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녕안시조선족소학교)
김옥란
흙장난에 갈라터진 내 손목을 잡아쥐고
어머니는 호되게 호되게 때렸어요
흘러간 동년 그 시절 그리운 동년
그때는 그때는 정녕 몰랐습니다.
아, 우리 엄마 아, 아픈 매가
우리 엄마 아픈 매가 그립습니다.
학급에서 “어머니날”활동을 하면서 애들이 부르는 〈엄마 생각〉 노래를 듣고 있노라니 저도 모르게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와 함께 마음 한구석에 움츠려있던 회초리의 쨍한 아픔이 스멀스멀 연기처럼 머리 속에 피여오른다.
설날이 아니면 개눈깔사탕도 보기 귀했던 나의 어린 시절, 해볕이 쨍쨍 정수리를 달구는 한여름 부모들은 모두 일하러 나가고 아이들만 있는 마을에 천사같이 나타난 얼음과자장사의 유혹을 어린 나이에 물리치기엔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엄마 몰래 집에서 유일한 경제래원이였던 닭알을 들고 나가 얼음과자를 바꾸어먹었다. 꼬리도 길면 잡힌다고 후에 엄마한테 발각되여 머리에 털이 나서 엄마한테 그렇게 호되게 맞아보기는 처음이였다. 그 때 엄청 혼난 기억이 있었기에 그후 부모님 허락이 없으면 남이 주는 물건은 물론 제집 물건에도 마음 대로 손을 대면 안된다는 것을 가슴 속 깊이 아로새기게 되였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된 지금 가끔 주위사람들로부터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기도 한다.
옛날부터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여긴 부모님들은 비록 먹을 것, 입을 것이 변변치 못했지만 밥상머리에서부터 자식의 일거수 일투족에도 친부모가 옳은가 의심할 정도로 각박하게 굴면서 자식에 대한 교육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런 옛날 부모들에 비하면 지금의 부모들은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이여서인지 너무나도 너그럽고 인자하시다.
30여년간 교육사업을 하면서 나를 가장 머리 아프게 하는 것이 막무가내 부모님들과의 소통이다. 아이를 대신해 거짓말을 해주는 부모, “애가 어른들 돈가방을 다치니 돈건사 잘하세요.”라고 하는 교원의 귀띔에 “오, 그래요? 애가 한번 밖에 안 꺼냈다는데요.”라고 대수로워하지 않는 부모, 애가 자기 물건을 잘 정리하고 건사하지 못한다고 하면 “우리 집에는 돈이 많아요. 연필 몇자루 잃어버려도 괜찮아요.”라고 하는 부모… 어느 부모나 다 이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부모들 손에서 자라는 애들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어느 한번 학생들의 책상 안을 검사한 적이 있었다. 몇몇 학생의 책상안이 교과서, 필기장으로 뒤죽박죽 된 데다가 먹다남은 음식찌꺼기와 비닐봉지까지 한데 범벅이 되여 쓰레기통이 울고 갈 지경이였다. 보다 못해 내가 책상 안의 물건을 와락와락 끄집어내여 교과서는 교과서대로 필기장은 필기장 대로 차곡차곡 분류하여 책상 안을 깨끗이 정리하게 하였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책상 안은 또다시 엉망이 되군 하였다. 이런 애들을 보면서 애들 문제만이 아닌 그 애의 부모를 떠올리게 된다.
“고운 자식 매 한매 더 친다”고 고울수록 더 엄하게 가르치는 것이 우리 조상들의 대대로 내려온 교육방법이였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부모들은 애들이 자유롭게 자라야 하고 개성이 있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교육리론”으로 들말처럼 하고 싶은 대로 풀어놓는다.
언젠가 텔레비죤에서 본 일이다. 중국의 어느 도시의 한 샤브샤브식당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식당에 온 애가 식당에서 제집처럼 뛰여다니다가 뜨거운 음식그릇을 들고다니는 복무원과 부딪쳐 화상을 입은 일이 발생하였다. 일이 발생한 후 애부모들은 식당에 모든 책임을 추궁하면서 배상을 요구했다. 애가 다쳤으니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부모가 미리 애한테 공공장소에서의 규칙을 알려주고 지키게 했더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세살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어려서 제멋대로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여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해나갈지 마음이 무거워난다.
외국의 한 도시에서 길거리에 과일나무를 가로수로 심고 가을에 그 과일을 모아 자선단체에 기부한다는 천방야담같은 이야기는 우리 이곳에서는 아직까지 불가능한 일로 될 수밖에 없다. 더우기 지나가는 길손들도 익어 땅에 떨어진 과일을 보면 주어가는 것이 아니라 지정한 곳에 놓고 간다고 하니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여온 바른 습관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들을 잘 가르치지 못하면 그 집안이 망하고 딸을 잘 가르치지 못하면 남의 집안을 망하게 한다고. 원쑤한테 보복하려면 딸을 버릇없이 키워서 원쑤의 집안에 시집보내면 된다고. 우스개로 한 말이겠지만 웃고 지날 일이 아니다. 남자애든 녀자애든 바르게 키워야 집안이 흥하고 더 나아가서 나라가 흥한다는 것만은 명확하다.
그래서 나는 애들한테 눈 먼 사랑, 잘못된 사랑을 하고 있는 부모들을 대신해 나름대로 아니꼬운 눈총을 받아가면서도 애들의 “못된 후엄마”가 되여 사랑의 회초리를 들기도 한다.
어느 한번, 학급의 한 녀자애가 차비로 가져온 돈 10원이 잃어졌다. 녀자애는 자신이 어디에 떨궜거니 하고 누구하고도 말하지 않고 걸어서 집으로 갔다. 이튿날 차비로 호주머니에 돈 10원 넣어가지고 왔는데 또 없어졌다. 학급의 친구가 한 짓임에 분명했다. 조사결과 한 남자애의 소행이였다. 그 날 나는 그 애 부모 대신 남자애한테 회초리를 들었다. “바늘도적이 소도적이 된다”는 것을 가슴속깊이 새겨두게 하려고.
“몸에 좋은 약이 쓰다”고 비록 지금은 애들이 회초리의 매운 맛만 느끼겠지만 어느 날인가는 회초리에서 묻어나는 교원의 따뜻한 사랑과 그 달콤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부모가 변해야 아이가 변한다.”고 한다.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관건은 부모이다. 교원은 학교에서 교원이기도 하지만 애들의 두번째 ‘부모’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교원은 애들에게 지식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애들이 바르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바른 성품도 키워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옛날에도 필요했지만 지금도 ‘따끔한’ 사랑의 회초리가 필요하다.
오늘도 나는 한손에는 빵을, 다른 한손에는 사랑의 회초리를 들고 있다. 애들이 그려갈 더 멋진 래일을 그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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