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광 옥
(장춘시록원구조선족소학교)
2007년 비호문예작품공모전 신인작가상, 2006년 7월“선생님도 신을 벗었어”인성교육상 동상, 2007년 8월 비호문예작품공모전“갈색목수건”장려상, 인성교육상“제곁에 잠시라도 발걸음을 멈추어주세요.”장려상, 2007년 “길림신문__인성교육”에 실린 글들로는“귀속말로 키워가는 정” “꺼랴호”
스쳐지나가는 꽃묶음
오늘은 32주년을 맞는 교원절이다. “엄마, 오늘은 교원절인데 저의 모은 용돈으로 택시를 불러 엄마를 학교까지 모셔다 드릴가요?”“그럼, 그래봐.”딸애는내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길에 나가 택시를 세웠다.
그 모습이 정말 기특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였다. 나는 딸애가 태워주는택시를 타고 신바람나게 학교로 향했다. 오늘따라 몸이 공중에 뜨는 것 같고 어깨바람이 저절로 나는 것 같았다.
어느새 택시가 학교대문어구에 이르렀다. 내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바로 우리택시앞에 한 어린애가 엄마와 함께 꽃묶음을 안고 택시에서 내리는 것이 였다.
그 어린이의 얼굴에는 기쁨이 불꽃처럼 피여나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딱 그 한마디 남기고는 꽃묶음을 안고 그윽한 향기를 피우며 나의 앞을 아쉽게 스쳐지나가는 것이였다.그렇게 쉽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
그 당시 그렇게 아름답던 그 꽃묶음은 내눈에는 가을바람에 새털같았다. 2년전에만해도 그애와 함께 크고 생활하고 저의 어머니다운 사랑을 담뿍 주었던 애였건만 이젠 헤여지고 다시 1학년을 맡고보니 나를 미련없이 포기한다.
이때 저는“모모학생 , 그 꽃묶음중에서 한송이만 뽑아 선생님께 주면 안될가?”그는 픽 웃으며“우리 엄마가 선생님몫은 준비하지 않아서 없거던요.”하며날파람을 날리며 저멀리 사라졌다.
이때 귀여운 우리 1학년 어린이들이 마주 달려오며 저의 주위에 조롱조롱 매달리였다. 교원절을 축하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았던지 반대로 착각했던심정은 잠시 사라지고 정말 가슴이 들먹거리고 어깨가 노상 으쓱으쓱 올라갔다.
나의 손을 서로 빼앗아 꼭 잡아쥐고 졸졸 따라오던 어린이들이 교실에 도착하자 나를 걸상에 앉히더니 어깨를 주물러준다. 사탕 한알을 까서 입에 넣어준다하며 어린이들이 교원절을 축하한다며 분주히 보냈다.
조금 안정된 심정이였다. 이때 확성기에서는“오늘 교원절을 축하하여 소선대대부에서 활동이 있겠습니다. 여러 선생님들께서 뒤운동장에 모여주십시오”하는 통지에 저는 서리서리 뒤엉킨 심정을 걷잡으며 뒤운동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생님의 들창가 지날때마다 내 가슴 언제나 뜨겁습니다. 아~ 우리 선생님존경하는 선생님 내 가슴 언제나 뜨겁습니다.”어린이들의 합창과 함께 수십송이의 꽃묶음이 매 교원의 손에 쥐여졌다.
그순간 눈물이 저도 모르게 나의 두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32주년 교사절을 귀여운 어린이들의 축복속에서 하루를 잘 보냈다.
밤은 깊어갔지만 이리뒤척 저리뒤척 나는 종시 잠을 이룰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을 모을래야 가슴에 구멍이 난것처럼 생각도 숨도 통체로 새나가서 영 담념할수가 없었다. 우리의 교육이 이런 단계에 처하였단 말인가?
속담에“물마실때 샘물판 인을 잊지말라.”고 했건만…불현듯 꽃병에 꽂은 꽃을보는 순간 어제, 오늘의 일들이 구슬알처럼 하나의 줄에 이어지면서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전에 첫 교원절은 농촌소학교에서 담임교원을 담당할때였다. 교원절을 앞두고학교는 즐거운 분위기에 휩싸였었다. 그때 나는 5학년 담임교원이였다. 학급장애가 나를 불렀다. “선생님, 물어 볼 일이 있어요.”“응, 무슨일이지?”“래일은 교원절인데 선생님은 무슨 물건이 수요되나요?” “그건 왜?” “비밀…” “내가 좋아하는 건 너희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 뿐이야.” “아니…” “우린 도시어린이들처럼 아름다운 장미꽃을 사드리지 못하지만 생생한 들꽃만은 준비할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요.”귀여운 어린이들이 학급장의 사촉하에 들에 가서 들꽃을 꺾어 저의 손에 쥐여주었다.
첫 교원절날 나는 과연 어린이들에게서 생생한 들꽃 한묶음을 선물받았다. 비록값가는 것은 아니였지만 어린이들이 순진하고 소박하고 축복이 담뿍 담긴 그 꽃을 정중하게 받았다.나는 마음속으로 더 잘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했다. 첫 교원절날 3학년 담임교원 김선생님은 학생들이 모은 돈으로 만년필을 받으시고 눈물을흘리셨다.
“존경하는 선생님 , 그 낡은 필을 두고 이 새 만년필로 교안을 쓰세요.” 아이스크림이나 사먹으라고 부모님들이 준 용돈을 모아 바친 돈으로 산것이였다. 그들의 기특한 정성에 김선생님은 목이 메였다. 그후 교사절도 어린이들의 축복을담뿍 받으면서 지내왔다. 첫 교원절을 맞으면서 받은 그들 꽃묶음이 나에게는 그래도 제일 귀중하고 값진 선물이였었다.
아시다싶이 당전 가족, 친척지간, 친구지간의 우의도 전보다 친밀하지 않다. 독신자가 사회의 주체로 되면서 어린이들이 교류하는 공간이 축소되였다. 그래서 감정교류의 뉴대가 째이지 못하여 어린이들이 점점 동정심 , 책임감이 결핍해지고 있다. 그러기에 사생간에도 두터운 정의로 맺어진 것이 아니라 거래관계로 맺어진 단기용으로 변해버렸다. 일단 그 학생을 가르치지 않으면 다시는 그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되지 않다고 판단이 될때는 미련없이 포기한다. 교원절날 그 아름다운 꽃묶음이 아쉽게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나는 래일의 태양을 위해 다시 마음정리를 하며 우리 조선민족의 아름다운 언행, 아름다운 미덕을 발양하면서 어린이의 어린 심정에 사람지간에 호상 리익관계로가 아니라 진지한 사랑으로 아름답게 펼쳐져가는 따뜻한 사랑을 심어줘야겠다고…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화려하고 찬란하지 않지만 우아하고 청순한 향기가 있는 나만의 추구와 나만의 빛갈로 아롱지는 여운이 있는 수필 , 그런 수필같은 인생을 만들어 가게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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