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송이 · 방송 구서림
교수로 있는 친구들이 많다. 해마다 교사절은 오는데 번마다 한살을 더 먹어서 만난다. 아직은 초가을인데 벌써 겉옷을 걸치고 온 친구가 있다. 날씨가 차단다. 짠하다. 옆에 같이 온 젊은 친구는 아직 반팔인데 말이다.
선생님들의 사무실에는 학생들이 선물한 꽃들로 가득하고 경축은 친구들과 함께 한다. 우리가 자주 가는 단골집이 있다. 중요한 날인데 자리가 없을가봐 사흘전부터 예약을 해놓은 친구가 있다. 외국 생맥주가 맛있는 집이다. 날이 날인지라 이날은 1000cc짜리 큰잔으로 시작했다. 이 잔은 드는 게 아니고 안고 마신다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마시면서 눈을 내리깔면 잔에서 내려가고있는 맥주의 액체표면이 보인다. 얼마 마셨다는 걸 장악하기도 편리하다. 세잔을 마시면 6병의 량이다.
“명절을 축하합니다!”
“나는 일년 가도록 이날만 바라고 사는데...”
시종 일관 회식자리는 웃음이 떠날 줄 모른다.
“술도 술이겠지만 나는 번마다 이런 웃고떠드는 분위기가 좋더라”
교수에 언론에 개인사업을 하는 친구들이 모이지만 심각한 국제정세나 심오한 학술분위기는 이 자리에 나타나면 안된다. 굳이 그런 “고급적인” 화제가 아니더라도 할 말이 끝이 없다. 우리 스스로도 궁금해한다. 만날 만나는데 무슨 그렇게 할 말이 많고 시간 가는 줄 모를가.
오전에는 청도에 계시는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일년에 딱 두번 하는데 설과 교사절이다. 선생님은 오래전에 북경을 떠나서 공기 좋고 바다가 이쁜 청도에 정착하셨다.
“강의는 지금도 나가십니까?”
“안하겠다는데 자꾸 나오라네.”
“그냥 집에 계시기보다 종종 나가시는 것도 좋죠.”
“그래, 강의가 끝나면 낚시도 하고 그러네. 10여근씩 되는 큰 고기들이 잘 올라와서 기분이 좋구만”
선생님은 낚시에 대한 애착이 보통이 아니시다. 전에는 바다낚시를 즐기셨는데 이제 바다에서 고기가 잘 잡히지 않아서 민물에서 하신다고 한다. 낚은 물고기는 관리하는 사람들이 한근에 10원씩 다시 사들인다고 하니 큰고기를 많이 잡아도 부담스러운 일은 없다. 낚시는 손맛이라고 했으니 잡는 과정이 중요하지 잡은 고기의 거취는 알 바 아니다.
선생님은 우리가 입학해서부터 옹근 4년동안 담임을 맡으셨다. 지금은 다 그렇게 하지만 그때로서는 4년간 담임이 바뀌지 않은 건 우리가 처음이였다. 다들 개성이 독특한 반을 맡아서 선생님은 속도 적지 않게 썩이셨다. 입학해서 얼마 안 돼 다른 반 애들하고 싸우기도 하고 자전거 앞바구니에 술병을 달고 교문으로 들어오다가 학생처장하고 맞붙기도 했다. 숙소에서 마작을 놀면 안되는데 그것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에서 숙소마다 돌아다니며 검사한다는 정보가 있었는지 선생님이 밤중에 급하게 찾아오셔서 우리가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상우의 마작을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그러면 또 검사조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내려가서 그걸 주섬주섬 주어올라오는 친구도 있었다. 일일이 다 렬거하지 않고 졸업사진이 없는 반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선생님은 술도 잘 사주셨다. 5.4청년절 같은 때에도 한개 반 전체를 초대한다는 게 쉬운일이 아니다. 맥주를 어디 한두병만 마시는 청춘들도 아니고 20여명을 배불리게 하려면 한달 로임이 다 날아갔을 수도 있다. 이건 선생님이 주동적으로 불러서 사주시는 거고 우리가 시도때도 없이 댁에 들이닥쳐서 얻어마신 맥주까지 하면 일일이 셀 수가 없다.
술이라면 고중때 담임선생님과도 적지 않게 마셨다. 설마다 선생님집을 찾았는데 잘 포장하면 설인사고 목적의도를 밝히자면 술마시는 멋에 갔을지도 모른다. 사모님도 아주 후더운 분이셔서 안주도 한상 가득 차려주셨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된다는데 우리는 발찍하게도 학생 신분에서 선생님과 잔을 부딪치며 홀짝거렸다. 그러다가 북경에 오고난 뒤에도 설명절과 교사절에는 전화를 드렸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열정”이 식어갔다. 한해를 건너뛰고 나니 그 다음해부터는 중뿔난 것 같기도 해서 전화를 드리지 않은 게 지금까지 쭉 련락을 드리지 못하고 있다. 재작년에 동창회 때 만나니 그렇게 반가워하시는데 이제 술은 딱 한잔밖에 못하신다. 우리와 똑같은 량으로 잔을 비우시던 선생님이셨는데 세월은 비껴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학교 때에 화학선생님이 그렇게 큰 주량이 있었을 줄을 몰랐다. 그때에는 처녀선생님이라 우리하고 나이 차이도 얼마 되지 않았다.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분필을 내려놓으며 새침한 표정으로 삐치기도 했다. 사회에서 만났더면 그냥 누나다. 그런데 엄연하게 선생님이시라 감히 한잔하자는 말을 못했던 것이 아쉽기도 하다. 몇해전에 고향에 갔다가 오랜만에 련락을 드렸더니 밤중에 나오셨다. 그날은 이런저런 학교 때 얘기를 하면서 새벽까지 달렸다.
그런데 나는 왜 신성한 교사절을 주제로 해도 술을 떠나지 못하는 걸가.
지난주 토요일 “달팽이 약속”에서 삼송이가 선생님들을 실명제로 해서 글을 썼던데 참 보기 좋았다. 그 글을 읽은 선후배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도 어지간히 진중한 모습을 보여야 되는데...
중국조선어방송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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