사랑은 13년간 이어졌고 그는 선후로 7명의 학생을 자신의 집에 데려다 키우고 가르쳤다. 가정환경이 여의치 않은 그들에게 좋은 학습환경을 마련해주고 인민교원으로서 사명감을 안고 옳바른 인생관을 심어주며 량호한 생활습관을 키워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지치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교직에 대한 불타는 열정과 넘치는 학생사랑을 엿볼수 있는 그의 진심어린 한마디였다. 고중단계의 학생을 집에 데려다 키운다는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였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으며 불만, 불평 정서가 고조에 달해 그의 속을 긁는가 하면 산만한 생활습관으로 골치를 앓게 하고 또 기대만큼 성적이 나지 않아 속상케 하기도 했다.
그는 교원이기 앞서 우선 엄마가 되여 그들의 옳바른 성장을 위한 잔소리와 따끔한 훈계를 달갑게 맡아했다. 아이가 심한 스트레스에 모대길 때면 오토바이에 싣고 야외에 가서 마음껏 소리 지르게 하고 집안일을 거드는 습관을 키워주는 등 모습에서는 교원의 지략이 엿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사랑의 마음으로 얼싸안고 온갖 정성과 지혜와 책임감으로 키우는 그의 행동에 동료교원들은 감복해마지않았고 “태선생의 아들, 태선생의 딸”로 학생들을 지칭하면서 진정으로 그들의 어머니로 인정했다.
태선생의 다함없는 사랑과 엄격한 교양속에 소중한 성장기를 보낸 “7남매”는 모두 대학에 입학했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삶의 무대에서 나래를 펼치고있다. 방학이나 명절때 고향에 오면 이들은 어김없이 태선생을 찾아오고 또 예전처럼 태선생 집에 묵으면서 그리웠던 사랑을 다시 만끽하군 한다.
“아들애한테는 오롯이 사랑을 몰붓지 못한 미안함이 있습니다.” 뒤늦게나마 하나뿐인 아들애한테 누구와 나누지 않는 온전한 사랑을 듬뿍 주려 하지만 늘 형님, 누나들과 함께 커온 아들애는 오히려 혼자임에 외로와하면서 고향에 돌아오는 그들을 자꾸 집에 불러들인다고 한다. 어머니한테서 주는 사랑, 나누는 사랑, 큰 사랑을 배웠으리라.
교직에 대한 그의 열정은 교수에서도 남김없이 발휘된다. 생물담임인 그는 교수에서 끊임없는 탐구로 재빠른 성장을 보여 성급골간교원으로 발탁되였고 지금은 전교의 교수를 이끄는 교무주임으로 활약하고있다. 주와 시의 우수교원, 사덕선진, 성과 주의 “5.1’녀성기준병, 중국조선족 “가장 아름다운 교원” 등 무게있는 영예들은 다년간 탐구와 열정으로 교직생활을 아름답게 수놓은 징표들이다.
요즘 제30번째 교원절을 맞으며 주당위와 주정부에서 조직하는 “감동연변·가장 아름다운 교원”평의 30명 립후보자명단에 입선되였지만 태동화교원은 초심을 잃지 않고 오늘도 혼신의 정력을 교직에 몰붓고있다.
글·사진 김일복 기자/김서강 실습생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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