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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말 한 마디가 이렇게 대단합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4월15일 08시46분    조회: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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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영아, 울지 마... 너는 잘 할 수 있어!"

[오마이뉴스 박도 기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연, 곧 '가연(佳緣)'은 사제(師弟)간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와 문화는 이 사제 관계로 이어왔기 때문이다. 이전에 나는 제자들의 초청을 극도로 자제해 왔는데, 이나마 건강할 때 만나 차담을 나누면서 그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것은 한 훈장으로서 큰 기쁨이요, 아름다운 마무리이리라. - 기자 말

팔자에 있는 기자생활
 
나는 꼭 18년째 팔자에 있는 시민기자생활을 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쓴 기사는 1천5백여 꼭지에 이른다. 왜 팔자에 있는 기자생활이라고 하는 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는 중학교까지 고향에서 다닌 다음, 1961학년도 고교 시절부터는 서울로 진학했다. 하지만 고교 입학 2개월 만에 5.16 쿠데타가 일어났고, 갑자기 수렁에 빠진 집안 형편으로 학기 중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그런 가운데 신문배달을 하게 되었다. 경향신문, 조선일보 배달원을 거쳐, 1963년 고2때는 동아일보 사직동 배달원이었다.
 
그해 10월 15일은 제5대 대통령선거일로, 당시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와 민정당의 윤보선 후보가 '군정이냐 민정이냐'라는 절체절명의 쟁점으로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그 무렵은 오늘날과 같은 SNS가 발달되지 않았고, TV조차도 없었던, 그래서 신문이 여론 형성과 전달에 가장 위세를 떨치던 시대였다.
 
당시 대통령 선거전의 가장 큰 여론몰이는 후보자의 대도시 유세였다. 그런 날은 후보들의 유세 내용을 싣기에 본사 신문발행은 평소보다 두세 시간 늦었다. 일부 독자들은 대문 앞에서 기다렸다.

그때 동아일보 세종로보급소는 본사와 가까운 종로구 청진동(현, 르메이에르오피스텔)에 있었다. 보급소 측에서는 신문 배달시간을 조금이라도 빠르게 하고자 본사 수송차를 기다리지 않고 배달원들을 본사 윤전기 창구로 보냈다. 거기서 대기하다가 막 인쇄된 신문이 쏟아지면 배달원들은 그걸 묶은 뭉치를 어깨에 지고 보급소로 날랐다.
 
그때마다 나는 그것을 져다 나르면서 '지금은 신문을 져다 나르지만, 장차 신문사 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길렀다. 아무튼 그때 꿈 탓인지 2002년 천만 뜻밖에도 쉰 세대에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었다.

일선 기자들이 은퇴할 나이에 신문기자가 된 나는 "늦바람이 용마름 벗긴다"는 속담처럼 2~3일에 한 꼭지 꼴로 오마이뉴스에 다양한 기사를 송고했다. 인터넷신문은 종이신문보다 그 신속성과 전파력은 대단하다. 그리고 기자는 독자와 동시간으로 상호 소통이 가능했다.
 
▲  1982. 2. 그의 졸업식날 기념촬영(왼쪽부터 고순영, 기자, 백영미)
ⓒ 박도

 
고약한 악성 댓글
 
내 기사가 화면에 뜨면 많은 독자들이 댓글을 달아주고, 때로는 좋은 기사 후원금을 보내주었다. 그 댓글 가운데는 격려의 글도 있지만, 이따금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아주 고약한 악성 댓글도 있었다. 당시에는 익명이 허용된 시대라 황당한 댓글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다. 쉰세대 기자로서 거기에 맞서기는 처신이 말씀 아니라 '벙어리 냉가슴 앓기' 일쑤였다.
 
한번은 내 기사로 백범 김구 선생 암살범을 추적한 의인 권중희 선생 미국보내기 성금을 모금하는 가운데 아주 고약한 댓글이 달렸다. 매우 난처한 상황일 때 미국에 산다는 한 익명의 독자가 "저는 고교재학 시절 박도 선생님의 담임 반 제자로, 우리 선생님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닙니다"라는 댓글을 올려줘서 난처한 위기를 지워주었다.

그 뒤에도 간혹 악플이 달릴 때마다 지구촌 곳곳에 사는 여러 제자들이 변호해 주거나, 또 샘물 같은 댓글로 노기자의 용기를 북돋아주곤 했다. 그래서 아직도 시민기자로 지내고 있다. 
 
어느 해 연말, 졸업생들의 모임에 초대받아 갔더니, 한 제자가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내 기사의 애독자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그도 내 기사에 익명의 댓글을 달아준 고마운 제자였다. 그날 그는 재학시절 어느 날을 상기시켰다.
 
1979학년도 그는 이대부고 신입생으로 1학년 3반 나의 담임 반이었다. 그때 학교 내규는 반장은 남학생, 부반장은 여학생이었다. 그리고 정부반장 요건은 상위 15% 내 성적이어야 했다. 그는 용모도 반듯하고, 성적도 우수했기에 후보자였으나 1, 2학기 모두 정부반장 선거에서 급우들로부터 선택받지 못했다.
 
나의 오랜 학급담임 경험으로는 똑똑하고, 예쁘고, 여러 방면으로 잘난 학생은 이상하게도 급우들은 표를 주지 않았다. 아마도 급우들은 편한 사람, 수수한 사람을 더 선호하는 것 같았다. 이는 학급 정부반장 선거뿐 아니라, 나라의 각종 지도자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can do it, if I believe it

 
그의 고3때 3월 하순인가, 4월 초순 어느 날로, 첫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는 날이었다. 그날 수업이 끝나 교무실 내 자리로 돌아가는데. 복도에서 그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울고 있었다. 나는 못 본 척 지나치다가 돌아서서 그에게 다가가 한 마디 하고는 내 자리로 갔다.
 
"순영아, 울지 마. 너는 잘 할 수 있어!"
 
그는 그때 그 말을 상기시켰다. 그의 얘기를 듣자, 나도 그 일들이 어슴푸레 떠올랐다.
 
"그날 선생님 말씀은 이후 제 삶의 멘토(mentor)이었습니다."
 
그는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자기가 평소 꼭 가고 싶었던 대학교 영문학과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자기 블로그의 이름은 "I can do it, if I believe it"인 바, 그때 내가 해준 말을 유추해서 지었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사의 말 한 마디는 학생에게 평생 지침이 되나 보다. 일본의 한 정치인(나카소네, 中曾根)은 수상이 된 후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내가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이 '너는 장차 크게 될 인물이다'고 한 그 말씀 때문이었다."
 
사실 나도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박도, 너는 글을 참 잘 쓴다"는 칭찬 때문에, 고교시절에는 국어를 가르쳤던 박철규 선생님이 "박군은 꼭 국문과로 가라"는 그 말씀 때문에, 평생 국어교사로 일흔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작가로, 기자로, 매일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내가 다시 교사로 교단에 선다면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더 많이 해주고 싶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단 한 번의 인생길이다.
 
▲  그가 불쑥 옛날 담임선생이 사는 고장으로 찾아왔다(2012. 4. 장소,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미술관자작나무숲).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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